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저택에 널따란 정원을 가진 한 거인이 있었다. 거인이 집을 비울 때면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정원에서 뛰어놀았다. 일곱 해 동안 집을 비우고 돌아온 거인은 ‘불법침입한’ 아이들을 정원에서 내쫓았다. 아이들이 사라진 정원엔 매서운 북풍만 몰아쳤다. 어느 날, 거인의 정원에 다시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들었다. 담벽 사이 구멍 안으로 아이들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거인은 그제야 알았다. 그의 정원에 봄이 오지 않은 이유를. 망치로 담장을 부수고 다시 아이들을 맞아들였다. 

오스카 와일드의 ‘저만 아는 거인’이다. 지난주 두개의 담장이 한반도를 에워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냉전의 담장을 깨는 동안, 황교안 대표를 선택한 자유한국당은 냉전의 담장을 쌓아 올렸다. 

북한과 미국의 두 거인은 평화를 확약하는 도장은 찍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원을 조금씩 내주며 담장 허물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압박을 더 할 것이냐는 ‘대한민국’ 기자의 질문에 “북한 사람들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를 오가는 열차 안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생각했을 테다. 비핵화는 전 세계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실존의 문제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앞줄 왼쪽)와 조경태 최고위원(오른쪽) 등 지도부가 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사저에서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2·27 전당대회에서 한국당은 황교안체제를 택했다. 담장은 더 높아졌다. ‘5·18 망언’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태블릿PC 논란이 한겹 더 에워쌌다. ‘태극기부대’만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전대 후, 한국당 거인(황교안)은 성찰 대신 좌파독재만 외치며 온통 남탓만 하고 있다. 

오죽하면 한국의 위기가 아닌 보수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아질까. 그렇다고 이 송곳 같은 현실이 보수세력 홀로 견딜 문제도 아니다. 보수가 붕괴되면 진보는 우경화의 유혹에 빠진다. 진보개혁 진영이 20년 집권을 외치는 동안 관료와 시장이 권력의 지분을 넓히고 있다. 정치의 후퇴다. 세번의 선거 패배 후 2005년 ‘보수주의자의 보수 비판’이라 이름 붙여진 책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를 꺼내들고 굳건한 담장 옆에 섰다. 14년 전 보수의 석고대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당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보수주의자들의 일곱 가지 죄’를 고하며 고개 숙였다. 첫째,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죄’다. 한국당은 대법원마저 ‘국가권력을 무력 찬탈한 반란군 대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싸운 시민’의 대립으로 판결한 5·18민주화운동에 빨간색을 입혔다. 황교안 대표는 “유공자 명단을 가려내야 한다”고 하더니 취임 후엔 좌파독재저지특위를 만들고 안보무장해제 투쟁운동을 선포했다. 지금은 적대국가 북한과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하는 시대다. 내년 총선은 북한 변수 없이 치러지는 첫 선거가 될지 모른다. 

두번째는 ‘과거의 향수를 살리지 못한 죄’, 세번째는 ‘지키기만 하고 가꾸지 못한 죄’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태블릿PC 진위 논란을 주도했다. 법무부 장관 출신이 법치주의를 부정한 꼴이다. 권력이 결정하면 법이 곡학아세하던 시대를 아직도 그리워한단 말인가.

‘권위와 권위주의를 혼동한 죄’, 네번째 죄다. 지금 광화문광장은 ‘시대 불화’의 장소가 됐다. 냉전 보수세력들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태극기를 휘날리고 있다. 한때 한국 보수는 반공 대신 자유를 강조하며, 대북 안보 일변도에서 벗어나려 했다. 다시 반공의 깃발을 든 것이다. 조금이라도 자신들과 다르면 악으로 치부하면서 말이다. 한국당은 이런 태극기부대에 엄청난 정치적 권위를 부여했다. 

