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그 ‘남자’는 평생 어머니와 여형제, 아내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았을 것이다. “물!” 말 한마디면 족했고, 불쾌한 눈빛 한번이면 그만이었다. 눈을 뜨면 그날 입을 양복과 와이셔츠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출장이라도 갈라치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필요한 용품과 옷가지들이 용도별, 날짜별로 정돈된 가방을 건네받았을 것이다. 바쁜 일정에 몸이라도 상할까 좋다는 음식과 보조식품을 귀찮을 정도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먹다 만 물컵, 벗어던진 속옷, 여행지에서 온 빨랫감, 남긴 음식은 머릿속에 없을 정도로 집 안은 늘 반짝거려야 했을 것이다.

남자란 그저 바깥일만 잘하면 된다고 배웠기에, 그 역할에 충실했던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죽어라 돈을 벌려고 했고, 세속적 성공을 피터지게 좇았다. 한 몸 불살라 가족을 부양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인의 욕구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추구해 본 적도 없다. ‘남자의 욕망’이라 불리는 것들을 열심히 따라 했을 뿐이다. 다른 여자가 집 밖에서도 자신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음껏 만지고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여자들이 있다고 생각했고, 어리고 예쁜 여자가 술을 따라야 맛이라고 보고 듣고 따라 했을 뿐이다. 돈으로든, 권력으로든, 성으로든, 무력으로든 여자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이 남자다운 것이라 배웠을 뿐이다.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보고 집안을 건사하는 존재, 세상의 주인공인 나를 보조해 빛을 내는 존재, 남자의 성공에 굴비 엮이듯 줄줄이 따라오는 존재, 윽박지르면 조용히 눈을 내리까는 존재, 흥을 돋우는 존재, 자식을 낳아주거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 여성은 그렇게 타고났다고 알았다.

3·8 세계여성의날 축사로 여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했다는 발언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요즘 서러운 게 남자입니다. 오십 넘은 남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어 보세요. 첫째 내 마누라, 둘째 아내, 셋째 와이프, 넷째 집사람, 다섯째 애들 엄마”(여성신문, 2019년 3월8일자)라는 말은 아마도 그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배우 브리 라슨이 출연한 영화 '캡틴 마블'의 한 장면. 마블스튜디오 제공

딱한 건 그 남자의 아들들이다. 아버지의 돈과 사회적 지위, 감히 흉내 낼 수도 없을 정도의 권위에 짓눌려 숨이 막히고 주눅 들고 때론 반항해 왔지만, 자라면서 보고 들은 아버지의 행동은 어느새 온몸에 각인돼 있을 것이다. 몸에 맞지도 않은 누더기 옷을 물려받은 아들은 어설프게 아버지 흉내를 내보려 하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처럼 열심히 일해도 그만큼의 성취가 사회적 대가로 따라오는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는 미미하되 도래할지도 모를 미래를 담보로 한 남자에게 온 생을 걸었던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동적이고 나약하고 남성들에게 헌신적이었던 여자들은 이제 똑똑하고 진취적이며 자기 욕구에 충실하다. 아버지들의 쾌락추구 방식은 성폭력, 성매매, 성착취로 명명되고 범죄행위가 되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고 온 가족의 헌신적 지원을 통해 남자 하나 성공시키던 방식은 이제 적폐가 되었다. 남녀 간 역할이 다르고 여자가 마땅히 감수해야 된다고 믿었던 일들은 성별직종분리, 채용성차별, 경력단절, 유리천장, 독박육아, 돌봄노동, 성별임금격차, 승진차별로 비판받는다.

그래서 억울하다. 혼란스럽다.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버지를 상대로 대적할 자신도, 구조적 모순을 바꿀 용기도 없는 이들은 그저 각종 온라인에서 투덜거리거나 징징대거나 방향 모를 분노를 표출하거나 특정인들을 지목해 악의적 댓글을 달거나 ‘역차별’이라는 논리에도 맞지 않는 말을 쏟아낼 뿐이다. 반면 동시대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들여다보고 해석하고 사회를 바꾸기 위해 연대하고 행동하고 있다. 역량에 걸맞은 사회적 참여와 분배, 인정을 당당히 요구한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고 위계 짓는 구조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바꾸려 한다. 공적인 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설파하고 집합적 행동을 주도한다. 3·8 세계여성의날을 기념해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35회 여성대회가 그렇게 다채롭고 활기찰 수 있었던 배경이다.

차분히 생각해 보자. 세상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여성들의 성장과 그에 걸맞은 권리 향상은 이미 수세기 전부터 진행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이다. 신자유주의의 첨병, 할리우드가 왜 <캡틴 마블> 같은 영화를 만들겠는가. 언제까지 먼지 폴폴 날리는 봉건가부장의 낡은 옷을 걸치고 온라인 골방에서 ‘페미니즘 정신병자’를 외치고 있을 것인가. 죽을 때까지 부모가 당신을 돌봐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혼자 살 것인가, 동세대 여성들과 동무처럼 행복하게 살 것인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을 위해 선택할 때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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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비방전을 벌인 것은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국노총 창립기념사에서 청년·여성·비정규직 등 사회계층 대표들이 지난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보이콧한 책임이 민주노총에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즉각 성명을 통해 강하게 맞받아쳤다. 겁박, 회유, 왜곡, 비방 등 거친 언사들이 오고갔다. 경사노위에 대한 시각 차가 공방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연대를 해도 시원치 않을 양대 노총이 비방성 공격을 주고받은 것은 볼썽사납다.

