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재수 없게 땀띠와 감기몸살이 함께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허리께에서 시작된 수포와 통증이 온몸으로 번지고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며칠 아침을 울면서 출근했고, 퇴근해서는 울면서 잠들었다. 그제야 내가 대상포진에 걸렸음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한 달을 먹고 자기만 하며 쉬라 권고했지만 회사에 병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 일터에 출근한 지 한 달 만의 일이었고, 나는 인사고과에 따라 3개월마다 재계약되는 파견직 노동자였다.

제때 쉬지 못해 후유증으로 신경통이 남았다. 자칫 재계약이 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함에 아파도 출근을 선택해야만 했던 것의 대가였다. 이런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개인에게 아픔을 감내하는 것만이 아닌 죽음을 감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군과 컨베이어벨트를 청소하던 김용균씨가 죽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던 위험한 작업장은 동시에 정규직 전환이란 희망의 갈림길이었다.

겪어보니 알겠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는 더 일하고 덜 쉰다. 계약 연장은 물론 그 끝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을 참는다. 일이 연장되거나 업무의 강도가 높아져도 이를 거절할 수 있는 권한과 힘이 없으니 결국 해야만 한다. 4대 보험 적용이 되지 않거나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참아야만 한다.

특수노동으로 분류돼 노동자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노동자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지 않으면 쉴 수 있어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통제할 수 없어 자신을 끝까지 소모시킨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니 노동법의 도움을 받기 어렵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용 형태가 불안정할수록, 노동 환경의 질이 낮을수록,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아프다. 김승섭, 박주영, 이나영, 윤서현, 최보경이 2016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고용 형태와 건강의 연관성에 대한 37편의 연구 중 35편에서 ‘정규직 노동자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이 유의미하게 나빠짐’이 드러났다. 이들은 음주나 흡연, 사망과 사고 등으로 몸이 아프거나 간접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수면장애나 만성질환, 우울증 등을 더 쉽게 겪었다.

나아가 이러한 노동 양극화는 건강 양극화로 이어진다. 임금은 적은데 생활비는 많이 들면 대개 식비부터 줄여 영양불균형이 오기 쉽다. 노동 시간이 길어지면 병원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거나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등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위험의 외주화’와 같이 안전 관리가 소홀해진 작업 환경에 노출되면 사망률이나 사고율이 상승한다.

건강이란 실존이자 존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질문과도 같기에 마냥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수 없다. 직접고용·정규직화와 동시에 드러나지 않은 노동과 새로운 노동에 대한 인정이 시급하다. 4대 보험의 문턱을 낮추고 혹은 작업 환경의 관리·감독을 강화해 국가 차원의 다면적 제도 마련과 개선이 필요하다.

고용 형태가 우리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면, 삶의 형태가 우리 그림자를 결정하지 않겠는가. 먼저 떠난 그들의 그림자를 뒤따르는 우리를 보아라. 어떤 노동과 어떤 삶을 좇아가고 있는 것 같은가. 이제는 그만 아프고,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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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소수민족인 사미족에게는 눈을 일컫는 단어가 200개, 혹은 3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오로라의 고장인 극지방에 사는 사미족은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등지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전통적으로 순록을 쳐서 생업을 이어가던 민족이다. 그곳에는 백야도 있지만 일년에 몇십일씩 이어지는 극야도 있다. 해가 전혀 안 뜨는 몇십일 동안에도 눈은 내리고 쌓이고 또 얼어붙는다. 순록들은 두껍게 얼어붙은 눈과 얼음 아래에서 이끼를 뜯어먹으며 그 겨울을 생존한다고 한다. 순록과 함께 자신들의 삶도 결정되는 사미족에게 눈은 바라보고 감상해야 하는 아름다운 꽃송이들이 아니라, 감당하고 극복하고 경외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리는 눈인지, 어떻게 쌓이는 눈인지, 또 어떻게 얼거나 해빙될 눈인지 하나하나가 다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였을 터이다. 그렇더라도 그 단어가 200개 이상이라는 것은 놀랍다. 그 단어들은 도대체 다른 언어로 어떻게 번역될 수 있을까.

단어가 다만 뜻이 담겨 있는 말인 게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눈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누구에게나 그 눈은 다른 눈으로 떠오른다. 즐거운 기억이 있는가 하면 넘어져 깨지거나 발이 젖어 얼어붙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중학교 시절, 폭설이 내려 서울 한복판의 교통이 마비되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 때문에 학교에 걸어가야 했고 오전수업을 빼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수업을 빼먹는 건 달콤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쌓이는 눈을 보는 동시에 그 눈이 녹아 진창이 될 걸 생각하게 된다. ‘눈 녹듯이 사라진다’라는 말은 뭔가가 아주 깔끔히 사라졌다는 걸 일컫는 비유일 터인데, 사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흔적은 어디에나 남는다. 삶이란 그 흔적을 잘 품어 안거나 혹은 잘 처리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흔적이든, 어떻게 해도 잘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든.

