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겨울의 낮은 짧았다. 마석 모란공원에 장례행렬이 도착할 때만 해도 서녘 산기슭에 걸렸던 해는 금세 넘어갔고, 곧바로 어둠이 공원묘지 전체를 덮어버렸다. 발전차에서 끌어온 전등빛에 의지해서 하관식이 진행되는 내내 김미숙씨는 울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훅 쓰러질 것 같은 모습으로 동생의 부축에 의지해서 하관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따금씩 눈물만 흘렸다. 깊은 그 눈빛, 아마도 자신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눈빛으로 그는 하관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아들을 묻으면서도 울지 않는 비정한 엄마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외동아들을 잃은 그 엄마는 “청년의 목은 어디에 뒹굴고 있었는지/ 찢겨진 몸통은 어디에 버려져 있었는지/ 피는 몇 됫박이 흘러 탄가루에 섞였는지”(영결식에서 송경동 시인이 낭송한 조시 중에서)를 보았던 엄마다. 시커먼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아들의 머리는 몸과 따로 뒹굴었고, 시신이 수습되기도 전에 컨베이어벨트는 재가동되었다. 피를 머금은 석탄이 컨베이어를 타고 들어가 전기를 만들었을까. 사고가 나고 며칠 뒤 김용균 노동자가 일하던 현장을 찾고 나서 김미숙씨는 말했다. “아이의 동료들에게 빨리 나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일하다가 죽는 거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1970년대 탄광 같은 곳에서 어떤 부모가 자식이 일하는 걸 보겠냐고도 했다. 그래도 공기업에 취직했으니 힘들어도 견디어 보라고 했던 그 엄마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어둠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민주노총이나, 시민단체들을 “그저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그 엄마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병든 남편과 외동아들을 2교대 노동을 하면서 책임지는 일에만 몰두해 있던 평범한 엄마였다.

아들을 잃은 뒤 그 엄마는 태안과 서울을 오르내리면서 “아들이 남긴 숙제”를 풀기 위해서 동분서주했다. 지난 연말에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을 위해서 국회에 상주하면서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호소했다. “죽음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런 덕에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되었다. 추모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김미숙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정작 아들 김용균이 일했던 발전소는 외주화 금지 사업장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이 산안법은 최초로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명기한 법이 되었다.

산안법이 개정됐지만, 막상 해를 넘기고도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과 같은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다. 설 명절 전에 장례를 치르기 위한 결단으로 빈소를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시민단체 대표들이 단식에 들어갔다. 설 연휴 동안 정부, 여당이 움직이면서 협상이 진행됐고, 마침내 2월5일 정부와 야당이 유가족 측과 시민단체들이 요구하는 내용을 수용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2월9일 김용균씨가 사망한 지 62일 만에 태안과 서울을 오가면서 장례를 치렀다.

김용균씨가 묻힌 곳은 마석 모란공원 특구다. 그곳은 전태일 열사 죽음 이후 민주화운동의 성지처럼 되어 있는 곳이다. 노동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그곳에 모여 있다. 김용균이 62일 만에 안식에 들어간 그 자리 앞쪽으로는 전태일이 있고, 이소선 어머니의 자리가 있다. 거기서 곧바로 올라가 공원묘지 끝에 이르면 박종철과 그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묘가 있다.

이소선 어머니는 41살 때 전태일을 잃었다. 그리고 41년을 더 살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아들의 유언을 지켜냈다. 그런 어머니는 노동자의 어머니에서 모두의 어머니가 되었다. 1987년 막내아들을 잃은 박정기씨는 고문으로 죽은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았던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1987년 아들을 잃은 뒤 민주투사로 나서서 자식의 죽음을 승화시켜오고 있다.

그런 뒤에도 삼성 반도체에서 딸 황유미를 잃은 아버지 황상기씨, 제주도 생수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산업체 현장학습 고교생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도 자식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박근혜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유가족들이 김미숙씨의 지표가 되었다.