민주노총이 사회계층 대표들을 겁박·회유해 경사노위가 불발됐다는 한국노총의 주장은 근거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계층 대표 3인은 9일 공동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양대 노총이 하라는 대로 하는 대리인이 아니다”라며 “어떤 부당한 압박도 받은 바 없음을 분명하게 밝힌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이들은 “우리의 불참 결정은 경사노위의 운영 개선과 탄력근로제 합의안과 같은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었지 경사노위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며 경사노위 무용론과 해체론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회 계층별 대표들의 입장문에 경사노위가 가야 할 길이 담겨 있다. 지난해 노사정위원회를 경사노위로 개편한 것은 사회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촛불정신과도 통한다. 미조직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탄력근로제 논의과정에 계층별 대표도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탄력근로제 논의에서 계층별 대표들의 참여가 배제된 데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자체를 거부함으로써 미조직 노동자 보호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가 미조직 노동계층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 이유다.

지난주 사회계층 대표들이 경사노위 본회의를 보이콧함으로써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민주노총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현재 경사노위 논의 구조에서 여성·청년·비정규직의 목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은 민주노총의 참여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불참 방침을 접고 대화기구에 참여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참여는 탄력근로제 논의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경사노위 논의구조도 고쳐나갈 수 있다. 오늘(11일)은 경사노위 3차 본회의가 열리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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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지난 8일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을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자 보수세력들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미국이 남북경협을 위한 제재 완화에 부정적임에도 정부가 아랑곳없이 남북경협론자를 지명해 ‘마이웨이’를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김연철 내정자를 “ ‘남북경협’ ‘북한 퍼주기’에 매몰된 인사”라고 했다. 보수언론들은 ‘강성 햇볕론자’로 평가하면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를 “자해적 수단”이라고 비판한 것도 문제 삼았다. 

보수세력들의 비판은 근시안적이다. 통일부는 분단국의 특성을 반영해 통일 업무를 추진하는 정부조직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만큼 때로는 국제사회와도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외교부 외에 통일부를 별도로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통일부의 수장으로 남북경협을 강조하는 전문가를 내정한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인가. 

미국 국무부 당국자가 지난 7일(현지시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제재 면제를 검토하냐는 질문에 “노(No)”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들어 보수언론들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를 추진하는 정부·여당이 ‘분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미국이 안된다고 하니 한국은 입을 다문 채 가만 있으라는 말로 들린다.   

금강산관광은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중단된 사업으로 북한 핵개발과 무관하다. 관광은 유엔의 대북 제재 대상도 아니고, 대부분의 국가가 자국민의 북한 방문을 허용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한국의 독자 제재에 유엔 제재가 추가로 겹치며 복잡하게 꼬여있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사안은 아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기업활동과 재산권 등 헌법적 권리가 3년 넘게 침해당하고 있다.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과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물론 국익을 위해서도 남북경협이 절실하다는 점을 보수세력들은 외면하고만 있을 것인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단계적 비핵화’론이 힘을 잃은 듯 보인다. 하지만 70년간 불신이 쌓인 북·미가 비핵화를 단번에 타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단계적 비핵화는 재추진돼야 하고, 남북경협 카드도 여전히 유효하다. 새 통일부 장관이 추진할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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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미국의 캔자스에서 있었던 심리학 리서치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에서의 행동심리 연구를 목적으로 진행된 이 조사는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이게도 철저한 필드 리서치로 이루어졌다. 나중에 <한 소년의 하루>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는데, 제목처럼 한 평범한 소년의 하루를 고스란히 쫓아가는 내용이었다. 13시간에 걸쳐 8명의 전문 연구자들이 일곱 살짜리 아이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면서 아이의 행동을 분 단위로 기록했다. 예를 들면 오전 7시1분의 기록은 이렇다. 아이는 일어나서 양말을 신었다. 그리고 8시24분의 기록. 아이가 허공을 향해 돌을 던졌다. 아무런 분석도 평가도 없는 이와 같은 기록이 장장 13시간, 책으로는 435페이지가 이어졌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책이 있다면 바로 이런 책이 아닐까 싶은데, 물론 이 연구자의 목적이 독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을 리는 없다. 그는 이 세밀한 행동 자료가 향후 다양한 분석의 원재료로 쓰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인데, 불행히도 연구자들마저 그 지루함과 무미건조함에 고개를 내둘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책은 연구자들조차 읽지 않는 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짧게 읽었던 이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문득 떠오르는 것은,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바로 오늘 우리나라 일곱 살짜리 아이의 하루를 쫓아가는 연구가 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양말을 신는 것은 같을 것이고 아침을 먹는 것도 같을 것인데, 그다음부터의 상황은 위의 연구처럼 지루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것이 자명하다. 아이는 갑자기 유치원에 갈 수 없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긴급 돌보미센터에 가야 하고, 가서는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 낯선 곳에 자신을 떨구고 가는 엄마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대면해야 하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흥분은 잠시뿐, 마침내 불안하고, 일곱 살짜리 아이가 알아서는 안될 고독과 공허를 알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아이의 일상을 다룬 자료가 나온다면 아마도 연구자들은 이것을 심리학 자료로 쓰는 대신 사회정치사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를 잠깐 하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려운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다를 바가 없어서 아이를 봐줄 곳을 찾지 못해 애를 먹던 기억이 아직도 사무친다. 유아원이나 어린이집 같은 건 드물었고 유치원은 다섯 살이 된 아이들만 받아줬다. 게다가 일찍 끝났다. 그래서 아이는 윗집에도 맡겼고, 조금 큰 후에는 발레학원에도 맡겼다. 발레를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그 나이의 어린아이를 받아준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학원의 소파에서 잠만 자다 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한 살 어려서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는 밥을 잘 안 먹었다. 그 유치원의 규칙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는 것이어서 혼자 남은 아이는 10~20분이 아니라 한 시간 두 시간씩 혼자 유치원에 남아있어야 했다. 텅 빈 운동장을 혼자 걸어 나오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어찌나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경제적으로도 늘 어려웠다. 아이를 잘 봐주는 곳을 찾으려면 돈이 드는데, 그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하려면 아이를 어디에든 맡겨야 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돈을 버나, 아이를 어디다 맡기려고 돈을 버나. 경제의 악순환뿐만 아니라 슬픔의 악순환이기도 했다.