다시 사미족의 언어 얘기로 돌아가면, 그들에게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여러 나라의 국경으로 분할되어 있지만 오래전에는 그 땅 전체가 그들의 것이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풀을 뜯어 먹는 순록들의 것이었다. 그러니 다툼이나 분쟁은 있어도 전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에버리진의 언어에도 역시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오직 자연을 의지하고 경외할 뿐이던 그들의 성품 덕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부족 단위로 살아갔던 그들의 사회구조와 생산구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의 전쟁은 국가 간의, 혹은 일방의 국가를 상대로 해 무력을 사용한 싸움을 말한다.

그렇더라도 아예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는 문장은 그냥 그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다. 우리에게는 전쟁이 너무 일상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너무나 일상이어서 더는 그 뜻이나 어감조차 달라지고 무감해져 버린. 전쟁 같은 육아, 전쟁 같은 입시, 전쟁 같은 사랑, 통째로 전쟁 같은 삶. 여전히 분단국가에서 살아가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단어는 국가 간의 무력충돌보다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각박한 삶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어렸던 시절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6·25로 통했다. 동란이라고도 했다. 어른들의 얘기가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반공이라는 말은 익숙했고,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말이었고, 표어 경연대회가 열리면 자동적으로 반공 표어를 지었고, 포스터 그리는 시간에는 빨간색 크레파스가 제일 먼저 닳아 없어졌다. 전쟁이라는 단어는 권력의 가장 강력한 보호수단이었고, 그래서 국경과 국경 사이에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내 나라 안에서 더 가혹하게 작용했다.

단어는 때로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뜻보다 더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종전이라는 말도 그렇다. 종전은 끝나는 말이 아니라 시작하는 말이다. 물론 종전이 된다고 해서 우리 일상 속 전쟁 같은 삶이 갑자기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정치판도 여전할 것 같고, 혐오스러운 정쟁도 여전할 터이고, 어쩌면 더할 것 같기도 하다.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0개가 넘는 단어로 눈을 표현한 북유럽의 사미족 언어에 빗대 생각해볼 때, 우리도 200개쯤의 단계를 거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발전적인 미래에 있지 않겠나 싶다. 단어에 스토리가 쌓여 풍성해질 것이고, 풍성해진 만큼 유연해질 것이다. 단어가 또 다른 단어를 낳아 새로운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사미족을 배경으로 한 소설 <라플란드의 밤>에는 흥미로운 챕터 제목들이 나온다. 극야가 끝난 후의 일조시간을 챕터의 제목에 기록해둔 것인데, 첫날 해가 뜨고 해가 지기까지의 일조시간은 27분이다. 이토록 긴 어둠은 언어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오랜 어둠, 혹은 오랜 역사가 담겨 있는 단어일수록 그 뜻이 깊을 것은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종전이라는 단어가 그럴 것이다.

<김인숙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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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씨네 술집.’ 십년 넘게 드나들던 단골집이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땅거미가 지면 옆구리가 허전해지는 ‘황혼병’이 도질 것 같아 걱정이다. 내게는 단순한 술집이 아니었다. 주인이 내 오랜 후배였다. 1980년대 초반 만났고 나이 차도 많이 나지 않으니 친구라고 하는 게 옳겠다. 문학청년이었던 친구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사업에 손을 대는가 싶더니 1990년대 중반 이후 십여년간 연락이 끊겼더랬다.

그사이 친구는 명함이 여러 개였다. 음반 장사를 하다가 히말라야 오지를 여행하기도 하고 책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6년 서울 혜화동 로터리 골목 입구에 술집을 차렸다. ‘역마살’을 털어내고 눌러앉은 것이다. 테이블이 채 열 개가 안 되는 작은 술집. 안주가 제법이었다. 도미뱃살, 고등어초절임, 가자미식해 등을 조리하는 친구의 손맛은 이내 소문이 났다. 단골이 생겨났다.

친구 술집은 대학로 골목상권의 성공사례로 떠올랐다. 그런데 5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13년째야. 이젠 좀 쉬고 싶어.” 친구의 결단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매 순간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손님’이기도 한 나는 상실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단골집 하나가 또 사라지는구나. 친구가 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오래된 장소가 사라지는 것은 단골들에게는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장소가 사라지면 어디에서도 되찾을 수 없다. 단골집 폐업도 애도의 대상이었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소’는 각별하다. 보통은 공간과 장소를 구별하지 않지만 인문학자들은 저 둘을 구분한다. 그 기준은 사람의 개입 여부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사람의 이야기(문화)가 깃들어 있으면 장소이고 그렇지 않으면 공간이다. 이 잣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 우리는 이야기가 있는 장소에서 태어나 여러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다가 특정 장소에서 이야기를 남기고 눈을 감는다.

