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용문산에 큰 눈이 내렸다. 설산은 거대한 침묵이었다. 정월 대보름, 스님들의 동안거(冬安居)가 끝나는 날이었다. 수행을 마친 스님들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상원사 용문선원에서 선방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동안거는 음력 10월15일에 시작해서 이듬해 1월15일까지 석 달 동안 이어진다. 화두 하나씩 품고 낙엽을 밟으며 선방에 모여든 선승들. ‘이번 겨울엔 성불하리라.’ 그들의 결기로, 또 눈빛으로 한국불교는 살아있다.

조선불교도 경허 선사의 한 평짜리 방에서 중흥의 기운이 뻗어 나왔다. 경허는 연암산 천장암 구석방에서 눕지 않고 정진했다. 누더기 차림에 미동도 없는 경허를 뱀이 들어와 지켜봤다. 경허의 깨달음은 달빛이며 죽비였다. 선방을 은은히 비추고 수좌들을 벼락처럼 두들겨 깨웠다. 한 평짜리 방이 조선의 선풍을 다시 일으킨 기적의 공간이었다.

숱한 추문과 비리로 불교계가 들끓어도 선승들은 구도의 여정에 나선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깨쳐야 중생을 교화할 수 있다.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은 마음을 닦고 또 닦음이다. 그렇게 마음이 먼지 하나 없이 맑아지면 비로소 마음에 자신의 본래면목이 나타난다. 하지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멀고 험하다.    

선방에는 어떤 움직임도 없다. 선객들은 벽만 보고 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겉만 그럴 뿐, 안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고 번개가 친다. 저마다 번뇌를 베고 망상을 부숴야 한다. 날마다 절망하고 그 절망을 부숴야 한다. 앉은 뒤태만 봐도 공부의 깊이를 알 수 있다. 누구는 몸가짐이 태산처럼 듬직하지만 누구는 여름 날씨처럼 요동친다. 도중 탈락자가 생긴다. 낙오하면 성불은 멀어진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는 그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가사를 걸치는 호사를 누렸음에도 깨달음은커녕 선방에서조차 물러났으니 죽어서 다시 사람 몸 받기는 틀린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수행 방법이 달라 아직도 용맹정진하는 곳이 있다.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이란 잔인하다. 수마(睡魔)는 땀구멍으로도 쳐들어온다. 머리카락이 천근이고 뼈마디가 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다. 죽을힘을 다해도 눈꺼풀은 내려온다. 선방 문을 박차고 나가보지만 잠은 세상 끝까지 따라온다. 눈밭을 뒹굴고 나무에 머리를 찧기도 한다. 한숨만 자고 싶지만 누우면 그걸로 끝이다. 누가 봐서가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다. 그래서 선승끼리는 서로의 경계를 알아본다. 스님의 법력은 선방에서 결정된다. 몇 수레의 책을 읽은 사람도, 산을 허물 정도로 힘센 장사도 아무 소용이 없다. 참선 잘함이 으뜸이다.  

수행을 제대로 하려면 몸이 받쳐줘야 한다. 병에 걸린 사람은 자진해서 선방을 나간다. 화두가 전부인 선승에게 병이 들면 기댈 곳이 없다. 병든 선승을 위한 자비는 없다. 자비문중의 무자비이다. 1970년대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했던 지허 스님은 <선방일기>를 남기고 홀연 사라졌다. 책은 애틋하고 슬프다. 지허 스님과 함께 수행 중이던 도반이 병에 걸렸다. 침에 피가 섞였음을 확인한 병든 스님은 바랑을 꾸렸다.  

“눈 속에 트인 외가닥 길을 따라 콜록거리며 떠나갔다. 그 길은 마치 세월 같은 길이어서 다시 돌아옴이 없는 길 같기도 하고 명부(冥府)의 길로 통하는 길 같기도 하다. (……) 건강한 선객은 부처님처럼 위대해 보이나 병든 선객은 대처승보다 더 추해진다. 화두는 멀리 보내고 비루와 비열의 옷을 입고 약을 찾아 헤맨다. 그는 이미 선객이 아니고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폐물이 되고 만다.”(선방일기)

선방을 떠나야 하는 선승은 얼마나 비참한가. 길을 걷다 죽은 승려도 많았을 게다. 정과 인연을 끊으라고 이르지만 더러는 살기 위해 인연의 땅을 찾아 헤맬 것이다. 연고가 없으면 어딘가에서 승복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마침내 용문선원 선방 문이 열렸다. 선승 14명이 마지막 점심공양을 했다. 눈은 계속 내렸다. 모두 눈에 갇혀 있었다. 그때 한 스님이 바랑을 지고 눈길을 허겁지겁 내려갔다. 뒷모습이 기운찼다. 선방이라는 감옥을 벗어나는 해방감의 몸짓인지, 깨달음을 얻어 ‘한 소식’을 알리려는 환희심의 몸짓인지….  

안거의 선방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으로 한국불교가 맑아지길 바랐다. 세상에 먼지를 일으키는 수많은 권승들은 제대로 안거를 나지 않았을 것이다. 깨닫지 못했으니 중생을 괴롭히는 것 아닌가.

그날 밤 거짓말처럼 눈이 그치고 대보름달이 떠올랐다. 선승들의 깨침이 달빛으로 누리에 퍼질 것이다. 저 달은 수천개의 강에 비칠 것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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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개의 핥는 행동은 애정과 관계의 확인이며 즐거움이다. 그러나 개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그 행동은 끔찍함이며 두려움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와 먹든 상관없이 늘 좋은 것이 아니다. 동일한 행위도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이루어지는지, 누구와 또는 누구에게 했는지에 따라 그 행위는 매우 다른 의미로 구성되고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식적 범주의 인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해 11월 있었던 해군 상관의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에 대한 고등군사법원의 항소심 판단이 바로 그런 경우다.  

