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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촌’의 시골에서 저녁 먹고 방을 뒹굴 때, 밤은 왜 그렇게 길었던가. 그때의 어둠은 또 왜 그리 새까맣던가. 생쌀 먹으면 내 배가 아프단다, 어머니 말씀하셨지만 흔들리는 호롱불 아래 놀다가 몰래 한 줌 씹어먹기도 했다. 어쩌다 비닐장판을 들추어 바짝 마른 호박씨라도 하나 건지면 입이 벌어졌다. 좀체 잠은 아니 오고 까까머리 사촌들과 이런저런 놀이도 시들해질 때 형이 꿀밤 세 대를 걸고 내기를 걸어왔다.

비료포대로 도배한 벽에 쥐들이 부스럭거리는 낮은 천장. 좁아도 몸이 작아서 괜찮은 방의 구석에 짚으로 만든 쌀가마니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어머니의 손때 묻은 콩나무 시루가 서 있었다. 야, 저 시루에 발바닥 둘을 포개면 누가 더 클까? 그야 뭐 재보나마나 시루라고 말했다가 이마를 야무지게 쥐어박혔다. 놀라워라, 형이 발바닥을 이층으로 포개니 콩나물시루를 간단히 눌렀다!

사람의 발바닥, 그거 시쁘게 볼 게 결코 아니다. 인체에서 차지하는 표면적이야 얼마 되지 않아도 저 띵띵한 무게를 너끈히 감당하는 것. 고삐 없는 송아지처럼 함부로 돌아다녀도 굳건히 지탱해 주는 힘이 바로 저 굴참나무 잎사귀만 한 발바닥 두 장에서 비롯하지 않겠는가. 이승의 가장 아래에서 저승의 가장 높은 곳과 늘 접촉하는 발바닥.

최근 북한산의 의상능선을 짚고 왔다. 물론 신체발부를 다 동원했으나 특히 발바닥의 노고가 컸다. 산에서는 오전에 한 일이 오후에 다 보여서 좋다. 멀리 능선을 흐뭇하게 바라보면 하늘과 산이 맞붙어 만드는 저 곡선이 오늘 내가 따박따박 그린 발바닥의 궤적이 아닌가.

막걸리가 기다리는 단골집으로 들어가 일행에게 간단한 퀴즈를 내었다. ‘행복이라는 말, 한때 참 범람했는데 이제는 그리운 단어이기도 합니다. 행복도 아마 그 바탕에는 만족을 깔고 있을 것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만족한다고 할 때, 발 족(足)자를 씁니다. 인체의 가장 아래이고 변방인 발, 어쩌면 몹시도 시시하고 참으로 하찮은 것 같은 발에다가 하필이면 만족이라는 뜻을 부려놓았는가요?’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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