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역할은 시대와 사회경제적 상황, 집권 정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시장의 자율성에 맡기는 소극적인 정부(작은 정부)가 있는가 하면, 국민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부(큰 정부)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 확대를 지적하면서 적극적으로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런데 작은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면, 큰 정부는 ‘정부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의 지나친 시장개입은 공정성을 훼손하고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알뜰주유소가 만들어졌다. 출발은 ‘국제 원유 가격과 국내에서 팔리는 기름 가격의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인을 정유사의 과점, 국내 주유소들의 담합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정부는 이를 바로잡겠다면서 직접 주유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도로공사와 농협을 통해 기름을 대량으로 싸게 구매해 민간 주유소보다 낮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알뜰주유소에는 세제지원 혜택까지 주면서 기름가격이 100원 낮은 주유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결과는 달랐다. 민간 주유소와의 기름값 차이는 20~30원 수준에 불과하다. 2015년 국감에서는 ‘알뜰주유소의 기름값 인하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오히려 일반 주유소보다 비싼 경우도 있었다. 알뜰 주유소의 기름값은 약간 저렴하지만 민간 주유소와는 달리 부가서비스 혜택이 줄었다.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민간 주유소와 알뜰주유소 간에 책임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결과다.

이와 유사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제로페이’다. 제로페이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결제 시스템이다. 결제 방식은 체크카드와 같다. ‘통장잔액을 이용한 자금이체’다. 제로페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자영업자 지원대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자영업자를 위한 각종 방안의 하나로 카드수수료 인하가 추진됐다. 그러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자영업자와 소비자 사이에 카드회사뿐 아니라 카드단말기를 설치하고 영수증을 수거하는 이른바 ‘밴사’들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 단계를 생략해 소비자와 자영업 점포를 직접 잇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 제로페이다. ‘제로’라는 의미는 영세자영업자(매출 8억원 이하)에게 수수료가 없다는 뜻이다. 자영업자들은 고객이 카드로 결제할 경우 일정 규모의 수수료를 카드사에 내야 한다. 그러나 중간 단계가 사라지면서 자영업자들이 내는 비용도 없거나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객 입장에서는 주어지는 인센티브가 신용카드보다 적고, 이용도 불편한 게 사실이다.

정부가 자영업자들을 돕겠다는 선의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플레이어로 나서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이미 제로페이와 유사한 간편결제 서비스를 하는 업체들이 20곳 이상 시장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제로페이처럼 자영업자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혈세 낭비 논란도 있다. 지난해 말 제로페이 시범서비스에 들어간 서울시는 대대적인 마케팅 행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시는 구청별로 목표 가맹점 수를 할당하고, 한 건에 1만5000원의 유치 수당을 지급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실적은 미미하다. 사업이 제대로 될지도 모르는 곳에 돈을 쏟아붓다보니 낭비라는 말이 나온다. 더구나 제로페이는 은행 전산망에 무임승차하는 형태다. 시스템 관리에 은행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은행들은 공공기관에서 요구하니 마지못해 협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공기업이 아닌 은행에 언제까지 매년 수백억원에 달할 부담을 지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연초에 “제로페이가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속속 제로페이에 동참하고 있다. 제로페이의 확산을 위해 50만원 이내에서 후불제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물론 간편결제 시스템의 발전은 필요하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인센티브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민간의 몫이다. 

급할수록 정도를 찾아가야 한다. 이미 민간에 플레이어가 있다면 공정한 게임이 지켜지도록 관리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가 플레이어로 칼자루를 쥐고 경기장에 나서겠다고 하면 시장의 규율은 누가 잡을 것인가.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선수 대신 심판이 ‘링’에 오른다면 결과는 뻔하다. 경기가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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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수천의 아카이아인들에게 수많은 고통을 가져다준 분노를! 수많은 영웅들의 강건한 혼백들을 하데스로 보냈고, 그들을 개들과 새들의 먹이로 던져버렸다네. 이렇게 제우스의 뜻은 이루어졌다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분노의 노래로 시작한다. 트로이전쟁이 배경이지만, 전쟁보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작품을 끌고 간다. 처음 아킬레우스는 영주 아가멤논이 애인 브뤼세이스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하자 격노한다. 명예와 자존심에 대한 분노다. 대응은 전투 보이콧이었다. 분노의 소극적 표현이다. 두번째 분노는 절친 파트로클로스가 적장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자 폭발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찌르고 시신을 마차에 매단 채 질주한다. 분노의 정점이자,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그렇다고 분노의 해소가 <일리아스>의 주제는 아니다. 정당한 분노는 정의로 연결되고, 정의는 개인의 권리로 이어진다는 깨우침이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제73회 학위수여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서울대 제공

<일리아스>뿐 아니다. ‘분노’는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주제가 됐다. 자연히 분노는 인간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분노하는 인간(homo iracundus)’의 탄생이다. 분노는 일상에서 흔히 경험하는 감정이다. 게으름과 무지에 분노한다. 갑질에 분노하고, 혐오에 분노한다. 5·18 망언에 분노하고, 빈부 격차에 분노한다. 분노는 피할 수 없다. 조절하지 못하면 광기가 된다. 반면 잘 조절하거나 조화시키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 ‘분노의 힘’이다. 호메로스는 그 방법을 알았다.

방탄소년단을 이끌고 있는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분노’를 이야기했다. 지난 26일 서울대 졸업식 축사를 통해 “나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만과 분노였다”고 말했다. 또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타협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변화를 이끌었다”면서 세상의 부조리와 몰상식에 맞서 싸워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비결은 ‘분노의 힘’에서 나왔다. 미학을 전공한 방시혁 대표는 호메로스처럼 ‘분노의 조절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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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엔 다행히도(?) 교회가 없다. 오래전 내가 집을 짓자 교회를 짓는 거 아니냐며 쫓아온 주민이 있었는데, 건설인부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걸 보자 안도하며 돌아갔다. 일요일마다 여러 대 교회 승합차가 와서 주민들을 골라 싣고 간다. 각자 떨어진 교회들로 고고. 가끔 전도를 나오기도 하는데, 전도거절용이나 방어용으로다가 대문에 교회 간판을 하나 붙여버릴까 싶기도 해. 대꾸하기도 귀찮고 종파를 설명하기도 머리가 아파서리. 얘기를 나눠보면 백이면 백 붉은 토끼 눈알이 되어 공격적인 말투.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할 거라며 협박하는 부분에서는 진짜 나로 하여금 불쌍한 마음도 드는 표정이었다. 목사라고 안 하고 그냥 촌놈이라고 했던 게 문제. 흐흑.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건 시골 교회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나이가 너무 어려서 할머니 교인들이 꼬맹이 취급할까봐 그랬다. 한번은 문익환 목사님이 내 수염을 근사하다고 칭찬해 주셨는데, 서로 수염을 만져보며 웃었던 기억. 목사님 수염을 만져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나이가 같아 보여 좋다던 할매들은 내가 수염이라도 밀면 코털이라도 빨리 기르라고 나무라셨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비슷한 옷을 걸치고서 알콩달콩 지내다가 훌쩍 길을 떠나왔다.

한 인기 강사가 튀는 옷을 입고 강의를 갔는데, 그곳은 하필 교도소. 재소자들 속에서 튀는 옷이 순간 부끄러웠다고 한다. 소통을 이야기하러 간 강사가 옷부터 소통이 안된 것. ‘그들과 같은 옷을 입어라.’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아버지가 물려준 치렁치렁한 목사 성의가 있었는데, 그런 옷 좋아하는 목사에게 줘버렸다. 치마도 뭣도 아니고 그런 이상한 옷을 걸치고 설교단에 서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성경 교사일 뿐이다. 

