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아일랜드에 사는 시본 웰란은 임신 20주에 태아의 뇌에 선천적인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고 싶었던 웰란에게 돌아온 대답은 치명적인 손상으로 아기가 살 가망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임신을 유지하다 태아를 배 속에서 잃을 것인가, 아니면 ‘여행’을 선택할 것인가.

여기서 ‘여행’은 아일랜드의 낙태 금지법 때문에 해외에서 낙태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한 주 뒤 웰란은 영국 리버풀로 날아가 임신 중단 수술을 받았다. 이동 경비와 비싼 진료비 모두 그의 몫이었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7년 웰란의 사례에 대해 “웰란이 겪은 ‘강도 높은 정신적 괴로움’은 아일랜드의 낙태 처벌에 기인하며,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인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여성에게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일랜드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보고, 웰란에게 3만유로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웰란은 자국에서 낙태 시술을 받을 수 없어 해외로 나가야 했던 17만명의 아일랜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지만, 낙태가 범죄가 되었을 때 개인에게 어떤 해를 끼치는지는 명백히 보여준다.

지난해 아일랜드는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를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헌법 조항을 폐지하였고, 이제 웰란의 사례는 과거가 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한 해 220만건의 안전하지 않은 낙태가 이뤄지고 있다. 이로 이해 목숨을 잃는 여성은 4만7000여명에 달한다.

낙태 문제를 바라보는 시작점은 여기에 있다. 안전한 낙태 시술을 받았다면, 시술 이후에도 지속적 진료를 통해 합병증을 얻지 않았다면, 지금도 살아있었을 4만7000여명의 생명. 우리는 막을 수 있는 죽음과 불필요한 위험을 막을 방법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

처벌은 낙태를 더 은밀하게 만든다.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낙인과 수치심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고, 낙태 이후 치료를 받고 싶어도 기소의 두려움에 주저하게 만든다. 악순환의 고리다. 낙태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낙태를 막지 못한다. 앞선 웰란을 비롯한 아일랜드의 17만명의 여성이 그 증거이며, 지난 2월 나온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또한 같은 결과를 보여준다.

낙태가 합법이든 아니든, 여전히 낙태가 필요한 사람들은 시술을 받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낙태 비범죄화를 촉구한다. 비범죄화는 개인의 신념에 따른 낙태 찬성 혹은 반대에 대한 논의가 아니다. 낙태 시술에 대한 의료적 규제를 모두 풀라는 말도 아니다. 낙태는 임신 가능한 사람들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의료서비스 중 하나다. 그렇기에 다른 의료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법과 제도를 통해 규제할 수 있다. 앞서 본 사례처럼 낙태한 사람과 의료진을 처벌하는 것이 국제인권 기준에서 옳지도 않고, 현실에서 효과적이지도 않으므로 형사처벌은 답이 아니라는 뜻이다.

1960년대 이래로 국제적인 흐름은 비범죄화, 즉 낙태에 대한 처벌조치를 부분적으로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74개국, 전 세계 인구의 약 60%가 낙태를 대체로 허용하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는 반대로 나머지 40%는 낙태가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는 곳에 살고 있어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낙태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오늘은 세계여성의날이고, 올해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아일랜드에 이어 올해에는 한국을 여성 인권에서의 진전을 이루어낸 국가로 기억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경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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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찾아오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 부유해지는구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정용은 매일 미세먼지 마스크 수량을 체크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약국에선 어떤 종류의 마스크를 파는지 알 수 없었으나, 정용이 근무하는 편의점에선 모두 세 종류의 마스크를 팔았다. 하나는 N사에서 나온 황사·미세먼지 겸용 마스크인데, 포장지에는 ‘대형 3매입’이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가격은 3000원.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마스크라서 늘 넉넉하게 물건을 진열해두어야 했다.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는 사람들이 N사의 마스크를 구입해(약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니 그랬겠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포장지를 벗기고 착용하는 일이 많았다. 부부가 같이 들어오거나 등교하는 형제자매가 함께 편의점으로 들어오는 경우 거의 다 N사의 마스크를 샀다. 하나씩 나눠 쓰고도 하나가 남으니까. 마스크의 재질은 부직포이고, 뺨과 닿는 양 끝은 에지 라인으로 되어 있었다.