굳이 환기할 필요도 없지만 좋은 삶은 좋은 장소에서 이뤄진다. 역도 성립한다. 좋은 장소가 좋은 삶을 만들어낸다.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좋은 사회는 좋은 장소가 많은 사회이고 나쁜 사회는 나쁜 장소가 많은 사회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수행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생각난다. 행복의 요건은 단 두 가지라고 한다. 첫째, 좋은 나라에서 태어날 것. 둘째,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날 것. 좋은 부모는 곧 좋은 집이므로 행복은 전적으로 장소의 좋고 나쁨과 직결된다.

좋은 장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집이다. 하지만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대부분에게는 찾아갈 고향집이 없다. 나만 해도 그렇다. 내 고향은 1980년대 후반 개발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마을은 물론 옛길과 물길, 산과 들이 죄다 사라졌다. 그리고 이농향도. 우리 세대는 근대화의 물결에 떠밀려 대도시로 빨려들었고 대부분이 도시 유민으로 청장년기를 보냈다. 주민등록지가 바뀐 횟수를 떠올려보라.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고향 상실에다 ‘장소 상실’이 더해져 단골집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을 것이다.

단골집, 고향집에 대한 언사가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불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시사IN’ 변진경 기자가 펴낸 <청년흙밥보고서>에 따르면 ‘흙수저’ 출신 청년들이 열악한 식사, 즉 ‘흙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지옥고’에서 살고 있다. 지옥고란 지하실, 옥탑방, 고시원이 합해진 신조어다. 지옥고에서 혼자 흙밥을 떠넘기며 갈수록 좁아지는 미래의 문을 응시하는 청춘들 앞에서 ‘장소의 장소다움’을 거론하는 것은 한가해 보일 수 있다. 이들에게 단골집에 관한 넋두리는 특수부대 출신 아저씨의 무용담처럼 들릴 수 있다.

변진경 기자는 청년들에게 말한다. “지금 당장 가난한 밥상을 뒤집어라. 그리고 (어른들에게, 사회를 향해) ‘괜찮지 않다’고 말해라.” 최근 개봉한 영화 <가버나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쁜 나라, 나쁜 부모 밑에서 태어난 레바논의 한 소년이 불평등과 빈곤, 불의와 폭력이 만연한 도시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하지만 ‘있지만 없는 존재’인 소년에게는 안전한 장소가 주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급기야 자신의 부모를 법정에 세운다. 자신을 태어나게만 했을 뿐 전혀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부모를 제소한 것이다.

<청년흙밥보고서>가 전체의 일부분이라고, <가버나움>이 먼 나라의 픽션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소다운 장소가 없는 사회를 방치했다간 우리 기성세대가 법정에 불려 나갈 수 있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환경운동가 카를 바그너는 향후 40년 인류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다섯 가지 힘 중 하나로 ‘세대 간 갈등’을 꼽았다. 장소가 세대 간 갈등의 구체적 현장으로 떠올랐다. 국가와 사회, 지역과 세대를 막론하고 좋은 장소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우선은 좋은 장소를 만들어가는 공동의 노력이 그 자체로 ‘좋은 장소’ 역할을 해낼 것이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 있다. 장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든 장소보다 장소가 만든 사람이 더 많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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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경기 안성시에서 이번 겨울 들어 첫 번째 구제역이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31일까지 3건의 구제역이 발생했다. 이후 추가 발생은 없으나 그동안 사례를 봤을 때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은 안심하기 이르다.

구제역 발생 농장과 주변 농장에 대해 실시한 긴급 혈청검사에서 발생 농장 주변 500m 이내 우제류 농장에서 구제역 항원이 검출됐고, 다수의 농장에서 감염항체(NSP)가 검출됐다. 안성과 충주의 소 농장에서 구제역 항원과 주변의 다수 농장에서 감염항체가 검출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안성과 충주 지역은 구제역 바이러스에 상당히 오염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지역에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입자가 작고 전파가 쉽다. 개체 간의 접촉에 의한 전파뿐 아니라 비말(재채기를 통해 튀어나온 침)과 공기를 통한 장거리 전파까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국내 우제류 축산업을 초토화했다.

