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여러분, 지금 전 세계에 나비가 날고 있어요. 이 늙은 나비도 날며 다녀요.” 2015년 8월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김복동 할머니는 단상에 올라 온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렇게 외쳤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과거 전쟁에서 저지른 그들의 죄악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향해 “강제로 연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일본군 성노예 범죄의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을 때였다. 그런 절통한 상황이었는데도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이겼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故 김복동 할머니를 추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2017년 5월부터 시작된 암투병 생활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상황에서도 희망은 꺾이지 않았고, “전쟁에서도 살아나왔는데, 이까짓 암을 못 이기겠느냐”며 활동을 계속하셨다. 수요시위에도 나와 청춘 세대들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격려하셨다. 투병생활로 목소리에 힘은 많이 빠졌지만 할머니를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서는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여러분도 희망을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소중한 말씀을 사람들의 가슴에 꽂아주셨다. 

2018년 일본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우리는 촛불로 정권을 바꿨어요. 여러분도 힘내서 꼭 일본 정부가 우리들이 죽기 전에 사죄하도록 힘써 주세요”라며 일본사회의 변화를 꿈꾸셨다.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힘껏 돕겠으니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힘써주세요”라며 총 1억여원의 장학금을 내놓으셨다.

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서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세계 각지의 무력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향해서는 힘내서 싸우라고 격려하며 김복동평화상을 만드시고,5000만원의 후원금을 내놓으셨다. 무력분쟁지역 인권운동가 양성에 할머니의 평화의 꿈을 실어 콩고로, 우간다로 날갯짓을 펼쳤다.“한국군에게 우리처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너무나 죄송합니다”라며 베트남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에 적극 참여해 오셨다.

죽을 때까지 인권운동가

1992년 3월에 부산 다대포에 ‘위안부’ 피해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곧바로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찾아뵈었고, 그때부터 인연이 닿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인권운동가로 함께 걷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유엔 세계인권대회 등 국제인권기구에 직접 참석하여 피해를 증언하셨다. 세계를 돌며 치열하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인권운동가로 살아오셨다. 1992년부터 시작된 수요시위에서는 아무리 더운 날도, 아무리 추운 날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은 빌딩숲을 넘어 하늘을 찔렀다.그 세월이 어언 27년. 67세에 시작한 활동은 94세가 되어도 계속됐다. 할머니의 꿈 ‘살아생전 일본 정부의 사죄’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내가 김복동이다

1월28일 오후 10시41분, 할머니는 고통스러웠던 암투병 생활을 마감하고 고단하고 억울한 숨을 거두셨다. 임종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시고, 당신이 못다 한 재일조선학교 지원도 부탁하셨다.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나쁜 놈들’이라며 분노를 표출하시며 사력을 다해 유언을 남기셨다. 죽을 때까지 인권운동가셨다.

이제 더 이상 수요시위에서 할머니의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을 느낄 수 없다. 더 이상 그렇게 분명하고 힘있게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피력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없다. 유엔인권기구의 최고수장을 만나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고 용감하게 ‘위안부’ 문제를, 전쟁 없는 세상을 이야기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할머니와 이별하는 슬픔이 너무 깊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희망을 잡고 산다’시던 할머니에게 정말 희망을 걸고 사는 여성들이 있다. 세계 각지의 전쟁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이 지난 27년 동안 할머니가 인권·평화 운동가로 걸어왔던 삶을 뒤따르며 외치고 있다. “김복동, 당신은 우리의 마마, 당신은 우리의 영웅, 우리의 희망.” 그리고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자신들이 ‘김복동’이라고 외치고 있다.

할머니의 치열했던 삶과 죽음에 맞닿게 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바로 ‘내가 김복동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김복동의 역사이고, 내가 김복동 할머니의 27년간의 인권·평화운동의 계승자다. 일본군 성노예제 범죄의 가해자인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 이 땅에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갈 김복동. 수천, 수만의 김복동이 다시 살아 할머니께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날,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오르는 김복동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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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일본군 전시 성폭력 생존자이자 인권·평화 운동가였던 김복동 선생께서 93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그 전쟁에 참전한 남자들은 그의 몸을 강탈하고 강간했다. 살아남아 되돌아온 고국의 독재자는 그의 거대한 상처와 폭력의 기억을 경제차관 몇 푼에 도매금으로 팔아넘겼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수년이 지나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문제는 30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았고, 대통령이 된 독재자의 딸은 이번에는 외교를 위해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했노라고 선언했다. 납득할 수 없었던 그는 계속해서 싸웠다. 그리고 끝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속에서 남은 이들에게 계속 싸워줄 것을 당부하며 숨을 거두었다. 역사의 버거운 상흔들이 고작 하나의 개인이었던 자신에게 몰려드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숨죽이고 가만히 있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여전히 세계 어딘가에서 자행되는 전쟁 성폭력을 규탄하고, 그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다.

국민대학교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세움' 학생들이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어쩌면 그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 폭력의 예사로움을, 광범위함을, 일반성을. 한국에만 국한시켜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전시 강간이 즐비하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계엄군에 의한 강간 및 성고문 등이 자행되었음이 드러났다. 국가 단위의 역사는 전쟁을 언제나 승리나 패배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심지어는 거기에서 어떤 명예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쟁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었을 이들에게 주어지는 승리나 명예는 없다. 반면 패배에 대한 대부분의 대가는 바로 이 무관한 자들이 치르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위안부’를 바라보기 두려워한 것은, 그것이 이 사회, 무엇보다도 남자들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이라는 이름의 흐릿한 필터를 들지 않으면 이 문제를 바라볼 수 없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상당부분 ‘약소국의 설움’에 머물러있다. ‘우리’가 힘이 약해서 ‘누이’들을 지키지 못했고, ‘우리’는 여전히 힘이 약해 강대국인 일본에 사과를 받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겪어서는 안될 일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과 분노가 아니라, 힘이 약한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울분이다.

이것은 민족의 설움 같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 일제강점기의 일본 군인만 저지르는 악행이 아니라, 지금도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성들의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고, 모든 배경과 이유는 뒤로 물러나야 마땅한 것이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비분강개하는 남성들의 수와 모든 강간과 성폭력이 그 자체로 악이고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남자들의 수는 왜 이렇게나 차이가 날까? 왜 일본이 저지르면 악이지만 동포가 저지르는 성폭력은 ‘꽃뱀일 수도 있는’ 문제일까?

때때로 나는 온라인상에 그 많은 남성들이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이 ‘정당한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아닌지 고민한다. 하지만 그 어떤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간일 수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에 정당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함이지, 처벌하는 자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폭력에 대한 반대가 없는 ‘미안함’은 그저 남자의 얼굴을 한 ‘민족’에 바치는, 그마저도 자기 자신을 위한 한 조각의 공명심일 뿐이다.

지하철에서 술에 취해 벌건 얼굴로 여자에게 술 먹이는 법을 떠벌이던 어떤 남자가 떠오른다. 김복동 선생이 일생을 걸쳐서 원한 것은 정의였다. 우리가 고인의 명복을 빌 수 있을 만큼은 정의로울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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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빈틈없이 문을 꼭 닫아야 안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다. 물리학에서도 열림과 닫힘, 안과 밖이 중요하다.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를 긋는 일이다. 경계의 안을 계 또는 시스템이라 하고, 그 밖은 환경 또는 주위라 한다. 어디까지를 계로 할지, 어디서부터 계를 둘러싼 환경으로 할지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물리학의 적용방식도 달라진다. 갈릴레오가 설명한 자유낙하운동에서 물체의 속도는 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 이 경우 물체 주변의 공기는 계가 아닌 환경이다. 주변 공기까지 포함한 계를 생각하면 속도 계산을 달리 해야 하고, 지구의 자전도 넣으면 계산은 또 달라진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하면 안된다”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또는 모형으로 생각하면, 결국 아인슈타인이 한 말은, 계와 환경을 가르는 경계긋기에 대한 조언이다. 너무 넓은 영역을 둘러싸도록 경계를 설정하면 문제의 이해나 해결이 어려워진다. 마치, 우리 은하의 모든 원자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역학 문제를 풀어 1m 높이에서 떨어뜨린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설명하려는 시도처럼 말이다. 경계를 너무 작게 그리면, 문제는 정말 쉬워지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마치, 중력조차도 계의 밖에 있어,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돌멩이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은 바로, 단순성을 추구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을 정도로 과도한 단순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치우친 경계(境界)긋기에 대한 경계(警戒)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주 전체를 계로 하면, 바깥은 없다. 우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해진 우주의 경계 너머의 존재는 우주 안의 어떤 것에도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우주 안쪽의 존재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가 밖에 있다면, 우주의 경계를 잘못 설정한 것일 뿐이다. 더 멀리, 더 멀리, 경계를 확장해 우주 밖 존재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도록 경계를 정하고 나면, 그 안의 모든 것이 우주다. 따라서, 우주가 하나라면 밖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질문은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다. 거기에 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요즘 다중우주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우주 말고도 다른 우주가 부지기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다중우주에 대한 책으로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권한다. 우주가 여럿이라면, 우리 우주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의미 있는 질문일 수 있다). 우주가 하나라면, 우주 전체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 꽉 닫혀 어느 것도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닫힌계고,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는 고립계다(에너지, 물질 등 그 어떤 것도 출입할 수 없는 계를 고립계, 물질은 통과할 수 없지만 에너지 전달은 가능한 것을 닫힌계라 한다).