2018년 ‘#미투’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직장 내 성폭력’이다. 2018년 11월 발표된 ‘전문직 여성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여성들조차 2명 중 1명은 직장 안에서 성폭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폭력의 절반은 피해자가 입사한 지 1년 미만일 때 일어나고, 가해자의 70~80%는 임원, 부서장 등 상급자이며 유부남인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성폭력을 판단할 때 우리 사회는 폭행·협박이 있었는지, 피해자가 어떻게 했는지만을 따진다. 직장 내 성폭력에는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직장 내에서 상급자는 존재 자체로 압력이다. 상급자의 역할과 권한, 직장 전체의 조직문화, 자신의 비전과 이탈 시 생존 가능성 등 매우 복잡한 지형 속에 상급자가 위치하기 때문에 아무리 간 큰 부하라도 상급자의 불법부당한 지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상급자는 자신의 무게와 힘을 고려해서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이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목록의 첫 번째는 하급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성적 요구나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상급자의 책무에 대해 먼저 질문하고 확인해야 한다. 상급자로서, 유부남으로서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그럼에도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부득이한 사정은 무엇인지,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했는지 답해야 한다. 법원은 사건이 놓인 객관적인 사실과 상황, 맥락을 고려함은 물론 피고인의 의도와 책무에 대해서도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 단순히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성폭력이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면 안된다는 것과 남용할 때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분명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이제 해군 상관의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 대법원이 그 역할을 할 때다. 대법원은 남성 중심적 성문화와 인식에 근거한, 피해자다움이라는 편견으로 사법부의 책무를 방기한 고등군사법원의 잘못을 바로잡고 상식을 다시 상식의 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피해자는 성폭력 발생 이후 함정의 최고책임자인 함장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고 이후로도 새로운 부임지에 갈 때마다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누구도 상급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보고 초기에 가해자를 분명하게 처벌했더라면 겪지 않았을 고통을 피해자는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까지 혼자 감당해야 했다. 이는 전적으로 해군과 국방부의 책임이다. 이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한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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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힘이 맞부딪치는 지점이다. 그래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힘의 관계가 변화할 때마다 역사적 격변을 겪었다. 그간의 역사적 경험은 이 두 세력의 대립이 전쟁과 분단으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것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 역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다시 한 번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의 힘의 관계가 변화하는 시기다. 우리는 그간의 역사적 경험을 되살려 두 세력을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왔다. 그렇게 피스메이커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이 세계와 함께 평화 번영으로 나가는 길이고 한국이 세계의 중심에 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기대를 모았던 하노이 북·미회담이 언론의 표현대로 하자면 결렬되어 우리를 무척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긴 협상과정의 일환이고, 오히려 피스메이커로서 우리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는 국면으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하면 비관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사실 남북 평화 국면의 출발은 미국이 가져온 것이 아니라 혹한의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1000만이 넘는 촛불이 가져온 것이다. 1000만의 촛불이 새로운 정부를 가능하게 했고 새로운 정부로 하여금 평화의 염원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그 움직임이 북한과 미국을 촉발하여 현재의 평화협상 국면을 조성한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관성으로 미국이 어떠하니 안될 것이라는 식의 수동적 관점으로 상황을 판단할 이유가 없다. 그것보다는 김구 선생 식으로 “남북 8000만이 휴전선을 베고 죽을 각오로 나선다면 어찌 남북 평화체제가 실현되지 않으랴”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남북 평화체제의 실현 여부가 아니라 우리가 과연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남북 평화체제는 협상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일단 고비를 넘기면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북 평화체제는 단순히 남북관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이 해양국가이면서 동시에 동남아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국가로 자리 잡아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을 상생의 관계로 이음으로써 세계 평화체제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역사적 갈림길에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분단된 남쪽에 갇혀 해양세력 쪽으로 일방화되어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좁고 편향된 의식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는 박근혜 정부 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개성공단 폐쇄만 보아도 잘 알 수 있고, 그런 좁고 편향된 의식이 얼마나 위험한가는 북·미 간의 중대한 협상 국면에서 미국을 방문한 야권 인사가 했다는 “우리는 전쟁을 원한다”는 발언이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협애함과 편향이 단순히 일부 정치세력만의 문제일까?   

글로벌화 시대에 교육 수요자의 요구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제화되고 있다. 한국의 외국 유학자가 15만명 정도이고 아시아권의 한국 유학자가 10만명 정도이다. 그러나 현재는 아시아권 유학자들에 대한 질 관리가 되고 있지 않고, 한국의 외국 유학자 15만명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며, 이러한 국제적 지식의 흐름도 속에서 한국의 교육학문 생태계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하는 물음조차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태는 남북 평화체제의 진전 속에서 유라시아권이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삶의 기반으로 다가오는 시점임을 고려하면 매우 우려할 만하다. 한 나라의 장기적 성패의 관건 중 하나는 세계적 지식의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이다.

한국은 산업화 시대에는 서구에서 생산된 지식을 일방적으로 수입하는 국가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동남아를 포함한 유라시아권으로 경험과 지식을 수출하고, 한국을 포함한 유라시아권을 기반으로 생산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해 서구 선진국들과 생산된 지식을 주고받는 관계로 세계 지식 흐름도 속에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길고 넓은 안목의 조망이 없으면 한국 교육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장기적으로 국가적 실패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세계적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생산과 흐름, 유라시아권을 기반으로 한 지식 생산과 유통의 가능성, 그 속에서의 한국 교육학문 생태계의 역할 등을 메타지식학적 관점에서 성찰하고 장기적 고등교육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다룬 영화에서 한국 고위 경제 관료가 IMF의 요구에 대해 보인 반응이 한동안 시중의 화제가 된 바 있다. 그 고위 경제 관료는 IMF의 무리한 요구에 순응적인 수준을 넘어 그러한 무리한 요구를 다행스럽게 여겼다. 지적 종속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내가 더 우려하는 것은 그렇게 심각한 일을 겪었으면서도 그 고위 경제 관료가 그런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세계적 수준에서의 경제학 지식의 흐름과 그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 한국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 등에 대한 메타지식학적 성찰이 담긴 논문 한 편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 세계적 수준에서 지식 자체의 생산과 흐름, 유라시아권을 기반으로 한 지식 생산과 유통의 가능성, 그 속에서의 한국 교육학문 생태계의 역할 등을 연구 검토하는 메타지식학으로서 유라시아학이라도 창설해야 하는 것일까? 주어지는 과제들에 비추어보면 한국 고등교육의 위기의 심도가 말할 수 없이 더 깊어 보인다.

<김진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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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울산과기대가 울산과학기술원(유니스트)으로 전환되면서 초대 총장 선출이 있었다. 유니스트 교수, 직원, 학생 중 어느 누구도 총장 후보자들이 누구였는지, 총장이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관에 따르면 총장은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에서 추천된 후보자를 이사회가 선임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승인하는데, 총추위는 물론 총추위 규정 자체도 없었다. 귀신이 유니스트 총장을 뽑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곧 유니스트는 과학기술원(과기원) 전환 이후 두 번째 총장을 뽑아야 한다. 2018년 5월 유니스트 교수, 직원, 학생은 다른 과기원과 대학의 총장 선출 규정을 면밀히 조사하고 연구한 후, 모든 학내 구성원이 참여하는 총추위 구성안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비공식 면담에서 과기정통부는 다른 과기원, 즉 한국과기원(카이스트), 광주과기원(지스트), 대구경북과기원(디지스트)의 규정처럼 “학생과 직원은 총추위에 참여할 수 없으며, 교수 참여도 최소한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과기원은 공공기관으로서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니 총장은 기관장에 해당하며, 기관장인 총장을 정부가 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다.

유니스트에는 국내외 석학들을 포함, 유니스트의 발전을 고민하는 많은 교수들이 있다. 그러나 과기정통부 공무원들은 본인들이 유니스트 발전에 대해 더 탁월한 혜안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대학의 자율성과 학문 연구의 자유는 어디 있냐고 묻고 싶다. 

카이스트 등 다른 과기원에서도 정부의 일방적 총장 선출은 많은 폐해를 낳았다. 2018년 디지스트 총장은 내부고발로 장기간의 과기정통부 감사를 받고 결국 사임했다. 그는 정부가 임명한 이사와 이사장이 추천한 인사, 그리고 과기정통부 관료로 구성된 총추위에서 총장 후보자가 된 후 이사회가 선임하고 과기정통부 장관이 승인한 총장이었다. 현 카이스트 총장도 2017년 초에 유사한 제도에 따라 선출되었으며, 소위 ‘친박’이라서 총장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그 역시 디지스트 총장 재직 시의 문제로 과기정통부의 감사를 받는 등 사임 압박을 받았다. 이런 식이라면 현 총장 선출 제도하에서 과기원 총장들은 본인을 선택한 정권의 눈치만 보게 된다. 결국 구성원의 ‘참여’와 지지에 기반하지 않은 총장은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의 혁신과 발전을 이끄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이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재에 절망하고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가 탄생에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과기원의 총장 선출 건만 놓고 보면 과연 현 정부가 과거 정부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작금의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소통과 민주적 참여를 요구한다.

과기원은 국민의 자산이며, 학생은 미래의 인재로, 신임 교수는 석학으로, 오늘의 스타트업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 열매는 국민의 몫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과기원도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총추위를 구성하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발전과 인재 양성을 이끌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것이 유니스트 초대 총장을 선출했던 귀신을 다시 찾아가 훌륭한 총장을 보내달라고 매달리는 것보다 이성적이고 현명한 길임이 분명하다.

