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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뼈 빠지게 일하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 나라에 살고 있다.

푸코의 진단처럼 인구관리를 위해 누군가가 죽어야 하는 사회가 아니라, 천민적 자본의 증식을 위해 누군가가 생명을 수탈당해야 하는 사회이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악담으로도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산업재해율이나, 수시로 우리 일상을 위협하는 인재(人災)들은 ‘이미 권력을 압도해버린 시장’의 존재증명일 뿐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런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부실한 안전시설로 위험이 빤히 보이는 작업장으로 내모는 기업이나 경비절감을 위해 무리한 작업일정을 압박하는 사업주와 경영자들에 맞서, 정부를 향해 제발 죽게 내버려두지 말아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의 억장 받친 함성이다. 산업안전보건법같이 너무도 무력한 법령들을 제치고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촛불시민들의 단호한 명령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위헌론을 제기하며 이 법률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지 말고 살자고 만드는 법을 극구 반대하고 나서는 것도 가당찮지만 거기에 헌법을 들이대며 위헌 운운하는 것은 더욱 기가 막힌다.

사람을 위험으로 내몰다 급기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업을 방치하는 나라는 민주사회 그 어디에도 없다. 하물며 헌법 전문은 우리들의 안전과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것이 이 나라 대한민국의 존재목적이라 선언하고 있는 터이다. 물론 구체적인 조항들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다. 이 법률은 기업의 이윤보다 사람의 생명을 우선하라는 것이니 자본의 천박함은 이를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기들이 싫다고 해서 그것이 위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법률안이 헌법상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은 이런 딴죽걸기의 대표 사례다. 어떤 안전시설이 필요하며 어떤 조치들이 있어야 하는지는 산업현장이 더 잘 안다. 다만 입법기술상 그 많은 작업장들에 필요한 안전시설 조치들을 하나의 법률에 담아낼 수 없기에 법률안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을 끌어오거나 법률전문가의 해석을 통해 이를 보완하고자 한다. 헌법의 명확성 원칙은 이런 입법방식을 허용한다. 작업장의 위험요소만큼이나 헌법 원칙 또한 다 알면서 모른 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작업장 관리자나 하청업체의 잘못 때문에 사업주와 경영자 혹은 원청업체가 처벌받게 생겼다는 엄살 또한 마찬가지다. 이 법률안은 작업장의 안전보호 책임을 사업주 등에까지 확장한다. 이윤은 자기가 챙기고 위험은 외주화하는 자들에게도 사람이 죽지 않는 작업장을 만들 의무를 지우는 것이다. 그 처벌조항은 바로 이렇게 확장된 의무를 위반한 자를 향한다. 이윤이 있는 곳에 안전보호 의무가 있어야 한다는 그 당연한 원리를 담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양벌규정도 이 점에서 타당하다. 중대산업재해의 책임자와 함께 기업까지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이 법률안의 처벌 대상은 중대산업재해 예방 업무와 관련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한 기업이다. 중대산업재해가 기업 내부의 안전관리 체계의 결손으로 인한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기업이 그에 합당한 주의·감독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일반 법원칙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억울한 연좌제가 아니다. 너무도 사리합당한 자기책임의 추궁일 따름이다.

혹자는 PC방이나 노래방 같은 소규모 업소까지 과잉규제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안전은 “그런 업체까지도”가 아니라 “그런 업체도” 포함하는 문제다.

물론 이들에게 대형조선소 수준의 안전기준을 요구하지 않는다. 공기순환이나 소방안전 정도의, 그 업종과 규모에 합당한 안전장치들을 명할 뿐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안전비용은 당연한 영업비용이다.

사실 안전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같은 특별법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작업장, 시설에서 이미 확보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헌법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 상식이다.

그래서 일하다 죽지 않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위헌이 아니라, 경영상의 이유 운운하며 그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 위헌이다.

다시 되짚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우리 헌법이다. 다른 말 하지 말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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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시절이하수상 그런데 말입니다. 기업은 돈을 벌고자 함이 맞습니다. 현장에서 누가 일을 합니까? 근로자가 일을하는데,노조는 뭘하지요?귀족노조 말입니다. 사고가 나면 노조의 목소리가 떠들석합니다. 안전 설비, 장구를 요청했는데 안되었다고. 왜 작업전 점검을 안 하지요? 작업팀에도 엄연히 조직이 있어 사전 점검, 작업중 점검, 작업후 점검이 있는데요. 사고는 기업주만의 책임이 아니라, 작업자와 작업자가 포함된 조직의 공동책임이지요. 무리한 작업의 요구, 준비되지 않은 안전시설은 기업주와 안전 담당의 책임으로 볼 수 있겠지요. 민주노총, 한국노총도 이 책임에서 발을 뺄 수만 없겠지요. 조직을 확장하면서, 안전에 대한 고려 사항도, 단체 협약시에 강력히 협의되어야 하는데, 그놈의 돈만 올리라고 아우성 치면서, 안전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생각은 없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행동으로 하지 않으면, 고소작업대에 올라갈 때, 굳이 음주 측정을 하지않아도, 밀폐공간에 들어갈 때 산소농도를 측정하여 사전 위험을 통지하고, 접지가 되었는지 매일 점검하고, 크레인 와이어가 터질지, 낡았는지 매일매이매일 점검하고, 매일 같이 외치는 안전구호를 구두선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날, 우리는 저녁에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 갈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어느 한쪽의 책임이 아닌 모든 기업주와 근로자가 안전 혁신을 하여야 합니다. 혁신은 낡은 틀에서 벗어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1.01.1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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