당신의 몸은 닫힌계일까, 고립계일까, 아니면 열린계일까. 우리는 음식을 먹고 그 안 에너지를 써서 매일의 삶을 이어간다. 아침에 들은 소식을 점심때 친구에게 알려준다. 우리 몸은 당연히 열린계다. 열린계로는 에너지, 물질, 정보가 밖에서 들어올 수 있고, 일련의 변환과정을 거쳐 밖으로 나간다. 당신이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늘 벌어지는 일이다. 또, 아이들의 키가 자라고, 새로운 것을 배워 앎을 늘리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키와 함께 자란 아이 몸속 뼈는 밖에서 들어온 원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다시 배열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우리가 매일 살아있는 이유는 내부의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낮추기 때문이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은 밖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유입되는 음의 엔트로피로 가능한 자연현상이라 말한다. 내가 고립계면 난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열림은 생명의 필요조건이다.

계와 환경을 나누는 경계는 임의적이다. 경계의 안과 밖의 구분도 모호하다. 우주를 둘로 나눠 왼쪽을 계라 하고 오른쪽을 환경이라 할지, 거꾸로 오른쪽을 계라 하고 왼쪽을 환경이라 할지는 관심을 어느 쪽에 두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조선시대 낡은 구습 때문이지만, 둘로 나누고 그중 어느 하나를 계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자연에 없다. 날아오는 야구공을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맞출 때, 야구방망이에 야구공은 경계의 밖이고, 야구공에는 야구방망이가 밖이다.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싶은지, 야구공에 맞은 방망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싶은지에 따라, 계와 환경을 얼마든지 거꾸로 설정할 수 있다. 물리학뿐 아니다. 우리 집 귀여운 강아지 콩이는 내게는 환경에 속하지만, 콩이라는 이름의 열린계에서 나는 강아지의 환경의 한 부분을 이룬다. 자연의 눈앞에 둘 중 누가 계고 누가 환경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자연은 경계를 알지 못한다. 예외 없이 하나하나 제각각 열린계인 지구 위 모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생명의 환경이 된다. 우리는 섬이 아니다. 연결된 서로의 환경이다.

마음에도 문이 있다. 열린 이의 마음은 밖의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내부 상태를 바꾸고, 꽉 막힌 닫힌 이의 마음에는 밖을 향한 문이 없다. 젊어서 열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배웠더라도, 나이 들어 밖의 변화에 눈감아 마음의 문을 닫으면, “왕년에는 말이지”를 반복하는 꽉 막힌 꼰대가 된다. 꼰대 고립계의 엔트로피 증가에 맞서는 방법은 딱 하나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다. 닫힌 문으로 안의 공기가 탁해졌다면, 문을 활짝 열어젖힐 일이다.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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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항을 겪던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상이 마침내 타결됐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는 31일 광주시청에서 협약 조인식을 갖고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착수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지난해 12월 타결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던 협상을 다시 살려 합의에 이른 것이다. 이번 타결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 제시된 지 4년7개월 만이고, 현대차가 신설법인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지 7개월 만이다. 논란과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30일 오전 광주 북구 임동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에서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이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왼쪽)과 최상준 광주경총 회장(오른쪽)의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형 일자리’는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거·문화·복지·보육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저임금을 보전한다는 게 골자다. 이러한 취지 아래 광주시와 현대차는 스포츠 유틸리티자동차(SUV)를 연간 10만대 생산하는 민관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하고 협상을 벌여왔다. 이 사업은 직간접 일자리 1만1000개의 창출효과가 있어 노동시장 양극화와 지역경기 침체를 해소할 수 있는 새 일자리 모델로 주목을 받아왔다.

이용섭 광주시장(왼쪽)이 2018년 12월 5일 광주시청 회의실에서 진행된 ‘광주형 일자리’ 잠정 합의안 추인 여부를 심의하는 노·사·민·정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주형 일자리의 또 다른 이름은 노사상생형 일자리다.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 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이라는 4대 운영원칙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노동계는 광주형 일자리가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시켜 노동조건을 하향 평준화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해왔다. 지난해 12월 협약 조인식 직전에 협상이 무산된 것은 ‘차량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노사협의회의 의결 사항이 유효하게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노동계는 이를 ‘5년간 단체협약 유예 규정’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협상에서는 ‘노사협의회 의결 사항이 노동자의 단체교섭권과 쟁의권 등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을 붙여 합의를 일궈냈다. 타협과 양보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협의회를 통해 논의돼 왔으나,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은 협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오히려 광주형 일자리가 자동차 중복투자이며 기존 노동자의 임금을 떨어뜨릴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민주노총 산하 현대·기아차 노조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광주에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도 생산 물량 확보, 경영책임 문제, 자본금 충당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그러나 힘들어도 시도해봄 직한 프로젝트이다.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노사상생을 위한 새로운 실험에 민주노총은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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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복직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일부가 많게는 첫 급여의 절반가량을 가압류당했다고 한다. 2009년 ‘옥쇄파업’ 당시 경찰이 장비파손 등을 이유로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다. 힘겹게 돌아온 일터에서, 그것도 설 명절을 앞두고 받은 첫 월급이 반 토막 난 것이다.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노조원과 쌍용차범대위, 국가손배대응모임 회원들이 30일 서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복직 한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가압류를 규탄하고, 국가 손해배상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10년간 참담한 시간을 보냈다. 일방적 구조조정에 파업·농성으로 맞서다 회사 측의 직장폐쇄와 국가의 무력진압으로 1700여명은 회사를 떠나야 했고, 165명은 해고됐으며, 30명은 극단적 선택이나 병으로 사망했다. 파업이 끝난 뒤에도 국가와 쌍용차 사측은 수십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 및 가압류로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김승섭 고려대 교수팀이 손배·가압류를 당한 노동자 236명의 심리·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남성 노동자 10명 중 3명이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또 전체의 3%가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고 응답했다. 2003년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와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김주익씨에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김주중씨가 손배·가압류에 따른 고통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노동자에 대한 손배·가압류는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손발을 묶으려는 ‘전략적 봉쇄소송’과 다름없다. 경제·심리적으로 위축시켜 또 다른 비판이나 시위를 막아보려는 ‘겁주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29개주는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법을 제정했고, 스웨덴은 이를 헌법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국제노동기구도 2017년 정부에 파업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라고 권고했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손배·가압류 자체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더욱이 “쌍용차 공권력 투입은 정당하지 않다”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결론도 나와 있지 않은가.