그런 김미숙씨를 두고 유가족이 너무 나댄다는 비난이 일었다. 대통령 면담을 거절할 때가 가장 크게 비난받았다. 민주노총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모욕적인 언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주노총, 시민단체들과 같이 움직이는 김미숙씨에 대해 좋게 보지 않는 시선들은 따갑기만 하다.

우리 사회에는 유가족에 대한 고정된 상이 있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은 울다가 기절해야 한다. 보상이나 받고 조용히 물러서서 정부에 대해 정치권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해야 한다. 어디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그리고 국회에 대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유가족은 찍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가족들은 고분고분하지만 않다. 자신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자식의 죽음은 헛되게 지워지고, 묻힐 것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청심환을 먹으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을 가게 된다.

몸집 작은 김미숙씨는 보기보다 단단하다. 그런 그이지만 청심환을 복용해야만 버틸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들의 부재를 매일 확인하면서 살아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가르쳐준 대로 용균이의 사진을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 볼까? 용균이가 살던 방은 그대로 둔 채로 아침이면 인사하고, 저녁에 들어가면 인사할까? 이제 김미숙씨는 혼자 그런 시간들을 견뎌내야 한다.

아들 또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은 김미숙, 그의 길은 험할 것이다. 험한 세상을 헤쳐 가는 김미숙씨에게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은 빚을 지게 될 것이다. 그게 불순한 유가족의 운명이지 않을까.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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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준비 없이 글쓰기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은 심드렁한 얼굴로 내 수업에 와서는 엄청나게 재밌는 글을 완성하고 집에 돌아갔다. 그들이 쓴 게 왜 재밌는지, 어떻게 좋은지 정확하게 칭찬해주고 싶어서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문장의 근거를 생각할 때 자주 다시 읽은 책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이 소설에는 작문 연습을 하는 어린 쌍둥이가 등장한다. 전쟁과 가난 때문에 그들에겐 선생님이 따로 없다. 둘은 부엌 식탁에 앉아 서로에게 글감을 내준다. 그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종이 두 장에다 각자의 글을 쓴다. 다 쓰면 글을 바꿔서 읽어본다. 상대방의 글쓰기 교사가 되어주는 것이다. 사전을 찾아가며 철자법 틀린 것을 고치고 문장을 수정한다. 문장을 고칠 때에는 쌍둥이들만의 규칙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쉽사리 ‘친절하다’라고 쓰지 않는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모르는 심술궂은 면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쌍둥이는 친절하다는 말 대신 이렇게 쓴다. ‘그는 우리에게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또한 쌍둥이는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좋아한다’는 단어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이 마을은 아름답다’와 같은 표현도 금지되어 있다. 그 말이 둘에게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실에 충실한 문장을 연습한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묘사를 훈련한다.

이러한 묘사만이 좋은 문장일 리는 없다. 모든 글쓰기에 적절한 훈련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연습 방식을 자주 떠올리며 글을 읽고 쓴다. 무언가를 게으르게 표현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독자가 이야기를 믿게 만든다. 읽는 이의 눈앞에 구체적인 장면을 건넨다. 무수한 작가들이 잘 써준 생생한 장면들을 읽으며 나는 잠시 다른 존재가 되어볼 수 있었다.

2015년 나의 수업을 들으러 왔던 열두 살의 우예린은 달리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달리는 사람들은 얼굴 살이 위아래로 훌렁거린다. 내 차례가 오면 저 멀리서 선생님이 깃발을 올린다. 깃발이 내려오면 달려야 하니까 심장이 쿵쾅댄다. 출발하는 순간 재빨리 발을 움직여야 하는데 떨려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뛰다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다. 하늘을 나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럼 발의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뛰면 나는 어느새 1등이나 2등이 되어 있다.’

