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위층에 누가 사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쿵쿵 뛰는 소리가 갈수록 심해져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위층으로 올라가 조심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가 그만 계단참에서 ‘전쟁’이 날 뻔했다. 예의를 갖춰 이야기를 했는데도 주인 아주머니는 목청을 높였다. 자기 집에는 어린아이가 없을뿐더러 그런 소리가 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씨름선수 같은 아들, 말이 엄청 빠른 딸까지 가세해 분위기가 자못 험악했다.

다른 층에서 나는 소리가 바로 위층에서 나는 것으로 들린 경우인 것 같다며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위층 사람들도 이내 핏대를 가라앉혔다. 덕분에 위층에 팔순 노모가 사시고, 주말이면 근처에 사는 손주들이 놀러 온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손주들이 찾아오는 날이면 위층 아주머니가 내려와 조금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가끔 과일이 오가기 시작했다. 층간 소음이 층간 소통으로 바뀌었다.

문을 마주하고 있는 202호와는 아직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아래층 101호에도 어떤 분들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새삼스러웠다. 앞집이나 위 아랫집이 물리적으로는 얼마나 가까운가. 내 머리와 위층 사람들 발바닥 사이는 수직으로 채 2m가 안된다. 앞집 사람들하고는 수평으로 15m 이상 떨어져 있지 않다. 서너 가구가 반경 10m 안에 살고 있는데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웃이 언제나 낯선 타인은 아니다.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요즘은 반려동물이 이웃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예전에는 어린아이가 ‘이야기 꽃’이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아이고, 고 녀석 참 잘생겼다, 몇 살이에요?”라고 말을 건네면 젊은 엄마가 “엊그제 돌 지났어요”라면서 몇 마디 대화가 오간다. 요즘은 아이가 있던 자리를 반려동물이 차지한다. 여고생이 강아지 앞에 앉아 손을 내밀며 묻는다. “아유 귀여워. 너 몇 살이니?” 주인이 답한다. “9개월 됐어요.”

반려동물과 같은 대화의 작은 촉매가 갈수록 의미심장해 보인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저 ‘작은 끈’이 우리를 지금과 다른 미래로 이어주는 ‘동아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반려동물이 가족, 이웃, 타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정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이 끊어지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씻어내기가 어렵다.

보다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사라지게 하는 ‘신종 전염병’이 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을 외면하게 하는 값비싼 상품. 지금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잃어버리게 하는 주범이 바로 온라인 시대의 총아, 스마트폰이다.

대화 연구자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셰리 터클(미국 MIT 교수)은 최근에 출간한 책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황소연 옮김, 민음사)에서 스마트폰이 가정, 학교, 기업에서 대화를 추방한다고 경고한다. 온라인 접속 과잉이 오히려 면대면 대화의 결핍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상담 역시 스마트폰이 막고 있다. 일터에서도 스마트폰이 회의다운 회의를 불가능하게 한다. 가족은 물론 연인과 친구, 직장 동료와 선후배 사이의 대화가 e메일이나 문자로 대체되고 말았다.