쌍용차 복직자들에 대한 가압류 해제 여부는 검찰의 손에 달려 있다. 경찰은 이미 쌍용차 복직자들에 대한 가압류를 풀어달라는 의견서를 검찰에 전달했다. 쌍용차 사측은 오래전에 소송 및 가압류를 취소했다. 그런데도 국가가 이를 계속 고집한다면 노조활동 방해를 일삼은 ‘창조컨설팅’과 뭐가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제라도 손배·가압류로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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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30일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댓글조작을 수동적으로 보고받은 데서 나아가 작업할 기사 목록 등을 주고받으며 지배적으로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함께 기소된 드루킹 일당도 줄줄이 유죄가 인정됐다. 아직 1심 판결이지만 댓글조작 공모 혐의가 사실이라고 법원은 본 것이다. 선고 뒤 김 지사는 “진실을 외면한 재판부 결정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며 여권의 차기 주자로까지 꼽혔던 그의 구치소행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재판의 쟁점은 김 지사가 드루킹 김동원씨 일당의 댓글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여부였다. 김 지사는 강하게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김 지사가 댓글조작을 알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뿐만 아니라 6·13 지방선거 때까지 댓글조작을 계속하는 대가로 김씨가 추천한 사람을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에 앉히겠다고 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이 기소한 혐의 대부분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가 진술과 물증의 신빙성을 그만큼 높게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드루킹 사건은 민간차원에서 댓글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정보기관이나 군이 직접 나선 과거 정권 사건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러나 여론을 조작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행위는 민관을 불문하고 중대범죄다. 김 지사의 유죄 선고로 드루킹 일당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둘러싼 의혹은 다시 불거지게 됐다.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이에 관여했거나 알았다면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자칫 당선의 정당성까지 흔들릴 수 있다.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고 해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철저히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선고 이후 “사법신뢰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판결”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집권 여당이라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법원을 모독하기 앞서 이 사건을 처음부터 엄격하게 대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대선 댓글조작의 ‘수혜자’로 지목된 이상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은 2016년 홍준표 경남지사가 1심 유죄를 받을 당시 “지사직 즉각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그 주장이 지금 김 지사에게 똑같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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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1978년 11월9일자 ‘독립문과 민족정신’ 제하의 사설에서 독립문 이전에 반대한 바 있다. 치욕의 상징인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운 독립문을 옮기겠다는 서울시를 질타한 것이다.

영은문은 조선시대 태종 때인 1407년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세운 모화루(모화관) 앞에 만든 홍살문이 전신이다. 영조문이라 부르다 중종 때 명나라 사신 설정총이 영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명나라를 상전으로 받들라는 사대주의의 표현이다. 얼마나 오만방자한, 그러면서도 모욕적인 이름인가. 조선의 왕들은 명과 청의 사신들이 천자칙서를 가지고 오면 이 문까지 나가 큰절을 하고 맞아들였다고 한다. 500년간 이어져온 수치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독립협회를 조직한 서재필은 1898년 사재를 털고 기금을 모아 영은문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자주의식과 독립정신을 새기겠다는 뜻에서다. 지금의 독립문 사거리 한가운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렇게 세운 독립문은 개발논리에 밀려 쫓겨났다. 서울시가 독립문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가도록 도로계획을 확정하면서 이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독립문은 서대문형무소 자리에 장식물처럼 서 있다. 당연히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은 훼손됐다. ‘여기가 치욕의 장소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재구조화란 어려운 용어를 썼지만 개발시대 논리에 포장지만 바꾼 것이다. 서울시는 재구조화의 목표를 세 가지라고 했다. 600년의 역사성,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시민성’, 지상·지하를 잇는 ‘보행성’의 계승·회복이다. 광장 확장, 역사광장 조성, 충무공 동상 이전, 대규모 지하도로 조성, 광역철도역 설치 등이 주요 사업이다.

서울시는 역사성을 살리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월대와 해태상을 세우겠다고 했다. 역사는 만들어진 것도 있고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촛불이 타올랐던 광화문광장은 역사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정의를 외쳤다. 그런데 서울시는 촛불정신을 살리겠다면서 역사의 현장을 부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심장이 뛰는 생명체를 죽여 박제로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박물관을 세우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세종로 한가운데 서 있는 충무공 동상만큼 풍상을 겪은 기념물도 많지 않다. 충무공 동상은 1968년 4월27일 건립됐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라든가, 동상의 형태나 건립 장소가 잘못됐다는 논란이 일었다. 동상의 얼굴이나 칼을 쥔 모습, 옷의 길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또한 ‘지명에 맞게 동상을 충무로로 옮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동상 재건립은 “차라리 그 돈을 서민들을 위해 사용하자”는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이전 문제도 1994년 서울시 문화재위원들이 “충무공이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고 동상 자체가 1968년에 세워져 이미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못 박으면서 마무리됐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말하면서 1968년 세워진 충무공 동상 이전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 이전에는 반대했다. 충무공 동상이 을지면옥만도 못하단 말인가.

서울시는 걷기 좋은 환경을 거론하면서 광화문 인근에 대규모 지하도로를 만들겠다고 했다. 춥거나 비가 올 때 이동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에 광역철도까지 들어오도록 하겠다고 한다. 서울시민은 굴속에 사는 동물이나, 혼잡한 도로에서 이리저리 차이는 짐짝이 아니다. 지상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과 산을 조망하며 즐겁게 거닐 수 있는 게 ‘걷기 좋은 서울’이다.

광화문광장은 2008년 대공사를 거쳐 재조성됐다. 여론조사까지 벌여 광장을 중앙에 조성했다. 그런데 불과 10년을 갓 넘어 서울시는 다시 만들겠다고 나섰다. 공사비는 1040억원이 넘는다. ‘돈이 썩어나냐’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도 박원순 시장은 밀어붙이겠다고 한다. 공사를 끝마치겠다는 목표는 2021년이다. 차기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다. 우연치고는 너무 작위적이다.

40년 전 독립문 이전을 반대했던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숱한 시행착오로 예산 낭비와 시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해 왔다. 그러면서도 낭비와 손실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철저한 책임추궁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서울시의 난맥상은 계속될 것이고 문화재를 깔보고 덤비는 작태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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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온다네. 들 너머 뽀얀 논밭에도 온다네. 아지랑이 속삭이네. 봄이 찾아온다고.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하연 새 옷 입고 분홍신 갈아 신고….” 산에는 분홍빛깔 진달래가 움을 틔우거나 기지개를 켜고, 성질 급한 매화 무당은 벌써 방울을 쩔렁이면서 굿판을 벌일 태세다. 어차피 오실 손님이기에 어서 오시라 반기련다. 삼한사온은 옛날 얘기고 이제는 삼한사미라던가. 꼬박 사흘 동안 미세먼지로 극성. 봄꽃이 출렁이는 분홍빛깔 산허리도 먼지에 가려 안 보이고, 아지랑이도 미세먼지에 가려질 판. 어서 빨리 대안에너지, 태양에너지로 가뿐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흙먼지가 일상이었던 지난 시절. 비포장도로뿐인 시골에서 태어나 비포장 마당에서 흙놀이하며 자랐지. 바지 밑단에는 흙먼지가 한 움큼씩 담겨서 털지 않고 방에 들어왔다간 이불도 흙범벅. 시멘트 가루를 먹는지 미숫가루를 먹는지 모를 정도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때는 시멘트 먼지가 동네에 자욱했다. 지붕으로 썼던 석면 슬레이트는 아무 데나 버려졌다. 거기다가 돼지고기를 올려서 구워먹던 사람들은 암에 안 걸린 게 기적. 버스가 한번 지나가면 온 동네가 사막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먼지에 휩싸였다. 이맘때면 들불을 놓는데, 논밭의 비닐을 태우자 시꺼먼 연기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공장 굴뚝처럼 연기가 도처에서 뿜어져 올라왔다. 안전하고 청명한 세월이 얼마나 되었던가. 미세먼지 폭풍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틈새시장이라고 공기청정기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들었다. 나도 누가 차에다가 놓고 쓰라며 작은 공기청정기를 보내왔는데, 웅웅거리는 소리가 싫어 쓰지 않고 있다. 진짜 공기청정기는 이 나쁜 먼지들을 말없이 다 들이마시는 저 숲속의 나무들이겠다. 나무에 미안하고 감사하다.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줄이는 방법은 전기며 석유, 석탄, 이런 기존의 에너지를 아껴 쓰고 줄이는 길뿐이다. 숲의 나무들 말고도 공기청정기 같은 사람들이 많아져야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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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발표 내용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뭘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었다. 세상에, 고향 촌구석에 고속전철역이라니! 9년 뒤면 설, 추석에 편히 갈 수 있다며 설레야 하나. 한편으론 씁쓸하다. 이게 필요한 짓인가 싶어서다.

자, 대한민국 지도를 펴보자. 당신이 대통령, 장관이라면 어디에다 뭘 만들어주겠는가. 일차적 기준점은 비용·편익이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그중에서도 강남권에 뭐든 깔아야 손해를 안 본다. 지방도 대도시 중심으로 엇비슷하다.