태극기집회 분들과 극우 기독교가 만나 흥미로운 미래 정치를 약속하는 마당이다. 소통이 문제인데, ‘소통불가 고집불통 맹신’으로 무장하여 나라를 온통 분란과 불화로 끌고 갈까 염려된다. 일요일마다 마을을 갈라놓듯이 나라를 갈라놓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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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자’에 대한 말잔치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20대 남자들의 현실을 자세히 보려는 노력은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관심사는 이들이 어느 당을 지지할지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20대 남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스피커들 역시 매우 편향되어 있다. 소위 ‘명문대’ 출신이거나, 안티페미니즘을 통해 주목을 끌고 그것을 돈이나 명성과 같은 자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발언을 20대 남자의 생각과 주장으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고, 갈등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에게 권위를 실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대 남자들은 어떤 문제를 겪고 있을까? 통계에서 확인되는 것들이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자의 고용률 및 실업률은 2008~2017년 10년간 별로 개선되지 않았거나 악화됐다. 5세 단위로 끊어서 보면 15~29세 남성 중 대부분의 구간은 10년 전 고용률을 회복했지만, 24~29세의 고용률은 2008년 70.7%에서 2017년 67.9%로 하락했다. 20대 남녀를 통틀어 가장 큰 고용지표 악화를 보여준다. 실업률의 증가폭 역시 가장 커서 2008년 7.5%이던 실업률은 2017년 11.6%였다. 2017년의 경우 20대 전반에서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보다 높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여성의 고용률이 남성을 앞지른 것은 2017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30~34세 남성의 2017년 고용률은 87.3%에 달했고, 같은 나이대의 여성은 10년 전보다 9.1%포인트 올라 61%였다. 15~29세에서 여성이 3.9%포인트 높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로 역전된 것이다. 

한편 2008~2017년 한국의 10만명당 자살사망률은 등락을 반복했으나 결과적으로는 26명에서 24.3명으로 줄었다. 20대의 경우 여성은 모든 구간에서 눈에 띄는 자살률 저하가 나타났다. 20~24세 남성 역시 줄어들었다. 그런데 25~29세 남성의 경우에는 오히려 자살률이 증가했다. 2008년 24.4명에서 2017년 25.3명으로 늘었다.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20대 남성도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질환실태조사’에 따르면 18~29세 남성의 주요 우울장애 일년유발률은 2006년 1.4%에서 2016년 3.5%로, 불안장애의 경우 3.5%에서 7.4%로 증가했다. 물론 유발률 자체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문제다. 

하지만 20대 남자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가령 남성 자살사망자 수를 학력별로 보면 중·고등학교에서 가장 많은 자살사망자가 발생한다. 또 ‘한국복지패널’ 조사에 따르면 자살 생각, 계획, 시도 모두에서 저소득층이 일반가구에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을 나타낸다. 또 2019년 1월을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를 보면 학력이 같을 경우 남자가 여자에 비해 아주 높은 경제활동참가율을 보인다. 대졸 남성은 86.7%가 경제활동인구인 반면 대졸 여성은 66.6%로 차이가 크다. 고졸 남성은 72.4%로 대졸 여성보다 높고, 고졸 여성은 54.9%에 불과하다. 빈곤율 역시 일관되게 여성이 더 높다. 남성 임금노동자가 여성보다 230만명가량 많지만, 비정규직은 오히려 여성이 68만명 더 많다. 이런 통계들은 끝도 없이 찾아낼 수 있다. 

핵심은 이것이다. 20대 남자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 그렇다면 논의는 이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맞춰져야 한다. 그러나 20대 남자를 위한다는 이들도 심지어 스스로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 탓을 하거나, 페미니즘 탓을 한다. 나는 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의미 없는 갈등과 혐오를 조장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의지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힘없고 가난하고 위험에 노출된 남자들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분탕질 소재로나 동원될 뿐이다. 

진짜 문제는 시끄러운 곳보다 조용히 질식해가는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혐오 유발자들의 사회적 질식사가 선행되어야만 한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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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을 둘러싼 국제관계가 급물살을 탔다. 북·미 정상회담도 베트남에서 다시 열렸다. 잠깐 전쟁을 멈추자는 약속에 불과한 정전협정은,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으로 이어져야 하고, 전쟁도 끝났으니 이제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는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다. 하지만 우리는 정전체제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65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북한을 침공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은 제정신이라면 이제 어느 누구도 하지 않는다. 남한을 침공해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의도를 북한이 가질 리도 없다. 엄청나게 벌어진 남북한의 경제력을 비교하면, 장기간 이어질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북한에는 없어 보인다. 힘의 비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이 전쟁을 시작할 이유가 딱히 없다는 점이다. 농사지을 땅이나 석유가 나는 유전이라면 모를까, 현대 산업사회의 번영을 뒷받침하는 대부분의 자산은 어디로도 옮겨갈 수 있는 무형의 자산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의 구체적인 지리적 위치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들이 하는 활동이 실리콘밸리를 구성한다. 어딘가를 점령하면 그곳의 경제력이 자기 것이 되는 세상은 인류 역사에서 한참 지난 먼 과거의 일이다. 어느 나라가 혹여 실리콘밸리를 힘으로 점령하면, 그곳은 한순간에 실리콘밸리가 아닌 곳이 되어버린다. 남한은 북한을 침공할 이유가 없다. 북한도 남한을 침공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둘이 합의해 무기를 내려놓으면 될 일이다. 어린아이라도 쉽게 동의할 내용이지만 합의와 해결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짓눌러온 문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토끼만 사는 풀밭이 있다. 엄청난 번식력으로 유명한 토끼는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토끼의 증가가 무한정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새로 자라나는 풀에 비해 토끼가 너무 빨리 늘어나면, 먹을 것이 부족해져 토끼의 증가는 결국 멈추게 된다. 자, 이제 풀밭에 염소도 풀어놓자. 토끼가 너무 많아져도, 그리고 염소가 너무 많아져도, 토끼의 증가는 결국 멈추게 된다. 염소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을 정성적으로 기술하는 생태 수리모형[dx/dt = x(3-x-2y), dy/dt = y(2-x-y)]을 분석하면, 전체 풀밭 생태계에서 안정적인 상황은 딱 둘이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염소만 살거나(x=0, y=2), 토끼만 살거나(x=3, y=0), 둘 중 하나가 전체 풀밭을 모두 차지하는 상황이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경쟁 배타(competitive exclusion)라 한다. 정확히 같은 자원을 놓고 어디 도망갈 곳도 없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둘 중 하나가 전체를 차지하는 상황이 되어야 결국 경쟁이 멈추게 된다는 얘기다. 필자는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살시킨 스페인을 떠올렸다. 정복자는 이 상황도 평화라고 우길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평화는 물론 아니다.

다른 곳을 침략해 사람들을 몰살하고 땅을 차지하는, 극도로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팽창을 추구하는 경제대국은 이제 세상에 없다. 사람들이 착해졌다기보다는, 여럿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에서 창출되는 다양성이, 길게 보면 훨씬 더 자국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동안의 역사적인 경험으로 어렵게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놀라운 혁신이 만들어지는 도시는 거의 예외 없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구성이 다양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당연한 얘기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생각 중 극히 일부만 미래의 혁신으로 이어진다. 성공한 혁신이 가능하려면 먼저 다양한 생각이 만들어져야 한다. 더 나은 미래는 공존과 다양성에서 온다.

앞서 소개한 토끼와 염소의 모형에는, 둘 중 하나만 사는 획일적인 세상 말고도 다른 종착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토끼와 염소가 공존하는 세상이다(x=1, y=1). 그런데 말이다. 둘이 함께 공존하는 이 상황은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한 종만이 살아가는 획일적인 세상, 평화라고 부르기도 멋쩍은 삭막한 세상으로 옮겨간다. 현실에서의 평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의 지속적인 공존이 평화의 다른 이름이라면, 평화는 쉽게 오지도, 쉽게 유지되지도 않는다. 노력을 멈추는 순간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평화는 도달한다고 저절로 유지되는 상태가 아니다. 끊임없는 조율과 양보가 필요한 지난한 과정이다.

