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정의를 세우지 않고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세웠다. 8월14일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1심 선고는 피고인을 심판하지 않고 피해자를 심판한 부정의한 판결이다. 업무상 위력을 작동시키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해석할 의지와 역량이 없음을 이번 판결은 보여준다.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한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법부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수많은 가해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8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재판부는 “정상적 판단력을 갖춘 성인남녀” 간에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성적자기결정권이 모두 국민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일까? 노동권, 교육권, 참정권 등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실현되어 왔는가? 피해와 차별을 경험한 사람의 위치에서 권리가 실현되도록 싸워야 하는 현실이다. ‘왜 성적자기결정권을 명확하게 행사하지 않았는가’란 질문은 경사로 없는 투표소를 만들어 놓고 장애인에게 ‘참정권 보장하는데 왜 투표 안 해’라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피해자는 성폭력이 일어난 다음날에도 피해 사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처지에 있는 여성 노동자였다. 24시간 언제든 대기해야 하는 수행원, ‘맥주, 담배’ 단어만으로 지시가 가능한 권력. 일상적으로 안 전 지사가 수행원들과 맺은 업무관계는 권위적이었다. 공무수행이란 명목으로 수행업무라는 ‘일’은 공사, 시간, 장소 구분 없이 안 전 지사가 원하는 때와 방법으로 요구되었다. 그것이 수행원의 역할이자 역량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물리적 폭력 없는 위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이주여성이 사업주의 성폭력을 신고할 수 있는가? 거주시설 원장이 가해자인 경우 장애여성은 저항하기 쉬울까? 성별 권력은 수많은 불평등과 함께 작동한다.

정상적 판단능력은 개인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이 아니다. 웃으며 거절해도,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거절할 수 없는 위치에서 보이는 난처함도 그것이 거절의 메시지임을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결정권을 행사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판단능력은 무용지물이다. 피해자의 판단능력이 아니라 거절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가해자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한편으론 장애인 피해자에게 판단능력 없음이란 기준을 쉽게 적용한다. 피해자다움에 장애를 대입시킴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성적 주체성을 제한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다움이란 요건을 갖춰야 보호법익이 작동된다. 피해자를 믿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믿는다.

이미 기울어진 저울에 서서 시작된 재판.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에게 질문하기를 중단해야 부당한 판결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나도록 사법부가 성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낮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성폭행 가해자인 스타 수영선수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애런 퍼스키 판사를 주민투표로 해임시켰다. 판사소환제도가 없는 한국에선 어려운 일이지만, 사법권력의 관점과 판단의 변화를 촉구하는 싸움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무엇보다 다시 태어나겠다는 안 전 지사의 말은 끔찍하다. 처벌과 반성 없이도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권력과 권세를 가진 자들의 공모가 무죄를 만들었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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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심상치 않다. 촛불민심은 이미 잊은 듯하다. 개혁에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개혁과제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얄팍한 계산을 튕기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의 말조차 무시하는 듯하다. 여당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지난 8월16일 문재인 대통령과 5당 원내대표가 회동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 얘기를 먼저 꺼냈다. 본인이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 개혁을 그 누구보다 일찍 주장해 왔고, 2012년 대선과 작년 대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또한 3월에 발의했던 대통령 개헌안에도 그런 내용을 담았다며,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서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먼저 선거제도 개혁 얘기를 꺼낸 것은 파격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발언에 화답한 것은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원내대표들뿐이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침묵했다고 한다. 과연 여당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날의 행태만이 아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온 후보들의 발언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후보들 중에 송영길 후보만이 야당들과 협력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을 명확하게 밝혔을 뿐이다. 나머지 후보들은 엄밀하게 해석하면 ‘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해찬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개헌과 같이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런데 지금 개헌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2020년 총선 전에는 개헌 논의를 하지 말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얘기를 조합하면, 결국 지금은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김진표 후보도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제도 개혁만 따로 할 수는 없다면서, 올해 내에는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어렵다고 얘기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올해 하반기가 선거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적기라고 주장하는데, 김진표 후보는 올해는 시기가 아니라고 하니, 이것 역시 하지 말자는 얘기다.

사실 정치권 주변에서는 민주당이 사실상 선거제도 개혁을 안 하려 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2015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당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말로는 반대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반대라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는 지금과 같은 국회, 지금과 같은 정치를 그대로 두자는 얘기다. 의정활동에는 관심이 없고 특권만 누리려고 하는 국회, 우리 삶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정치, 선거에서 이기면 독주하려 하고 선거에서 지면 ‘발목잡기’로 일관하는 정치. 이런 엉터리같은 국회, 비생산적인 정치를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이것이 ‘촛불민심’과 ‘적폐청산’을 얘기하는 정당이 취할 태도인가? 

그리고 이것은 배신이다. 자기 정당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대한 배신이고, 그것을 믿었던 유권자들에 대한 배신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지금처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좋은 여건이 만들어진 때도 없었다. 각 정당이 얻은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함으로써 1표의 가치를 동등하게 하고, 정당들이 정책경쟁에 몰두하게 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의 핵심이다. 그러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늘 자유한국당(전에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좌절되어 왔다. 그런데 6·13 지방선거 이후에는 한국당조차 반대는 하지 않는 태도로 돌아섰다. 이런 좋은 시기를 놓친다면, 정말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선거제도 개혁만이 아니라 모든 정치개혁 과제에 소극적인 것이 지금 여당의 태도이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만 하더라도, 민주당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다 정의당과 바른미래당이 반납하겠다고 압박하고,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마지못해 폐지 방향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개혁 앞에 미적대는 이상 지지율 하락은 계속될 것이다.

해법은 간단하다. 지금이라도 민주당이 나서서 야당들과 협상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하면 된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가 있지만, 이것 역시 대안을 갖고 국민들을 설득하면 된다. 국민들이 싫어하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특권이다. 따라서 특권을 없애고, 그렇게 절감한 예산으로 국회의원을 늘린다면 국민들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번에 특수활동비를 대폭 삭감했듯이, 국회의 다른 낭비되는 예산을 삭감하고 국회의원들의 과도한 연봉(수당 포함 연간 1억5000만원)과 개인 보좌진 규모(1인당 9명)도 줄이면 된다. 그렇게 해서 현재의 국회 예산을 동결한 상태에서 360명 정도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올해를 넘기면 개혁은 어려워진다. 아마 민주당 내부에도 개혁에 적극적인 국회의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우선은 그들부터 침묵하지 말고 목소리를 내기 바란다. 그래서 민주당이 개혁의 편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민주당은 반개혁세력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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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7일 교육부는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을 확정해 고시했다. 이번 개정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가 확정됨에 따라 새로운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 교육부가 내놓은 후속조치였다. 그런데 이 고시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7월26일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 명의의 긴급 성명서가 나왔다.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는 대통령령 제26844호에 의거해 설치된 교과별위원회로서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최종 심의기구이다. 성명서는 7월23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교육부가 고시하고자 한 역사과 교육과정 내용이 역사과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정된 점을 문제 삼았다.

교육부가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수정한 부분은 ‘민주주의’라는 역사 용어였다. 이것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한 것이다. 이 용어는 교육과정평가원이 교육과정 시안을 마련하고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가 심의하면서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바 없었다. 오히려 역사과위원회는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세계사부터 한국사까지 넓고 깊은 역사 이야기를 쉽고 간결하게 담기 위해 더 많이 논의했다. 또한 지난 박근혜 정부가 법정고시 기간 1년6개월을 지키지 않고 1년으로 단축하며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했던 절차적 불법행위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휴일에도 심의 회의를 할 정도로 교육부의 절차를 도왔다.