호소다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아들이 집을 떠날 때, 엄마가 눈물을 쏟으며 말하는 장면이다. “나는 너한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은 물론 다 안다. <늑대아이> 속 엄마는 해준 게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해줄 수 있는 것 이상을 했던 사람이다. 오죽하면 늑대아이를 키운 엄마가 아닌가. 상황은 달라도 모든 엄마 마음은 같다. 뭐든지 다 주고 나서도 모자라게 준 것 같은, 더 줄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은, 더 줄 수 있는 게 없어도 더 주고 싶은. 그래서 그 장면에만 이르면 그냥 눈물이 쏟아진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엄마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이 오직 생물학적 부분에 관한 이야기라면 맞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냥 엄마가 아니라 내 아이를 키우고 그러면서 동시에 세상을 키우는 엄마에게는 이렇게 말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엄마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당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그것은 시스템이 해야 하는 일이고, 지자체에서 해야 하는 일이고, 나라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도 아주 잘해야 하는 일이고, 더군다나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애국같은 말 집어치우고, 안전하게 크고, 유치원에도 걱정없이 다니고, 일하는 엄마 걱정도 그만 시키고, 장려금·보상금·긴급대책 그런 거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안심할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겠나. 그러면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엄마가 아닌가.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없이 넘치도록 할 터이니.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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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파면 선고를 받은 지 2년을 맞았다. 지난 주말과 휴일 보수단체들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이른바 태극기집회를 열고 ‘박근혜 석방’을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대리인을 맡았던 변호사는 “억울하게 희생된 박 전 대통령을 구출하고 문재인 정권의 퇴출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년 동안 주말마다 지겹게 봐왔으니 딱히 새로울 건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엔 집회 규모가 좀 더 늘어났다는 정도다. 얼마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덩달아 기대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헌재는 2년 전 “(박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행위”라며 재판관 8명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이어 진행된 법원의 형사재판에서도 뇌물 등 거의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중형이 선고됐다.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한 당연한 단죄일 뿐 어디에도 절차상, 내용상 문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아스팔트’ 극우 세력이 탄핵 2년이 넘도록 주말마다 서울 중심가를 휩쓸고 난장을 펼치는 모습은 그냥 한풀이로 보고 넘어가기엔 더 참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3월 8일 (출처:경향신문DB)