<나명수 | 유니스트 교수·총추위 규정 제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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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새로운 여정을 축하하며, 지금부터 주어질 자유와 낭만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물어보세요. 그리고 다양한 지식을 접하는 희열을 느끼면서 시민으로 성장해 주세요.”

12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3월 첫 강의 때마다 했던 말이다. ‘어른들이 가라고 해서’ 대학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비싼 돈 들여 발을 내디딘 새내기들에게, 여기는 취업사관학교고 목표는 오직 기업의 노예로 선발되는 것이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학과 작별하는 마당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를 하기는 싫다. 빌어먹을 대학이 사람을 어떻게 괴롭히고 길들이는지를 ‘시작부터’ 아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행복은 자기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한다지만 대학은 그럴 수 있는 구조가 없다. 수강신청을 할 때부터 이상하지 않았던가. 듣기 싫은 ‘필수’ 과목은 왜 그리도 많은가. 건학이념 같은 강의는 차치하더라도 영어, 컴퓨터, 읽기와 쓰기 등의 강의를 신청하고 나면 고교 때와 진배없는 시간표가 된다. 게다가 기업의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가 다분한 CEO 리더십, 글로벌 비즈니스 예절 등의 요란스러운 이름의 강의를 들어야 하니 다양한 강의를 찾아들을 시간 자체가 봉쇄된다. 초과 학점을 신청해서라도 대학에 온 보람을 느끼고 싶어 한들, 이를 만족시킬 만한 강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은 취업률 낮은 학과를 압박했고 자연스레 실용과목 위주로 커리큘럼을 개편했다. 물론, 회사에서 보스에게 사랑받는 법을 외우고 나비넥타이 매는 법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행복을 느낀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많은 이들이 대학의 민낯에 실망하겠지만, 학기가 높아질수록 자신들이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면접에서 혹시나 꼬투리 잡힐까 봐, ‘혁명’ ‘마르크스’ ‘노동’ 등의 이름이 들어간 강의를 피해 가는 건 약과다. 실용과목을 너무 많이 접해서일까? 이들은 가급적 적은 시간을 들여 학점을 보장받는 강의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강의 중에 다른 과제를 해도 괜찮은, 그러니까 ‘제대로 듣지 않을’ 과목을 고르는 역설이 이해되는가. 학생들은 파워포인트만 줄줄 읽고 빈칸 채우기 수준의 기계적인 문제를 내는 교수를 보며 무슨 대학 강의가 이따위냐면서 욕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작성하는 서술형 시험을 선호하지 않는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누구라도 이렇게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캠퍼스 풍경은 기가 찰 것이다. 게시판은 토익, 중국어 학원의 전단과 라식·라섹 수술을 특별 이벤트로 대폭 할인한다는 병원 광고로 넘쳐날 것이다. 그 옆에는 ‘예쁜 눈 선발대회’를 열어 우승자에게는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렌즈회사의 소식도 볼 수 있다. 가끔 시대를 비판하는 진지한 내용의 대자보가 붙기는 하는데, 이를 읽는 사람들은 없다. 곳곳에 나부끼는 현수막에는 절반이 기업설명회 소식이고, 나머지 절반에는 그런 기업에 합격한 사람들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이런 공간에서 학력차별을 밥 먹듯 하는 교수를 만나고,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어색한 괴상한 영어강의를 듣는 건 덤이다. 여기서 나름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면 꼭 그렇게 하길 바란다.

이미 실천하는 이들도 있다. 취업만이 정답인 곳에서 많은 이들이 공무원이 되는 것 외에는 정답이 없는 분위기를 인정한다. 스펙을 마련할 돈과 시간이 없다면, 지방대라는 타이틀이 두렵다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합격한 일부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사례가 되어 합격비법을 전수하기 바쁠 것이다. 그 덕에 공무원이 되길 희망하는 대학생들은 많아진다. 목표가 선명해진 이들은 답 너머의 답을 찾아가는 머리 아픈 강의는 피하면서 슬기로운 대학생활을 할 것이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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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극기 세력입니다. 탄핵의 결정적 증거였던 태블릿 PC는 조작이고 ‘무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즉시 풀려나야 한다는 것이 우리 생각입니다. 다들, 심지어 자유한국당에서도 ‘한 줌도 안되는 세력’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대회장 안팎에서 ‘의리남’ 김진태 의원을 열렬히 응원했고 배신자 오세훈 전 시장에게 야유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지원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신임 대표가 됐고, 김순례 의원은 5·18 망언논란에도 최고위원에 당선됐습니다. 우리 스스로 당의 주류임을 증명한 것이죠. 이제 우리 요구를 하려 합니다.

당무의 최우선은 박 전 대통령 석방에 맞춰져야 할 것입니다. 황 대표도 ‘태블릿 PC’ 조작 가능성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렇게 보고 있다”고 했고,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선 “객관적 진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정치적 책임을 물어 탄핵한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탄핵 원인무효’ 주장에 공감한 겁니다. 그러므로 황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던진 발언들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우선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위한 전 국민적 서명운동을 진행하십시오. 대선 무효 투쟁의 병행도 고민해야 합니다. 대선 무효를 주장해온 김진태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특위를 꾸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황 대표는 당선 후 “이제는 미래로 나아가는 일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했는데, 만약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을 외면할 심산에서 나온 것이라면, 전대 때 ‘배신자’ 논란이 재연될 것이고, 태극기가 분노할 것입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2월 28일 (출처:경향신문DB)

당당하게 군사정권 후예임을 선포하십시오. 5·18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하는 당내 주장이 커지고 있으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명예회복 작업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김진태·이종명 의원은 5·18의 북한군 개입설을 펴는 지만원씨에게 국회 발언 기회를 줬고, 김순례 의원은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모두 한국당의 자랑스러운 정치적 유산입니다.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을 당사에 걸고,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은 내려야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운동 이력은 한국당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김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도 “수구반동적인 집단 속에 개혁보수 상징인 김영삼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는 자체가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예를 중시해온 정통 보수정당 한나라당은 아들의 절절한 요구를 거절하지는 않겠지요. 이종명 의원에 대한 제명 결정을 거둬들이고, 미뤄뒀던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없던 일로 해야 합니다.

보수통합 대상은 대한애국당이 돼야 합니다. 황 대표는 “(태극기 세력은) 대한민국의 지금까지 발전, 부흥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할을 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같이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태극기를 대표해온 대한애국당은 일관되게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해왔습니다. 이런 의리 있는 당을 외면하고, 기회주의자인 바른미래당 탈당파와 통합을 시도한다면 태극기 세력은 등을 돌릴 것입니다.

당사는 태극기 세력이 모여 있는 광화문 동화면세점 인근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습니까. 핵심 지지층과 내밀한 소통을 고민하자는 취지입니다. 광화문 자릿세가 비싸다면 그나마 한국당 인기가 높은 대구·경북(TK)으로 이전도 생각해볼 만합니다. 촌스러운 당기도 바꿔주세요.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태극기 집회에 자주 등장했던 이스라엘기까지 섞은 창조적 당기를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설픈 보수개혁 딱지는 떼어내십시오. 2012년 대선 때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 ‘대국민 사기극’이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경제공약은 ‘재벌, 가진 자 우선’이라고 해야 합니다. 재벌이 잘돼야 경제도 잘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핵무장’ ‘멸공’ ‘간첩색출’ 등 화끈한 대북 관련 공약도 검토해보십시오. 2차 미·북 정상회담 무산을 지켜본 국민들도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한국당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극기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고작 2%’라고 하지만, 단단한 2%가 어설픈 20%보다 낫습니다. 한 보수신문에서 “자유한국당은 역시 폐업이 답이다”라고 썼던가요. 어느 영화 대사를 인용하렵니다. “살려는 드릴게.” 우리가 한국당을 살려는 드리겠습니다. 보수 언론도 문 닫으라는데, 살아남는 것만도 어디인가요. 그러니 태극기 세력을 믿으셔야 합니다. 태극기를 당내 중심으로 들이셔야 합니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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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를 집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돌 하나 밑에 돌의 그림자 하나가 생겼다