다섯째는 ‘특권 오·남용의 죄’다. 황 대표는 고검장에서 물러난 후 대형로펌에서 17개월 동안 월 1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수임사건 19개 목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자기초월을 못한 죄’가 여섯번째다. 황 대표 스스로 쟁취한 정치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보수의 새 가치는커녕 현안 대응조차 어정쩡하다. 5·18 망언 징계를 요구하는 여론에 “과거를 접고 미래를 보자”는 말만 되뇐다.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 황교안’이 새겨진 자개 명패가 떠올랐다. 특검 연장 요구가 빗발치던 때 자개 명패, 기념시계를 만들어 의전놀이에 빠졌던 국무총리, 그 사람이 한국당 대표가 됐다. 이번엔 제1야당 대표를 차기 대선용 자개 명패로 삼고 있는 건지 모를 일이다.           

마지막은 ‘베풀지 못한 죄’다. 아래를 내려다볼 줄 모르는 정치는 뺏길 일밖에 없다. 지방분권, 균형발전 정책만 해도 기득권의 독점을 깨려는 선전포고 아니겠는가. 사려 깊지 못하고, 민심을 헤아릴 줄 모르는 것도 ‘정치’를 베풀지 않은 죄다. 황 대표는 정의당을 방문해 첫 인사를 하며 드루킹 댓글 사건을 건드렸다. 전대에선 차디찬 민심을 확인했다.  

한쪽은 허문 담장 위로 봄을 불렀고, 한쪽은 단단한 담장을 타고 다시 겨울로 들어갔다. 한 뼘만 허물면 봄볕이 스며들 텐데. 기어이 수구의 긴 겨울을 보내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만 아는 거인’에서 ‘저만 아는 소인’으로 왜소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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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석유화학회사 홍보 책자를 만든 적이 있다. 그 회사는 폴리에틸렌을 생산했는데, 쌀알 같은 폴리에틸렌 알갱이를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색깔의 알갱이를 섞어 찍었다가, 나눠 찍었다가 하느라 알갱이하고 씨름해야 했다. 알갱이를 색깔별로 구분해야 할 때는 손이 모자라 한 무더기씩 집으로 가져가 온 식구가 밤새 머리를 맞대고 앉아 골라내기도 했다. 식구들은 신기해했다. 이 작은 알갱이가 파이프가 되고, 비닐봉지가 되고, 컵이 되고, 헬멧이 되다니…. 

어디 그것뿐이랴. 변신이 무궁무진한 폴리에틸렌은 영국왕립화학협회가 꼽은 ‘현대 사회를 만든 위대한 화학 발명 다섯 가지’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 폴리에틸렌, 그러니까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현대인의 삶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인류는 다시는 종이를 불리고 이겨 만든 함지나 박을 쪼개 속을 파낸 바가지를 쓰던 때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영원불멸의 발명품에 도취된 인류는 플라스틱을 물어 와서 새끼한테 먹이는 바닷새나 비닐봉지를 뜯어먹는 북극곰 사진을 보면서도 대개 초연하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인간 때문에 다른 동물이 고통받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지요. 맨 먼저 결심한 게 대형 마트에 가지 않는 거였어요. 마트에서 장을 보면 비닐봉지는 물론이거니와 플라스틱 용기까지 쓰레기가 한 상자는 나오잖아요.”

그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전통시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얼마 전부터는 시장에 갈 때 아예 장바구니 안에 반찬통을 넣어 간다. 상인들은 으레 비닐봉지를 뽑아 식재료를 담으려다가 그가 내민 반찬통을 의아하게 바라본다고 했다. “유난 떤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저도 번거롭긴 하지요. 과연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나 하나라도 덜 쓰면 낫지 않을까요?”