 

 G사에서 나온 미세먼지 차단 필터 마스크는 한 장에 3000원이나 하는데 재질은 면으로 되어 있었다. 안경 쓴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코 부분을 약간 볼록 튀어나오게 만든 디자인이 특색이라면 특색이었다. 포장지에 ‘인체공학적 입체 설계’ ‘식약처 허가’ ‘3중 특수 필터’ 같은 요란한 문구가 많이 적혀 있었지만, 편의점에선 가장 적게 팔리는 마스크였다. 실제로 정용은 N사 마스크를 한손에 들고 한참 동안 고민하던 한 회사원이 최종적으론 G사 마스크를 선택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는 마스크를 사자마자 바로 계산대 앞에서 착용했는데, 채 5초도 지나지 않아 안경에 뿌연 김이 서렸다. 그는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정용을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가장 미스터리한 마스크는 C사에서 나온 면 황사 마스크였다. 한 장당 3500원의 가격표가 붙은 이 마스크는, 포장지에도 별다른 광고 문구가 적혀 있지 않았다. ‘無 형광물질 4중 차단’이 전부였지만, N사 마스크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 정용은 C사 마스크를 산 사람들이 편의점 안에서 바로 착용하는 모습도 여럿 보았는데 눈으로 봐선 딱히 달라 보이는 구석도 없었다. 크기도 N사나 G사 마스크보다 작았고, 재질이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꾸준히 C사 제품을 찾았다. 처음 정용은 그것이 취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엔 그냥 본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두려울수록 지갑은 더 빨리 열리는 법이니까.

편의점 알바는 분명 실내 근무이지만,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낀 날에는 정용 또한 목과 눈이 따갑고 불편해졌다. 편의점 출입문은 빈번하게 열렸고, 그때마다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날이면 진열대를 두 시간에 한 번씩 면 걸레로 닦았는데, 그때마다 네 장의 면 걸레가 새까맣게 변하곤 했다. 정용은 마스크를 쓴 채(N사 마스크였다) 근무를 하다가 점장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게 뭐냐?” 고등학교 생물교사를 하다가 은퇴 후 편의점을 차린 점장은 두 시간에 한 번씩 들러 매장을 둘러보고 매출을 점검했는데(그는 편의점 바로 옆 빌라에 살았다), 알바생들을 무슨 미토콘드리아쯤으로 여기는 위인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저 어떤 에너지를 합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미력한 존재.

“목이 좀 아파서요.” 정용은 마스크를 쓴 채 말했다.

“엄살은… 그 모습 보고 사람들이 퍽도 물건 살 마음 들겠다.” 점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1988년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공기가 더 안 좋아서 서울 올림픽을 여느니 마느니 했다는 이야기, 산성비가 내려 인류가 모두 멸망하네 마네 겁에 질려 있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자신은 여전히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 정용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아저씨, 그건 그 시절 이야기고요, 저는 지금 당장 목이 아프다고요, 아저씨는 집에서 공기청정기 옆에 앉아 있다가 나와서 모르겠지만, 여기 이 계산대 뒤에 있으면 사람들이 묻히고 들어온 미세먼지까지 모두 마셔야 한다고요. 정용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점장은 계속 마스크를 벗지 않는 정용을 노려보다가 ‘끙’ 소리를 내곤 다시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 정용은 알바를 마치고 퇴근 준비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C사에서 나온 마스크 하나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계산도 하지 않고, 다음 근무자 모르게 슬쩍 챙긴 것이었다. 그런 일은 처음이었던지라 정용은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점장이 CCTV를 돌려 보면 어쩌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그 생각이 들자 정용은 그냥 저지르고 말았다. 자르려면 자르라고 하지 뭐. 정용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미세먼지는 오전보다 더 심해졌는지 가로등 불빛 경계가 뿌옇게 뭉개져 보였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도, 대화를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오전부터 그때까지 쭉 쓰고 있었던 정용의 N사 마스크는 이미 안쪽 면이 거무튀튀하게 변해 있었다. 정용은 바로 가방에서 C사의 마스크를 꺼내 갈아 쓰려고 했지만…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아직 N사의 마스크가 두 개나 남아 있으니까, 이건 아꼈다가 더 심하게 미세먼지가 낀 날 써야지… 어쨌든 이건 한 장에 3500원이니까….