과거 구제역을 살펴보면 2월 안에 구제역이 마무리된 경우는 2017년 한 차례밖에 없다. 2016년에는 1월부터 3월 말까지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3월에 최초로 발생하는 등 최소 3월까지는 방역에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된다.

그동안 방역 당국은 수개월에 걸친 비상근무를 해왔고 설 연휴까지 반납한 채 구제역 방역에 매진했다. 농가와 생산자 단체 등 민간에서도 자발적인 소독과 차단방역에 총력을 다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구제역이 추가로 발생한다면 그간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다.

구제역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현재 2월 말까지로 돼 있는 구제역 특별방역기간을 최소 올 3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방역 당국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특별방역대책 기간이 이전해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8개월이었으나 생산자 단체의 요구 등을 고려해 이번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 말까지로 3개월 단축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방역대책기간 단축은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구제역이 발생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안전한 방역관리를 위해서는 특별방역대책기간을 1개월 정도 연장함으로써 방역관리의 역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생산자 입장에서는 방역당국의 잦은 점검 등으로 다소 불편함이 지속되고, 심할 경우 축산농가의 소득 감소로 인해 일시적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축전염병으로 인한 국민의 불안감이나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철저한 방역조치를 통해 구제역 발생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안에 종결시키는 것이 우리 축산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국내 축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산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방역대책 기간 중에는 농식품부와 지자체 등 관계기관이 상황실을 가동하고 24시간 비상대응체계를 운영하기 때문에 추가 확산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더 이상의 구제역이 발생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방역 당국이 특별방역대책 기간을 오는 3월 말까지 연장하고 강도 높은 구제역 방역대책을 추진함으로써 ‘구제역 조기근절’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임영철 | 한국 소임상수의사회장 충북대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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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여행에서 방금 돌아왔다. 처음 가본 곳이었다.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 애드벌룬을 타보고 싶다는 오랜 열망을 펼칠 수 있었다. 겨울 새벽에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 위로 날아오르는 순간, 또 지상 1000m에서 일출을 맞이하면서 ‘아름답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무수한 인생의 아름다움을 목격했지만 언제나 아름다움은 새것이었다. 이전의 감정이 환기되는 것이 아니라 기시감은 전혀 없는 처음의 감동으로 아름다움을 맞았다.

여행 내내 함께한 책은 내가 일상의 경전처럼 삼고 있는 이성복 시인의 <극지의 시>였다. 강의에서 시인이 했던 말, 짧게 메모한 것들. 인터뷰를 통해 시와 세상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책이다. 여행자로서 낯선 세계에서 관계 맺는 수많은 사람들, 현지의 상인과 시민들 사이로 나는 들어갔다. ‘나의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질 뿐’이라고, ‘나는 타자의 그림자이며, 나의 삶은 타자의 그림자놀이’라는 시인의 말, ‘타자의 발견’이 여행에서는 더욱 중요하게 울렸다. 짐을 싸고 풀면서, 입에 조금 거친 음식을 먹고 풍경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내 인생의 관계들은 자연스럽게 맺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여행에서 어색한 순간을 맞이할 때는 이 문장이 구원처럼 눈에 밟혔다.

“애들 태우고 차를 운전해 가다가도, 급한 순간에는 자기 쪽으로 핸들을 튼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원래 자기한테 유리하게 행동하게끔 되어 있어요. 그렇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자기편이 아니라 세상 편에 서려고 노력해야 해요. 본래 안되지만 평소에 그렇게 믿고 되새기지 않으면 더 안되는 거예요.” 시인의 통찰은 내가 어디에 있든 덜 나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는 데 거울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려는 몸을 풀어놓는 것. 여행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도 의외로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워지지 않는 마음을 다독였다.

왜 문학서를 챙겨 갔는가. 소중한 사람과 동행하는 느낌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숙소로 돌아와 짧게 읽는 행위를 즐기는 동안 그날의 여정을 되새기며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시간을 쪼개어 쫓기듯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걸음을 복기하고 반복하며 시간을 풍성하게 늘리는 즐거움이 있었다. 좋아하는 문장에 눈길을 멈추고 여행길 에피소드를 대입하며 충만한 느낌을 느꼈다. <극지의 시>를 읽으며 피로에 지친 몸, 설레고 기뻐서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흥분한 마음 그대로 나는 누구인가를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이 또 좋았다. 두 번째 여행을 하는 독서라는 게 딱 맞는 말이었다.

