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90.2%!”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들고는 기운이 쭉 빠졌다. 2~3주 전만 하더라도 80% 선에 머물던 부정 여론이 더 강화됐기 때문이다. 관련 문항들에 대한 답변을 찬찬히 살펴봤다. 비로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띈 것으로, 응답자(1000명)의 27.4%만이 ‘어떤 조건에서도’ 의원정수 확대를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반대 여론의 심층을 훔쳐본 느낌이었다.

곽노현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 상임대표.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금까지 여론조사들은 의원정수 확대 찬반만 묻고, 그 결과를 피상적으로 해석하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은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 관련 문항을 추가 설문했다. 반대론자(902명)에게 다시 반대 논거 2개를 골라달라고 요청했다. 두 개의 응답률을 합해 88%는 ‘예산만 축낼 뿐’이라며 반대했고, 이어 ‘의원 수가 늘면 정치투쟁만 강화된다’(43.6%), ‘권력자 수가 늘어나면 국민만 피곤하다’(36.5%), ‘정수를 확대해도 대표의 다양성 확보가 쉽지 않다’(31.9%) 였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조건부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표본집단 모두에게 물어봤다. 응답자의 72.6%가 조건부 정수 확대 찬성론자로 드러났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도입 조건부가 35.8%, 증원 비율만큼 의원 세비와 보좌관 수 동시 감축 조건부가 17.4%, 증원 비율만큼 의원 세비만 감축 조건부가 15.8%로 조사됐다. 의원 보수 동결만 해도 정수 확대에 찬성한다는 입장도 3.6%였다.

촛불혁명을 거친 국민들은 직접민주제적 주권자 권리를 너무나도 갈망한다. 국회가 필요한 개헌안을 안 내놓으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고 싶어 한다. 입법에 실패하면 직접 법률안을 발안하고 싶어 하고, 나쁜 법률을 만들어내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어 한다. 이런 요구가 얼마나 강한지 국민개헌발의권은 78.6%, 국민법안발안권은 82.8%, 신규 법률 거부 국민투표권은 82.4%,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88.0%의 지지를 받았다. 국회의원 선수제한제가 필요하다는 국민들도 68.4%나 됐다. 우리 국민은 국민소환제와 선수제한제, 국민발안제와 국민투표제를 도입해 국회의 일탈과 무능에 철퇴를 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이게 민심이다.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스턴트 여론조사로 드러난 결과를 ‘민심’이란 이름으로 포장해서 무조건 옳다고 주장해선 안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신줏단지 모시듯 존중하려 한다면 이번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난 ‘주권자 권리 강화 민심’도 똑같이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조사 결과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세는 자기중심적으로 여론을 가지고 노는 것일 뿐 여론을 존중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선거제 개혁에 이어서 본격 검토하기로 원내 5개 정당이 합의한 ‘원포인트 권력구조 개헌’ 테이블에도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카드를 올려놓는 걸 당연시할 게 아니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고 국민이 국회에 몽땅 넘겨준 헌법 개정 발의권과 입법독점권을 되찾아오는 일이 더 우선이라고 말해준다.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이 의뢰해서 한국리서치가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로 드러난 우리 국민의 심층적이고 종합적인 입장은 분명하다. 근본적 국회 개혁에 대한 확실한 여야 합의 없이는 의원정수 확대를 결연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야가 △임기 중에라도 부패비리 국회의원을 쳐낼 수 있도록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고, △의원 세비와 보좌관을 증원 비율만큼 혹은 절반으로 줄이며, △국민발안권과 국민표결권을 신설해서 국회의 개헌독점권과 입법독점권을 국민과 공유하겠다고 합의하면 의원정수를 확대해도 좋다는 것이다. 요컨대, 작금의 의원정수 확대 반대 컨센서스는 무능국회, 특권국회, 비리국회에 대한 강력한 국민 불신의 표출이자 고강도 국회 개혁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요구라고 해석된다. 이것이 ‘의원정수 확대 반대 90.2%’ 여론의 참뜻이다. 국회를 리셋하라!