나 하나라도, 그 말을 곱씹는 내 손에는 생수병과 깜장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나 하나 때문에 이렇게 하늘이 희뿌옇게 된 것은 아닌가? 무턱대고 쓰고 버리고 만들고, 폴리에틸렌 분자 사슬보다 강한 이 사슬을 끊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눈부신 봄볕을 잃는 것은 아닌가?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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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에서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행정법학이 등장하여 공법시스템 역시 더욱더 현대화되어 간다. 이에 반해 과거 민주적 법치국가원리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시대에 만들어진 기본 틀이 강고한 우리의 현재 법상황은 매우 우려된다. 최근 이런 정체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규제 샌드박스’와 같은 일회적 수단이 강구되지만, 현재의 문제상황을 근원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과연 이런 정체현상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기왕의 공공법제는 관헌(관치)국가적 전통에서 행정을 공권력의 주체로, 국민을 행정의 객체로 설정하여 구축되었다. 가령 대부분의 행정법규정이 “…를 하고자 하는 자는 …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허가 여부를 행정청의 의무인지 재량인지 불분명하게 둠으로써, 국민은 행정처분이 이뤄지기만 기대할 뿐이고 그저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우리 법제도는 대부분 일본을 본뜬 것이다. 일제강점을 겪고 근대 법제도의 대부분이 그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식을 당한 우리로선 광복 이후에 국가체제를 만들고 운용하는 데 있어서, 특히 제3공화국 시대에 급속한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익숙한 일본의 법제도를 본보기로 삼아 국가의 기간 법제도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후발국가가 앞서가는 국가를 벤치마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일본의 행정법이 우리 행정법의 모델이 된 것 자체를 비난하기는 어렵다. 우리와 일본이 국가시스템과 역사적 전통에서 매우 다름에도, 근본적인 차이점이 간과된 채 별다른 이론의 제기 없이 이런 차용의 결과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으며, 우리의 고유한 것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일본 공법은 한 세기 전의 메이지 헌법 시대에 대륙법, 대표적인 관헌국가인 프로이센의 공법을 모범으로 삼았다. 현재 일본 헌법질서의 연원이 된 메이지 헌법은 일왕(천황)주권을 바탕으로 국민이 아닌 신민을 통치 대상으로 하면서 관료를 그 매개체로 한 가부장적 국가시스템을 채용하였다. 외견적 입헌제이기에, 일본에서 관헌(관치)국가적 공법시스템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런데 임시정부가 1919년 4월11일 제정한, 임시정부 최초의 헌법문서인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임시헌법’(1919년 9월11일) 역시 주권재민을 규정한다(제1조). 한 세기 전에 우리 선조들은 국권이 상실 된 와중에도 국가의 근본이 민주공화제임을 표방하였다. 이는 동시대에 일본과 중국과는 완전히 다르다. 임시정부가 지향한 민주공화제의 참뜻이 제헌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까지 이어진다고 할 때, 공법시스템 전반에 드리운 일본의 관헌국가적 전통을 제거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고, 현 세대의 책무이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광장의 민주주의가 현실이 되어 과거의 권위주의체제가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법치주의는 자칫 그릇된 법실증주의나 명목상의 그것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아울러 법치주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곳에선 자칫 민주주의가 사이비 거품민주주의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가 새롭게 다가온 이상, 관헌국가적 전통에서 벗어나 국민을 중심에 그리고 국가보다 앞세우는 것을 바탕으로 공법시스템을 완전히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이다.

<김중권 | 중앙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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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정신질환과 관련된 오랜 두 가지 폭력이 있다. 하나는 정신질환에 의한 폭력이다. 일반 폭력에 비해 매우 낮은 비율임에도 국민은 공포를 느낀다. 누가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상황이 각인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은 중증정신질환자의 격리를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강제입원이라는 폭력이다. 2017년 영화 <날보러 와요>는 한 여성이 대낮에 사설이송단에 납치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매우 예외적인 상황임에도, 이유 없이 나도 납치·감금될 수 있다는 생각이 공포를 불러온다. 두 폭력은 증오와 혐오를 키워왔다.