정용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저들 중 누구는 오늘 쓴 마스크를 내일도 또 쓰겠지. 그러다가 정용은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C사 마스크가 많이 팔렸구나. 부직포 마스크나 코 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마스크는 아무래도 빨아 쓰긴 어려웠을 테니까… 미세먼지가 계속 이어지니 마스크를 빨아 쓰는 사람도 많겠구나… 그게 더 싸게 먹히는 거였구나…. 정용은 자신이 어떤 진실을 깨달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이 그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자신이 어쩐지 더 가난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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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밥 딜런, 스티비 원더, 빌리 조엘, 레이 찰스, 폴 사이먼, 다이애나 로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케니 로긴스, 헬리 벨라폰네, 신디 로퍼, 티나 터너, 조 카커, 윌리 넬슨, 킴 칸스, 라이오넬 리치, 스티브 페리. 세계 팝음악을 선도했던 음악인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1985년 1월. 그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A&amp;M 레코딩 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서두른다. 에티오피아 난민 구제기금 마련을 위한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단체의 이름은 USA for Africa. 음악가 퀸시 존스의 지휘하에 뭉친 45명의 팝스타들.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함께 준비한 곡 ‘We are the world’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20년을 넘긴 독재문화가 터를 잡은 국내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곡의 효과는 대단했다. 음반 판매수익은 4000만달러를 상회했고, 음반과 싱글 모두 빌보드 정상을 차지한다. ‘We are the World’는 2010년에 다시 모습을 선보인다. 아이티 지진 피해자를 위해 기획한 행사에는 카를로스 산타나, 저스틴 비버, 재닛 잭슨, 제이미 폭스, 셀린 디옹, 토니 베넷 등이 참여한다. 2014년에는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We are the World’가 재탄생한다.

음악을 통한 기부행사의 발원지는 영국이었다. 그룹 핑크 프로이드의 음악영화 &lt;더 월&gt;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밥 겔도프. 그는 1984년 영국과 아일랜드 출신의 음악가들을 설득해 밴드 에이드라는 이름으로 ‘Do they know it’s Christmas’라는 싱글을 발표한다. 아프리카 난민 지원을 위한 음반 제작에 스팅, 보노, 보이 조지, 필 콜린스 등이 참여한다.

2018년 하반기를 퀸의 해로 만든 영화 &lt;보헤미안 랩소디&gt;의 마지막 공연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1985년 7월13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프레디 머큐리가 참여한 라이브 에이드는 에티오피아 난민 지원을 위한 대규모 자선공연이었다. 이후 필라델피아, 시드니, 모스크바에서도 릴레이 공연이 펼쳐진다. 이러한 사회공헌 형태의 공연은 뒤늦게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국판 라이브 에이드로 불렸던 콘서트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다. 당시 생소하던 환경보호를 위해 신해철, 서태지와 아이들, 윤상, 이승환, 김종서, 김종진, 015B 등이 참여한다. 노래의 제목은 ‘내일이면 늦으리’. 이후 매년 공헌음반을 발표해 단지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던 대중음악의 정체성을 사회로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그 배경에는 신해철이라는 한국의 밥 겔도프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지난 세월. 앞만 보며 숨차게 달려 여기에 왔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이제 여기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네. 어린 시절에 뛰놀던 정든 냇물은 회색 거품을 가득 싣고서 흘러가고. 공장 굴뚝의 자욱한 연기 속에서 내일의 꿈이 흐린 하늘로 흩어지네. 하늘 끝까지 뻗은 회색 빌딩 숲. 이것이 우리가 원한 전부인가. 그 누가 미래를 약속하는가. 이젠 느껴야 하네. 더 늦기 전에’

첫 음반에 수록한 ‘더 늦기 전에’의 가사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서울 하늘에는 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도심은 표정없는 마스크 부대만이 가득하다. 노래가사처럼 내일의 꿈은 먼지 속에서 그 형체를 달리한다. 지금 우리는 환경문제를 등한시한 대가를 무겁게 치르고 있다. 2019년 봄, 대한민국의 하늘과 땅은 미세먼지와 오염물질로 신음하고 있다.

