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자신도 “다음달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며 북·미 간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남북 경제협력에 대한 구상도 밝혀 경기·강원 접경지역에 ‘통일경제특구’를 설치하고, 연내에 남북 철도·도로 연결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동북아 6개국에 미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도 제안했다. 북·미 양측을 향해 비핵화 협상에 속도를 내달라고 촉구하면서, 남북경협에 대한 청사진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 선언은 최근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흐름과 맞물려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북·미 양측은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놔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과 체제안전 보장 등 상응하는 조처를 먼저 하라는 북한의 요구가 팽팽히 맞서 교착상태에 빠졌다가 최근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북·미 양측이 실무회담을 통해 핵무기 리스트 제공과 종전선언의 맞교환을 논의하는 단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달 말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4번째 북한을 방문해 비핵화 협상을 하게 돼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15일 “(이번 방북에서)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기에 9월 중순쯤에는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3차 남북정상회담을 연다. 문 대통령이 촉진자 역할을 자임한 것은 비핵화 이행을 북·미 정상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결정적인 중재 역할에 나선다는 뜻이다.

향후 한 달 남짓,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리스트 제출과 미국의 종전선언 맞교환을 견인해내야 한다. 미국의 진전된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북·미 양측 간 협상에 획기적 진전이 없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위해 대북 강경책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남북경협 구상은 북한을 향한 제안이기도 하다.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것이 진정한 광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정착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촉진자 역할이 성공을 거둬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의 획기적 조치가 선포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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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사태의 30번째 희생자인 해고노동자 김주중씨의 49재가 지난 14일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에서 열렸다. 김씨의 삶과 죽음은 한국 사회의 ‘아픈 손가락’인 쌍용차 해고자들의 고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2009년 6월8일 정리해고된 김씨는 그해 8월5일 파업 중이던 쌍용차 평택공장 옥상에서 경찰특공대에 집단폭행을 당하고 구속됐다. 이후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김씨의 오랜 해고 생활은 빚더미만 남았다.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친구 명의로 할부로 산 화물차를 몰며 발버둥쳤지만 결국 지난 6월27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그날도 밤새 화물차를 몬 뒤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시키고 빚만 남기고 가는구나”라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아내에게 남겼다.

2009년부터 이어지던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죽음의 행진은 2015년 12월30일 노사가 해고자 복직에 합의한 후 멈추는 듯했다. 그러나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노사 합의가 지켜지지 않자 지난해 5월 한 해고자의 아내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죽음은 김씨에게로 이어졌다. 그동안 복직이 이뤄진 해고자는 45명에 불과하고 김씨를 포함한 120명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복직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의 죽음으로 복직 대기 해고자가 119명으로 줄었을 뿐이다. 회사는 경영여건이 개선되지 않아 당장 복직은 어렵다고 하지만 동료들은 사측이 복직 시한이라도 알려줬다면 김씨가 “그렇게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를 비롯한 쌍용차 해고자들은 경찰이 제기한 약 1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도 시달리고 있다.

최근 공개된 2009년 3~6월 사측이 작성한 100여건의 문건들에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를 받은 사측이 경찰·검찰·노동부 등과 함께 파업유도와 노조와해 계획을 세운 정황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다. 이는 쌍용차 사태에 국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쌍용차 사태를 조사하고 있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도 해당 문건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강제수사권이 없어 경찰이나 검찰이 직접 나서야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쌍용차 해고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복직과 손배소송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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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후 비서 김지은씨를 겨냥한 2차 가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요 포털사이트의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이나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들을 보면 차마 지면에 그대로 옮기기 힘들 정도이다. 김씨의 폭로를 무고로 몰아붙이며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 전체를 폄훼하는 내용이 많다. ‘꽃뱀’ ‘첩’ ‘질투와 치정에 의한 복수극’ 운운하며 악담을 퍼붓고 김씨 외모를 비하하는 글도 상당수다. 명백한 2차 가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는 앞서 겪은 성폭력 피해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싶어도 2차 가해가 두려워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지현 검사의 ‘안태근 성추행’ 고발로 미투 운동이 불붙은 이후 2차 가해는 끊임없이 논란이 돼왔다. 특히 김지은씨는 지난 3월 방송에 출연해 “안 전 지사에게서 4차례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한 직후부터 인격살해에 가까운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의 학력·나이·결혼 여부 등 신상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미투로 가장한 정치공작’ 식의 근거 없는 루머도 확산됐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안 전 지사 측은 평소 김씨의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그를 깎아내렸다. 김씨 측 변호인이 재판부에 소송지휘권을 엄중히 행사해달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일부 언론도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의 발언을 여과 없이 인용해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급기야 김씨의 개인진료기록이 언론에 흘러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성단체들은 재판 과정 자체가 ‘위력 행사’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한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걸고 폭력과 억압을 폭로했다면, 공동체는 일단 그의 외침을 경청하는 것이 옳다. 명확한 사실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다툼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는 차원을 넘어서서 폭로자의 입을 틀어막고 고립시키려는 행태는 곤란하다. 이번에 안 전 지사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은 확정 판결이 아니다. 상급심에서 달라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김씨에 대한 과도한 비난 공세는 미투 운동의 동력을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미투 이후 도도히 전개돼온 한국 사회의 ‘반(反)성폭력’ 흐름을 미투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용납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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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부터 3일간 개최된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한국 최초의 대형 록 페스티벌이자 이제는 마지막 여름 록 페스티벌이 됐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여름의 송도에 갔다. 늘 그렇듯 밴드티를 입고 갔다. 지나가던 한 록 팬이 아내에게 말을 걸었다. “티셔츠 이뻐요!” 얼마전 일본 출장길에서 사온 오아시스 티셔츠. 페스티벌 현장이 아니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말일 것이다. 현장까지 가는 지하철 옆자리에는 한 여성이 둘째 날의 헤드라이너인 나인 인치 네일스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 사람도 거기 가는구나, 딱 알 수 있었다. 록 팬이자 밴드티 마니아만의 즐거움이, 이럴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다.

밴드티 수집의 역사는 고등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제’라는 브랜드가 있었다. 헤비메탈 밴드의 앨범 재킷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회사였는데 그때 한국 사회가 대부분 그랬듯 밴드 측과의 라이선스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주다스 프리스트, 오지 오스본, 메탈리카 등의 밴드티를 유일하게 찍어내는 곳이었으니 용돈을 모아 제제티를 사곤 했다. 하지만 이 브랜드에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으니, 품질이 아주 형편없다는 것이다. 한 번 빨면 프린트가 벗겨지고, 두 번 빨면 목이 늘어났다. 옷의 ‘간지’에 신경쓰지 않던 나였지만 다섯 번쯤 빨았을 때 프린트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메가데스 티셔츠는 보는 것만으로도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중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메탈의 도를 논하곤 하던 친구들을 통해 동대문운동장 근처에 보물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달려갔다. 오오, 세상에. 외국 밴드 사진에서나 보던 바로 그 티셔츠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이태원 등에서 레드 제플린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짝퉁 티는 팔았다. 하지만 우리는 당당한 1980년대의 청소년. 1970년대 밴드 티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런 우리에게 눈앞에 걸려있는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의 티셔츠는 진정한 메탈 키드가 되기 위한 면허증과 같았다. 제제티와는 달리, 한눈에 보기에도 품질이 꽤 괜찮았다. 적어도 몇 번 빤다고 프린트가 지워지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과연, 그랬다. 우리는 교복 밑에 이들 티를 받쳐 입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오비추어리(부고장), 오톱시(시체해부), 오버킬(과잉살상) 같은 데스 메탈 밴드들의 티는 우리의 교복이자 수도복 그 자체였다.