터클 교수는 온라인이 ‘우정을 요구하지 않는 교제’라는 환상을 제시했으며 프로그램이 날로 정교해지면서 ‘친밀감을 요구하지 않는 우정’이라는 환상을 강화한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감정이 급격하게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면대면 상황은 교감을 요구한다. 상대방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감정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동일시나 감정이입이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 터클 교수는 이를 ‘마찰 제로’ 상태라고 말한다. 기업의 해고 통보나 연인의 결별 선언이 문자로 이뤄지는 것도 심리적 마찰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디지털 원주민은 대화가 낯설고 불편한 세대다. 반경 10m 이내에 살면서도 서로 알려고 하지 않는 아파트 주민도 최초의 인류이지만 타인과 대화하기를 어려워하는 세대 또한 신인류다. 타인이 없는 미증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가 사라지면 사회적 결속력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자기 자신과도 대면하지 못한다. 대화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공감대와 소속감, 창의력, 성취감이 모두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대화를 되찾아야 하는 보다 다급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특이점을 맞이하고 있다. 지구 온도 상승과 인공지능(AI). 특이점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으며 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래가 개막되는 시점이다. 재난이 일상생활 안으로 한 발 들여놓고 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도약에도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가 ‘대화의 힘’을 재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특이점의 발생과 함께 공멸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웃이다. 사회안전망이다.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자문해보자. 나는 누구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가. 그런 상대가 몇 명이나 있는가. 현관문을 열 때도 물어보자. 우리 이웃은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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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6개 광역버스업체가 적자를 이유로 오는 21일부터 19개 노선 259대의 운행을 중지하겠다고 하면서 광역버스 이용 시민들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인천시내는 버스준공영제를 시행하여 인천시가 버스업체의 적자 보전을 통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나, 시계 외를 운행하는 광역버스 노선은 행정구역을 넘어 운행하는 버스이기 때문에 적자 보전을 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도 버스준공영제를 시행하면서 적자 축소를 위해 서울시 경계를 넘나드는 광역버스 노선 수를 2005년 26개에서 2015년 11개로 대폭 줄였다. 이런 광역교통 서비스 공급 문제가 경기도·인천과 서울시 간에는 특히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에도 서울 사당역 광역버스 정류장에는 100m 이상 긴 대기줄이 형성된다. 20년 전에도,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뱀처럼 휘어진 줄을 따라 기다리는 시민들 사이를 걷다보면, 폭동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할 지경이다. 베트남 하노이의 버스정류장에서 이용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버스 운영으로 인해 느꼈던 울분을 서울 한복판에서 똑같이 느낀다. 영하 20도의 한겨울에도 보도에 그대로 서서 오지 않는 광역버스를 기다렸던 서민들은 숨도 쉬기 힘든 한여름에도 무한정 기다리고 있다.

10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 앞에 인천과 서울을 오가는 광역버스들이 세워져 있다. 광역버스업체들은 경영난을 호소하며 인천시에 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촉구하고자 버스들을 이곳에 가져왔다. 연합뉴스

서울에서 일을 하는 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의 복지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인천시는 시 경계를 넘어 운행하는 버스이기 때문에, 경기도는 사당역이 경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수도권 출퇴근 서민들에게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 행정구역은 무의미하며, 단지 지도위에 그어진 줄일 뿐이다. 이들에게 지자체 경계에 상관없이 광역생활권을 대상으로 한 편리하고 안전한 교통 서비스가 즉시 공급되어야 한다.

광역교통 서비스 개선은 쉬워 보이지만 중앙정부, 지자체, 공공 및 민간 운수업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30년 이상 고질적인 교통문제로 남아 있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강력한 광역교통의 법적 권한과 집행력을 보유한 광역교통청이 신설되어야 한다. 광역교통청은 지방분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부분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서울시, 인천시, 경기도는 행정구역 내 교통 서비스 공급에 집중하고, 광역교통청은 지자체와 협력하여 광역지자체 경계를 넘는 교통 서비스 공급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대도시권 광역교통청 신설안’이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제시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처 간 갈등으로 인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법안이 계류되어 있다. 수도권 서민들은 광역교통청이 신설되어 광역버스 구역 및 노선입찰제 도입, 광역환승센터 건설, 광역버스 운행대수 증차, 광역중앙버스전용차로 도입 등의 해결책이 신속하게 시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광역교통 서비스 개선은 난개발이 아니라 복지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인천시민은 광역버스 서비스의 공공성이 인정되어 시내버스와 같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받고 싶고, 사당역의 경기도민은 잠실환승센터와 같이 쾌적한 곳에서 광역버스를 기다릴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소망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는 이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무관심했으나, 이번 정부만큼은 도시 서민들의 땀과 눈물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모창환 | 한국교통연구원·광역 교통행정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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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개월이 지났다. ‘2018 책의 해’ 출범식 이후 금세 4개월이 지난 것이다. 주위에는 집행위원장을 맡은 내가 슬슬 지쳐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쉽사리 지칠 새도 없이 당장 해나갈 일이 눈앞에 있고, 무엇보다 그 일이 재미있다. 책을 만들고 파는 출판인으로서 책과 관련된 행사를 치르는 일, 책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일은 사명감보다 직업적인 촉으로서 본능적으로 흥이 날 수밖에 없다.