왜냐. 가장 욕을 덜 먹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는 사람이 가장 많다. 비용·편익이 높게 나온다. 이렇게 개발해온 게 그동안의 관성이다. 이런 현실에서 영남 골짜기를 관통하는 고속철이라니, 대단한 정치적 결단이다. 균형발전을 향한 원대한 기러기, 고니의 뜻을 어찌 제비, 참새가 알겠냐마는.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1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결국 문재인 정부도 “구시대적 토건공화국”이니 하는 비판에 맞닥뜨렸다.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일단 경제가 안 좋다고들 난리니 몸이 달았다. 사실 지금 경제 문제라는 게 굉장히 구조적인 거란 사실은 솔직히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재인 정부 잘못만이 아니다. 반도체 고점론이 나오지만 워낙 ‘비정상적 호황’이었다. 위기론에 떠밀려 삼성에 너무 끌려가지 마라. 자동차 산업이 힘든다는 것 또한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 주 52시간 논란의 근원도 실은 따로 있다. 과도한 자영업 비중의 구조적 문제 탓이다. 마치 이런 일들 때문에 경제를 망친 정부라는 ‘누명’을 자처하고, 왼쪽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하려는 게 아닌가.

요새 정부·여당 쪽 인사들 움직임을 보면 심히 걱정스럽다. 툭하면 “우리는 반기업이 아니라 친기업”이란 말을 달고 산다. 즉 재벌개혁 하랬더니 그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모양새다. 우리는 기억한다. 참여정부는 관료와 재벌에 포섭돼 뜻하던 바를 채 이루지 못했다고.

복지체계를 구축하고 교육을 개혁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로 대한민국호 방향키를 틀자는 게 2년 전 겨울에 터져나온 서민대중의 절규다. 현 정부 들어 집값이 얼마나 뛰었는가. 근래 좀 가라앉았다고 안도하고, 성장률 숫자 올리겠다고 땅부터 파겠단다. 성장률 3%든,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든, 누구를 위한 숫자인가.

국토에 삽질을 해대면 당분간 일자리가 늘고 성장률도 올라갈 것이다. 그걸로 총선과 대선을 유리하게 치를 수도 있다. 4대강 사업의 예타 면제 명분도 균형발전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쓸 종잣돈을 4대강에 쏟아부었다”며 비판해온 세력이 누구더라. 이런 식이면 유권자들 선택은 늘 빤하다. 그냥 자기 지역에 도로, 철도 많이 깔아주겠다는 놈 찍을 뿐이다. 진보·보수가 무슨 대수냐.

한번 짚어보자. 이른바 7호선의 양주신도시 연장이 왜 필요한가. 광역고속전철인 GTX는 3개나 깔아야 하나. 원인은 베드타운을 너무 크게, 외곽에 지어놓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지역균형발전은 안 해놓은 채 잠자는 도시만 잔뜩 만든다. 그러곤 ‘균형발전’이란 억지논리를 내세워 도로, 철도를 까는 짓거리를 해온 게 역대 정부다. 예컨대 GTX-B 노선을 깔 게 아니라 인천 남동공단이나 마석 등지에 판교 2테크노밸리 같은 걸 만들어야지. 현실은? 또 GTX 공약을 총선, 대선용으로 우려먹을 일만 남았다. 유권자에겐 ‘희망고문’의 시작이다. ‘이부망천’이란 말이 다시 나돌도록 시민들 판단을 흐리는 정치다.

겉은 생채기가 나도 금방 낫는다. 그러나 속이 허물어지면 간단찮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번 예타 면제는 친기업 행보와 더불어 문재인 정부가 루비콘강을 건너는 신호로 보는 이들이 적잖다. 몇 발짝 더 내디디면 돌아나오지 못할 게다. 그 후과는 누구의 몫인가.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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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고인은 전 세계 곳곳에서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써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고취하고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자들의 초국적 연대를 이끌어낸 여성인권·평화운동가였다. 위안부 문제 다큐멘터리 &lt;낮은 목소리&gt;의 변영주 감독이 추모했듯이 “세상 모든 피해 여성의 깃발”이었다. 고인이 끝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것이 애통할 따름이다.

14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된 고인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고초를 겪었다. 여성인권운동가의 길에 들어선 것은 1992년이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 등에 참석하며 증언을 이어갔다. 2012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전시 성폭력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국경없는기자회가 선정한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됐다. 고인은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 공개 증언한 고 김학순 할머니, 미국 하원 ‘위안부 결의안’ 공청회에서 연설한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피해자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상징이었다.

고인은 이승을 떠나는 순간까지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다고 한다. 임종을 지킨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는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유일하게 알아들은 말은 ‘일본에 대한 분노’라는 한마디였다”고 전했다. 29일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한 분이 타계하면서 남은 피해자는 이제 23명으로 줄었다. 생존자들도 모두 고령이다. 일본은 더 늦기 전에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를 위해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에 나서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은 각종 기록으로 입증된 사안이다. 역사의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한·일 양국관계의 미래는 과거에 대한 진정한 화해가 전제될 때만 기약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정부도 일본의 몰역사적 행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국이 주축이 되어 다른 피해국가들과 연대해 일본의 사죄를 반드시 받아내야 한다. 관련 기록물에 대한 체계적 조사와 연구도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강인하고 용감했던 ‘역사의 증언자’ 김복동 할머니를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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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가 또다시 무산됐다. 지난해 10월 대의원 정족수 미달로 경사노위 참여에 실패한 이후 두번째다. 민주노총은 지난 28일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으나 참여 안건을 상정도 하지 못한 채 폐회했다. 노동계의 중요한 축인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되면서 사회적 대화기구의 온전한 가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대화의 길을 스스로 차단한 민주노총의 행보가 안타깝다.

당초 민주노총 집행부는 경사노위 참여 방침을 대의원대회에서 추인받으려 했으나 내부 반발로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민주노총은 대화기구 참여를 통한 협상과 조직 투쟁을 병행하겠다는 전략이었지만 구성원 설득에 실패하면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경사노위 참여 반대파들은 민주노총이 ‘정부의 들러리’가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방증이다. 대의원대회에서는 노동 현안에 대한 여러 의견과 해법이 제시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로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 복귀가 무산되면서 파업이나 집회와 같은 투쟁 전략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다고 정부와의 대화 노력을 포기하면 안된다. 자칫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줄곧 민주노총의 대화기구 참여를 독려해왔다. 지난 25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민주노총의 대화 참여를 중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복귀 무산은 당혹스러운 소식일 수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경사노위를 통해 탄력근로제 확대, 최저임금제 이원화 등을 밀어붙이려는 것 아니냐며 의심한다. 문재인 정부가 경기 침체를 빌미로 재벌개혁과 노동존중 정책에서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결정은 정부의 노동개혁 후퇴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화를 요구하기에 앞서 얼마나 대화의 장을 조성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무산에 상관없이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불참한 채로 경사노위가 진행된다면 정부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정해놓은 뒤 경사노위를 거쳤다고 노동계를 압박한다면, 이것은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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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추운 밤, 처진 어깨로 귀가한 주인공이 마들렌 과자 한 쪽을 홍차에 적셔 먹는다. 순간 그는 어릴 적 일요일 아침 고모할머니가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넣어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의 미각을 떠올린다. 동시에 당시 광장이며 오솔길, 마을과 정원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찻잔에서 솟아남을 느낀다.

이제 너무 유명해진 이 장면은 여러 저술에서 언급되었고, 그중 하나가 오카 마리의 연구서 &lt;기억 서사&gt;이다. 책의 저자는 마트에서 사온 서양배 주스를 컵에 따라 한 모금 넘기는 순간, 오래전 이집트 유학 당시 하숙집 아주머니가 후식으로 내어주던 서양배의 미각과 더불어 한 시절이 또렷이 복각되던 경험에 관해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일화가 마들렌 예시보다 더 와 닿았는데, 바로 서양배라는 소재 때문이었다.

