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 비나 바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날려 보낼 정도의 비와 바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일,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전국적으로 내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미세먼지를 씻어내진 못했지만, 봄 가뭄만 생각해도 정말 단비였다. 바짝 마른 땅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얼마 전 미세먼지 대책으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인공강우’가 생각났다. 과연 이런 정도의 비가 인공강우로 가능할까? 인공강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기술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개발된 놀라운 기술의 쓰임새를 본다면 이런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예상 못한 어떤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 비 온 후 며칠간, 꽃샘추위를 몰고 온 바람 덕분에 비교적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미세먼지를 날려 보낼 정도의 바람도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 기술 또한 재앙이 될 확률이 높다. 

눈부신 발달을 거듭해왔지만, 인간의 기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정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전기를 생산하려고 만든 석탄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될지 몰랐다. 기술의 부산물들이 서로 만나 다시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우리는 잘 모른다. 기후변화가 대기 정체를 일으키고, 대기 정체는 비와 바람을 약화시켜 미세먼지 문제를 악화시킬지 몰랐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 질서를 쉽게 훼손하지만, 훼손된 질서의 복원에는 무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기술로 인한 부작용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가 될 때까지. 아무리 놀라운 기술을 동원한다고 해도, 무모하고 미련한 짓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도 국내 배출원의 15% 정도를 차지한다는 석탄발전은 좀처럼 줄어들 기세가 아니다. 노후 발전소 10기는 폐쇄키로 했다지만, 7기가 추가 건설 중이라 2030년까지 석탄발전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발전소의 추가 폐쇄 계획은 없고, 30기 이상의 발전소는 성능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무엇이 이렇게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집착이나 타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미세먼지의 배출원은 우리 안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핵폐기물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으니 임시저장소를 더 만들자는 발상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해결해보자는, 아니, 일단 문제를 피해보자는 태도다. 핵폐기물 문제의 해결책은 배출원인 핵발전소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배출원인 핵발전소는 건드리지 말라는 ‘탈원전 반대’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이렇듯 집요하게 탈핵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핵폐기물의 진짜 배출원도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 4대강 문제의 근원은 16개의 보에 있으니, 해결책도 보 해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왕 만들었으니, 어떻게든 활용하자는 주장도 원인은 그대로 두고 문제를 무마해보자는 미봉책이다.

미국 대학의 한 연구팀이 대기에 뿌린 미세입자로 햇빛을 차단해서 기후변화를 막는 연구를 한다고 한다. 이 연구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지구에 미칠 다른 영향은 알 수가 없다. 창의적인지 모르겠지만 무모하고 미련한, 오만하고 섬뜩한 발상임은 분명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대면하는 것은 분명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 환영받지도 못하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피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부터 근원을 ‘발본’하고 ‘색원’하지 않는 한, 진정한 문제 해결도 변화도 없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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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이름을 적어놓았던 메모지도 지금은 없어졌다. 그런데도 검사 하면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전해들은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10여년 전 우연히 탄 택시의 기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낮에 한 검사에게 점심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의류 제조업체의 사장이었다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까지 지정됐다고 하니 꽤 규모가 큰 회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월드컵 때의 투자로 부도가 났다. 그는 전 재산을 털었지만 빚을 다 갚지 못했고, 고소를 당해 그 검사를 만나게 됐다.

검사는 조사가 끝나던 날 “300만원 있느냐”며 “그 돈만 갚으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했다. 그에게는 300만원도 없었다. 검사는 “내가 빌려줄 테니 나중에 갚으라”며 3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한다. 그는 검사에게 받은 300만원으로 채권자들과의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돈이 생길 때마다 10만원, 20만원씩 갚아나간 그는 내가 택시를 탄 그날 검사를 만나 빌린 돈을 마지막으로 갚았다. 그는 “돈이 없어 5000원짜리 국밥밖에 사지 못했다”고 했다. 얘기를 들려주는 택시 기사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고마움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가 검사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많이 공부한 사람이라 역시 배려심도 깊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다. 세상의 검사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밝아졌을까. 하지만 요즘 접하는 검사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자료를 모니터에 게시한 채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구속된 한 대기업의 검사 출신 부사장. 윤리경영부문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의 유해성을 알고도 이를 숨기려 자료를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사 시절에는 ‘맷값 폭행’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 피해자를 기소했다. ‘장자연 리스트’ 관련 수사 때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기소했다.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시민들을 시끄럽다고 잡아들인 격 아닌가.

그리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건설업자의 별장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며 ‘육안으로도 (김 전 차관으로) 식별이 가능한’ 동영상을 찍었다. 한밤중에 해외로 나가려다 출국이 제지된 그는 잘못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 사과가 없다. 그저 “힘들다”는 말뿐이다.

무엇이 검사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수사권, 수사지휘권, 독점적 영장 청구권, 기소권을 독점한 그들의 막강한 권한 때문일까.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만든다. 착하고 순수한 프로도마저 반지를 보는 순간 눈빛이 변한다. 검사들에게 그들이 가진 절대적인 권한은 ‘절대반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에서 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 파괴하듯 검사들의 절대적인 권한을 줄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이 처음으로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분수’를 배울 때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 연산에 그치던 초등학교 2학년 수학과는 달리 3학년이 되면서 분수와 도형을 접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 수학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형성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수포자’가 되는 시점에 충분한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사들도 일을 하다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승진이라든가 보직이동을 처음 경험하게 될 때 같은. 만약 그렇다면 검사들에게도 어느 시점에 일을 떠나 윤리 교육을 다시 받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2009년 3월 ‘검사선서’를 만들어 새로 임용되는 검사들이 선서하게 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검사의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는 아닐 것이다. 검사로 취임할 때 선서한 바를 퇴직할 때까지 지켜주기만 해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검사선서’를 다시 읽어볼 것을 검사들에게 권한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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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늙으려는 고군분투 속에서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이라 알려진 안토시아닌 함유량은 슈퍼푸드의 절대 기준이다. 한때 흑미 열풍도 불었지만, 지금은 ‘베리류’ 과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안토시아닌 서열 정리를 하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에는 블루베리가 대세였다. FTA로 과수농가의 피해가 커질 것이 뻔해지자 2000년대 초반 대체작물로 권장하던 작목 중에 블루베리가 있었다. 블루베리는 산성토에 잘 맞아서 ‘피트모스’라는 전용 흙에 키워야 한다. 흙은 물론 수입한다. 첫 수확에 시간이 5년 정도 걸리긴 했지만 블루베리 인기가 좋았다. 언론부터 홈쇼핑까지 블루베리 열풍에 가담했고, 이래저래 재배지역이 늘었다. 하지만 값싼 미국산 블루베리가 밀려들어왔다. 블루베리는 FTA 수입 피해 대상 품목에 들어가면서 소득작목으로 각광받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2016년 포도와 함께 폐원 신청을 받는 작물이 되었다. 

