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그곳을 철강공단지대라고 불렀다. 서울 청계천에 있던 철공소들이 한강을 넘어 합류하면서 한때 그곳은 온종일 쇳가루가 날리고, 불꽃이 튀고, 기계가 쉬지 않고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철공소 골목에는 드문드문 커피숍이 있고, 술집이 있다. 눈에 띄지 않지만, 구석구석에 예술가들의 작업실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가 있다. 오랫동안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더부살이를 했던 MWTV가 마침내 개국 이래 처음으로 독립 공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쇠 냄새가 배어있는 골목 어딘가 있을 그곳을 찾아가면서 MWTV 옛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2003년 이주노동자들의 강제추방 중단과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외치면서 장장 381일 동안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중 만났다고 했다. 1년이 넘게 텐트에서 함께 먹고 자고 하던 동지들이 의기투합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국을 차린 것이다. 비록 시민방송 RTV 사무실 한쪽을 얻어 쓰는 처지였지만,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방송을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들은 주중에는 일터에 있다가 주말마다 방송국으로 달려와 카메라 앞에 앉았다. 이주노동자 방송은 방글라데시, 네팔, 몽골, 미얀마 등 8개 국어로 방송됐다. 그들의 공용어는 한국말이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한국말로 회의하는 모습은 생경했다. 

“동대문 봉제 공장에서 오래 일했거든요. 그 공장 사장이 전라도 사투리를 썼어요. 그래서 전라도 사투리를 잘하죠.”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포카라가 고향인 그는 전라도 사투리만 잘한 게 아니라 노래도 잘했다. 그는 스탑크랙다운 밴드의 보컬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MWTV 새 사무실 집들이를 꽉 채운 사람들은 대개 젊었다. 그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았다. 돌이켜보면 MWTV를 처음 시작한 그들도 젊고, 열정으로 뜨거웠다. 가장 빛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이들. 나는 불 꺼진 철공소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봤다. 세상을 떠난 미누와 미얀마로 돌아간 뚜라, 몽골에 있을 나라 그리고 마붑, 틴툰, 소모뚜! 모두 그립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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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부산에서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던 윤창호씨가 만취 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은 사고로 윤창호법이 제정·시행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뉴스에서 연일 오르내리는 음주운전 사고는 탄식과 함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윤창호법 시행에 따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케 하면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지고, 사람을 다치게 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또한 인명피해가 없어도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 0.08% 미만의 경우 운전면허가 정지되고, 0.08% 이상이면 면허가 취소된다. 

음주운전 적발기준도 2회 이상 적발 시 징역 2년 이상 5년 이하 또는 벌금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로 개정되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이미 2018년 12월18일부터 시행 중이고 도로교통법에 해당되는 사항은 2019년 6월25일부터 시행된다.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는 11만9000여건으로 이로 인한 사망자는 2822명, 부상자는 20만명이나 된다. 여전히 매일 약 1명(2018년 음주사망사고 346건)이 음주운전으로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사람이 부상을 입는다. 

소주 3~5잔(0.06~0.09%)을 마시면 시력이 25% 감소하고 반응시간은 40~50% 지연된다고 한다. 

‘한 잔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된 실수가 누군가에게는 지우지 못할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김찬 | 장흥 읍내지구대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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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금요일 밤 버스를 탔다. 서울 변두리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밤 10시의 버스 안, 당연히 불타는 금요일 따위의 후끈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자리를 잡았는데, 앞자리에 두 명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 있는 나도 술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꽤 많이 마신 듯했다. 그 둘은 친구이다. 그리고 50대 중반이며,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묻지 않았지만 버스 탄 지 5분 만에 그들의 신상에 대해 알고 말았다. 버스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소곤거리며 이야기해도 다른 승객의 귀에 들릴 정도로 한적한 버스였는데, 그 두 남자는 술 탓이었는지 본래 그런지 확실하지 않으나 꽤나 큰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내용이 너무나 생생하게 전달되었기에 뒤통수만을 보고 있는데도 마치 같은 테이블에 앉아 소주를 함께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들과 내가 모국어로 삼고 있는 언어가 같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단 한마디도 실종되지 않고 귀에 꽂혔다. 모든 말을 알아듣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 내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그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와 그 두 남자는 한국이라는 추상 세계는 공유하고 있지만, 서로 교류하지 않는 분리된 일상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 대화의 맥락을 도대체 파악할 수 없었다. 이처럼 직업으로 인해 서로 편입되어 있는 세계가 다르면, 그 다름은 많은 경우 이해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이라는 추상 세계는 하나이지만 우리가 각자 속한 일상세계는 서로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고용상의 지위가 우리를 서로 다른 세계로 분리되게 한다. 고용하는 입장과 고용된 사람의 처지는 다르다. 사장의 마음을 알바가 알 리 없고, 알바 역시 사장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직업에 따라 때로는 젠더에 따라 그리고 인생의 단계, 즉 연배에 따라 일상은 분리된다. 서로 분리된 세계에 있는 한 우리는 자신에게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의 속사정을 알지 못한다. 각자의 세계에는 그 세계만의 사정이 있다. 각자의 사정을 가볍게 무시하고, 혹은 사정을 쉽사리 넘겨짚고 심지어 각자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추상적인 세계를 공유한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참견을 쉽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때로 전문용어보다 세상의 흐름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세상의 변화를 민첩하게 포착하는 인터넷 용어로 그들을 표현하자면 ‘오지라퍼’라 부를 수 있다.