돌의 그림자 하나는 얇다 돌 하나에 눌린 돌의 그림자 하나가 오목해지면서 오그라든다


오그라든 돌의 그림자 하나가 돌 하나를 감쌌다


돌 하나를 감싼 돌의 그림자 하나가 있고, 돌 하나의 그림자에 감싸인 돌 하나가 있고,


돌과 그림자는 각각이고 돌 하나를 감싼 적막과 돌의 그림자 하나를 감싼 적막이 각각이다


돌과 그림자와 적막은 겹겹이고 적막은 몇 겹을 겹쳐도 투명하다


- 위선환(1941~)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위선환 시인은 최근에 새로운 시집을 펴내면서 이렇게 썼다. “사물은 낱이고 자체(自體)다. 언어는 사물을 드러낸다. 사물을 드러내는 언어와 언어가 드러내는 사물은 하나다. 언어는 사물이다.”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이라고 했다.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이다. 돌, 그림자, 적막은 각각 독립적이고 고유하고 온전하다. 그리고 저마다 살아 있고, 움직인다. 심지어 돌에서 태어난 돌의 그림자는 돌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도 의지적으로 오히려 돌을 감싼다. 적막을 하나의 사물로, 하나의 존재로 보는 시각도 새롭고 이채롭다. 이런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때 대립은 사라지고 원융(圓融)의 세상이 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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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은 ‘빨갱이’ 유래를 이렇게 풀이했다. “빨갱이는 북한의 붉은 기나 공산혁명을 상징하는 색깔 빨강 혹은 적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빨갱이’는 항일 유격대원을 지칭하는 빨치산에서 나왔다. 당시 항일 유격대원 가운데 공산주의 신봉자들이 많았고, 거기서 이어져 한국전쟁 때 공산당 유격대원도 빨치산으로 부르게 됐다. 이 말이 나중에는 공산주의자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세상을 바꾸는 언어>) 본래 당원이나 유격대원을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에서 빨치산과 빨갱이가 연유한다는 것이다.

요즘 같은 의미의 ‘빨갱이’ 단초는 일제강점기 말 이승만의 편지에서 발견된다. 1942년 10월10일 미국 당국에 광복군 편입을 제안한 이승만의 편지는 “호놀룰루에서 얼마 전 이곳에 도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전경무에 따르면, 그의(한길수 지칭) ‘조직’은 50명이 못 되는 한국 ‘빨갱이들’ 이상은 아니라고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자신과 반대되는 조직을 빨갱이로 몰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길수는 특별히 공산주의와 연관 기록이 파악되지 않는다. 이승만의 이러한 인식이 한국 사회 ‘빨갱이’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앞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손 태극기를 들고 시민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실제 상징 언어로 ‘빨갱이’가 대두한 것은 해방정국, 이승만의 등장부터다. ‘빨갱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미 군정과 친일파 반대,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 씌우는 주술로 쓰였다. 친일파 청산을 거론해도, 외세 배격을 주장해도 ‘빨갱이’라는 굴레가 씌워져 탄압받고 죽임을 당했다.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라고 규정짓는 그 자들이 빨갱이 아닌 빨갱이인 것이다. 이 자들이 민족분열을 시키는 건국 범죄자인 것이다.”(독립신보, 1947·9·12) 그래서 ‘이 자들’에게는 백범 김구도 빨갱이가 되었다. “이승만은 국민을 좌와 우로 나누어 비국민을 제거 대상으로 보고 각종 단체와 민주인사까지 빨갱이로 몰아서 정치보복과 학살을 자행했다”(김득중 <빨갱이의 탄생>)

아마도 이런 역사적 자취가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빨갱이 문화’를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로 강조한 배경일 터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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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으면 새날은 시작되지만, 실제로는 어둠이 가시고 동녘이 밝아올 때야말로 하루의 시작이다. 마찬가지다. 달력의 시작은 1월1일이지만, 겨울 추위가 어느 정도 기운을 잃고 푸릇푸릇한 빛이 많아져야 비로소 한 해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새해의 아침은 그래서 3월이다. 동면하던 개구리가 긴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도 3월6일이다. 초목의 싹이 돋고 새로운 생명이 생긴다는 때이다. 마침 어제오늘은 기온이 많이 올라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3월이 되어야 한 해가 시작된다는 생각은 입학과 개학 때문이기도 하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새 학년을 시작해야 하고, 교과서의 첫 장을 펼쳐야 한다. 학생들에게만 중요한 때는 아니다. 아이를 처음 초등학교에 보내는 새내기 학부모들도, 대학생이 된 손주가 대견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3월은 새로운 인생 주기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더러는 조바심 내면서, 혹은 뿌듯해하면서 3월의 시작을 직접 경험하거나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한다.

오늘, 50만이 넘는 대학 신입생들이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곤 하지만 아직 캠퍼스는 새롭기 그지없다. 강의도, 점심도, 덜컥 주어진 휴식 시간도 아직은 어색할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은 20년 가까이 살던 지역이 아닌 낯선 동네에 와서 허둥대고 있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가벼운 흥분만큼이나 성인으로서의 책임감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안고 있을 것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매해 새내기 대학생들을 맞이했다. 여러 모습들을 보았고, 뿌듯한 적도 많았지만 실망스럽기도 했다. 잘 지내기를 기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걱정과 불안이 컸다. 대학생들이 점점 똘똘하고 자신감 있어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고개를 돌리면 터무니없이 이기적이거나 미성숙한 ‘아이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새내기들이 4년 이상을 보내고 졸업을 했다. 경험상,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격려와 위로다. “잘될 거야” 한 마디로 충분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50만명 가운데 자신이 애초에 원하던 대학과 학과에 입학한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대부분이 차선이나 차차선을 택했을 테고, 어떤 이는 개학 첫날인 오늘까지도 불만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잘될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시작’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만큼은 몸속 에너지가 모두 발휘되기를 희망한다. 어느 순간,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확신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 가서 고민하라. 지금, 시작하는 순간은 열정적이어야 한다.

열정이 마냥 현실적으로 발현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생활을  취업을 위한 준비과정으로만 삼는 것은 불행하고 우울한 일이다.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많은 경험을 하면 취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지만, 대학생활의 목표가 취업이라면 너무 서글프다. 지난 12년 학교생활을 마치 대학 합격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정의하고 강요했던 사회가 이제 막 캠퍼스에 발을 디딘 이에게 취업 준비를 시작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무엇을 할 것인가? 좋은 강의는 유튜브에도 많다. 인터넷에서 온갖 유용한 정보들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에는 사람이 있다. 교수의 강의와 토론이 있고,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비슷한 공부를 하는 또래 동료들이 있다. 그동안 암기하는 공부를 했다면 대학에서는 질문과 논쟁을 하고, 그동안 경쟁하는 법을 배웠다면, 대학에서는 협력하는 법을 배우기를 바란다. 협력은 집단의식을 고취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른 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내 주체가 정립하는 과정이다.

막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내 아버지는 멀리 보고 걷는 자가 똑바로 걷는다는 격언을 선물해 주셨다. 돌이켜보니 꼭 맞는 말은 아니었다. 조금 삐뚤빼뚤하더라도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걸어야 많이 보인다. 발밑의 궁금한 풀과 꽃도 눈에 들어온다. 호기심은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미덕이다. 새로운 환경은 호기심을 자극하고, 호기심은 창의력의 토양이 된다. 도전과 실패도 여기서 나온다. 대학교를 다니는 기간은 인생에서 실패가 용인되는 거의 유일한 시기다. 물론 이것저것 건드려보고 곧 싫증 내면서 포기하는 것을 실패로 낭만화하면 안되겠지만. 