대학에 가선 술과 여학생에게 관심이 갔다. 밴드티가 옷장에서 사라진 건 필연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예쁘장한 여학생 앞에서 부고장, 시체해부, 과잉살상 등의 문구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야 곤란한 것이다. 그렇게 멀어졌던 밴드티는 음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다시 가까워졌다. 펑크 밴드들이 스스로 티를 만들었고, 가끔 내한공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오아시스의 첫 내한을 시작으로 동시대 밴드들은 종종 한국을 찾았고 록페스티벌도 열렸다. ‘쌔삥한’ 밴드티를 살 기회가 그만큼 많아졌다. 게다가 외국 가서 공연 볼 기회도 종종 생기곤 했으니 옷걸이에 걸리는 밴드티가 쑥쑥 늘어났다. 물건은 써야 제 맛이라는 평소 신념으로, 그 티셔츠들을 마구마구 입고 다녔다.

몇년 전, 일본에서 열린 머틀리 크루 공연에 갔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헤비메탈 밴드의 콘서트답게 관객 연령층이 제법 높았다. ‘굿즈의 나라’ 일본답게 많은 관객들이 밴드티를 입고 있었는데, 그중 놀라운 건 1980년대 중반 그들이 처음으로 일본 공연을 했을 때의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온 관객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보풀도 좀 일어나고 목도 좀 늘어났지만 세월을 타고 클래식이 된 머틀리 크루의 음악처럼 그 낡은 티셔츠도 빈티지가 돼있었다.

펜타포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록스, 프란츠 퍼디넌드, 블랙 아이드 피스가 찾아왔던 2006년 첫 펜타포트 티셔츠를 입고 온 관객이 있었다. 글래스톤베리, 프리마베라 등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 티셔츠들 사이에서 가장 빛났다. 페스티벌의 전통이 쌓일 때만 만들어지는, ‘그때 그 자리’에 머물렀던 이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멋이었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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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건축가 정기용은 용산 미군기지를 ‘서울의 배꼽’이라고 불렀다. 용산기지 북쪽 남산에 올라 보면 왜 ‘서울의 배꼽’인지를 단번에 실감할 수 있다. 독립된 나라에서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의 대규모 주둔지가 있는 경우는 세계사에 유일하다. 역설적으로, ‘금단의 땅’이었기에 개발독재의 개발 광풍에서 비켜서 녹색의 공간으로 남아 있다. 올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을 떠나 경기 평택기지로 이전하면서 용산기지 땅은 이제야 ‘광복’되었다. “11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비로소 온전히 우리의 땅”(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이 된 것이다.

114년 전, 러일전쟁을 앞둔 일본은 용산 일대에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병영을 지었다.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지역의 부지 300만평을 강제수용, 이 중 115만평을 군용지로 사용했다. 용산기지의 태생이다. 일본은 이곳에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2만명의 병력을 주둔시켜 대륙 침탈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945년 해방이 되었지만 용산기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미육군총사령부가 남한에 군정을 선포하고 7사단 1만5000명이 용산에 진주하면서 일본군 병영을 접수했다. 용산기지에 일장기 대신 성조기가 내걸린 것이다. 한국전쟁 후에 다시 용산에 들어온 미군은 이후 주한미군사령부(1957년), 한미연합사령부(1978년)를 창설하면서 용산기지를 지배했다. 용산기지는 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한국 국민이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사실상 ‘용산합중국’으로 존재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용산기지 반환’은 우여곡절을 거쳐 2017년 주한미군 병력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8군사령부가 평택기지로 이전하고, 지난 6월 주한미군사령부도 평택기지로 옮기면서 완료 단계다. 용산기지 땅은 일제 강점, 전쟁과 냉전, 분단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 114년 만에 ‘광복’된 용산은 실로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비로소 “침략과 지배, 전쟁과 고난의 역사를 과거로 보내고, 자주와 평화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공원”(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을 꿈꾸게 됐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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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도 잡히지 않고 나른하기만 하여라. 낮잠 ‘시에스타’가 있는 나라라면 좋겠단 생각. 나 꼬맹이 때 학교에서 강제로 낮잠을 자게 한 일이 있었다.

의자와 책상을 모두 뒤로 밀치고, 교실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무조건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전깃불도 언뜻하면 나가고, 외등도 부족하고, 초저녁부터 귀신들이 돌아다니던 판국에 설마 잠이 부족했을까. 군부정권 때였는데, 군인들이 까라면 그냥 까야 했다. 콧물을 줄줄 흘리던 못난이 짝꿍이랑 방구쟁이들이랑 누워 잠을 청했으나 한 시간 동안 해찰만 부리다가 땡.

잠 못 드는 아이들은 엉덩짝을 두들겨 맞았다. 어떤 해엔 독성물질이 남아 있는 비료포대를 뒤집어쓰고 방공호에 들어가는 훈련도 받았다. 방독면이 없으니 비료포대라도 뒤집어쓰라는 어이없는 지시사항. 사이렌이 울리자 개들이 동시에 으아앙 울기 시작했다. 학교 소사가 키우던 검둥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을 물었다가 양심수로 수감 중. 동네에서 제일 크게 울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도 아니고 이쪽 동네엔 ‘멜갑시’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유 없이’의 방언. 괜히 갇힌 건 아니지만, 갇힌 개는 유독 서럽게 컹컹 울었다.

여름 한낮 비구름이 말갛게 풀어지고 나면 높고 푸르게 드러나던 가을 하늘. 멜갑시 가슴이 설레어지는 찬바람. 감과 대추가 발간 얼굴로 익어가고 들판에 벼가 눕는 소리도 들렸다. 소프라노 매미가 공연을 마치고 떠날 즈음이면 멜갑시 어디론가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완행버스가 먼지를 뿜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풍경. 형과 누나들이 속속 동네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바뀌어 기억 속에나 있는 내 고향 풍경들.

멜갑시 질벅질벅 여자애들을 놀리고 괴롭히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소사네 개가 그 애를 콱하니 물어버렸다. 두번째 구속 수감. 지긋지긋한 양심수 생활로 ‘개고생’하던 개를 풀어주기 위해 난생처음 쇠톱을 가지고 열쇠를 잘랐다.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도둑’이 되어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멜갑시 여자애들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검둥개가 내 이야기를 했던 걸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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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난 7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이 담당 기자들에게 보낸 사진을 보며 15년 전 개봉한 한 영화의 카피를 떠올렸다. 이런 사진을 받아보게 될 것이라고 몇시간 전에 예고를 받기는 했지만 직접 보니 말 그대로 상상 이상이었다. 사진을 계속 보고 있자니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사진 속에서는 눈썹까지 하얀 노스님이 누군가의 손 앞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은 사진에 이런 해설을 달아 보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서울지방법원 제25민사부로부터 유전자 감정일을 지정받고 금일(8월7일) 오전 9:30분 서울의대 법의학교실 연구실에서 구강 점막세포 채취를 진행했습니다.’ 설정 스님이 ‘친자확인’을 위해 유전자 검사에 응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었다.

조계종의 현 상황은 짧은 기사로는 설명을 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설명도 어려울뿐더러 드라마 뺨치는 빠른 전개와 반전에 ‘경마식 중계’를 하지 않으면 따라가는 것조차 벅차다. 현 총무원장이 ‘은처자’(숨겨둔 부인과 자식)가 있다는 의혹을 받는 것으로도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인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권력다툼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됐다.

