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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공감]중2병의 진실

경향 신문 2013. 11. 12. 21:00

“엄마가 경찰관, 요리사처럼 선택하는 직업이었다면 난 정말 단언컨대 절대로 선택하지 않았을 거야. 죽을 때까지 은퇴도 못하잖아.” “그러게 말이다, 언제 지나갈지 휴~.”


전화기 너머 친구에게 큰소리로 말하고 나니 좀 후련한 것 같았다. 하지만 혹여 건넌방의 딸이 들었을까, 마음 졸이는 난 역시 중2 엄마다.


말로만 듣던 ‘중2병’의 증세들이 열감기처럼 눈에 나타나면서 속을 끓이고 있다. 중2병이 ‘위키 백과’에 올라 있고, ‘북한군이 남한에 쳐들어오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우스개를 들을 때만 해도 함께 웃었지만 이젠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중2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올해 초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학부모를 향해 말했다. “어머니,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것이 있잖아요. 그게 평생 한 번은 언제고 치르고 지나가야 한다고 합니다. 고3 때나 어른이 돼서 그런 것보다는 차라리 중2에 지나가는 게 낫다고 위안들 삼으세요.”


‘지랄 총량의 법칙’을 들으며 큭큭 웃었던 엄마들의 얼굴은 지금 어떨까. 2학기 들어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다’고 운을 떼더니 밤마다 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속이 뒤집히면서도 겉으로는 이해심 많은 엄마처럼 애써 미소짓는다. 새벽 3~4시까지 아이 말을 듣고 있노라면 수긍가는 점들도 있고 동공이 점점 풀리는 탓에 ‘그래 까짓것 그러자’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아침 제정신이 돌아오면 부아가 치민다. 언제부터 학교가 ‘다닌다’ 또는 ‘다니지 않는다’ 선택의 대상이 된 거지?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닌 거잖아.


두통으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인상을 쓰고 있는 여자아이 모습 (출처 :경향DB)


다음 학년 진급을 위해 20시간을 채워야 하는 봉사 의무제가 싫어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하루에 적어도 4시간씩은 봉사를 하고 싶다거나, 철저히 시험 스케줄에 맞춰 돌아가는 수업일정이 못마땅하고 오히려 시간이 아깝다는 불평, 학생은 추위쯤 참아낼 줄 알아야 한다며 정신교육(사실은 부족한 난방시설 탓이 크다) 차원에서 한겨울 무릎담요와 겉옷을 빼앗겨야 하는 억울함, 검은색이나 회색톤 신발을 신어야 하고 가방을 메야 한다는 이상한 색깔론 등…. 어찌 보면 이상한 원칙들이 많긴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2로 대표되는 요즘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시험과 경쟁에 대한 부담일 것이다. 아이의 중2병은 중간고사와 학기말 고사를 중심으로 증상이 완화됐다가 다시 심해지고 완화되는 사이클을 보인다. 가장 극심할 때는 신체적인 증상으로까지 이어질 때이다. 바로 두통이다. 두 달 전 서울대학병원 청소년 두통 클리닉에 갔을 때 복도에는 한가득 초등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머리 아픈 애들이 이렇게 많나 싶었다. 응급실에서도 두통 자체가 증상이고 질병인 ‘원발성 두통’을 앓는 아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진통제 주사를 맞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10대 두통 환자가 많아 청소년 신경과 전문의가 퇴근하지 않고 종종 응급실에 내려온다는 얘기도 들었다.


문제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하고 24시간 심전도를 체크하고 갖가지 검사를 해도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의학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학업과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 두통 환자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의사들은 대개 두통 예방을 위해 신경과 약을 종류별로 바꿔가며 처방하고 18세 연령제한 약물에 대해서도 ‘대체약품 없음’ 문구를 붙여 처방한다. 한의사들은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중2의 부모들이 ‘술 권하는 사회’를 살아왔다면 요즘 아이들은 ‘두통 권하는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듯하다. 중2병은 이 같은 현실을 적당히 덮고 싶거나 사춘기의 하나로 치부하려는 어른들이 갈수록 키우고 있는 병일지도 모른다. 수능시험을 끝낸 아이들이 또 얼마나 대학입시로 두통을 앓을까.


김희연 문화부 차장 eggh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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