3월의 힘과 ‘시작’의 에너지가 얼마나 오래갈지 미리 알기는 어렵다. 언젠가 과속방지턱을 만나거나 심지어 지쳐 널브러질 때가 올 것이다. 그래도 50만 대학 새내기들은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대학 시절은 아무 거나 해볼 수 있는 시기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시기이다. 모두에게 “잘될 거야”라는 격려를 보낸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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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단체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사실상의 ‘집단휴원’을 강행하기로 했다. 한유총은 3일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회불안을 증폭시키며 교육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있다”면서 개학연기 방침을 재확인했다. 전날 이낙연 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부처·지방자치단체 대책회의에서, 개학연기 강행 시 시정명령을 거쳐 형사고발하는 등 엄정 대응키로 한 결정을 겨냥한 것이다. 한유총은 개학연기가 준법투쟁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며 “불법적 탄압을 계속하면 폐원투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도 했다. 개학일을 미루는 것일 뿐 집단휴원은 아니라더니, 이제는 폐원까지 거론하며 시민을 협박하는가. 후안무치라는 표현이 이토록 들어맞기도 어려울 것이다.

3일 오전 개학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밝힌 서울시의 한 유치원의 입구가 굳게 닫혀있다. 권도현 기자

한유총은 회계비리 시 형사처분 등의 내용을 담은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과 폐원 시 학부모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도록 한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이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다. 교육부가 3일 공개한 전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의 81%가 유치원 3법 통과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유총의 ‘사유재산권 침해’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은 22.9%에 불과했다.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이 성공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부 집계 결과 개학연기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사립유치원은 381곳(3일 오후 현재)으로 조사됐다. 연기 여부를 밝히지 않은 유치원도 233곳에 이르는 만큼 개학을 미루는 유치원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각 시·도교육청은 긴급 돌봄체제를 효율적으로 가동해 보육대란이 현실화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개학연기를 주도한 한유총 지도부는 물론 참여한 유치원 모두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린이의 학습권, 부모와 가족의 일상을 뒤흔든 이들은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서울·경기·인천 교육감이 밝힌 대로 한유총의 사단법인 설립허가 취소 조치도 신속히 진행돼야 한다. 한유총은 교육단체로서의 위상을 누릴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 

학부모들도 불안하고 당혹스럽겠지만 교육당국의 안내에 따라 차분하게 대처하기 바란다. 한유총이 협박만 하면 온 나라가 끌려가던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유아교육의 공공성과 투명성 강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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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한반도는 뿌연 먼지를 뒤집어썼다. 전국 대부분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단위 ㎍/㎥)는 ‘나쁨’ 기준치인 80을 넘었다. 세종시는 한때 142였다. 몇 걸음을 걷다 보면 목이 따끔거리고 눈이 침침해졌다. 이런 날들이 이제 ‘일상’이 됐다. 한반도에서 점점 더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미세먼지 ‘나쁨’ 일수는 서울이 61일, 전국적으로는 300일이 넘었다. 미세먼지가 ‘사시사철 불청객’이 된 것이다.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는 이미 전 세계 최악이다. 2017년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한때 ‘나는 새도 죽음으로 몰았다’는 멕시코시티보다도 나쁘다. 미세먼지는 1군 발암물질로 사망률을 높이고, 생명을 단축시킨다. 폐렴·폐암은 물론 혈액에 침투, 심근경색·부정맥·뇌졸중·치매 증상을 유발하고 악화시킨다. 우리 경제의 동력도 위축시킨다. 먼지의 공포로 바깥출입이 줄면, 소비를 위축시키고 생산성은 하락하고 의료비용은 급증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미세먼지는 국가적 ‘재앙’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재난에 준하는 상황으로 대처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미세먼지법’을 시행하고, 전담 조직을 출범시켰다. 그런데도 미세먼지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 충청 등 전국 곳곳에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25일 오전 서울 세종로사거리 일대가 미세먼지로 뿌옇다. 김정근 선임기자

경유차 퇴출은 2030년까지로 그나마 공공부문에 한해서다.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중지, 차량 2부제 실시, 조업단축은 임시처방일 뿐이다. 안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내 미세먼지 발생의 40%를 차지하는 중국에 대해서도 대기질 정보 공유 등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중국이 “서울 미세먼지는 서울에서 발생된 것”이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는 것 아닌가.

정부는 이제라도 강력한 외교정책을 통해 미세먼지의 중국 유입 차단책을 세워야 한다. 국내 배출 주범인 산업현장 배출관리 대책과 함께 국내 발전 비중에서 43%를 차지하는 석탄화력의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도 서둘러야 한다. 인공강우와 대형 공기정화탑 등 미세먼지를 몰아낼 수만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해야 한다.

국민도 정부 탓, 중국 탓만 해서는 안된다. 에너지를 적게 쓰고, 차량 운행을 자제하고,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세먼지는 사람이 배출하는 것이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미세먼지는 줄지 않는다. 그게 자연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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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전주에서 이틀간 52개 학회, 80개 기관이 참석하는 제2회 대한민국 국가비전회의가 열렸다. ‘혁신적 포용국가와 균형발전’이란 주제로 열린 이 학술대회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제반 문제 해결방안이 논의됐다. ‘사회적 대타협의 길’이란 주제의 기조강연에서 김부겸 장관은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지방분권과 자생발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한 지방재정 확충과 국세이양 계획도 밝혔다. 그러나 GDP의 50%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역발전 재정확보는 쉽지 않다.

그 대안은 재생에너지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그동안 지역발전이 늦어진 인구 저밀도 지역에 유리한 조건이다. 제주지역의 경우 풍력 273MW와 태양광 160MW로 전체 전력수요의 절반을 감당하는 수준까지 와있다. 2030년에 2350MW로 풍력발전이 늘면 전력에너지 자립도 가능해진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생산된 재생에너지 수익의 17%가 지역사회로 환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역여론도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경사가 급한 산지를 제외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부지가 충분하다. 2017년 국내 전력소비량 534TWh 전부를 태양광발전으로 충당한다고 했을 때 국토면적의 3.5%면 된다. 임야를 제외하더라도 가용한 농지가 국토면적의 16%다. 이 부지에 영농형 태양광발전을 하면, 농업 생산량은 20% 감소하지만 태양광발전으로 소득이 10배 정도 늘어난다. 전체 농지의 27%가 그 수혜 대상이다. 앞으로 태양광발전 효율이 2배 정도로 늘어나면 필요한 부지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원전 4기 용량의 새만금 재생에너지 발전단지 4GW 조성을 계기로 해상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형 재생에너지 발전단지는 제품을 만들 때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하는 구글, 애플 같은 RE100 기업 유치에 안성맞춤이다. 서해안과 남해안에는 새만금지역과 같이 수심이 낮고 넓은 해상부지가 20여개로, 총면적은 국토의 4.4% 정도다. 이 부지의 절반만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해도 전체 국내 전력소비량을 충당할 수 있다.

현 시가로 2050년까지 연간 6조원씩 186조원을 투자하면 250GW의 해상 재생에너지 발전단지가 건설된다. 그러면 연간 326TWh를 발전해 1kWh당 100원이라고 하면 약 33조원의 발전 소득이 생긴다. 일자리도 지역 중심으로 250만개가 창출된다. 6년이면 투자비가 회수되고, 25년간 안정적인 지방재정이 확보된다. 이는 주민 1인당 연간 1000만원씩 330만명에게 지급할 수 있는 예산이다.