1995년 국회는 정신보건법으로 가족과 정신과 의사에 의한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법제화했다.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았던 시기에 입원 여부 결정은 주로 민간에 맡겨졌다. 국가에 의한 행정입원은 극히 드물었다. 비인가 요양시설에 있던 환자들이 병원으로 이동한 것은 한발 진보였다. 하지만 호전된 사람도 보호자가 원치 않으면 오래 입원할 수 있고, 위험이 높다고 만류해도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퇴원하는 제도였다. 이 과정에서 국가의 지원은 부재했고 모든 책임이 보호자에게 맡겨졌다. 급성기와 만성 입원의 구분도, 전달체계도 없었다. 급성기 병상에서 치료진의 집중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환자 중 적지 않은 수가 의사 한 명이 60명을, 간호사 한 명이 100명을 돌보는 만성정신병원에 맡겨졌다.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격리와 강박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작년 마지막 날 임세원 교수를 잃었다. 다시 편견이 난무할 시점에, 유족들은 안전한 진료 환경이 마련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고인의 유지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한 진정성 있는 의사의 죽음과 애도의 물결은 혐오와 무관심이라는 벽에 막힌 논의의 창을 반쯤 열어놓았다. 33개의 ‘임세원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오랜 두 가지 폭력의 시대는 어떻게 해야 종식될 수 있을까?

응급실 또는 급성기 병원으로의 이송은 국가의 몫이 되어야 한다. 사설응급이송단에 맡길 일이 아니다. 경찰과 119의 업무이다. 경찰과 119가 모두 감당할 수 있을까? 서구는 물론이고 일본과 대만에서도 전문가 핫라인과 응급출동체계, 그리고 지정 정신응급실을 통해 경찰과 119를 돕는다. 이런 현실적 대안이 실현되어야 한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의 보호 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철폐되어야 한다. 신체질환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 조항이 없어진다고 보호 의무자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족은 입원의 신청자로서만 남고 결정은 국가가 해야 1995년 정신보건법 체계가 종식된다.

국가가 비자의입원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당시의 정신보건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강제입원 자체는 합헌이라고 했다. 다만 독립적 기관의 결정이 없었고 환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절차도 갖추지 못했으며 절차보조인과 같이 이를 지원할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해서는 시행 전이라 판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권을 위해 가정법원이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사법입원 또는 독립된 행정기관으로서 이를 결정하는 정신건강심판원의 설립이 필요하다. 미국 국립병원에서는 판사가 출장을 와 입원환자를 만난다. 환자가 직접 본인의 입장을 말할 수 있다. 의사표현이 어려울 땐 절차보조인이 이를 돕는다. 판사는 정신건강 전문가와 함께 결정하고 이후 치료와 지원을 연계한다.

이런 주장에 누군가는 또 쉽게 입원을 시키려는 것 아닌지 염려하고, 누군가는 정신질환자가 사회로 나오면 대책이 있느냐고 한다. 폭력이 낳은 오랜 불신의 결과이다. 인권과 안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어려운 길은 변화와 투자를 필요로 한다. 사후에 서류만 검토하는 현 체계보다 대면을 기본으로 국가가 입원을 결정하는 체계는 인권을 위한 인력과 비용을 더 필요로 할 것이다. 예방으로 시작하여 급성기 치료환경을 개선하고 병원마다 사례관리자를 두고 입원과 동시에 퇴원계획을 세우며 퇴원 후 커뮤니티케어 지원시스템을 만드는 일 역시 비용이 더 들 수 있다. 핵심은 국민의 안전과 삶을 위한 건강보험 개선과 복지 확대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다시 두 가지 폭력과 증오를 불러내 서로 비난하다 무관심으로 덮기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아픔을 겪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이제 논의는 시작됐다.

<백종우 |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경희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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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3이 되는 첫째 아이가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중학교 때에 비해 교육비 부담이 늘어나 부담스러웠다. 3개월마다 수업료를 납부해야 하는데, 중3이 되는 둘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내년부터는 둘째 아이 고등학교 수업료 부담까지 더해지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한 달에 이틀 남짓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 꼬박 13시간씩 시장에서 일하는 우리와 같은 소상공인들에게는 고등학교부터 급격히 늘어나는 아이들 학비 부담이 여간 큰 게 아니다. 