정작 ‘책의 해’ 집행위원장으로서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여러 층위에서 각 단체와 논의하다 보니 일이 꼬일 때도 있지만 이건 두려움의 차원이 아니다. “이런 운동을 한다고 나아집니까. 국민들이 독서를 하게 되나요?”라는 냉소적인 태도와 맞닥뜨렸을 때 두렵다. 감추어진 자신의 내부 목소리와 손을 잡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제일 두려웠던 것은, 일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 잘한다고 해도 독서운동의 성과가 좋을까 하는 문제였으니까. 아아 이런 태도 앞에서는 무슨 답도 찾을 수가 없다.

서가와 식물을 함께 배치한 마음산책 출판사 부스. 마음산책 인스타그램

지난달 새로 취임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은 취임 인터뷰에서 이런 계획을 밝혔다. “아이들을 위한 책 복합문화체험공간을 세우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예술 경험이 나이 들어서도 유지되듯, 아이들이 책을 직접 쓰고 만들고 오디오북과 멀티미디어도 제작해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친근하고 편하며 유쾌한 경험으로서 독서 체험을 확산하는 장기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험’이라는 단어에 책 읽기의 맥락이 그대로 닿아 있다. 정부의 독서 진흥 계획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에서 나는 두 가지 ‘체험’ 사업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선 청소년에게 ‘책과 출판의 체험’ 기회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책을 읽으라고 말하기 전에 책이란 무엇인가,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과 관련된 기본 상식과 교양을 직접 겪을 수 있는 장소로서 출판사, 인쇄소, 스튜디오, 제본소 등을 보여준다. 책과 관련된 궁금증과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 될 테니까.

두 번째는 청소년의 ‘단기 독서 학교’를 출판사에 위탁, 운영하자는 것이다. 일정한 독서 프로그램으로 최소 5권의 맥락 있는 독서로 책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장르와 책은 출판인과 청소년이 직접 고르도록 해 참여를 유도하고 해당 장르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가 생동감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제작 뒷얘기를 듣고서 책에 흥미를 갖고,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방식을 터득할 것이다.

아이디어는 실현할 때 의미가 있다. 체험하는 독서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고 실제 활동도 이루어져서 책과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결과적으로 독서운동의 성과가 남을 것이다.

‘2018 책의 해’ 사업이 8월부터 더욱 본격화되었다. 일상을 영위하는 곳은 어디든지 도서관이 된다는 의미로 삶(life)과 도서관(library)을 조합한 ‘라이프러리(Lifrary)’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생활 속의 도서관. 5000권의 책이, 움직이는 놀이터와 함께 8월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부터 9월 제주도 협재해수욕장, 10월 서울숲 그리고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진다.

여전히 독서운동의 성과를 의심쩍은 눈빛으로, 혹은 비관적인 마음으로 걱정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일단 행사에 참여하라고. 당신의 참여가 문화를 만드니까.

책과 나, 책과 우리의 사진을 찍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올리는 행위는 비교적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일이다. 전국적으로 찾아가는 이동 책방 ‘캣왕성 유랑책방’에서 ‘고양이 금서 목록 300권’을 들춰보는 일,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 심야까지 열려 있는 동네 책방에서 어둠 속에 묻힌 빛나는 책을 찾아보는 일은 적극적인 체험이다.