이 글을 읽다가 내 심장도 좀 더 빨리 뛰었다. ‘뛰다 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라니 정말 찬란하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뛸 수만 있다면 날마다 달려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는 ‘나는 달리기를 잘한다’라고만 요약할 수도 있겠으나 우예린은 멋진 디테일을 생략하지 않았다. 그는 또 앞구르기에 대해서도 썼다.

‘앞구르기는 재미있지만 막상 해보면 무섭다. 내 차례가 오면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눈을 크게 뜬 채로 입술을 꼭 깨물고 몸을 앞으로 굴린다. 구르는 동안엔 그저 할 수 있다는 말만 머릿속에서 맴돈다. 한 바퀴를 다 돌고나면 어지러워서 잠시 멍해진다.’

꼭 나도 같이 앞구르기를 한 것만 같다. 몸을 한 바퀴 굴리는 짧은 순간이 작가만의 것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의 감각에도 닿는다. 까먹고 있던 앞구르기의 두려움과 재미를 상기시킨다.

열 살 김지온은 ‘불’에 관해 이렇게 썼다. ‘나는 불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 멋진 색을 뿜으며 뜨겁게 타오르는 불이 좋다. 불이 아름다운 이유는 몇천 년 전부터 어둠을 막아주고 맹수로부터 공격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또한 색깔들이 불을 아름답게 만든다. 불은 빨강, 파랑, 보라, 노랑으로 나뉘는데 맨 밑에 있는 보라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불을 특히 좋아한다. 보라색의 불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지온의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불의 색에 관해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다. 온도별로 다른 그 색깔들이 그의 눈에는 영롱하게 아른거렸을 것이다. 그의 문장을 읽은 뒤로 나도 가끔 불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문장은 나에게 새로운 몸의 감각을 선물하곤 했다. 그들의 글에 자주 설득당하며 글쓰기 교사로 일했다.

<이슬아 | 작가·‘일간 이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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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SKY캐슬>이 주목한 입시 학생부종합전형이 주는 부담은 그야말로 종합적이다. 최대 4종류의 시험, 수많은 학교활동, 자소서, 면접…,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학종이 초래한 교육 윤리의 타락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작은 위선에서 심각한 거짓까지…,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종 주창자들은 어떤 이유로 학종을 옹호하는 것일까? 가장 자주 접하는 그들의 주장 3개를 살펴보자.

첫째, 학종이 강북이나 지방의 평범한 인문계고에 유리하다는 주장. 과연 그럴까? 현존 입시 중 평범한 일반고에 유리하다고 할 만한 전형은 사실상 학생부교과전형(교과전형) 하나뿐이다. 그 정도가 다른 전형에 비해 현저히 크다. 할당제 입시를 제외한다면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혹자는 서울대 지역균형선발전형(지균) 같은 예외적 사례를 들어 반박하고 싶을 수 있겠다. 하지만 서울대 지균은 학종으로 보기 어려운 입시다. 서울대 지균의 본질은 학종이 아닌 할당제에 있다. 그리고 지균은 학교에 할당된 두 장의 추천티켓을 대부분 내신 1·2등(또는 문과 1등, 이과 1등)이 갖는다는 점에서 교과전형 성격이 강하다. 서울대는 왜 교과전형 성격의 할당제 입시를 굳이 학종으로 분류할까? 주류 학종인 일반전형이 평범한 일반고에 현저히 불리한 입시란 사실을 물타기 하려는 속셈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 김서형, 염정아가 출연한 JTBC 드라마 'SKY캐슬'의 한 장면. 화면캡쳐

그런데 평범한 일반고에 유리해야만 바람직한 입시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상위권 대학이 그런 입시를 다소 확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수능전형과 논술전형에서 내신 비중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현재로선 교과전형의 확대가 가장 확실하다.

