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8일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비리(경향신문 8월27일자 1면 보도)에 대해 ‘음모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함 전 사장이 재직 중 30대 여성 집 근처에서 상습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사태를 “강원랜드의 치졸한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였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바람직한 시행 방향은? 토론회에 앞서 김성태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김 원내대표의 음모론은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된 황인오씨와 관련돼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간첩 전과자를 공기업 상임감사에 앉히려는 정부’라는 제목 아래 황씨가 강원랜드 상임감사 후보 2명에 포함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결국 김 원내대표의 음모론은 강원랜드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른 파장을 덮기 위해 경향신문에 함 전 사장의 3년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흘려줬다는 추측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2개월 전 비리 제보를 접하고 추적 취재를 해왔던 기자 입장에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김 원내대표 추측대로라면 강원랜드는 두 달 전부터 조선일보 보도를 예상하고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경향신문에 제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인카드 사용내역은 지난 2일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받아낸 것이다. 함 전 사장 인터뷰는 조선일보 보도 하루 전인 8월23일 이뤄졌다. 그래도 김 원내대표가 음모론을 고집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함승희 사건’에 묻혀 ‘종북몰이’의 호기를 놓친 한국당 입장에서 음모론을 쉽게 포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제1야당 원내대표라면 실체도 불분명한 ‘음모론’의 덫에 빠지기 앞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국민적 공분’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점은 주문하고 싶다. 매 주말 관용차량을 타고 30대 여성 집을 찾아가 밀회를 즐기고 비서진을 통해 결제를 시키고도 탈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함 전 사장은 한국당 정권이 키운 ‘괴물’이다.

“저희는 처절한 진정성으로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이 부를 때까지 쇄신과 변화의 노력을 할 것이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달 11일 여의도 당사 현판을 철거하면서 한 말이다. 아직도 그 다짐이 유효한지 묻고 싶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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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동차가 열흘 간격으로 두 번이나 방전됐다. 지인에게 산 이 경차는 연식에 비해 상태가 꽤 좋아서 그동안 한번도 나를 속 썩인 적이 없었다. 무선키의 버튼을 누르면 항상 멀리서부터 ‘딸깍’ 하는 경쾌한 소리로 화답하던 자동차가 어느날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을 때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이라니. 혹시 이렇게 될까봐 시동을 끌 때는 언제나 내비게이션과 블랙박스 선까지 완전히 뽑아두었는데 말이다.

어디 누전되는 곳이 있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정비소로 끌고 갔는데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보던 정비사는 차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배터리는 교체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원인일 리가 없고, 발전기 성능도 정상이었다.

“배터리 용량이 작은 차인데 처음 방전되고 난 후에 완전히 충전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전력을 많이 썼으니 며칠만 세워둬도 다시 방전될 수밖에요. 에어컨 계속 트셨죠? 에어컨이 생각보다 전력을 많이 잡아 먹거든요. 게다가 블랙박스 같은 기기들도 다 켠 채 운행하셨을 테고….”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생각해보니 그랬다. 출퇴근을 대중교통으로 하다보니 자동차는 주말에만 쓰는 터라 가뜩이나 충전할 수 있는 운행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에어컨은 물론이고 앞뒤로 단 블랙박스, 내비게이션, 휴대폰 충전까지 전력을 그렇게 많이 썼으니.

정비사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운행을 자주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어려우면 한동안은 2~3일에 한번씩 10분 동안만이라도 시동을 켜놓으시든가요. 요새 같은 날씨에 에어컨을 안 틀 수는 없지만 가능한 한 전력 사용도 조금 줄이시고요.” 그러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정비소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에어컨을 단 1초도 끌 수 없었다. 에어컨을 끄면 찜통이 되는 차 안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고통받은 올여름은 우리에게 한 가지 교훈을 남겼다. 이제 에어컨은 거부해야 하는 죄책감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생존 필수품이 됐다는 깨달음. 올여름 전국의 평균 폭염일수는 31.2일로 1994년을 넘어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열대야는 16.7일 연속 이어졌고, 공식 최고기온이 40도를 돌파하는 등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날씨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밤에도 에어컨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든 이런 극단적인 여름 더위가 앞으로는 더욱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선풍기의 더운 바람에만 의지하다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노약자들을 생각하면, 저소득층의 정보접근권을 위해 보급된 저가형 스마트폰처럼 당장 보급형 에어컨 개발에라도 나서야 할 판이다.

그러나 올여름은 우리에게 교훈뿐 아니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도 남겼다. 그것은 아마도 방전된 자동차가 나에게 던진 숙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의 배터리 용량이 한정돼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쓰는 전력 공급의 한계는 잘 실감이 되지 않는다. 수요가 느는 만큼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단지 공급을 어떻게 늘릴 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만 치환된다. 그러니 폭염이 기승을 부릴수록 탈원전 정책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이는 갚을 수 없는 빚을 내서라도 배터리 용량이 큰 차를 사면 방전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빚을 내 지구도 더 큰 것으로 바꿀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결국 원전은 미래 세대에 갚지 못할 빚만 지우는 셈이다. 게다가 폭염이 가속화되면 원전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독일과 핀란드, 스웨덴 등은 올여름 일부 원전 가동을 일시 중지했다. 폭염으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 원전의 냉각수를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여름 폭염이 나에게 남겨준 숙제는 이것이다. 에어컨 없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음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에어컨 대신 무엇을 포기해야 할 것인가.