‘책의 해’가 앞으로 5개월 남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재미있는 책 행사를 빨리 치르고 싶다. “살다 보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 거의 그것으로 일상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세상에서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는 일본의 에세이스트 마스다 미리의 말을 떠올려본다. 나와 미래의 독자들이 같은 위치에서 같은 희망을 갖고 있기를 바란다.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 읽는 사람 모두가 흥이 나는 독서운동이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후회하지 않으려면 연말까지는 재미를 잃지 않으며 ‘책의 해’ 행사를 치러야 한다. 책을 찾아나서는, 책을 읽는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봐두고 싶다. 그러니 내게 잘될까를 묻지 말고 잘해보자고 안부 인사를 건네주시라.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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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부터 교육정책 모니터링단을 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학교마다 학부모 한 명씩 뽑으라 해서 하게 된 것. 사람을 뽑는 과정도 의아한 것이었지만, 첫 번째 설문을 받았을 때부터 내가 이 모니터링을 하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생인데, 학교생활기록부에 관한 설문의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생활을 알아야만 적을 수 있었다. 설문에 참여할 것인지를 한참 재어 보다가, 믿고 물어볼 만한 친구가 있어 전화를 걸었다. “그게, 설문 돌리고 다수결 하듯이 해서 결정할 게 아니야.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분명한 교육 철학이 있으면, 결정하고, 사람들을 설득해서 실행해야지.”

대입제도 개선안이라는 것이 발표되었다. 이렇게 바뀌는 제도는 지금 중학교 3학년부터 해당된다고 한다. 초등 4학년 학부모인 나는 이번 개편안이 우리 아이와는 상관이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또 바뀌겠지. 그래도 다시 친구에게 이야기를 듣고, 한참 인터넷을 들락거렸다. 이번 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시민참여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사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삼았다지. 대입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교육을 가장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인데, 이것도 설문 돌리듯 하는 과정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과 관련해 열린 교육부 긴급 간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 입학 전까지, 얼마나 더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을까만 따지는 게 학교 현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대입제도를 두고 다수결 싸움이나 다름없는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들이대면, 사람들은 자기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방법을 선택하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이의 삶을 마치 자신의 삶인 양 여기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입에 닥쳐서 좀 더 간명하고 단순한 시스템, 그러니까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잘 보이는 것이 편리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마치 학교생활종합기록부가 몇몇 돈 많은 사람들이 농간을 부리기 좋은 제도인 것처럼 소문이 나기도 했지만, 반대쪽에는 수능 점수야말로 부모의 재산과 비례한다는 통계가 있다. 수능 첫해에 대학 입시를 치렀던 나는 수능 시험에 대해 좋게 기억한다. 학력고사보다 점수가 잘 나왔으니까. 하지만 통계가 말하는 것은 부모가 충분히 돈이 많아서 수능시험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 할수록 아이의 성적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재수·삼수를 하고, 재수·삼수생이 점수가 더 높고. 유명 학원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수능 점수는 낮아진다.

소위 일류대학을 간다고 해서,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열일곱 살, 스무 살 아이들이 불행하도록 강요하는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교육 정책 결정자들은 그저 전단 나누어 주듯, 골고루 설문을 돌리는 일로써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껏 그렇게 일을 하고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나와 아내는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래서 무엇을 하겠다는 교육인 거지? 하는 질문에 맞닥뜨렸다. 학부모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골고루 반영하겠다는 학교의 자세는 맨 꼭대기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의 자세를 닮았다. 어디에서도 교육이 이것을 하겠다 하는 ‘뜻’을 찾기 어렵다.

며칠 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연수에 다녀왔다. 초·중등 선생님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1983년 시작된 이 모임은 이오덕, 권정생, 윤구병 선생과 같은 분들의 뜻을 새기며,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교육에 대한 뜻을 나누고, 학교에서 또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어떻게 이 뜻을 펼칠 수 있을지 직접 실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저마다 학교에서 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되, 그것이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하는 뜻을 지켜나가는 데에 어떠한가를 두고 늘 치열하다. 교육 정책이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것을 두고, 바로잡을 힘이 없는 것은 교육에 대해 품은 뜻이 없어서일 것이다. 어떻게 줄 세우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한가 하는 식의 질문으로는 어떤 답을 꺼내도 누군가에 대한 유불리만 가릴 수 있을 뿐이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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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전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김금순씨(가명)가 떠올랐다. 2005년 9월 ‘대형할인점의 빛과 그림자’란 기획취재를 할 때다. 김씨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다. 이마트 은평점과 200m 떨어진 김씨 가게는 당시 그 주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었다. 아니 가게는 ‘죽어가고’ 있었다.

