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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광장 맞은편은 덕수궁이다. 덕수궁 정문은 대한문이다. 며칠 전 그 앞으로 지나다 인도 보도블록 위 화단을 보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직도 이 화단이 그대로 있다니. 무심히 지나가는 인파들은 이 화단에 눈을 주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 화단은 땅 위에 일군 게 아니다. 보도블록 위에 흙을 그대로 덮어서 거기에 꽃들을 심고 서울 중구청에서 열심히 가꾸고 있다.

이 화단이 생긴 건 2013년 5월이었다. 2012년 4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계속되는 해고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분향소를 이곳에 경찰의 방해를 뚫고 세웠다. 그때 벌써 22번째 희생자가 나온 뒤였다. 그곳에서 죽음의 행렬을 끊자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 이명박 정권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피해를 당한 제주 강정마을,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희생자들이 모여 ‘함께 살자 농성촌’을 꾸렸다. 국가폭력에 피해를 입은 이들이 집결된 상징적인 곳으로 변했다. 박근혜 정권은 이전 정권에서 벌어진 국가폭력-국가범죄를 풀기보다는 분향소와 농성촌을 치워버리는 일에만 골몰했다.

중구청이 나서서 농성장이 있던 자리에 화단을 만들었고, 경찰은 그곳에 농성장 재설치를 강력히 제지하고, 어떤 항의행동도 허용하지 않았다. 집회신고도 아예 막아버렸다. 그 후 규탄 집회와 기자회견이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강제해산을 하거나 체포를 하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당시 쌍용차 노조 지부장과 민변 변호사가 체포되기도 했다. 나는 중구청과 경찰의 행패에 항의하러 화단에 들어가 피켓을 들었다가 5분 만에 끌려나왔다. 그 5분의 피켓 시위로 150만원의 벌금을 받았다.

그런 막무가내식 체포와 진압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사람이 당시 ‘남대문의 아이히만’으로 불린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이었다. 그는 걸핏하면 강제해산을 남발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보호조치’와 ‘위험발생 방지’도 남발했다. 그는 2013년 12월 압수수색 영장 없이 민주노총 건물을 진입하게 하는 등 곳곳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그런 그가 박근혜 정권에서 총경으로 승진해갔다.

최근 경찰은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지지부진하던 권력기관 개혁 방향이 지난 7월30일 당·정·청 협의를 통해 가닥을 잡았고, 그때 협의된 내용이 8월4일 ‘경찰법 전면개정법률안’(김영배 의원 대표발의)으로 국회에 발의되었다. 7월30일 당·정·청은 국가정보원 개혁과 관련해서는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국내 정보 수집과 대공수사권을 삭제하는 등의 개혁 내용을 확정했다. 지금까지 정치권이나 시민사회에서 논의되었던 내용들이 대체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의 개혁 방향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다.

개정 검찰청법은 검찰이 직접 수사하게 되어 있는 6개 범죄(부패·경제·공직자·공직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를 규정했는데, 입법예고된 시행령에서는 마약범죄와 사이버범죄까지 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이렇게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늘려버리면 기소와 공소 유지를 검찰이 맡게 한다는 수사권 조정의 취지가 무색해져버린다.

경찰개혁과 관련해서는 더욱 문제가 많다. 그간 경찰개혁위원회와 시민사회에서는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수사 분야에서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되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넘겨받고 정보 수집 권한도 갖게 되므로 권력을 분산하고, 내외부 권력감시와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의견을 내왔다. 자치경찰제 도입 권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전국의 13만 경찰 조직을 경찰총장이 틀어쥐고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화된 권한에 비해 이를 감시, 견제하는 장치는 거의 전무하다. 지금의 자문기구인 경찰위원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국가경찰위원회, 그리고 시·도 경찰위원회만 법안에 담겨 있다. 그런데 중대한 치안 상황이 벌어지면 경찰청장은 전국의 경찰을 지휘하면서 개입할 수 있고, 중대한 수사에 대해서도 국가수사본부를 통해 개입할 수 있다. 사실상 인사권도 경찰청장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자치경찰제 도입 취지가 실종되어버렸다.

그래서 경찰개혁을 위해 노력해온 인권단체들은 “지난 3년여간의 경찰개혁 논의 과정을 거치며 정부·여당이 내놓은 경찰개혁안은 ‘앞으로 정말 잘할 테니 믿어달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평가하고, “‘민주적 통제’와 ‘경찰 권한 분산과 축소’를 이룰 수 있는 경찰개혁법안을 다시 발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 정권에 들어와 진행해온 권력기관 개혁을 셀프개혁으로 맡겨놓은 것부터가 문제였다. 권력기관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몸부림 앞에서 이 정권에 요구되었던 적폐청산은 흐지부지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부터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까지 광범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경찰이 시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것일까? 언제고 경찰을 통한 권력 유지를 원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남대문의 아이히만은 곳곳에서 출몰할 것이다. 다시 경찰개혁이 국정과제로 등장하는 나쁜 상황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시민사회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지금도 덕수궁 대한문 앞 화단에는 꽃이 피어나고 있을까? 저 화단부터 치웠으면 좋겠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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