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덥다는 말을 예전엔 별 생각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얼굴이 떠오르고 만다. 뙤약볕에서 농사 지어 작물을 보내주는 외할머니. 트럭 몰고 다니며 사시사철 야외에서 일했던 아빠. 여름에 더 많이 소비되는 축산 현장의 닭들, 폭염 때문에 삶의 터전을 일어가는 기후난민들…. 내 더위의 무게와 그들 더위의 무게는 다르다. 더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는다.

그중 어떤 얼굴은 친구보다 더 자주 마주친다. 쿠팡조끼를 입은 사람들의 얼굴이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었던가. 화물차에서 내리는 그들을 어느 동네에서나 본다. 그들이 밤낮으로 배송하는 물건은 물류센터로부터 왔다. 물류센터는 상품을 검수하고 분류하는 공간이다. 우리 집으로도 오고 당신 집으로도 갈 택배 상자 수만개를 그곳의 노동자들이 상차한다. 바로 그곳, 쿠팡 물류센터에 에어컨이 없다는 기사를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여름철 물류센터의 평균 온도는 30도에서 35도까지 올라간다. 전국에 100개 가까이 되는 쿠팡물류센터 중 에어컨이 설치된 작업장은 단 한 곳뿐이다. 4만명 넘는 쿠팡노동자들이 에어컨 없는 물류센터에서 일한다. 이 고통을 헤아릴 능력이 우리에게 있지 않으냐고 묻고 싶다.

이 여름, 쿠팡노동자들의 에어컨 설치 투쟁을 지지하는 신문광고 모금 포스터를 보았다. 쿠팡이 안 하니까 노동자들이 직접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미안하고 화나고 걱정되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보탰다. 매일같이 쿠팡노동자를 마주치고 지나치는 이들의 작은 염치였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 기업의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을 시민들의 선의로 해결할 수는 없다.

냉난방은 물론 복지 전반이 최악

어째서 노동자가 자비로 신문광고를 하면서까지 에어컨 설치를 요구해야 하나. 기업이 했어야 할 일이다. 아무런 장치 없이 폭염 속에서 장시간 노동하고도 상하지 않는 몸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39조 역시 그에 관한 내용이다. 사업주는 고온과 저온 등에 의한 건강장애를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쿠팡은 노동자의 교섭에 형식적으로만 응하고 있다. 에어컨 설치를 강경하게 요구하는 이들을 해고하기도 했다.

냉방이 안 되는 작업장에서 난방이 잘 될 리 만무하다. 여름만큼이나 겨울도 견디기 힘들다. 애초에 쿠팡 물류센터는 냉난방 시스템이 충분히 도입될 수 있게끔 지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에 최적화된 장소다. 물건을 나르고 다루는 수만명의 노동자를 무시해야만 그런 설계가 가능하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자신의 책 <먼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기술은 힘을 향한다. 그래서 기술은 자본을 향하지 노동자를 향하지 않는다. (…) 힘의 기울기가 달라지면 자연히 더 많은 기술이 노동을 향하게 될 것이다. 칼럼에서는 ‘한국사회의 산재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본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진실을 다 말하고 있지 않다. 그다음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기업이 기본을 지키지 않는 건 기본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쿠팡이라는 자본은 기본을 지키지 않고도 괜찮아 보인다. 여름에는 고작 얼음물 한 병과 아이스크림 한 개, 겨울에는 핫팩 한두 개 정도를 지원하면서 굉장한 복지인 듯 생색을 내고 광고한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냉난방뿐 아니라 복지시스템 전반이 최악인 이유도 그래서다.

상대가 두려워야만 겨우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자들도 있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노동자를 두려워하는가. 어떻게 해야 노동자의 친구인 소비자를 두려워하는가. 그보다도, 우리는 정말 노동자의 친구인가. 현관 앞에 놓인 택배 상자에서 내 더위보다 더 극심한 더위를 헤아릴 수 있는가. 만나보지 않은 노동자를 상상하고 그들을 위해 움직일 의지가 나와 당신에게 있는가.

우정 쌓으면, 힘의 기울기 변한다

로켓배송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상자에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한다. 여름과 겨울은 매번 돌아올 것이다. 다음 여름도 이래서는 안 된다. 다음 겨울도 이래서는 안 된다. 공평하지 않은 날씨의 고통 아래 쿠팡이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 없이 힘의 기울기는 바뀌지 않는다. 우정도 시작되지 않는다. 쿠팡노동자만큼 많은 수의 친구를 상상하고 있다. 우리가 소비자일 뿐 아니라 노동자의 동료라는 걸 노동자가 알기를, 쿠팡이 알기를, 그리고 우리 자신도 알기를 희망한다. 쿠팡노동자들을 향한 멀고도 가까운 우정의 능력을 쌓아가자.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최신 글 더 보기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