대학원 시절, 같은 연구실 선배가 구동독 지역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재학시기가 겹치진 않았으나, ‘학부생이 올려다본 똑똑한 조교 오빠’ 같던 그가 사형(師兄)임이 남몰래 자랑스러웠다. 사람이 멋있으니 낯선 구동독 지역인 것도 어딘가 근사하게 느껴졌다. 생경한 이름의 그 도시로 가면 다들 선배처럼 낡은 외투 걸치고, 까슬까슬 야윈 얼굴로 소리 없이 ‘파’ 웃으며 맥주잔을 기울일 것 같았다.

언젠가 필요한 국내논문자료가 있다고 하셔서 구해 보냈더니 답메일에 ‘배 삼형제’란 제목의 사진이 첨부되어 왔다. 날마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양배 몇 알을 사서, 저녁식사 후 룰루랄라 깎아 먹는다 하셨다. “그게 요즘 내 낙이다”라면서. 담백한 그 어조도 괜히 나는 좋았다. 한참 지나 다른 나라에서 맛본 서양배는 단감과 무를 섞은 듯 묘한 식감에 달지도 새콤하지도 않았지만, 종종 사서 깎아 먹었다. 그때마다 상상 속 구동독 지역 도서관과 과일가게, 고단한 얼굴로 과일 깎는 선배가 눈앞에 그려졌다. 서양배는 통상적으로 영국배(English pear)라 불리고 내가 그걸 처음 먹어본 나라는 미국이었지만, 나에겐 ‘독일’이란 단어와 유사한 온도와 빛깔을 지닌 낱말이 되었다.

여러 해 흘러, 바로 그 독일의 한 대학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게 되었다. 도움 주신 선생님께 출국인사 드릴 겸 연구실로 찾아뵈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하던 그분이 문득 생각난 듯 하얀 아스파라거스 시즌이 곧 시작될 텐데 대단히 맛난 계절채소이니 반드시 먹어보라 하셨다. 독일어로 슈파겔이라 부른단다. “이소영 선생 요리 실력은 안 봐도 짐작되지만 그건 물에 데치기만 하면 되니 괜찮아” 하시면서 말이다.

도착한 첫 주에 장을 보러 가니 과연 슈파겔(Spargel)이라 적힌 푯말 아래 ‘마’처럼 생긴 하얀 채소들이 쌓여 있었다. 한 봉지 사서 데치고 얇은 껍질을 벗겨 속살을 베어 물었더니, 파 줄기 맛이었다. 소금 치고 버터 조각 녹여 넣어도 대파의 흰색 줄기 맛만 계속 났다. 그 채소와 황금궁합이라던 어떤 소스를 곁들이니 이번엔 느끼한 파 줄기 맛이 났다.

그럼에도 시장 갈 때마다 장바구니에 담곤 했다. 외워둔 강의안을 잊어버려 정전 같은 정적이 흘렀던 첫수업 날에, “시신을 염하다”를 ‘솔트’란 단어로 표현해버렸던 부끄러운 날에, 수업준비하다 지쳐 뒷산 양떼 사이에서 울었던 날에 늦은 밤 철 이른 슈파겔을 먹었다. 베를린필 연주회 보러가고자 푼푼이 모아둔 돈을 털어 한국으로 면접 다녀온 밤과, 그로부터 일주일 후 지구 저편에서 “축하합니다”로 시작되는 메시지를 받고 해처럼 웃었던 이른 새벽, 이번에는 통통해진 제철 슈파겔을 먹었다. 그리고 학생들이 주먹으로 책상 탕탕 두드리는 게르만식 박수를 쳐준 종강일 저녁, 마침내 삭아서 보드라워진 끝물 슈파겔을 먹었다.  

타인에게 선물한 음악은 상대로 하여금 날 기억하게 만드는 반면 책은 내가 상대를 기억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어느 작가가 썼다지만, 기억은 매개체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리 남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좋은 사람과 고마운 사람은 음악이나 책뿐만 아니라 과일이나 채소 안에서도 아련한 한 시절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솟아나게 할 수 있다. 내게 서양배와 하얀 아스파라거스가 그랬던 것처럼.

<이소영 |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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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로 갈거나/ 가서는 허기져 콧노래나 부를가나/ 이왕 억울한 판에야/ 우리나라보다 더 억울한 일을/ 뼈에 차도록 당하고 살거나…”(박재삼 ‘서시’) 1950~1960년대 희망이라고는 찾기 힘든 절대적 절망에 빠져 있는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을 담은 시다. “이 나라에 사는 것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차라리 남의 나라에 가서, 그것도 이 나라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억울한 일이 벌어지는 그런 나라에 가서, 억울함이 더 골수에 차고 차도록 살아보려 했을까”(송복 &lt;특혜와 책임&gt;). 좌절은 이 지옥 같은 땅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깊어진다.

‘헬조선’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지옥(hell)과도 같다는 뼈아픈 자조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인간관계도, 꿈도 포기해야만 하는 젊은이들이 희망 없는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울분과 냉소의 언어다. 현실은 암울하고 미래 비전도 안 보이는 이 사회가 ‘지옥 같은 계급사회’라는 발화다. 여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식의 위로나, “네가 ‘죽도록 노오력’하지 않았다”는 훈계는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헬조선’ 담론이 확산되던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무역진흥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해결이 얼마나 화급한 일이냐, 그런데 국내에만 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대한민국의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말할 수 있도록)”라고 외쳤다.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청년층의 고용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는데 정부는 그 모든 탓을 청년들에게 돌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청년들의 비분은 “니가 가라! 중동”이란 말로 집약됐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장이 강연에서 “젊은이들은 여기 앉아서 취직 안된다고 ‘헬조선’이라고 하지 말고, 신남방 국가를 가면 ‘해피조선’”이라고 말했다. 취업난도, 헬조선도 진취적이지 못한 청년들 탓으로 돌린 꼴이다. 청년들에게 ‘중동 가라’고 다그치던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재인 정부의 ‘나라다운 나라’가 젊은이들이 ‘탈조선’하는 나라인가. 청년들이 아세안을 안 가봐서 ‘헬조선’이란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요. 그러니 청년들이 이리 분노하는 것이다. “니가 가라! 아세안.”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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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좋아하는 지식인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이른바 최애(最愛)하는 지식인은 역사학자 토니 주트(Tony Judt)다. 영국에서 태어난 유대인 주트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했고 미국 뉴욕대학에서 가르쳤다. 그는 전후 유럽에 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되는 &lt;포스트 워: 1945~2005&gt; 등의 저작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주트는 학문적 탐구는 물론 대중적 계몽을 중시했다. 시대의 불의에 맞서 공론장에서 사회 정의를 위한 발언들을 서슴지 않았다. ‘공적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지성사적 위상은 독특하다. 그는 반신자유주의자이자 반공산주의자였다. 지난 20세기 후반 서구 신자유주의가 낳은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격렬히 비판했던 동시에, 동구 공산주의가 가져온 인간적 자유와 민주적 공론장의 훼손 역시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조건 없이 사랑했던 ‘완고한 사회민주주의자’였다.

주트가 남긴 저작 가운데 가장 마음 시린 저작은 &lt;20세기를 생각한다&gt;(2012)다. 자신의 명성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는 루게릭병에 걸렸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젊은 동료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와 대화를 나누어 책으로 내놓은 게 이 저작이다. 이 책은 격동의 20세기를 가로질러온 주트의 역사학적·윤리학적 자서전이다.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그리고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치열하게 싸우고 숨 가쁘게 이어진 역사가 지난 20세기였다는 게 주트의 진단이다. 이 저작에서 그가 도달한 결론은 명쾌하다.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의 삶을 위해선 정치가 중요하고, 그 정치는 사회민주주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누구나 동의할 필요는 없다. 주트의 기대는 ‘소망적 사고’에 가깝다. 서구의 경우 현재 정작 목도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위기와 좌우를 막론한 포퓰리즘의 발흥이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21세기에 대한 주트의 관찰이다. “우리는 공포의 시대에 다시 진입했다. (…) 성공적인 직업 경력을 쌓은 뒤 은퇴하여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의 확실성은 사라졌다.” 주트는 21세기가 열린 후 등장한 미지의 이방인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미지의 미래에 대한 공포를 환기시킨다. 정부를 위시해 그 누구도 더 이상 인류의 개인적 행복을 보호하기 어려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주트의 전망이다.