엇비슷한 시기에 안토시아닌의 왕, ‘킹스베리’라는 별칭의 아로니아가 떠올랐다. 2010년 전후로 새로운 소득작물이자 대체작물로 아로니아 열풍을 부추겼다. 방송사마다 아로니아를 소개했고 식품학계는 논문으로 아로니아떡, 아로니아막걸리 등에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며 과학으로(!) 증명하기에 바빴다. 불로장생의 꿈을 실현시켜줄 과일에 사람들은 매혹당했다. 마땅한 대체작물을 찾지 못한 농민들도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었다. 농업 기관에서도 아로니아가 괜찮은 소득작물이 될 것이라 검증해주었다. 정부가 하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는 농촌의 오랜 지혜를 거스르고 아로니아 농사에 뛰어든 것이다. 귀농인들도 큰 기술이 필요 없고 소득작물이라며 귀농교육 기관에서 권유를 받았다. 묘목도 지원해주고 수매도 해주겠다 하고, 무엇보다 고소득 작물이라는데 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양군 같은 곳에선 군수까지 나서서 아로니아 권작을 하고 전용 가공센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로니아 생과는 시고 떫고 쓰다. 몇 년 전 충남의 아로니아를 비롯해 구스베리니 커런트니 입에도 잘 안 붙는 베리 농사를 짓는 농가에 취재를 갔다가 아로니아 몇 개를 집어먹었다. 웬만하면 농민들 앞에서 아무거나 다 먹지만 아로니아만은 뱉어냈다. 블루베리와는 달리 생과로는 섭취가 애초에 불가능해서 가루나 즙을 내어 2차 가공을 해야 하는 작물이다. 아로니아 농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꿈은 원대했다. 아로니아즙, 식초, 술을 담가 팔고 천연비누나 식품에 첨가해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근래에 연락을 해보니 “진즉에 접었지유”라고 한다. 제대로 팔아본 적도 없고 유럽 베리 산업의 중심지인 폴란드산 아로니아가 홈쇼핑을 통해 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정부의 FTA 피해 품목이 아니란 말만 믿었건만 당연히 가공품 형태의 아로니아 시장은 손쉽게 열려버렸다. 

그나마 이 농가는 빨리 집어치워 품값이라도 아낀 것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지금 전국의 아로니아 농가들은 키워놓은 나무를 뽑느라 포클레인 공임비마저 날리고 있다. 아로니아 메카로 만들겠다던 단양의 아로니아 가공센터는 지역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로니아 농사를 부추긴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매번 속으면서도 아로니아 헛소동에 휘말려 폐원 비용이라도 보장하라는 농가의 요청에는 구걸하지 말라며 서늘한 댓글들이 달린다. 아로니아의 검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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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란 법으로 규정하는 일종의 반사회적 행위다. 죄의 원천을 단순히 개인이냐 사회구조냐에 따라 판단하는 이원론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개인과 사회는 거대하고 복잡한 상관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범죄율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범죄율을 의도적으로 높이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이는 어떤 연유에서일까. 

미국에선 실제 범죄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정권을 창출하거나 유지하는 사례가 있었다.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20여년에 이르는 민주당의 전성시대를 이끈 인물이다. 민주당의 독주로 위기에 처한 공화당은 1960년대에 ‘분할정복’이란 정치전략을 시도한다. 분할정복은 가난한 백인이 부유한 백인을 배척하지 않도록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에게 반감을 품게 유도하는 이중전략이다. 

문제는 분할정복전략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높은 범죄율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범시스템이 견고한 부촌에서는 범죄율의 상승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슬럼가나 도심에 거주하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범죄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범죄에 노출된 저소득층은 유사 계급에 반감을 가진다. 계급 간의 갈등을 조장한 포퓰리즘에 이용당한 중산층 이하의 유권자는 정략적으로 범죄소탕을 외치는 공화당에 표를 몰아주기 마련이다.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정권에 따라서 범죄율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공화당 집권기에 자살과 살인을 합친 폭력치사율이 높아졌다고 발표한다. 공화당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가 재직한 1981년부터 1992년은 10만명당 19.9명에서 22.4명에 달하는 폭력치사율을 기록한다. 하지만 1993년 부시로부터 21.7명이라는 폭력치사율을 물려받은 빌 클린턴 집권기부터 변화가 생긴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자 폭력치사율은 내림세를 보인다. 1997년 재선 첫해에는 18.3명을 기록했으며,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16.0명으로 하락한다. 이후 아들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수치는 오름세로 돌아선다. 제임스 길리건은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통해 이러한 수치의 변화가 우연이 아님을 밝혀낸다. 

이러한 현상을 건국 이후부터 인종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국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지역차별의 역사가 견고한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특정 지역을 정략적으로 소외시키는 한국판 분할정복전략이 20세기 후반까지 유효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차이점이라면 비열한 지역주의로 분열을 일으키려는 집권세력의 칼날에 맞섰던 흔적이 존재했다는 부분이다.  

길리건 박사는 반세기 동안 이어진 공화당의 분할정복전략의 희생양인 99%에 달하는 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민의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갈림길에 정치라는 매개변수가 작용하고 있음을 적시한다. 한편 민주당 출신인 지미 카터 집권기에는 폭력치사율이 정체상태를 보인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길리건의 연구는 정치권력과 시민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저자는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매사추세츠주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폭력 예방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이후 교도소 내 살인율·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낸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한다. 2018년에 처음으로 2위로 내려갔으나 이는 한국보다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했기에 가능한 순위였다. 

조지 오웰은 소설을 통해서 사회를 설계하는 미래권력을 예견했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살인과 자살을 설계하는 사회에서 밝고 건강한 일상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폭력과 죽음의 이면에 존재하는 설계자를 차단하는 사회란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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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거래’(The Traffic in Women)라는 글이 있다. 제목을 들으면, 인류학자, 젠더이론가인 게일 루빈이 1975년에 쓴 페미니즘의 고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고찰은 루빈보다 훨씬 이전에, 루빈이 참조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보다도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1940년 사망할 때까지 북미와 유럽에서 여성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했던 옘마 골드만은 ‘여성의 거래’에서, 여성의 인신매매를 “백인 노예제”라고 부르던 당대 사회비평가들의 피상적인 도덕론에 반박하면서 사회적으로 열등한 여성의 지위, 현저히 열악한 여성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조건 등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거래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은 성매매를 백인들의 문제로 축소하는 당대 미국의 개혁운동이 인종을 막론하는 여성의 착취와 강제된 성매매의 역사를 간과하는 시각임을, 또 제도화된 여성 착취의 기저에 남녀의 성에 대한 고질적인 이중잣대가 있음을 지적한다. 