둘째, 학종을 확대해야 객관식 시험과 암기식 공부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 정말 그럴까? 극복은커녕 오히려 더 크게 조장할 수도 있다. 학종의 핵심요소인 학교시험(내신)은 대부분 철저한 객관식 시험이다. 그 폐해를 줄이려 도입된 서술형 문제조차도 실제로는 객관식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서술형 문제가 암기식 공부를 더 심하게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만 탓할 일이 아니다. 현 학교내신제도의 필연적 귀결이다. 객관식 시험과 암기 위주 공부를 정말로 극복하고 싶다면 논술전형의 대폭 확대를 주장해야 마땅하다.

셋째, 수능의 문제가 심각하니까 학종이 정당하다는 주장. 즉 수능의 대항마로 학종을 내세우는 주장. 누워서 침 뱉는 격이다. 그 수능이 바로 학종의 구성요소 중 하나다. 또 그들이 말하는 수능의 문제는 대부분 학종의 문제이기도 하다. 어떻게 학생을 냉혹하게 줄 세울 수 있냐고? 어떻게 1점 차이로 당락을 결정할 수 있냐고? 문제의식엔 공감하지만 그것은 수능뿐만 아니라 학종과 그 밖의 다른 입시 모두가 하는 일이다.

그리고 수능에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학종은 수능의 장점 하나만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우리 국민이 입시 운영의 원칙으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바로 공정성이다. 대다수 국민은 수능을 가장 공정한 입시라 생각한다.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도 인정한 바 있다. “수능이 가장 공정하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학종은 단점의 화려함에 비해 장점이 너무 빈약하다. 교과전형만큼 일반고에 유리하지 못하고, 논술전형만큼 객관식 시험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능전형만큼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학종은 이도 저도 아닌 입시다.

<이기정 | 서울 미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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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 잘하고 있는데 ‘오라이’ 차 트렁크 탕탕 해주고, 내비 찍고 가는 택시 안에서 ‘인간내비’를 자처하며, 제 일도 아닌데 제 일인 양 끼어들고, 물어보거나 도와달라지도 않았는데 ‘그건 내가 좀 아는데’ 하며 만물박사 명박(明博) 빙의로 나서는 사람을 보면 한마디 해주고 싶을 겁니다. ‘오지랖도 참…’ 오지랖은 상체에 입은 겉옷의 앞자락을 말하지만, 주제 모르고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한다는 말 ‘오지랖이 넓다’의 준말이기도 합니다.

조선 초기까지는 저고리에 오지랖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저고리라 부를 수도 없게 골반쯤까지 덮는 길이라 짧은 목욕가운처럼 허리끈을 둘러서 여몄지요. 그러다 저고리 길이가 점점 짧아져 허리 위로 올라오자 허리띠 대신 저고리 안팎에 속고름, (겉)고름을 달아 그것을 묶어 여미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옆에서 보면 속이 다 들여다보이니 어쩔 수 없이 천을 한 치가량 덧댔습니다. 그 덧댄 부분이 오지랖입니다. 그런데 그 오지랖 넓은 게 왜 조롱거리가 되었을까요? 이 말은 ‘그래, 너 참 잘났다’처럼 반어법입니다. ‘오지랖이 넓다’는 사실 다음과 같은 말이 줄어든 것이라 보면 됩니다. “그래, 오지랖 그리 넓어서 네 앞가림은 참 잘하겠다.” 제 앞에 닥친 일을 제힘으로 어찌어찌 해낸다는 ‘앞가림’과, 옷 속 들여다보이지 않게 ‘앞 가림’ 하는 오지랖을 가지고 반어적으로 조롱하는 것이지요. 오지랖 참견에는 어쩌면 내가 너보다 더 잘 안다는 우월의식, 또는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라는, 지나치게 ‘사회적 동물’이고픈 두 가지 심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오지랖 대장 말고도 천성적으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다 해보려는 이도 종종 ‘오지라퍼(오지랖er)’ 소리를 듣습니다. 농으로 “오지랖도 참…” 할 수는 있지만 충고처럼 간섭은 맙시다. 그것도 ‘오지랖이 넓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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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인싸(인사이더)’라고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팬들을 몰고 다니며, 거액 연봉을 받는 스포츠 스타도 ‘인싸’라면 ‘인싸’일 것이다. 그러나 ‘인싸’가 주류와 동의어는 아니다. 주류에 진입하려면 인기 외에 다른 조건들도 충족돼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피부색이다. 콜린 캐퍼닉 사건은 검은 피부의 ‘인싸’가 주류의 심기를 건드릴 경우 삶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쿼터백이었던 캐퍼닉은 2016년 경찰이 유색인종을 폭력 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경기 전 국가 연주 때 무릎을 꿇었다. 국가 연주 시 기립 자세를 규범으로 여기는 미국에서 캐퍼닉의 행동은 스포츠계 안팎에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지지자도 많았지만 비판도 들끓었다. 전·현직 군인들은 ‘군에 대한 모욕’이라고 반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캐퍼닉에겐 애국심이 없다고 욕설을 섞어 비난한 게 결정타였다. 캐퍼닉은 2017년 초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했지만 NFL 32개 구단 중 어느 팀도 캐퍼닉과 계약하지 않았다.