1992년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환경문제에 관한 공감대는 비록 미미했지만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던 때였다. 이제는 막다른 공간으로 진입한 것일까. 대한민국의 2020년엔 어떤 색깔의 공기가 부유할지 우려된다. 늦었지만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이타적인 서울을 상상해본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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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한복음 1장 1절). 사회변화를 이끈 시작에도 항상 언어가 있었다. 30여년 전에 ‘환경’을 말할 땐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지금은 상식이 되었다. 최근 인구에 회자된 말씀이 있었으니 바로 ‘성인지 감수성’이다. 전도유망했던 정치인의 재판에서 1심을 뒤집고 법정 구속시킨 근거가 될 만큼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차별과 유불리함 또는 불균형을 인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인지 감수성은 확장성이 있는 개념이라 ‘환경인지 감수성’으로 응용해 보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로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 수준이 높아졌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일본에서 생산된 것은 먹지도 사지도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으로 일회용 안 쓰기 운동이 SNS상에서 심심찮게 펼쳐진다.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의 환경의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재난을 겪지 않고서 할 수도 있었던 일인데 어째서 대책은 항상 사후약방문이어야만 할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오늘 새벽 파리 생제르맹을 상대로 후반 추가시간 4분 극적인 페널티골을 만들어내며 유럽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에 성공했다. 연패로 부진했던 맨유를 구한 이는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대행이다. 어떻게 감독 한 명 바뀐 걸로 마법 같은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을까. 우리도 히딩크 감독 효과를 경험한 바 있다. 축구만 그런 게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우두머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미세먼지 지옥에 갇혀 지낸 동안 정부가 대응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가 세월호 갑판쯤 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 앞이 캄캄했다. 이게 과장인가? 아니다. 당장 사람이 안 죽어서 그런지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도 없다. 암과 뇌졸중 같은 중증질환을 일으키고 생존과 직결되는 공기의 대재앙이 전 국토에 엄습했는데, 국민의 불안과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야 가까스로 대책을 ‘지시’하였다. 어린이들에게는 긴급하게 공기청정기를 지급하라고도 하셨고…. 청와대 앞에서 노구를 이끌고 1인 시위를 하는 환경운동가의 갈라진 목소리 사이사이로 깊은 탄식이 배어나왔다. 환경인지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환경은 모든 생명의 기초이며 지구상 모든 생물의 생존에 가장 크고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식하고 느끼며 실천하는 능력이다. 특히 국민의 건강과 안전, 쾌적한 환경을 지켜야 할 위정자의 환경인지 감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지도자를 뽑는 사람은 누구인가. &lt;아픔이 길이 되려면&gt; 권두에 저자 김승섭은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진다’고 썼다. 선출직 지도자에게는 유권자의 욕망이 새겨진다. 그러니 이 환경재난 가운데 우리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국민의 불안을 당리당략의 계산 속으로 넣는 세력도 용서받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여전히 초미세먼지는 나쁨을 가리키고 있지만 어제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이 정도만 돼도 보통 하늘이 이렇게 감사한 것인 줄 몰랐다는 감격의 언어들이 SNS에서 돌고 있다. 사람들의 이 평범한 일상을 지켜줄 이는 누구인가. 벌써부터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다음 대선 후보자의 지지율이 하루 걸러 발표되고 있다. 이제 4월 지나면 미세먼지는 관심에서 사라질 것이나 연이어 무시무시한 폭염이 기다리고 있다.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선거’인지 감수성만 높은 정치인은 이제 스스로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정치인이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성질 급한 우리 국민들이 언제 국회를 로봇으로 채울지 모른다. 굿럭!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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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7일, 옛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고르비)가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을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옛 소련 지도자로서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레이건과의 세 번째 회담이기도 했다. INF 조약 서명은 군축과 냉전 종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라이트는 다른 데 있었다. 마지막 날 미국인으로부터 받은 환대였다. 백악관에서 차를 타고 가던 고르비는 차를 세우고 군중들에게 다가갔다. 백악관 산책으로 불리는 고르비의 돌발행동에 경호원들은 경악했지만 미국은 고르비 열풍에 사로잡혔다. 고르비 인기는 회담 닷새 뒤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서 증명됐다. 고르비에게 우호적 인상을 받은 미국인은 65%였다. 61%를 기록한 레이건보다 더 많았다.