골드만의 글은 20세기 초 너무나 제한적이던 여성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성매매 산업을 고찰하는 글이므로, 역사적 조건도, 문화적 맥락도 다른 오늘의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되돌아보는 건, 골드만이 당시 지적했던 몇 가지 사실이 오늘 우리가 늘 마주하는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듯 느껴져서다. 즉 성폭력적 여성 착취가 사회 전체의 경제체제 및 문화와 밀착된 문제이고, 여성의 거래가 포주를 비롯한 알선자와, 섹스 또는 다른 형태로 뇌물을 수수하는 관련 당국자들의 공모 속에서 영속화되며, 이로써 한편으로 여성을 거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거래를 단죄하고 처벌하는 모순이 여성을 통제하는 거대 범죄구조로 자리 잡는다는 비판 말이다.

옘마 골드만이 ‘여성의 거래’를 쓴 것이 1910년이다. 이후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요구했던 여성의 “자신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왜 여성의 거래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노골화되었을까.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성상납’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폭력적, 탈법적 작태는 골드만이 고찰했던 19세기적 성매매 산업보다 더 광폭하고 무도한  인신거래다. 장자연을 희생시킨 사건, 김학의사건, 그리고 버닝썬 게이트로 불거진 젊은 남자연예인 사업가들의 비위는 시기와 맥락은 다르지만, 특권의식과 이권의 결합으로 맺어진 남성연대 안에서 여성을 공여 가능한 재화로 삼는 노골적 거래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여성의 거래가그 본질상 거래되는 여성의 인권과 의지를 철저히 묵살해야만 가능한 성폭력일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이 사건들은, 성적 도구화된 여성을 매개로 하는 남성연대의 형성, 특권화된 쾌락의 독점적 소유자로서 남성의 폭력적 자기과시 등 여성을 거래한다는 행위가 개념적으로 연루하는 문제들을 가시적으로 총망라한다. 이 사건들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런 거래가 특권적 남성연대 안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동시에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성을 탈인간화하는 행위를 묵과하고 무마하는 공권력 대리인들의 공모는 상호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성폭력의 카르텔을 확장하고 공고히 한다. 이 특별한 교환행위, 또 그것을 통한 지위와 능력의 과시, 쾌락과 이윤의 획득은 그야말로 초법적 권력행사라는 차원에서 진정한 ‘특권’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남성의 사회화는 여성의 탈인간화를 학습하고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시대의 악습으로 치부하고 싶은 여성의 탈인간화가 젊은 ‘아이돌’ 남자들의 사업수완, 오락거리로 버젓이 활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증거가 아닌가. 그런 사회에서 섹스는 테러나 다름없다. 카톡방의 무수한 성희롱 발언들에 상처받고 명예를 훼손당한 수많은 여성들, 불법촬영물로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들, 연예 활동을 위해 성폭력 감수를 강요받는 여성들에게 섹스는 이미 테러다. 

그 위선적, 무법적 현실의 폭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풀어야만 하는 어려운 숙제다. 수사와 처벌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을 탈인간화하는 특권적 권력을 폭로하여 그 특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은 거래의 ‘대상’이 될 것을 강요받고 침묵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이다. 내부의 성폭력적 문화에 침묵했고 과거에 덮었던 문제들을 ‘과거사’로 다시 떠맡은 검찰이 과연 공모의 그림자가 얼마나 높이 멀리 뻗었는지를 샅샅이 살필 수 있을지, 결국 테러가 테러를 눈감아 주는 형국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할 뿐이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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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과 황금폰. 해리슨 포드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 제목에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단어는 현재 우리 사회 상층부 남성 권력의 정치·젠더 폭력의 실체를 표상하는 기표들이다. 하나는 불타는 청춘의 욕망을 상징하는 클럽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뭔가 중대한 내용을 저장한 비밀 휴대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두 기표는 이제 남성 상층부의 가부장 권력을 말할 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 관계는 역사와 세대를 거쳐 재생산된다. 권번과 교방에서 요정과 궁정동 안가에 이르기까지, 버닝썬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된 정치·젠더 폭력 놀이방의 최신 버전이다. 

정치·젠더 폭력의 놀이 장소로서 버닝썬은 간판만 다를 뿐이지, 과거 대원각, 궁정동과 동일 업소다. 이 업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도 유사하다.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승리와 정준영, 그리고 그들을 비즈니스로 엮은 이문호 대표, 그들의 불법 영업을 눈감아 준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경찰 간부들은 궁정동 안가에 등장한 인물들과 흡사하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모 언론사 대표, 그리고 그들에게 원주 별장을 제공하고 집단 성매매를 제공한 윤중천, 그리고 그 사건을 덮은 검찰 수뇌부도 거의 속편의 영화를 찍는 다른 등장인물들이다. 영화 촬영지인 궁정동, 버닝썬, 원주 별장은 장소는 다르지만, 하는 짓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항상 연예인이 등장한다.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논란을 빚은 가수 정준영(왼쪽)과 성 접대 의혹이 불거진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가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그런데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연예인의 위치이다. 버닝썬사건에서 연예인은 젠더폭력의 가해자로 등장하는 반면, 장자연사건에서 연예인은 피해자, 아니 희생자로 등장한다. 승리와 정준영과 장자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남성연예인으로 불법으로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서로 공유한 자들이고, 후자는 그 남성 젠더폭력의 가장 참혹한 피해자라는 점이다.

황금폰은 여성들에게는 이중 피해의 공간이다. 거꾸로 황금폰은 버닝썬에서 폭력을 행사한 남성연예인의 이중 폭력의 공간이다. 황금폰은 버닝썬의 정치·젠더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래서 황금폰은 버닝썬보다 더 심각한 남성 상층부 젠더폭력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중의 폭력, 이중 착취의 가상공간이자, 권력의 관음증, 타자를 노예화하는 플랫폼이다. 어느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론되었던, 수많은 여성연예인들의 번호가 저장된, 그리고 그들과 카톡 메신저로만 사용된다는, 황금폰의 정체는 무엇일까? 황금폰의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것은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서로 공유한 남성연예인들의 젠더폭력의 전리품인 것이다. 