교육부의 보도자료에 대해 역사과위원회가 성명서로 비판하자, 교육부도 심의 절차에 문제가 있었음을 사과하며 해명에 나섰다. 절차를 무시하고 역사교육을 정치 도구화했던 2011년 자유민주주의 파동, 2015년 개정교육과정 강행과정에서 보여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그대로 재현해 놓고 용서를 구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편으로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교육부는 태연히 7월27일 법정고시를 강행했다.

법정고시 이후 교육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사태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나중에 설명해서 넘어가면 된다는 식이었다. 교육부에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장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합법을 위장한 불법의 타성에 젖어 있는 교육부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자 교육부는 교육과정정책관이 직접 학교로 찾아오고, 차관, 나중에는 장관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면담 자리에 가서 해명을 듣는 것으로 이 사태가 끝난다고 봤는가. 이때 오버랩되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교육부에 대한 역사국정교과서진상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 결과 교육부 관계자의 위법행위를 제기하자, 교육부는 위원들에게 해명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 식구들 감싸기로 끝낸 사건이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국민들에게는 절차, 법을 혹독히 들이대면서 자신들의 불법에는 왜 그리도 무감각할까.

촛불시민혁명 이후 전 세계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것은 묵묵히 절차를 밟아 민주주의를 실천한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존경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공무원들은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에서 민주주의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교육과정을 배우라고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이후 역사교과서의 검정과정에서도 똑같은 일이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지원 | 전 교육과정심의회 역사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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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위층엔 킹콩이 산다>라는 어린이 책이 있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층간소음 문제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풀어낸 책이다. 조금만 뛰어도 쏟아지는 어른들 꾸지람 때문에 속에서 들끓는 ‘킹콩’을 꾹꾹 눌러 잠재워야 하는 아이가, 위층에 사는 또 다른 ‘킹콩’을 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래윗집 사이에서조차 교류와 소통이 단절되고 이해와 배려를 키울 기회를 갖지 못해 벌어지는 갈등과 적대감을 아이들은 상상 속의 ‘킹콩클럽’을 결성하여 나름 슬기롭게 해결한다.

어느 시인은 10분 안에 층간소음을 영원히 없애는 비결을 소개한 적이 있다. 위층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심할 때 과자봉지나 아이스케이크를 사들고 윗집 벨을 누르는 것이다. “이 집에 개구쟁이 아이가 있나봐요? 어떤 녀석인지 이거라도 주려고요.” 그렇게 아이 얼굴을 확인하고 나면, 그날부터 신기하게도 층간소음이 싹 사라진단다. 소리가 들리면 ‘아, 요놈이 자지도 않고 또 뛰는구나. 개구쟁이 녀석…’ 한다는 것.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꼭 한 명씩 거지가 살았다. 동네 바깥 산비탈에 움막 정도는 파고 살았는데, 낮에는 이 집 저 집에서 얻은 찬밥에다 낡아서 버린 작업복 따위를 걸치고 양지바른 곳에서 졸면서 이럭저럭 지냈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당신 집을 두드리는 낯선 타자야말로 당신의 윤리적 책임을 명령하는 신의 얼굴”이라고 말했지만, 이런 어려운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거지에게 최소한의 것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예전에는 과부나 고아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동네를 뜨는 일이 생기면, 그 동네는 천하의 몹쓸 것들이 사는 동네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구해준 착한 사마리아인의 일화도 유명하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이 일화에서 연장하여 타자에 대한 ‘환대’의 문화를 설명한다. 초기 기독교 가정에는 아무리 빈한한 집이라도 늘 세 가지 보물이 구비되어 있었다고 한다. 양초, 담요, 마른 빵이 그것이다. 낯선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면 양초를 켜서 문턱을 넘게 하고, 마른 빵이나마 허기를 채우게 한 다음, 담요를 덮어 재웠다는 얘기다. 누가 이 하찮은 것들을 ‘보물’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또 이런 세상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온 것일까.

나를 포함해 대개의 사람들은 개인의 작은 행동이 거대 차원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걸 잘 상상하지 못한다. 나 하나의 관심과 행동이면 뭐하나, 남들은 여전할 텐데 하는 마음이다. 여기에는 생활의 반경과 관계의 범위가 너무 넓어진 탓도 크다. 내가 다 관여하거나 책임질 수 없으므로 방치하고 편승하는 식이다.

거지와 과부와 고아를 책임지지 못하는 동네는 사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모든 동네의 모습이기도 하다. 생각을 바꿔 가령 한 동네에서 나온 쓰레기를 어떻게든 그 동네가 떠안는다고 해보자. 분뇨와 오물도 배출자가 처리하고, 모든 산업적 상품의 부산물도 생산 기업이 책임진다고 해보자.

우리의 윤리의식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것은 거지와 고아와 삶의 부산물들을 은폐하는 사회적 논리 때문이다. 삶의 편의와 안녕을 누리는 데 반드시 수반되는 많은 것들이 은폐된다. 마트의 식육코너에 갈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 깔끔하게 포장된 저 고기들을 도축한 모양 그대로 팔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선홍색의 마블링만 보지 울부짖는 송아지의 피와 뼈와 체액은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들 사이의 땀과 고통과 질병도 마치 불순한 이물질인 양 은폐한다.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감당하고 있을 고된 삶을 저만치 밀어두고 차단한다.

거대하고 글로벌화된 세계, 그래봐야 작은 인간으로서는 평생 삶에서 마주치지도 못하는 세계에서 사느라 우리는 정작 나의 세계를 잊었다. 사실 그 세계는 수많은 방문자와 만남의 기회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공간이다. 아무도 거주하지 않으므로 같은 역사도, 같은 운명의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의 운명은 나의 운명과는 전혀 상관없는 무엇이다.

나의 손발이 닿는 세계, 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로 삶을 좁혀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지역자치, 공동체 운동, 참여와 같은 말들이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되새겨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범위만을 나의 세계로 가질 수 있다. 아무리 오래도록 망각해왔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살아왔다. 얼굴도 모르는 위층 아이에게 감정을 지배당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 아이는 단지 이름 없는 점 하나가 아니었다.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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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이 뜨거운 이슈다. 지난 7월 최저임금위원회가 2019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0.9% 인상된 시급 8350원, 월급(209시간 기준) 174만5150원으로 발표한 이후 노사 양측 모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업주가 알바 노동자와 함께 일하는 편의점과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쉬운 점은 많은 언론 보도에서 인상된 최저임금이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였는지는 빠진 채 인상에 따른 부담만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제성장 동력을 만들어보려는 정부와 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기업의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일정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의 단기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부 지원책은 필요하지만, 최근 일부에서 주장하는 ‘외국인 노동자 수습제도’와 같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방안은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방문해 ‘외국인 노동자 수습제도’를 제안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수습”이라는 딱지를 붙여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1년 차에는 최저임금의 80%, 2년 차에는 90%로 임금을 삭감하여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앙회는 내국인과 대비하여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성이 평균 87.5%에 불과하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했고,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20대 국회에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차등적용)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되어 있다.