라면을 좋아한다. 냄비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가스레인지가 공급한 열에너지는 물의 온도를 높인다. 100도, 200도, 계속 오르는 것은 아니다. 100도에서 멈춰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100도에 머무는 끓는 물에 가스레인지가 공급한 열에너지는 그럼 어디로 간 걸까. 이때 공급한 열에너지(숨은열이라고 한다)는 물의 온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다. 물 분자들이 서로 맺고 있는 연결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온도계의 눈금을 통해서만 물을 보고 있는 사람은, 상전이를 일으키려면 꼭 필요한 숨은열을 보지 못한다. 온도도 안 오르는데 지금 헛고생하고 있는 것 아냐? 실망해서 가스레인지 불을 끈 사람은,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없다.

진전이 더디다고, 결과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도중에 끈 사람을 닮았다. 이전과 다른 이후를 만들기 위해서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꾸준하고 진득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이어진 숨은 노력은 숨은열이 되어 상전이를 만든다. 연결의 구조를 바꿔 세상을 바꾼다. 상전이 이후는 상전이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평화가 오고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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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27일 전당대회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했다. 황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끌어갈 최고위원 5명도 뽑았다. 한국당은 지난해 7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 지 9개월 만에 정상체제를 갖추게 됐다. 황 대표는 앞으로 2년간 당내 계파 갈등을 해소하고 보수를 재편해 내년 총선에 대비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한국당 입당 한 달여 만에 제1야당의 대표 자리를 거머쥔 황 대표를 보는 시선은 착잡하다. 황 대표는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박근혜 정부에서 2인자를 지낸 사람이다. 한데도 이제껏 제대로 된 사죄나 반성은 없었다. 폐족 위기에 몰렸던 친박계는 황 대표에게 줄을 서며 똘똘 뭉쳤다. 친박계의 후안무치와 이기주의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황 대표는 친박계를 대표할 가능성이 높아 ‘제2의 박근혜당’이 현실화할 공산이 커졌다. 황 대표의 취임이 친박세력 결집과 박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 주장으로 이어진다면 정치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 될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당은 이번 전대에서 태극기세력으로 대표되는 강성보수에 사로잡혀 극우로 회귀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5·18 망언’의 당사자인 김순례 의원이 최고위원에 선출된 건 대표적인 사례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전대 내내 유례를 찾기 힘든 망언과 반민주적 퇴행이 지속되면서 극우세력의 준동은 예고됐지만, 우려는 현실화됐다. 황 대표 역시 탄핵 부정에 태블릿PC 조작설까지 제기하며 극단주의 세력에 추종했다. 개표 결과 황 대표는 당원들에서 55.3%를 득표한 반면 여론조사에선 37.7%로 중도 성향의 오세훈 후보(50.2%)에게 크게 밀렸다. 극우세력에 기대는 태도가 당내 지지층에선 환호를 받았을지 몰라도 시민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는 의미다. 민심과는 정반대의 길이다. 전대 결과는 예상대로 김병준 비대위체제에서 인적 청산도, 보수 혁신도 실패한 한국당이 탄핵 2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시켜 줬을 뿐이다.

황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야당의 합리적 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시민들이 바라는 건 ‘전투’가 아니라 비판할 때는 비판하더라도 협조할 것은 과감하게 협조하는 새로운 야당의 모습이다. 새 지도부가 당을 살리는 길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보수의 새 가치와 비전을 바탕으로 건강한 보수로 거듭 나 정부를 견제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 그러자면 극단적 우경화로 치닫는 당심(黨心)보다는 합리적 민심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극우에 끌려가서는 내년 총선은 물론 수권정당의 꿈도 영영 멀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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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라는 통계청 잠정집계치가 발표됐다. 출산가능여성이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명도 안된다는 얘기다. 이로써 한국은 사실상 세계 유일의 ‘출산율 0명대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지난해 인구자연증가치는 2만8000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2027년까지 인구가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청의 예상은 빗나갔고, 100년 뒤 인구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커졌다. ‘저출산 쇼크’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이 반 토막 날 위기다. 갈수록 노인 복지·의료·연금 등의 수요는 커질 텐데,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생산·소비가 줄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커진다.

통계청은 출산율 저하 이유로 20~30대 인구 감소, 늦어지는 혼인 연령, 결혼포기 세대의 증가 등을 든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열악한 현실에 있다. 결혼한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자녀 교육·양육비 부담’ ‘소득·고용 불안정’ ‘일·가정 양립 곤란’ ‘주택마련 부담’ 때문이었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조사자료도 있다. 이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통계청 발표는 저출산이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임을 보여준다. 당장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뿐만 아니라 저출산 기조에 맞는 국가운영도 필요하다. 정부도 출산대책을 ‘출산율 제고’에서 ‘모든 세대의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난임 지원’ ‘육아휴직 확대’ 등의 대책을 내놓았지만 과연 정책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국가운영의 프레임을 바꾸려 한다면 좀 더 대담하고 획기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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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과 환경부가 지난달 25일 서해에서 진행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인공강우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 27일 발표한 상세분석 결과에 따르면 비가 아주 약간 내렸지만,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예고된 실패였다. 전문가들은 시간당 10㎜의 비가 2시간 이상은 내려야 미세먼지를 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공강우 기술로는 시간당 고작 1㎜가 늘어나는 정도다. 게다가 인공강우 실험의 영향권은 100~200㎢ 정도의 국지적인 범위라 시민들의 기대처럼 서해상에 ‘커튼’을 칠 정도도 못된다.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2일 마스크를 쓴 한 시민이 서울 여의도를 걷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그럼에도 인공강우 실험에 ‘미세먼지 저감’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지난달 22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미세먼지를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인식하고 특단의 대책을 시도”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인공강우 등 새로운 방안의 필요성을 밝힌 것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갑갑한 국민들의 마음을 씻어내는 심정으로 인공강우 실험이라도 시도했을 것이다.

예정된 실험에 미세먼지 저감 효과 분석을 추가한 것이고, 장기적으로 과학기술을 축적한다는 측면에선 무조건 나무랄 일은 못된다. 문제는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부랴부랴 ‘보여주기’식 이벤트를 벌이는 게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다.

정부에 지금 필요한 것은 ‘기우제’가 아니라 상황을 명확히 전달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중국 탓으로만 여겨서도 안된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을 더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계절은 봄으로 변하고 미세먼지 농도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보여주기’ 대책으로는 잠시 눈을 돌릴 뿐, 근본적 해결 방안은 될 수 없다.

<배문규 | 정책사회부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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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온 고을의 풍물패 다들 모이긴 모였는가. 참말로 한 분도 안 빠지고 다들 모이긴 모였는데, 뭐라고? 앞이 안 보인다고. 옳거니, 온몸이 껍질로 들씌워져 있으니 앞이 보일 턱이 있는가? 보일 턱이 없지.

그렇다 꽹쇠여, 그대는 원캉 주어진 판은 깨버리는 울음이라. 맨 먼저 일어나 ‘탱~’ 그대들을 들씌운 껍질, 거짓의 껍질, 사기꾼의 껍질, 협잡꾼의 껍질이란 껍질은 관상 볼 게 뭣이 있다던가. 몽땅 그냥 깨트려버려라. 하지만 깨트려 놓고 보니 앞은 보이는데 길이 안 보일뿐더러 그나마 발을 내딛기만 하면 몽조리 꼬꾸라져 버리는 천 길 낭떠러지라. 거기서 삐져나올 데라곤 한번 빠지면 그 무엇도 못 헤어 나오는 옴짝달싹도 못하는 죽음의 늪이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그대여, 징재비 그대는 된캉 타고나기를 길라잡이가 아니던가. 한 번 울어 없는 길을 내는 길라잡이 ‘아리아리’가 아니냔 말일세. 그러니 딴 거 있는가. 제 몸을 스스로 쳐 길을 내시라. 그래도 길이 없으면 그대의 소리가 바로 새로 만들어질 길이라. 옳거니, 쩡~ 쩡 울리는 징이여, 있는 힘껏 후려치고 쌔려쳐 사람이 나아갈 길, 아니 역사가 나아갈 길을 만드시라. 하지만 그 길을 가다가 딱 한발이라도 멈칫하면 사람만 죽는 게 아니라네. 사람이 나아갈 길, 갈마(역사)가 죽나니.