그보다 심각한 건 그런 세력을 은근히 비호하고 부추기면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보수야당의 행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속돼 계신다. 이 문제와 관련해 국민의 의견을 감안한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정치적으로 때가 되면 사면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국정원 특활비·공천개입 등 3개 재판이 걸려 있다. 이 중 공천개입은 징역 2년이 확정된 상태이고, 나머지 둘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실적으로 보석도, 사면도 불가능하다.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는 검사·판사 출신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주장을 계속하는 건 박 전 대통령 지지층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무책임한 행태요, 탄핵을 이끈 다수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제껏 반성은커녕 범행을 부인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며 ‘옥중 정치’까지 시도하는 뻔뻔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밖에서는 일부 정치인과 단체들이 이에 호응하며 사법질서를 부정하고 있다. 국정농단에 이어 또 새로운 국기문란 행위를 저지르는 꼴이다.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대법원의 신속한 단죄만이 이들의 입을 틀어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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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2월 런던 스모그 사건이 떠오른다. 단 7일 동안 석탄 연소에 따른 스모그 현상으로 1만2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환경 재앙.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었고 수도권과 세종, 충청도에는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7일 연속 발령되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가능한 방안 총동원’을 주문하였다. 7일의 먼지 지옥. 국제암연구소는 미세먼지를 발암물질 1군으로 분류한다. 그 위해성이 명백하다. 1952년 런던의 재앙이 2019년 한반도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비상한 재앙’에 ‘비상한 조치’를 취했는가. 작년 한국 정부와 미국 항공우주국이 공동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초미세먼지(PM2.5)의 52%가 국내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또한 ‘2차 미세먼지, 즉 오염원으로부터 배출된 이후 화학반응을 통해 크게 증가하는 미세먼지는 지역 내 오염원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단일 배출원으로 수도권 미세먼지의 주범은 석탄화력발전소이다.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과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별 실효성이 없었던 것은 국내 ‘지역 내 오염원’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곪은 환부를 도려내야 할 큰 수술인데 감기약만 처방하는 꼴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6일 (출처:경향신문DB)

미세먼지 재앙은 석탄화력과 경유차, 나아가 화석연료 퇴출에서 출구를 찾아야 한다. 기후변화의 원인과 똑같이, 미세먼지는 화석연료의 불편한 찌꺼기 때문에 발생한다. 화석연료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을 선택해야 한다. 인공 강우를 뿌리고, 대형 공기청정기를 달고, 거리를 청소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없다. 미세먼지를 사회재난으로 선포하고 6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며 강제 차량 2부제, 내연기관 퇴출만이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비상조치인 것이다. ‘탈석탄화력, 에너지 전환’의 정책 기조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국가 차원의 ‘탈석탄위원회’ 구성은 시급한 과제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을 국정과제로 걸었다. 30년 이상 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10기 임기 내 폐쇄,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건설 중이거나 계획 단계의 신규 석탄화력발전소가 무려 20곳이다. 정부는 석탄발전량 비중을 2017년 기준 45.5%에서 2030년 36.1%로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오염물질 배출량은 꾸준히 늘 것이다. 향후 10년, 아니 그 이상이 지나도 우리는 미세먼지 공포 속에 허덕거려야 한다. 독일은 2030년 재생 발전 65%를 목표로 하고, 유럽연합은 2050년 전력의 8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생산·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는 2022년까지 석탄발전을 모두 폐쇄한다. 영국은 2040년부터 가솔린과 디젤 차량의 판매를 금지한다. 폭스바겐은 204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중단한다. 한국은 어떤가. 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에 따르면, 204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5~40%로 제시되었다. 석탄화력은 늘고 재생에너지는 더딘 상황, 한참 잘못되었다.

탈석탄화력, 태양과 바람의 길을 갈 것인지 미세먼지 지옥에서 살 것인지, 우리의 삶과 지구의 운명이 걸린 절박한 갈림길이다. 국민 생존권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야 정치인, 환경 관료가 책임지지 않는다. 미세먼지는 민감·취약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와 시민, 지역과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사회 대변혁을 강하게 요구할 때다.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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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됐다. 환수율이 90%에 이르는 1만원권과 1000원권에 비해 5만원권의 환수율은 매년 30% 정도의 하향세를 기록했다. 비자금과 뇌물, 불법 정치자금 등 지하경제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과거 뇌물이나 불법 정치자금 이동 시 사과상자가 단골로 등장하였으나, 5만원권 발행 이후에는 음료수 상자가 대표적인 이동수단이 되었다. 신사임당은 비자금과 불법 정치자금 등 사건이 터질 때마다 주인공으로 전락해 버려 심기가 불편할 것 같다.

오는 13일 실시되는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의 금품 살포가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최근에는 5만원권을 돌돌 말아 조합원과 악수하면서 건네는 등 금품 제공도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조합장선거는 조합원만의 선거가 아니다. 선거가 투명하지 못하면 조합이 튼튼하지 못하게 되고 조합이 부실하면 그 여파는 국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선거가 조합의 경쟁력이며 나아가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

조합원 유권자는 조합만의 유권자가 아니다. 2020년 치러질 국회의원선거의 유권자이며 2022년 대통령선거의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오는 13일 조합장선거에서 조합원 유권자는 낚싯밥에 걸린 물고기와 꿀 먹은 벙어리가 아닌 조합의 주인으로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깨어있는 유권자이기를 소망한다.

작은 조합장선거에 큰 대한민국이 있다.