그러나 최소한 법적으로 헌법 위반이 분명하다. 2007년 헌법재판소는 외국인 노동자를 ‘연수생’이라 부르며 근로기준법에 따른 권리를 일부 배제하였던 ‘산업연수생 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였다. 당시에도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이 생산성에 비하여 높으므로 근로기준법 일부 조항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전체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현행법에도 어긋난다. ‘근로기준법’은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제6조)고 정하고 있고,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도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안 된다”(제22조)고 적시하고 있다. 최저임금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에서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만 최저임금을 감액하는 경우는 없다.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필부의 상식에 비춰보더라도 이건 너무 비겁하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은 매년 오를 수밖에 없고, ‘최저임금이 곧 최대임금’인 저임금 일자리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상은 점점 확대될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로 시작된 차별은 고령 노동자, 청소년 노동자, 단시간 알바 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집단으로 이어질 것이다. 당장 지금은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강자가 지배하는 시장의 규칙을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이긴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820원 오른 시급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최저임금 꼼수를 막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고도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불공정한 편의점 가맹계약을 바꾸기 위한 을(乙)들의 연대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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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 여기에서 더 살아주세요. 이사가지 마세요.’ 이렇게 좀 여기 대문에 써붙이고 싶어요.”

요즘 엉뚱하게도 핫플레이스가 됐다는 서울 강북구 삼양동.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민과 동고동락’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달살이에 나선 삼양동의 옥탑방 골목은 다른 지역에서까지 구경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박 시장이 한달살이를 끝내는 19일을 나흘 앞둔 지난 15일 밤, 그곳에 가봤다. 서울에서 수십년을 살았지만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곳으로 서울시장이 폭염을 지낸 옥탑방 모습이 궁금했다. 무엇보다 삼양동은 남편이 초등학교 2학년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며, 가끔씩 전해 들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그날도 날씨가 푹푹 쪘다. 솔샘로(도로명) 큰 찻길과 닿은 골목길은 가파르고 어두웠다. 서울에 아직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오르막과 계단이 번갈아 있었다. 마치 도시 속 섬처럼 낯설었다. 2ℓ짜리 생수 몇병과 식료품을 간이수레에 싣고 힘겹게 오르는 주민도 눈에 들어왔다. 큰길에만 해도 대형마트와 학원건물 등이 줄지어 있어 여느 서울 동네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아파트 대단지에서는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옥탑방 골목에는 광복절 휴일인데도 인근 동네에서 왔다는 4~5명이 소곤대며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은 휴대폰으로 옥탑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들을 안내한 이 동네 주민 이모씨(68)의 목소리에는 조금 뿌듯함이 배어 있었다.

일부에선 ‘서울시장이 쇼한다’는 비난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다. 그 주민은 “거지같이 사니까 오는 사람도 없는데, 시장님이 와서 얼마나 좋은 줄 아느냐. 뭣 때문에 쇼를 하겠느냐. 이사가지 말고 더 사셨으면 좋겠다.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기자라고 밝히자 이참에 대통령께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랏일 보시느라 어려움이 많으실 텐데 감사드린다. 힘드시더라도 자식한테 손도 못 벌리는 늙은이들, 골병 든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없이 살게 해달라. 젊은 사람들도 빚 없이 살 수 있게 해달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하소연할 데도 없으니까….” 그는 결혼한 아들과 딸을 뒀지만 전세자금 마련 등의 이유로 모두 빚을 지고 살아 “서로 형편도 묻지 못한다”면서 이번 폭염에 선풍기도 (전기료가) 무서워 못 켰다고 했다. 다른 동네에서 왔다는 또 다른 이는 “시장님이 우리 동네에도 좀 와주셨으면 좋겠다. 금싸라기 같은 사람들(공직자·정치인들)이 이런 곳에 자주 오기나 하느냐”고 했다.

밤 9시가 가까워진 시간. 옥탑방 불은 여전히 꺼져 있었다. ‘휴일이라고 옥탑방살이도 휴일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더위에 지쳐 보이는 비서관이 대문 밖으로 나왔다. 외부 일정 중인 시장이 좀 있으면 돌아오실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여름 이처럼 폭염인 줄 미리 알았더라면 한달살이 시작하셨을까요?’ 물으니, “아니요(웃음)”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비서관은 지난 1일 111년 만의 폭염으로 강북구 기온이 최고 41.8도까지 치솟은 날 하필 당번으로 시장 옆방에서 잠을 잤다. 지친 표정 속에서도 이제 ‘한달살이’가 며칠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읽혔다. 인근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주인장의 얘기도 들었다. “시장이 다녀갔다고 뭐가 달라질지 한번 봐야죠. 그 윗동네엔 도시가스도 안 들어가 기름보일러를 때요. 가스 놔준다고 하대요. 시장이 왔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꾸 언론에 나는 바람에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집값 떨어진다고 옥탑방 앞에서 데모해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어요. 앞으로 봐야죠, 뭐….”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겹친 시장의 옥탑방살이는 자주 사람들의 화제가 됐다. 이를 두고 다양한 시각이 나왔다. 며칠 전 만난 20대 젊은이는 시니컬하게 평하기도 했다. “시장에겐 한달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같이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고 자만해선 안된다. 당장의 어려운 생활도 문제지만 그들이 진짜 힘든 이유는 그런 생활에서 앞으로도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이다.”

19일 서울시장은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무리하며 강북 우선투자를 골자로 한 ‘지역균형발전 정책구상’을 밝혔다. 옥탑방 골목을 다녀오며 머릿속에 내내 맴돈 한마디는 “위로가 된다”는 말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는데,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만큼 삶이 힘들다는 말일 것이다. 새벽녘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분다고 해도 한여름밤 폭염 아래 대통령과 시장, ‘금싸라기’라고 표현한 사람들을 향한 그들의 말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은 여전히 힘겨울 테니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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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고산지대엔 벌써 가을

처연함에 반소매는 아무래도 짧은 것 같죠

또 언제 이렇게 되었나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첫가을이 온 것은

 

아침 해도 스치면 떨어지는 이슬을 먹으려고

산마루에 떠올랐다 그 해 있는 곳은

시의 나라에선 천공 속의 바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파도와 흰 구름과 새벽과 함께

 

이렇게 파란 배추와 무는 처음 보았네

한 번쯤 팔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다시 거둘 수 없는 생의 높이 때문일지

어른보다 먼저 아이들 얼굴에

가을이 와 있었다

 

아이들이 늘 세상과 아버지를 걱정하죠

가을은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또 지나가고

생채기 하나 유리금 긋는 저 고산지대

어디서 사슴의 눈도 늙어가나

고형렬(195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해발 높은 곳에 파란 무와 배추가 자라고 있다. 고산지대는 기온이 보다 차고, 가을이 먼저 와 있었으리라. 그곳에서 시인은 아이의 마음같이 새파란, 신생의 시간을 만났으리라. 해는 떠오르고 지고,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고, 아이는 어른이 된다. 기다리지 않아도 어김이 없이 그렇게 된다.