한 역사가에 대한 개인적 추억이 다소 길어졌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주트의 전망이 21세기가 진행돼 오면서 더욱 강화돼 왔다는 점이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정치적 극단주의의 부상, 혐오와 차별 문화의 확산, 그리고 공론장을 뒤흔드는 가짜 뉴스의 범람이 21세기 지구적 풍경의 현주소이다. 이 현상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바로 ‘공포’다. 문제는 이 공포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안은 정치가 정작 그 공포를 선동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더욱 곤경에 빠트리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지구적 현실은 우리 시대를 더욱 비관적으로 독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돌아보면, 1919년 3·1운동에서 시작한 지난 100년 우리나라 현대사는 ‘한국적 시간’과 ‘지구적 시간’의 격차를 줄여온 역사였다. 우리에게 중심을 이룬 한국적 변동의 시간과 변방에 놓인 지구적 변동의 시간이 가까이 다가와 중첩됐고, 1997년 외환위기를 거쳐 21세기에 들어와선 그 두 시간 사이의 거리가 이젠 사라졌다. 당장 2008년 금융위기, 미·중의 갈등과 협력, 그리고 ‘미투 현상’에서 볼 수 있듯, ‘지구적 현상’은 곧 ‘한국적 현상’이었다. 사회변동에서 안과 밖의 경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2019년 올해 우리 사회에 부여된 과제 중 하나는 과거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미래 100년의 전망을 모색하는 데 있다. 앞서 말했듯, 불평등, 극단주의, 혐오와 차별, 그리고 위기의 공론장은 세계사회의 현재이자 한국사회의 현재다. 지난 100년 ‘압축 발전’의 결과 우리 사회에선 이 현상들이 더욱 또렷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새로운 미래 100년의 설계에는 이 문제들에 대한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한 해법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이제 다음주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으로 시작해 지난 100년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행사들이 잇달아 열린다. 우리 사회를 연구해온 사회학자로서 나는 올해가 ‘기억에서 미래로’ 가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길 소망한다. 국가적 차원은 물론 지구적 차원을 시야에 넣은 미래 100년의 비전 및 전략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풍성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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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혁신성장의 방안 가운데 하나로 ‘규제 샌드 박스’를 언급했을 때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작년 3월에 정부 혁신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어려운 행정용어 쓰지 말자셨던 분이 왜 이러시나….

 ‘샌드 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 상자인데, 불 났을 때 불 끄라고 또는 눈 많이 왔을 때 길에 뿌리라고 모래 담아둔 상자가 아니다.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래 놀이터에서 따온 말이란다. ‘규제 샌드 박스’는 ‘Regulatory sand box’의 머리만 번역한 말로, 신산업·신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줘 자유로운 시도를 북돋는 제도란다.

나도 모르는 말인지라 여기저기서 얻어듣고야 이 말의 의미를 겨우 알아챘다. 관료들은 마땅한 우리말이 없어서 샌드 박스를 그대로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하겠지만, 그럼 그냥 ‘모래 상자, 모래판’이라고 하면 안될 까닭이 있을까? 어차피 놀이터 상황에 비유해 나온 말이므로 그런 맥락을 설명해주지 않는 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다. 기왕 설명할 거라면 우리말로 이름 붙이는 게 옳고, 좀 더 잘 다가오는 새말을 만든다면 더욱 좋다.

영화 &lt;말모이&gt;에서 김판수는 ‘도시락’ 같은 우리말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는 구자영에게 도시락이나 벤또나 배만 부르면 되지 않냐고 맞받아친다. 목적의 맥락에서 보자면 벤또와 도시락은 아무 차이가 없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지 않고 ‘코리아’라고 부른다 하여 면적과 날씨가 바뀌지 않는 것과 같다. ‘싱크홀’이나 ‘땅꺼짐’이나, ‘리스크’나 ‘위험’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 말이다.

그러나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을까? 누가 뭐래도 일제강점기에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쓰게 한 건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악랄한 시도였다. 우리 민족은 살아남았으니 세계화 시대에 외국어 좀 쓰는 거 무어 그리 큰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 논리가 ‘실용’을 가장해 친일을 서슴지 않던 논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 정부에서 우리말 대신 영어를 남용하는 일은 민족을 분열시키는 짓이다. 영어를 알고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1등 국민과 영어를 몰라 알 권리를 침해당해도 꾹꾹 참아야 하는 2등 국민으로 세상을 가르고 장벽을 설치하는 짓이다.

문 대통령은 ‘규제 샌드 박스’라는 방안을 들고 온 실무 책임자에게 물어봤을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고. 그리고 설명을 들은 뒤에는 한 번 더 물어봤어야 했다. 이걸 쉽게 우리말로 바꿀 쑤는 없냐고. 그걸 ‘규제 임시 해제’로 하든 ‘규제 모래 상자’로 하든 그게 ‘규제 샌드 박스’보다 어려울 리는 없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 케어,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의 제로페이, 그리고 문 대통령의 규제 샌드 박스까지 모두 ‘벤또’ 같은 말이다. 이래서야 경제정책에 쏟는 고민과 노력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이건범 | 한글문화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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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의 정치 무관심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평소 정치에 참여하는 비율은 물론이고, 가장 소극적인 정치참여인 투표에서도 20대의 무관심은 두드러졌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거의 모든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이 가장 낮았으니 말이다. 원래 선거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을 뽑는 일이기도 하니,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든 한 요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표 불참을 이렇게 변명하곤 했다. “바빠서 못했다.” “그놈이 그놈이다.” “누굴 뽑아도 바뀌는 게 없다.” “청년 후보가 없고 다 나이든 후보뿐이다.” 그러다 보니 조성주 같은,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가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물론 도덕성과 능력이 부족한 보수후보가 이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이 현상이 극복된 것은 박근혜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전 대통령 덕분이었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젊은층은 잘못 선출된 권력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몸소 체험했는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대통령 하야를 외치던 장면들은 그들에게 더없이 좋은 민주주의 교육이었다. 이제 20대는 누구보다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집단이 됐다.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대형 커뮤니티의 최다 추천 글은 대부분 정치 관련 이슈로 채워진다.

아쉬운 점은 그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의 됨됨이를 꼼꼼히 따져보고, 당선된 이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를 감시하는 게 제대로 된 관심이건만, 그들은 당파성에 빠져 편가르기에 매몰돼 버렸다. 자신들이 반대하는 진영의 의혹에 대해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이런 행태는 최근 화제가 됐던 손혜원 의원의 의혹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손 의원은 자신의 조카와 보좌관 등 지인들에게 목포의 건물을 사게 했다. 그 뒤 그는 문광위 위원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 해당 지역이 문화재거리로 지정되게 한다. 물론 그는 순수한 문화재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며, 투기가 전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선의를 십분 인정한다 해도, 그건 공직자로선 적절치 않은 행동이었다. 내가 국회의원이 된 뒤 내가 소속된 단국대에 자금을 몰아주고, ‘대학 살리기의 일환이었다’라고 발뺌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손 의원의 부친이 독립유공자에 선정된 것도 석연치 않다. 손 의원은 부친 손용우씨를 독립유공자에 포함시켜 달라며 6차례나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현 정부 들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손 의원이 피우진 보훈처장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고, 둘은 국회에 있는 손 의원의 방에서 보훈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 뒤 보훈처는 심사기준을 변경해 손용우씨를 유공자로 만든다. 손 의원은 “어떤 특혜도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공직자로서 적절한 행동은 아니다.