버닝썬과 마찬가지로 황금폰 역시 역사적으로 재생산된다. 핫라인, 대포폰, 밀수폰, 묻지마 카드 등이 황금폰의 다른 이름이다. 황금폰과 그 사용법은 연예인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남성 상층부에 속한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은 황금폰을 가지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그곳이 대개는 불법적인 행위이지만, 죄책감 없이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사교공간에서 자랑하고 위세를 떤다. 버닝썬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불법 행위임을 알면서도 경찰과 검찰 권력을 운운하며 황금폰에서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유통되길 욕망한다. 그 콘텐츠들이 더 자극적이고 불법적일수록 황금폰의 은밀한 가치는 더 높아진다. 그들은 그렇게 놀기 원하는 자들이다. 버닝썬사건을 한국 아이돌 문화의 위기 혹은 추락의 증거로 한정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그것은 동료 여성연예인을 바라보는 남성연예인들의 바뀌지 않는 가부장적 젠더폭력이고, 한국 남성 상층부 권력의 젠더 착취의 가학적 증상의 전형이다. 버닝썬에서 황금폰으로 이어지는 젠더폭력의 과정은 단절과 우연이 아닌 연속과 심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미투 운동의 연장에 있으며, 장자연사건의 정치적 스캔들의 연장에 있다. 왜냐하면 버닝썬과 황금폰은 남성 정치·젠더 폭력의 짝패이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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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28일 ‘장래인구 특별추계:2017~2067년’ 자료를 공개했다. 당초 인구추계는 통상 5년 주기로 공포함에 따라 2021년 공개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긴급하게 발표한 것이다. 이번 추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의 자연감소 시기와 인구가 정점에 달하는 시기 모두 앞당겨졌다. 3년 전 추계에서는 자연감소 시기를 2029년으로 예상했으나 올해부터 감소가 시작되고, 인구 정점 시기도 2031년에서 2028년으로 당겨졌다. 인구감소 현상이 갈수록 급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고령화 심화와 관련이 깊다. 여성 1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86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를 기록한 뒤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고령화가 겹치면서 2065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늙은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인구절벽으로 고용과 생산, 소비,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가의 활력은 떨어지고 미래세대의 부양 부담은 커진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할 인구가 2017년 36.7명이었지만 2067년에는 120.2명이 된다고 한다. 인구감소로 성장이 지체되는 ‘인구 오너스’ 현상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 역대 정부는 2006년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계획’이란 걸 만들어 13년간 12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출생아 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급락했다. OECD 회원국 합계출산율은 평균 1.68명이다. 그런데 201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 세계 198개국 가운데 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2002년 40만명대이던 출생아 수는 지난해 32만6900명으로 줄었다. 머지않아 30만명대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를 내달 출범하겠다”고 했다. 역대 정부는 중구난방식 대책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인구감소 대책은 출산·보육·교육·주거·노인 대책의 종합판이어야 한다. 국가 존립을 위해 새판을 짠다는 각오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모두가 노력하지 않으면 암울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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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현 자유한국당 대표)을 만나 ‘김학의 성범죄 의혹’ 동영상 CD를 언급하며 김 차관 임명을 만류했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발언을 한 데 이어 28일에는 과거 일정표를 공개하며 황 대표 면담 시점을 ‘3월13일 오후 4시40분’으로 특정했다. 황 대표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고, 현재는 제1야당의 대표다. 중대 사안인 만큼 거짓 없이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2013년 3월13일은 박근혜 정부의 첫 차관 인사가 이뤄진 날이다. 청와대는 법무부 차관을 포함한 인사 내용을 오후 2시 발표했고, 2시간여 뒤 박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을 만났다. 하지만 김학의 전 차관은 3월15일 공식 취임했다. 박 후보자 주장대로라면 김 전 차관의 직속 상관인 황 대표가 성범죄 의혹 내용과 이를 담은 동영상의 존재를 인지하고도 이틀 사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황 대표는 “박 후보자를 여러번 만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다 기억을 못한다”고만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런 해명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박 후보자가 제시한 정황이 구체적인 데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당시 박 후보자로부터 ‘황 장관한테 (CD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터다. 2013년 6월17일 법사위 회의록에 드러난, 박영선 당시 법사위원장의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황교안) 장관님은 김학의 차관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다 알고 계실 것”이라며 “저희가 (황 장관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법사위에서) 질문드리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의 성범죄 의혹은 대표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자, 공권력이 피해자의 호소를 짓뭉갠 최악의 인권침해 사례로 꼽혀왔다. 최근에는 ‘박근혜 청와대’가 2013년 김 전 차관을 수사한 경찰에 외압을 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황 대표는 ‘핵심 피의자’의 직속 상관이었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핵심 피의자를 불기소 처분할 때 주무 장관이었다. 설령 박 후보자로부터 동영상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해도,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황 대표는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진지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진상규명에 협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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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1억원을 빌려 공시가격 26억원에 달하는 재개발지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서울 집값이 폭등하던 지난해 7월 서울 흑석동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을 샀다고 한다. 이 지역은 매입 두 달 전 롯데건설이 재개발사업을 수주한 ‘흑석뉴타운 9구역’으로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는 이 건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 외에 은행에서 배우자 명의로 10억2080만원을 대출받았고 지인에게 1억원을 빌렸다. 은행금리 4%를 적용하면 매년 이자만 5523만원을 내야 한다. 김 대변인 연봉의 절반 이상이다. 말 그대로 부동산에 올인해 재테크에 나선 셈이다. 