불교계 개혁을 요구하는 재야세력과 조계종 내부 모두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자 설정 스님은 지난달 27일 ‘퇴진’을 공언했다. “종단 주요 구성원분들께서 현재의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뜻을 모아주신다면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명분을 만들어주면 사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어 지난 1일에는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인 성우 스님을 만나 “16일 이전에 용퇴하겠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사퇴’가 이뤄지나 싶었다. 그러나 ‘반전’은 남아 있었다. 설정 스님은 지난 9일 갑자기 인사권을 행사했다. 성문 스님을 총무부장, 진우 스님을 기획실장으로 새로 임명했다. 자신의 사퇴를 압박하는 ‘조계종 내부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읽혔다.

여기서 끝났으면 굳이 칼럼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신임 총무부장인 성문 스님은 임명 하루 만인 지난 10일 사퇴해버렸다. 설정 스님의 퇴진을 종용하고 있는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의 힘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바로 돌았다. 설정 스님은 13일 다시 새로운 총무부장을 선임하려 시도했으나 또 실패했다. 그리고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견제되고 조정되는 상황을 목도했다”며 연말까지 총무원장직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달 중순 새로운 부서에 와서 종교 취재를 담당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이 모든 ‘반전’들이 일어났다. 종교 담당으로서 ‘좋은 말씀’만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던 순진한 희망은 금방 물거품이 됐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소개를 받아 연락한 한 불교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웬만한 정치인들 뺨치는 일들을 더 보게 될 겁니다.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사실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다. 조계종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일부 교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관심이 없다. 지난 6월부터 조계종 종단개혁과 설정 스님 퇴진을 요구하며 설조 스님이 40여일간 단식을 이어갈 때도 불교계 내부에서만 반향이 일어났다.

언론이 보도를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탓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사안이 아예 묻히는 시대가 아니다. 언론의 도움 없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만으로도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 단지 이번 사안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서 1058만명으로 집계됐던 불교인구는 10년 만인 2015년에는 761만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기대가 없으면 관심도 생기지 않는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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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여순감옥에 가본 적이 있다. 최근엔 어떤지 모르겠으나, 10여년 전 그때 외국인들에겐 관람 제한이 있었다. 허가받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한겨울이었고, 관람객들이 적을 철에 평일 방문이라서 그랬는지, 관람객이라고는 우리 일행밖에는 없었다. 따로 가이드도, 관람객도 없으니 주변을 도는 공안이나 경비원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감옥이 어찌나 조용한지 마치 이 세상 밖의 다른 곳 같았다.

그러나 한때 그 감옥은 한꺼번에 2000명 이상의 수감자를 수용했던 곳이고, 그 수감자들을 온갖 방식으로 고문했던 곳이며, 그들을 사형에 처했던 곳이었다. 교수형에 처해진 사형수의 시신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 그 시신을 그대로 받아 옮길 수 있게 바닥보다 낮은 아래에 항아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외침을, 비명을, 불의에 항거하는 모든 정의를 한입에 삼켜버리는 항아리였다.

안중근 의사도 그렇게 가셨다. 지금 여순감옥에는 안중근 의사 추모관이 생겼다는데, 내가 갔던 그때는 한글로 된 안내판과 추모글이 있었을 뿐이다. 그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시간이 아주 멈춰버린 듯이 그 감옥의 고요가 너무 깊어서, 뜻밖에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경건해졌던 순간이었다. 역사관람지라고 해서 문득 찾아갔다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한 위대한 인물의 죽음 앞에서, 평화로운 내 삶이, 생각 없는 내 삶이 통째로.

상해임시정부를 관람한 적도 있다. 그 건물이 너무 소박해 뜻밖이라고 생각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보니 소박한 게 다 뭔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순국한 열사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 사진들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건, 어떤 순국으로만 알고 있던, 그러니까 교과서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사건으로 생을 마감한 열사들은 한때 시퍼렇게 살아있던 청춘들이었다. 그 청춘들의 나이가 한결같이 너무 어렸다. 스무살, 스물몇살….

그 열사들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이미 그들보다 두배쯤은 더 살고 있었다. 역사에 빚진 것뿐만 아니라 그 역사 속의 젊음들에 빚진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부끄러웠다. 느닷없이,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통렬하게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

1909년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습격해 깊은 자상을 남겼으나 목숨까지는 뺏지 못했던,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사형을 당한 이재명 열사 역시 당시 스물세살이었다. 재판정에서 일본인 판사가 공범을 묻자, 이재명 열사가 답한 대답이다. 2000만 대한민족 모두라고. 나는 그 시대에 살지 않았으나,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나 역시 이재명 열사의 공범이다. 우리 모두 그러하겠다.

역사책 읽는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읽는 건 어떻게 해도 즐거워할 수가 없는 일이다. 고통스럽다고 말하기에 앞서 분노와 답답함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분노와 답답함은 일본 제국주의와 그 제국주의자들을 향해서이기도 하고, 내 나라의 역사와 그 역사 속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개인적 취향이 그러하다 보니 일부러 그 시절 역사를 찾아 읽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순감옥도, 상해임시정부도 일부러 찾아갔다기보다는 관광 일정에 포함이 되었을 뿐이다. 이재명 열사에 대한 기록은 소설을 쓰느라고 찾아보았었다. 의도치 않게, 그 순간들, 그 기록의 한 장면들이 깊숙이 남았다.

여순감옥을 생각하면 그 감옥의 뜰에 내려앉아 있던 고요와 그 고요 전부를 빨아들일 것 같던 항아리가 떠오르고, 그 항아리 속에서 여전히 공명하고 있는 것 같은 어떤 소리들을 듣는다. 부끄러워하는 일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주 때때로, 문득문득 부끄러워할 수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부끄러움에 대해서라면 윤동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시들은 시대를 넘어, 역사를 넘어 한 존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성실한 토로들이다. 윤동주가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이유는 그 진실함 때문일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슬픔, 보통사람들의 간절함, 보통사람들의 부끄러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가장 성실하고 진실한 토로. 그의 시, ‘쉽게 쓰여진 시’에서 그는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시에 관한 이야기뿐이겠는가. 그에게 시는 인생이고, 시대고,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었을 터이다.

광복절이 지났다. 광복절인가 하다가 지나가고 광복절이었나 하면서 잊게 되는 날인데, 김구 선생이 쓴 ‘광명정대’라는 친필 휘호가 눈길을 끌었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을 기념해 1949년에 김구 선생이 쓴 글인데, 그걸 간직하고 있던 독립운동가 김형진의 후손이 국가에 기증했다는 기사와 함께 그 휘호의 사진이 있었다.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수많은 기록보다, 아주 길게 쓰여진 이야기보다, 단 한 순간, 단 한마디, 단 한 문장이 가슴을 울릴 때가 있다. 광명정대. 누구나 그래야 할 일이나 누구나 그럴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보통사람들은 부끄러움이라도 안다. 때때로 아주 성실하게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 보통사람들의 삶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봉사하라고 선출되신 분들은 아예 그조차 모른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 물론 모든 정치가가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정치를 하는 사람과 몰염치한 정치를 하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일인 줄은 안다. 분노와 답답함을 참아가면서라도 그래야 할 일이기는 하겠다. 또 한번의 광복절을 지나가며, 문득 떠올려보는, 여러가지 생각들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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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상호 간에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은 인정되지만, 성적행위에 있어서는 위력이 사용되었다는 증거가 없고,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스스로 행사할 수 있는데도 명시적으로 반항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결국 피해자의 증언은 단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판사라는 직책은 한국 사회에서 사실상 권력의 최종심급이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위력이라는 게 스위치가 달려서 맘대로 켜고 끄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고용인인 중년 남성을, 거의 매일같이 수행하고 얼굴을 맞대야 하는 여성 비서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을 리는 없다. 심지어 피해자는 가해자를 신뢰하고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확실한 권력관계와 개인적인 신뢰, 존경심이 더해진 관계에서 위력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걷어내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사법부가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에 대한 판단력을 거의 인공지능 수준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복잡하고 일상에 조밀하게 침투해 있는 권력관계가 오직 성적 접근 앞에서는 명확해지고 냉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재판은 그 과정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가해행위였다. 물론 기소와 재판의 근거가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이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사건과 관계없는 피해자에 대한 음해, 억측, 일상생활이 재판과정에서 줄줄이 끌려나왔고, 언론도 가세해 신나게 받아쓰기를 했다. 차기 대선후보이자 도지사이자 가정이 있는 중년 남성이 자신의 부하직원에 대해 성적으로 부적절한 접근을 시도하고 간음한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고, 오로지 피해자의 행실이 피해자로서 적합했는지가 문제였다. 가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온갖 추잡한 방법으로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피해자답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을 받는다. 이런 식의 해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절대로 피해자가 되지 말 것.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불가항력에 가까운 것이니, 결론적으로는 피해자가 되거든 구제를 받으려 하지 말고 삶이 파괴되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말도 뭣도 아니다.