요즘 정비사의 조언에 따라 오밤중에 주차장에 내려가서 자동차 시동을 걸어놓고 멍하니 앉아있다 오곤 한다. 두 번이나 방전 사태를 겪고 나니 갑자기 실내등을 켜는 데 들어가는 전력까지도 신경이 쓰인다. 효과적인 전력 사용 포트폴리오를 짜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 대신 스마트폰 앱을 쓰면 좀 나을까. 야심차게 앞뒤로 달아놓은 블랙박스는 안전한 곳에서는 가능한 꺼둬야겠다. 데일 듯이 덥지 않다면 1시간에 5분 동안만이라도 에어컨 대신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열자.

올여름 폭염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삶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에너지는 한정돼 있는데 에어컨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전력 소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줄여야만 한다. 밤에도 30도가 넘는 열대야 속에 에어컨을 틀면서, 빨래를 말리기 위해 건조기를 돌리고, 식기세척기로 설거지를 하는, 그 모든 삶의 패턴을 누리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지 모른다.

<정유진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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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아들을 둘러업고 야학당에 가서 딱 하룻밤 한글을 배웠다는 우리 할머니는 읽을 줄은 알아도 쓸 줄은 모르셨다. 야학당에 하루만 더 나갔어도 쓰는 것까지 배웠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을 평생 아쉬워한 할머니는 모든 것을 종이 대신 머릿속에 기록하셨다. 특히 금전 거래에 예민하셨던 할머니의 장부는 남편의 자전거포 도매상 거래 출납과 소소한 자전거 수리비까지 단 1원의 오차도 없었다.

완전무결했던 할머니 기억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어느 해 지독한 여름 더위가 지나간 뒤였다.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씀하셨다. “너도 일만 하지 말고 어서 애를 가져야 할 텐데….”

할머니 옆에는 기어 다니기 시작한 내 딸아이가 바동대고 있었다. 할머니의 기억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솔래솔래 빠져나갔다. 할머니는 증손녀와 손녀를 까맣게 잊으셨지만 호적에 당신의 이름을 ‘이씨’라고만 기록했던 게으른 면서기의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하셨다.

다문화 공부방 소풍에 따라오신 할머니도 몇 해 전부터 기억이 뭉텅뭉텅 지워지고 있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큰소리 한 번 낸 적이 없다는 점잖은 할머니는 그림 그리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크레용을 손에 쥐셨다. 할머니는 둘레에 앉은 아이들의 그림을 슬쩍 넘겨다보면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셨다. 할머니의 도화지에는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학생이 있었다. 흰 여름 교복을 입은 해사한 여학생의 가슴에는 명찰도 달려 있었다. 누굴 그리신 거냐고 묻자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셨다. “이게 나예요.”

할머니의 기억은 아침마다 물 묻힌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리고, 빳빳하게 풀 먹인 교복을 입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할머니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예순 넘은 따님이 명찰에 적힌 어머니의 이름을 되뇌며 중얼거렸다. “다행이죠.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거니까.” 모르긴 몰라도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긴 회고록까지 지어낸 그도 자신의 이름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대손손 우리가 기억해 줄 테니까.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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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퀸즐랜드 선샤인 해안의 동물원 국장이었던 스티브 어윈(Steve Irwin)은 2006년 홍어에 물려서 죽었다. 그는 열렬한 환경 운동가이자 원시림 탐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악어 사냥꾼’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던 인물이다. 잔치 때마다 빼놓지 않고 홍어무침을 먹었던 나는 저 뉴스를 보며 ‘독이 있는 홍어도 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벌처럼 쏘는 범무늬노랑가오리(stingray)는 꼬리에 가시가 자리 잡고 아래 독의 분비선이 있어서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재미있는 점은 홍어와 같이 연골어류에 속하는 상어의 비늘도 저 가시와 진화적 기원이 서로 같은 상동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오돌토돌한 상어의 피부는 방패비늘(楯鱗, placoid scales)이라고 불리는 200~500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크기의 비늘로 덮여 있다. 전자 현미경으로 상어 피부를 관찰했던 과학자들은 저 비늘이 우리 인간의 치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고기와 사지동물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며 “팔굽혀 펴기”를 할 수 있었던 물고기 화석을 발견한 닐 슈빈(Neil Shubin)은 턱이 없는 어류인 칠성장어 이빨에서 입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인 상어의 방패비늘을 보았다. 척추동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방어용 외골격 조직을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내골격 이빨로 용도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캄브리아기를 규정하는 대량의 화석은 분해가 쉽지 않은 이런 외골격과 이빨, 그리고 근육이 붙어 있던 뼈에 다름 아니다. 생명체의 역사에서 마침내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인간처럼 척추동물로 분류되지만 턱이 없어 무악어류로 불리는 생명체 중에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곰장어도 있다. 청소동물로 바다 아래쪽에 사는 곰장어와 달리 몸통에 7개의 아가미 구멍이 있는 칠성장어는 강한 이빨을 물고기 몸통에 박아 체액을 빨아먹는다. 강원도 양양 남대천에서 발견되는 칠성장어는 먹장어와 더불어 ‘살아있는 화석’이면서 동시에 이빨이 턱보다 먼저 진화했다는 사실을 몸으로 증명하는 신비로운 물고기이기도 하다.