<이용미 | 부산 강서구선관위 홍보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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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등에 올라탄 사람은 코끼리를 부리려고 한다. 앞으로, 뒤로, 앉아, 일어서. 그런데 불행하게도 코끼리 귀가 자기 등에 올라앉은 사람의 말을 잘 듣기 위해 그렇게 큰 것은 아니다. 노련한 조련사라면 모를까, 처음 코끼리 등에 오른 사람은 코끼리한테 휘둘리기 십상이다. 코끼리는 지능이 높고 수명도 사람 못지않게 길다. 어린아이가 탔다면 나이 많은 코끼리가 업신여길 수도 있다. 코끼리를 감정에, 사람을 이성에 빗댄 우화다.  

우리의 기대와 달리 사람(이성)은 코끼리(감정)한테 번번이 진다. 우리는 흔히 이성이 감정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성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 감정이 구석기 시대로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끼리 잔등에 올라탄 사람은 21세기 문명의 절정에서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지만 코끼리는 여전히 1만년 전 사바나 지역에서 물과 먹이를 찾아다니고 있다.

코끼리는 현실정치이고 코끼리 등에 탄 사람은 시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코끼리 등에 탄 시민이 아무리 소리쳐도 정치인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바로 앞에 벼랑이 있다고 소리쳐도 코끼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코끼리 귀에 경 읽기다. 우화는 얼마든지 변주된다. 코끼리는 우리를 옥죄는 생산력 제일주의일 수도 있고 우리의 불합리한 신념체계일 수도 있으며 우리의 완고한 삶의 방식일 수도 있다. 이런 코끼리 위에 올라탄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과학자들에게 코끼리는 기후변화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자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에너지부 장관을 역임한 스티븐 추 박사는 기후변화가 ‘핵전쟁보다 더 위협적’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추 박사 같은 전문가들에게 ‘기후변화 코끼리’는 아예 듣지 않거나 앞을 못 보는, 아니 걷지조차 못하는 장애를 앓고 있다. <기후변화의 심리학>의 저자 조지 마셜은 기후변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코끼리 잔등에 탄 사람이 과학 전문지 기사를 소리 내 읽어주는 동안 코끼리는 바나나를 찾아 헤매고 있다.

봄소식과 함께 미세먼지 경보가 연일 스마트폰을 시뻘겋게 물들인다. 긴 겨울 끝에 마주하는 꽃소식은 반갑기 그지없지만 외출할 때마다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스크를 챙기는 심사는 안타까움을 넘어선다. 분노와 좌절, 불안과 우울을 넘어 무기력에 시달리게 한다. 급기야 며칠 전 호주의 17세 소년이 물마시기를 거부하다 병원 문을 두드렸다는 외신 보도를 접했다. 그 소년은 수백만명이 가뭄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물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담당의사는 소년의 증상을 ‘기후변화 망상’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지난 2월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기후 및 건강 회의’는 기후변화가 개인의 정신건강에 광범위한 영향을 준다고 경고했다.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의 보고에 의하면 지구 온도 상승이나 대기 오염이 사람들의 공격성을 높여 갈등을 부추길 뿐만 아니라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한다. 미세먼지가 신경 염증을 일으켜 알츠하이머, 인지장애 등 신경 및 정신질환 발병률도 높인다는 것이다. 그간 산업이나 경제 측면에서만 논의되던 기후변화가 이제 일상적 삶을 뚫고 우리 내면 깊숙이 진입한 것이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우리 몸 바깥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펴낸 조지 마셜이 이 화두를 붙잡고 비관론은 물론 낙관론까지 파헤쳤다. 기후변화 전문가이자 열정적인 현장 활동가인 마셜은 왜 홍수, 가뭄, 폭풍 등 자연재해 피해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가, 사람들이 인류 종말을 다룬 영화는 즐겨 보면서 왜 자신의 미래는 구체적으로 상상하지 않는가, 왜 과학자들이 ‘적’으로 간주되는가, 아이가 생기면 기후변화에 관심이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마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과학 대 이권, 진실 대 허구의 미디어 싸움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능력,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딱히 알고 싶지 않은 것은 무시해버리는 인간의 비범한 재능(확증 편향)에 대한 궁극적 도전이다.

마셜은 기후과학자들이 불확실성을 강조하면서 추상적 개념을 사용하지 말고 감정적 뇌(코끼리)에 호소하는 이미지, 비유, 이야기를 활용해야 기후변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미래의 어느 날 ‘세계 기후대전 때 엄마 아빠는 무슨 일을 했나요?’라는 자녀들의 물음에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우리는 지구를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라 자녀들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전 호주 환경부 장관 모스 카스의 메시지를 유념하라는 것이다.