이때 힘을 돋우는 건 바로 북밖에 더 있는가. 그러니 북이여, 떵~, 떵~, 떵~, 떵~, 떵~, 사람의 착한 힘, 사람의 어진 힘, 사람의 안간힘까지 몽조리 다 뽑아 올려라. 떵~ 떵~ 떵~ 떠덩떵~.

그런데 그렇게도 날래던 장구소리는 어찌 돼서 삐딱했는가. 그렇게도 다그치다가 암, 그렇게 되었구먼. 한쪽이 찢어져 그대의 배시때기를 대신 치느라 그렇구먼. 하지만 이 세상의 설운내(비극)와 어기찬 승리의 환호를 아울러 내는 불게(새납)소리와 어울린 그대의 그 장구소리는 그야말로 ‘모랏소리’라. 장구소리여, 비록 한쪽 귀가 찢어졌더라도 앞장서 후려치고 쌔려 치고 몰아쳐 마치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박박,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을,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된 세상을, 너도나도 그저 돈, 돈, 돈, 돈놀음을 먹이로 하늘땅을 맷돌처럼 한바탕 갈아엎는 소리.

‘왱 왱 찌 꿍’(아주 느리게) ‘왱 왱 찌꿍 찌꿍’(조금 느리게) ‘왱 왱 찌꿍찌꿍, 왱 왱 찌꿍찌꿍’(아주 빠르게).

다시 오는 3·1혁명 백년엔 우뚝 선 곳도 없고 뒤처진 곳도 없는 태평삼천리, 그리움에 쩔은 백옥 같은 님을 향해 올바른 미래, 어기찬 평화, 고루 잘사는 평등의 세상을 들이대시라! 있는 것들만 큰소리치는 세상이 아니라 착하고 어질고 그대로가 눈물겨운 이들만 사는 곳, 우리 모두가 이웃이요, 우리 모두가 다정한 벗들이 사는 땅, 그런 벗나래(세상)를 일구도록 풍물이여, 다 함께 들고 쳐 모든 잠자는 것들을 발칵 일깨우시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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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경향신문엔 봄바람처럼 살랑이는 사내 화젯거리가 있다. 아빠기자들의 잇단 육아휴직 소식이다. 당장 다음달부터 3명이 휴직에 들어간다. 자녀를 2~3명 둔, 입사 11, 12, 18년차 아빠들이다. 하반기에도 몇 명 더 육아휴직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올해는 경향신문에 ‘아빠 육아휴직 러시’가 본격 시작된 해로 기록될 듯하다.

아빠 육아휴직. 저출산 추세 속 최근 몇 년 새 부쩍 자주 등장하는 뉴스다. 1988년 여성노동자들에 한해 마련됐던 육아휴직제도는 2001년 남녀 모두에게 확대됐다. 2014년 일명 ‘아빠의 달’을 도입한 이후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4년 3421명에서 2018년 1만7662명으로 4년 새 5배 이상 늘었고, 전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도 4.5%에서 17.8%로 급증했다. 

(출처:경향신문DB)

그러나 숫자에 드러나지 않은 현실은 무겁다. 2018년 12월 기준 경제활동인구 중 20~30대 남성취업자가 517만명가량이란 걸 감안하면 남성 육아휴직자 1만7000여명은 전체 수요자 중 0.3% 남짓으로 추정된다. 또 2018년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의 58.5%가 대기업 노동자란 사실은 전체 임금노동자 중 중소기업 노동자가 90%에 육박하는 현실에 비춰 심각한 불균형이다.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안 쓰거나 못 쓰는 이유는 뭘까.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육아휴직을 경험한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남성들은 육아휴직 결정 시 재정적 어려움, 진급 누락 및 인사고과에 부정적인 영향, 직장 동료나 상사들의 눈치 등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원주주 회사’인 경향신문은 사원 대부분이 노조원이자 주주인 만큼, 경영진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같이하게 된다. 회사는 남녀 할 것 없이 젊은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계속 가게 되니 이에 대비해 상시 인력을 더 뽑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정답이다.

그런데 답답하고 속이 탄다. 자발적으로 잘 지키는 회사만 비용이 늘어날 판이니 어떤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할까 싶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일자리, 양극화, 저출산 대책을 따로따로 만들지 말고 하나로 묶어 고민했으면 한다. 남녀 육아휴직 수요자 대비 실질 육아휴직자 비율 공개를 의무화하고, 육아휴직 가는 만큼 일자리를 나누도록 유도하는 것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정부 프로젝트 수주에 가점을 주거나 청년일자리 예산으로 인건비 지원을 할 수도 있고, 표준화된 업무라면 인력풀을 만들어 대체인력을 공급하되, 불안정성을 더 많은 급여로 보상하는 것도 양극화를 해소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일률적인 기준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업종, 업체마다 다른 사정에 맞춰 실제 도움이 되는 지원이 있어야 한다. 현재 육아휴직 관련 기업에 대한 지원은 육아휴직자 1명당 우선지원대상기업(중소기업)에 월 30만원, 대체인력을 사용했을 때 대기업엔 월 30만원, 중소기업엔 월 60만원씩 주는 게 전부다. 그러나 소위 좋은 일자리일수록 상시 충원이 바람직하다. 육아휴직 기간 비정규 대체인력을 고용하는 것은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도 맞지 않고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기계가 노동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는 시대에 청년들을 더 많이 고용하도록 기업에 압력을 넣고 대규모의 일자리 예산을 쏟아붓는 대신 육아휴직과 관련해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강화하는 것이 효과적으로 보인다.

공무원 육아휴직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육아휴직은 무조건 결원 처리돼 충원된다. 동료나 상사의 눈치를, 승진 누락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공무원의 육아휴직 비율은 2017년 기준 10.4%, 이 중 남성이 22.5%라고 한다. 교육공무원은 제외한 통계이니 실제 비율은 더 높을 듯하다. 지난 25일 행정안전부는 역대 최대 규모의 지방공무원 선발 계획을 발표하며 이유 중 하나로 “일·가정 양립문화 확산에 따른 육아휴직 등의 증가”를 들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공무원 휴직 예산 몇 분의 1이라도 납세자들에게 쓴다면 육아휴직, 일자리 창출, 저출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젊은 아빠들을 중심으로 ‘부모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직접 보며 육아에 동참하고 싶다’ ‘회사일만 하느라 집에서 설 자리가 없어진 아버지처럼 살기 싫다’는 목소리다. 최근 많이 생기고 있는 ‘직장맘 상담센터’들을 중심으로 지자체들이 ‘직장대디’들의 부모권 요구에도 귀를 열고, 육아하는 아빠들을 위한 장소 마련과 고충 상담 등 ‘함께하는 육아’에 앞장서길 기대한다.

남자후배들의 육아휴직을 환영하고, 응원한다. 아빠들이 편견 속에서 용기를 내고, 정부도 전향적 정책들을 검토한다면, ‘더 이상 아빠 육아휴직이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 사회’ ‘육아휴직을 안 가는 부모가 이상한 사회’는 앞당겨질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 잘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뭐 그리 많겠는가.