김씨는 서른여덟부터 20년을 한곳에서 장사했다. 큰돈은 못 벌었다. 집 한 채 사지 못했다. 겨우 먹고살았다. 이마트가 생기고 매출이 절반가량 떨어졌다. 신선식품과 잡화 판매부터 차츰 줄더니 담배하고 냉장 음료수만 간신히 팔렸다. 담배나 냉장 음료수는 이마트 은평점이 취급하지 않는 품목이었다. 그는 “이마트 총각이나 아줌마들이 우리 가게로 일부러 와서 음료수니 담배니 팔아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마트 직원들은 김씨 가게를 ‘작은집’이라고 부른다고도 전했다. ‘작은 연대’로 버티기엔 시절이 엄혹했다.

김씨는 다가올 겨울을 걱정했다. 인터뷰 막바지 막내 등록금을 걱정하던 그의 얼굴은 서글픈 울음과 선한 웃음이 뒤섞인 눈물로 범벅돼 얼룩졌다. 인터뷰가 실린 신문을 갖고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두고두고 후회되는 ‘거짓말’ 중 하나다.

최근 김씨 가게를 찾으러 응암동에 갔다. 기억의 자리에 가게는 없었다. 단팥빵 하나를 500원에 팔며 고군분투하던 어느 빵집 주인은 “응암동에 구멍가게가 하나도 없는 걸로 안다”고 했다.

애초 살아남았으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부재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왔다. 김씨 가게 자리엔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6호선 응암역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역세권의 여러 주상복합 건물 1층 곳곳은 대기업 편의점과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섰다.

내쳐진 이들의 자리로 들어온 이들의 삶도 편치 않다. 편의점과 프랜차이즈 업주들도 최저임금 인상의 타격을 받았다. 여러 업주들이 최저임금 인상 거부 운동까지 벌인다. 불경기 속 높은 임대료와 가맹점비에 닥쳐온 최저임금 인상은 3중·4중고를 일으킨다. 이 와중에 ‘기득권’은 지금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원을 최저임금’으로 환원한다. ‘빨갱이’ 자리에 ‘최저임금’을 대입한다. 일부 임대료·가맹점비 인하를 미담으로 섞어 최저임금을 공격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 ‘신자유주의’로 부르던 시기와 ‘헬조선’이라 지칭하는 시기를 관통하며 드러난 문제가 무엇인지는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왜곡한다.

김씨 가게는 1인 가게였다. 6월 현재 김씨처럼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가 전체 70%가량이다. 영세 1인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많다. 이들이 몰락한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온다. 본사는 가맹점 옆에 또 다른 가맹점을 내주며 잔인하게 경쟁시킨다. 프랜차이즈 사장님은 자영업자인가? 노동계 일각에선 자율·자유가 없는 이 자영업을 ‘은폐된 고용’으로, ‘사장님’을 본사에 속한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씨 가게의 사라짐과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범람은 2005년 이후 14년간 세상의 변화를 응축해 보여준다. 이 변화는 체제와 구조의 문제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보증금과 임대료는 어디로 흘러간 것일까? 고용 불안정 속에 가게를 만드느라 써버린 퇴직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8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임금불평등은 증가 중이다. 상위 4대 기업집단 지배율은 높아졌다. 상위 10% 재산도 늘어난다. ‘낙수 효과’는 대체 어디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저소득층인 1~2분위는 2017년 4분기에서 2018년 1분기로 오면서 경상소득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상대적 고소득층인 3~5분위는 증가율이 상승 추세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은 곧 정치의 문제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다. 적폐를 철폐하겠다는 정부는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한다. 규제 철폐와 신기술 개발, 신규 고급 일자리 창출이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것이라고 낙관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16년 5월 발의됐지만 2년 넘게 국회서 계류 중이다. ‘테러방지법 반대’로 울부짖던 이들은 집권하고도 법안 폐지 발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연말에나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라는데, 그 법안도 김씨의 삶처럼 언제 뒷전으로 밀려날지 모를 일이다.

‘퀴 보노(Cui Bono, 누가 이득을 보는가).’ 키케로(BC 106~BC 43)의 말이다. 한국의 수많은 ‘김금순씨’가 이득을 볼 날이 올 수 있을까?