턱과 이빨은 살아가는 데 먹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점을 웅변하는 진화적 장치이다. 척추동물의 98%가 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저 기관의 유용성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턱은 먹잇감을 잡고 소화기관 안으로 집어넣는 일을 수행한다. 이빨이 없는 닭도 부리와 턱을 움직여 물고기를 입안으로 욱여넣는다. 하지만 이빨이 있으면 잡고 씹어서 소화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사자나 기린 모두 먹는 방식은 사실상 동일하다. 차이가 있다면 이빨의 종류가 다르다는 점뿐이다.

잡식성인 인간의 입에는 앞니, 송곳니, 어금니가 각각 8개, 4개, 20개 있다. 앞니는 끊고 자른다. 송곳니는 구멍을 낼 수 있다. 어금니는 맷돌처럼 음식을 잘게 갈 수 있다. 익히 잘 알고 있듯이 육식성인 사자는 송곳니가, 초식성인 기린은 어금니가 발달했다. 코끼리는 길고 커다란 엄니(ivory)를 공격용으로 사용한다. 200개가 넘는 이빨을 가진 돌고래도 있다. 과학자들은 포유류가 진화하면서 이빨의 수는 점차 줄어든 반면 다양성은 증가했다고 말한다. 동물의 이빨은 다양하지만 사실 그 형태는 무엇을 먹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젖을 먹을 때 이빨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을 포함한 젖먹이 포유동물이 태어날 때 이가 없다는 사실이 단박에 이해가 된다.

약 6~8개월 정도 자라면 아기의 입 아래쪽에서 앞니 2개로 시작해 얼추 30개월 정도면 전부 20개의 젖니가 나오게 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두 발로 걷는 사건보다 치아가 나오는 일이 먼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30개월 정도면 젖을 떼고 아기가 다른 종류의 음식물을 먹을 생물학적 준비가 완성된다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치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발생을 시작한다. 수정이 되고 약 8주 후면 젖니, 20주 후면 영구치의 발생이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52개의 치아를 다 갖고 있다. 그게 인간 치아의 전 재산이다. 상어는 살아 있는 동안 3만번 이빨을 교체할 수 있다고 한다. 빠지면 바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곤충이 탈바꿈하듯 치아를 교체한다. 아이의 몸통은 성장을 하지만 한번 형성된 치아는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이 될 때까지 부피가 네 배 증가하는 뇌를 담기 위해 인간의 머리통은 당연히 커져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자라난 턱에 맞춰 인간은 치아를 새것으로 교체할 필요가 생겼다. 새로 나온 영구치는 더 크고 튼튼하다. 뼈와 달리 수산화 인회석이라는 무기염류가 함유된 강력한 법랑질(enamel)이 위아래 두 개의 이빨이 마주치는 부위에 자리 잡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랑질을 만드는 세포는 잇몸을 뚫고 치아가 나오자마자 죽어버린다. 치아의 표면이 부식되고 손상되면 다시 회복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사랑니는 17~21세 정도에 느지막하게 나온다. 아예 사랑니가 없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턱과 이빨에 부담을 줄인 덕택일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더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되면 우리 치아는 약해지고 그 수도 더 줄어들지 모르겠다. 길게 보면 인간은 늘 진화하는 중임에 분명하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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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은 ‘경술년 국치일’이다. 올해 108주년이다. 1910년 8월29일 제국주의 일본은 강제적인 병합조약을 통해 국권을 강탈했다. 실질적인 식민통치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일제는 내각총리를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조선통감으로 임용했다. 얼마 후 그는 하얼빈 기차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일제강점기 동안 모두 9명의 조선총독이 있었다. 그 가운데 데라우치는 무단통치를, 미나미 지로는 무자비한 공출과 황국신민화를 추진했다. 또 도조 히데키는 우리나라를 중국, 동남아시아로 진출하는 전진기지로 삼았다. 악명 높은 대표적인 총독들이다.

1945년 8월15일 마침내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했다. 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조부인 아베 노부유키가 당시 마지막 조선 총독이었다.

한국과 아베 일가와의 악연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60년 기시 노부스케 당시 총리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주변국 침략을 목적으로 집단적 자위권 관련 헌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가 바로 아베 신조 총리의 외조부다.

일본 우경화에 앞장서며 무장을 추진하고 있는 현재의 아베 신조 총리, 그의 조부와 외조부에 이르기까지 우리와는 질긴 악연이다.

