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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굿바이 LG폰

경향 신문 2021. 4. 6. 09:44

‘초콜릿폰’과 ‘프라다폰’ 등으로 한때 세계 시장 3위에 올랐던 LG전자 모바일 사업이 26년 영욕의 역사를 마감했다. 사진은 2006년 홍콩 ITU텔레콤월드에서 모델들이 초콜릿폰 등 주력 제품을 선보이는 모습./연합뉴스

1935년 5월24일 저녁.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점등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600마일 떨어진 신시내티 크로슬리필드의 632개 전등에 불이 들어왔다. 메이저리그 첫 야간경기 장면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전구였다. GE는 백열등을 개발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세운 기업의 후신이다. 그런 GE가 지난해 5월 129년 전통의 전구 사업을 정리하기로 한다. 형광등에 할로겐 전구까지 개발한 GE로서도 기업의 명맥을 이어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세탁기 등 가전 사업은 이미 2016년 중국 하이얼에 넘긴 터였다.

주력사업을 정리한 경우는 이외에도 많다. 파나소닉은 TV와 스마트폰 사업을 접고 전기차 배터리 등에 집중한다. 컴퓨터 제조사의 대명사 격이었던 IBM은 중국 레노버에 PC 사업을 팔았다.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 제국의 몰락과 변신도 극적이다. 노키아는 휴대폰 제조 대신 통신장비 등 네트워크에 집중해 세계 3대 업체로 올라섰다.

세계 3위까지 올랐던 LG전자가 결국 26년 동안 이어온 모바일 사업을 닫기로 했다. 초콜릿폰과 프라다폰, 샤인폰 등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5조원의 누적된 적자를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다.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사업 실패는 단지 기술 부족 탓이 아니다. 실적이 좋을 때 눈앞의 이익에 취해 변화의 큰 물결을 읽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될 때가 많다. 2007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넣은 스마트폰을 생산하자는 구글의 제안을 낚아채지 못한 건 LG의 뼈아픈 실수이다.

소프트웨어 중심인 스마트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것도 패인이다. 여기에 숨은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자금력이다. 아이폰 충격에 맞닥뜨렸을 때 삼성이 갤럭시를 성공시킨 배경에는 돈줄인 반도체가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기업 빅딜 때 반도체(지금의 하이닉스)를 넘긴 LG로선 수년간 출혈경쟁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모바일 사업은 접지만 LG의 기술력은 그대로이다.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는 자동차 전자장비 사업 등에 기술을 잘 접목하길 바란다. LG전자의 새 출발에 기대를 건다. 떠날 때를 알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병역 논설위원


 

오피니언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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