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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법률전문가가 정치적 관심의 초점에 서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조국 교수다. 윤석열은 보수진영 대권 후보 반열에서 최고 지지율을 얻고 있다. 그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 가끔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바깥 풍경을 살피고 있다. 조국은 검찰개혁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온 집안이 풍비박산 상황이다. 보궐선거 패배 후에는 지지층 내부의 눈총마저 따가워져 SNS의 창을 통해 이웃들과 겨우 얘기를 나누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이 두 분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정치적 행보로 읽히는 두 사람의 발걸음이 연일 화제다. 윤석열이 외곽을 돌며 기회를 노리는 아웃복서라면, 조국은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라 하겠다. 이미 격한 일합을 겨루었던 둘은 한 번 더 진하게 붙을 기세다. 윤석열의 대권 후보 등판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있는 가운데 조국은 <조국의 시간>이란 책을 냈다. 두 사람은 이미 정치의 중심에 들어와 있다. 두 분을 지켜보는 정치판의 셈이 분주해지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조속히 버스에 타도록 해야 한다, 아니다로 시끄럽다. 민주당은 조국과 선을 그어야 한다, 아니다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판의 복잡한 계산과는 별도로 좀 따져볼 대목이 있다. 두 분이 법률전문가로서 정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다. 두 사람은 법률과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활약하고 있는데 법률전문가로서 정치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마디로 평을 하자면, 윤석열이 ‘정치를 위해 법률을 이용’하였다고 한다면 조국은 ‘정치를 법률로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은 검찰권력을 가지고 정치과정에 개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정치과정 개입이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고 나라를 지키려는 것이었다고 했다. 조국이 법무장관으로 오게 되면 세상의 정의가 무너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기 행위의 동기가 선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바로 그 선한 동기에 대한 설명이야말로 윤석열이 자기 발로 법률의 경계를 넘어 정치의 영역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윤석열은 법률로 정치를 흔들려고 했다. 그 하이라이트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 청문회 기간에 요란한 압수수색을 한 장면이었다. 윤석열의 법률적 판단이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시간은 정치의 시간이었다. 그는 법률의 창을 들고 정치의 세계로 진격했다.

윤석열은 임기를 마치지 않고 사표를 썼다. 그리고 대권 후보 행보를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이 검찰총장 시절 논란을 수반했던 행동이 다 정치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윤석열은 ‘정치를 위해 법률을 이용한’ 사람이 되었다.

한편 조국은 정치를 법률로 이해하는 분으로 보인다. 윤석열이 조국에 대해 ‘탈탈 털기’를 했을 때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법적 대응이었다. 법적 진실의 규명이 핵심이었다. 사실 확인과 법률 해석을 통해 윤석열의 검찰과 처절하게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법적 진실의 규명이라는 영역과는 별도로 국민의 실망과 좌절이라는 영역이 생겨났다. 조국 교수는 그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식 교육과 관련하여 조국 교수 가족이 누린 기회는 그것이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일반 국민은 거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법을 어겼을 가능성에 대한 실망보다 더 큰 좌절은 조국 교수 가족이 향유했던 기회구조가 남다른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좌절이 특별히 크게 느껴졌던 것은 조국 교수가 평소에 했던 말에 비해 그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고 내처 분노까지 하게 되었다. 이러한 박탈감은 법률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다루어져야 할 일이다. 조국 교수는 새로 낸 책에서 이 점에 대해 지지자와 마음이 아팠을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훌륭한 일이고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의 전체 분위기는 법적 진실에 대한 간절한 해명으로 읽힌다. 그것이 아쉽다. 그가 검찰개혁 과정에서 고통을 겪었던 가족의 아픔을 특별히 강조하는 대목도 그렇다. 가족의 피를 펜에 찍어서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가 한때 즐겨 쓰던 ‘육참골단’이라는 표현처럼 강하기만 할 뿐 ‘울림’이 없는, 즉 공감을 얻기 쉽지 않은 표현이다. 이것을 보면 그는 여전히 법적 진실 확인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아직도 정치를 법률로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윤석열과 조국, 두 법률전문가의 ‘정치’에 대한 인식은 아쉬운 수준이다. 윤석열은 정치를 위해 법률을 이용했고, 조국은 정치를 법률로 이해하는 것 같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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