우리는 언젠가 생(生)의 고산지대에서 한 마리 사슴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신성함과 그 높이와 이슬과도 같은 맑음과 새롭게 온 가을을. 그리고 어떤 쓸쓸함과 늙음과 쇠약함도 보게 될 것이다. 또 언제 이렇게 되었나, 라며 낮고 가만하게 말하면서.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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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휴일인 19일 긴급 당·정·청 회의를 열고 최근의 ‘고용 쇼크’에 대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총력 대응키로 했다. 현 정부 들어 주말에 당·정·청 회의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최근의 고용지표 악화를 문재인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날 회의가 끝난 후 당·정·청은 4조원 규모의 재정 보강과 내년도 일자리 예산 증가율 상향 조정 등의 재정 확장, 신산업과 서비스업 일자리 창출 지원, 규제개선 등의 대응 방안을 발표했다. 당·정·청이 ‘확장 재정’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현재 우리 경제·재정 상황으로 볼 때 불가피해 보인다. 올 상반기만 국세가 당초 전망보다 19조원 더 걷히는 등 2022년까지 초과세수가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재정상황은 여유가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머지 대책들은 그동안 나왔던 것을 반복한 차원이다. 고용지표 발표 이틀 만에 급하게 잡힌 회의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책의 질과 양 모든 면에서 과연 고용 쇼크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다. 오히려 이날 회의는 청와대와 정부의 이견만 표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회의 시작 전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필요하면 경제정책의 개선·수정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고용상황도 개선될 것”이라며 다른 뉘앙스의 얘기를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이 먼저다. 정부는 우선 고용지표가 악화된 이유부터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지난해 30만명 선이던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가 최근 들어 10만명 선으로 줄더니 지난달 갑자기 5000명으로 급감한 것은 쉬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날 회의는 최근의 고용 부진이 경기적 요인 외에 인구·산업 등 구조적 요인과 정책적 요인의 중첩에 기인한다고 분석했지만 이 정도로는 갑작스러운 일자리 급감에 대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야당과 보수진영에서는 최저임금을 재심의하거나 근로시간 단축을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설령 최저임금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에 일부 악영향을 줬다 해도 과거처럼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성장을 견인하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정부도 야당 등의 주장을 정치적 공세로만 치부해선 안된다. 고용상황을 악화시킨 원인을 정치적 편견 없이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원점에서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러고 난 뒤 정책 보완을 해야 한다면 그때 국민들을 설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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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의 댓글조작 사건을 수사해온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다. 법원은 “공모관계의 성립 여부 및 범행가담 정도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 기각이 바로 면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수사의 최종 목적지인 김 지사를 두 차례 조사하고도 구속하는 데 실패하면서 특검 수사가 동력을 잃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차 수사기간 종료(25일)를 앞둔 특검팀은 20일 회의에서 수사기간 연장 요청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과 성과에 비춰볼 때 연장 명분은 약하다고 본다.

지난 6월27일 출범한 특검의 수사 여건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앞서 이뤄진 검경 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점을 감안한다 해도 특검의 수사 결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댓글조작의 공범으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핵심 회원인 ‘초뽀’ 김모씨와 ‘트렐로’ 강모씨를 구속한 게 전부다. 이들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핵심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 만큼 특검의 성과로 보기도 어렵다. 특검이 또 다른 경공모 회원 도모 변호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두 차례 모두 기각됐다. 특검은 도 변호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부각시켜 ‘곁가지 과잉수사’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 결과 탁월한 진보 정치인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최근에도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상대로 시그너스컨트리클럽 근무 당시 급여에 대해 조사한 사실이 알려져 별건수사 논란이 재연된 바 있다.

특검 수사를 두고 과도한 공방을 벌여온 정치권도 자성할 부분이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김 지사 영장이 기각되자 “살아 있는 권력이랍시고 백정의 서슬 퍼런 칼로 겁박을 해대니 어느 특검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특검이 위법행위를 한다며 “특검이 끝난 뒤라도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또한 부적절했다. 정치권은 최소한 특검 수사가 끝날 때까지라도 불필요한 공방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검경 및 특검 수사 과정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의혹은 법정에서 철저히 규명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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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오늘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다. 2박3일씩 두 차례 진행되는 행사에서 남측 방문단 89명이 북측 가족을, 북측 방문단 83명이 남측 가족을 상봉한다. 이산가족이 헤어진 시점은 다르지만 1953년 7월 정전협정을 기준으로 한다면 65년 만에 꿈엔들 잊힐 리 없던 혈육을 만나는 셈이다. ‘8·15 계기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4·27 판문점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것으로, 3년 가까이 만에 열리는 것이다. 그간 남북관계가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또 천금 같은 시간을 흘려야 했다.