기억하겠지만 안 전 지사는 피해자의 폭로가 있은 후에 자신과 피해자의 관계가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며 사과문을 올리고 도지사직을 사퇴했다. 또 증거로 채택된 휴대폰도 제출을 거부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의 수많은 곳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허가를 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권력자들에게는 묻지 않는 것을 약자들에게만 묻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짐으로 지우려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법에 근거한 것인들 공정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이미 여성들은 사회가 여성을 보호하기는커녕 못살게 구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 최종심급이라 할 수 있는 법마저 피해 여성들을 보호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있어 이 나라의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다. 이미 미투 운동은 사회가 성폭력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운동이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공식적이고 온건한 방법으로는 이 억울함들이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최악의 신호를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개개인이 겪는 시련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야말로 사법부가 나서서 사회 붕괴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하루속히 관련 입법들을 진행하라! 사법부는 판검사들의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대대적인 재교육과 개혁을 실시하라! 행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해 성폭력에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은 이 나라가 될 것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잉여사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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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년 2월11일 오전 10시, 워싱턴 미국과학아카데미 강당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에 대한 대통령위원회(로저스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다. 당일 소환된 증인은 미 항공우주국(NASA) 매니저 로런스 멀로이였다. 그는 폭발이 시작된 부위로 지목된 고체 로켓부스터(SRB)를 담당했다. 멀로이는 우선 SRB가 어떻게 구성되고 조립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설명했고, 이어 여러 위원들이 질문을 던졌다. 멀로이의 증언 순서가 끝나갈 무렵 한 위원이 발언을 요청했다. 칼텍 물리학과 교수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윌리엄 로저스 위원장의 허락을 받은 파인만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미리 준비한 얼음물이 담긴 컵을 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결 부위를 밀폐하기 위한 고무 실을 얼음물에 넣었습니다. 여기에 압력을 가했다가 제거했을 때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다시 말하면 이 소재는 0도일 때, 적어도 몇 초 이상 동안 회복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현상이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발사 당일의 낮은 온도 때문에 ‘오링(O-ring)’이라고 알려진 고무 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그것이 챌린저호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었다.

저명한 노물리학자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고 원인을 설명하는 장면은 미국 전역으로 방송돼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같은 해 6월에 발간된 로저스위원회 보고서는 1월28일 챌린저호 사고의 원인은 SRB의 연결 부위를 밀폐하는 ‘오링’이 저온상태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부스터 내부의 고온고압의 기체가 새어나오면서 폭발에 이르게 됐다고 결론내렸다. 나아가 파인만은 NASA 직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엔지니어와 매니저의 위험 인식에 큰 격차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이 결과는 ‘우주왕복선의 신뢰성에 대한 개인적 관찰’이라는 제목으로 로저스위원회 보고서 부록F로 수록되었다. 파인만은 위원회 활동이 끝나고 2년 후 지방육종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고 사망했다.

2018년 8월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저동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회의실에서 선조위 활동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창준 위원장은 6명의 위원들이 의견 조율에 실패해 두 개의 결론을 담은 종합보고서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의견은 선체 자체의 문제를 강조한 ‘내인설’과 외력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열린 안’으로 갈려 팽팽하게 맞섰다. 내인설은 기기 결함으로 인한 급선회와 그 이후 발생한 화물 이동으로 복원성이 불량한 세월호가 과도하게 기울었다고 설명했다. 열린 안은 세월호의 복원성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고, 기기 결함을 사고 원인으로 보기에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며, 화물 이동 역시 사고원인이라기보다는 급선회의 결과로 보는 입장이었다. 선조위는 복원력 계산, 선박의 항적 데이터에 대한 보정, 시뮬레이션 결과에 대한 해석 등 기술적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결국 넘어서지 못했다.

동등한 위상을 가진 두 개의 결론을 담은 종합보고서는 세계 재난보고서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로저스위원회라고 내부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로저스 위원장은 파인만이 ‘골칫거리(pain)’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일부 위원들은 NASA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세월호 사건이 챌린저호 사건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뒤늦게나마 선체 인양을 통해 배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던 세월호와는 달리, 챌린저호가 남긴 물리적 증거는 공중폭발 후 땅으로 떨어진 잔해뿐이었다. 두 위원회의 차이는 대형 재난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차이를 반영한다. 여러 제약하에서 진행된 잠정적 조사결과를 일단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의심이 가는 지점들이 충분히 만족스럽게 확인되기 전까지 판단을 유보할지에 대한 입장의 차이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고원인을 규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각종 대책을 만들어낸다는 재난조사위원회의 목적을 상기해볼 때, 두 개의 결론으로 마무리된 선조위 활동은 아쉬움이 남는다. 재난보고서는 미래사회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준거점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호 참사의 원인규명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로 넘어갔고, 명쾌한 기준을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일 역시 그 최종결과가 나온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파인만처럼 폭넓은 신뢰를 받는 과학자의 존재가 아쉽다. 파인만이 TV화면에 등장해 ‘오링’의 회복력과 기온의 관계를 설명했을 때, 그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은 궁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조사 개시 첫 주에 나온 파인만의 발언은 이후 몇 달 동안 진행된 조사활동으로 검증됐다. 하지만 1986년 1월28일 사고 당일 챌린저호 SRB에서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100%의 확신을 갖고 재현해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파인만에 대한 신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가 20대 대학원생 신분으로 원자폭탄프로젝트에 참여하고, 1965년에 노벨상을 받은 천재 이론물리학자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까. 그가 NASA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한 독립된 지식인이라는 요인이 중요했을까. 한국사회가 신뢰받는 과학자 집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서울과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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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를 이용해 비서에게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은 14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비서 김지은씨가 상호 지위상 위력관계인 점은 인정하면서도,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해 간음을 했다는 증명은 부족하다고 봤다. 위력관계는 있었으나 위력 행사는 없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다움’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무죄 근거로 삼은 점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7월 러시아 출장 당시의 첫 간음 행위와 관련해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면서, 간음 이후 김씨 행동을 근거로 들었다. “피해 당일 저녁에 피고인과 와인바에 간 점” “귀국 후 피고인이 머리를 했던 헤어숍에 찾아가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 손질을 받은 점” 등이다. 이는 성폭력 여부를 판단할 때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고 요구하는 왜곡된 시선을 반영하고 있다. 피해자가 사건 이후 정상적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폭력을 당하지 않았다’고 볼 근거는 되지 못한다. 재판부는 김씨가 당장 사표 내고 귀국 비행기를 탔어야 ‘진짜 피해자’로 받아들일 건가. 재판부의 판단은 성범죄 소송에서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을 강조한 지난 4월의 대법원 판결과도 배치된다.