1년2개월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1986년 10월, 두 정상은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두 번째 만났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어떠한 합의는 물론 기자회견조차 없었다. 3차 회담 전망도 불투명했다. 회담 실패 원인은 스타워스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에 대한 이견이었다. 회담 동안 거친 신경전이 벌어졌다. 한 단어가 문제였다. 고르비는 연구용으로 제한할 것을 원했다. “양보할 수 없어요.”(레이건) “그것이 나의 마지막 요구조건입니다.”(고르비) “그 한마디 때문에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리려 합니까.”(레이건) “나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고르비) “이렇게 헤어지면 너무 안 좋군요. 우리는 협정을 맺을 뻔했어요.”(레이건) “나는 협정을 원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고르비) “언제 다시 이런 기회를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레이건) “그건 나도 모르겠습니다.”(고르비)

다시는 못 만날 것 같던 두 사람이 워싱턴에서 재회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복잡한 국내외 사정이 있었다. 레이건은 레이캬비크 회담 직후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상원의 영향력을 잃었다. 그건 SDI 추동력 상실을 의미했다. 반면 SDI를 군축과 연계하려는 고르비의 시도를 중단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85년 1차 제네바 회담 직전에 터진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레이건 행정부 도덕성에 치명타가 됐다. 레이건에게 이를 만회할 대외정책이 필요했다. 이것이 고르비의 INF 추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고르비의 사정도 비슷했다. 국내에서는 자신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반발이 컸다. 미국은 인권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압박했다. 고르비는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가택연금 해제와 아프간 철수 선언으로 두 장애물을 제거했다.

저서 &lt;정상회담&gt;에서 레이건-고르비의 회담을 다룬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레이캬비크는 실패했지만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일대일 정상회담의 장점이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얼마나 심하게 요구했는지, 또 얼마나 과격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놀즈 교수는 낙관주의자 레이건이 제네바에서의 긍정적인 인상을 믿고, 인간 고르비가 레닌주의를 극복할 것이라는 감을 잡았다고 했다. 고르비도 회담 전까지 레이건을 초강대국을 이끌기에 적절하지 않은 ‘바보 광대’라고 말했지만 레이캬비크 이후 레이건을 결코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두 정상 간 환상적인 케미는 하룻밤 새 찾아온 게 아니었다. 제네바 회담 때부터 멀고도 험난한 길을 걸어오면서 만든 결과였다. 이후 레이건의 모스크바 답방, 고르비의 뉴욕 방문이 이어졌다. 그렇게 두 정상은 임기 동안 모두 다섯 차례 회담을 했다.

북·미 정상 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비핵화 협상 전망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3차 회담 개최 여부도 안갯속이다. 이런 상황에서 30여년 전 이야기는 부질없어 보일 터이다. 당시 미·소와 지금 북·미 상황은 비교 대상이 안된다. 더욱이 트럼프는 레이건이 아니고, 김정은도 고르비가 아니다. 하지만 김정은-트럼프의 두 차례 회담은 공교롭게도 고르비-레이건의 셔틀 회담 과정과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도 레이캬비크 이후의 레이건-고르비와 다를 바 없다.

김정은도 워싱턴에 갈까. 지금은 꿈같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행히 두 나라 모두 추후 회담 의지를 드러내 기회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두 정상 간 신뢰와 상호존중, 문제해결 의지가 있다면 비관할 이유가 없다. 김정은의 워싱턴 방문이 실현된다면 트럼프의 평양 답방도 가능하다. 32년 전 고르비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워싱턴으로 가 군축과 냉전 종식의 초석을 닦았듯 김정은이 워싱턴으로 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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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렬되자 한쪽에선 탄식이, 다른 쪽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정상회담은 보통 형식에 불과할 뿐이어서 충격이 컸죠. 설명과 전망도 다양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에 합의서에 있지도 않던 무리한 요구를 했다. 아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제재 완전 해제를 요구했다. 일본 훼방 탓이다.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때문이다. 뮬러 특검 수사 등 미국 정치가 문제였다. 대화 국면은 이어갈 것이다. 회담 재개에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미국의 위상이 타격을 받았다. 심지어 이 결렬로 김정은 위원장 건강이 안 좋다는 말까지 나왔죠.