<곽노현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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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잘 들어가셨나요? 전 지금 들어왔어요. 오후 8:42

성희: 어머, 제가 너무 늦게 봤네요. 네, 저도 잘 들어왔어요. 고마워요. 전 빈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렇게 다시 연락을 주셨네요. 오후 10:12

진만: 아니에요! 늦긴요!! 전 또 무슨 일 있으신 줄 알고... 제가 더 고맙죠. 이렇게 답신도 해주시고... 전 정말 오늘 성희씨 만나고 와서 너무 좋았거든요. 진짜 무슨 인연을 만난 거 같고... 오후 10:13

성희: 저도요. 저도 아까 거리에서 처음 진만씨 봤을 때... 그때 퇴근하던 길이었죠? 오후 10:18

진만: 네, 알바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마을버스 기다리고 있을 때 성희씨가 말을 건 거예요. 오후 10:18

성희: 네, 제가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진만씨 처음 봤을 때 어떤 인연이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용기를 내 말을 건 거예요. 진만씨, 우리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도 되는 거죠? 저는 진만씨를 또 만나고 싶은데... 오후 10:24

진만: 그럼요, 그럼요! 저도 꼭 그러고 싶습니다! 오후 10:24

성희: 그럼 우리 돌아오는 수요일 오늘 봤던 그 카페에서 또 볼까요? 오후 10:42

진만: 네, 네! 제가 거기 일찍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후 10:42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 다섯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접니다! 오후 10:11

성희: 네, 진만씨. 제가 또 늦게 봤네요. 핸폰이 진동이라서... 오후 10:32

진만: 아니에요. 오늘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전 성희씨가 안 나올까 봐 걱정했거든요. 제가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쑥스럽지만 전 성희씨를 만나고 있는 시간이 정말 좋습니다! 오후 10:34

성희: 네, 저도 진만씨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만씨, 아까 우리 카페에서 우연히 미자 언니 만났잖아요. 저도 그 언니를 한 6개월 만에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그 언니가 진짜 실력 있는 상담사거든요. 아까 우리 심리 테스트 해준 것도 그게 정말 받기 어려운 거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운이 좋은 거였죠. 진만씨랑 헤어지고 그 언니랑 같이 지하철 탔는데, 언니가 진만씨 굉장히 특별한 사람이라고, 기회가 되면 또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언니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흔치 않은데... 정말 진만씨가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미자 언니가 진만씨에게 연락드려도 되죠? 오후 10:57

진만: 그럼요! 성희씨 선배님인데. 제가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닐 텐데... 좀 얼떨떨하네요. 아무튼 좋게 봐주셨다니 감사하죠. 다음 주에 제가 성희씨와 선배님께 밥을 사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10:59

 

3. 열하루째 날 - 카톡

미자: 진만씨, 김미자입니다. 오후 8:09

진만: 아, 네. 오후 8:12

미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진만씨는 영적으로 독특한 사람이에요. 굉장히 열려 있고, 또 한편 연약하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진만씨에게 위기의 시간일 수 있어요. 혹시 요즘 쉽게 지치거나 몸이 무겁지 않으신가요? 오후 8:14

진만: 네... 그거야 제가 상하차 작업도 해서 늘... 오후 8:16

미자: 그거 보세요. 그게 진만씨의 영이 흐려지고 자꾸 장애물이 생겨서 그런 거예요. 이럴 때일수록 누군가 진만씨의 영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오후 8:18

진만: 근데, 성희씨는 정말 괜찮은가요? 오늘 나오지도 못하고 연락도 안 돼서 걱정이 되거든요. 감기가 맞는 거죠? 오후 8:20

미자: 네, 감기가 맞아요. 성희도 저한테 간곡히 부탁을 하더라고요. 진만씨를 제대로 설 수 있게 도와달라고요. 자기도 열심히 기도해 보겠다고 했고요. 오후 8:23

진만: 네, 고마운 말이네요. 오후 8:28

미자: 진만씨,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성희 통해서 바로 만날 날짜 잡을 테니까, 우리 꼭 얼굴 보고 얘기해요. 제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이게 진짜 진만씨만의 특이한 경우거든요. 오후 8:29