그러고 보니 국가 복지정책이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나, 우리 같은 40~50대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것 같다. 아동, 청년, 노인 등 대부분 연령대가 복지정책의 혜택을 받고 있는데, 우리 세대는 지금껏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서도 각종 복지 혜택에서는 소외된다고 느낀다. 이 세대는 소위 ‘낀 세대’로서 아직도 위로는 부모님을 챙겨야 하고, 아래로는 중고생 자녀들에게 들어갈 돈이 태산이다. 정말 경제적으로 어려운 세대가 아닐까 한다. 

우리 세대가 자녀를 키울 때는 모든 게 자비였는데, 지금은 산전 검사부터 출산비용까지 지원되고 육아수당에 어린이집·유치원 교육비도 지원되고 예방접종도 무료가 되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학비 부담은 없었는데, 자녀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40만원가량의 등록금 고지서가 분기별로 날아온다. 대학 등록금보다야 낫다지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부담은 상당하다. 

우리 세대는 아무런 혜택 없이 아등바등 자녀들을 키워왔는데, 올해부터는 부모의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 대해 아동수당도 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고등학생들의 학비도 지원해 주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심지어 국공립대학 입학금이 폐지되고 사립대학의 입학금도 점차 폐지된다고 하며, 대학생 3명 중 1명은 등록금의 절반 이상을 국가장학금으로 지원받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육은 정규교육이며 공교육인데, 다른 비용도 아니고 공교육 이수를 위한 학비를 지원받는 것은 같은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세수가 늘어났다고 하는데, 늘어난 세수에 대한 혜택도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 현재 저소득층 자녀나 농어민 자녀에게는 고등학교 학비가 전액 지원되고 있으며,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 자녀들도 사원 복지 차원에서 고등학교 학비를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자녀의 고등학교 학비를 자비로 부담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영세 중소기업 직원 등 서민층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고등학교 교육이 기본교육이 된 지 이미 오래인데 서민층만 혜택을 받지 못하고 학비를 부담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최근에 정부에서도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천명하면서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이야말로 이에 부합하는 정책이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올해 2학기부터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시행한다는 소식은 반가운 뉴스다. 국가는 모든 학생들이 가정의 여건과 관계없이 마음 놓고 공부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학부모의 교육열에 기대어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용수 | 대전 태평시장  상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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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미세먼지 상황이 닷새째 이어지면서 5일 전국 곳곳에서 초미세먼지 농도가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정지역’ 제주도에서도 지난 4일부터 처음으로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발동됐다. 학교에서는 실외수업을 중단하는 일이 속출했고, 상당수 시민들도 약속을 취소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하지만 실내 미세먼지 농도도 바깥과 다를 바 없어서 시민들은 적잖은 불편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미세먼지의 피해 범주도 확산되고 있다. 1급 발암물질로 인체에 대한 피해는 물론 시야 확보를 방해해 항공기 운항을 지연시키는 등 경제활동 전반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고 있다. 곧 본격적인 황사철이 되면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이날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지금처럼 계속되면 국민 생명 안전에 지대한 위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문제는 실효성 있는 미세먼지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난달 15일 미세먼지 특별법 시행에 따른 비상저감조치뿐이다. 저감조치가 발령되면 서울에서는 총중량 2.5t 이상 배출가스 5등급 차량의 운행이 제한되고, 나머지 시·도에서는 공공기관 운행 차량에 대해서만 2부제를 시행한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려 해도 법적 근거가 없다. 