이 말이 맞는지, 저 말이 맞는지 헷갈립니다. 사실 확인할 길은 없죠. 이런 외교 사건은 전모가 드러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증언, 문서 등이 나오고, 양측 자료를 비교, 확인하려면 수십년이 걸리죠. 그러니 이 수많은 설명은 추측에 불과합니다. 어떤 추측은 근거나 논리가 좀 낫지만 그래도 추측일 뿐입니다. 확인할 수 없으니 아무 말을 해도 되는, 그래서 수많은 말들이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확인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북·미 회담에 미치는 한국의 미미한 영향력이었죠. 협상 결렬을 예상치도 못했고 손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바로 우리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문재인 정부 공을 깎아내리자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을 이끌고, 미국을 밀며 여기까지 오는 데 작지 않은 기여를 했습니다. 결렬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재자의 역할을 주문했고 국제 제재 한도 내에서 가능한 남북 교류를 추진할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국제정세의 보조적 역할에 불과하죠. 거기에 현 정부 정책의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탄생부터 우리는 국제정세의, 특히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한계까지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요.

한반도 현실을 부정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그 굴레 안에서, 우물 안에서 쉽게 만족해서도 안될 겁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야죠. 그중 하나는 우리 안의 북한을 다시 그리는 겁니다. 우리 안의 북한이 빨갱이 괴물로 남아 있다면 한반도 평화는 불가능합니다. 북한 핵무기가 없어져도, 북·미가 평화협정을 맺어도 모자랍니다. 우리 안의 북한이 같이 살 이웃으로 바뀌고 나서야만 가능합니다. 북핵 위기 국면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과업이 우리 손에 있는 셈이죠.

북한을 있는 그대로,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것은 그 시작입니다. 금강산관광으로는 모자라죠. 남한 대중이 북한 대중매체를 보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면 어떨까요. 남북한 교류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해야겠죠. 특별 공연이 아닌 일상적 교류로 전환돼야 합니다. 남북 군대가 동해에서 합동 훈련을 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것도 좋겠죠. 북한 학생이 유학을 온다면 어떨까요. 남북 교류가 일상적으로 이뤄질 때 공포는 이해로 바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변화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선 국가보안법을 하루빨리 폐지해야겠죠. 달라지는 현실에 맞지도 않고 평화스러운 미래의 장애물이기도 합니다. 당장 북한 매체를 보고 유통하고 싶어도 보안법 7조는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죠. 보안법 때문에 이런 면에서 북한이 낫다고 말하기도 겁납니다. 그러니 국가보안법 폐지는 각종 정치공작의 근거를 없앨 뿐 아니라 북한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평가, 남북 간 다양한 교류의 물꼬를 틀 것이 분명합니다. 주한미군에 대한 논의도 해야겠죠. 주한미군은 북한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한 괴물이니까요. 분담금 요구도 거세지는 마당에 주한미군의 축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줄이면 얼마나, 철수는 언제나 등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합니다.