제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상봉행사 참석자 중 최고령자인 백성규씨(101·오른쪽)가 숙소인 강원 속초 한화리조트에서 행사 등록 절차를 밟고 있다. 백씨는 북측 며느리와 손녀를 만날 예정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산가족들은 이제 시간과의 처연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도 애타게 찾던 직계 가족이 세상을 등져 생면부지의 혈육을 만날 수밖에 없는 상봉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끝이 없다. “6개월 전에만 상봉이 있었어도 만났을 텐데…” 가슴을 후벼 팔 그 회한의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다. 이번에 상봉 대상자로 선정됐으나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9명의 남측 가족이 상봉을 포기했다. 65년 만의 혈육 상봉을 건강 때문에 포기할 만큼, 이산가족의 고령화는 심각하다. 통일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된 상봉 신청자 13만2000여명 중 5만6000여명만 생존해 있다. 생존자 중 90세 이상이 21%, 80세 이상이 63%를 차지한다. 매년 4000명 정도가 이산의 통한을 품고 세상을 뜨고 있다. 전쟁과 이념의 폭력으로 생이별한 살붙이를 보고 싶은 비원을 품은 채 끝내 눈을 감고 있는 이 무참한 현실을 더는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 협상의 부속물로 다뤄질 사안이 아니다. 인륜의 차원에서 최우선해 다뤄야 할 과제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이벤트 꼴로 마련되는 상봉 행사로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주기에 턱없다. 1년에 한 차례 상봉 행사에 100명씩 만난다고 할 때 수백년이 걸릴 판이다. 근본적 해결이 필요하다. 남북 당국의 의지만 수반되면 어렵지 않을, 전면적인 생사확인부터 속히 이뤄져야 한다. 생사확인을 토대로 상봉의 상례화는 물론이고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을 정례화하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과거에 실시한 적이 있는 화상상봉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실무협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9월로 예정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65년 응어리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는 전향적 접근이 이뤄지기를 고대한다. 남북 정상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이산가족들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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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었습니다. 27년 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강철보다 단단한 벽을 넘어 너무나도 어렵게 그러나 너무나도 당당하게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밝힌 날이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남성의 성욕이자 여성의 숙명으로 여겨져 피해자가 감추어야 할 정조에 관한 죄일 때, 가문의 수치이자 민족의 수치로 손가락질당할 때, 바로 그 일이 가부장제와 식민주의, 군사주의가 공모한 어마어마한 성폭력 범죄행위임을 낱낱이 전 세계에 알린 그날이었습니다. 가족과 공동체, 국가가 모두 외면하던 시절, 피해자가 생존자로 다시 활동가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다른 피해자들의 손을 잡기 시작한 그날, 전 세계를 돌며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알리고 진실을 규명하고자 했던 그래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성폭력과 강간캠프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 인권규약을 다시 쓰기 시작했던 그날, 그 정신을 기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국가기림의 날로 지정된 그날, 대통령이 “우리 자신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가 전체 여성들의 성폭력과 인권문제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각성과 교훈으로 삼”자고 강조한 그날, 대한민국은 당사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빚졌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선언한 그날,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다고,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해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뻔뻔하게 선언했습니다. 사회적 타살을 감내하며 어렵게 나온 피해자들의 입을 다시 봉하는 판결을 감행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충남 천안시 국립망향의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날’ 첫 정부 기념식을 마친 뒤 피해자인 김경애 할머니에게 인사하자 김 할머니가 문 대통령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날은 코소보, 예멘, 우간다, IS 성폭력 생존자들이 기림일을 맞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가 개최한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해 각자의 경험을 증언하고 손잡던 날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이 나서서 조직적 성폭력의 의미를, 현실을, 그 참혹한 결과를 알리고 저항하며 세상을 바꾸자고 결의하던 날이었습니다. “한국의 강인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분들은 저희의 영웅이십니다. 견디기 힘들고, 가슴이 찢어질 듯하고, 끔찍하고, 고문과 같고, 위안이 되기 어려운 아픔과 함께 살아야 하는 절망의 깊이 속에서도 여러분들은 저희에게 영감이 됩니다”라고 말하며 연대를 다지던 그날, 증거를 인멸하고, 피해자들에게 입증을 요구하고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발뺌하고 피해자의 행실과 자격을 묻고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심지어 없었던 일, 꾸며낸 일, ‘거짓말쟁이’ ‘더러운 ○○’라며 온갖 욕설과 수치심을 안겨 준 가해자들, 그리고 그 옹호자들과 힘겹게 싸워온 지난 세월을 서로 나누던 그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김복동 할머니께서 여성들의 ‘광복’과 명예회복의 의미를 다시 확인시키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피해자를 피의자로 완벽히 둔갑시킨 판결문으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위력의 존재와 위력의 행사를 구분하며, 피해자의 행실을 의심하고 증언의 신빙성을 따지는 최악의 2차 가해로 전 세계 용감한 생존자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거리에 나섰습니다. 단순히 안희정씨 사건의 재판관들에게 항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당신들의 가해행위, 편파수사, 편파판결, 편파보도를 규탄하려 모였습니다. 불법촬영·유포·소지·방조자들과 웹 하드 업체, 쾌락산업이란 명목으로 일상적으로 여성 몸을 거래하는 자들에 대한 공정한 수사와 처벌, 여자 화장실마다 뚫려 있는 ‘구멍’들의 실체 규명, 포털 사이트 댓글만 봐도 접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끔찍한 욕설과 비방에 대한 반성과 자제, #미투운동 이후에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는 무지하고도 공고한 남성연대체의 해산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당신은 최근 페미니즘이 왜곡되고 과격하게 변형되었다고 말씀하시지요? 페미니스트들은 어떤 누구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다운 처우를 위해, 동등한 교육을 위해, 참정권을 위해, 보다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동등하게 돌볼 권리와 책임을 위해, 질 좋은 공보육 시설을 위해, 재생산의 정의를 위해, 혼자든 누구와 함께하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거리에서 안전할 권리를 위해, 매 맞지 않기 위해,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특정한 집단이나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기 위해 군사훈련을 한 적도 가스실을 설치하거나 생체 실험을 하거나 집단 강간소를 만든 적도 없습니다. 페미니즘 때문에 누가 일상이 두렵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다치고 강간당하고 죽었습니까. 무엇이 과격하고 위험한지요. 공정한 판단, 공정한 수사, 공정한 판결, 공정한 취재가 어렵다고 한다면 그건 당신의 문제입니다. 광복 73주년,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촛불혁명 2주년 이후에도 여성들에게 해방과 정의는 오지 않았습니다. 여성에게 국가는 없습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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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년 만에 찾아온 폭염은 세계 기후변화에 한반도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에 따라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독일,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세계 에너지원 비율이 가파르게 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석탄, 원자력, 석유가 20% 이상 감소했고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는 30% 이상 증가했다. 우리는 작년에 뒤늦게 에너지전환에 합류했다. ‘탈원전, 탈석탄, 친재생’으로 요약되는 우리의 에너지전환은 세계적 추세의 일부분만 반영한 상태이다. 대표 정책인 ‘재생에너지 3020’도 세계 변화 속도보다는 늦다.

국가별로 처한 상황이 다른데 우리는 왜 세계 에너지전환을 따라야 하는가. 이제 이산화탄소(CO2) 배출과 미세먼지 같은 국제 환경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의하면, 작년에 세계 재생에너지 시장은 310조원대로 커졌다. 태양광 발전 시장만 180조원이다. 작년에 설치된 발전원은 재생에너지가 157기가와트(GW)인 반면 화석에너지는 70GW에 불과했다. 태양광 발전은 98GW로 가장 많이 설치됐다. 문제는 우리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4%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당장은 경제성이 좋다는 이유로 원전과 석탄발전만 육성해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탈석탄, 탈원전, 탈석유’ 배경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등 환경요인도 있지만 경제성과 시장성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원전은 안전규제 강화와 시장축소로 가격이 매년 10%대로 오르고 있다. 반면, 태양광 발전의 경우 기술혁신과 시장확대로 5년마다 가격이 절반으로 급락하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로 천연가스 가격도 내려가고 있다. 반면, 지금도 가스 발전소에 비해 고가인 석탄·석유 발전소는 환경규제 강화로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향후 30년 이후까지 지속되어,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의 60~85%가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 일본, 중국, 미국 등이 장기 로드맵을 마련해 연구개발과 시장확대에 나서는 이유다.

이러한 에너지전환에 대해 국내 일부에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원자력 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원전은 안전하고 청정하며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만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활성 지진대에 위치한 과밀 원전과 핵폐기물 처리, 미래 원전의 안전성과 경제성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미국이 지금 원전 3기를 조기 폐쇄하는 이유는 경제성이 없어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당장 대학의 원자력 분야 학생 지원이 급감하고 있다. 장래가 불확실해서인데, 방치해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전환에 따른 장기적인 원자력 인력 전환 로드맵이 필요하다. 참고로, 국내 원전 종사자 중 원자력 전공자는 8%에 불과하며 이는 인문사회 전공자 11%보다도 적다. 대책을 잘 마련하면 대학 원자력학과 문제는 해결 가능한 것이다.

미국의 탈원전 성공사례는 시사점이 많다.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 이후 40여 년간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했지만 원전부품과 설계·운영기술은 계속 수출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원자력 발전분야를 대폭 줄이는 대신 방사선 분야를 늘리는 구조조정을 했다. 방사선 분야는 방사선 의료, 비파괴검사, 농식품 저장, 보안검색 등으로 작년 세계시장이 약 330조원에 달했다. 원전보다 훨씬 큰 시장이며, 매년 12% 이상 성장한다.

현재 국내 원자력 시장 비율은 원전 82% 대 방사선 18%로서 미국의 25% 대 75%, 일본의 54% 대 46%와 크게 대비된다. 대학의 원자력학과 자체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원전에 치중했던 커리큘럼도 방사선 분야는 물론 미래 에너지 전망에 맞게 다양하게 개편해야 한다.

정부는 에너지전환에 따른 창의·융합형 연구개발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44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에너지전환 관련 원자력 분야 기술개발(원전 설계·운영·해체 등)에도 매년 약 700억원을 지원한다. 원자력계가 에너지전환에 앞장선다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좋은 기회다.