수세기 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일본.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아베 신조는 2013년 총리 취임 이후 우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고 있다. 강점기 당시 저지른 일본군 강제 위안부는 물론 강제적인 징용, 수많은 인권 말살의 사례 등을 부인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기존의 무라야마 총리 등이 밝힌 사죄 담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담화 내용까지 왜곡해 해석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로 엄연히 우리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며 한국이 불법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방위체제를 강화한다는 미명 아래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다. 집단적 자위권을 빌미 삼아 우리나라 분쟁에 개입할 근거를 만들겠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치일을 맞아 새삼스럽게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조금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한·미·일 안보협력 관계만을 믿고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편으론 우리 내부적으로 국민 모두의 협력과 화합을 이룩해야 한다. 광복과 해방의 기쁨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라를 잃은 국치일도 광복 못지않게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한정규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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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가계동향조사자료 때문에 정부의 고위직 인사 두 명이 석 달 간격으로 교체되었다. 지난 5월 교체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며칠 전 교체된 황수경 전 통계청장이 그 당사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30년간 이만큼 정치적 파장이 큰 통계자료가 있었을까? 가계동향조사는 우리나라의 소득분배 추이나 가계의 경제활동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가계동향조사를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지난 5월 발표된 2018년 1분기 자료와 며칠 전 발표된 2분기 자료에 의하면, 소득 하위 20% 계층(소득 1분위)의 가계소득은 전년 동분기보다 크게 감소했고 소득 상위 20% 계층(소득 5분위)의 가계소득은 전년 동분기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야당과 일부 언론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화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최근 발표된 가계동향조사자료를 가지고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성공 여부를 판별하는 것은 무리스럽다. 우선 최근 3년간 가계동향조사의 표본수와 표본구성에 큰 변화가 있었다. 몇 년 전 통계청에서는 가계동향조사를 2017년에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 때문에 시간의 경과에 따라 탈락되는 표본을 대체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하던 신규표본표집을 2017년에는 전혀 하지 않았고 결국 2017년 조사는 매우 작은 수의 표본을 가진 간이조사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가계동향조사를 중단하지 말라는 각계각층의 여론이 있어 다시 계속하기로 결정을 번복하면서 2018년에는 전체표본의 60% 정도를 신규표본으로 구성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2016~2018년 사이에 표본수와 표본구성에서 큰 변동이 생긴 것이다. 2016년 1분기에 7000여개이던 표본이 2017년 1분기에는 4000여개로 크게 줄었고, 2018년 1분기에는 6600여개로 다시 증가하였다. 3개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표본은 1600여개밖에 되지 않는 기형적인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표본수와 표본구성에 큰 차이가 나면 당연히 연도 간 비교라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인데 통계청에서 단순비교를 공표하면서, 그리고 그 비교를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아전인수격으로 확대 해석하면서 사달이 난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작년에는 딸기 30개와 사과 20개를 수확하였고, 올해는 사과 25개와 배 15개를 수확하였는데 이를 두고 올해 과일 수확량이 작년 과일 수확량보다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에 대해 왈가왈부했던 셈이다. 정부 비판자들은 합계라는 면에서 보아 40개가 50개보다 작으니 농사가 실패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인데, 달리 보면 두 해에 공통으로 생산된 사과만 놓고 보면 20개에서 25개로 수확량이 늘었으니 올해 과일농사가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가 3개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표본에 대해 계산한 바에 의하면, 1분위 소득은 2016년 1분기와 2017년 1분기 사이에 크게 감소했다가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 사이에는 크게 증가하였다. 5분위 소득은 2016년 1분기와 2017년 1분기 사이에 증가했다가 2017년 1분기와 2018년 1분기 사이에는 약간 감소하였다. 즉 공통 표본만 보면 2016~2017년 사이에 악화된 불평등이 2017~2018년 사이에 개선된 것이다.

만일 표본수나 표본구성의 큰 변화가 없었는데 1분위 소득이 감소하고 5분위 소득이 증가했다고 하면 이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아니다. 하위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상위소득은 급성장하는 서민배제적 성장패턴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병리현상이다. 기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포용적성장 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된 정책들이다.

범죄율이 높아지니까 경찰관 수를 늘렸는데 어떤 통계학자가 경찰관이 많아져서 범죄가 더 늘었다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이 통계학자의 오류는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와 혼동한 데에 있다. 만일 경찰관이 많아져서 범죄가 늘었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더 엄밀하고 사려 깊은 분석을 진행하여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사려 깊은 분석은 사라지고 정파적 이익이나 신념에 의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이 되어 안타깝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이 정책들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야단들인 것이다. 통계청장의 교체와 관련하여서는 정부가 통계조작을 시도하려 한다는 어설픈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우진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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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의 다른 이름은 ‘대침체(Great Recession)’다. 대침체는 1929년 ‘대공황’에 빗댄 말이다. 장기적 경기 침체를 뜻한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대침체를 알렸고, 대침체는 유럽 국가들의 부채 위기로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표준적 세계관으로 군림해온 신자유주의는 고장난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대침체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을 상징하는 사건은 2011년 ‘점령 시위’였다.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 도쿄, 그리고 서울 등에선 동시다발 시위가 일어났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는 익숙했던, 그러나 불편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성장이 둔화되고, 불평등이 강화되며, 크고 작은 금융위기가 반복해 발생하는 ‘뉴 노멀’의 시대가 열려온 셈이었다.