김 대변인은 28일 상가 매입을 놓고 파문이 일자 “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자리고, 제 나이에 전세를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전날엔 “노후 대책용으로 건물을 매입했다”고 했다. 폭등한 집값 앞에서 절망하는 청년세대나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참으로 꿈 같은 얘기다. 군색한 변명은 도리어 시민의 분노만 키우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대책과 지난해 9·13대책 등 각종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하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흑석동은 8·2 부동산 대책 때 투기과열지구로 분류돼 각종 규제를 받고 있는 곳이다.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투기 억제에 집중할 때 청와대 대변인은 거액의 빚을 내서 재개발지역 노른자 땅을 산 것이다. 투기를 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요, 투기가 아니라 해도 공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이 정부는 다를 거라 믿어 온 시민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은 매일 시민 앞에 나와 대통령과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다. 앞으로 김 대변인의 국정 설명을 과연 신뢰하겠는가. 무엇보다 시민이 정부 정책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 국정이 추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해 약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구역의 한 복합건물. 김영민 기자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나설 때는 고위공직자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시민은 비 새는 집에서 천장만 바라보는 청백리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말과 행동은 맞아야 한다. 이번 재산공개에서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86명 가운데 25명(29.1%)이 두 채 이상 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 전체 가구 중 다주택가구는 14% 정도다. 고위공직자가 일반인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시민을 우롱하는 행태다. 이러니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고 한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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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들이 사용했던 펜을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7000원에 판매하려던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있었다. 펜 주인의 손편지가 동봉될 계획이었는데, 편지는 ‘등급 컷’이 높은 순으로 선착순 판매될 계획이었다. 논란이 일자 해당 동아리는 판매계획을 중지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상품’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시점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증발한 듯하다. 1998년에 출범했던 시민단체인 ‘학벌없는사회’는 2016년 해체를 선언하며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졌기에 학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학벌의 질서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사회경제적 권력의 획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도 서울대를 가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절과 다르게, 같은 서울대라도 부자와 빈자, 입시전형과 ‘등급 컷’에 따라 운명이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난한 아이들은 더 이상 서울대를 갈 수 없다. 학벌의 서열과 자본의 서열이 점점 더 빈틈없이 일치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개천의 용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중요한 것은 용이 아니다. 개천의 용이란 언제나 희망의 얼굴을 한 기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계급재생산을 위한 부자들의 온실에는 자녀들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필요하다면 시련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준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그것이 ‘경쟁’이라면 이들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서 적합하게 대우할 수 있다는 것은 이념이나 믿음의 영역에 더 가깝다. 애초에 그 기준 역시 돈과 권력의 바깥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격차가 더 깊어지고, 점점 돌이킬 수 없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박탈감에 대한 호소와 ‘갑질’에 대한 분노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오언 존스의 책 <기득권층>에서는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2002년의 어느 날, 지난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해 절망해 있던 보수당 정치인과 당원들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한 호텔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심각한 청중들의 얼굴과는 다르게 대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토니 블레어가 우리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미국과 함께 이라크 침공의 선봉에 서고, 민영화와 복지정책의 축소를 도모했다. 대처는 자신이 초석을 놓았던 신자유주의가 ‘적’에 의해 공고해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부패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법의 심판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학벌도 능력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들이고, 모두가 건물주의 꿈을 꾸며, 힘들게 입사한 정규직의 특권은 당연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혹시라도 나 모르게 과도한 복지혜택을 받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한다. 갑질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불평등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나의 박탈감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욕망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했고, ‘적’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와 우리가 비난하는 부패한 기득권자들 사이에는 현실의 골짜기와 인식의 실개천이 놓여있다.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퇴사해야만 삶에 대해 고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갈증과 환멸은 이 다른 생각의 부제로부터 연유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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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젊어서 성공한 삶을 꿈꾼다. ‘성공’이 뭐냐 물으면 사람마다 답이 제각각이다. 돈이 많아야, 지위가 높아야, 훌륭한 작품을 남겨야, 자신의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어야 성공이라 할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또는 가정의 화목이 바로 성공한 삶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높은 수익이 성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직원의 행복을 기준으로 성공을 잴 수도 있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가 성공한 기업의 기준일 수도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실은 복잡해도 단순하게 줄이고 줄여 뭉뚱그려 바라보는 것이 과학이다. 복잡하면 이해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과학 방법론이다. 자,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 중, 예를 들어, x축에는 가진 돈을, y축에는 가정의 화목을 놓고, z축 방향으로는 성공의 정도를 표시해보자(즉 성공은 z = f(x, y)의 꼴로 적을 수 있는 함수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 다르니 x축과 y축에 적힌 양도 제각각이고, 함수의 모양도 모두 다를 것이 분명하다. 또 성공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딱 둘뿐일 리도 없으니 이차원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정의되는 함수가 성공이다. 하지만, 수학적 구조는 z=f(x, y)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함수’를 보고 어리둥절한 독자는 네모난 땅 위에 여러 언덕과 골짜기가 있는 구불구불한 지형을 떠올려보면 된다. 지형이 제각각 다른 땅을 각자 가지고 있고, 최대의 성공이란 네모난 테두리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상상하면 된다. 이런 유형의 문제를 과학에서는 최적화 문제라 한다. 

네모난 테두리 안이라는 제한조건하에서 가장 높은 곳이 어디인지 찾는 문제다. ‘성공’을 예로 들었지만, 이와 같은 최적화 문제는 우리 현실에서 수없이 자주 마주친다. 아침 출근에 걸리는 시간을 집에서 나오는 시간과 교통편을 바꿔가며 최소로 하는 것도 최적화 문제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어떤 과목에 얼마의 시간을 투입해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고민하는 것도 그렇다. 지갑 사정이라는 제한조건하에서 영화를 볼지, 책을 살지, 커피를 마실지, 나의 만족을 최대로 하는 최적의 조합을 생각하는 것도 최적화 문제이다. 주변의 땅값과 건설의 어려움을 고려해 두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어떻게 건설하는 것이 비용을 가장 많이 절약할지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값에 비해 품질이 우수한 소위 가성비 높은 상품을 찾아 만족했다면, 지출 비용이라는 제한조건하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최적화 문제를 푼 셈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출발해 성공의 최댓값에 다다르는, 경계 안의 가장 높은 고지를 찾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등산을 가면 산꼭대기가 저 멀리 맨눈에도 보이지만, 인생에서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눈을 감고도 고지에 오르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딱 한 걸음씩 눈감고 조심스레 디뎌보고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높아지는 방향을 골라 그쪽으로 한 발짝 발걸음을 옮기는 거다. 이를 반복하면 한 걸음 한 걸음 점점 높은 곳을 향해 눈을 감고도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바로 옆 주변만을 살펴 걸음을 옮긴다는 면에서 이 방법을 국소적 탐색이라 한다.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 연결망의 가중치를 조금씩 바꾸는 학습의 과정에 정확히 이 방법을 널리 쓴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도 아장아장 한 발짝씩 걷는 바로 이 방법으로 바둑을 배웠다.

인생에서 성공의 지형은 무척 복잡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산봉우리도, 그보다 낮은 언덕도, 깊은 골짜기도 있다. 국소적 탐색의 방법은 심각한 결점이 있다.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 한번 오르면 그곳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언덕 꼭대기에서는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나, 눈감고 살짝 디뎌보면 하나같이 경사가 아래를 향한다. 올라가는 방향이 없으니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꼭대기에 붙박혀 있게 된다. 저 멀리 높은 산봉우리로 건너갈 방법을 국소적 탐색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현재의 작은 성공에 안주해 바로 옆 주변만 살피다가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성공의 높은 산꼭대기에 도달할 수 없다. 