재판부는 또 김씨를 두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성적 주체성을 갖춘 사람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인가. 형법 303조는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력으로 간음한 경우’ 범죄가 성립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보호 또는 감독은 받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배제한다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피해자는 미성년자와 장애인 등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권력형 성범죄를 제재하려는 입법 취지는 사라지고 해당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다.

이번 판결로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미투는 인권운동이자 변혁운동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공인받은 터다. 피해자의 침묵은 강요될 수 없다. 억압에 저항하는 이는 보호받고 격려받아야 한다. 안희정 사건은 항소심에서 보다 정교한 판단이 이뤄지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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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박근혜 정권’ 시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013년 12월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당시 대법관을 공관으로 불러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논의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14일 김 전 실장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당시 회동에 배석한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등 외교부 당국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지난 2일 진행한 외교부 압수수색에서는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고 한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이 사건을 비롯해 KTX 승무원 해고무효소송, 통상임금 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등 10여건의 사건에서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 간의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물증이나 진술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확보된 진술과 문건은 이들의 재판거래를 입증할 강력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당시 차 전 대법관에게 강제징용 소송의 판결을 미루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승태 대법원은 그 대가로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 재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은 2012년 5월 원심을 깨고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이후 해당 기업들의 재상고로 2013년 8~9월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올라왔다. 대법원은 2012년 첫 판결 때와 쟁점이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판결을 확정짓지 않고 5년간 미루다 지난달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김 전 실장이 차 전 대법관과의 회동 때 요구한 대로다.

수십만명의 강제징용 피해자 중 현재 생존자는 3500여명으로 추산되는데, 대부분 고령이다. 이들은 해방 이후 70년 넘게 피눈물을 흘리며 이 판결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최근까지 최종 결론이 나지 않으면서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 재상고심에 계류 중인 해당 사건의 원고인 징용 피해자 9명 중 7명이 세상을 떠났다. 향후 수사에서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로 최종 판결이 미뤄진 것이 확인된다면 반민족·반인륜적 범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법원은 그동안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된 전·현직 대법관과 판사들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조리 기각했다. 이번 사건이 재판거래일 가능성을 매우 높게 만드는 진술과 증거가 확보된 이상 법원도 진상규명과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번 사건에 김 전 실장과 차 전 대법관의 ‘윗선’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도 관여됐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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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상경한 금요일, 늦은 오후였다. 을지로 빌딩가의 한 카페에서 우유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논문을 수정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자리에 앉았다. 단정한 정장 차림에, 얼핏 보아도 사회초년생 티가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어려 보인다’ 혹은 ‘실제 어리다’와는 결이 조금 다른, 풋것의 느낌. 창밖을 보며 나란히 앉도록 설계된 자리인데 굳이 옆사람을 의식했던 이유는 그녀가 커피를 받아오자마자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만큼 마음을 다친 것일까 했다. 아무리 생면부지라지만 울고 있는 사람 곁에서 아이스크림이나 핥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시선을 내려뜨린 채 교정지 페이지만 타닥타닥 넘겼다.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 하던 그녀는 이윽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저… 부장님 혹시… 죄송하지만요. 죄송한데 바꿔주시면… 그러면 팀장님은 퇴근… 예? 아니,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엿들으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듣게 되었다. 애써 귀를 닫으려 해도 안되었다. 얕은 호기심인 줄 알지만 궁금함이 일었다. 무슨 일일까. &lt;미생&gt;과 같은 비정규직의 아픔일까, 아니면 직장상사에게 모진 말을 들은 것일까. 그도 아니라면 사무실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거나 모종의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까.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이런저런 추정을 해보았다. 어느덧 옆자리에서는 어깨의 들먹거림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작은 파우치를 꺼내더니 메이크업 도구들을 집었다.

먼저 눈가에 섀도를 덧바른 후 연필처럼 생긴 것으로 세심하게 선을 그려 넣었다. 퍼프로 두 뺨을 팡팡 두드리고 입술에 다시 색을 입혔다. 방금 울었던 사람이 맞나 싶도록 집중해서 말이다. 그 모습을 곁눈질하던 나는 우연히 보았다. 수정작업을 하다 말고 그녀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아주 잠깐, 표정을 연습하듯 생긋 웃어보는 것을. 이번에는 내 쪽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까 흐느끼던 얼굴을 볼 때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종래의 호기심이 연민으로, 연민은 이내 동질감으로 옮겨갔다. 눈화장이라고는 해본 일이 없고 손거울도 갖고 다니지 않으면서 왜였을까. 그녀에게 불가해한 동병상련을 느꼈던 것이다. 

어느 소설 초반부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눈물진 눈가를 정리하러 간 여자친구가 거울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약간 벌린 채 마스카라를 칠하”는 장면을 주인공이 문틈으로 보게 된다. 숙련된 장인처럼 그 일에 몰두하는 표정이 마치 “조금 전까지의 눈물과 애교, 토라짐이 하나의 연기였음을 조용히 웅변하는” 듯했다고 화자는 진술한다. 언제 울었냐는 듯 단장에 열중하는 모습에 조용히 소름이 돋았다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쓴웃음을 짓게 했다. 웃음의 뒤끝은 씁쓸하기보다 슬펐다. 작중 인물을 대신해서 항변하고 싶었다. “화장 고치는 데에 몰입했다고 그전의 감정들이 연기였다 할 수 있나요?”라고. 마음이 깨진 상태로도 불특정 다수에게 예쁘게 보이고픈 강박이 그녀 역시 싫었을 거라고. 부서진 마음을 하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글을 쓰고, 어떤 일이든 부탁받으면 기꺼이 응하는 스스로의 강박이 그악스럽게 여겨졌던, 그래서 한밤에 깨어나 토했던 나처럼 말이다. 나는 그 작가와 같은 시선으로 사람에 대해 냉소할 수 없었다.

화장을 안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직업을 가진 내가 말쑥한 차림새의 직장인들이 바삐 움직이는 일터를 가진 이에게 함부로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안될 것 같다. 그저 나는 꾸역꾸역 단장하던 그녀에게서 꾸역꾸역 성실하고 상냥했던 스스로가 겹쳐보였을 뿐이니까. 손거울을 보며 웃어놓고 아마도 다음 장면에서 다시 울 사람에게, 그래서 일순간 동류의식을 느꼈을 따름이니까. 말하자면 그것은 고인 눈물이 마르고 나면 이내 휘발될 피상적인 감상이었다.

그럼에도 종종 그날이 떠오른다. 당시 그녀를 괴롭혔던 대상이 직장업무였든 부장님이었든 사회구조 자체였든, 지금은 그녀가 덜 힘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스럽던 순간들, 스스로의 강박 어린 생존본능을 미워한 그 시간들마저 타인의 아픔에 밀알만 한 크기의 쓰임새를 갖는 셈이다. 이 또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엇이면 좋겠다.