돌아보면, 전후 서구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힘이 케인스주의 복지국가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변화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적으로 이끈 것은 금융자본이었다. ‘사슬 풀린 프로메테우스’처럼 전 지구를 넘나들며 탐욕스럽게 이익을 챙겨온 금융자본은 ‘20 대 80 사회’를 창출했고, 다시 ‘1 대 99 사회’를 만들어왔다. 불평등에 대한 대처는 어느 나라든 주요 정책 목표가 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불평등을 선구적으로 비판한 이는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었다. 크루그먼은 1980년대 이후 미국사회를 두 번째 ‘금박 시대(Gilded Age)’라고 명명했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워너가 함께 쓴 소설 제목에서 따온 금박 시대란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곪아 있는 시기를 함의했다. 고도성장이라는 화려한 표층 아래 빈부 격차라는 어두운 심층이 결합해 있던 시대가 금박 시대였다.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분석한 이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였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다면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고, 결국 소득분배가 악화된다는 게 피케티의 논리였다. 피케티는 1980년대 이후 불평등의 증가에 주목하고, 21세기 자본주의 미래를 우울하게 전망했다.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인구 성장과 기술 진보가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저성장이 지속되고, 그 결과 자본의 소득 몫이 커지며 그 힘이 더욱 강력해지는 ‘세습 자본주의’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게 피케티의 주장이었다.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견해에 반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불평등은 앞서 말했듯 금융위기 이후 경제와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적 화두가 됐다. 2014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심각한 소득 불평등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불평등 증가가 경제성장에 압박을 가하고 불안정을 부추긴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이 낳은 결과가 미국 ‘샌더스 현상’에서 이탈리아 ‘오성운동 돌풍’에 이르는,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정치적 포퓰리즘의 부상이었다.

최근 세계 경제는 대침체가 가져온 경제 위기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올해 1월 출간된 세계은행(World Bank)의 ‘세계 경제 동향 2018’ 보고서는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성장 둔화가 우려되지만, 투자와 무역은 회복되고, 재정은 건전하며, 신용은 개선돼 왔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구적 경제 상황은 나라에 따라 고르지 않은 편차를 드러내고 있다. 더하여,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부채 증가, 그리고 미·중 간 무역전쟁 등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역사사회학적 시각에서 볼 때 체제 전환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이 언제쯤 불확실성의 터널에서 빠져나올지를 예견하긴 어렵다. 이 뉴 노멀의 세계 경제에서 세 가지 경향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정보사회의 진전이 비가역적인 한, 경제의 지구적 네트워크는 더욱 촘촘해지고 긴밀해질 것이다. 둘째, ‘인더스트리 4.0’ ‘소사이어티 5.0’ 또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이 경제는 물론 사회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분배와 복지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으면 불평등은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하게 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대압착(Great Compression)’ 정책이었다.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노동계급 안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대압착이 포스트신자유주의로 가는 경제와 사회의 가장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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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아시안게임 카누 용선 여자 500m 결선에서 여자 남북 단일팀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주 끝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카누 용선은 노잡이 10명, 키잡이 1명, 북재비 1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일정한 거리를 질주하는 게임이다. 용선이 카누 종목에 들어간 것은 아시아의 오랜 전통을 이은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이 반대파의 모함으로 좌천을 거듭하다가 멱라수에 투신했다. 그를 구하려고, 혹은 그의 시신을 건지려고 여러 배들이 앞다퉈 달린 데에서 경도(競渡, 배를 저어 빨리 건너기를 겨루는 놀이) 시합이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용 모양으로 장식한 용선(龍船)을 사용한 건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에도 중국, 대만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용선대회를 즐기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굴원을 추모하는 원뜻보다는 흥겹고 격정적인 놀이로서 용선 경도가 유행하던 송나라 때, 항주 지역을 다스리던 범중엄은 허구한 날 경도 시합을 벌이고, 물가에서 연회만 즐기며, 잦은 공사로 백성의 힘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탄핵당했다. 흉년으로 온 나라가 구황에 힘을 쏟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범중엄이 경도로 연회를 연 의도는 여유 있는 이들의 소비를 활성화하려는 데에 있었다. 아울러 공공건물을 대거 신축하고, 큰 절의 주지들을 불러서 흉년의 싼 인건비로 토목 공사를 크게 벌이도록 부추겼다. 수만 명이 일자리를 얻었고 상인들도 모여들었다. 범중엄은 이 모두가 궁극적인 구황 정책이었음을 해명하였고, 그해에 항주 백성들만 안정을 유지했다.