‘오지라퍼’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오지라퍼’는 주저하지 않는다. ‘오지라퍼’는 신속하다. 그리고 재빠르다. 계층에 따라 세계가 파편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아니 모른 체하며 “하면 된다”고 설교하기 시작하면, 그 ‘오지라퍼’의 혀가 뱉어내는 단어는 총알처럼 듣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고든다. 가장 흔한 ‘오지라퍼’ 유형은 꼰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 ‘오지라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서로 다른 세대 경험을 지닌 작은 세계의 모자이크로 이뤄져 있음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한때 젊었었다. 노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모든 나이든 사람은 자신의 청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은 나이 들었던 적 없다. 나이든 사람은 젊은 시절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만, 젊은 사람은 나이 들었던 적이 없으니 그들은 나이든 상태를 기억할 수 없고 단지 막연하게 추정만 할 수 있다. 이런 비대칭으로 인해 나이에 따라 분리된 세계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오지라퍼’는 나이든 사람 중에서 유독 빈번하게 출몰하곤 한다. 나이를 먹음이 죄를 짓는 것은 아니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다”를 레퍼토리로 삼는 ‘오지라퍼’가 될 확률이 높아짐은 분명하다. 모든 나이든 사람이 ‘오지라퍼’의 변종 꼰대는 아니지만 넘겨짚기 잘하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일장연설을 잘 늘어놓는 사람은 귀보다는 입이 발달했다. 입이 발달한 사람은 내가 한때 젊었으니 모든 젊은 사람의 처지를 모를 리 없다는 그 악명 높은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스무 살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나는 지금 스무 살인 사람의 처지를 잘 모른다. 감히 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겪었던 1980년대의 스무 살의 젊음과 2019년에 스무 살을 보내는 사람의 젊음이 같을 리 없다. 나는 나의 스무 살만을 기억하고 있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나이든 나를 모르는 것처럼, 나 또한 옛날이 아니라 현재 젊음의 단계에 있는 그들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모른다. 모르는 사이라면,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덕목은 함부로 ‘아는 척’하지 말기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늘어놓는 ‘아는 척’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아는 척’을 멈추지 않으면 현재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 수 있는 기회를 결국 놓치고 만다. ‘아는 척’이 지나치면 영혼도 잠식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했던가? 시대에 맞게 그 속담을 살짝 바꾸어 본다면 인간은 나이를 먹을수록 ‘아는 척’하기보단 “나는 모른다”고 다짐해야 한다. 나는 금요일 밤에 버스에서 만났던 그 두 사람을 모른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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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학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커리큘럼을 개편했다. 자치경찰론, 소방행정론, 도시안전실무, 공기업회계, 토지정보체계론 등이 탄생했다. 나는 이번 학기부터 자치경찰론을 강의해야 한다.

그동안 경찰행정과 거리가 멀었던 일반행정 전공자가 자치경찰론 강의를 자원한 이유는 자치분권 강화와 경찰행정 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동의하고 개인적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미군정 이후에도 억압적 통치의 과오를 청산하지 못한 경찰에 과도하게 의존한 이승만 정부는 치안국가의 전형이다. 또한 치안국가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병영국가를 표방한 박정희 정부는 억압적 규율을 산업현장은 물론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켰다. 이로써 한국은 단독정부 수립과 초기 산업화를 거치면서 치안국가와 병영국가가 결합된 경성국가(hard state)로 대내외에 각인되었다.