캐퍼닉의 이름이 최근 미국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 지난 3일(현지시간) NFL 슈퍼볼이 하필이면 흑인 민권운동의 요람 애틀랜타에서 개최된 것이 계기였다. 캐퍼닉 사건의 찜찜한 기억을 털어내지 못한 NFL은 작정하고 인종 문제를 슈퍼볼 전면에 내세웠다. 캐퍼닉 퇴출에 성난 팬들을 달래면서, 캐퍼닉을 싫어하는 팬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동시에, 캐퍼닉 사건으로 NFL에 입혀진 부정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NFL은 경기 개시를 알리는 ‘동전 던지기’를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딸 버니스 킹에게 맡겼다. 민권운동의 거목 앤드루 영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와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중계 주관방송사 CBS는 NFL 커미셔너 로저 구델이 민권운동의 거점이던 에버니저 침례교회를 방문한 영상을 내보냈다.

국가는 애틀랜타 출신의 흑인 가수 글래디스 나이트가 불렀다. 2016년 나이트는 캐퍼닉의 행동을 비난하던 쪽이었다. 나이트가 국가를 부를 때 경기장 상공에선 미 공군 선더버드의 축하 비행이 있었다. 경기 개시 후 타임아웃 때는 경기를 관전하던 명예훈장 수훈 예비역들이 전광판을 통해 소개됐다. 인종 문제와 애국 코드를 기이하게 뒤섞은 행사였다. NFL은 ‘흑인은 존중하지만 비애국자를 퇴출한 건 정당했다’고 항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 행사로 NFL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까. 적어도 캐퍼닉 지지자들에겐 감동을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권변호사 캣 캘빈은 트위터에 “왜 버니스 킹과 존 루이스, 앤드루 영이 NFL을 엄호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선수들도 감흥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일부 선수들은 슈퍼볼 우승이 결정되기 무섭게 “백악관의 우승 축하 행사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 시즌 우승팀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일부 선수들도 백악관 방문을 거부했고 자존심 상한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서 행사를 취소했다.

‘인싸’가 반드시 주류는 아닌 것처럼 주류가 ‘인싸’라는 법도 없다. 부동산 재벌 출신의 백인 대통령 트럼프는 주류 인생을 살았지만 비주류들에게 막말을 일삼고 국제사회의 합의를 휴지조각 취급하다 국내외에서 외면당하는 ‘아싸(아웃사이더)’의 길을 가고 있다. 눈 밝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아무리 주류라 해도 기득권을 믿고 함부로 망언한다면 인생이 고달파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을 모독한 국회위원들 앞에 놓여 있는 미래도 꽃잎 흩날리는 ‘인싸’의 길은 아닐 공산이 크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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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지나고 벌써 한 달. 아라비아 숫자가 큼지막한 달력 아래에서 살지만 그 속에 숨은 24절기를 올해부터 몸에 밀착시키기로 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보아도 고작 오늘밖에 살지 못하는 내가 한 해의 중심을 그 어디로 삼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한해살이의 시작을 입춘(立春)에 맞추는 게 좋을 듯하다. 봄이 저기에 저렇게 서는 것처럼 나도 여기에 이렇게 독립적으로 서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로 하자.