<극지의 시>는 낯선 곳에서 만난 누구든 자신의 삶을 통해 시를 쓰고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보통 시인이 시를 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다. 나의 시를 가지고 싶던 간절한 순간에 책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하면 눈물이 날 것처럼 뭉클했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 건 다른 것들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진실한 것, 올바른 것도 그 자리에서 다른 것들의 진실함, 올바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요. 또 어떤 대상이 시적일 수 있는 것은 화자의 자리에서 관찰되고 서술되기 때문이고, 시적 감동이란 독자가 화자의 자리에 섰을 때 이루어지는 거라고 했잖아요. 이 화자의 자리는 결코 시인이나 독자의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잠시 머물다 갈 뿐이에요.”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자리에 잠시 머물렀다.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화시킨 것은 그때 머리를 지나간, 겹겹의 의미를 띤 문학적 낱말들과 문학을 읽어온 눈이었다. 복잡하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층층이 의미가 아로새겨진 단순한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함께 가져간 터키 여행서도 문학서처럼 읽혔다. 실용적인 책에서 다루는 실질적인 정보는 금세 새로운 정보로 갱신될 것이다. 그러나 책이라는 매체가 주는 안도감은 컸다. 글자로 먼저 따라가는 여행길은 편안했다. 다녀와서 확인한 정보는 여행을 복기시키고 정말 내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나열된 사실인 줄로만 알았던 정보들은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을 데웠다. 무용한 책은 없다. 문학과 실용의 경계가 사라진 독서, 이러한 차원을 문학적이라고밖에 말 못하겠다.

한 권의 문학서와 또 한 권의 실용서가 내게는 어떤 여행 물품만큼이나 든든했다. 때로는 짐을 꾸릴 때 낡은 옷을 가져가서 입고는 버리기도 했다. 종종 가져간 책을 현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주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엔 두 권의 책을 모두 다시 챙겨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감흥을 더 느끼고 싶어서였다. 저 두 책으로 복기될 기억, 일상에 일으킬 파장이 걱정돼 감히 책장을 못 열고 있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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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논이 새파랗다. 손가락만큼 자란 밀 싹이 찬바람을 맞고 있다. 하지만 이웃 논들은 거의 비어 있다. 밀이나 보리를 심어서 푸른 논은 어쩌다가 하나씩 있을 뿐이다. 중부 지방에서는 겨울 농사 짓는 곳이 없으니, 겨울 들녘이 비어 있는 것이 자연스럽겠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지난 십 년 사이 온통 푸르던 겨울 논에 밀과 보리를 심는 것이 해마다 줄어들었다.

십 년 전 시골에 왔을 때, 논농사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이웃들이 짓는 것을 따라 지었다. 가을에 벼를 베고 나면, 다들 겨울 논을 비워 두지 않고, 밀이나 보리를 심었다. 그게 10년 전이었는데, 겨울 들판이 어디나 푸른 밀밭, 보리밭 그랬다. 그러다 정부가 하던 보리 수매가 중단되었고, 밀 계약 재배를 하던 기업체도 더 이상 밀을 사들이지 않았다. 밀가루를 빻던 방앗간도 하나 사라졌다. 그러고는 푸르던 평사리 겨울 들판도 텅 비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논은 여전히 밀농사를 짓고 있다. 토종밀, 흔히 앉은뱅이밀이라고도 하는 것. 밀농사에 대해서라면 마을에서 가장 신참인 내가 그나마 지금까지 밀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봄이네 살림’이라는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이 밀가루를 팔아주었기 때문이다. 토종밀로 빵을 굽는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월인정원’ 같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논도 겨울 농사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운이 좋았던 덕분이고, 농사가 아주 적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밀 타작을 하고 밀가루를 빻았던 날에는,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밀가루를 하염없이 만지작거렸다. 갓 빻은 밀가루로 전을 부치고, 반죽을 밀어 칼국수나 수제비 따위를 해 먹었다. 집에서 빵을 구워먹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심지어 호떡 같은 것까지도. 정작 밀알이라고는 평생 본 적도 없었는데, 어쩌다가 직접 농사까지 짓게 되고 그걸로 음식을 해 먹으니 스스로도 더 특별한 경험으로 느꼈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고.

밀농사를 지으면서 좋았던 것은, 아이들이 마음껏 빵과 국수와 또 다른 밀가루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아토피 증상이 꽤 있었던 큰아이는 시중에서 파는 수입 밀가루는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집에서 농사지은 밀가루는 괜찮았다. 블로그를 통해 인연이 닿은 사람 중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가 여럿 있었다. 그러니까 흔히 밀가루가 문제라고 말하는 경우가 꽤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밀가루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다는 걸, 지난 십 년 동안 밀농사를 지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떻게 농사짓는지, 가루를 내는지, 보관하는 동안 어떤 처리를 하는지 따위에 따라 같은 이름의 밀가루도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그리고 정말 맛이 좋다. 아마도 맛이 없었다면, 차라리 안 먹는 쪽을 선택했을지도 모를 텐데. 우리 밀이라고 다 입맛에 맞는 건 아니었는데, 직접 농사 짓는 토종밀만큼은 무엇을 하든 아이들이 좋아라 하며 먹는다.