<이소영 | 제주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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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 발표를 앞두고 여론이 뜨겁다. 일부에선 국민연금 폐지 의견도 나오고 정치권은 벌써부터 책임 공방이다. 앞으로 논의가 생산적이길 바라며 국민연금 개혁에서 주목할 다섯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우리나라 국민연금 재정이 지닌 특수성을 직시하자. 오랜 연금 역사를 지닌 선진국에서 연금 개혁의 주요 이유는 저출산과 수명 연장이다. 이들 나라에선 인구 변화에 적응하도록 연금을 다듬는 게 과제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 재정에서 불안의 원인은 중층적이다. 빠른 고령화와 함께 국민연금 제도 자체의 수지불균형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독일은 공적연금의 대체율이 약 48%, 보험료율은 거의 19%이다. 스웨덴도 급여율과 보험료율이 독일과 엇비슷하다. 대체율 40%, 보험료율 9%인 우리나라와 크게 대비된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대체로 수지균형을 확보했고 이후에는 제도 외적 변수인 인구 변화에 대응하면 되지만 우리는 제도 내부의 수지 격차까지 풀어야 한다. 국민연금의 처지가 무척 힘겹다.

둘째, 국민연금은 장기를 내다봐야 하는 제도이다. 국민연금에 적립금이 존재하고 지금도 당해 수입과 지출에선 흑자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당해 지출만큼 예산을 마련하는 일반적 복지제도와 다르다. 비유하면 축구경기와 같이 전후반을 가진 제도이다. 가입자가 전반전에는 보험료를 내기만 하고 후반전에는 연금을 받기만 한다. 20세에 가입하여 전후반을 뛰고 90세에 사망할 때 비로소 연금제도와 맺은 재정이 결산된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이 향후 70년을 전망하는 이유이다. 이리 먼 미래를 알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중요한 건 미래 재정의 추세이다. 5년 주기로 계속 70년을 전망하면서 현재 우리가 택할 개혁의 각도를 설정하고 또 조정하자는 취지이다.

셋째, 국민연금 개혁에서 관건은 연금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현세대와 후세대가 책임질 몫을 정하는 일이다. 일부에선 기금이 있기에 당분간 문제가 없고 소진되어도 그해 보험료를 거두어 지출을 충당하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말한다. 한달치 적립금만 가지고도 연금제도가 잘 운영되는 독일 사례도 소개하면서. 귀가 솔깃하지만, 왜 독일 사람들이 내는 보험료 수준은 말하지 않는 걸까. 선진국에서 부과방식이 작동하는 건 현세대가 받는 만큼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세대가 내는 보험료가 낮기에 이대로 그냥 가면 후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현세대가 지금보다 더 책임을 감당해야 공평하다. 물론 서민들의 가계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보험료가 힘겨운 사람을 위한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연금개혁은 후세대, 즉 지금 어린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테이블 저편에서 우리와 마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사안임을 잊지 말자. 대통령이 말한 사회적 합의가 우리 세대의 이해에 국한되어선 곤란하다.

넷째, 연금개혁의 시야를 국민연금에서 다층연금체계로 넓히자. 우리는 용돈연금이라 부르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억울하다. 낮은 보험료, 짧은 가입기간에도 이 금액을 지급하려고 허리가 휘는데도 조롱을 받으니. 국민연금이 지닌 중층의 과제를 생각하면 국민연금만으로 노후를 보장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포기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행히 10여년 전까지는 국민연금 하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법정연금으로 기초연금이 자리 잡았고, 퇴직연금도 있다. 기초연금은 더 키우고, 기여금이 월급의 8.3%로 국민연금 보험료와 비슷한 퇴직연금에선 연금 형태 수령을 정착시켜야 한다. 다층연금체계의 시야에서 계층별로 노후보장을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연금개혁 논의의 출구이다.

다섯째, 국민연금 논란은 우리나라에서 노후 재설계를 절박하게 요구한다. 지금은 고령화 비중이 선진국보다 낮지만 이후 빠르게 높아져 인구 10명 중 4명이 노인이 된다. 이러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을까. 결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 지역공동체의 사회적 경제 등 이모작 환경을 구축해 초고령사회의 연금 의존도를 완화시켜야 한다. 또한 노인이 많아질수록 기초연금, 의료비 지출도 늘기에 국가재정의 확충도 필수이다.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구성된 국민부담률을 높여 복지재정의 토대를 갖추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 참 어려운 주제다. 솔직히 너무 무거워 회피하고픈 사안이다. 그래도 곧장 걸어가야 한다. 이번에 국민연금이 지닌 수지불균형을 놔두고, 다층연금체계를 세우지 않으며, 노후 재설계의 계기로 삼지 못하면, 연금개혁은 난도가 더 높아진 숙제로 뒤로 넘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면으로 대면하자.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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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주년 광복절, 안중근 의사가 사형 집행 전 면회온 두 동생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을 편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중략)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광복 후 귀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의 유해 송환에 착수해 1946년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서울 효창공원에 안장하고 이들 ‘삼의사’묘 곁에 안 의사의 허묘를 조성했다. ‘국권이 회복된 고국’에 반드시 안 의사를 모시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김구는 1948년 4월 남북협상회의 참석차 평양을 방문, 당시 김일성 북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 안 의사 묘 발굴을 제안했으나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남북이 함께 안 의사 유해 발굴을 모색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다. 2005년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유해 발굴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 이를 바탕으로 2008년 남한 정부가 중국 뤼순감옥 북서쪽 야산 일대를 발굴했으나 실패했다. 아파트 공사로 인해 당초 목표 삼았던 지역의 40%는 발굴조차 못하고 철수하면서, 유해 발굴 사업은 중단됐다. 전문가나 민간단체들이 유력한 매장지로 지목한 옛 뤼순감옥 공동묘지 발굴은 아예 손도 못 대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2014년 해당 지역의 땅속을 탐지하는 ‘지표 투과 레이더’ 조사를 중국 측에 요청했으나 무산됐다. 중국은 안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해 기본적으로 남북 합의에 따른 공동사업일 경우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북한과 공동사업으로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정상은 4월 판문점 회담에서 이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70년 전 김구 선생의 제안이 이제야 실현되게 됐다. 남북 공동으로 발굴 사업을 진행할 경우, 중국의 협조도 기대된다. 내후년이면 안 의사 순국 110주년이다. 죽어서라도 “국권이 회복된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안 의사의 유언을 이번에는 받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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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갑작스러운 사고는 어쩔 수 없지만, 웬만한 질병은 예방하거나 관리할 수 있고 수명마저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부귀와 빈천이 정해져 있고 출세의 길 역시 하늘에 달렸다고 생각하던 과거와는 다르다. 여전히 한계는 많지만 그래도 평등이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고 개인의 노력에 의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다. “진인사대천명”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하면 그뿐이지 굳이 운명을 상정해 두고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조선후기 문인 홍석주가 &lt;운명이 없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gt;을 썼으니, 운명을 부인하려는 것이 요즘의 일만은 아니다. 인과응보와 무관해서 닥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이다. 주나라 무왕이 큰 병에 들었다. 나라를 세운 지 4년, 이제 막 기틀을 잡아가야 하는 중차대한 때이다. 하늘의 뜻이 있다면 일어나지 말아야 마땅한 일 앞에서, 그의 동생 주공은 자신이 대신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어떤 일들은 인간의 노력이나 바람, 혹은 마땅한 이치와는 상관없이 일어나고 진행된다.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면, 거기에 예와 지금의 차이란 있을 수 없다.

어차피 피하지 못할 것이라면 그런 운명을 인정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이 있어야 한다고 홍석주는 말한다.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복을 얻고 화를 피하기 위해 어떤 부끄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운명을 굳이 말할 것 없이 의롭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 끝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으려면 운명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길 외에는 없다.