설 연휴의 여세를 몰아 오래전부터 별렀던 교동도에 갔다. 아직도 명절이면 찾아오는 어릴 적 냄새가 조금 남아 있을 것도 같았다. 저물 무렵을 겨냥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늦은 오후였다. 교동제비집에 들러 몸을 녹인 뒤 대룡시장에 갔다. 좁은 골목마다 그 시절을 통과해낸 사람들이 추억에 젖은 얼굴로 서성거린다. 관광객들로 불이 난 호떡집을 비롯해 이런저런 점빵들 사이로 효도관광, 신혼여행 안내문도 있다. 장례식장 빼놓고 있을 건 다 있는 시장. 그 끄트머리에서 산 가래떡을 입에 물고 골목을 벗어나니 교동초등학교가 있다. 제106회 졸업식을 축하하는 현수막 옆으로 우람한 측백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교문 기둥을 만지는데 어쩔 수 없이 내 고향 초등학교의 졸업식 생각이 났다. 풍금 소리에 맞춰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나온 언니들은 교문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고 난 뒤에 흩어졌었지. 학교 담벼락에 초상화가 있다. 이 학교를 떠나고, 이 세상도 마저 졸업하신 다섯 분의 제1회 졸업생들.

방학도 없이 학교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목구멍이 조금 간질간질해지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운동장을 걸어 새삼스레 나무를 세어보았다. 좌측으로 54그루, 우측으로 29그루. 이 학교와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저장하는 건 측백나무들이다.