 

4. 열여섯째 날 - 카톡

진만: 네, 좋아요. 제사가 되었든 기도가 되었든 다 해드릴게요. 한데, 성희씨... 성희씨는 어떻게 된 거죠? 성희씨를 만나서 얘기를 듣고 난 후, 제가 말씀대로 다 해드릴게요. 오후 9:11

미자: 진만씨, 지금 성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제가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성희의 영과 진만씨의 영은 서로 상극이에요. 제례를 올려서 그 원흉을 없애야 서로 만날 수 있는 거라니까요! 성희도 제 말 듣고 일부러 진만씨 만나는 거 참고 있는 거예요. 이 뿌리부터 완벽하게 캐내야 하는 거예요. 지금 진만씨 마음 어지럽히는 것도 다 그 마지막 저항인 거죠. 힘들더라도 며칠만 더 참고 기도해 보세요. 오후 9:22

진만: 네... 오후 9:31

 

5. 스무하루째 날 - 카톡

진만: 성희씨... 오늘도 연락이 잘 안 되네요... 연락이 안 돼도 그냥 여기에 계속 말할게요. 사실 성희씨... 지금 제 마음이 많이 흔들려요. 같이 사는 친구는 그거 다 사기다, 멍청하게 속지 말라고 말하는데... 저는 계속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서 한편으론 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기라도 좋고 속아도 좋다고요. 그래도 꼭 한번 다시 성희씨 만나서 카페에서 얼굴 보고 커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저는 내일 미자씨 만나서 제례를 드리러 가요. 원래는 70만원인데, 특별히 성희씨 생각해서 50만원에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거 드리면 그분 말처럼 마가 사라진다고 하니까, 그땐 성희씨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마가 사라지든 사라지지 않든, 제 마음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성희씨가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게 전부예요. 기다릴게요. 오전 2:47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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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의 ‘유럽유대인학살추모공원’에는 2711개의 검은 비석들이 ‘관’처럼 늘어선 듯한 거대한 돌무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기념비’다. 축구장 2배쯤의 크기로 독일 내 지식인들과 시민사회의 요구를 독일 의회가 받아들여 2004년 12월 세워졌다. 2700만유로(약 344억원)가 투입된 이 기념비는 유대인 추모와 함께 ‘과거 범죄행위에 대한 세대를 거듭한 독일인의 반성’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월호 광장 철거를 밝힌 다음날인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합동분향소의 모습.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서울지하철 2호선 잠실역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삼전도비(三田渡碑)가 있다. 삼전도비는 1637년 병자호란 때 인조가 신하임을 나타내는 쪽빛 군복을 입고, 세번 무릎을 꿇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린 곳에 세워진 청나라 태종의 공덕비다. 치욕스러운 역사의 기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 <남한산성>에 출연한 배우 김윤석씨(김상헌 역)는 “승리의 역사보다 패배의 역사가 더 처절하고 더 많은 교훈을 준다”고 말한 바 있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는 ‘2·1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기억공간’이 있다. 국민성금 5억2000만원을 들여 2003년 사고 당시 현장을 그대로 재현, 192명이 숨지고 148명이 부상당한 대참사의 교훈을 시민들이 잊지 않도록 하고 있다. 모두가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잊지 않으려는 ‘기억의 공간’들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이 이르면 다음달 철거되고, ‘세월호 기억공간’이 들어선다고 한다. 세월호 천막은 2014년 4월16일 대참사 직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이 세운 뒤 지금까지 304명의 희생자 및 미수습자들을 추모해온 시민공간이다.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숨져가는 순간,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국가와 어른들의 수치스러운 기억들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을 서울 한복판에 조성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억 전쟁>을 펴낸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라며 “기억은 ‘기록된 문서’보다 실체적 진실에 훨씬 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을 재단장 중이다. 세월호 기억공간이 참사로 숨진 304명과의 대화가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도록 조성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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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 꼭 100년 전인 1919년 2월8일 일본의 한인 유학생들이 발표한 ‘2·8독립선언’의 선언서 첫 문장이다. 청년학생들은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일제의 수도 한복판에서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에 일본이 불응한다면 영원한 혈전(血戰)’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아가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새 국가를 건설’하고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밝혔다.