<임춘택 | 한국에너지기술평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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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 넘치던 이십대 초반에 페미니즘을 접했을 당시 내가 어떤 고민을 가졌는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다 십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마주한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다시 만난 세계’였다. 두 번째 만난 글들은 이전의 나보다 지금의 나에게 훨씬 더 구구절절하게 와닿았고, 때론 가슴 깊이 찔러서 깊은 반성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공감할 여지가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이 받아왔던 불편부당한 대우를 명확히 인식하게 되고 이를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힘을 얻어 스스로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페미니즘을 만난 이후 삶이 더 편안해졌나’ 질문을 주고받아보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는 것이 복잡해졌다고, 예전에 비하면 아무것도 쉬운 일이 없다고 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던지는 인사말도, 사사로이 던지던 농담도, 자녀와 나누는 대화도,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고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는 고민과 공부를 계속하면서 본인이 가진 권력을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약자를 위한 정치학인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내 권력을 불필요한 곳에서 쓰지 않으려니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계속 점검하고 조심해야 하는 의무를 스스로 떠안은 셈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하다 우리 중 88서울올림픽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문화를 누리고 산 내 경험을 잠시나마 동시대인들 모두의 보편적 경험으로 오해했다. 내가 누리게 된 우연한 혜택을 ‘평균값’으로 여기지 않으려면 내가 가진 것들을 점검하고 그 안에 권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시민단체 활동가이자 장애인 가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등교육을 이수한 서울내기 이성애자인 나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위치를 넘나든다. 가난한 노동계급의 남성이 어떻게 권력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는 권력의 방향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고려하지 못한 발언이다.

이 넘나듦을 이해하고 맥락에 따라 누구에게나 권력이 있기도, 때론 없기도 함을 인정해야 감수성을 기를 수 있다. 다른 경험을 갖고 각자 다른 존재로 성장한 개인들이 조화롭게 사는 사회를 기대한다면 예민한 감수성이 꼭 필요하다. 드러나지 않는 바탕을 이해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은 당장은 불편함을 만드는 존재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더 나은 개인의 삶이 보장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의 힘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온 문명의 역사는 잘못된 것을 깨닫고 고쳐온 과정이기 때문이다. 

‘잘 듣는 것’은 감수성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이 무엇이 부당하다고 말하는지, 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지에 대해 귀 기울여보아야 한다. 초등학교 사회책에나 등장할 만한 ‘범죄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와 같은 지극히 당연한 말들이 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집회 구호가 되었는지 우리는 다시 한번 들어야 한다. 정말 그 판결이 공정했는지, 그 판단에 부적절한 젠더권력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모두가 함께 점검해보아야 한다. 가만히 앉아 숨쉬기도 힘든 이 여름날 거리로 나선 여성들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지 않으려면 개인의 감수성뿐만 아니라 우리는 국가와 사법부의 감수성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아동도 아니고 장애인도 아니고 학력도 좋으니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었을 리 없다는 판결문은 개인의 권력을 최고점과 최저점을 이은 한줄서기 어디쯤으로 보는 데서 오는 망언이다. ‘정조가 그렇게 중요했다면 왜 그러고 있었냐’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재판부가 부디 감수성을 높이기를 바란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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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보스턴글로브가 2002년 탐사보도로 미국을 흔든 적이 있다. 미국 가톨릭 성직자들이 30년에 걸쳐 아동을 성추행하고, 교회는 이를 은폐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그건 놀라운 뉴스였지만, 사실 오래된 일이었다. 지난 1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검찰총장은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300명이 넘는 가톨릭 성직자가 194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 1000명 정도의 아동을 성추행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중앙종회 임시회에 참석하고 있다. 설정 스님은 이날 자신에 대한 불신임 안건 처리를 앞두고 "종헌종법에 근거한다면 불신임안을 다룰 근거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미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바티칸 서열 3위인 조지 펠 추기경이 지난 26일 아동성범죄 혐의로 모국인 호주 법정에 섰다. 가톨릭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신교 목사의 성범죄도 흔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3년의 일이다. 개신교 신자들이 꼽은 10대 뉴스 가운데 6개가 대형 교회 원로급 목사들의 불륜이었다. 스님이 룸살롱 가고 처를 두는 일도 흔하다. 성폭행에 처자식을 둔 의혹을 받은 설정 총무원장도 지난 16일 임시 중앙종회에서 탄핵당했다. 이를 일부의 일탈이라고 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 세계에 걸쳐 종교를 가리지 않고 수십년간 계속되고, 그걸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현상을 ‘일부의 일탈’이라고 하는 것은 어법에 맞지 않는다. 지난해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전 사제의 5.8%가 성추행을 했다고 밝혔다. 2010년 미국인의 성범죄 비율은 0.007%였다.

보통 사람보다 더 욕망에 흔들리는 이들을 계속 존경할지는 신도의 자유이다. 그러나 신부·목사·스님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약화되고 있다. 자연재해를 신의 뜻으로 믿던 수천년 전의 교리를 21세기 시민에게 강요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신부와 목사는 낙태·동성애 반대에 결사적이다. 자연의 법칙 위배라는 것이다.

동성애자인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가 유튜브를 통해 반론을 내놨다. 교통법칙을 위반하면 딱지를 떼지만, 자연법칙에는 그런 게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더 빨리 달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손가락은 애초 영장류가 나무에 오르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은 피아노를 치기 위해 그걸 사용한다.” 신이 용도를 미리 정해준 적이 없다. 종교의 쓸모도 시대와 사회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그것 없이는 맹목이 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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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또다시 정치권에서 건국일 논란이 일고 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1948년 건국일이 정론이다. 그러나 소수가 1919년이 건국일이라고 생각하니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인 15일, 1948년 9월1일 발행된 ‘대한민국 관보 1호’에 ‘대한민국 30년 9월1일’로 돼 있는 것을 상기시키며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당시 우리 정부의 뜻이 그러했다는 것”이라며 이승만 정부마저도 상해임시정부의 1919년 건국일을 따랐음을 강조했다.

과연 건국일 논란은 지금 ‘토론이 필요한 사안’인가? 아니다. 필자는 대한민국 현행 헌법의 헌법적 가치와 정신을 따르느냐 마느냐, 즉 ‘헌법준수 여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1919년 4월11일 임시정부에서 제정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국가 이름 그리고 군주제와 단절하고 ‘민주공화제’를 처음으로 채택하였다. 일본 식민지 해방 후 제헌국회는 1948년 제헌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여 임시정부를 따랐다. 현행 헌법도 마찬가지다.

현행 헌법의 ‘헌법전문’에는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전까지 헌법들의 헌법전문에서는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1987년 최초의 여야 합의 헌법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하였다. 그 의미는 1919년 임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헌법적으로 인정하고 우리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헌법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즉 우리의 현행 헌법은 상해임시정부가 국가의 3요소(국민, 영토, 주권)가 완결되지 않았음에도 1919년 임시정부에 ‘법적 정통성’이 있음을 헌법적으로 명확히 한 것이다. 이는 ‘1919년 건국일’의 헌법적 근거다. 따라서 현행 헌법하에서는 ‘1948년 건국일 주장’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1948년 건국일’ 논란과 함께 이야기되는 주장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인정 여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권이 회복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은 아니다. 당시 국회에서 선출된 간선제 대통령이었다. 1948년 이승만 정부도 임시정부를 계승한 민주공화국 30년에 취임한 정부임을 당시 관보를 통해 스스로 인정했고, 우리 헌법이 1919년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선언한 터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 역시 현행 헌법에서는 인정될 수 없다. 또한 현행 헌법의 헌법전문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60년 4·19의거는 국민적 저항이었고, 우리 헌법은 이승만 정부의 부정선거와 부정부패를 한마디로 ‘불의’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불의’로 규정한 상황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태도는 현행 헌법과 괴리가 있다.

