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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장기요양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한 감염인이 병원 측의 적절한 조치 부족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에 인권활동가들이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를 진정했다. 이 병원의 에이즈환자요양사업은 병원 측의 사적인 ‘선의’나 환자 부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국가가 지정하고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감염인을 위해 이 병원에 설치된 72개의 병상과 간병인, 상담 간호사 등에 대한 비용 일체를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그 돈이 제대로 감염인의 생명보호를 위해 쓰이고 있는지를 잘 관리 감독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 이번 사건은 그 책임을 소홀히 해서 빚어졌다는 게 활동가들의 판단이다.


먼저 증언대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자. 사망하신 분이 이 병원으로 옮기기 전에 “당분간 수액을 꼭 꽂아달라고 전하라”고 원래 치료를 담당하던 의료진이 말해서 그대로 전했지만 요양병원에서는 “수액을 맞아야 한다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재차 요구했지만 수액이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또한 감염인이 호흡곤란이 생겨 자신이 치료받던 “본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음에도 병원 측에서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병원 측에서는 자신들이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데 30만~5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보호자인 환자 어머니가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감염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사망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HIV/AIDS 감염인의 처지와 인권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염인들은 갈 곳이 없다. HIV/AIDS가 만성질환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죽을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도 남에게 전파할 수 있는 전염병이자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생긴 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감염인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제한적이다. 직장에 알려질까 두려워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린다. 경제적 여력이 없다보니 주거도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한 쉼터도 이웃들이 모르게 쉬쉬하며 만들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배제와 차별 때문에 많은 감염인들이 병이 아니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인도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에이즈 상징 모양으로 배치한 촛불에 불을 붙이고 있다. (출처 :로이터연합)


더욱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번에 돌아가신 분처럼 장기요양을 받아야 할 분들이다. 이들이 갈 곳은 유일하게 이번에 문제가 된 병원이다. 그러다보니 감염인들은 받아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는 태도를 보이더라도 할 말이 없고 다른 것을 요구할 수도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니 그저 생명이나 겨우 연장할 수 있는 곳으로 ‘수용’된다. 실제로 증언대회에 따르면 다른 환자들과 달리 감염인들은 외출이나 산책에서도 제한이 심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통제되었다고 한다. 이런 공간에서 이들의 생명은 완전히 육체적으로만 연장하는 것으로 ‘고립’되고 ‘격리’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그저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에 감사하라는 공간에 인권은 없다. 인권에서 말하는 생명이란 그저 생명이 아니라 인간의 ‘삶’으로서 생명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 돌볼 가치가 있는 생명이고 그럴 때 우리는 ‘요양’이라는 말을 쓴다. 만약 그저 생명을 연명하게 하며 그조차도 돈이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 그 생명을 ‘돌보는’ 행위는 사육에 불과하다. 돌보는 사람은 자신이 생명을 돌보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한 증언자는 이 요양병원이 “환자로 보는 게 아니라 데리고 있으면 돈”이라고 한다며 “요양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단언했다.


청와대와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도하며 ‘민생’을 외면하는 한국의 ‘정치’를 개탄하지만 그 정치의 바깥에서 생명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돈과 인권 사이의 전투, 그리고 그 전투에서 국가와 정치의 책임 방기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이 칼럼을 쓰는 동안 활동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가 한 말이 가슴을 판다. 이 한 사람의 죽음에 경악하며 정치권과 언론을 찾아 뛰어다닐 때 그들은 ‘더 많은 사례와 더 심각한 증거’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을 숫자로 환원하기는 자본이나 정치권이나 매한가지인 셈이다. 숫자를 넘을 때 비로소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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