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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도 임대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다. 임대인이 집값을 올려달라고 요구한다면 임차인은 협의를 거처 거절할 수 있고, 재계약 시 나가 달라는 요구를 하더라도 세입자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퇴거를 거절하고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임대인의 제안을 임차인이 상황에 따라 거절하는 것은 막무가내 이기심의 발로도 아니고 합리적이지 못한 규칙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주택임차인의 거주권은 주택을 빌린 사람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며, 주택의 점유 형태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든 우리 사회의 규칙이다.

주거권 운동을 하는 나조차도 임차인으로서 임대인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주저될 때가 있다. 임대인이 나쁜 사람이어서, 험한 말을 하기 때문이어서는 아니다. 나를 둘러싼 사회가 소유자의 이해관계를 우선해야 하고 임차인의 처지는 그다음에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와서 벽지가 젖을 만큼 눅눅해져 곰팡이가 피어도 “이 집이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를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임대인에게 곰팡이가 핀 것을 말해도 될까?” “내가 잘못해서 곰팡이가 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다.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사회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주택임차인이 임대인과 협상할 수 있는 범위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 7월 말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에게 계약갱신권이 처음으로 생겼다. 임차인과 임대인 간의 분쟁 조정을 다루는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도 6개에서 18개로 추가 설치될 예정이다.

주택임차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임차인 자신을 위한 행동일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주거 안정을 공고히 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 토대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세입자가 자신이 겪는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주택임차인의 주거 불안을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가 다루어야 할 불안으로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게다가 주택임차인은 그 주택에서 삶을 꾸리는 사람이다. 매일 주택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치며 주택을 돌본다. 지역으로 확장해도 마찬가지이다. 동네를 매일 같이 걷고 마주하며 그 동네를 돌보는 사람이다. 주택과 동네를 두 발로 살아가는 사람이 존중받는 일은 지역에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이롭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예비 소유권자’가 아니라 ‘주택임차인’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 가길 바란다. 집을 앞으로 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장래에 집을 사거나 혹은 사지 않더라도 크게 상관없다. 세입자의 삶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처지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말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누가 세입자로 살든, 집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멸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해보자는 것이다.

세입자로서 대화를 시작하자. 이건 소박한 삶의 요구를 나누는 것이자,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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