굴원은 “온 세상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네”라며 비분강개하였다. 범중엄은 “천하사람 아무도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세상사람 모두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방식은 다르지만 내 한 몸보다 더불어 사는 이들을 먼저 위하는 마음이 각별한 이들이다. 카누는 ‘협력’을 넘어 ‘합력’을 겨루는 경기다. 남과 북이 하나의 북소리에 하나의 몸짓으로 온 힘을 합하여 쑥쑥 전진하는 모습에서 비할 데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 앞의 난관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단 20여일 만에 최고의 호흡을 이루어낸 단일팀의 모습에서만큼은 희망을 말해도 좋지 않을까. 북소리 끝에 울려 퍼진 아리랑처럼.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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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위해 또 옛기억을 꺼낸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추해볼 때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있다. 2006년 10월 비가 내리던 어느 저녁, 서울 종로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주변을 지나는데 청와대 방면 지하철역 입구가 온통 경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거리는 텅 비고 찬 비바람뿐이었다. 

수백개 시민사회단체로 이뤄진 한·미 FTA 공동대책위원회와 전농이 열려던 집회를 막느라 경찰 수천명을 깔아놓고 빈 공간에 고립돼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대통령 노무현이었다.

한때 그를 열렬히 응원했던 나는 빈 거리에서 묻고 싶어졌다. 왜 청와대에 홀로 계신가? 당시 시민사회와 민중단체, 지식인 다수가 양극화와 미국화를 우려하며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었지만, 그는 통상론자들과 친미파들을 앞장세워 그게 살길이라고 강변했다. ‘바보 노무현’은 그렇게 경찰한테 ‘보호’받으며 민중단체로부터 비판받고 시민사회로부터 고립되려고 대통령이 됐나?

노무현 대통령 본인과 그 정부의 비극은 큰 상처를 남겼고 한국 정치의 많은 것을 바꿨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가장 짧고 굵게 요약했다. ‘운명’. 

그 ‘운명’은 촛불과 함께 ‘지금 여기’에 이르렀고 다시 기로에 처하는 듯하다. 촛불과 남북화해의 빛에 환호하던 많은 이들이 돌아서려는 분위기다. 이겨내야 할 초조함이 여기저기 흐른다.

문재인 정부는 역사상 네 번째 민주(당) 정부다. 김대중 정부를 제외하면 다른 두 민주당 정부는 최악의 반동을 부르며 참혹하게 실패했다. ‘촛불 이후’인 지금은 어떤 면에서 4·19혁명 직후와도 비슷하다. 부패·독재정권이 민중의 힘으로 물러나자 제주 4·3과 거창양민학살, 그리고 이승만 시절의 온갖 국가범죄에 대해 진상규명해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여성과 노동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은 개혁과 자기 요구를 위해 행진했다. 한국의 모든 모순이 결국 분단에 응결해 있다고 생각한 일군의 지식인·학생들은 평화통일·한반도 중립화의 기치를 내걸었다. 모두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몇몇 한계가 있었다. 우선 민중은 배가 고팠다. 곤궁한 민생과 허약한 경제구조가 고쳐질 기미가 안 보였다. 1960년에도 ‘생계형’ 자살자가 참 많았다. 초조가 팽팽해져갔다. 

지도자와 집권 민주당은 여리고 무능했다. 구파와 신파로 나뉘어 정쟁을 되풀이했는데, ‘길 가다 지갑 주운 것처럼’(고 노회찬 의원의 표현) 민중의 희생 덕에 집권했던 그들은 뭘 해야 할지 잘 몰랐다. 그 결말은 우리가 아는 비극이다. 혁명을 도둑맞은 사람들은 초조를 침묵으로 바꿨다.

종로통과 청와대 근처를 늘 다니는 서생이자 직장인인 필자가 ‘운명’을 안은 이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시민사회·민중 단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끝까지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조를 틈탄 선동을 이겨낼 힘도 그 신뢰뿐이다. 그들의 시선이 다수 민중의 삶을 보도록 만든다. 그들이 정부로부터 기대할 게 없다고 여길 때 방죽이 무너졌다. 

노무현의 시선이 더 이상 아래로 향하지 않고 지지기반이었던 민주노총·전교조·전농 등과 연달아 소원해졌을 때 고립은 시작됐고, ‘현실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보수언론과 재벌에 아부하고 보수 중산층을 향해 손 내밀어 대연정과 FTA를 추진했을 때, 실패는 확정됐다. ‘좌우에서의 협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마음이 떠나버린 것이었다.

이 뼈아픈 결별을 나는 못 잊는다. 정권의 성패가 시민사회·민중 단체들과 무관한 일이 되어 버릴 때, 당장 자신의 조직을 지키는 것이 절박한 일이 돼 버릴 때, 그리고 ‘다 똑같은 놈’이라는 환멸이 먹혀 다른 말길을 막을 때 민주정부는 진짜 망한다.