2·8독립선언은 ‘3·1독립선언’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앞서 만주·러시아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 땅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의 뜻을 계승한 것이자 향후 3·1운동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최팔용·송계백 등은 일제 경찰의 ‘요시찰 인물’이었음에도 당시 ‘3대 독립선언’의 하나인 2·8독립선언을 결행했다. 그만큼 독립과 새 나라 건설의 뜻이 굳건했다는 의미다.

독립운동 의지들이 뜨겁게 모아지면서 1919년에는 중국, 일본, 서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독립선언이 잇달았다. 일련의 선언은 자주독립국가를 향한 민중들의 의지를 더 다지게 했고,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드러내는 거사였다. 그 토대 위에서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2·8독립선언을 포함해 100년 전 잇단 선언들은 형식이나 내용, 발표 장소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에 공통적으로 담긴, 일관된 고갱이가 있다. 일제에 맞서 자주독립국가를 만들고, 그 나라는 정의와 자유·평등·평화의 가치가 우선되며, 세계 평화와 인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임시정부의 첫 헌법인 임시헌장 제1조의 ‘민주공화제’로 집약됐다. 물론 100년 전 그들이 간절하게 이루고자 한 그 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공동체였다.

오늘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은 물론 도쿄에서도 마련된다. 다른 독립선언들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관련 기념행사들이 많이 예정돼 있다. 이런 행사가 그저 100돌을 기념하는 형식적 행위에 그쳐선 안된다. 지금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100년 전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으며, 지금 어떻게 하고 있나라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그들의 바람, 피와 땀과 눈물에 응답을 하는 일이어야 한다.

100주년을 제대로 기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협력이 요구된다. 독립운동은 남북한이 따로일 수 없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어느새 남북은 역사관에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남북의 역사관 차이는 예상만큼 크지 않다. 경향신문이 연재 중인 기획시리즈 ‘다 같이 만들어온 세상-다·만·세 100년’에서 처음 공개한 남북 첫 공동역사서 <남북 역사용어 공동연구>(전3권)만 봐도 그렇다. 남북 학자들이 선사시대부터 3·1운동까지의 주요 역사용어를 편찬한 <남북 역사용어 공동연구>를 보면, 독립운동 관련 사건이나 인물 평가가 표현 용어는 다르지만 관점은 비슷하다. 남측의 ‘3·1운동’을 북측은 ‘3·1인민봉기’로 표현하지만 3·1운동의 의미와 중요성은 함께 인식한다. 남쪽에선 안중근을 ‘의사’로 북쪽에선 ‘애국렬사’로 부르지만 그 정신은 모두 높이 평가한다. 유관순이나 신채호·안창호·홍범도 같은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 관련 사건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의 피가 스며든 유적지들은 남북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땅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달 독립운동의 상징인 3·1운동 100주년 행사는 남북 공동으로 치러야 한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것이기도 하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되면서 공동행사에 대한 남북의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행사를 함께 치러내는 일이야말로 남북 동질성의 한 자락을 회복하는 것이자 독립운동가들에게 남북이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응답이다.

또 중국 땅에 묻혀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다시 공동발굴하는 것도 좋다. 분단으로 갈라진 남북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함께 넘나들며 탐방하고, 나아가 세계의 유적지 공동탐방으로 이어진다면 그 의미는 더 커진다. 독립운동사 공동연구 등도 해볼 만하다. 이런 기대를 하는 것은 남북 평화정착을 향한 행보가 어느 때보다 활발해서다. 당연히 대내외적 난관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100년 전 그들이 만들려고 한 민족공동체의 토대를 하나 더 쌓아야 하지 않을까.