야트막한 언덕에 오래 머물게 되는 국소적 탐색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먼저, 주변 1m 안쪽만 발끝으로 조심스레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통 크게 몇 ㎞ 멀리로 바람에 몸을 맡겨 훌쩍 떠나보는 것도 방법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에서 더 높은 성공의 고지를 찾을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큰 위험도 있다. 훌쩍 길을 떠나 다다른 저 먼 곳이 깊은 골짜기라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할 수도, 천 길 낭떠러지라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작은 보폭으로 걸어가는 다른 방법도 있다. 한 걸음 디딘 곳이 내리막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그래도 희망을 갖고 계속 꾸준히 나아가는 방법이다. 한동안은 한 걸음씩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지만, 결국 더 내려가려야 갈 수도 없는 최악의 골짜기에 빠진 다음에는 반대쪽 경사면을 따라 더 높은 다른 언덕 꼭대기에 닿을 수도 있다. 안락하고 익숙한 작은 성공에서 벗어나 큰 성공을 거두려면, 위험을 무릅쓸 용기와 함께, 이어지는 실패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멀리 떠나보면 엉뚱한 곳에 잘못 왔다고 후회라도 할 수 있지만, 제자리에 머물면 평생 후회조차 할 수 없다. 안 가본 것을 후회하느니 가보고 나서 후회하자. 조심스러운 탐색으로 작은 언덕에 올랐다면 이제 더 큰 꿈을 꾸자. 저 멀리 있는 커다란 성취의 산봉우리에는 후회해본 사람들만 갈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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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마다 돌아오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평가를 앞두고 결국 사달이 났다. 전국 43개 자사고 중 올해 재평가 대상은 22개. 이 중 13개 자사고가 모여 있는 서울에서 자사고 교장 22명이 지난 25일 모여 “재평가를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 유일의 광역 자사고인 하나고를 제외한 22개 자사고가 모두 참여한 선언이니 현재대로라면 서울시 자사고 재평가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튿날 열린 서울시교육청과 자사고들 간 간담회에서도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자사고들은 시교육청이 만든 평가 기준이 과거보다 지나치게 높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정당한 요구라고 보기 어렵다. 수험생이 출제자에게 “문제가 너무 어려우니 쉽게 내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세상에 그런 시험은 없다. 더욱이 자사고 재평가는 엄연히 교육법으로 규정된 법률행위다. 기본적으로 자사고가 그 평가 기준을 이유로 재평가를 거부할 대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교사노동조합 등이 “재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자사고 지정 요건을 위반하는 위법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선 배경이다.

자사고가 무엇을 기대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는지 단정하긴 어렵다. 정말로 시교육청이 평가 기준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민선으로 교육감직을 연임하고, 기회만 되면 자사고 폐지를 외쳐온 조희연 교육감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속된 말로 ‘가오’가 빠져도 너무 빠지지 않나.

5년 전을 떠올려본다. 2014년에도 자사고 재평가가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14개 자사고가 평가를 받았고, 8개 학교가 기준 미달로 나타났다. 시교육청은 규정에 따라 해당 자사고에 대해 폐지 절차에 들어갔지만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다. 교육법에는 자사고를 취소하려면 교육부와 시교육청이 ‘사전 협의’를 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자사고를 없앨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시교육청과 교육부의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지난해 대법원은 “사전 협의가 안됐으니 지정 취소를 하면 안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시교육청이 진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자사고 재평가 결과 발표 및 후속 조치는 연말쯤에나 이뤄진다. 그리고 내년엔 바로 총선이 있다. 일각에선 자사고들의 평가 거부 선언을 ‘제2의 한유총 사태’와도 비교하지만 뜯어보면 결이 많이 다르다. 한유총 사태는 학부모와 여론이 스스로 정부 편에 섰다.

자사고 문제는 다르다. 인생을 좌우한다는 대학 입시가 걸려 있는 문제다. 당장 자녀가 다니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학부모는 많지 않다. 지난해 학교 측이 스스로 원해 일반고로 전환한 대성고의 경우 아직도 전환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유총 문제와 달리 자사고는 지역 민심과 여론을 동요시킬 휘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선언문을 들고 나타난 22명의 교장과 그 뒤에 자리 잡은 사학재단들은 이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려되는 점은 교육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시교육청이 재평가와 지정 취소를 강행했을 때 교육부가 5년 전처럼 딴지를 걸지 않아야 정상이다. 규모와 그 파급력을 봤을 때 자사고들이 집단 평가 거부에 나섰을 때 즉각 교육부가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여당 내에서도 누구는 자사고를 없애자 하고, 누구는 “우리 지역에만 없다”며 자사고를 달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 현 정부의 명운과 차기 대권의 향방까지 걸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자사고가 됐든 정부가 됐든 교육을 가지고 정치놀음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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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인디안밥, 점심에는 고래밥, 저녁에는 사또밥. 대충대충 먹고 살아도 되는데 부산스럽게 또 상차림을 하게 된다. 한 처자가 절대로 결혼은 않겠다고 장담하면서 친구들에게 그랬다. “사내놈들은 다 늑대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늑대밥은 안될 거니 어디 두고 보라고.” 그랬다가 느닷없는 반전 결혼식. 이번에는 말이 바뀌어 “늑대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니.”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이런 밥 타령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밥이 코로 들어갔다.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외우는 편이다. 진지한 말의 성찬은 아무리 영혼의 양식이라도 앉아 있기 괴롭지. 우울한 수도원은 내가 머물 곳이 못된 듯싶다. 인연이 쌓여서 강연을 부탁받기도 한다. 거마비도 못 주는 궁핍한 현장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도 가끔 가곤 했다. 웃을 일이란 하나 없는 표정으로, 아무리 재밌는 소리를 해도 시큰둥. 놀부와 스님의 “주나봐라 주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불경외기 싸움처럼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그러면 나 혼자 웃다가 온다. 나라도 살아야지. 

소설가 김성중의 <개그맨>은 이렇게 시작된다. “느린 말투의 느린 움직임, 한순간 던진 말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후 각자의 연상 끝에 터지는 폭소. 대중이 그의 개그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가 무명시절일 때 만났다. (중략) 개그맨은 떨어진 빗물을 바라보면서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이 슬픔의 도성에서 웃음거리를 그래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선가 폭소가 터진다. 일행도 아닌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엿들어 알고 싶다. 친구가 재밌는 말을 하면 일부러라도 많이 웃어주고 그러자. 실없는 이야기라도 좀 웃어주자. 만두 두개, 그만 두게! 할 때까지 말이다. 시샘추위로 한껏 움츠러든 며칠이었다. 노랑나비를 보았다. 마당에서 개그맨과 노랑나비가 콤비로 쇼를 했다. 웃을 일이 있어야만 세상살이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일단 웃고 나면 세상살이가 어느새 행복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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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교 학생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교육부가 27일 발표한 ‘2018년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 분석결과’에 따르면, 시력 0.7 이하인 저시력의 학생은 절반 이상인 53.7%로 나타났다. 충치는 5명 중 한 명꼴인 22.8%, 비만율군은 4명에 한 명인 25%였다. 반면 학생들의 신체 성장세는 둔화됐다. 고3 학생의 경우 최근 5년간 키 성장은 정체됐고, 몸무게만 크게 늘었다. 