우리 안의 북한이 바뀌면 이를 지켜보는 북한의 실체도 변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 사회도 달라지겠죠. 그러고 나서야 남북은 진정한 평화 공존의 첫발을 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어깨동무한 그 발걸음은 누구도 막지 못할 겁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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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북·미 비핵화 협상은 이른바 한국의 중재외교로 시작되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대북 특사단을 이끌고 2018년 3월5일 방북하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한다. 북한이 2017년 11월29일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불과 약 3개월 후에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핵포기 의사를 확인한 셈이다. 3월8일 정의용 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은 바로 미국으로 출발하여 9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수락하면서 북·미 간 비핵화 정상회담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을 복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중재외교의 시작은 북한이 핵을 완성하자마자 다시 포기한다는 의사를 우리를 통하여 미국에 제의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즉 핵무력을 완성하자마자 즉시 포기한다는, 상식적으로 볼 때 매우 이상한 제의를 우리가 미국에 전달하면서 중재외교가 시작된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에 그 제의를 전달하기 전, 그리고 그 이후에도 그 제의의 진의와 내용에 대해 매우 정확한 분석 및 확인을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에 속았거나, 아니면 우리가 미국을 속였거나, 그것도 아니면 매우 무성의한 중재자의 위치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의 중재를 받아들여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2018년 6월 개최되었다. 그런데 이 정상회담의 합의문은 미국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는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은 매우 추상적인 합의문이라는 비판이다. 당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역사상 최대로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아가면서 무리하게 완성한 핵무력을 불과 3개월 후에 포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제의를 믿을 수 있는지, 그 증거를 달라는 요구가 중재국인 우리에게 빗발친다. 우리가 동맹국 미국에 중재외교를 한다면, 여기서 그 증거를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지 확보하여 알려주고,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중재 능력을 의심받고, 또 동맹국으로서의 신뢰가 의심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너무나도 미진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 진정성을 말해준다는 동어반복적 ‘해명’이나 북한이 이제는 경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는 점, 북한이 시장화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북한 비핵화 의지의 증거로 ‘해석’하여 제시하였다. 이러한 해명이나 해석들은 사실 설득력이 없는 내용들이다. 비핵화와 관련하여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명확히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 제시한 북한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 확인 방법은 북한의 핵목록 신고이다. 하지만 이것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선제타격 리스트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북한이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방법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 후 어떻게 스스로의 안보를 담보할 것인지 그 구상을 담은 비전과 계획을 확인하는 일이다.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국가라면, 재래식 전력도 약하고, 동맹도 없이 강대국에 둘러싸인 국가가 그러한 안보 비전 없이 핵을 포기할 수가 없다. 당연히 그 구상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상이 있다면, 비핵화의 전체적인 로드맵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있었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 작업을 중재외교를 자임한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직접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하였다. 지금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그 그림이 없었거나, 그걸 논의할 생각이 없었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제 화살은 우리를 향한다. 미국은 우리의 중재 능력 및 의지를 의심하고, 최악의 경우 결렬의 책임을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그러한 조짐은 이미 하노이 정상회담 이전부터 보였다. 우리의 중재외교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것보다는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를 미국에 간접적으로 압박하는 모양새였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 긴밀한 정보공유를 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 증거는 회담 결과 예측 실패뿐만이 아니라 결렬 이후 수일이 지났음에도 우리 정부가 동맹국 미국으로부터 회담의 자세한 경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브리핑을 계속한 것에 있다.

우리가 다시 중재외교를 시작하려면 신뢰 회복부터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가 깨진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다시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실패의 책임을 우리가 다 떠안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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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8일. 미국의 여성 노동자 1만5000여명이 뉴욕의 럿거스광장에 모여들었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은 10시간 노동제를 요구했다.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외쳤다. 이날의 함성을 기리는 뜻에서 3월8일이 ‘세계여성의날’로 정해졌다. 그날의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여성들의 연대는 공고하던 남성 기득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 사회의 젠더 격차는 심각하다. 지난해 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한국은 149개국 중 115위에 그쳤다. 성별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부동의 1위다.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3.2%에 불과하다. 출산·육아로 인한 불이익, 승진에서의 ‘유리천장’은 여전하고 여성 노동자가 많은 돌봄·가사 노동은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은 성차별이 야기한 폭력과 억압, 착취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거리로 나선다. 이들의 분노와 용기는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항소심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판결을 통해 권력형 성폭력에 경종을 울렸다. 서울시는 ‘성평등 임금공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입법 측면에서의 변화는 더디다. 미투 운동 이후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대다수가 처리되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이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17%로 OECD 최하위 수준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대를 통해 법·제도적 개혁을 앞당겨야 한다.

최근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두고 ‘젠더 갈등’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정치(精緻)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며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전 세대 남성들이 누리던 지배적 남성성을 향유하기 어려워진 데서 온 박탈감을 원인으로 지적한다.