이쯤 되면 “제가 공인으로서 사려 깊지 못했다”며 사과 정도는 하는 게 정상이지만, 손 의원은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 같은 당 금태섭 의원도 손 의원의 행동이 ‘이해충돌의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지만, 손 의원은 흔들림이 없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며 SBS와 금태섭 의원에게 사과하라고 한다. 자신이 뽑은 선수들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동열 감독에게 “사과하든지 사퇴하든지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광경을 떠올리면, 손 의원이 갖고 있는 사과의 기준이 궁금해진다. 손 의원이 이렇게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젊은이들이 손 의원을 편들어 주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점령한 그들은 ‘건물 값이 안 올랐으니 투기가 아니다’ ‘SBS는 적폐언론이니 믿어선 안된다’며 여론몰이를 했고, 손 의원 공격에 동조하는 이들을 ‘알바’로 몰아붙였다. 심지어 ‘부자라 돈에 관심이 없다’는 손 의원에게 1억5000만원의 후원금을 모아주기까지 했으니, 손 의원이 의기양양할 만도 하다. 손 의원을 지지하는 젊은이들은 정말 그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손 의원이 만일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테니, 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비단 손 의원뿐이 아니라,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예컨대 전 기재부 공무원 신재민의 폭로가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났다면, 지금처럼 그가 돈에 미친 사람으로 매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게 진영싸움으로 귀결되는 게 해로운 이유는, 이런 상황에선 제대로 잘잘못을 가리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내 편의 비리는 무조건 옹호하고,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언론을 욕하는 현실에서, 당사자의 잘못은 온데간데없어지니 말이다. 정치에 대한 이런 식의 관심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며,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젊은층이 정치에 무관심했던 때가 더 나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성보다 당파성에 매몰된 관심이라면, 없는 게 나으니까.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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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억은 세기말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멀쩡한 줄 알았던 다리가 끊어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세상은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의 20대는 장렬했다. 의류 회사 디자이너였던 그의 월급은 고작해야 40여만 원. 쥐꼬리에서 그나마 딸 혼수비를 마련하려고 계를 시작한 어머니에게 절반을 떼어드려야 했다. 하지만 버스비 말고는 돈 쓸 틈도 없이 바빠서 늘 월급이 남았다. 야근과 철야는 밥 먹듯이 하면서 피팅 모델 노릇까지 하느라 정작 밥은 많이 먹을 수 없었던 시절. 그는 노력만큼은 안정한 세상을 보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디자이너로 실력이 쌓이면 더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었으니까요, 내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절 그는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담보 잡혀 산 셈이라고 했다. 아이가 있는 직원한테 ‘네 아이도 너 닮아 머리가 나쁘겠다’는 둥 인격 모독을 일삼는 상사들의 독설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라 여겼고, 날마다 전국 매장의 매출을 취합해 등수를 매겨 공개하는 회사의 비정함을 공정한 경쟁으로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회사에, 일에 얽매인 노예였어요.”

일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내건 가게를 냈지만, 독립의 자유를 만끽하지 못한다. 일 년 내내 단 하루도 가게 문을 닫지 못하고,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스스로 정한 시각에 맞추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낸다. 평생 몸에 밴 습성이 하루아침에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즐기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일에만 죽자 살자 매달리지 않아요. 일 말고도 좋아하고, 잘하는 게 많더라고요. 무엇보다 부당한 것을 참지 않고 말하는 게 참 좋아요.”

그가 자신의 젊은 시절 기억을 꺼낸 것은 요즘 청년들이 일자리도 없지만, 과거처럼 치열하지 않다는 얘기를 하던 끝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작과 다르게 요즘 청춘에게 희망을 걸면서 말을 끝냈다. 그들은 왜 달리는지 알고 달릴 거라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더 잘 해낼 거라고.

그의 말대로 청년들이 그들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부디!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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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방법원은 지난 17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제주학살(1947~1954) 당시 불법 연행, 구금당했던 수형인들에 대해 공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그동안 존재조차 불분명한 국방경비법을 적용해 평생 동안 불온 인사로 낙인찍혀 왔던 90대 촌로는 이제사 보통 사람으로 부활하게 되었다.

1948~1949년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에 대한 법원의 재심 공소 기각 선고는 당시 대한민국 군경의 행위가 절차적 규정을 준수하지 않아 모두 무효임을 법적으로 확인한 획기적 사법 판단이다. 특히 전 대법원장이 국정농단 당사자와 불법적으로 재판을 거래하고, 사법부 불신을 자초함으로써 주권자의 비난과 빈축을 사고 있는 이 안타깝고 슬픈 시절에 제주지법은 사법 정의를 실현한 것이다.

제주지법은 1948년 겨울, 이듬해 여름에 걸쳐 자행된 이 극악무도한 공권력의 횡포와 만행이 71년 긴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말하자면 첫 4·3 재심을 무죄 취지로 선고한 것이다. 이들 불법 수형 피해자들에게 가해졌던 당시 형벌이 공소 제기 절차라는 법률 규정을 위반해 아무런 죄가 없던 이들에게 자행된 것이었음을 적시했다. 따라서 제주지법의 불법 군사재판 수형인 무죄 취지 판결은 인권과 정의의 중대한 승리다. 제주지검의 공소 기각 의견 역시 정의의 수호자다웠다.

이제 누구보다도 주목해야 할 얼굴은 무죄 취지 판결을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평생 동안 참으로 흉측한 악법과 불법 재판에 의해 ‘적색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못한 채 침묵과 굴종을 강요당해 왔다. 긴 인고의 세월이 지나 재심 청구를 하고 끝내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은 이들과 함께 아픔과 통한을 품어 온 가족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이들 생존 불법 수형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당시 4·3 재판은 불법이며, 판결은 무효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재심 청구는 이들 불법 수형자를 위한 비상구제수단이었다. 4·3도민연대의 집요한 노력과 정성, 헌신적 활동은 4·3 피해자 권리 회복 운동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4·3의 완전한 해결과 이행기 정의 실현에 일대 전환점을 구축했다. 왜냐하면 4·3 해결은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조치부터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당시 군사재판 판결이 불법이라고 법원에 의해 확인된 이상 4·3특별법 개정 등 후속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4·3 당시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희생된 모든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이들이 당한 피해의 회복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 특히 법무부 장관은 직권 재심 청구를 통해 당시 불법 재판에 의한 피해자들을 일괄 구제하는 조치를 즉각 추진해야 한다. 둘째, 국회는 1948~1949년 군사재판이 모두 불법이었고, 이들 불법 수형인들의 피해 배상, 명예 회복 등을 담은 입법 조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제 새 출발을 하게 될 4·3 무죄 인사들의 만수무강을 빌며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매우 짧지만 70년 만에 터져 나온 최후 진술이 증명된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늦더라도 정의는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는 많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 중요한 인간실천이다.

<허상수 |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전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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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작은 시골마을에서 이태 남짓 살았다. 여름이면 철길 옆 수로로 천렵을 나가 마을 청년들과 함께 물고기를 잡아 국수와 수제비를 넣은 ‘털레기’를 해먹고 가까운 서울에서 벗들이 찾아오면 철길 너머 논둑에서 삼겹살과 소주는 다반사였다. 밤 11시가 넘어 정기 운행 열차가 끊기면 탱크나 장갑차 혹은 자주포 같은 무기가 실린 화물열차가 지나다니곤 하던 철길이 가로지른 그 마을은 ‘내곡리’였고 기차역은 경의선 ‘곡산역’이었다.

방에 난 작은 창으로 마을 사람들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깊은 밤이면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일부러 철길이 잘 보이는 곳까지 나가 멍하게 앉아 있은 적도 많았다. 군사용 무기들이 실린 화물열차가 지나갈 때만 볼 수 있는 실루엣이 자아내는 아우라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무기들은 때로 천막처럼 생긴 덮개 천으로 싸여 있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워풀하면서도 도발적인 실루엣까지 가려지지는 않았다. 지붕도 씌워지지 않은 화물차에 덩그렇게 놓인 탱크의 덩치와 길쭉하게 삐져나온 포신 그리고 어둠이 빚어내는 아우라는 어슴푸레한 빈 들판을 가득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그러한 장면들이 뇌리에 쌓이자 서른 즈음의 내 가슴은 쏜살같은 뜀박질 후처럼 마구 뛰었다. 그러나 헐떡이는 마음을 굳이 달래지 않았다. 오히려 분출시킬 방법을 찾았는데 경의선에 대한 사진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처음에는 혼자 기차를 타거나 혹은 기차가 지나다니는 길목의 풍경들을 찾아다니느라 곤혹을 치렀으나 이내 마을에 살던 다른 이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 마을 언저리에는 화가 몇이 살고 있었고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경의선모임’을 만들었다. 그러곤 어느 하루, 날을 정하여 작업에 임했는데 방식은 이랬다. 서울역으로부터 문산역까지 각 역마다 2명의 작업자들을 배치하여 그 둘이 책임지고 24시간 동안 그 역과 다음 역까지 오가는 기차 안의 모습이나 바깥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물론 그 작업은 ‘경의선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지만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사진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또 만만치 않은 카메라 가격 때문에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사진기들도 초라했다. 그렇지만 작업 다음날 흑백필름을 현상해보니 하루 동안 찍은 사진은 아주 다양했다. 기차 안에는 일반 시민들과 군인들 그리고 헌병이나 파주 일대 미군들의 모습이 흔했고 기차 밖은 이른 새벽 경의선 낡은 기차를 청소하는 사람들이나 철길을 잃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철교 교각들이 있기도 했다. 또 그러한 교각에는 더러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자극적인 구호들이 눈에 띄는 붉은색 페인트로 쓰여 있었고 터널 입구나 출구에는 유사시 철길을 차단 할 수 있는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곤 했다. 도로와 맞닿아 있는 철길에도 어김없이 도로에 설치된 도로 차단 구조물이 연결되어 있었다.