유난히 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여름이다. 운명에 맞닥뜨린 사람뿐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운명이 필요하다. 노력과 바람이 아무 소용없는 일을 두고도 자책하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남겨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이르는 순간까지 온몸을 바칠 뿐, 성패의 결과는 제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갈량이 &lt;후출사표&gt;에서 던진 말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운명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걸어가는 삶이 아름답다. 그런 사람이 그립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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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정동영, 손학규. 마침 시민들이 새로운 리더십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때 낯익은 얼굴들이 동반 복귀했다. 이 시점에 이들의 등장이 바람직한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김진표는 포함하고, 송영길은 제외한 채 올드보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한국 정치의 문제를 이들에게만 따져 묻는 것이 공정한 일인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올드보이론은 세대교체를 전제한다. 하지만 다음 세대가 없다. 386세대라는 송영길만 해도 내일모레 환갑이다. 386세대는 이미 기성세대이자 주류다. 그렇다고 3040세대가 치고 나올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치권에는 3040세대가 없다. 세대교체? 하고 싶어도 못한다. 정치활동 금지법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활동 금지법은 김대중·김영삼 등 특정인을 겨냥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 노골적이었다. 그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오늘날 이름을 바꾼 정치활동 금지법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저인망식이다. 게다가 교묘하게 분산되고 감춰져 있다. 나름의 논리도 있다. 그래서 오래간다. 선거법을 보자. 후보·정책에 관한 평가, 찬반 의사 표명을 막는 조항이 넘친다. 소선거구제는 새로운 정당, 소수당의 성장을 막는다. 가히 선거 참여 억제법이다. 노회찬의 비극을 부른 정치자금법은 죽음의 법이다. 신인, 원외 정치인은 정치자금 한도에서 차별받고, 후원회도 두지 못한다. 20대의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는 기탁금 5000만원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했다. 청년 진출 방지법이다.

이런 규제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청년 당원의 씨가 마른 민주당은 청년 나이를 45세로 늘려야 했다. 정당은 자발적 조직이다. 그런데도 정당법은 득표율이 낮다는 이유로 해산을 강제한다. 국고보조금은 거대 양당을 우선 배려한다. 정당 비활성화법이다.

정치활동 규제는 사회에도 널리 퍼져 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유일하게 18세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교사·공무원의 정치참여를 전면 봉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당원가입·정치인 후원 금지는 물론 현안에 관한 개인적 의견 표명도 못한다. 민주주의는 자기 통치의 원리에 기반한다. 자신을 구속하는 일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거 참여뿐 아니라 평소 정당 활동을 하고 현안에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것은 결정의 한 과정이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피할 수 없는, 정치활동이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그럼에도 학교는 정치 없는 순수의 공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왜곡된 이데올로기가 교육 현실을 지배한다. ‘민주 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한다는 교육기본법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학교는 학생을 정치 문맹으로 만들어 사회에 내보내고, 반정치 문화가 만연한 사회는 시민을 탈정치화한다. 이런 조건에서 공공의 일에 헌신하는 정치를 해보겠다고 꿈꾸기도 어렵고, 꿈꾼다 해도 온갖 정치금지법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학교, 사회로부터 고립된 한국 정치에 피가 제대로 돌 리 없다. 동맥경화증을 앓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정치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고 그럭저럭 유지되는 비결이 있다. 강제 순환이다. 총선만 되면 각 정당은 현역 공천 탈락률이 얼마나 높은지를 두고 경쟁한다. 탈락자가 많을수록 신선도가 높은 것으로 간주된다. 보통 물갈이 하면 절반 정도를 초선으로 교체한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유별나고 과격한 정치 충원이 ‘자폐 정치’를 은폐하는 데는 쓸모가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 효용은 별로다.

우선 주기적 단절은 정치인이 정치 역량을 차곡차곡 쌓을 기회를 앗아간다. 반복된 물갈이에도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 세대교체 효과가 없다. 20대 국회 초선의 평균 나이는 53세, 정치 경험은 거의 없다. 나이는 많고 정치는 모르는, 늙은 초선이 4년 주기로 집단 등장하는 현상은 한국사회의 반정치 문화, 높은 정치 진입 장벽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정치를 반기지 않는 나라이니, 정치와 무관한 분야에서 명성과 지위, 부를 쌓은 다음 그걸 디딤돌로 국회의원 신분을 획득하는, 우회로가 불가피하다. 한국에 입신양명형 정계 진출이 대세인 이유이다.

정치로부터 배제되는 시민이 많을수록, 자연스러운 정치순환이 막힐수록, 그걸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강력할수록, 정치는 사회와 단절되고 민주주의의 질은 나빠진다. 그 때문에 시민의 고통은 커지지만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이게 권력이 바뀌어도 실패하기 쉬운 이유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고민하는 우리는 왜 ‘정치하기 좋은 나라’는 고민하지 않는가? 좋은 정치 없이는 나은 삶도 없다. 지금 올드보이가 문제가 아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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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다급하게 깨우셔서 일어나보니 이미 물이 몸을 덮고 있었어요.”

낫 케오는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한 듯했다. 지난 7월24일, 라오스 아타프주에서 큰 수해가 발생했고, 유엔(UN) 발표에 따르면 이번 수해로 현재까지 약 1만30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우리는 소식을 접한 후, 서둘러 라오스로 향했다. 재난 현장으로 가는 길부터 난관이었다. 평소 1시간이면 진입할 수 있는 길은 폭우로 인해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길 상태도 엉망이라 사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진입조차 어려웠다. 어렵사리 초등학교에 임시로 만들어진 대피소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진입로는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질퍽였고, 3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교실마다 60~70여명의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당장의 식사는 자원봉사자들과 기업의 지원으로 제공되고 있었으나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이 생활하다 보니 화장실, 식수 등 무엇 하나 여유로운 것이 없었다. 대피소에서 만난 낫 케오는 부모님과 7명의 형제들과 함께 대피했다. 잠을 자던 중 겨우 헤엄을 쳐 집을 빠져나왔고, 마을 주민들이 보트로 구조해줬다고 했다. 이제 겨우 11살인 아이였지만 낫 케오는 자신의 지친 몸과 마음은 돌볼 겨를도 없이 어린 동생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이재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위생문제였다. 재난이 일어나면 원래 살던 집에서 벗어나 대피소로 모이게 되는데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몰려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전염병 발병 우려가 높다. 특히 홍수와 같은 재난은 콜레라, 식중독 등 수인성 질병의 위험성을 몇 배나 더 높인다. 그래서 위생과 관련한 전염병 등의 문제를 예방하고자 칫솔과 비누, 세제 등이 포함된 위생키트를 배분했다. 그러나 이번 라오스 홍수 피해의 경우, 피해인구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대규모 재난이 아니란 이유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적은 편이라 안타깝다. 재난의 고통은 재난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은 그 자체로 큰 아픔이며, 재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소요된다. 모든 것을 잃은 곳에서 다시 삶을 일구어 나가는 것은 그들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그렇기에 우린 계속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유엔재난위험경감사무국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재난으로 인한 피해액은 약 1조4000억달러이며, 피해자는 무려 17억명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재난 안전지대라고 불릴 만큼 재난 상황이 많지 않던 나라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국내 지진들을 경험하면서 재난이라는 것이 우리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것임을 느끼고 있다. 재난은 더 이상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19일은 세계 인도주의의 날이다. 어디선가 재난으로 인해 고통받을 지구촌 이웃들에게 관심을 갖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최인식 | 굿네이버스 긴급구호대응단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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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 지나며 이 불볕더위를 ‘잠시 시련이다, 가혹한 대가다’라고 생각해 보았다. 끓는 물에 적셨다 꺼낸 종이처럼 옷들이 고통스럽다.” 29세의 나이에 요절한 천재 시인 기형도가 1988년 8월 &lt;짧은 여행의 기록&gt;이라는 산문에서 묘사한 한여름의 더위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올해의 끔찍한 더위는 잠시의 시련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구를 착취해온 것에 대한 가혹한 대가임은 분명하다.