신체 활동이 왕성해야 할 학생 시기에 건강과 발육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비만율과 과체중을 합한 수치인 비만율군이 지난 5년 새 21.2%에서 25%로 증가한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잦은 결식과 패스트푸드 섭취 증가 등 나쁜 식습관이 직접 원인으로 꼽히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이에 따른 신체 활동 부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PC 사용 증가로 인한 학생 정신건강 악화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학생 시기의 건강관리는 원활한 학습을 위해서뿐 아니라 성인으로 나아가는 기초 체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건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성인 시기 만성질환으로 이어져 사회·경제적 비용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때맞춰 교육부와 관련 부처들이 ‘제1차 학생건강증진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해 건강증진 교육 내실화, 건강서비스 확대, 건강한 교육환경 조성에 나서겠다고 뜻을 모은 것은 적절하다. 비전도 중요하지만, 학생 건강 지표가 나아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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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후보자 7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27일 끝났다. 도덕성·자질 흠결로부터 자유로운 후보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의혹 경연장’을 방불케 한 청문회였다.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병역기피 등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인사검증 기준’에도 저촉되는 후보자들이 태반이고,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한 일탈도 수두룩하다.

27일 청문회를 치른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의혹백화점’이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아들 인턴 특혜 채용, 배우자 농지법 위반, 세금 탈루, 병역특혜, 다주택 보유 등 헤아리기도 벅찰 정도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조 후보자가 국가연구비 4800만원을 들여 두 아들이 유학 중인 미국 특정 지역에 7차례 출장을 다녀온 사실도 확인됐다. 이를 위해 허위출장 보고서를 작성한 의혹도 나왔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사실이라면 장관은커녕 교수로서의 자격도 없는 불법 행위다. 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딱지 투기’와 이해충돌,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청문회를 거친 후보자들도 단순 의혹 차원을 넘어선 경우가 허다하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 전날 6500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그간 탈세를 저지른 것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4차례 위장전입에다 본인 소득이 있는데도 아들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한 것이 확인됐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주택정책 총괄 수장으로서의 적격성에 심대한 결함이 드러났다. 그는 전형적인 재건축 투기 의혹에다가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닌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투자, ‘꼼수 증여’까지 부동산 투기의 고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토부 장관처럼 투기하면 되나요?”라는 비아냥을 듣는 국토부 장관 후보자, “죄송하다”는 사과로 퉁칠 단계는 지났다. 오죽하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경실련이 동시에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을까 싶다.

청와대는 인사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도 “사전에 체크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고위공직자로서 심각한 법·도덕적 흠결이 확인된 경우는 곤란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임명을 강행하기보다 철회하는 것이 정도다. ‘닥치고 임명’의 오만에 빠지지 말고, 청문 결과를 반영하여 옥석을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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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요? 로스쿨의 1년차는 고 3 수험생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의 나날이라고 들었습니다. 봄이 오는 기운이라도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요. 2월의 마지막 주, 학부를 졸업하며 J씨가 제게 작별인사로 건네준 편지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딱히 답을 바라고 준 편지가 아닌 것을 알지만, 설령 답을 바라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저는 답장을 못했을 거예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할 때면 저는 자주 막막해지곤 했습니다. J씨가 편지에 쓴 대로, “사심 없는 친절은 멸종위기에 처해버린 세상”에서 학생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장벽들에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장벽들이 만들어지기까지 기성세대인 나와 내 친구들이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린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가 바랐던 것은 ‘더 나은 세상’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현재의 한국 사회를 진보와 보수 어떤 시각으로 평가하든, ‘청년이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역설에 망연해졌던 겁니다.  

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이른바 ‘86세대’입니다. 지금 J씨 또래가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여길 우리이지만, 30여년 전에는 우리 자신이 지금의 모습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일본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얘기했듯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태반이 ‘이럴 리 없었던’ 자신인 것입니다.

지금도 저의 친구들 대다수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불리는 일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비슷한 나이대라고 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제각각인 사람들을 싸잡아 ‘기득권’이라고 호명하는 일은 마치 요즘의 20대 앞에 유행처럼, ‘분노한’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이는 일만큼이나 게으른 인식일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 세대는 기득권의 속성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모든 기득권은 스스로 흔들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 고인 물 같은 편안함을 흔드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입니다. J씨들의 질문에 맞닥뜨리는 일은 그래서 당혹스러우면서도, 소중한 일입니다. 정치적 민주화 하나로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환원해버리고 말았던 우리 세대의 감수성과 달리, J씨 또래는 세밀하게 분노합니다. 하나로 집결되지 않는 그 질문들은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쪽에서 물뽕(GHB)이라는 약물을 써서 여성들을 성폭력한 세태를 규탄하면서 “정부는 방관했고, 경찰은 유착했으며, 남성들은 연대했다”고 외치면, 다른 쪽에서는 가해자들과 생물학적 성이 같다고 공범 취급 당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맞섭니다. 그러나 저는 때로 강의실에서조차 팽팽했던 그 긴장들이 편가르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속속들이 스며있는 폭력에 대한 섬세한 인식에서 출발해 공정함과 책임분담, 연대의 균형점을 찾는 것으로 서서히 옮겨갈 것이라고 봅니다. 

J씨와 또래들의 질문이 다양하고 집요하고 예민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만큼의 분량으로 조금씩 달라져갈 겁니다. J씨가 폐지 줍는 할머니와 동행해 쌀쌀한 초봄의 밤을 꼬박 새운 뒤 과제를 제출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힘겹게 수레를 끌며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했던 말을 J씨는 인용했습니다. “뒤에서 손만 대고 있어줘도 오르막길이 훨씬 수월하다”고…. 그런 J씨에게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정의나 공익이라는 말을 섣불리 앞세우지 않은 것이 저는 미더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J씨가 앞으로 생의 수많은 교차로에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누군가를 말없이 밀어주는 손길이 되는 선택을 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화혁명의 격동기를 살아내며 배신과 자기부정, 우정, 사랑을 발견했던 중국의 작가 다이 호우잉은 자전적인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에 이런 구절을 남겼습니다. “함께 배웠다 하여 끝까지 같은 길을 걷는 것도 아니며, 길이 다르다 하여 반드시 다른 목적지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서로가 선 자리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건강을 빕니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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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부과학성이 26일 발표한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과 교과서 12종 검정 결과 ‘독도왜곡’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 간 우호적 교류에 관한 기술은 줄어든 반면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과오는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등 한·일관계 기술이 전반적으로 퇴행했다. 갈수록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이 어린 학생들에게 영토왜곡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커진 것이다. 강력히 규탄한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은 한층 강화됐다. 도쿄서적 5학년 교과서에는 독도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에 ‘이에 대해 일본이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독도의 전경사진을 게재한 교과서도 늘어났다. 