지금 초조가 대기 중에 떠돌지만 소득 불균형이 악화되고 민생경제를 당장 회복할 수 없는 것은 단지 현 정부 탓이 아니다. 수십년 넘게 쌓인 ‘구조’가 단기간에 몇 가지 정책으로 그렇게 쉬이 좋아질 일이 아닐 것이다. 임금, 고용, 물가, 부동산, 국제환경, 자영업 문제들이 엉켜있는 고차 방정식은 결국 ‘경제’ 문제를 뛰어넘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운명’은 다시 1년 안에 갈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직 대중은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내부에 있는 반‘촛불혁명’과 대결하며 ‘운명’을 건 비약을 시도해야 한다.

‘협치’가 답인가? 도대체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협치가 필요하다면 이 사회의 비주류들과 여성, 노동자 같은 소수자들 그리고 시민사회와 해야 할 것이다. 공약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광화문에 집무실을 차려야 한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1960년을 묻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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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8일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으로 확정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대폭 증액했던 2009년(10.6%) 이후 10년 만에 가장 확장적인 예산안이다. ‘슈퍼예산’을 통해 고용 악화, 소득 양극화, 저출산, 저성장의 악순환 문제를 극복하고 경제의 역동성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경기가 주저앉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출처:경향신문 DB)

이번 예산안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재정집행의 청사진’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고용과 분배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랄 수 있다. 특히 ‘일자리·복지 예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부문에 예산을 집중 배정했다. 예컨대 일자리 예산을 올해(19조2000억원)보다 22.0% 늘려 사상 최대인 23조5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를 투입해 취약계층 일자리, 사회서비스·공무원 일자리를 100만개 이상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고용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실업급여 확대 및 기간 연장, 전직 훈련, 신중년 재취업을 위한 예산도 일자리와 관련된 것이다. 일자리와 복지 예산을 합하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이 넘는 35%에 달할 정도다.

혁신성장 관련 예산도 확대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년 대비 14.3% 늘었고, 연구·개발 예산도 증액했다. 연구·개발 예산은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었다. 궁극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예산도 일자리 예산이다. 일자리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이번 예산안의 방점을 둔 것이다.

효과가 의심스럽거나 응급 처방으로 보이는 예산도 일부 눈에 띈다. 특히 일자리 예산을 지속 가능한 사업에 투입하는 건지 살펴봐야 한다. 청년고용을 위한 내일채움공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은 단기대책일 가능성이 높다. 취약계층 일자리나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등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혁신성장을 위한 투자의 경우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투자 대비 효용성에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혈세 낭비가 없도록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과감한 보완이 필요하다.

재정확대는 역동성이 떨어진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정부는 고용과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행히 세수여건이 양호하고 국가부채비율도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나라의 곳간을 푸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예산을 늘려서라도 경제가 활력을 찾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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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2009년 8월4~5일 벌어진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 진압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28일 밝혔다. 노조원 수백명이 해고되고 수십명이 구속된 쌍용차 사태는 그 후 9년 동안 해고자와 가족 등 30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이 됐다. 바로 두 달 전 해고자 김주중씨가 삶을 등졌고, 아직 복직하지 못한 해고자도 119명에 달하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사건이다. 이번 조사 결과 밝혀진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경찰의 불법·탈법 행위는 가히 충격적이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과잉진압을 청와대가 최종 승인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당시 옥쇄파업에 참가했던 해고노동자 김선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은 사측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강제진압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경찰관 50명으로 구성된 ‘인터넷 대응팀’은 온라인에 노조원들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댓글과 영상 등을 올리는 ‘댓글공작’까지 했다. 특히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무리한 진압작전은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이 상급자인 강희락 경찰청장의 반대를 무시하고 청와대 고용노동담당비서관과 직접 접촉해 승인받았다. 노사 자율로 해결해야 할 개별 사업장의 노동쟁의에 청와대가 개입한 것이다.

조사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가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강제조사권이 없다 보니 이 전 대통령은 물론 청와대 비서관도 조사하지 못해서다. 이 전 대통령이 쌍용차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한 정황이 확인된 만큼 향후 이 전 대통령의 연루 여부와 책임도 규명돼야 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8월29일 (출처:경향신문DB)