지금 화두는 기후 변화에 따른 냉난방의 복지이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가 냉난방 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에 대한 대응이고, 기후형평성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기후정의를 위해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냉난방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동시에 국민들이 고통스러운 혹서기를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시적인 주택용 누진제 완화가 발표되었고 관련 제도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냉난방 복지뿐만 아니라 폭염으로 인한 농축산물 피해와 그에 따른 파급효과도 커지고 있다. 이제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문제들을 미리 예측하고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대응 정책과 함께 장기적, 철학적, 기술적 방향과 정책들을 고민해야 한다. 기후형평성의 차원에서 산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과 기업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살인적 폭염은 기후형평성에 대해 설왕설래하는 것조차도 사치로 만들어 버렸다.

환경인식 제고를 위한 캠페인의 영향으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은 높아졌으나, 친환경 행동은 아직 미미하다. 그 이유는 환경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생산과 소비 그리고 생활 방식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며 친환경 행동을 위해서는 시간, 비용 노력이 들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리적 장벽이 친환경 행동을 더욱 방해하기도 한다. 개인의 행동은 너무 미미해서 환경과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대표적인 심리적 장벽이다. 기후변화는 개별지역 차원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차원의 문제이다. 심리적으로 그룹의 규모가 클수록 그리고 개인의 기여가 익명일수록 개인의 노력으로 인한 변화가 적게 느껴진다. 그러니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개인의 역할이 너무나 미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무력감은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현상으로 전이된다.

환경심리의 권위자인 로버트 기포드 교수는 개인이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자신의 노력을 타인과 비교할 때, 불공평을 지각하게 되고, 이는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행동을 방해한다고 밝혔다. 지각된 불공평은 코먼스 딜레마(Commons Dilemma)라는 사회적 딜레마로 대변된다. 코먼스 딜레마는 개인의 단기적 이기심이 공동체의 장기적인 공익과 상충할 때, 많은 사람들이 사익을 추구하게 되면 공동체 전체는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지만, 타인이 공익을 위해 함께 협조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노력은 무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으므로 선택에 딜레마를 갖는다는 것이다. 코먼스 딜레마는 기후변화 경감을 위한 우리의 선택적 딜레마를 대변한다. 개인의 노력이 기후변화를 경감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무력감과 코먼스 딜레마가 결합되어 다른 사람들의 협조가 없으면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기후변화를 경감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노력은 헛일이라는 무력감을 강화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무력감과 코먼스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작은 실천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이 습관화되고 친환경이 사회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환경부를 비롯해서 관계기관과 지자체는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들을 함께하는지 지속적인 설문조사 등을 통해 수치화해서 제시하고, 특정한 행동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결과를 구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소수의 완벽한 친환경활동가들보다 작은 실천을 하는 다수가 절실하다. 두려운 것은 곧 불어올 찬 바람으로 폭염이 뿜어내던 착취당한 지구의 신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올해의 무더위를 겪으며 모두가 외면하고 싶지만 가슴속 깊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불편한 진실은 기후변화의 가속화이다. 올해의 폭염이 재앙의 페달이 될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우리 행동의 변화를 이끈 축복이 될 것인가?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황금주 | 중앙대 교수 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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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누구에게나 터가 필요하다. 경제적 뉘앙스를 풍기는 부동산이나, 행정용어 같은 거주지라는 단어와 달리 터는 인간의 근원을 건드리는 느낌을 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능력을 지녔음을 증명해주는 문명의 출현도 인간이 한곳에 터를 닦고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터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반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터가 필요하다.

하나, 터가 없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터에서 밀려나고 또 어떤 사람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기에 터를 떠나기도 한다. 터를 떠났는지 혹은 빼앗겼는지, 터를 떠난 이유가 경제적인지 혹은 정치적 상황인지에 따라 터가 없는 다양한 이름의 집단이 생겨난다. 어떤 이는 실향민, 어떤 이는 철거민, 그리고 어떤 이는 난민이 된다. 실향민도 철거민도 난민도 아닌데 일정한 터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통상 노숙자라 부른다. 길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노숙자보다 ‘집 없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홈리스(Homeless)나 독일어 옵다흐로저(Obdachloser)가 이들의 처지를 더 잘 표현해준다. 법률상으로만 봐도 그렇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숙인 등’은 상당한 기간 동안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는 사람, 노숙인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상당한 기간 동안 주거로서의 적절성이 현저히 낮은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 법률상으로 우리가 흔히 노숙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길에서 자는 사람만으로 한정되지 않고 취약하고 유동적인 주거상황에 놓인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잠정적으로 ‘노숙인’이라는 단어를 절제하고, 일단 그들이라고 칭해보자. 우리는 그들을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 청량리역 주변에서 마주친다. 가끔 우리는 대낮에도 술판을 벌이고 있는 그들을 목격한다. 어떤 이는 큰소리를 지르고 있고,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과 자주 마주치지만, 서로 별개의 세계에 살고 있는 듯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그 흔한 눈빛의 교환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들이 시지각의 범주 안에 있을 때, 그들을 시각적 구경거리로 삼지 않는 게 최소한의 교양을 갖춘 사람의 예의라고 나는 생각했다. 눈길을 주지 않으려 하다보니, 나를 포함한 우리는 그들과 냄새로 상호작용한다. 냄새로 상호작용이 이뤄지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선 판단이 내려진다. 많은 경우 원색적이고 단정적인 단어가 그들을 판단하기 위해 동원된다.

대상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판단의 대상에 대한 내막 파악은 필수이다. 잘 알지 못한 채 내려지는 판단은 판단이 아니라 선입견과 고정관념의 반복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만큼 그들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가갈 용기는 없다. 무작정 그들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을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고, 우리에게는 그들에게 물어볼 권리가 없다. 그들에 대해 말해주는 책을 찾았다. 직접 대면하여 대상에 대한 앎을 얻을 수 없을 때, 책은 늘 유용한 도구이다. 이 글은 전적으로 책의 도움을 받아가며 썼다.

그들이 아닌 사람의 기준에서 그들은 동일한 하나의 집단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아닌 우리가 모두 동일하지 않듯이, 그들 역시 동일한 집단은 아니다. 우리가 각자 우선시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집단으로 분화되는 것처럼 그들 역시 분화된 인간 집단이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우선시하는 가치와 이른바 쉼터에서 잠을 자는 사람이 우선시하는 가치는 다르다. 길거리보다 쉼터는 시설이 좋다. 쉼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상정보를 모두 노출해야 한다. 음주도 금지되고 입소기간 중 재활교육에 참여해야 할 의무도 부과된다. 이런 규제가 싫은 사람은 그래서 쉼터의 물리적 편안함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거리의 자율성’을 선택하기도 한다.

만약 그들이 대낮에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목격하면, 우리의 입에선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즉각 발사된다. 게으름과 노력하지 않음은 그들은 사회적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라며 그들을 비난할 때 근거로 흔히 사용된다. 그들의 게으름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에 잭 런던은 &lt;밑바닥 사람들&gt;에서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곳 영국에서 주당 20실링(5달러)을 벌기 위해 일하고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밤에는 잠자리에 드는 것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쉽다. 거리를 떠도는 사람은 더 힘들고 더 열심히 움직이지만 얻는 것은 훨씬 더 적다. 나는 이미 그들이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육체적인 피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쉬러’ 수용소에 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게으름과 노력하지 않음이 건물주라는 우리에 속한 어떤 사람과 만나면 노숙이 아니라 부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의외로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우리는 그들도 모른다. 잘 모를 때 섣부른 단정을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처사이며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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