<도재기 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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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이 핫하다. 지난달 10일부터 고교생들이 ‘기후를 위한 낙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유럽연합 본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학생과 어른들도 가세하여 이 시위는 매주 목요일 4주째 계속되고 있다. ‘기후를 위한 젊은이들’로 이름 붙여진 시위대답게 “우리는 기후보다 더 뜨겁다” “나의 미래를 불태우지 마라” “공룡도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 “학교 빼먹기? 미래를 위해 싸우기!”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후변화를 늦추자고 외친다.

지난해 12월2일부터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맥없이 끝난 뒤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일이다. 올 초 다보스포럼에 스웨덴 고교생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구온난화를 막자고 연설한 것도 독일, 스위스 등으로 시위가 확산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 기세가 한반도에 도달하지 못할 것은 확실하다. ‘스카이캐슬’ 때문에.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24차 당사국총회가 개막된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민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브뤼셀 _ 로이터연합뉴스

1995년 13명이 죽고 5000여명이 부상한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사린 테러사건’에 충격을 받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인터뷰하며 일간지에 기고를 하였다. ‘폐쇄회로와 개방회로’라는 제목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소위 엘리트들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가담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 글이었다. 이 글에서 작가는 옴진리교 같은 사이비 종교들을 폐쇄회로에 비유하였다. 입구는 있으되 출구는 없는 언더그라운드. 그곳은 완벽한 세계처럼 보인다.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라면 모든 사물의 이치는 명백하기에 교주에게 맹종한다. 그것이 평화를 주고 안식을 주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실재하는 세상은 개방회로의 사회다. 이곳의 세계는 불안하고 혼돈스럽다. 그러나 생각이 열려 있어서 설령 결점투성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하루키식으로 보자면 스카이캐슬의 사람들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서, 그 고교생들이 기후변화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면 누군가 선동했더라도 시위에 나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살아갈 가까운 미래가 지구온난화로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에 절박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재기발랄한 슬로건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미 북서부의 체감온도는 영하 50도에 육박하였다. 추위 때문에 땅속 수분이 얼어 부피가 팽창하면서 마치 지진처럼 ‘충돌음’이 울리는 기현상까지 나타났다. 반면에 남반구 호주는 연일 48도가 넘는 폭염으로 더위를 피해 뱀들이 사람 사는 집으로 피난을 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의 온도 차이가 거의 100도에 이른다니 상황판단 제대로 한 유럽의 고교생들이 기특하다. 한편 캐슬에 갇힌 채 어떤 재난이 닥칠지 걱정할 겨를도 없이 입시와 취업경쟁에 내몰린 우리 젊은이들이 안쓰럽다.

스카이캐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자체가 이미 거대한 폐쇄회로처럼 보인다. 지난여름의 폭염과 현재의 미세먼지, 시한폭탄 같은 플라스틱 문제는 모두 하나의 뿌리, 석유·석탄에 기반한 탄소경제 시스템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지난달 29일 정부는 24조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23개 사업을 발표하였다. 대부분은 철지난 토건 사업, 사회간접자본 구축 사업들이다. 지금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이다. 현존하는 직업의 80%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때이다. 이럴 때 과연 토건 사업이 국토 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일까. 차라리 환경교육 예산을 늘려 기후변화에 책임감을 갖는 세계시민을 길러내고, 환경문제 해결을 새로운 사업의 기회로 만들어내는 청년 스타트업들을 육성한다면 사회‘직접’자본이 되지 않을까. 24조원의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라도 ‘기후변화 감수성’을 높이는 일에 쓰인다면 탄소경제의 컴컴한 폐쇄회로를 탈출할 디딤돌이 될 것이다. 선거연령을 대폭 낮춰 고등학생 정도라면 사회문제에 눈뜨게 하자. 세상을 바꾸는 건 청춘의 또 다른 의무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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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괴물이 탄생하고, 수단과 방법이 절대화되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정당한 수단이 아닌 반칙이 절대화되면 목적을 상실한 괴물들의 세상이 오게 된다.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려면 목적과 이상이 바르고 뚜렷해야 하고, 절차와 규범과 윤리와 법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는 괴물과 그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그 청산의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 되겠지만 정당한 수단과 방법, 그리고 바른 목적을 향하여 청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을 잡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한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은 반칙과 특권을 혐오하는 지도층과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는 강고한 지지층이 나와야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정치의 세계에서는 권력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정치괴물이 탄생한다. 선거법을 위반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죄 없는 사람 잡아다 고문하고, 정적을 인격살인하고, 물리적·정신적으로 반대세력을 협박하면서 권력을 잡으면 괴물정권과 괴물세력이 탄생한다. 우리는 과거에 그 괴물을 보아왔다.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어느 순간 왜 권력을 잡으려 했는지, 그 목적을 잊어버리면서 나라는 쉽게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라가 독재나 파시즘으로 가거나, 경제위기와 거리의 투쟁이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세상이 오게 된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괴물이 먼저인 세상이다.