대테러 작전을 방불케 한 경찰의 강제진압 작전에서는 온갖 불법적 행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경찰청이 사용을 금지한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과 다목적발사기를 동원했다. 경찰이 헬기에서 2급 발암물질이 주성분인 최루액을 섞은 물 약 20만ℓ를 노조원들을 향해 뿌린 사실도 확인됐다. 이런 경찰의 폭력을 경험한 많은 쌍용차 노조원들은 아직까지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의 행위는 직권남용에 경찰관직무집행법,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에 해당된다. 공소시효가 지나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경찰은 조사위가 권고한 것처럼 폭력적 진압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쌍용차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16억69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취하해야 한다. 그것이 쌍용차 사태로 고통받고 희생된 노조원과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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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인공 임신중절(낙태) 수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시키고 자격정지 처분키로 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 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이하 직선제 산의회)는 28일 “모자보건법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인공 임신중절 외의 수술을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직선제 산의회는 “불법 낙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행정처분을 유예하라”고 촉구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 속에 여성의 생명·건강권만 볼모가 될 처지다.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수술 전면 거부 선언 기자회견'에서 김동석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는 지난 17일 ‘형법 제270조를 위반해 낙태하게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에 처한다’는 내용의 ‘의료관계 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을 공포·시행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복지부는 유사한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반발에 부딪혀 물러섰다. 그런데 2년이 지나 문재인 정부의 복지부에서 불법 낙태를 ‘진료 중 성범죄’와 같은 층위의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지금 왜 이런 조치가 필요한지 납득하기 어렵다. 최근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청원이 23만명을 넘겨 청와대 답변까지 나온 터다.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빠져 있다”며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임신중절 음성화 야기, 해외 원정 시술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산부인과 의사들의 수술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피해는 오롯이 여성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수술하는 병원은 줄어들고, 비용은 급등하고, 여성들은 해외로 나가거나 인터넷에서 불법 낙태약을 사먹게 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공 임신중절과 관련된 법과 정책은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장벽을 철폐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성 인권을 도외시한 채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한 복지부의 행태야말로 비도덕적이다. 그렇다고 수술 거부로 맞서는 일도 의료인다운 모습이라 할 수 없다. 복지부는 개정 규칙을 폐지하고, 의사들은 수술 거부 방침을 철회해야 한다. 헌재도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서두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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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의 리모컨을 이리저리 눌러대던 주말 저녁, 가수 양희은씨가 자신의 신곡 ‘늘 그대’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산다는 건 말야”로 시작하는 첫 소절에 끌려 유튜브에서 노래를 검색했다.

그런데 뮤직비디오보다 정작 더 집중해서 보게 된 것은, 작곡자인 후배 가수의 ‘지시’에 따라 양희은씨가 노래를 녹음하는 모습을 찍은 메이킹 필름이었다.

포크가수인 양씨에게 발라드를 부르는 일은 도전이었다. 한 소절 익히느라 1시간을 넘게 반복 연습한 끝에 잠시 쉬는 시간을 얻은 양씨는 한참 어린 후배들 앞에서 “창피하다”며 웃었다. 

“쉽지 않다는 걸 알았어. 재미있네. 이런 날도 있네. 칠순 되기 전에 한번 이렇게 호되게 레슨 받으면서 가야지.”

‘아침이슬’이라는 노래 하나만으로 이름 석 자를 한국 가요사에 남길 양씨가 후배 가수들과 함께 신곡을 발표하는 도전을 해온 게 다섯 해째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의 나이 66세. 전설이 된 그의 과거 노래들만큼 화제를 모으거나 유행하지 않았지만 그는 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출간된 산문집 <아흔 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강원도 양양에 사는 1922년생 이옥남 할머니의 일기 모음이다. 이 할머니가 ‘도라지 팔아서 산 공책’에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65세가 되던 1987년부터였다.

친정부모는 어린 이옥남 할머니에게 삼 삶고 김 매는 것은 가르쳤어도,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서 친정에 편지질이나 해서 부모 속상하게 한다며 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오빠 어깨 너머로 몰래 글을 배웠지만, 시부모에 남편까지 세상을 떠나고서야 책잡힐 두려움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자식들을 도시로 떠나 보내고 홀로 살며 ‘봄내 여름내 한 철 쉴 사이 없이 아침 다섯 시부터 일어나면 밭에 가서 한 포기 풀 뽑는 일이 첫인사’인 할머니는, 너무 재미있어서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늦게 배운 책 읽기에 빠진다. 

“사람마다 잘사는 사람도 많건만 고생으로 사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본다. 책 읽는 내가 살던 생활과 비슷해서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자꾸 앞을 가리기도 하고 너무 비극이라서 가슴이 답답할 지경이구나.”

1만5000원은 받아야 할 손수 만든 삼태기 3개를 7000원에 빼앗기다시피 팔고는 분해서 일기를 썼던 할머니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나자 유가족들이 “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라며 아껴 모은 10만원을 주저없이 성금으로 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 대면 멀쩡하지’라며 이웃의 고통을 품는다. 

두 어른의 삶이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나는 어떤 어른으로 늙어갈 것인가를 생각해서였다.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 익히는 것이 가능할까. 위축되지 않고 세상의 다른 삶으로까지 자신을 확장하는 너그러운 노년이 될까. 나이 먹으면 지혜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스스로의 삶으로 알게 되니, 잘 늙은 어른의 모습은 그 자체로 교과서가 된다.

지난해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지금 50대인 386세대가 노년이 될 때면, 한국 사회는 이미 고령을 넘어 초고령사회다. 

그러나 내가 속한 이 세대에게 노후 대책은 여전히 경제적인 의미로만 풀이될 뿐이다. 젊은 시절, 기득권과의 투쟁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던 이 세대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갖지 못했다. 어른 노릇을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386세대는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노인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어른 없이 노인만 있는 사회에 품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노인의 존재는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다.

작가 박완서씨는 “늙음조차도 어떻게 늙느냐에 따라 뒤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잘 늙어가는 일을 생각할 때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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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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