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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대만 더불어민주당 전 경북도당 위원장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북·강서을)에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태 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금배지를 단 그는 지역주의 극복을 주창하며 서울을 떠나 부산 선거에 뛰어들었다. 벽은 높았다. 부산에서의 세 번째 도전은 세 번째 패배로 끝났다. 앞서 1992년 14대 총선(부산 동구), 1995년 지방선거(부산시장)에서도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럼에도 밭(지역구도)을 탓하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렸다.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에서 오래도록 강고한 벽이었다. 대구의 김부겸(전 국무총리), 전남 순천의 이정현(전 국민의힘 의원) 등이 한때 균열을 냈지만, 여전히 변화는 미미하다. 21대 국회에서 대구지역 의원 12명은 전원 국민의힘 소속이다. 광주지역 의원 8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6명, 민주당 출신 무소속이 2명이다.

경북 포항에서 활동해온 정치인 허대만(전 더불어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95년 만 26세에 전국 최연소로 포항시의원에 당선됐다. 앞길은 탄탄대로로 보였다.

예상과 달랐다. 그는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민주당 계열 정당으로 6차례 국회의원과 포항시장 선거에 나섰다. 모두 낙선했다. 2018년 포항시장 선거에선 42.4%를 득표하며 선전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2020년 총선 직전 이뤄진 선거제도 개혁이 누더기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석패율제(지역구에서 아쉽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제도)가 도입됐다면 그는 경북에서 당선됐을 가능성이 크다. 정치인 허대만의 좌절은 ‘1등만 정치할 자격을 갖는’ 한국 선거제도의 실패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부산 총선에서 낙선한 며칠 후, 한 잡지에 낙선 소감문을 기고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오랫동안 지역주의 벽을 두드리다 떠난 허대만의 마음도 이러할 것 같다. 고인의 안식을 기원한다.

김민아 논설실장

 


 

오피니언 | 여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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