정책의 세계에서는 특정 세력의 부와 권력을 위하여 정책의 절차적 정당성을 도외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면 막대한 세금의 낭비와 함께 괴물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불투명한 과정을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일진대, 비판세력을 반정부세력 혹은 사상범으로 몰고 인격살인까지 하면서 괴물정책을 관철하면 나라는 망가지고, 국가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불필요한 국력이 낭비되고, 국가는 일반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괴물의 나라가 되어간다. 4대강사업의 교훈이 아직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경제의 세계에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면 경제괴물이 탄생한다. 불법·탈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막대한 재산이 경제수단이 아니라 권력수단이 되는 순간 선출되지 않은 경제권력이 4년, 5년마다 바뀌는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면서 경제괴물로 바뀐다. 이들은 법을 어겨도 죄를 면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을 만들고, 법과 규칙과 윤리를 수호해야 하는 공복과 지도층을 돈의 유혹과 명예의 유혹으로 타락시킨다. 국가는 금권정치와 특권세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민중은 부글부글 끓는다.

이렇게 탄생한 괴물과 혼탁한 사회적 분위기는 사회의 기본을 앞장서서 지켜나가야 할 지식인 세계에서도 괴물을 탄생시킨다. 연구윤리를 어기고, 데이터를 조작하면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쌓는 학자들이 나오고, 자신의 연구를 연구 그 자체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음모론과 지지층의 협박과 대중영합으로 방어하는 괴물이 생겨난다. 이제는 기억이 아련해졌지만 한때 나라를 뒤집어 놓은 황우석 사태가 전형적인 예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연구가 학계의 괴물을 탄생시켰으며, 진영싸움을 하는 학계와 언론, 정치가 학문의 발전을 막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였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대학은 연구와 교육의 장이 아닌 정치판이 되고, 학생과 부모는 공부와 자기개발의 목적을 상실하여 스카이캐슬을 만들고, 언론은 자극적이거나 정파적이 되어 본연의 비판기능을 상실하고, 문화는 천박해지고, 먹거리는 불량해지며, 인간관계는 타도대상 간의 관계이거나 같이 음모를 짜는 사람들 간의 관계로 추락한다.

이러한 사회의 여론은 법과 윤리를 지키는 비판적 여론이 아니라 누구 편이 이기는가에 몰입하고, 자기 편이 아닌 사람은 인격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여론이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적폐이고, 이를 청산하는 것이 적폐청산이다. 괴물을 잡기 위하여 괴물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면 괴물의 세상이 온다. 우리 사회는 괴물이 되지 않아도 괴물을 잡을 수 있는 자신감과 자부심,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순진한 기대라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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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연휴에는 예년에 비해 교통사고, 화재 등 안전사고가 크게 감소했다. 예컨대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우리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한 응급의료인의 의로운 죽음을 접해야 했다. 설 전날인 지난 4일 저녁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병원 집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누적된 피로가 죽음을 부른 것이다. 윤 센터장의 명복을 빈다.

윤 센터장이 어떤 의료인이었는지는 순직 당시의 모습이 말해준다. 그는 사무실 의자에 앉은 채로 숨졌다. 책상에는 응급의료 관련 서류가 쌓여있었고, 사무실 한쪽에는 남루한 간이침대가 있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국내 응급의료 인력과 시설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산하기관이다. 이곳 책임자인 윤 센터장이 설 연휴에 퇴근도 못한 채 전국의 병원 응급실과 권역의료센터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가족들이 설날 귀성을 약속한 윤 센터장과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숨진 그를 발견했다고 한다. 안타까우면서도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죽음이다.