<송현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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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리핀으로 불법 수출된 쓰레기가 한국으로 반환된 적이 있다. 수출된 폐플라스틱 더미에 생활쓰레기가 무분별하게 섞여 있었고, 그 결과 국제적 망신과 불신을 불러왔다. 일단 생산이나 소비만 하고 보자는 식의 경제방식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원자력발전 분야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1978년 고리 1호기를 필두로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월성의 건식저장소는 올해 안으로 저장소 추가 건설을 시작하지 않으면 발전소 운영 자체를 멈춰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고리, 영광, 울진의 경수로 발전소에서는 사용후핵연료를 수조에 ‘임시’ 저장하고 있다. 그런데 ‘임시’라는 말은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여부와 관련한 공식적인 정책이나 합의가 부재한 상태에서 사용후핵연료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라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고, 이런 이유로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대한 법 규정도 모호하기 그지없다. ‘중간 저장’의 정의만 있을 뿐 현재의 ‘임시’ 저장 상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것은 단지 법 규정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안전 문제와 직결된다.

독일은 원자력발전소 부지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에 대형 여객기의 충돌에도 끄떡없는 중간저장소에 준하는 안전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소는 외부의 공격에 대한 물리적 방호를 갖추고 있지 않다. 놀라운 사실은, 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소나 최종 처분장 부지를 이야기할 때면 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작 발전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열량이 가장 높은 상태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떠한 방호설비도 갖추지 않은 수조(경수로 원전의 경우)에 그냥 계속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가 발전소 부지의 ‘임시’ 저장소에서 포화되고 있다는 사실만 부각되어 현재 사용후핵연료의 안전 문제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어느 학자는 지진과 쓰나미 등 위험이 충분히 예견됐지만 무시됐다는 의미에서 ‘검은 코끼리’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영어에서 ‘방 안에 있는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는 방 안을 코끼리가 돌아다니지만 불편한 사실을 모두 무시한다는 뜻이고, ‘검은 백조(Black Swan)’는 발생 확률이 매우 낮은 희귀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이 두 용어를 결합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검은 코끼리’로 표현한 것이다.

사용후핵연료의 ‘임시’ 저장 상태야말로 한국사회의 ‘검은 코끼리’다. 지금까지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서 ‘임시’ 저장 상태가 결코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원자력학회는 세 차례에 걸쳐 원자력발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원자력발전 유지·확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생산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원자력발전소 확대를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는가? 국민에게 정말 책임 있는 자세는 전략적 의도에 기반한 원자력발전 이용 조사가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대안 제시와 의견수렴이어야 하지 않을까?

<김수진 | 고려대 BK21플러스BEF경제사업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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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두 딸의 아버지다. 기타를 만들던 그가 부당한 해고에 맞서 싸우며 거리로 나왔을 때, 둘째 딸은 중학생이었다. 그는 기타 회사에서 해고된 노동자의 가족이 나오는 동화 낭독을 지켜보다 울컥했다며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둘째가 책에 나오는 딸과 같은 나이였어요. 나 때문에 정말 고생했지요. 내가 딸들한테 해준 게 없어요. 둘 다 처음에는 나를 응원했는데, 워낙에 오래되니까 그만하라고 하지요. 지금도 두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그의 시간이 13년간 길 위에서 멈춰 있는 동안 두 딸은 자라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아버지는 부당한 세상을 딸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신념으로 긴 시간을 버텼지만, 두 딸은 어떻게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왔을까.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냉혹하고 비정한 세상에서 가장을 빼앗긴 가족이 감당했을 삶의 무게는 섣불리 짐작할 수 없다.

아마 그도 이리 오래 집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분하고 억울해서 서툴게 시작한 싸움이 이리 길어질 줄은 싸우는 이들도, 세상도 예상하지 못했다. 10여년 전 수요일마다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그들과 연대하는 공연이 이어질 때, 해고 노동자 가족들이 함께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 팔 때, 해외로 나가 그들이 왜 더는 기타를 만들 수 없는지 외칠 때 싸움은 머지않아 끝날 줄 알았다. 도무지 지치지 않는 그들이 희망의 증거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 함께 싸우던 동지들이 떠나고 끝까지 남은 이들은 길 위에서 수없이 자문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언제까지 싸워야 하냐고. 그리고 그들이 4050일 동안 스스로 얻은 대답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다. 고작 서너 번 그들과 함께한 사람으로서는 그들의 답을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들이 옳았으므로,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쫓은 회사가 부당하므로, 그 회사의 손을 들어주는 법의 판결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으므로 그들이 이기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단단히 서 있는 그들을 보면서 희망을 품는다. 올봄에는 그들 모두 웃는 얼굴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당연한 희망을.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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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대학에 들어가 보니 선배들이 걸핏하면 계급, 계급 하더라고. 계급이 뭔지 20년쯤 고민했어. 알고 보니 별거 아니던데. 벤츠 매장에 가봐. S클래스, E클래스, C클래스…. 이놈 요놈 저놈은 같은 클래스다, 이게 계급(class)이야. 

이런 크나큰 깨달음을 얻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한국에는 ‘노동자’만 있더라고. ‘노동계급’은 없더라고. 현대자동차 직원 평균 연봉은 9000만원대야. 1차 하청업체는 5000만원대야. 2차 하청업체는 3000만원대야. 3차 하청업체는 2000만원대야. 하청업체 직원들한테 물어보자. “현대차 직원들이 당신들하고 같은 클래스라고 생각하십니까?”

알고 보니 ‘역사의 필연’ 같은 건 개뿔이더라고. ‘인간의 의지’가 중요하더라고. 사민주의가 왜 위대한지 알아? ‘클래스가 같아지려는 의지’ 때문이었어. 이 회사 다니는 나, 저 회사 다니는 쟤, 그 회사 다니는 그, 우리 모두 비록 회사는 다르지만 비슷한 월급을 받자는 거잖아. 그래서 임금교섭도 회사별로 따로 하지 말고 한꺼번에 산별교섭을 하자는 거잖아. 우리끼리 임금경쟁 하지 말자는 거잖아. 그래서 우리 노동계급을 만들고 유지하자는 거잖아. 사민당의 3대 가치가 ‘자유, 정의, 연대’야. 투쟁으로 하는 연대만이 아니라 제도로 하는 연대. 임·금·연·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상을 등진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씨름한 테마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었어. 물론, 동일한 일에 대해 동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 시장원리에 맞지. 하지만 설마 그가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싶어서 그랬겠어? 그는 어떻게든 ‘노동계급’을 만들고 싶었던 거야. 

독일 노동계급이 왜 위대한 줄 알아? 걔들은 노조가 실업기금을 운영해. 왜? 실업자도 노동계급이거든. 직업교육 정책에 참여해. 왜? 노동계급이 될 아이들이거든. 그런데 현대차 노조는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해. 왜? 쟤들의 이익이 자기의 불이익이거든. 민주노총은 노동회의소 설립을 반대해. 왜? 노동회의소가 생기면 노조가 없어도 여기서 교육과 서비스를 받게 되거든. 그러지 말고 얼른얼른 ‘노조’를 만들어서 민주노총에 가입하라는 거야.

네이버에 노조가 만들어지네? 잘된 일이지. 대한항공에 새 노조가 만들어지네? 박수칠 일이지. 근데 이렇게 해서 노동계급이 만들어질까? 그건 아닌 것 같아. 산별교섭? 아직도 그 떡밥을 믿어? 막상 산별교섭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쳐봐. 현대차 노조가 반대할 거야. 하청업체들하고 한꺼번에 임금교섭을 하게 되면, 현대차 직원들은 임금 인상률에서 양보를 해야 하거든. 사민주의는 일종의 ‘양보 혁명’이거든. 그런데 생각해 봐. 가뜩이나 양보도 싫은데, 혁명적으로 양보하는 것은 더 싫겠지.