멀리 해가 뚜렷하게 지는 것을 보면서 시장으로 돌아와서 양초를 샀다. 이제 집에 가서 불을 켜면 겨울에도 푸르른 측백나무 사이로 많은 생각이 푸르륵 일어나겠다. 교동도의 측백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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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제정 당시 국회는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삭제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만 남고 다른 한 축이 빠진 것이다. 이제야 그 배경이 드러났다. 여야가 한목소리였던 이유를 알 만하다. 표면적으로는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적용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다’ ‘그래서 의정활동의 족쇄가 될 것이다’ ‘위헌적이다’ 등등의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이해충돌 상황이 자신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옭아맬 법을 제정할 리 없는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들 중에는 부동산 임대업자도 있고 기업경영인도 있고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적 이익과 사적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수조사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둘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친지에게 건물매입을 권유한 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받게 한 의원, 역 개발명목으로 예산을 따온 역세권 건물주 의원이나 지방 일부대학의 역량강화를 위해 국비투입 예산안 통과를 추진한 의원이 그 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고위공직자였을 때부터 부친 소유 부동산 근처의 철도사업을 추진했다는 해명을 들어보니 더욱 이해충돌의 소지는 커 보인다. 국비투입 사업지로 선정되기 몇 개월 전에 역 근처 상가건물을 샀다니 더욱 의심스럽다.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자신이 맡고 있는 공적인 업무 또는 공공의 이익과 서로 상충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해충돌은 일상에서, 직업수행에서 늘 맞닥트리게 된다. 이해충돌 상황의 폭은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공직자 중에서도 정책결정 권한을 갖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이해충돌 상황의 크기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이 마주하게 될 이해충돌 상황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한, 입법권한, 예산안 심의의결권한 그리고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등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막강하다. 그러니 겉으로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뒤로는 사적 이익을 챙기고, 직무로 얻은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주변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상황도 많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공적 위치에서 사적인 자신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 내 가족과 친·인척의 이익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에 ‘이해충돌 방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되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처벌규정이 없는 선언적 규정이어서 실효성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에 처벌을 포함한 이해상충 방지가 논의되었다가 아쉽게 삭제되었다. 이후 법제화는 계속 시도되었으나 법안은 잠자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제약으로 다가올 법안에 적극적 관심을 보일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손혜원 의원 사건으로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해충돌 방지를 규율하고 범죄화하라는 여론의 압박도 거세졌다. 국회 내부에서도 여러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대 여야는 ‘이해충돌’ 문제로 대충돌 중이다. 1월에 국회를 소집했지만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했다. 2월 국회는 아예 의사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손혜원 국정조사’ 없이는 국회를 열 수 없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버티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는 안갯속이다. 이해충돌로 대치하고 있지만 여야의 속내는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옭아매고 불이익을 줄 법안은 그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법이다. 여야가 한통속이라서 더욱 걱정이다. 세비 인상의 예에서 보듯이 여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도 그들 모두에게 불이익이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다. 그들은 ‘국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치적 대표성을 강조한다.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윤리다. 정녕 국민을 위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사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공적 입법의무를 방기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상충이다. 전수조사로 이해충돌 사례를 유형화하고 기준을 세워 처벌대상을 좁혀나가면 위헌소지 없는 법안을 마련할 수 있다. 청렴공직사회의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에 이해충돌 방지규정을 끼워 넣는다면 공직윤리규범이 완전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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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사법농단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겼다. 전·현직을 통틀어 사법부 수장이 직무와 관련한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는 것은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기소됨으로써 8개월간 계속된 사법농단 수사도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러나 수사가 종결된다고 단죄까지 끝나는 건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 1인의 책임을 묻는다고 사법부 전체가 달라질 리도 없다. 시민의 기본권인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사익과 맞바꾼 추악한 거래가 다시는 없도록 발본적 사법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중앙지검은 11일 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모두 296쪽에 달하는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에는 47개 범죄사실이 적시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비판적인 법관들에게 인사불이익을 주는 등 탄압하고, 판사 비위를 은폐·축소한 혐의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 전 대법관은 33개, 후임 처장인 고 전 대법관은 18개 혐의를 받고 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구치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해 6월 시작됐으나,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그보다 1년여 앞선 2017년 3월이다. 경향신문이 ‘양승태 대법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지시와 이를 거부한 이탄희 판사의 사표 제출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양승태 대법원은 거짓 해명으로 일관하며 파장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그러나 일선 법관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특히 대법원이 다수 재판에서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며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헌법의 권력분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헌정문란 사건이 법의 심판대에 서기까지 지난한 과정이었다.

이제 공은 검찰을 떠났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특별재판부를 도입했다면 바람직했겠으나 이미 실기했다. 사법부가 사법농단을 사법적으로 심판해야 하는 기묘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영장을 잇따라 기각하는 등 ‘제 식구 감싸기’로 비판받았다. 향후에도 이런 행태를 되풀이했다가는 바닥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원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재판하고, 징계시효가 남은 법관들을 조속히 징계해야 한다. 국회도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에 대한 탄핵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의 사법개혁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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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은 도저히 제정신을 갖고는 할 수 없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만행이다. 김진태·이종명 의원 주최로 열린 소위 ‘5·18 대국민공청회’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광주폭동’으로, 아픔의 세월을 견뎌온 희생자와 유가족을 ‘괴물집단’으로 매도했다. “광주는 북한 앞마당” “전두환은 영웅” 등 용서받지 못할 망언을 늘어뜨린 극우 논객 지만원을 위해 멍석을 깔아준 처사도 참담하기 짝이 없지만, 국회에서 제1야당의 의원들이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군사독재 국가폭력에 짓밟힌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해괴망측한 언동을 퍼트리다니 통탄할 수밖에 없다.