윤 센터장은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자원한 이후 25년간 응급의료의 외길을 걸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맡고 난 뒤에는 응급의료기관평가 사업, 응급의료 전용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상황실 운영 등 응급의료체계 구축에 헌신해왔다. 그는 평소 “부실한 의료체계 때문에 환자에게 황금 같은 시간이 버려진다”며 질타했다고 한다. 자동심장충격기를 ‘심쿵이’라고 부르며 누구나 친근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이국종 아주대 교수와 함께 국내 응급의료계의 양대 버팀목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 <골든아워>에서 윤 센터장을 응급의료체계만 생각하는 의사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말 정신질환자를 돌보던 임세원 의사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데 이어 응급의료에 헌신한 의료인이 또다시 세상을 떴다. 환자만을 생각하다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한 의료인들의 잇단 순직은 척박한 의료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윤 센터장은 생전에 병원을 전전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응급환자를 위해 의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응급의료시스템을 완성해 경각을 다투는 환자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그의 유지를 받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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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자유한국당‘다운’ 갈라파고스적 상상력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한국당 전당대회 날짜와 겹치자 ‘신북풍’ 음모론을 꺼내는 발상 말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7일 “전당대회와 정상회담 날짜가 겹친 것에 여러 해석이 있다. 혹여 내년 총선에서 신북풍을 시도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신북풍’이라 함은 북한이 한국당을 견제하려 전당대회에 맞춰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잡았다는 것이고, 내년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을 도와주려고 북한이 돌발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북·미가 치열한 협상과 줄다리기 끝에 확정한 정상회담 일정을 두고 ‘한국당 전당대회를 덮으려 했다’는 음모론에 대체 어느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는가. 당권 주자들의 음모론은 인용하기에도 낯 뜨겁다. 홍준표 전 대표는 “전당대회의 효과를 감살(감쇄)하려는, 북측이 문 정권을 생각해서 한 술책”이라고 했고, 김진태 의원은 “미·북 회담 일정, 하필 한국당 전당대회 날이다. 김정은·문재인 정권이 그렇게 요청했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가 될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기껏 한국당 전당대회에 대입하는 과대망상은 그야말로 구제 불능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8일 (출처:경향신문DB)

한국당이 전당대회 일정을 정할 무렵 이미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월 말에, 대략 장소는 베트남이 될 것으로 예고됐다. 북·미 정상회담과 겹쳐 전당대회 흥행에 비상이 걸렸으면 남 탓하지 말고 일정을 조정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자기들만의 잔치로 치르면 될 일이다. 군색해진 처지는 모를 바 아니나, 정쟁에 눈이 멀어 ‘신북풍’ 운운하며 덮어놓고 재나 뿌리자는 몽니를 부릴 일이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북풍’ 공작을 일삼으며 선거 때마다 ‘재미’를 봤던 한국당이다. 한국당이 그리 떠받드는 미국이 전당대회 흥행을 깨려는 북한의 술책에 말려 정상회담 일정을 조정했다니,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꼴이다.