해가 바뀌면서 들리는 가장 반가운 소식 중 하나가 정부에서 밀 수매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35년 만이라고 했다. 밀이든 보리든 겨울 농사는 논농사만큼 손이 가지는 않는다. 그래서 겨울에 밀밭을 둘러보는 걸음은 일에 쫓겨 종종거리지는 않는다. 모내기하는 때나, 가을걷이할 때만큼은 일이 두 배인 셈이지만, 그래도 농사지은 것을 내다 팔 수만 있으면, 지금처럼 겨울 들판이 비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 밀이 사라지지 않게끔 애쓴 사람들이 있다. 나는 토종밀농사를 지켜오신 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옆집이 밀 방앗간이었고. 온 마을이 어디 드러내지도 않고 토종밀농사를 지어 왔다. 정부 밀 수매가 이런 사람들을 돕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잔뜩 쌓인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리는 없겠지만, 농사와 사람들 먹을거리에 대해서 이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정부라는 것은 분명하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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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아 강물을 받아요

그 물로 얼굴을 비벼요

물고기 냄새와 달빛 냄새가

나네요

아침 해가 강물에게 들려준

얘기를 느낄 수 있어요

 

손에서 얼굴 냄새가 나요

평생 화장수 한번

바르지 않았죠

슬픈 날은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나요

반짝반짝 흘러내리는 별

내 몸 어딘가 이리 많은 별이

있었다니 신비해요

별이 있어 세월 내내

행복했지요

별이 있어 해와 달도

외롭지 않았지요

 

슬플 때면 강으로 가요

쭈그리고 앉아

강물로 얼굴을 비벼요

얼굴이 환해지니

그리운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곽재구(195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깨끗한 강물을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했으면 좋겠다. 물고기들의 집인 강물을 떠서. 초승달과 만월의 빛이 밤새 하얗게 내린 강물을 떠서.

그렇게 강물로 얼굴을 감쌌으면 한다. 슬픈 날엔 얼굴에서 별 냄새가 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외롭고 쓸쓸하고 어두운 시간과 장소에 별이 살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럼에도 별은 스스로 빛을 모아 빛나면서 슬픔을 견뎌내기 때문일 테다.

시인은 다른 시편에서도 강에 대해 노래했다. ‘물고기와 나’에서는 “물고기는 몸이 예쁘다/ 하루종일 물속에서 춤을 춘다”라고 썼고, ‘강물’에서는 “물을 보면 좋아요/ 종일 노래 불러요”라고 썼다. 강물에서 춤과 노래를 발견했다. 우리의 일상을 강물처럼 두 손으로 떠서 세수를 한다면 우리도 보다 다양한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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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노인 ‘우공’은 집 앞을 가로막은 태행산과 왕악산 때문에 답답했다. 산을 깎아내리기로 결심한 우공은 온 가족과 함께 산을 옮기는 공사에 착수했다. 이웃들이 비웃자 우공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나서고,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나서서 할 것이다. 자자손손 계속 깎으면 언젠가는 평평하지 않겠는가.” 이 말을 들은 산신은 놀라서 두 산을 멀리 옮겨버렸다. <열자>에 나오는 ‘우공이산’ 이야기다. 중국인들은 꾸준함, 인내의 상징으로 즐겨 인용한다. 마오쩌둥은 이 고사를 들어 홍군의 항일전쟁을 독려했다고 한다. 화가 쉬페이훙은 이 고사를 대형 유화로 그려냈다. 이 그림은 중국국가박물관의 로비 벽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오는 16일이면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꼭 10년이 된다. 시대의 ‘큰어른’이었던 김 추기경의 빈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한다. 사진은 2010년 2월3일 선종 1주기를 기념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추모사진전의 모습. 연합뉴스