미세먼지 농도가 최고치를 기록한 5일 용산 국립박물관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뒤로 남산타워가 안개속에 가린듯 희미하게 보인다. 우철훈 선임기자

조 장관은 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경제활동이나 차량운행 제한도 필요할 것 같다”며 “법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전국적인 차량 2부제를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느슨하게 돼 있는 차량 운행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나아가 미세먼지를 대량 배출하는 민간 사업장에 대해서도 조업시간이나 가동률을 줄이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일단 시민이나 민간 부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뒤 추후에 법제화를 통해 강제 시행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국회에 이미 미세먼지를 자연재난에 포함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는 만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당장은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고, 시민들도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하는 판에 불만만 제기할 수는 없다. 이번 미세먼지 사태는 대기 정체로 대기오염 물질이 축적된 상태에서 중국발 스모그가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중국 요인이 크지만 중국 탓만 할 수는 없다. 우리 스스로 대책을 시행해야 중국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지난 1월 “미세먼지를 재난 수준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한낱 수사로 끝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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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꼴이 역시 ‘도로 박근혜당’답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체제가 출범했으나, 첫 시험대인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부터 뭉그적대고 있다. 황교안 대표체제 이후 처음 열린 5일 의원총회에서 이종명 의원의 제명 안건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당 윤리위에서 제명 결정이 난 이 의원에 대해서는 의총의 표결 절차가 필요하다. 이날 의총에서 이 의원의 제명 의결이 진행되지 않음으로써 전당대회 이후로 유예된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도 마냥 지연될 판이다. 황교안 지도부가 5·18 망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 의지가 없는 것은 물론 ‘통합’을 빌미로 징계 자체를 유야무야하려는 작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 두번째)가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황 대표는 지난 4일 민주평화당 예방 당시 5·18 망언 관련자 징계를 요구받고 “과거에 붙들리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정치를 하자”고 즉답을 피했다.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옹호하고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한 5·18 망언 문제를 ‘과거’로 치부한 꼴이다. 한국당은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모독하고 희생자들을 ‘괴물집단’으로 매도한 용서받지 못할 망동에 대해 진정 어린 사과도, 걸맞은 단죄도 없이 책임을 피해 왔다. 여론에 밀려 억지춘향 격으로 5·18 망언 의원 징계를 논의한 끝에 이종명 의원은 제명하고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로 징계를 유보한 게 고작이다. 당내 선거 규정을 빌미로 망언을 묵인하고 되레 이들이 당내 경선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징계쇼에 불과했다.

황 대표는 당선 이후 “당 윤리위에서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여기에 윤리위원장마저 사퇴해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 논의는 더욱 미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 대표가 “당내 통합”을 앞세우는 걸 보면 최고위원에 선출된 김순례 의원, 전대에서 태극기부대의 전폭적 비호를 받은 김진태 의원에게 무거운 징계를 내릴 뜻도 없어 보인다. 첫 당직 인사가 ‘친박’ 일색으로 이뤄진 것으로 봐도 그렇다. 보수 재건이나 대안정당으로 거듭남을 위한 혁신 산통을 감내하기는커녕 태극기부대 눈치나 살피는 ‘도로 친박당’에 안주하려는 모습이다. 반역사적이고 자기파괴적인 5·18 망언을 징치하지 않고는 한국당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반헌법적, 반역사적 망동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서 “미래를 바라보는 정치”를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그 미래와 민주주의,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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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대학시절 내내 학원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프랜차이즈 학원부터 시장통에 위치한 소규모 보습학원, 봉급은 종종 체불되었어도 함께 공부하는 기쁨을 일구었던 대안학교풍의 학원까지 수많은 곳을 거쳤다.

마지막으로 일한 곳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그러나 수강생이 날로 줄어 힘겨워하던 대형학원이었다. 일흔을 넘긴 이사장은 젊은 날 검정고시 교습에 공헌하여 국가훈장도 받았다고 했다. 그분은 월요일마다 강사들을 불러 모아 교육윤리를 설파했다. 요지는 항상 같았다. 힘을 다해 일하라. 한편 실무를 담당하던 물리전공 교무주임 선생님은 학생들 표현을 빌리자면 ‘얼굴은 동자승, 머리는 대머리’였는데 클래식을 대단히 좋아했다. 자비로 구입한 오디오를 교무실에 두고 클래식 FM을 틀어놓았다.