전대미문의 지방선거 참패는 “선거 직전에 열린 미·북 정상회담 쓰나미”(나경원 원내대표) 때문에 당한 게 아니다. 한반도 평화의 대전환 흐름을 외면하고 “희대의 위장평화쇼”라는 냉전수구의 틀에 사로잡힌 것 때문에 유권자의 버림을 받은 것이다. 변한 것이 없다. 남북 대치와 전쟁 위기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며 생존해온 냉전 보수의 이해에 갇혀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 케케묵은 색깔론, 하다 하다 ‘신북풍’ 음모론까지, 한국당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 평화 장정에 제동을 거는 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런 한국당에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의 지향에만큼은 정략을 넘어 초당적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연목구어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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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자기 부족에 충실하고, 어떤 부족에 속하는지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한 부족끼리는 편의도 봐주고 서로 끌어줍니다. 계약도 쉽고 돈거래도 수월해집니다. 서로 참견과 잔소리도 주고받죠. 내부 위계질서도 중요합니다. 나이, 지위 등 권위가 귀할 수밖에요.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간 큰일입니다. 모난 놈이 되죠. ‘사회성’도 없는 놈이 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조심조심,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길들였습니다. 개인으로 온전히 서기가 불안하고 그렇게 서 있는 개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은 그 부작용일 겁니다. 게다가 판단마저 흐려지기 쉽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장을 교환하기보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익숙하니까요. 우리 부족인지 저쪽인지, 우리 부족이면 내 밑인지 위인지 가늠합니다. 그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마저 달라지기도 하죠.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뉴욕에서 공무 연수 중 일행과 스트립바를 방문,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스트립바에 가서 옷 벗은 무희 춤을 즐겼다는 제보가 있었죠. 최 의원은 술집에 갔지만, 계산은 사비로 했다고 맞받았습니다. 공무 수행과 사적 행위의 구분은 따져볼 만합니다. 세금으로 묵은 호텔에서 사비로 술 마시는 것은 괜찮은가? 그렇다면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미국과 한국의 술 문화 비교도 해볼 만합니다. 노래방 도우미랑 어깨동무하는 것과 옷 벗은 무희를 쳐다보기만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 노동의 소비는 정당한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정당한가? 하지만 치열하고 건전한 토론 대신 논의는 부족 따지기로 전락했습니다. 최 의원은 제보자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저쪽 부족이니 믿을 말이 아니라고 말이죠.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관여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습니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는 1995년에 만들어진 뒤 단일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적이 없어서 충격을 줬죠. 하지만 이 판결은 놀라운 기술 변화에 따른 우리 사회, 그리고 민주체제에 대한 숙제 또한 주었습니다. 누구나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오늘, 이 법을 어떻게, 얼마만큼 적용해야 하나? 댓글 위력이 얼마나 큰가?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인터넷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당장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죠. 하지만 김 지사와 지지자들은 판사가 속해있다고 추측되는 부족을 도마에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심의관을 지냈으며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적했죠. 저쪽의 판단이니 객관적일 수 없다며 말이죠.

저쪽의 보복이라는 주장은 여러모로 비생산적입니다. 첫째, 이미 지적한 대로 생산적 논쟁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둘째, 주장의 진위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동기를 알아야 판단할 수 있지만 마음속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죠. 그러니 논쟁은 보복이다, 아니다 사이를 맴돌기만 합니다. 자기들 분노 게이지를 한껏 높이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뿐이죠. 문제 해결은커녕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셋째, 치열한 논쟁 대신 부족의 깃발만 가리다 보면 스스로도 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 가리기는 쉽습니다. 증거를 살피고 주장을 가다듬는 게 어렵죠. 쉬운 해결책만 좇다 보면 지성은 마비되고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한인이 많이 사는 미국 버지니아는 정치 추문으로 요즘 시끄럽습니다. 주지사 노덤의 대학 졸업앨범에서 백인테러집단인 KKK 복장을 한 사람과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이들 중 하나가 노덤 주지사라는 의혹과 함께요. 분노가 폭발했고 사임 요구가 거셉니다. 민주당 진영에서도 말이죠. 인종 갈등 극복은 민주당의 주요 과제이고, 그런 만큼 좌시할 수 없죠. 보수 쪽 정치 공세로 볼 만한 정황증거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들먹이는 대신 대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혹을 제기했건, 그 동기가 무엇이건 민주당 정체성을 위협할 사태임을 직감한 탓이죠.

우리 편 잘못에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부족 마인드는 솔직한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 발전에 큰 관심 없어. 우리는 이 정도로 퇴화한 부족이야. 우리는 그 정도 잘못은 잘못으로 보지 않아. 고백을 들었으니 선택을 해야겠죠. 부족 멤버십에 흡족하며 같이 퇴화할 것인가. 성찰하며 앞으로 나갈 것인가.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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