사민주의 정치의 기본은 노동계급이 지지하는 정당이 홀로 집권하거나, 다른 당과 연합해서 집권하는 거야. 옛날엔 농민당과, 요새는 녹색당과. 그런데 한국에는 노동자만 있고 노동계급이 없잖아. 그러면 정의당의 전략은 뭘까? 정의당은 ‘좀 쎈 민주당’인가? 그렇다면 민주당은 ‘좀 약한 정의당’인가? 민주당은 수권정당, 정의당은 등대정당? 노동계급 대신 청년계급이 있기는 하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보다 청년들의 이해관계가 더 통일시키기 쉬울 것도 같거든. 그런데 이건 안될 것 같아. 두 당의 연줄 돈줄을 보아하니 그러기 힘들어. 무엇보다 ‘의지’가 없어.

노동자만 노동계급인 게 아냐. 실업자도 노동계급이야. 가정주부도 노동계급이야. 중요한 산업예비군이거든. 자영업자도 대체로 노동계급이야. 자영업자 중 70%가 한 명도 고용하지 않는다잖아. 학생은 물론 미래의 노동계급이야. 다들 취업하려고 발버둥치잖아. 그런데 이들과 같은 클래스가 되기 싫어? 같은 계급이 될 의지가 없어? 그래도 ‘노동자’ 운동은 해. 좋은 거니까. 지지해줄게. 하지만 ‘노동계급’ 운동인 척하지는 마. 그건 사기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기.

근데 노동자도 실업자도 주부도 자영업자도 노동계급이 될 수 있다면, 노동계급의 정체는 뭘까? 이건 10년쯤 고민했어. 그런데 뜻밖에, 1988년 선배들이 많이 얘기하던 단어에 답이 있더라고. 그건 ‘민중’이었어.

민중이 별거야? 영어로 그냥 ‘피플’이야. 존 레넌이 노래한 파워 투더 피플. 그런데 피플(people)을 위하는 사상이 포퓰리즘(populism)이라며? 아, 그럼 지금부터 포퓰리즘 해야겠네. 사민주의여, 아듀.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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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에 따르면 1월 실업률이 4.5%로 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하는 등 고용지표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청년실업률은 8.9%로 구직단념자를 포함하면 청년 4명 중 1명은 실업자라고 하니,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농업부문에선 다소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5년에 9만5000명이던 청년 농업인이 2017년에 7만명까지 줄어 농업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최근 도시를 떠나 농업·농촌에서 꿈을 펼치려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2017년에는 귀농·귀촌 인구가 50만명을 넘어섰으며, 그중 40세 미만이 50%를 차지했다. 2022년까지 1만명 육성을 목표로 추진 중인 정부의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사업’도 지난해 2.1 대 1, 올해 1.9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농업부문이 청년실업률 감소에 기여하고, 국민의 식량창고를 손에 쥐고 있는 농업·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자발적으로 농업·농촌에 뛰어든 청년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사례를 늘려간다면 더 많은 이들이 농업·농촌을 찾을 것이고,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농촌의 세대교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창농 희망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정부의 청년창업농 지원자 중 45%가 농사경험이 없고, 농사 실패나 주민과의 갈등으로 역귀농한 사례가 10%에 달했다. 이를 볼 때 청년들을 농업·농촌으로 유인하는 것 못지않게 제대로 된 교육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농협은 청년들이 농업·농촌에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6년 미래농업지원센터를 개원해 후계농·창업농에게 컨설팅·자금지원·판로확보를 원스톱으로 지원하고, 2017년부터는 농촌 정주를 희망하는 농업계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안성에 농업기술, 지게차 운전, 드론 조종 등을 6개월간 합숙하며 교육하는 ‘청년 농부 사관학교’ 과정을 개설했다. 모집기간이 짧았지만 토목엔지니어, 패션디자이너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청년 22명이 지원해 지난 18일 무사히 교육을 마치고 졸업식을 치렀다.

농협은 청년 농부들이 농촌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농장 운영을 돕고, 판로 및 금융 지원 등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한 ‘청년 농부 사관학교’를 창농교육의 산실로 육성해 나갈 방침이다. 오는 2022년부터는 매년 500명의 청년 농부를 양성할 수 있도록 약 600억원을 투자해 교육관도 만들 계획이다.

‘평범한 것은 포장도로와 같다. 걷기에는 좋지만 꽃이 피지는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청년 농업인들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비포장길을 선택했다. 울퉁불퉁한 흙길을 걷듯 어렵겠지만 농촌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자신만의 농사법을 찾게 된다면 머지않아 아름다운 꽃을 피우리라 확신한다. 농촌에서 꿈을 키워가는 청년 농부들을 응원하며, 농업에서 새로운 길을 찾길 원하는 젊은이들이 ‘청년 농부 사관학교’의 문을 두드리길 기대해 본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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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해서 귀하게 대접받는 것들이 있다. 백마는 회색 털로 태어난 말이 나이 들어 노화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위용이 남달라서 고귀한 이들의 의전용 말로 사용되었다. 잎이 하나 더 달린 클로버는 돌연변이이거나 생장점에 난 상처 때문에 갈라진 것일 뿐이라지만, 흔치 않기 때문에 행운의 상징이 되었다. 두 나무의 가지가 연결되어 한 나무처럼 자라는 연리지 역시 어쩌다 이루어진 매우 특이한 현상이지만, 그렇기에 세상에서 보기 드문 효성이나 사랑을 표상한다.

그런데 사람의 신체에 대해서는 유독 특이한 것을 귀하게 여기기는커녕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일이 많다.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가 물갈퀴처럼 붙어 있거나 엄지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달린 것은, 비교적 작은 차이에 불과하고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한 것도 아니다. 장자(莊子)는 이를 자연을 거스르는 군더더기로 보아서 인위적인 유가를 비판하는 비유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모습일 뿐이다. 단지 많은 사람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꺼림을 당하는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연암 박지원은 서얼에 대한 국가적 차별을 없애자는 주장을 담은 가상의 상소문을 썼다. 그 서두에서 하늘이 나무의 외형이 특이한지 평범한지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비와 이슬을 내리는 것을 들어서 출신의 차이에 구애되지 말고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끌어내었다. 그가 보기에 서얼의 진출을 막는 법은 정도전, 유자광 등 특정 인물로 인해 어쩌다 생겨서 권세가들의 이기심에 의해 고착된 것일 뿐, 아무런 근거도 실익도 없음이 명백하였다.

우리 시대에 공적인 적서 차별은 없다. 그러나 오늘처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화두로 떠오른 때도 없다. 이를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하는 순간, 차별과 배제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체적 조건, 사회경제적 조건은 물론 성별, 국적, 인종, 가치관, 행동 양식과 취향에 이르기까지,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는 데에서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다. 다수와 소수 역시 늘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다. 외국 출신이라서 쫓겨날 처지에 있던 이사(李斯)가 진왕(秦王)에게 한 유명한 말을 다시 음미할 만하다. “태산은 조그마한 흙덩이도 거부하지 않으므로 그처럼 커질 수 있었고, 하해는 가느다란 물줄기도 배제하지 않으므로 그처럼 깊어질 수 있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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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서훈제도는 1949년 4월 ‘건국공로훈장령’이 공포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해 광복절,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유공자로 자신과 이시영 부통령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셀프 서훈이었다. 더 큰 문제는 정권이 독립운동의 공적을 독점했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정권 내내 독립유공자는 이승만·이시영 두 사람뿐이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집권하자마자 독립유공자 서훈에 본격 나섰다. 유공자 포상보다는 서훈 확대로 군사정권의 약점을 상쇄하자는 의도가 강했다. 1962년과 1963년에는 각각 유공자 204명과 227명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1965년 한일협정 조인 뒤에는 더 잦아졌다. 이후 서훈을 관장하는 원호처(보훈처)가 설립됐다.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 학생들. 뒷줄 맨 오른쪽 유관순 등이 3·1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국가보훈처 유관순(뒷줄 맨 오른쪽)을 비롯한 이화학당 학생과 교사의 사진. 3·1운동에는 이화학당 등 여학교 학생들이 적극 참여했다.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조국의 독립과 건국에 공로가 있는 선열을 기리는 독립유공자 서훈에는 건국훈장,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이 있다. 건국훈장은 다시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등 1~5등급으로 나뉜다. 서훈 포상자는 1만5180명. 이 중 1~3등급에 해당하는 대한민국장(30명), 대통령장(92명), 독립장(821명)은 6%에 불과하다. 서훈에서 등급을 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이기 때문이다. 유족에게는 보훈급여금이 차등 지급되기도 한다. 서훈은 전문가로 구성된 공훈심사위원회가 독립운동 공적사항을 엄정하게 평가해 정해진다. 그러나 서훈 이후 장지연·김성수처럼 친일행적이 드러나 훈장이 취소되고, 이승만의 비서 임병직(대한민국장)처럼 과대 평가됐다는 논란도 적지 않다.