한국에 관한 서술이 퇴행하고 있는 점도 당혹스럽다. 니혼분쿄출판 교과서에는 ‘도래인이 대륙으로부터 문화와 기술을 전해줬다’ 등 한반도 출신 도래인에 대한 서술이 삭제됐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2002년에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전 서술에서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표현도 빠졌다. 미래 세대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거의 선린우호 역사까지 지워버리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27일 (출처:경향신문DB)

침략전쟁에 대한 기술은 미화와 왜곡 투성이이다. 임진왜란에 대해 ‘침략전쟁’이란 말을 빼고 ‘명을 정복하려고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고 한 교과서도 있었다. 한국을 함부로 군대를 보내도 되는 나라로 인식하도록 하는 무례한 기술이다. 러일전쟁에 대해 일본의 승리로 ‘구미 제국의 진출과 지배로 고통받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자각과 희망을 주었다’고 한 서술(니혼분쿄출판)은 일본 우익들의 사관 그대로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교과서는 단 1개뿐이었다.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 정권의 목표를 청소년들에게 은연중 주입시키겠다는 뜻으로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다. 일본의 미래 세대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반한 영토관념을 받아들여 한국을 ‘불법을 자행하는 국가’로 여기게 된다면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관계는 여러 이유로 악화돼 있지만, 백년대계인 교육에까지 이를 반영하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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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아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6일 새벽 기각됐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재임 중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김 전 장관의 행위를 특별한 사정에 따라 이뤄진 ‘관행’으로 판단했다. 법원이 이 사건 전반의 위법성에 의심을 드러냄에 따라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한 향후 수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대기 중이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이 일괄 사직서를 요구하고 표적감사를 한 혐의와 관련해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가 낙점한 인물을 임원으로 채용한 부분에 대해선 “공공기관장·임원에 대한 최종 임명권·제청권을 가진 대통령이나 관련 부처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후보자를 협의·내정하던 관행이 있어왔다”며 김 전 장관에게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인다고 했다. 기각 사유를 뜯어보면, 법원은 핵심 피의자의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이 세운 사건의 프레임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적폐청산이 절실한 과제라 해도 반드시 적법하게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촛불의 힘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구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법령과 현실의 괴리로 빚어지는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선거로 권력을 잡은 정당·정파는 자신들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인사권을 활용할 당위성이 생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법령이 규정한 임기제·공모제와 충돌하며 낙하산 논란이나 위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이 점에선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별 차이가 없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분란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차제에 법과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어 공공기관 인사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심사·임명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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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1일은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다. 정부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4월13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해 왔다. 이전까지 4월13일을 임시정부의 수립일로 정한 주된 근거는 일제 자료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의거(1932년 4월29일) 직후 일경은 임시정부 사무실을 급습해 임정 문서를 압수해갔다. 이를 참고해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부 제2과가 연표식으로 정리해 펴낸 <조선민족운동연감>의 1919년 4월13일조에는 ‘내외에 독립정부 성립을 선언해…’라는 문장이 있다. 이 짤막한 일제의 기록이 4월13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하는 데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서 발견된 임정 관련 자료를 통해 ‘상하이 임정 수립일은 4월11일’임이 확인되었다. 이에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임시정부 수립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당시 논란은 상하이임시정부의 수립일이 11일이냐 13일이냐였다. 2018년 정부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연구용역을 통해 임시정부의 수립일을 11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 수립일 변경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변경 사유도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탓에 어떤 근거에 의해 임시정부 수립일이 갑자기 변경됐는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더구나 변경된 날짜(4월11일)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4월11일은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서 상하이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이처럼 상하이임시정부로 보면 임정 수립일은 11일이 맞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국내외에서 여러 개의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국내에서는 신한민국 임시정부(4월17일, 평안도), 조선민국 임시정부(4월19일, 인천), 한성정부(한성임시정부, 4월23일, 서울)가 생겼다. 해외에서는 러시아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임시정부, 3월17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중국에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임시정부, 4월11일, 상하이), 고려임시정부(4월15일, 지린성) 등이 탄생했다. 

이 중 실질적 조직 기반을 갖춘 곳은 노령임시정부와 상하이임시정부, 한성임시정부 세 곳이었고 나머지는 전단지 형태의 임시정부로 얼마 못 가서 소멸됐다. 독자적으로 수립된 세 곳의 임시정부도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임시정부로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세 곳의 임정 대표자들이 통합을 추진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서 13곳의 대표가 참여한 국민대회를 통해 수립된 한성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그 내각을 그대로 승계하며, 대신 정부의 위치는 활동하기 편한 상하이에 두고, 명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하며, 노령임시정부를 흡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하여 1919년 9월11일 통합임시정부가 세워졌다. 통합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새로운 탄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임시정부 수립일을 상하이임시정부의 수립일인 4월11일로 성급히 변경한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납득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유일한 통합임시정부가 탄생한 9월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라고 본다.

<윤주 |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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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네 터줏대감이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적마다 밭은 숨을 내쉬는 노인 두어 명을 빼면 그가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그의 머릿속엔 위도와 경도를 굳이 매겨놓을 필요 없는 정밀한 동네 지도가 구축되어 있다. 그 동네에서만큼은 그가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보다 우월하다. 그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가장 빠른 샛길을 찾아줄 수 있고, 후미진 골목에 신장개업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가게에 대한 세세한 정보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세상에 맛집으로 알려져 한 시간쯤은 기다려야 하는 식당과 맛과 질은 똑같으면서 값도 싸고 줄 설 필요도 없는 실속 있는 맛집 리스트를 갖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사는 동네는 나들목에 ‘동화 마을’이라는 세움간판이 세워지고, 골목마다 오즈의 마법사, 피노키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선녀와 나무꾼, 토끼와 거북 등 국경을 초월한 인물들이 들어앉았다. 뜻하지 않게 그들과 함께 동화 마을 주민이 된 뒤 그는 더 자주 지인들의 전화를 받아 부지런히 동네 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했다. 그 일이야 그한테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동화 마을 주민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날이 좋으면 좁은 골목길에는 사람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의 집 창문 너머 담벼락에 그려져 있는 토끼 앞에는 ‘인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그는 집에 있는 날이면 온종일 창문 앞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의 다리를 바라봐야 한다. 때때로 호기심 많은 사람은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들은 그 방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와 마주 앉아 빵조각을 먹거나, 밥상을 차리는 우렁각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가 낯선 이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도리어 자기가 미안하다고 한다. 동화 마을에 산다면 좀 동화스러워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나. 

아무튼 그 터줏대감은 무던하게 동화 마을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동화 마을에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오래전 남쪽 어느 벽화 마을에 갔다가 담장 너머를 힐끔거렸던 나는 무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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