톨스토이 단편 ‘바보 이반’의 주인공 이반은 군인과 장사꾼인 두 형과 달리 이익과 출세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착하고 성실하고 근면했다. 우애심도 깊어 가정이 화목했다. 이를 시기한 악마가 형제들을 불행에 빠뜨리려 하지만, 이반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마가 이반의 바보 같은 삶에 감화를 받는다. 이반은 마침내 악마에게서 얻은 만병통치약으로 공주를 구하고 왕위에 오른다. 러시아 민담에서 유래한 이반의 이야기는 눈앞의 이익과 쾌락을 버리고 성실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삶이 행복에 더 가깝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고 김수환 추기경도 ‘바보’였다. 성직자로서 교회 안에서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지만, 어려운 길을 택했다. 평생을 노동자, 빈민, 농민과 함께했다. 대통령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2007년 8월, 김 추기경은 동성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전에 한 그림을 출품했다. 크레파스로 얼굴을 그린 뒤 아래 여백에는 ‘바보야’라고 썼다. 자화상이었다. 이후 ‘바보’는 추기경의 별명이 되었다. 김 추기경은 이에 대해 “하느님은 위대하시고 사랑과 진실 그 자체인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 깊이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명하게 사는 일은 어렵다. 난득호도(難得糊塗). ‘바보’의 삶은 더 어렵다. 노자는 “커다란 지혜는 어리석음과 같다(大智若愚)”고 했다. 오는 16일은 ‘바보 성자’ 김수환 추기경의 10주기다. 그의 큰 빈자리를 ‘바보의 나눔재단’이 채워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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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행렬이었습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복받치는 감정이었습니다. 와야 될 것 같아서요, 이대로 보내 드릴 순 없어서요, 너무 죄송해서요, 잊지 않으려고요.

2019년 1월28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이자 생존자, 여성인권운동가, 식민지 조선과 분단 대한민국을 한 여성으로 살아냈던 김복동 할머니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셨습니다. 시민장으로 치러진 장례기간 내내 국내외 수많은 시민들이 찾아왔습니다. 광주에서, 전주에서, 춘천에서, 진천에서, 대구에서, 제주에서, 수원에서 그리고 일본에서, 대학생이, 고등학생이, 중학생이, 초등학생이, 회사원이, ‘그냥’ 학생이, ‘일반’ 시민이라고 밝히는 분들이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선생님이 학생들과 직장인들끼리 친구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수업 마치고 공부하다 저녁 퇴근 시간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꽃을 들고 편지를 들고 정성들여 만든 작품을 들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눈이 빨개지도록 오열하며 할머니를 뵈러 왔습니다.

일본의 공식 배상을 요구하며 싸워 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고 있다. 이곳은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1천372회의 수요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연합뉴스

평안하게 잠드세요, 현세의 고달픔 잊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너무 늦게 찾아와 죄송합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렇게 보내 드려 죄송합니다. 비통함과 진심 어린 애도의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지 못한 데 대한 자책이 컸나 봅니다. 그래도 나비모양의 쪽지에 빼곡히 메워지는 조문객들의 압도적인 감정은 존경과 감사, 새로운 세상을 향한 결심이었습니다. 용기 내 세상에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머니의 용기와 행동에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항상 잊지 않고 함께하겠습니다, 이제 남은 저희가 열심히 싸우고 연대하겠습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여성인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할머니가 어떤 길을 가셨는지,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마음으로 느끼고 상호 전이되던 감정의 중핵에는 새로운 희망과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추념을 넘어 결단의 감정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요. 왜 수많은 우리들은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에 유독 몸과 마음이 움직였던 걸까요.

고인(故人)이 1992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밝힌 이후, 수많은 국내외 증언활동을 통해 일본군 성노예제를 ‘의제화’하고 여성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성폭력이란 용어조차 생경할 당시 떳떳하게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었던 용기, 일관되게 문제해결을 요구하던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 수많은 공격과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단호했던 목소리로 현실 비판과 평화를 향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았던 생전의 행보에 대한 경외심 때문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말하는 증언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약자들과 피해자들에게 말 건네고 손 내미는 활동가로서의 실천이 나약하고 이기적이며 비겁한 우리를 흔들어 깨웠기 때문일 겁니다. 생존자로 자신을 드러낸 이후 그의 삶은 다른 이들을 돕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바쳐졌습니다. 나비기금을 만들고 콩고, 베트남, 팔레스타인, 우간다, 인도네시아 등 전시 성폭력의 피해자들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기여해 왔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 지진이 나면 앞장서 피해복구를 위해 기부하고 분쟁지역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거금을 쾌척하며 핍박받는 재일조선인 학교 아이들의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병석에 계신 와중에도 베트남 전시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제에 조화를 보내고 그 자녀들을 걱정하며 지원에 힘을 보태셨습니다. 생전에 아낌 없이 나누었던 그가 남긴 통장 잔액은 160만원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 수도, 행할 수도 없는 그 숭고한 정신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렇게 슬프고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도 죄송했나 봅니다.

