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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회보장제도를 비판하면 그 글이 어떤 내용이든 인공지능(AI)이 쓰는 것처럼 비슷비슷한 댓글이 달린다. 아무튼 부정수급자를 일제 ‘검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수급에 대한 제도적 검열 장치는 이미 많고 사회적 비난과 낙인이 있음에도, 수급자 상태는 ‘멀쩡한’ 일을 하기에 최악의 조건임에도, 충분히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급자들이 제도의 도움과 자력구제 사이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직장은 그저 월급 인출기인가? 직장이란 존재를 증명하는 명함,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 살아가며 필요한 인맥을 보장한다. 수급자는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시민권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인구의 3.4%인 극빈계층으로 산다는 것은 중산층의 삶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는 닫힌 세계 안에 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세계’와 ‘저 세계’가 연결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지 국가는 똑바로 질문하지 않는다. 생계급여란 국민들 중 딱 중간으로 버는 사람 월급의 30%를 통장에 넣어 주는 것인데, 이마저도 온전히 받으려면 ‘일을 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안 된다. 수급자 집안이 대대로 빈곤을 대물림하는 것이 제도의 목적이라면, 대성공이다. 작년 가을 강원도의 공무원이 육아휴직 중 생계급여를 받은 것이 논란이 됐다. 공무원 A씨는 휴직 기간 근로소득이 0원이기에 수급자 신청을 했고, 강릉시는 보건복지부 질의 후 신청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아 선정했다. 그러나 추후 논란이 되자 복지부는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휴직을 한 경우 무소득자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몇 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육아는 ‘자발적’인 선택이기에 그 기간 양육자의 경제적 어려움은 국가가 나몰라라 해도 되는 것인가? 아이 기르기를 포기하고 직장으로 돌아가면 월급이 다시 나온다는 이유로? 국가는 국민에게 소득이 없는 이유와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 공공부조의 목표는 필요한 때에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상황이 괜찮아지면 그만 받았다가, 또 필요하면 부담 없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과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사이트 ‘복지로’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인생에 닥친 경제적 위기의 순간… 대한민국 정부가 생계급여로 다시 살아갈 힘을 드립니다.”

위의 사례에서 화가 나는 점은, 공무원 A씨는 복지 정보를 쉽게 알 수 있었고 복잡한 서류를 증빙할 필요 없이 ‘직권’을 활용해 심사를 통과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는 제도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엄두를 못 내고, 빈곤을 견디다 못해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기적으로 지면을 장식한다. 한 번 수급자가 된 사람은 이 기회를 놓칠까 전전긍긍한다. 국가는 가난을 어떻게 상상하는가? 한때 일하던 방과후교실에서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줄 때 전달식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오지 말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국가가 생각하는 ‘나이키 운동화’는 무엇인가.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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