기업 이윤을 강조하는 공직자들, 상가를 소유한 여러 국회의원 얼굴이 떠오른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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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마음이 되돌아오면

식구들끼리 하얀 옷 해 입고

깨끗한 식당에 가서 외식이라도 해야지.

 

집에만 처박혀 있는

쓸쓸한 개를 앞세우고

그 널찍한 등짝을 쓸어주면서

가까운 유원지에 소풍이라도 가야지.

 

그러나

마음이 되돌아오면,

 

하늘은 또

알타이어족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 없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노란빛 되어

내 방의 창문을 물들이고

나는 다시 뾰족하게 성을 내는 아이가 되겠지.

벼락이거나 장대비겠지.

 

마음이 되돌아오면

화를 내다가 우는 아이가 되겠지.

장이지(197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레몬옐로는 어떤 빛깔일까.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오던 빛, 장대비가 내리던 날의 제 창문에 비친 빛, 이번에는 그것을 ‘레몬옐로’라고 불러봅니다”라고 썼다. 이 레몬옐로는 빛깔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어떤 예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혹은 불안과 혼란과 기대에 함께 휩싸인, 헝클어진, 설명하기 참 쉽지 않은 마음의 묘한 상태를 말하는 듯도 하다. 어쨌든 마음은 본래 마음으로 잘 되돌아오지 않는다. 화염처럼 타오르고, 불규칙하게 튀고, 방죽 너머로 넘쳐나고,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그러니 마음이 잘 개켜진 상태로 있기만을, 잘 단속된 상태로 있기만을 바라지는 말 일이다. 마음에 벼락이 치고 장대비가 내릴 때도 있다. 마음이 거세고 요란한 소나기 내리는 여름날 같을 때가 있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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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1일은 헌법재판소 창립 30주년이다. 지난 30년 동안 헌재는 1600건이 넘는 위헌성 결정을 내렸다. 국회가 만든 법률을 위헌결정으로 무효화시켰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정부의 각종 공권력 행사를 헌법소원 인용결정을 통해 취소했다. 1962년부터 1972년 유신정권 이전까지 약 10년 동안 헌법재판을 담당하면서 단 한 건의 위헌결정만을 내렸던 대법원이나, 유신정권과 제5공 정권을 거치는 15년 동안 단 한 건의 위헌심사조차 하지 않은 헌법위원회와는 비교 자체를 불허하는 수치다. 이런 헌재에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폭증하는 사건 접수로 화답했다. 30년간 헌재에는 약 3만5000건의 사건들이 접수됐고, 그중 3만4000건가량의 사건들이 처리됐다. 1년에 평균 1000여건의 사건들이 접수됐고 헌재는 가능한 한 많은 사건들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 열심히 하는 헌재로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될 수 있었던 이유다.

헌재의 시작은 미약했다. 처음에는 서울 정동빌딩의 옛 헌법위원회 사무실에 둥지를 텄다. 상임 헌법재판관 5명이 책상을 맞대고 앉아 한 방을 썼다. 정상 업무가 불가능한 공간이었다. 그해 12월에 구 농협중앙회 건물이었던 을지로 청사로 옮겨 갔다가 지금의 안국역 부근 재동 청사로 이전한 것은 1993년 6월11일이 되어서였다. 처음에는 임명장을 받아든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만 상임재판관이었다. 비상임재판관 3명은 회의가 있는 날만 헌재로 출근했다. 온전한 9명의 상임재판관 체제를 갖춘 것은 1991년 11월30일의 헌법재판소법 개정 이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환경하에서도 헌재는 예전의 헌법위원회나 대법원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헌재가 세워진 지 다섯 달도 채 안된 1989년 1월25일에 당당히 첫 위헌결정을 선고한다. 재산권 청구에 관한 소송에서 국가가 채무자 겸 피고가 됐을 때, 다른 일반 국민과는 달리 국가에 대해서는 가집행 선고를 할 수 없게 했던 특례법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국가가 국민과 대등한 사경제적 주체로서 활동하는 경우에까지 국가를 우대하는 것은 평등조항 위반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첫 위헌결정부터 국가의 삐뚤어진 기득권 조항에 경고음을 울리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려 한 것이다.