이미 자녀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웨덴의 열여섯 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펼치고 있는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운동’이 그중 하나다. 툰베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가한 190개 나라 대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이 아이들의 눈앞에 있는 미래를 빼앗고 있다.” 툰베리는 한 사람이 변화, 즉 ‘완전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필요로 하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툰베리의 등교 거부 운동은 전 세계 270개 지역으로 번졌으며 오는 3월15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청소년들이 등교 거부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이문재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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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안을 의결하려 했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2차 본위원회가 무산됐다. 청년·여성·비정규직 노동자대표 3인이 6일 밤 “거수기 구실만 할 순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는 노동자대표 3인의 불참을 비난하며 본위원회 개최를 재추진하고 있다. 본위원회 개최 강행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2월20일 탄력근로제를 최장 6개월로 확대한다는 경사노위의 ‘노사정 합의안’ 발표는 처음부터 중대한 절차적 위법성을 안고 있었다. 정부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노사정위원회 대신 출범한 경사노위는 청년·여성·비정규직 노동자대표는 물론 중소기업·소상공인 대표 등을 참여시켜 취약계층의 대표성을 보완한 것이라고 입이 마르게 홍보했다. 따라서 경사노위 합의안으로 발표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 대표들이 포함된 본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경총, 대한상의, 한국노총만이 참여한 노동시간개선위원회의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결과를 본위원회 절차도 없이 경사노위 합의안으로 발표했다. 정부와 재계, 한국노총의 합의를 사회적 합의로 둔갑시켜 관철해왔던 과거 노사정위원회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합의안 내용을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첫째,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근로일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하되,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이에 따른다고 했다. 근로자대표와의 합의로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 조항은 노동자 90%가량이 무노조인 현실을 감안할 때 절대다수의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무의미한 조항이다.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규정은 무력화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둘째,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6개월(26주) 평균하여 노동시간이 1주 52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되므로 13주는 주 64시간, 13주는 주 40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된다. 노동부의 과로사 인정기준인 ‘1주 평균 60시간 초과하는 경우(발병 전 12주 기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과로사 방지를 불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셋째,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의 경우 근로일별 근로시간을 정하는 대신 주별로 근로시간을 정하도록 했다. 그마저 사용자가 예측하지 못한 업무량 급증 등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한 때에는 근로자대표와 ‘합의’가 아닌 ‘협의’를 거쳐 주별 근로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근무일 바로 직전에 일별 노동시간을 통보하면 근로시간은 사용자가 정한 대로 춤을 추게 되고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불규칙노동은 일상화된다. 넷째, 탄력근로제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여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게 하고 미신고 시 과태료를 부과하되,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했다. 하지만 임금보전방안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방법과 기준이 없다. 근로자대표와 매월 1원을 보전한다는 합의안을 만들어 신고해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있으나 마나 한 규정이다. 6개월간 예전과 같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최대 3개월분 연장수당에 해당하는 임금감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누구를 위한 합의안인지 정체가 분명해졌다. 본위원회 개최 강행을 멈추고 탄력근로제 합의안, 다시 논의하라.

<권영국 |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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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날, 나와 아내는 젖먹이 아기를 옆에 뉘어 놓고 소식을 들었다. 일본에 대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바닷가 도시를 덮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사라졌다고 했다. 그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졌다고 했다. 소식들은 비현실적이었다. 며칠이 지나서, 후쿠시마의 한 농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가 없었다고 했다.

지난달 갑작스럽게 단체 대화방에 초대되어 들어갔다. 마을에서 얼굴 한번 봤다 싶은 사람, 건너서 이름 한번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이 단체 대화방에 들어와 있었다. 십리 벚꽃길이 흐드러지는 하동 화개 골짜기에 댐이 들어선다고, 사람들이 이 일을 어쩌냐며 모였다. 몇 해 전부터 구례 지리산 계곡에 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서 계속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 화개로 옮겨온 것인가 했는데, 그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양수발전소라고 했다.

양수발전소는 산 아래와 꼭대기 양쪽에 댐을 짓는다. 밤에 전기가 남으면 펌프를 돌려 물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밤에 전기가 남아야 제 구실을 한다. 밤에 그 많은 물을 산꼭대기로 끌어올릴 만큼 전기가 남는 것은 핵발전소 때문이다. 핵발전소는 일단 한번 돌리기 시작하면, 쉽게 끄기 어렵다. 켜 있는 동안은 출력을 조절하는 것도 어렵다. 발전기는 돌아가는데 쓰지를 않아서 전기가 많이 남는 것도 좋지 않다. 그래서 밤에 전기가 남는다고 아우성을 한다. 양수발전소가 핵발전소를 떠받치는 한쪽 기둥 같은 일을 하는 셈이다. 둘의 관계가 이런 식이어서 전기를 만드는 비용인 핵발전 단가를 계산할 때, 아예 양수발전 단가까지 포함해서 계산하는 학자도 있다. 한동안 난방용으로 심야전기를 값싸게 공급했던 것도 비슷한 까닭이다. 원전이 특히 많은 나라인 프랑스의 전력공사는 심야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냉방까지도 장려한다.

화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동에 사는 많은 이들이 모여서 군청과 군의회에 일의 앞뒤를 따져 묻고, 주민들이 이것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핵발전과 양수발전의 관계 때문은 아니었다. 언제나 첫손에 꼽히는 뾰족한 녹차 잎, 이제 아흔 살 가까운 나무들이 늘어서 만발하는 벚꽃길, 그사이 지리산 골짝에서 내리는 계곡. 이런 것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터가 쑥대밭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모여 사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뜻을 모은 덕에 하동군이 양수발전소 사업을 ‘포기’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화개는 12년 동안 계속되었을 공사판에서 벗어났고, 집터 위에 커다란 물웅덩이를 놓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칼끝을 걷듯 벼렸던 마음을 쓰다듬으면서, 봄나물을 뜯으러 가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느라 바삐 농사 연장을 집어들었다.