국가 차원에서는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 무역수지가 크게 개선된다. 우리나라는 2017년에 123조원의 에너지를 수입했다. 석탄, 가스, 유류, 원자력 등 전력생산용 연료 수입액만 20조원이다. 시설비, 인건비, 금융비용을 포함한 한전의 전력구입비 기준으로는 42조원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모두 절감될 비용이다. 만성적인 에너지 수입국가가 에너지 자립국가로 나아가는 것이다. 에너지안보 강화로 국제정치 영향에서도 그만큼 자유로워지게 된다.

에너지수입국이던 독일은 2018년에 전력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40%로 올렸고 프랑스에 남는 전기를 수출하게 됐다. 2050년에는 모든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바꿀 계획이다. 우리도 전력 수요가 연간 800TWh로 늘고 이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면, 필요부지는 국토면적의 5% 이하다. 농지와 해상 가용부지 합이 20%가 넘기 때문에 연간 80조원 규모의 제한된 전력시장을 놓고 4대 1 경쟁이 불가피하다.

올해 에너지기술평가원은 새로운 해상 재생에너지단지 발굴에 나선다. 11개 광역시·도가 참여 의향을 밝혀온 상태다. 이 중에서 3개 지역을 선정하여 개발 경제성, 환경 영향, 주민 수용성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해당 시·도는 RE100 기업 유치 및 지역 일자리 창출과 함께 연간 10조원대의 안정적 지방재정을 확충할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진정한 지방자치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열 핵심 열쇠는 재생에너지인 것이다.

<임춘택 에너지기술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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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한글을 창제한 목적은, ‘훈민정음’의 어제 서문에서 세종이 밝힌 그대로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愚民)의 편리한 의사표현을 위함”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는 한자음 표기를 위해 훈민정음(이하 한글로 칭함)을 창제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에 경제사학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한자음 표기를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는 설을 지지하고, 한글은 양반을 위한 문자이지 백성을 위한 문자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 글에서 한글이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백성의 문자가 되지 못하고, 주로 양반층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쓰이게 된 결과는 세종이 의도한 바가 아니라, 양반 지배층의 정치적 의도가 빚어낸 것임을 밝혀 말하고자 한다.

세종 사후에 조선의 양반 지배층은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한 제도를 만들지 않았고, 한글을 쉽게 배울 수 있는 학습 자료도 만들지 않았다. 조선의 양반 지배층이 세종의 뜻을 저버리고 한글을 하층민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증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1897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문법서 <국문정리>를 지은 리봉운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 사람은 남의 나라 글만 숭상하고 본국 글은 전혀 이치를 알지 못하니 절통하구나. 세종 임금께서 언문을 만드셨건마는 그 후로 국문을 가르치는 학교와 선생이 없어서 글의 이치와 쓰는 규범을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였다.” 19세기 말기의 지식인이었던 리봉운은 세종이 한글을 만들었지만 쓰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와 선생이 전혀 없었음을 한탄한 것이다.

양반층은 최세진이 <언문자모>에서 한문으로 설명한 한글 음절 생성 원리를 활용하여 한글을 배우는 데 가장 쉬운 음절표를 만들어 썼다.  1719년 조선통신사 서기로 일본에 간 강백과 장응두는 일본인에게 한글 음절표를 써 주었다. 양반 지식인들은 일본인에게는 한글 음절표를 가르쳐줬지만 조선의 하층민들에게 이를 널리 알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글 음절표의 최초 간행은 양반층이 아니라 사찰 승려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1869년에 해인사 도솔암에서 간행된 <일용작법>이란 염불집에 ‘언본’이란 이름의 한글 음절표가 처음 수록되었다. 그 후 1877년(기축신간반절)과 1889년에 낱장의 목판에 새긴 한글 음절표가 간행되어 장터에서 팔린 것이 전해진다. 낱장짜리 한글 음절표는 판매를 목적으로 한 상업 출판으로, 민간의 자생적 산물이었다. 만약 이런 형식의 한글 음절표가 15세기나 16세기에 나와서 보급되었더라면 한글 습득자가 빠르게 늘었을 것이다. 조선 정부가 한글 음절표를 처음으로 공간한 것은 갑오개혁 이후이다. 소학교령이 공포되고 1896년에 학부에서 간행한 <신정심상소학>에 허술한 모습이긴 하지만 한글 음절표가 처음 수록되었다. 세종의 뜻을 정부가 나서서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 한글이 반포된 지 450년이 지난 후였다는 말이다.

조선의 양반층이 평민 이하 하층민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글을 배워서 자신들을 비판하는 것이 두려워서다. 연산군 대의 언문 익명서 사건뿐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는 익명서 사건이 문제가 되어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모여 논의한 기록이 여러 번 등장한다. 한글 문서를 금지하는 법을 정했고(1675년), 한글 문서를 관에 제출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한 기록들이 실록에 나타나 있다. 하층민이 한글 문서로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싫었던 것이다.

한글이 조선왕조 내내 양반들의 문자로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세종이 양반만을 위한 성군일 뿐 일반 백성을 위한 성군이 아니었다는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진실의 왜곡이다. 조선을 ‘양반의 나라’로 만든 것은 세종이 아니라 권력을 쥐었던 양반집단이다. 한글이 백성 모두의 문자가 되지 못한 것은 세종의 본뜻을 저버린 양반집단 때문이다.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한자음 표기를 위해 만들었다는 주장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실린 세종 어제 서문의 뜻과, 사관들이 쓴 <세종실록>을 부정하는 것이며, 세종이 지은 글과 사관의 기록을 모두 거짓말로 간주하는 것이다.

<백두현 경북대 인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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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최대 사립유치원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다음주로 다가온 유치원 개학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한유총은 28일 “교육부가 대화를 거부하고 사립유치원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을 때까지 개학을 미루겠다고 선언했다. 한유총의 요구사항은 ‘유치원 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 및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의 철회, 사립유치원 사유재산 인정, 누리과정 폐지 등이다. 한유총은 준법투쟁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집단휴원이다. 어린이와 학부모를 볼모 삼아 정부를 압박하는 막무가내식 행태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엄마 화났다 3일 경기 용인시 수지구청 앞에서 열린 ‘한국유치원총연합회 개학연기 규탄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유총은 2016년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집단휴원을 예고했다 철회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추가 지원 예산을 확보하겠다며 한유총을 달랬다. 2017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됐다. 한유총이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 폐기 등을 요구하며 집단휴원을 예고하자 정부가 유아학비 지원금 인상 노력을 약속해 갈등이 봉합됐다. 더 이상은 안된다. 한유총이 실력행사에 나설 때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타협하는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정부는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유아교육법·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위법 사실이 확인되면 처벌해야 한다. 개학 연기로 발생하는 돌봄 수요를 세밀하게 파악해 주변 국공립유치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시민 피해를 최소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유총도 ‘힘자랑’이 먹히던 시대는 저물었음을 깨닫기 바란다. 유치원 교육의 공공성 강화가 시대적 요구로 부상한 터다. 한유총은 누구의 지지도 얻지 못하는 개학 연기를 즉시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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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오늘은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19년 3월1일 서울·평양·진남포·안주·의주·선천·원산 등 7대 도시에서 만세시위가 벌어졌다. 끝이 아니었다. 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전국을 휩쓸고, 5월까지 국내외에서 계속됐다. 참가자 200여만명.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거족적 민족운동이었다.