이른바 분단국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분단풍경’들이었다. 그러한 풍경이 담긴 사진으로 서울과 부산에서 한 차례씩 전시를 하고 한 권의 책으로 남긴 채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내곡리를 떠났다. 그렇지만 작업을 마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그 후에도 나는 10여년간 분단 전 남북으로 오가던 철길이나 국도는 물론 서해의 말도(唜島)로부터 동해안 고성까지 접경지대를 따라 분단의 흔적을 찾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분단문화에 대한 작업이 뜸해졌지만 어디에선가 경의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신경이 퍼뜩 곤두서곤 했다. ‘경의선모임’이 작업한 구간은 서울역부터 문산역까지였지만 사실 경의선은 1906년 4월3일 개통 당시 용산역부터 신의주역까지 518.5㎞ 구간이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철도 운영이 중단되었다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2003년 6월4일, 50여년 만에 다시 이어졌지만 다분히 상징적인 일일 뿐 정기적인 운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남한 지역의 경의선은 변화가 상당하다. 비둘기호 낡은 기차가 신형 객차로 바뀌었고 단선으로 운행되던 노선은 개통 당시처럼 복선화가 이루어졌으며 더불어 전철화까지 되었다. 또한 용산역에서 이어지던 경의선 구간 중 철길이 지하로 들어가 더 이상 기능을 하지 않는 지상 구간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인 공원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용산구 새창고개 구간이 그렇고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 그리고 와우산 아래 ‘책거리’로 명명된 구간이 모두 ‘경의선숲길’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도시재생사업과 같은 일들은 서울의 일일 뿐 경의선의 일이 아니다. ‘경의선숲길’은 당연히 나의 주의와 관심을 끌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동안 견지하고 있었던 경의선에 대한 감정조차 시들해지게 하는 역효과만 낳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다시 귀를 쫑긋거리고 경의선에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종단철도(TKR: 경의선, 동해선)가 연결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북한 내 철도 공동조사도 무사히 마쳤으니 이번에는 더 이상 미뤄지지 않았으면 싶다. 경의선뿐 아니라 경원선 그리고 철원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내금강역까지 달렸던 관광열차인 금강산선 그리고 동해바다를 곁에 두고 달릴 아름다운 철길인 동해선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이곳저곳 막무가내로 드나들면 서로 단절되었던 세월만큼 변했을 갖가지 문화의 모습들도 철길이나 도로처럼 단순하게 복원될 수 있을까?

만만치 않다. 경의선 철길이 복원된다는 것은 철길의 연결이라는 물리적 요소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도 복원되어야 한다는 형이상학적인 전제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철길의 물리적 연결은 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일이다. 그렇다면 나의 일은 무엇일까? 말했듯 나 자신의 복원이다. 열차가 덜컹거리지 않고 이어진 철길을 매끄럽게 달려야 하듯이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경의선은 아무런 걸림이 없어야 한다. 그동안 남북의 분단 못지않은 분단이 남남의 분단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마음속 철길에 깔린 자갈을 골고루 배치하고 흔들리거나 삐뚤어진 침목을 바로 괴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어쩌면 그 일은 단절되었던 경의선이 다시 이어질 세월보다 훨씬 더 길 수도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지누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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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님, 안녕하신지요. 1년여 전 스포츠 전문 방송에서 대화를 나눈 적 있지요. 그날 방송에서 위원님은 IOC 선수위원의 임무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는 것과 선수 권익의 신장과 보호였지요.

사실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은, 마치 헌법처럼, 회원국의 모든 임원, 지도자, 선수들이 일체의 타협이나 양보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 이념이지요. 그 맨 앞에 ‘올림픽 이념의 기본 원칙’이 천명되어 있습니다.

1항을 보면 올림픽 이념은 ‘인간의 신체, 의지, 정신을 전체적 균형과 조화 속에서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신체만이 아니라 의지도 정신도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선수들이 ‘운동 기계’가 아니라 전인적인 성장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음 2항, 올림픽 이념의 목표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추구하는 평화로운 사회 건설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또한 6항에는 ‘어떠한 종류의 차별 없이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 엄중한 ‘이념’에 따라 올림픽의 운영 항목이 열거되지요. 이를테면 1장 2조 ‘IOC의 사명과 역할’은, 위원님이 강조하신 선수 권익 보호 사항입니다. ‘스포츠 윤리 발전’ ‘남녀 평등’ ‘선수들의 의료 및 건강’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스포츠를 교육 및 문화와 접목’ 등이 그것입니다. 이 가치들이 우리의 스포츠와 올림픽에서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옥 훈련’이니 ‘혹사’ 같은 말들이 여전히 횡행합니다.

‘스포츠의 자율성 보존’이나 ‘선수들의 정치적, 상업적 남용 반대’도 2조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막연하게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부당한 정치적 압력이나 지나친 자본의 위력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자는 것입니다. 20세기 초엽에 스포츠를 정치 선전 수단으로 삼고 올림픽을 자본 이익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가 도처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지요. 모든 관계의 차단이 아니라 부당한 압력의 차단이 목적입니다. 50조에도 ‘정치적, 종교적, 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한다’고 적시되어 있습니다.

위원님이 이런 가치를 모를 리 없겠습니다만,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자칫 이 올림픽 정신이 오용되거나 극히 부분의 표현을 맥락 없이 남용하는 경우들이 많아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조재범 전 코치 가해 사건이 불거진 이후로 우리 스포츠계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상명하복식 위계질서와 유무형의 모든 폭력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민적인 열망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얻어맞고 심각한 인권 유린 상태에까지 내몰렸는데 그렇게 해서 따낸 금메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호소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는 폭력 실태를 엄중히 조사하는 한편 국위 선양과 성적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종 개혁 과제를 전개하겠다고 밝혔지요.

이에 스포츠 현장에서는 한편 공감하면서 또한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러 국제대회를 앞두고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이 당혹해한다는 얘기도 있고 당장 2020 도쿄 올림픽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막막하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유승민 위원님도 의견을 피력했지요. 며칠 전 위원님은 “체육행정가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개혁이 필요하지만, 합숙·연금 제도를 폐지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올림픽을 목표로 땀 흘린 선수들의 꿈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선수들의 의견을 듣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개선안을 찾자고 제안도 했습니다. 금메달리스트이자 선수위원으로서 충분히 제시할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당혹감에 빠진 후배 선수들을 보호하려는 마음도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위원님은 단순한 체육행정가나 경기력 강화위원이 아니라 ‘올림픽 헌장을 준수하고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선수위원입니다. 선수들이 폭력의 무한 재생산 구조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습니다. 몇몇 지도자의 일이라고 치부한다면 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와중에도, 연세대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감독으로부터 ‘동물 학대 수준’으로 지속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다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선수위원이라면 지금 당장 폭력을 멈추라고 호소해야 하며 공포의 상황에 놓여 있는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악을 근절하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천명하고 있는 올림픽 정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올림픽 헌장에 제시된 바와 같이 ‘선수들의 사회적, 직업적 미래 보장’ 또한 유 위원님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메달리스트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미래가 보장되는 현행의 제도는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혁 과제들이 매우 복잡해 하루아침에 대한체육회가 해체되거나 선수촌이 폐쇄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것이 유일무이한 해법도 아닐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 권익 보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좁은 의미의 ‘권익’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여야 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이념으로 ‘올림픽 정신’에 천명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지켜진다면 그 밖의 여러 제도 개선은 얼마든지 다양한 해법이 가능하지요. 우리의 스포츠 개혁과 발전은, 유 위원님의 활동 근거가 되는 고결한 ‘올림픽 정신’의 실천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선수를 보호해야 합니다. 그 ‘권익’이 아니라 그 ‘존엄성과 인권’을!

<정윤수 |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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