그 제1기 헌법재판소를 필두로 제2기, 제3기, 제4기, 그리고 이번 9월에 임기가 끝나는 제5기 헌법재판소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헌재의 사법적극주의적 경향은 큰 변화 없이 면면히 이어졌다. 헌재는 여러 전향적인 위헌성 결정들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현실 속에서 실현해내고 헌법 해석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왔다. 예를 들어, 동성동본금혼규정 헌법불합치결정에서 헌재는 최소 고려 중기 이후 수백년을 우리 사회의 관습으로 이어져온 동성동본금혼제도를 사실상 폐지시키면서 남녀동등권과 혼인의 자유 등을 강조하였다. 직계비속 남자를 통해서만 승계되는 유교주의적 호주제도를 규정했던 민법조항에 대해 남녀평등권 위반 등을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려 호주제 폐지의 민법 개정을 이끌어낸 것도 헌재였다. 헌재는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선거구 간 선거인 수의 불균형이 2대 1의 기준으로까지 낮아진 것도 평등선거원칙상의 표의 등가성을 내세운 헌재 덕분이었다. 선거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투표한 것을 후보의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의사로 의제해 비례대표의석을 배분하도록 했던 선거법 규정을 민주주의 원리나 직접선거 및 평등선거의 원칙 등에 위반된다며 폐지시킨 것도 헌재였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도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중대한 위헌·위법행위를 했다면 파면된다고 탄핵인용결정을 내린 것도 헌재였다. 헌법의 권력통제규범으로서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되던 순간들이었다.

물론 오랜 비판의 대상이 돼오고 있는 헌재 결정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을 통한 수도 이전을 ‘관습헌법’ 위반이라는 취약한 근거를 통해 위헌으로 선언한 헌재결정, 선거를 통한 국민의 선택을 기다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숨은 목적’이나 ‘주도세력’이라는 박약한 근거를 내세워 정당해산을 강행한 결정 등은 아직도 많은 헌법학자들의 논문에 비판대상으로 오르내린다.

현실권력은 여러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려는 강한 경향성을 가진다. 앞으로의 헌재 30년이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내는 데 있어서, 지난 30년보다 더더욱 매진하는 세월이기를 빈다. 헌재여, 국민들만 보고 나아가라. 그런 헌재는 국민들이 지킨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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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영 선생과 그 형제들은 대한민국의 법통을 이어온 독립운동의 대부이다. 가문의 명예와 전 재산을 바쳐서 애국애족의 정신과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우리 민족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의 10대손 6형제 중 넷째인 이회영 선생께서는, 1905년 을사늑약에 이어 1910년 한일병합으로 나라가 패망에 이르자 국내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세 분의 형들과 두 분의 아우들을 설득하여 전 재산을 비밀리에 처분하였다. 그리고 6형제의 전 가족 60여명과 함께 그해 12월 만주로 집단 망명하였다.

당시 처분한 재산은 40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근래 학자들이 추산한 바에 의하면 1969년 물가기준으로 약 600억원, 2013년 기준으로 약 2조원에 해당된다. 이 돈은 온전히 최초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는 데 사용되었다. 신흥무관학교는 10년간 약 3500명의 독립군 장교와 병사들을 양성하였다. 이들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주역들과 훗날 광복군의 중심인물들이 되어 일본의 침략에 맞서 투쟁하였다.

6형제는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전 재산과 열정을 다 쏟아부었기 때문에 10여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빈손이 되어 중국 각지에 흩어졌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독립투쟁을 하였다.

첫째 이건영 선생은 만주 땅에서 얻은 질병으로 광복 전 일찍 타계하였고, 둘째 이석영 선생은 조선 10대 갑부 소리를 들으며 신흥무관학교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감당하였으나 전 재산과 함께 두 아들마저 독립전선에서 전사하여 대(代)가 끊어진 채 중국 상하이의 빈민가에서 국수와 비지로 연명하다가 영양실조로 외롭게 별세하였다. 셋째 이철영 선생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풍토병으로 광복 전에 사망하였다.