배우 에마 왓슨은 2014년 유엔에서 ‘HeForShe’ 캠페인을 시작하며 연설했다. “성평등은 바로 당신(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성공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에 취약해지고 불안정해지는 것을 봤다. 남성이 지배할 필요가 없다면 여성은 지배당하지 않아도 된다. 남성과 여성 둘 다 마음놓고 감성적이거나 마음놓고 강해질 수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며, 평등과 연대를 여성의 언어로 말하는 신념이다. 111주년 세계여성의날이 여성과 남성 모두 한 걸음씩 더 자유로워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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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카풀 상생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평일 오전 7~9시와 오후 6~8시 등 출퇴근 시간 카풀(승차공유)서비스를 허용하고, ‘택시 운전기사 사납금제 폐지 및 월급제 시행’ ‘규제 혁신형 플랫폼 택시 상반기 중 출시’ 등 6개 항을 담은 합의문을 채택했다. 택시업계는 ‘생업의 공유’를 허용했고, 카풀 업계는 플랫폼 기술 제공과 ‘제한 운영’으로 한발 물러섬으로써 대화를 시작한 지 44일 만에 극적인 타결에 성공했다. 이번 대타협은 무엇보다 첨예한 이해충돌에 따른 ‘갈등’도 대화와 양보로 해결할 수 있다는 선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카풀서비스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으로 1994년에 이미 허용한 제도다. 25년이 지나서야 문제가 된 것은 카카오와 같은 ‘공룡플랫폼’ 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택시업계 생존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카풀 플랫폼 업체가 자가용 운전자 200만명을 모집, 그중 80%가 하루 2차례만 운행해도 택시 시장의 59%는 카풀서비스가 차지한다고 한다. 개인택시 운전기사의 ‘퇴직금’이라 할 수 있는 ‘택시권리금’의 폭락도 불가피하다. 이러니 3명의 택시 운전기사가 분신까지 하면서 카풀서비스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AI)·빅데이터·자율주행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한 카풀서비스는 미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들도 앞다퉈 도입·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차량공유 서비스회사 ‘우버’의 시장가치는 135조원에 달할 정도다. ‘시민 편익의 증대’라는 공유경제의 핵심 가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이다. 시민의 절반 이상이 카카오 카풀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에 택시업계가 이번에 통 큰 양보를 한 것이다.

택시·카풀 업계의 상생은 이제 출발선을 막 지났다. 큰 고비를 넘긴 만큼 택시산업을 옥죄고 있는 요금 및 차량유종제한 등 규제 완화와 근로시간에 부합하는 월급제 등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한다. 당정과 업계는 실무논의기구를 즉각 구성, 택시업계 정상화에 협조해야 한다. 택시업계도 불러도 오지 않는, 잡아도 가지 않는 ‘승차거부’ 등을 없애 국민들의 교통편익 증대에 앞장서야 한다. 이번 대타협을 계기로 ‘증세’ ‘복지 확대’ ‘사회안전망 강화’ ‘학습권 보장’ 등을 놓고 대립·충돌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다른 갈등도 성숙한 치유의 길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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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최근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트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동창리 발사장에서 로켓추진체를 발사대 위로 올리는 레일식 이동 구조물이 조립되고 있으며 닫혀 있던 연결타워 덮개도 열려 발사대가 노출됐다고 한다. 국가정보원도 이와 관련, “철거 시설 가운데 일부를 복구하고 있다”며 “지붕과 문짝을 달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미 양국은 일단 판단을 유보한 채 북한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사실이라면 “매우 실망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좀 더 확인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실었다. 국방부는 7일 동창리와 최근 물자 운송용 차량의 활동이 포착된 산음동 미사일 연구단지 등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동창리의 위성사진 촬영시점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틀 뒤여서 북·미 합의 무산 이후 대미 압박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기엔 섣부른 감이 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6일 2차 북·미 정상회담 기록영화를 방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눈인사를 하며 악수하는 작별 장면을 공개한 것을 보면 북한의 대화의지도 여전해 보인다.

다만 하노이 합의 무산으로 북·미 협상이 난관에 봉착한 시점에서 이런 움직임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며 구구한 억측을 유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결코 득이 아니다. 2017년 11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동창리 시설에서 모종의 움직임이 관측된 것만으로도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북한으로서는 오랜 시간 준비해온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의지에 의구심이 커졌을 것이다. 이는 회담 후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다”고 한 데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유지하며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예전의 ‘도발모드’로 되돌아가게 될 경우 지난 1년여간 북한이 해온 긍정적인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북한이 오해를 살 행동을 계속한다면 북·미 중재에 나서려는 문재인 정부의 입지가 약화된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남북 간 긴밀한 협의로 상황타개의 지혜를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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