정부가 26일 유관순 열사의 독립유공 훈격을 ‘독립장’에서 ‘대한민국장’으로 높이기로 했다. 서훈 승급은 2008년 대한민국장으로 승격된 여운형에 이어 두번째다. 유 열사의 승급은 3·1운동의 상징인데도 공적이 낮게 평가됐다는 지적을 수용한 결정이다. 3·1운동 100주년에 걸맞은 상징적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훈격 격상 요구가 거세져 ‘서훈 인플레’가 나타날까 염려된다. 형평성 문제도 있다. 만주에서 6형제와 독립운동을 한 우당 이회영도,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도 유관순 열사와 같은 3등급이다. 서훈의 기준은 공적에 대한 학술적 평가가 먼저여야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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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든 모더니티 역사에서 결정적 영향을 미친 역사적 전환점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의 경우 1776년 ‘건국’이 그러하다면,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그런 위상을 가진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이런 역사적 전환점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의를 갖는 사건은 1919년 3·1운동일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서 물론 한 사건이 모든 것을 좌우하진 않는다. 3·1운동 이전에 동학농민혁명, 만민공동회, 광무개혁, 의병투쟁 등 역사적 분수령들이 존재했다. 이런 대내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변화된 국제 환경 아래서 분출한 것이 바로 3·1운동이었다. 우리 모더니티 역사에서 3·1운동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3·1운동과 그 결과로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통해 우리나라가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통에서 현대로의 일대 전환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가 남다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과거 100년이 결코 짧진 않았다. 3·1운동 이후 1945년 일제 식민지배로부터 광복을 이뤘고, 20세기 후반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궜다. 그렇다면 이제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어떻게 열어가야 할까.

미래 100년의 전망을 살펴보기 위해선 현재 우리 사회의 선 자리를 돌아봐야 한다. 2019년 대한민국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성공의 대한민국’과 ‘고뇌의 대한민국’이 그것이다. 먼저 선진국 입구에 도달해 있고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의 모범 사례라는 사실은 ‘성공의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증거다. 하지만 다른 한편 현재의 우리 사회는 저성장, 불평등, 사회갈등, 인구절벽, 각자도생(各自圖生)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고뇌의 대한민국’의 모습 또한 보이고 있다.

고뇌의 대한민국을 극복하고 성공의 대한민국을 계승하기 위해선 우리 사회가 놓인 지구적 환경을 지켜봐야 한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 100년은 경제·사회적 대전환이 계속되고, 그 속도는 배가될 것이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제4차산업혁명’ 또는 ‘인더스트리 4.0’이라 불리는 새로운 과학기술 혁명은 이미 사회 제도는 물론 개인 생활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또 20세기가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였다면, 21세기에는 미국·중국·인도 간의 헤게모니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 혁신과 사회 불평등의 동시 증대, 정치적 포퓰리즘의 부상과 문화적 정체성의 도전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세계사적 대전환에 대응하여 진정한 선진국으로 성숙하기 위해선 두 가지 과제가 중요하다. 첫째, 앞서 지적한 저성장, 불평등, 사회갈등, 인구절벽, 각자도생 문화를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둘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바탕으로 동북아 협력과 번영을 일궈나가야 한다. 동북아는 세계 정치·경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 및 협력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동북아의 번영을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일차적 조건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과 이에 기반한 한반도 경제·사회 번영에 있다.

과거 100년처럼, 미래 100년 또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대한민국 미래 100년은 크게 ‘단중기 미래(2019~2045)’와 ‘중장기 미래(2045~2119)’로 나눠볼 수 있다.

단중기 미래는 ‘민주공화국 100년’(2019)과 ‘광복 100년’(2045) 사이의 기간이다. 이 단중기 미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토대로 새로운 ‘비전 2045’를 추진해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 핵심 비전은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선진국으로의 공고화, 동북아의 협력과 번영을 선도하는 중추국가로의 도약에 있다고 봐야 한다.

중장기 미래는 ‘민주공화국 200년’(2119)으로 가는 기간이다. 이 중장기 미래 100년의 전망을 예측하긴 어려운 일이지만 단중기 미래를 기반으로 해 중장기 미래 비전을 모색해 가야 한다. 여기에는 인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고 선도하는 문화국가로의 부상을 그 중심 비전으로 삼을 만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 김구가 ‘나의 소원’에서 남긴 말이다. 앞으로 진행될 미래 100년은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해 가면서 그 안에 긴장과 갈등을 내연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그 긴장과 갈등을 완화하고 해소하는 문화국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그 방향을 중장기 미래 비전으로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3·1운동 100주년을 눈앞에 둔 한 사회학자의 소망을 적어둔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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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계셨던가요. 당신이 이승의 삶을 마무리하고 산 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던 의례에서 당신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선생님이라고 불렸습니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전개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호칭도 변화해 왔습니다. 초기에 당신들은 피해자라는 당연한 호칭조차 얻기가 어려웠지요. 1945년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름 없는 피해’를 안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1990년대 한국에서 ‘위안부’ 운동의 흐름이 형성되면서 당신들은 피해자로, 눈물짓는 한 많은 피해자로 우리 역사에 균열을 내며 등장하였지요. 그동안 식민지역사를 누구의 입장에서 써 왔는지, ‘과거청산’이란 도무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가와 여성시민의 관계는 무엇인지, ‘할머니’와 현세대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당신들은 우리에게 많은 물음을 주셨습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를 누비면서 피 묻은 언어로 절규했던 증언에서, 유엔과 같은 국제사회에서, 수많은 집회와 강연에서 당신들은 ‘생존자’인 자신의 본 모습을 찾으셨지요. 증언은, 있었던 과거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청취자들과 함께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보는’ 체험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지요. 당신들은 그저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공할 만한 피해 속에서 당신의 의지와 지혜로, 하늘과 선한 이웃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죽어간 자들을 증언하는 증인이셨습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가 주최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373회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집회 현장에 지난달 28일 타계한 김복동 할머니의 영정이 놓여 있다. 이상훈 기자