비록 저물어가는 곳이었지만 프로의 자존심으로 버티던 다른 선생님들이 보시기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강사가 마뜩잖았을 거다. 전공 아닌 교과목을 가르치며 당치 않은 프로 시늉하느라 난 바싹 긴장해 있었다. 숨통을 틔워준 것은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서 들리던 아름다운 선율과, 알게 모르게 배려해주시던 교무주임이었다.

학부 마지막 기말시험 기간이었다. 다음날 민사소송법 시험이 있었고, 그날은 인근 두 고등학교 기말고사 시작일이기도 했다. 오후 3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보충수업이 잡혀 있었다. 입으로는 기출문제를 풀어주는데 머릿속에선 펴보지 못한 민사소송법 책이 아른거렸다. 지치고 막막해 부품 보관하는 창고로 숨어들어 울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나를 발견한 교무주임은 “아, 담배 좀 피우려고….” 얼버무리며 얼른 나갔다. ‘무슨 담배를 창고에서 피우나?’ 하며 눈가를 소매로 문지르고 교무실로 가니 학생들이 몰려와 밤 10시에 갑자기 물리 보충이 잡혔다 했다. 물리시험은 며칠 후인데 ‘동자승’이 꼭 오늘 밤 보충해야 한댔다고. 잠시 후 들어온 교무주임 선생님은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마지막 보충 취소됐으니 선생님은 퇴근하세요.” 반짝이던 그분 머리가 보석처럼 보이던 찰나였다. 가방을 챙겨 나오는데 늘 그렇듯 켜져 있던 클래식 FM에서 모차르트의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이 명랑하게 연주되었다.

<안개 속의 풍경>(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1988)이란 영화를 보면, 세상에 내던져져 할퀴어진 어린 주인공이 몸을 팔아서라도 여비를 구하고자 역전에서 군인 아저씨한테 다가서는 장면이 나온다. 젊은 병사는 아이 말뜻을 처음엔 이해 못하였다가 이내 당혹스러워하다가, 불쾌해하며 자리를 피한다. 화물칸 사이를 착잡한 표정으로 서성이던 그는 거기까지 찾아든 소녀에게 기차 삯에 달할 만큼의 돈을 쥐여주고 서둘러 가버린다. 그걸로 표를 구매한 소녀가 동생과 나란히 열차의자에 앉아 있던 다음 장면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잊고 지냈던 한 시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공부하고 가르치며 밥 벌어먹게 되기까지, 돌이켜보면 먹고살 길이 실제로 끊긴 적은 없었다. 그래서 막연한 배짱 같은 걸 가졌더랬다. 나 하나 건사할 길은 어떻게든 계속 열리겠지, 하는. 그렇게 열어준 것은 세상 너머로부터의 자비로운 손길이었겠지만, 이는 땅 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크고 작은 호의를 경유하여 비로소 일용할 양식의 형태로 손에 쥐어졌다. 위 영화 속 소녀가 국경을 넘어 ‘아버지 나라’에 다다를 것이 아버지에 의해 예정된 선물이었다 할지라도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잠시 지친 몸을 누이도록 해준 것은 한 인간의 별것 아닌 선의였던 것처럼.

그해 겨울 입시학원 교무실이 생각난다. 반짝반짝 작은 별 변주곡이 귓가에 맴돈다. 가난했던 나는 그 미소한 배려들이 얼마나 세심히 마련되었을지 헤아려보지 않은 채 주는 대로 받았다. 받은 자로서 무얼 하면 될지, 은혜 갚은 까치의 시점에서 골똘해본다. 생의 여정 중 맞닥뜨릴 고단한 이들에게 몸을 누일 열차 칸을 그때그때 내어놓는 것, 그리고 주는 대로 받는 누군가를 만나거들랑 나 또한 ‘그럼에도 재차 뭘 내미는’ 호구가 되는 것. 이는 일생을 두고 행해야 할 작업이므로, 일단 오늘 밤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고마움들 가운데 하나를 글로 옮기어 사람들과 나누기로 한다.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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