‘헌법전문’도 헌법적 규범력이 있다. 모든 국가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은 헌법전문을 따라야 한다. 정당과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회법 제24조는 국회의원에게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과 같이 헌법개정과 법률제정의 한 주체인 국회의원과 정당이 나서서 헌법을 부정하는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헌법은 국가와 국민 간의 약속이다. 현행 헌법하에서 ‘1948년 건국일’과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주장은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 반헌법적·헌법파괴적 발상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는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다. 그게 지금 누구든지 따라야 할 우리 현행 헌법의 약속이다.

<남경국 쾰른대 법정책연구소 연구원·연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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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6일 금강산 지역에서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다. 판문점선언 1조 ⑤항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에 근거한다. 상봉순서는 1회차 방문단과 2회차 상봉단의 순차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회차는 우리 측 방문단 89명이 북측 가족 197명을 상봉한다. 북측이 주관한다. 2회차는 북측 방문단 83명이 우리 측 가족 337명을 상봉한다. 우리 측이 주관한다. 1회에 3일 동안 진행되는 행사의 구체적 상봉시간은 남북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남북한 당국은 제21차 상봉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발전적 개선책에 어느 정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12시간의 상봉시간을 가졌다. 1일차 단체상봉 2시간·환영만찬 2시간, 2일차 개별상봉 2시간·공동중식 2시간·단체상봉 2시간, 3일차 작별상봉 2시간 등 총 12시간이다. 이번 제21차 상봉행사에 적용되는 개선책의 핵심은 통관절차의 간소화, 개별상봉시간 확대, 상봉동선의 최소화 등으로 보인다. 거동이 불편한 이산가족들은 차량에 탑승한 채 통행검사를 실시한다. 통관절차의 간소화를 의미한다. 2일차 개별상봉 후 공동중식을 가족별 객실에서 도시락으로 실시한다. 공동중식의 이동시간을 절약하면서 개별상봉시간을 확대한다. 3일차 작별상봉 후 동일 장소에서 연이어 공동중식을 한다. 동선의 최소화를 통한 상봉의 편의성을 보여준다.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1985년 남측 35명, 북측 30명 등 총 65명의 방문단이 상봉과 함께 서울과 평양의 고향을 방문했다. 이후 고향 방문은 사라졌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20차례의 대면상봉 행사가 있었다. 4120명의 방문단이 1만9771명의 가족과 상봉했다. 7차례 화상상봉 행사도 있었다. 557가족이 3748명의 가족·친척과 화상상봉을 했다. 남북한 각각 300명씩 600명이 서신교환을 했다. 40명의 영상편지도 교환했다. 20차례의 대면상봉·7차례의 화상상봉·2차례의 생사·주소 확인 기회를 통해 5만7410명의 생사가 확인되었다.

현단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2603명 가운데 생존자가 5만7059명이다. 연간 4000명 정도가 고령으로 이산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난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연간 100명씩 대면상봉을 한다면 570년이 걸린다. 상봉의 확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80세 이상이 63%를 차지한다. 부부·부모·자녀 관계가 44%이고 형제·자매 관계가 41%이다. 고령화된 어르신과 부부·부모·자녀·형제 관계의 이산가족에게 상봉의 가중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전산화가 미비해서 사람 찾기가 쉽지 않고, 찾은 사람도 상봉을 기피하기 때문에 규모 확대에 난색을 표한다. 얼굴·옷·신체조건에서 남측 가족들과 비교가 되고, 그런 비교에서 상봉자들이 남측을 동경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 규모와 횟수를 제한한다는 분석도 있다. 관심 부족, 행정전산화의 미비, 월남자에 대한 배신감, 양부의 성을 따르는 가족제도의 차이 등이 소극적 태도의 근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의 정상적인 지도자상이 각인되기를 원한다. 이산가족에 대한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접근을 한다면 원하는 것의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생사·주소 확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남북한은 생사확인 의뢰서를 교환하고, 생사와 주소가 확인되는 대로 그 결과를 조속히 회보해야 한다. 주소가 확인되고 이미 상봉을 경험한 사람을 대상으로 매월 서신과 영상편지 교환을 실시해야 한다. 금강산면회소의 정상화를 통해 상봉의 정례화도 이루어져야 한다. 추석과 설 등 민족 명절을 계기로 고향 방문과 성묘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산가족들의 편의도 고려해서 개성·파주 지역의 출퇴근 상봉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북측이 인도주의적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측은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대화와 교류를 지속하면서 신뢰를 쌓고, 비핵화가 진전되면 최우선적으로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는 적지 않다. 개인 차원에서는 아픈 상처를 달래면서 혈육의 정을 찾는 의미이다. 민족 차원에서는 동질성 회복과 민족화합의 의미를 지닌다. 평화통일 차원에서는 작은 통일이 하나씩 이루어져 가는 의미가 담겨있다. 9월 중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번째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의 가을맞이 또는 내년의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예상된다. 상봉인원을 남북이 각각 200명으로 확대하고, 2차 후보자의 생사확인 인원도 3배수로 증대시키고, 자유상봉을 포함한 상봉시간을 확대함에 있어 북측을 설득하는 적십자사의 충분한 준비가 요구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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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와 제도발전위원회가 제4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결과와 제도개선안을 발표했다. 국민연금 제도가 변화 없이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2042년에 적자로 돌아서고, 저출산·고령화의 여파로 적립기금이 당초 예상됐던 2060년보다 3년 빠른 2057년에 소진되는 것으로 추계됐다. 연금고갈을 막기 위해 내놓은 개편안은 두 가지로, 첫번째는 2028년까지 40%로 낮아질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올해부터 45%로 고정시키고,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내년부터 11%로 올리는 방안이다. 두번째 방안은 보험료율을 2029년까지 13.5%까지 올리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2043년까지 67세로 높이는 게 골자다. 어느 쪽도 가입자들의 부담이 커진다. 세대 간 이해도 엇갈린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 당시 보험료율(3%)은 낮고 연금은 후해 ‘적정 부담-적정 급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럼에도 보험료율을 1998년 9%로 인상한 이후로는 20년 동안 근본적인 개편이 이뤄지지 않았다. 워낙 인화성이 크다 보니 정부 개혁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되거나 백지화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로 고갈시점이 앞당겨지는 상황에서 문제를 덮어두면 미래세대의 짐만 무거워진다. 국민연금 개편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 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했지만 재정안정과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선 보험료율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연금 개편은 가입자들의 처지를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예컨대 정년이 60세인데 보험료를 65세까지 내도록 할 경우 직장 가입자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개편을 위해서는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충분한 숙의를 거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불신과 오해를 적극 해소하는 것도 정부가 할 일이다. 연금기금의 운용과정에서 비효율을 제거하고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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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현재 중3부터 적용되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을 17일 발표했다. 대입 개편방안으로 대학의 수능 전형(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하고, 수능 절대평가 과목에 제2외국어·한문을 추가하며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 선택과목에 포함시킨다는 게 골자다. 또 고교교육 혁신을 위해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를 점차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며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를 본격 시행한다는 안도 들어 있다. 수능 절대평가를 확대하겠다는 방침도 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교육부는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의 결과와 국가교육회의 권고안 등 국민의 뜻을 반영하여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의 원칙과 철학은 보이지 않고 땜질과 눈치, 봉합으로 얼룩진 개편안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학의 정시 비율을 30% 이상 확대하라는 개편안은 사회 일각의 정시 비율 확대 여론과 대학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절충안으로 보인다. 현행보다 정시 비율을 10%포인트 이상 높이라는 권고안이 현실화되면 수능 위주 입시교육을 부추길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당초 제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기하와 과학Ⅱ를 수능에 포함시킨 것은 수학·과학계의 반발을 수용한 결정이다.