그리고 형제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던 넷째 우당 이회영 선생은 독립운동 지도자로 활동하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1932년 11월17일 안중근·신채호 선생 등 많은 독립지사들이 순국한 뤼순 감옥에서 재판도 없이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국하였다. 형제 중 유일하게 생전에 중국에서 광복을 맞은 다섯째 이시영 선생은 임시정부시절부터 같이한 김구 선생과 함께 귀국하여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역임하였고 신흥대학(현 경희대학교)을 설립한 후 1953년 한국전쟁 중에 별세하였다. 여섯째 이호영 선생은 만주에서 의병으로 활약하던 중 일본군의 습격으로 가족 전체가 함께 몰살당하여 시신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서울 명동성당 정문 앞 골목 안쪽에 이회영 선생 6형제의 생가 터가 있다. 망명 당시 다른 재산을 비밀리 매각하고 떠났으나 6형제가 태어난 이 99칸 저택은 일본감시망에 드러날까 봐 처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총독부에 그대로 접수되어 해방 후 적산으로 있었다. 정부 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이 다섯째 이시영 부통령에게 명동의 생가 터와 재산을 환원하겠다고 제안하였으나, 이시영 선생이 “한번 민족에 바친 것이니 되받을 수 없다”며 사양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생가 옆 길가에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과 6형제 생가 터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만 초라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우당 6형제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조성 기본구상 용역’을 줬다. 시는 “용역을 통해 우당 6형제가 살던 생가와 그 내부 구조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모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생가를 복원해 기념관을 짓더라도 원래 있던 명동 YMCA 자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서울 시내 다른 장소도 고려하게 될 것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었다.

생가 복원 및 기념관 조성 계획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우당 6형제의 생가를 원래 자리에 복원할 수 있는 방안을 비롯해 보다 사실적이고 정밀한 재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 종로구 신교동에 ‘우당기념관’이 있으나 공간의 규모나 위치상 명분이 상당히 미흡하다. 역사 속에 묻혀있는 우당 이회영 선생 6형제 가문 독립운동사의 진실과 가치를 밝혀 이 민족의 교훈과 사표로 삼고 그 희생을 기념하는 일을 제대로 한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될 유형, 무형의 효과는 우리 역사와 세계사에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주홍 | 인천 하나비전 성극팀 작가 및 연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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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갤럽 여론조사결과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1%로 나타났다. 3주째 정체 상태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취임한 7월 셋째 주 10%에서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6석인 정의당 지지율은 16%로 제1야당인 한국당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으나 무당층만 늘어났을 뿐 한국당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투수’로 김 위원장을 영입하고 바닥부터 시작하겠다는 한국당으로선 초라한 성적표다. 지지율만 놓고 보면 시민들은 한국당의 변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전 부산 수영구 부산시당에서 열린 6·13 지방선거 출마자 초청 경청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지율이 뜨지 않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적청산 실패를 들 수 있다. 개혁의 핵심은 인적 쇄신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고서 당이 달라졌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인적청산 자체보다는 새로운 보수 가치 정립에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고서야 혁신동력이 만들어질 리 없다. 두 번째는 대안 제시의 실패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국가주의 프레임’을 띄우는 데 올인했고, 일정 부분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대안에 대해서는 ‘자율주의’ ‘국민중심성장’ 같은 모호한 담론에 그칠 뿐 구체적인 탈국가주의 정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교 내 탄산음료 판매금지를 국가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했지만 아이들 건강을 위해 스쿨존 내에서 탄산음료와 고열량, 고당류 식품의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시민들 사이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 자기 희생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당은 지난 지방선거 결과 이미 시민들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사람도 없다. 이런 모습을 보고도 소장 의원들은 기회주의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 위원장 취임 한 달이 다 되는데도 한국당은 당사를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옮긴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선거 후 잠시 불거졌던 자성론이나 쇄신 목소리는 온데간데없다. ‘홍준표식 막말’은 사라졌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여전하다. 이대로는 비대위가 전당대회 준비위로 전락할 것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과거와의 단절 없이 새 가치나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 적당히 분칠해서 눈가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건 시민들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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