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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에 대해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생각해둔 글감들이 있었다. 글을 준비하는 동안 다른 필자들의 글을 읽었는데, 내가 꺼내려고 했던 이야기의 대부분이 들어있었다. 글감이 자꾸 사라져 당황했지만, 그건 그만큼 우리가 겪는 일상의 차별들이 어디서나 만연하고 보편적인 형태로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이 법이 소수를 위한 법이 아니라 만인을 위해 필요한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차별금지법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처럼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다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위험한 징후는 그런 짓을 대놓고 해도 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속내를 감추는 것은 위선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헤아리고 배려하기 위한 공존의 규칙이자 사회화의 기능이기도 하다. 형식화된 에티켓은 계급의 옷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는 인간의 성숙이다. 음식이 맛이 없어도 정성껏 만든 사람의 면전에서 퉤하고 뱉어내는 이를 ‘솔직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차별할 권리와 혐오할 자유도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하라는 사회가 됐다.

차별과 혐오도 권력관계를 반영한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맘껏 표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의 강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이 특권을 오래 누리다보면 감정과 생각을 날것 그대로 표출하는 유아적 상태가 된다. 대표, 사장, 시장, 총장 등 각종 가부장들이 무례하게 행동하고,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호의’라고 하며 맘대로 베풀고,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사소한 일까지 돌봄 없이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자신보다 강자 앞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회화되어 집단적으로 작동하는 차별과 혐오는 위계 서열의 위에서 아래로 작동한다. 상급자는 하급자를, 자본가는 노동자를, 백인은 흑인을, 남성은 여성을 차별할 수 있지만 반대는 불가능하다. 다층적으로 교차하는 권력관계 속에서는, 그 누구라도 절대적 강자도, 절대적 약자도 될 수 없다.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차이와 소수성은 언제든 어디서든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파 포퓰리즘은 삶의 불안정과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억눌린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고 지지에 동원한다. 문제는 그 방향이 불평등의 구조나 권력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더 약자를 향하게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 팬데믹 위기 등으로 드러난 체제 위기 속에서, 정치적 불신과 함께 응축되어온 불안과 공포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우파정치를 불러오고 있는 현 상황은 더욱더 제도적 안전망을 요청한다. ‘미국의 보호자’를 자임했던 트럼프는 물론이고, 노골적인 ‘보호 중심 유럽’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유럽연합 등 현재 세계적으로 발호하고 있는 새로운 보호주의는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불안을 소수자, 외부자에 대한 공포로 연결시키는 구 파시즘의 인종주의 문법을 그대로 답습한다.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관계 속에 놓인 개인들이 각자 불이익을 감수하며 때마다 차별에 저항하고 혐오를 저지할 수는 없다. 차별금지법은 사회 연대적 보호 개입을 통해 시민의 존엄을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현실적 안전장치다. 차별과 혐오를 용인하며, 각자가 자신의 우위 자본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사적 권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사회는 만인을 만인에 대한 야수로 만드는 사회다.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은 제도화된 불평등한 관계를 제도를 통해 해체하여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키려는 운동이었다.

‘차별할 권리와 혐오할 자유’를 적극 주장하며 이 운동을 위협하는 것은 우파인 국민의힘이지만 그들에게 힘을 주고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가 광장에서 거리낌 없이 발설될 수 있도록 불러낸 책임은 민주당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민주당은 자기 권력의 보호와 유지, 이해관계와 직결된 문제에선 국민의 의견이나 합의 따윈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신공항특별법이나 검수완박법을 처리할 때는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노동법을 개악하고,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개인정보법을 개악했으며, 농민들의 반대에도 메가FTA 협정을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그런 정당이, 자신들의 공약이었고 시민사회운동이 10만 국민동의청원으로 힘을 모은 차별금지법은 합의 부족과 반대 의견을 핑계로 묵히고 미루고 방치하고 있다. 선거공학이 아니라 정치철학을, 표 계산이 아니라 정치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줄 수는 없는가. 최소한 자유주의 정당으로서 할 일이라도 하라.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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