3·1운동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고종의 죽음은 3·1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됐다. 그러나 3·1독립선언서는 군주가 아닌 조선인을 나라의 주인이라고 못 박았다. 만세운동이 확산되면서 군주는 잊혔다. 복벽주의 이념도 사라졌다. 1919년 4월11일 상해임시정부는 의정원 임시헌장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임시정부는 여성에게도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 제국의 시대가 가고 민주공화국 시대가 도래했다. 이후 민주공화국은 확고한 정치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3·1운동과 이어지는 독립운동은 자율, 독립, 배려, 평화, 연대 정신을 싹틔웠다. 한국인들은 근대에 눈을 떴다. 민주주의 가치를 발견하고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독립운동은 주권 회복운동이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출발지점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일제의 강압통치는 한국의 자생적 근대를 짓밟으며 식민지 근대를 이식했다. 타율성, 의존성, 패배주의, 냉소주의가 그것이다. 해방 이후의 민족분단은 식민지성을 고착화시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여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있다. 강윤중 기자

100년이 흘렀다. 정부는 일찌감치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꾸렸다. 독립운동가 사전과 열전을 발간하고 3·1운동 기록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이다. 여성 독립지사 등 묻혀 있던 독립유공자 발굴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임시정부100주년기념관이 건립되고 임정수립일(4·11)의 임시공휴일 지정도 검토되고 있다. 언론은 연일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의미 있는 사업들이 착수 중이다. 그러나 기념사업이 과거 사건에 대한 재현과 학습에 그쳐서는 안된다. 진정한 기억과 기념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극복하는 동력을 찾는 일이다.

100년을 맞아 3·1운동의 의미를 다시 읽어야 한다. 100년 전 싹튼 한국의 근대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해방된 지 반세기를 훌쩍 넘겼지만, 친일 잔재는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갑질, 폭력, 무사안일, 타율성은 떨쳐야 할 식민 잔재이다. 분단은 여전하고 냉전의 기류도 걷히지 않았다. 내부의 이념적 분열은 미래 발전을 거부한다. 3·1정신으로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청산하고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민족이 깨어나고 세계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역사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100년 전 연대와 통합, 공존과 평화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3·1운동이 근대의 시작이었다면, 100년은 근대를 완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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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바빠 직접 만나기도 힘들고, 이 정도면 서로 부담 없겠다 싶어 종종 주고받는 선물이 카카오톡 ‘기프티콘’이다. 기프티콘은 SK플래닛이 쓰는 이름이지만 보통명사가 되었다. 정확히는 ‘모바일 상품권’이라 부른다. 1960년대에 제정된 ‘상품권법’에 따라 허가를 받은 사업자들이 인지세를 내고 조폐공사에서 찍었던 상품권은 일종의 유가증권이다. 백화점, 제화, 주유, 도서 상품권이 대표적인 종이 상품권이다. 한때는 ‘상품권깡’이나 뇌물로 쓰이면서 탈도 많았다. 20년 전 상품권법 폐지 후 어떤 사업체든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스마트폰에 기반한 플랫폼 비즈니스도 크게 성장했다. 출근 전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쇼핑하고 저녁 퇴근길에 배송을 받는 세상이다. 모바일 상품권은 식품부터 생활재까지 아우르면서 1조원을 훌쩍 넘는 큰 시장이다. 이 시장의 최고 강자는 카카오다.

나도 카카오톡으로 선물받은 치킨 상품권을 써볼 일이 생겼다. 치킨점 취재를 꽤 했던 터라, 저간의 사정을 모르지 않아 치킨을 시켜 먹을 때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배달앱 수수료라도 아끼시라고 직접 전화로 주문을 하고 가급적 현금 결제를 한다. 뭣보다 내 번호가 주문이력에 저장되어 있어 모니터에 자동으로 뜨기 때문에 “몇 동 몇 호지요?”라고 알아봐 주는 것도 좋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프티콘으로 결제를 한다고 하니 ‘죄송하지만’ 주문 불가 매장이라 했다. 중앙 콜센터에 전화를 해서 인근의 모바일 상품권 취급점에서 시켜 먹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아 치킨 상품권을 환불했다. 10%의 환불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이 며칠 뒤에 통장에 들어왔다. 본의 아니게 ‘기프티콘깡’을 한 셈이다. 이것도 법이 바뀌어 환불절차가 간편해진 편이다.

생각보다 많은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기프티콘 결제를 거부한다. 팔지도 않을 거면서 상품권은 왜 파느냐는 소비자의 불만은 당연하다. 그래도 욕을 먹으면서도 주문을 받지 않는 이유는 기프티콘으로 결제를 하게 되면 가맹점 점주들이 내야 할 수수료율이 너무 높아서다. 치킨점의 경우 6%를 넘는 곳이 많다. 심한 곳은 수수료가 10%까지도 육박하고 결제액 정산도 거의 일주일이 걸린다. 장사란 것은 당일 결제할 것들은 많은데 정산이 너무 느리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카카오가 맺은 상품권 수수료율은 다르다. 모 제과 프랜차이즈의 경우 수수료가 3%다. 업체의 파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영세 업체일수록 수수료율은 더 높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상품권 결제 수수료를 부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 부담은 가맹점주들이 떠안는다. 연매출 3억원 이하의 영세 업장은 현재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0.8%고, 체크카드의 경우는 0.5%다. 연매출 10억원이 넘는 큰 규모의 업장이더라도 신용카드 수수료율이 1.6%인데 모바일 상품권 수수료는 지나치게 높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상품권 발행으로 안 먹을 사람도 먹게 되니 매출 증대와 홍보에 도움이 된다 말한다. 한번 깔린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이탈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점주들은 많이 팔아봤자 남는 것도 없고 결국 몸만 축날 뿐이라 말한다. 완전경쟁 시장인 치킨은 소수점 이윤 싸움을 한 지 오래다. 그런데 ‘배달앱’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해 시장을 뒤흔들더니 이제 모바일 상품권이 등장해 이래저래 또 뜯기고 있다. 사정 모르는 이들에게 먹는 욕은 덤이고 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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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허가는 위법이지만, 취소는 안된다.’ 지난 2월14일 서울행정법원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취소청구소송에서 내린 판결 요지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중대사고’ 고시 누락 등 위법 사항이 있지만, ‘공공복리’를 고려했을 때 건설허가 취소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건설허가 취소로 예상되는 1조원의 손실 등이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위법 내용이 안전에 관련된 것이라면, 오히려 건설허가 취소가 공공복리에 맞지 않을까.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핵발전소 반경 30㎞ 내에 사는 380만 주민의 안전보다 중요한 공공복리는 없다.

지난 2월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안을 의결했다. 지진 안정성과 다수호기 안정성 평가를 하지 않았고, 가압기 안전방출밸브에서 누설이 발견되는 등 몇 가지 중대한 쟁점 사안이 있지만, 추후 보완을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다. 뭐가 급했는지, 설연휴 하루 전날에 9명 정원의 원안위 위원 중 4명만 참석해 결정했으니, 위법은 아니라도 졸속은 분명하다. 탈핵을 선언한 정부에서도 원전을 싸고 도는 원안위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백만명이 살고 있는 부산과 울산은 운영허가를 받은 신고리 4호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로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되었다. 핵발전소의 절대 안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는 없다. 기술적으로 실증되었다는 핵발전소의 안전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이론과 실제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차이가 재앙이 될 수 있음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이미 ‘실증’되었다. 이론으로 주장하는 안전과 현실로 입증된 사고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중시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핵발전소의 안전 불감증 이면에 자본의 논리가 있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온 ‘비정규직’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어 온 것은 그것이 자본의 논리를 관철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산재 사망사고가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에게 일어나도 비정규직이 건재한 것도 그것이 수익의 극대화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의 기술적 안정성과 경제성 주장 저 밑에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자본의 꿈틀거림이 있다. 이익을 위해 사람과 생명을 무시하는 자본의 냉혹함은 경제성과 안전성으로 포장된다. 높은 이익이 보장되는 한, 자본은 결코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발전소에서도 자본의 논리와 생명의 논리가 충돌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오복음 6, 24).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다. 탈핵은 단지 발전 방식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자본의 폭주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다.