정부가 여론 눈치보기에 급급하면서 교육 혁신정책은 실종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2015년 ‘교육과정’을 개정하면서 인문·자연과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키우고 학생참여형 수업으로 변경해 나가겠다는 교육 방향을 제시했다. 이에 맞춰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고교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 체제 재편 등 과정 중심의 혁신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2022년부터 전면 시행키로 했던 고교학점제는 2025년 이후로 미뤄졌다.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은 헌법재판소에 제동이 걸리면서 전망이 불투명한 상태다. 오히려 정시 모집 확대로 이들 고교에 대한 인기가 높아질 수 있다. 수능 위주의 대입제도와 고교혁신 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됐다.

이번 대입 개편안은 한국 교육의 거대한 후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새로 마련한 대입 개편안으로는 학교교육 정상화도, 창의적인 인재 양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수능 개편을 유예하면서 1년에 걸쳐 만든 대입 개편안은 헛수고로 끝났다. 그 책임은 교육혁신의 철학과 비전 없이 땜질처방에 급급해온 교육부가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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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발표된 정부의 ‘2018년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2708만3000명으로 지난해 7월보다 5000명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월평균 31만6000명에 달했던 취업자 증가폭이 올 들어 10만명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지난달에는 간신히 마이너스를 넘어선 것이다.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마이너스 1만명을 기록했던 2010년 1월 이후 가장 적다. 실업자도 올 들어 7개월 연속 100만명을 웃돌고 있다. 이처럼 부진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고용동향 세부내역을 들여다보면 더욱 눈앞이 캄캄하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 취업자가 감소한 데다 한창 직장에서 일해야 할 30·40대의 취업은 오히려 줄었다.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 4월 6만8000명 감소를 기록한 뒤 감소폭이 확대돼 7월에는 12만7000명이 줄었다. 특히 40대 취업자는 늘기는커녕 감소폭이 14만7000명에 이른다. 한국 경제의 허리가 단단히 고장난 것이다. 고용위기가 청년·임시일용직 등에서 고임금·정규직인 40대 등 경제의 중추로 옮아가는 모습이다. 반대로 50대 이상 취업자는 늘어나고 있다. 미래지향적이거나 건전한 경제라고 보기 힘들다. 고용부진이 충격을 넘어 재난 수준이다.

작금의 고용쇼크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저출산의 여파로 인구구조가 변화하면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되는 인력 자체가 줄어들어 고용감소를 유발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의 고용창출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때 만들어진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대규모 고용창출을 해온 반도체·화학·자동차·조선 분야도 고용능력이 처지고 있다. 기계화·자동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얼마나 버틸지도 미지수다. 새로운 일자리는 새로운 비즈니스에서 생긴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도 적잖게 작용했을 것이다. 임대료, 신용카드 수수료, 가맹수수료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은 자영업 분야에서의 고용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이날 김동연 부총리 주재로 ‘긴급경제현안 간담회’를 열었다. 충격적인 고용성적표를 받아들고 그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야당에서는 “경제를 이 정부에 맡겨야 하는지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현재의 고용한파가 오랜 병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범정부 차원에서 고용재난을 타개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소득주도 및 혁신 성장 정책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단기 처방도 필요해 보인다. 당장 가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이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당장 다음주 예정된 자영업자 대책부터 신뢰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기 바란다.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산업정책 등 고용을 촉진할 중장기 대책도 물론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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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건강검진을 받은 후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처럼 반가울 때가 없다. 올해가 국민연금 재정상태를 건강검진하는 해이다. 결과는 ‘이상 없습니다’가 아닌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네 차례의 건강검진이 있었는데 진보정부이건 보수정부이건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기금이 고갈되니 보험료 더 내고 연금 덜 받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연금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나온 적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각자 알아서 노후를 준비할 테니 정부는 손 떼라는 국민연금 폐지론까지 나온다. 

‘기금고갈’이라는 한 단어가 국민들의 뇌리에 너무 깊이 박혀 있다. 정부가 뭘 잘못해서 기금이 고갈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기금고갈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시기는 조정할 수 있지만 보험료 인상을 통해 기금고갈을 막을 수 없음을 전문가들은 다 알고 있다. 한때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기금고갈을 원천적으로 막는 완전적립 방식의 연금제도가 대안으로 유행한 적이 있으나 이미 흘러간 옛 노래가 되었다.

2057년 기금고갈은 단순한 계산의 결과이지 그렇게 되기 어렵다. 2030년 후반에 GDP의 50%에 육박하는 대규모 기금이 국민연금에 적립된다. 기금이 고갈된다는 것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되어 있던 막대한 자산(2013년 기준 약 2500조원)을 팔아 20년 만에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가능한 얘기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막대한 금융자산을 팔면 주식·채권시장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된다. 기금을 고갈시킬 수가 없다. 어떻게 하든 자산의 유동화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기금고갈 시점을 최대한 늦출 수밖에 없다.  

기금이 고갈돼도 연금은 받을 수 있다. 연금기금을 많이 쌓아놓은 나라는 일본, 스웨덴, 미국, 한국 등 5개국 정도이다. 이 국가들도 연금 지급에 필요한 금액의 일부만 적립하지 필요금액 100%를 적립하지 않고 있다. 미국도 2030년대 중후반에 기금이 고갈된다. 대부분의 국가는 아예 기금 없이 필요한 지출을 매월 보험료와 세금으로 걷어서 충당한다. 독일은 1개월치 혹은 2개월치 적립금만 갖고 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철학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역대 정부는 연금의 목적은 망각하고 기금고갈 시점을 연장하는 것을 개혁의 이름으로 포장하였다. 1998년과 2007년 국민연금 개혁으로 기금고갈 시점이 2030년 초반에서 2060년으로 30년 가까이 연장되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신뢰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용돈연금’에 대한 불신만 늘어난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기금고갈론을 벗어나 연금의 철학을 세우려면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 여러 노후소득보장제도 중에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이 담당해야 할 적정 보장수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선행되어야 한다. 노후생활에 필요한 금액이 먼저 합의되고 각 제도의 몫을 정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적정 수준을 정하지 않으면 더 내고 덜 받는 과거 정부의 기금안정화 정책만 반복된다. 기금고갈에 따른 노인부양비용을 세대 간에 어느 정도 부담해야 할지도 국민연금의 적정 수준이 먼저 정해져야 합리적 논의를 할 수 있다.

5년마다 하고 있는 국민연금 재정 재계산 제도도 바꿀 필요가 있다. 재정 재계산 제도하에서는 재정안정화 대책만 나오게 된다.

전체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재설계와 국민연금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설정하기 어렵다. 행정부는 각 제도의 재정상태만 진단한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개인연금, 퇴직연금 등 노후소득보장제도 전체의 개혁 방향은 사회적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되 국회가 주도하는 대타협 방식으로 전환하자. 2015년 국회 주도하에 공무원연금 개혁 대타협이라는 비교적 성공한 경험도 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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