그렇게 2000년대가 도래하였고, 우리는 새로운 천년에는 전시 성폭력에 대한 불처벌 관행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절박한 바람으로 2000년 12월, 도쿄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이라는 아시아 10여개국의 참여 속에서 초국적 페미니스트 국제시민법정을 치렀습니다. 비록, ‘2000년 법정’이 내렸던 최종 권고들-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관련해서 자행된 행위들이 국제인도법에 따라 강간과 성노예 범죄에 해당하고, 일본 국왕 히로히토 등 본 법정의 피고인들은 유죄이며, 일본 정부도 성노예제가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이에 따른 피해배상, 진실규명, 피해자 명예회복과 시민교육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는 않았지만 그 의의는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의 검사단과 피해자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위안부 문제를 공동 기소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세계의 시민, 언론, 연구자들에게 ‘위안부’ 문제가 얼마나 보편적이고도 역사적인 문제인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체계적 강간이 무엇인지, ‘강제’가 무엇인지 해당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을 다시 쓰게 했습니다. 당신들의 에너지가 없었다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복동 당신은 여기서 더욱 멀리 나는 ‘나비’가 되셨지요. 당신은 길원옥님과 함께 세계의 전쟁과 성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연대하고 지원하겠다는 뜻을 강력히 밝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동참으로 ‘나비기금’을 탄생시켰습니다. 나비기금은 콩고내전의 성폭력 피해자들, 베트남전쟁 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와 아동 등 국경을 넘어 훨훨 날아갔습니다. 당신은 우간다 피해자에게, 동일본 대지진 피해자들에게, 포항지진 피해자에게도 가슴을 열고 과감하게 기부하셨지요. 당신의 고통을 오히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힘으로 승화시켰던 것이지요. 나비 얘기를 하려니, 오히려 당신은 더 높게 더 끝까지 난다는 ‘매’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의 장례식은 시민장으로 치러졌어요. 당신의 빈소에는 정말 수많은 조문객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엄마, 복숭아뺨을 가진 고등학생들, 길 가다 그냥 들렀다는 시민들, 그리고 우리의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많은 공직자들이 조문하였습니다. 서울에만 조문객이 6000명을 넘었고, 전국적으로 1만명이 넘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도쿄, 워싱턴 등 국외에서도 거의 20개의 분향소가 차려졌습니다. 장례위원으로 빈소를 잠시 지켰을 뿐이지만, 저는 할머니의 빈소와 같이 풍요롭고 다채로운 장례공간을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한 수많은 조문객들이 느슨한 관련성을 가지고 애도하는 그곳에서 하나의 공론장(public sphere)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의 조의금이 답지하였고, NGO들이 마련한 추모와 문화행사가 계속되었습니다. 혈연도, 학연도, 지연도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흘러 넘쳤습니다.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할머니의 마지막 대접을 넉넉히 받았고, 오래된 동지들과 새로운 친구들 간 만남의 장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장례를 통해 당신의 한 모습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다양한 시민들이 진술한 에너지로 만났던 이 애도의 공간에서, 당신의 따스한 가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계를 껴안는 넓은 스케일의 운동가 여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피해생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님, 이제 굽이굽이 이승으로 날아가시어 지극한 평화에 머무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원하신다면, 나비처럼 매처럼 거듭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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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그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았다. 가수 이효리씨가 자신의 몸무게를 공개했던…. 무대화장을 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에서 그녀는 잠시의 주저도 없이 “지금 57㎏이에요”라고 말했다. “속근육이 쪄서인지, 입던 옷들은 다 맞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나와 이효리씨 사이에 접점이 생기는 날이 오다니! 동영상을 보기 며칠 전, 나는 체중감량을 돕는다는 유료 애플리케이션에 가입했다. 내 목표 몸무게는 57㎏. 그런데 ‘원조 아이돌 이효리’가 그 몸무게라지 않은가.

쉰이 넘은 여고 동창들은 만나면, “탤런트 누가 하는 파운데이션” “누가 바르는 립스틱”이라며 서로의 화장품을 내놓고 떠든다. 그만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얼마나 많이, 대중매체에 재현되는가는 세대를 막론하고 그 내용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기호에 영향을 미친다. 여배우 제인 폰다와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시인이며 여성운동가인 로빈 모건은 미디어에서의 여성 재현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의기투합해 2005년 여성미디어센터(Women’s Media Center)를 만들었다. 이 기관은 2012년부터 ‘미국 미디어에서의 여성 현황’이라는 연례보고서를 낸다. 보고서는 뉴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공연예술, 게임 등을 망라해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숫자가 제작 분야에서 일하는지,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지를 촘촘히 분석한다. 198쪽에 이르는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메인 뉴스 시간 앵커와 기자의 63%가 남성인 반면 37%가 여성이었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영화 100편 중 96.4%가 남성이 감독했던 영화인 반면 여성 감독은 3.6%였다. 텔레비전 드라마의 경우, 남성 연출자가 75%인 반면 여성 연출자는 25%였지만, 그나마 이 수치는 전년도에 비해 4%포인트 상승한 것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스컬리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였다. 스컬리는 1993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뒤 2016년 다시 후속편이 나온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X파일>의 여자 주인공. 물리학을 공부한 뒤 법의학을 전공한 박사이자 FBI 요원이다. 이성적인 남성이 감성적인 여성을 구하는 대부분의 드라마 구도와는 달리, <X파일>의 스컬리 박사는 초자연적인 ‘감(感)’을 믿다가 곧잘 곤경에 빠지는 남성 동료를 단단한 논리와 과학적인 지식을 동원해 구해내는 냉철한 여성이다.

지난 2월12일 여성가족부에서 발간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개정판은 “방송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모를 보여주고 다른 외모 각각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배우 지나 데이비스가 창설한 ‘미디어 속의 젠더 연구소’는 지난해 허구의 인물인 스컬리 박사가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X파일>을 본 경험이 있는 2021명의 25세 이상 이공계 전공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X파일>을 여덟 시리즈 이상 본 열성 시청자들은 그보다 적게 본 응답자들에 비해 더 높은 비율로 이공계 직업을 갖고 있었고, “내 딸이나 손녀가 이공계 직업을 갖도록 격려하겠다”고 답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일곱 살만 되면 ‘수학’과 ‘남자’를 짝지어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자란다는 아동발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비추어보면, 허구의 인물인 스컬리 박사가 사회에 끼친 영향은 여성 노벨상 수상자 못지않은 셈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가 입길에 오르내린다. ‘음악방송 출연가수들은 모두 쌍둥이?’라고 표현하며 아이돌 그룹의 외모획일성을 지적한 대목이 논쟁에 불을 붙였다. 나라가 외모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반발이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2017년부터 이른바 ‘마른 모델 퇴출법’을 시행해왔고, 루이뷔통, 구치 등의 세계적인 패션기업들은 ‘모델헌장’을 마련해 일정 기준 이하의 마른 모델은 자사의 패션쇼와 광고에 세우지 않고 있다. 모델들의 건강을 보호하는 한편, 어린아이들이 비현실적인 신체 이미지를 가져 자기비하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세상 어느 누구의 얼굴도 같지 않은 다양성은 미디어의 영역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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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26일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2017년 말에 이은 두 번째 특사다. 전체 대상자 4378명 가운데 일반 형사범이 4242명으로 다수이며, 시국사건으로는 ‘7대 집회’ 관련자 107명이 포함됐다. 사면 여부를 두고 관심을 모았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특사는 민생·생계형 사범 위주였던 첫 특사에 비해 대상과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상당히 ‘절제된’ 사면권 행사로 귀결됐다. 법무부는 “사회적 갈등 치유와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을 위주로 대상자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묘소에 참배한 뒤 묘비를 둘러보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사드 배치, 밀양 송전탑, 제주 해군기지, 광우병 촛불집회, 세월호 관련 사건, 쌍용차 파업 등 7대 집회 관련자들이 특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지극히 온당한 조치다. 과거 정부의 잘못된 정책 집행에 따라 처벌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면 대상자의 범위가 제한적인 것은 아쉽다. 제주군사기지범도민대책위원회 측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와 관련해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199명에 이르는데, 사면 대상(19명)은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며 실망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한상균 전 위원장이 사면 대상에서 빠진 것도 보수진영의 반대 여론을 과도하게 의식했기 때문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첫 특사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공약을 지킨 점은 바람직하다. 과거 경제활성화 등의 미명으로 재벌총수 등 경제인들에게 마구잡이로 은전을 베푼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아 다행이다. 이전 정권에서 요식행위에 그쳤던 사면심사위원회가 실질적 기능을 한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어린 자녀를 둔 여성 수형자 4명은 당초 사면 대상에 들어있지 않았으나,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검토해보자는 사면심사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추가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면권이 엄격하게 행사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만 과거 법 적용의 오류를 교정함으로써 ‘적극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측면도 고려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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