핵발전소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양수발전소도 하동에서만 짓지 않기로 한 것일 뿐, 여전히 경기 가평, 양평, 포천, 강원 홍천, 충북 영동, 경북 봉화, 전남 곡성이 후보지에 올라 있다. 이 가운데 3곳을 정해서 큰 댐을 지어 양수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핵발전소는 후쿠시마 같은 재앙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삶터를 제멋대로 짓밟고 있다. 전국을 돌며 후보지를 정하고, 적당히 사람들을 편가르기 하고, 온갖 소문을 퍼뜨려서 사람들 삶을 제 입맛대로 쥐락펴락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도 핵발전소를 돌리느라 이런 일을 멈추지 않겠지.

2011년, 유서 한 장 남길 수 없었던 농부의 소식을 듣고, 핵발전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마음의 빚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을 조금은 덜 수 있도록, 작은 것이지만 독일 쇠나우에서 펴낸 자료 <핵발전을 반대하는 합당한 이유 100가지>를 번역해서 나누게 되었다. 젖먹이였던 아이는 이제 초등 2학년이다. 이 아이가 살아가는 동안, 부디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소식을 더 이상 듣지 않기를, 언젠가 원전이 없는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전광진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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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을 당했을 때 전화위복이 될 거라는 위로의 말을 듣는다. 액땜으로 생각하라며 토닥여주는 사람도 있다. 살아오면서 꽤 흔하게 받았던 위안이다. 벌어진 일을 수습해야 하는 나는 실제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못하고 그 말을 건네는 이의 따스한 마음을 기억하곤 했다. 그런데 2주 전에 일어난 작은 사건으로 나는 스스로 전화위복의 말을 실감했다. 삶이란 끝없는 절망도 희망도 아닌 굴곡을 거쳐야 하는 일이란 것을, 개인적인 체험을 오롯이 받아들여 인간적인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새겼다.

열세 명의 일행과 중국 칭다오로 워크숍을 가는 중이었다. 인천국제공항은 이른 아침부터 붐볐다. 모바일 탑승권을 챙기고 화물로 부칠 짐도 없는 나는 느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칭다오에 가면 맛있는 맥주 한 잔을 하거나 큐레이션이 특별한 개성 있는 서점을 방문해야지, 저녁 무렵에는 일행들과 기쁜 대화를 나누어야지, 기대감에 들떠 발걸음도 가벼웠다.

문제는 꼭 사야 할 면세 품목이 숙제처럼 있었다. 화장품이었다. 일반 매장보다 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나름의 기회였다. 화장품 품목이 밀집된 가게는 같은 형태이지만 브랜드별로 꽤 거리가 있었다. 출국 심사가 끝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면세점에 갔을 때 찾았던 물품은 품절이었다. 친절하게도 다른 브랜드의 면세점에는 있을 거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잠시 망설였다.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심이 앞섰고, 면세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불길한 징조가 시작되었다. 그 물품 하나만 사기에는 유혹적인 혜택이 너무 많았다. 하나보단 세 개가 더 이익이 되는 것인데 다른 두 개는 또 무엇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품목을 고르고 계산했을 때는 보딩 시간이 이미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있었다. 캐리어 가방이 한손에 묵직하기는 하지만 달리기라면! 그런데 빈 공간도 아니고 주자를 위한 트랙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조금만 비켜주세요”를 연발했지만, 준비성 없이 서두는 사람에게 탑승구는 가깝지 않았다. 무빙워크에서 한 사람의 양해를 구해 밀치고 몸을 내밀었는데, 캐리어가 따라오지를 못했다. 넘어졌다. 오른손으로 캐리어를 쥐고 있었기에 그대로 왼쪽으로 미끄러진 것이다. 그래도 바로 일어나서 또 달렸다. 탑승구에 가까워지자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스카프에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 얼굴을 본 일행 모두 놀라고 당황했다. 혹시 탑승할 수 없는 것일까, 짧은 시간 함께할 이들에게 미안함과 자책감이 밀려들었다. 항공사에서 탑승하면 구급치료를 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주었다. 기내에서 얼음 찜질과 응급처치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머릿속에는 온통 ‘화장품이 뭐라고, 나는 바보야, 얼굴은 이제 완전 상했는데 무슨 화장품이야’ 같은 즉석 노래만이 돌고 돌았다.

중국의 대형병원 응급실 체험도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데다 습윤밴드 하나 없이 그저 붕대만 처치받아 세면이 힘들었다. 물론 귀국한 날 한국의 피부과 병원을 찾아 답답함을 해소했다.