중대 핵사고만이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도 핵발전의 실체를 폭로해준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이 방출되는 고준위핵폐기물로 핵발전소 내의 임시저장소에 보관해왔다. 임시저장소는 고준위핵폐기물에 요구되는 안전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위험한 공간이다. 더구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이런 공간마저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이 난감한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핵폐기물은 답이 없고, 핵폐기물을 배출하는 핵발전도 답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이 절실히 필요하다.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를 앞둔 3월6일,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이 예정되어 있다. 이날은 가톨릭교회가 회개와 정화를 위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기도 하다. 이날 신자들은 이마에 재를 받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창세기 3, 19). 흙(humus)에서 온 사람(human)이 세상에서 취할 근본 태도가 겸손(humility)임을 마음에 새긴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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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시기 동독과 서독 국민들이 경험한 ‘우리는 하나’라는 깊은 연대감은 국제적 상황이 통일에 대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시기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통일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회고록 <우리는 이렇게 통일했다> 서문의 한 부분이다. 때로 역사는 ‘희망’과 ‘낙관’의 힘으로 전진한다. 그의 ‘기억’은 격변 속에 있는 한반도 운명에도 의미심장하다.

북·미 정상의 하노이 담판은 28일 안타까움으로 막을 내렸다. ‘하노이선언’으로 명명될 공동서명식도 하지 못한 채 후일을 기약하고 두 정상은 헤어졌다. 지난해 6월12일 역사적인 싱가포르선언 이후 261일 만의 만남이었지만, 악마가 숨은 디테일은 끝내 넘어서지 못한 셈이다. 반세기 넘게 일상적 전쟁의 불안이 배회하던 한반도 운명이 변화하는 길 위에는 다시 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하노이 담판 결과만큼이나 이로 인해 닥칠 우리 사회와 정치의 모습이 우려스럽다. 북·미 회담을 앞두고 “역사적 대전환”에 대한 기대와 “핵보유 협상”이라는 폄훼가 엇갈렸던 진보·보수의 거리를 더욱 벌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단절은 ‘이념의 분단선’처럼 명료하다. 독일과 달리 우리는 반도 남쪽에서도 ‘한마음’이란 연결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당장은 자유한국당 전당대회를 횡행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은 대변인이 아닌가”(황교안 신임대표) 같은 목소리들이 기세등등해질 터다. 하지만 그 또한 답이 아님을 모두 안다. 그토록 그들이 북핵을 우려한다면 북한이 핵능력을 키워갈 동안 어떻게 ‘통일 대박’ 같은 환상에 빠져 팔짱을 끼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당 모습은 한반도 평화·안보에 대한 대안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지층에 대한 선동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보수정치의 모습은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서 있다. 하지만 이왕 김정은의 속마음을 재단할 양이면, 그에 기반해 정치노선을 정할 것이면 ‘긍정의 가정’에 기대야 한다. 그래야 출구와 목표가 보인다. 동유럽 소비에트의 몰락처럼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인생은 늦게 동참하는 자를 벌하리라.”

구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9년 10월7일 동독 건국 4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방문한 동베를린에서 남긴 말이다. 한 달여 뒤인 11월9일 베를린 장벽은 극적으로 붕괴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사에 남은 그 충고가 실은 동독 지도자들이 아니라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고 했다.

이후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을 감안하면 그의 고백은 예언이 됐다. 바이츠제커는 회고록에 “우리는 역사를 재촉해서도 안되고 놓쳐서도 안된다. 고르바초프에 따르면 책임 있는 정치는 역사의 방향을 제때 인식하고 인도적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기록했다. 고르바초프의 역사적 선택이 없었다면 당시 ‘둠스데이 클락(지구종말의 시계)’의 초침을 빠르게 돌리던 미·소의 극한 대립은 인류의 재앙이 됐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 책임 있는 정치는 역사의 저류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순응하고 적극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 상황은 여러 ‘절박한 필요’들이 만나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는 이런 필요들이 계기가 돼 필연으로 이행한다. 고사(枯死)의 상황을 탈출해야 하는 북한과 다시 전쟁만은 절대 안된다는 남측의 절실함, ‘제재·긴장의 쳇바퀴’를 벗어나야 하는 미국의 이해가 만난 절체절명의 기회다. 당장은 멈칫해도 포기할 수 없는 길이다.

국가 운명과 관련한 책임 있는 정치의 자세가 실상 거창한 게 아니다. 정치적 이해로 국민 마음을 갈라놓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것으로 불안을 더욱 키우지 않는 것이다. 국가 운명과 정치적 이해를 나눠 선동하고 분열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무책임이다,

실상 지금 시점에서 이 길의 끝은 누구도 확신하긴 어렵다. 김정은조차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북핵의 운명은 지금 종착역을 예단하지 말고, 북한이 연 공간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방치된 10년’의 교훈에서 보듯 북한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기회다.

문재인 정부 때 일이라고 그것이 문재인 정부나 그들 세력의 성과로 기록되는 게 아니다. 후세 민심은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이 국면에서 각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마음을 모으고, 희망을 키워, 운명을 개척했는지 말이다. 국가 운명을 ‘패거리의 이해’로 바꿔치기한 임진왜란의 동서 붕당의 참혹함이 대대손손 집단기억 속에 각인돼 있듯 말이다. 이건 “오로지 분단을 유지한 상태에서 반공 하나로 연명해온 집단”이란 의심을 받는 그 정치세력에 하는 이야기다. 역사의 변두리에서 의심으로 머뭇거릴 여유가 지금 우리에겐 없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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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1일자 지면기사-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광해군이 침전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이틀간 측간을 가지 못했다고 하니 배탈이 난 게 틀림없다. 배에서는 간혹 물 끓는 소리가 나고, 아랫다리 쪽에서는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시에게 말하자 매화틀이 침전으로 들어온다. 엉거주춤 매화틀에 앉은 광해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거사’를 끝낸다. 곧이어 이를 지켜보던 궁중 나인들의 입에서 ‘경하 드리옵니다’라는 축송이 침전에 메아리친다.

매화틀은 나무로 만든 왕의 이동용 좌변기다. 나무틀 위에는 빨간 우단을 깔았고 틀 밑에는 서랍식 구리그릇이 놓였다. 매화틀은 왕의 분뇨를 매화라고 은유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왕이 일을 보고나면 구리 변기를 꺼내어 이를 내의원에 보낸다. 내의원에서는 변의 농도와 색깔 등을 살핀다. 심지어 맛까지 보면서 왕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분변이 건강과 직결된 만큼 나인들이 왕의 쾌변을 축하한 것을 영화적 과장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두 손으로 재떨이를 받쳐든 모습. (출처:경향신문DB)

신체에서 분비되는 땀이나 눈물, 대소변은 건강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들 생체정보를 이용한 진단기술도 진보했다. 변의 색깔과 냄새로 병의 징후를 감지하는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분변에 들어 있는 체액의 유전자(DNA)를 통해 암 등 건강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 나아가 암세포가 깨지면서 생기는 미량의 DNA 조각을 사람의 혈액이나 분변 등에서 찾아 암을 진단하는 수준까지 와 있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분석검사를 통해 유방암 가족력을 발견했고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절개수술을 받은 바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DNA 검진을 통해 치매나 성인병 위험을 사전에 체크할 수 있다.

지난 26일 새벽 흥미로운 광경이 목격됐다.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자 재떨이를 들고 있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배꽁초를 곧바로 챙겨간 것이다. 북측은 김 위원장의 콧물을 닦은 휴지나 수건, 머리카락, 대소변은 밀봉해 특수처리하거나 회수해 가져간다. 김 위원장의 DNA 정보를 유출하지 않기 위해서다. 건강이상설까지 나온 바 있는 김 위원장의 생체정보는 북측의 1급기밀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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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