이종명, 김진태, 김순례(왼쪽부터)

5·18은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를 거쳐 ‘민주화운동’으로 매김됐고, 1997년 5월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내란 및 군사반란으로 단죄받은 건 한국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이 여당이던 김영삼 정부 때다. 법원 판결을 통해서도 근거 없는 걸로 판명난 ‘북한군 개입설’은, 당시 전두환 정권조차 제기하지 못한 허위선동이다. 박근혜 정부의 국방부도 “5·18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리한 사안이다. ‘북한군 개입설’ 따위로 5·18을 부정하는 것은 피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 역사를 모독하는 ‘역사 쿠데타’이다.

한심한 것은 한국당 지도부의 태도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 해당 의원들의 징계 요구에 대해 “보수정당 안에 스펙트럼과 견해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자체가 보수정당의 생명력”이라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당초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짓밟는 망언을 ‘다양한 의견’으로 치부하는 반역사적 인식이 기괴할 따름이다. 지도부 수준이 이 꼴이니 의원들이 ‘헌정파괴 범죄’를 옹호하고 나섰을 게다. 그러니 한국당이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 추천을 방치하다 뒤늦게 추천한 위원들도 5·18정신을 거스르는 인사들로 채웠을 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한국당이 추천한 5·18조사위원 권태오·이동욱 임명을 거부하고 재추천을 요구했다. 한국당이 ‘5·18광주’를 강탈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부독재당’으로 회귀하지 않으려면, 진상규명 취지에 걸맞은 위원 재추천은 물론 반동을 획책하는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엄중한 단죄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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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최근 ‘대학생·청년 햇살론’ 중단을 발표했다. 이 제도는 신복위가 보증재원을 기반으로 대학·대학원생과 저소득 청년 취업자에게 생활자금을 빌려주거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전환해주는 것이다. 연 15%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연 최저 4.5% 대출로 전환해주고, 자금도 최대 1200만원까지 빌릴 수 있어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지난달 갑작스럽게 중단 발표를 하면서 이를 이용할 계획이었던 청년들이 당황해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청년 햇살론은 금융사각지대에 있던 대상자들에게 큰 버팀목이었다. 신용등급이 낮아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 어렵거나, 기존 고금리 대출로 고통을 받았던 이들에게 ‘희망의 끈’이었던 셈이다. 당연히 이용자들이 많았다. 당초 신복위는 은행에서 출연한 500억원의 보증재원을 기반으로 2500억원을 대학생과 청년에게 빌려줄 계획이었다. 그런데 신청자들이 몰리면서 재원이 예상보다 빨리 고갈됐다. 이에 신용카드 사회공헌재단에서 80억원, 은행의 기금운용수익금 40억원까지 추가로 넣었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쳤다. 햇살론 이용자는 2016년 1만9115명, 2017년 2만1189명, 2018년 2만394명 등 지난해까지 8만721명을 기록했고, 총 대출 금액은 3100억원에 달한다. 이번 중단 조치로 올해에만 소외계층 청년 2만명의 대출길이 막히게 된 셈이다. 신복위 등에 따르면 많은 청년들이 이를 모른 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며 햇살론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잖아도 최근 청년실업으로 대학생 등 청년층의 채무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20대 상담자가 급격히 늘었다”고 신복위 관계자는 말한다. 이들 청년이 돈을 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주거관리비 등 기초생활비를 대기 위해서”라고 한다. 장학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모자라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안정적인 재원 확보가 이뤄지지 않아 이들이 더 이상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다니 안타깝다.

은행의 문턱이 높으면 청년들은 고금리의 대부업체나 사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고금리와 연체, 신용불량의 늪으로 빠지는 길이다. 정부와 사회가 청년들이 빚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은행들의 동참도 요구된다. 청년과 대학생들의 신용이 불량한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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