비행기 안에서 맴돌던 ‘바보의 랩’은 계속되었다. 가사가 조금 바뀌었다. ‘무빙워크에서 뛰다니 무슨 매너야, 체크인을 했는데 비행기가 날 두고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니 나는 바보야.’

그런데 며칠 뒤 축복처럼 전화위복의 심리가 작동했다. 내가 넘어질 때 누군가를 밀치지 않아 부상자가 더 없었다는 것, 얼굴뼈 같은 구조적인 부상이 아니고 피부 상처였다는 것, 만난 사람들이 밴드 붙인 얼굴에 대해 굳이 묻지 않는다는 것, 무엇보다 상처는 곧 아문다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 없는 상품의 즉흥 구매는 책과 음반만 예외로 하자고 다짐했다.

함께 갔던 사람은 덕분에 잊지 못할 칭다오 워크숍이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나에게는 더 말할 나위 없는 특별한 칭다오행이 되었다. 몸과 마음의 상처 치유에는 극복 단계가 있었다. 앞사람이 빨리만 비켜주었더라면 하는 부정적인 원망, 뛰지 않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 섞인 우울, 병원 치료에 대한 감사와 긍정의 수용, 이제 곧 아문다는 안도를 거치자 비로소 내 몸과 삶이 빚진 것들이 떠올랐다.

이 소중한 마음을 사고를 겪으면서까지 얻을 일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내내 위로하던 얼굴과 고마운 목소리들이 떠오른다. 나의 지극히 사적인 체험을 통해 관계와 삶을 명상하게 된 것이다.

다시 공항에 간다면 사람들을 관찰해보려고 한다. 혹여나 다급한 표정으로 뛰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리라. 조심하세요, 비행기보다 몸이 먼저예요.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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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짐승들은 집에서

우두커니 세상을 바라보고

공사판 인부들도 집으로 간다

그것은 지구가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가 오면

마당의 빨래를 걷고

어머니를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고

강을 건너던 날 낯선 마을의 불빛과

모르는 사람들의 수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비는 안 가본 데가 없다

 

빗소리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그대는

어디서 세상을 건너는지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낡은 집 어디에선가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나의 시도 그만 쉬어야 한다

이상국(1946~)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면 벌여 놓거나 차려 놓은 것을 안으로 거둬들이게 된다. 비를 맞으면 안되는 것들은 치우거나 덮는다. 널어놓은 빨래는 거둬 안고 집 안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잠시 일손을 놓는다. 누군가는 우산을 펼쳐 들고 식구를 마중 나가기도 한다. 비는 저 멀리서 이쪽으로 산등성이를 넘어 벌판을 지나 벌떼처럼 온다. 와서 새잎들을 두드리고, 연못을 두드리고, 장독을 두드리고, 지붕을 두드리고, 사람의 애틋한 심사(心思)를 두드린다. 봄비가 좀 넉넉하게 왔으면 좋겠다. 나도 짐승처럼 우두커니 서서 비 오는 바깥을 바라보고 싶다. 이따금 생각도 쉬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던 비 그치면 봄 하늘이 보리밭처럼 푸르게 드러날 것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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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도는 울릉 분지에서 2000m 정도 솟아 있다. 동도와 서도 그리고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은 해상에 드러나 있다. 그런데 해저 200m 전후에 울릉도보다 넓은 고원지대와 산이 있다. 독도는 바다의 산맥에서 고개를 삐죽 내민 것에 불과하다.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독도 일대는 천연자원의 보고다. 섬 근해 해저에 ‘불타는 얼음’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확인된 것만 6억t가량 매장되어 있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기 때문에 동식물 플랑크톤과 어족이 풍부하다. 섬 일대는 다양한 종의 박테리아가 많이 서식한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 발견한 신종 박테리아만 수십종에 이른다. 희귀한 해양식물과 동물이 서식하는 독도는 2012년 울릉도와 함께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하슬라주 군주 이사부가 정벌한 뒤로 한민족의 땅이었다. 그런데 1905년 일본이 다케시마로 명명한 뒤 근거 없는 영유권 주장을 해오고 있다. 독도의 무한한 가치를 일찍이 간파한 것이다. 갈수록 도발수위도 높아지고 노골화하고 있다. 독도 상륙 시도, 다케시마의날 선포뿐 아니라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만들어 가르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독도와 울릉도의 형성 원인과 과정을 정밀 분석해 ‘독도·울릉도 모자관계’ 여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로 했다. 두 섬의 관계를 확인해 영유권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서다. 학계에서는 바닷속 마그마가 순차적으로 분화하면서 어머니섬인 독도가 먼저 생기고 나중에 아들 섬인 울릉도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린 해셔와 데이비드 골드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거짓진술에 계속 노출시켰을 경우의 피실험자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가이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거짓말을 계속해서 들려주면 이를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진실성 효과’이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자국민을 교육시켜왔다. 이러니 여론조사에서 60%가 넘는 일본인들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답한다. 다음 타깃은 한국이 될 것이다. 일본은 영유권 다툼에서 잃을 게 없다. 눈 뜨고 코 베이지 않도록 정신 차려야 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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