공식적인 장례절차는 2월1일 천안 망향의동산에서 엄수된 안장식과 2월3일 삼우제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의 정신은 다시 살아나 더 큰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분노와 비난, 좌절과 고통이 아니라 근본적인 세상의 변화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실천 정신은 우리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조의금은 여성, 인권, 평화, 노동, 통일 등 시민단체에 기부되었고, 활동가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분쟁지역 및 재일조선인 학교 아이들과 전시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다시 날려 올려질 수많은 희망나비가 온 세상을 덮을 때 비로소 고인은 편안히 영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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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당권 출마를 선언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홍준표 전 대표, 심재철·안상수·정우택·주호영 의원 등 6명이 10일 2·27 전당대회 일정을 2주 이상 연기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후보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전당대회가 2차 북·미 정상회담 날짜와 겹치면서 베트남발 정상회담 태풍에 전대 컨벤션 효과가 날아갈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당 선관위는 ‘전대 연기 불가’ 결정을 분명히 했다. 만약 이들이 12일 후보등록일까지 전대 불참 방침을 고수한다면 전당대회는 황교안·김진태 두 후보만으로 치러질 판이다. 탄핵을 당하고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겪은 정당이 오랜 지도부 공백을 끝내고 새 출발하는 마당에 이런 문제 하나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파열음을 내고 있으니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자유한국당 당권 출마를 선언한 안상수 의원(왼쪽부터), 오세훈 전 서울시장, 주호영, 심재철 , 정우택 의원이 10일 오전 여의도 한 호텔에서 긴급 회동을 한 뒤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전화 통화로 의견을 같이한다고 밝혀 공동 입장문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연합뉴스

그렇지 않아도 한국당은 당권 레이스 시작부터 친박·비박계 편가르기를 노골화하며 ‘박근혜 마케팅’에 기대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메시지로 황교안 전 총리가 진짜 친박이냐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진 데 이어 ‘배박(배신한 친박)’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황 전 총리는 “특검의 1차 수사 종료 후 수사기간 연장을 막아 박 전 대통령에게 큰 도움을 줬다”고 반박했다. 그는 2017년 2월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며 “특검법의 목적과 취지가 달성됐고, 특검을 종료하는 게 국정 안정에 바람직하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그런데 이제 박 전 대통령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자기 입으로 실토한 것이다. 참으로 점입가경이다. 당 대표가 되려는 사람들이 미래 비전을 보여주기는커녕 대의원들의 친박 정서를 업겠다고 시대착오적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이 당은 멀었다고 느끼는 시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당은 당 지지도가 탄핵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자 해묵은 색깔론에 친박·비박 타령, 수구세력의 재등장으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모습이 뚜렷하다.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날조하고 유공자를 모욕한 망언도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석방 운운하며 탄핵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5·18을 부정하고 전두환을 옹호하며 5공으로까지 돌아간 것이다. 명색이 당 대표와 최고위원에 출마한 사람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이런 자리를 만들고, 이런 말을 지껄인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게 한국당의 현주소다. 이러니 백번을 “잘못했습니다”라고 해도 신뢰받지 못하고, 천번을 “다시 태어나겠다”고 해도 외면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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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5세대 이동통신(5G)장비를 사용하는 데 따른 ‘정보유출 공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의회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무선통신망에 중국 통신장비의 사용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곧 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미 연방정부는 지난해 중국통신기업의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번에는 행정명령을 통해 민간기업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미국에서 화웨이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비상조치다.

매슈 휘터커 미국 법무장관 직무대행(왼쪽에서 두번째)이 28일(현지시간)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 키어스천 닐슨 국토안보장관,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 국장(왼쪽부터)이 지켜보는 가운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멍완저우 부회장 등에 대한 기소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미국은 중국이 차세대 통신기술인 5G 네트워크에 장비를 공급한 뒤 이를 통해 기밀을 수집하거나 통신 방해를 자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 기업이 미국 국가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화웨이를 제재하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국, 독일, 일본 등 동맹국들의 모바일, 인터넷 업체들이 화웨이가 생산한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을 비롯한 프랑스와 독일 등의 업체들로부터 긍정적인 회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도 ‘남의 집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할 처지가 아니다. 국내 통신업체 중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사용해 5G 통신망을 구축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몰린 수도권에 화웨이 장비가 설치됐다. LG유플러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정보유출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무선 장비는 유선 장비에 비해 보안이 허술하다. 또 개발자가 몰래 정보를 유출하는 뒷문을 만들어 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완벽한 보안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화웨이 제재를 놓고 논란도 있다. 차세대 핵심기술인 5G의 패권을 중국에 넘기지 않으려고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아무 증거 없이 추정된 범죄를 정치화하는 데 국가 안보를 활용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될 말이다. 아직 화웨이가 만든 5G 장비의 보안이 확실하다고 믿을 수 없는 상태다. LG는 물론 정부도 사이버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꾀할 수 있도록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보유출을 막고 사이버 안보를 지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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