1987년 이후 우리는 세계화와 민주화에 부응하는 역동적이고 신축적인 국가를 추구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혁신적 포용국가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이다. 하지만 변화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1919년 임시정부의 법통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는 시도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따라서 자치경찰제로 대표되는 권력기구 개편의 당위성은 보다 더 분명해진다.

그간 우리가 경험으로 체득한 권력의 본산은 청와대를 비롯해 군대, 검찰, 경찰, 국회, 법원, 정보, 감사, 징세, 예산, 조직, 인사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기능들의 폐해는 최근 성취한 반복적 정권교체를 통해 상당부분 해소된 상태이다. 그러나 경찰-검찰-법원이 연계된 폐쇄적 권력기구 개편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방에서 이루어지는 행정은 민주적 통제나 보충성의 원칙에 입각해 주민들이 단체장을 선출하는 보통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강력한 중앙집권의 전통으로 인해 특별지방행정기관으로 지칭되는 중앙정부의 일선기관들이 건재한 모습이다. 제주특별자치도나 세종특별자치시를 통해 중앙사무의 지방 이양을 시도하였지만 실험으로 제한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자치경찰제의 기대효과는 중앙집권적 경찰조직의 지역적 분산, 주민밀착형 경찰서비스 제공, 가외성을 구현한 협업체계의 지향, 독점적 경찰조직에 경쟁과 성과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권력기구 개편 자극 등이다. 하지만 자치경찰의 법제화를 위해서는 직제, 권한, 예산, 인원 등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이견을 적극 조정해야 한다. 또한 소방공무원 국가직화나 특별사법경찰 실효성 논란이 시사하듯이 신분 전환이나 역할 혼란을 우려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불안에도 응답해야 한다. 나아가 지방정치의 영향권으로 편입되는 자치경찰의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

<김정렬 | 대구대 교수 도시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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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하면 보잉사의 ‘점보’ B747을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1973년 대한항공이 태평양 노선에 투입한 이래 한국인이 가장 많이 탄 기종, 그리고 미국의 맥도널 더글러스나 유럽의 다른 항공사를 누르고 보잉의 오늘이 있게 한 기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보잉의 상승세도 1970년 유럽의 에어버스가 출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한국도 그에 일조했다. 박정희 정권이 프랑스로부터 엑조세 미사일을 구입하면서 A300을 함께 구입했는데, 이것이 비유럽권 국가에 이 기종이 처음 판매된 기록이다. 이후 에어버스는 A330, A380을 내놓으며 보잉과 항공기 시장을 양분해갔다.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 이튿날인 11일(현지시간) 비쇼프투의 사고 지역에 항공기 잔해가 널려 있다. 비쇼프투 _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두 항공사 간 경쟁은 2010년 에어버스가 A320 Neo를 내놓으면서 더욱 치열해진다. 이 기종의 기세에 위기를 느낀 보잉은 9개월 뒤 신기종 B737의 출시로 선방했다. 그리고 2015년 보잉은 737 계보를 이을 4세대 주력기종으로 B737 맥스(MAX) 8을 개발한다. 민항기로는 2017년 5월부터 제작했는데, 주문이 폭발적이었다. 2년이 채 못 되는 동안 각국 항공사에 등록된 대수가 350대 이상, 선주문은 4600여대를 받아놓고 있다. 보잉이 지난해 매출액 1000억달러(113조4500억원)를 넘겨 보잉 102년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은 이 덕분이었다. 

그 B737 맥스 8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지난 10일 에티오피아항공 소속의 이 기종 여객기가 추락했는데, 넉 달 전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의 같은 기종 여객기 추락과 사고 정황이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다. 두 여객기 모두 이륙 후 6분, 13분 동안 급상승과 급하강을 반복하다 추락했다. 최근 사고에서는 보기 드물게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최신 기종에 인도받은 지 2~3개월밖에 안된 새 항공기들이 연달아 추락했으니 승객들이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서둘러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는(airworthy) 기종”이라고 두둔하고 나섰지만 다른 기종으로 항공편을 교체해달라는 승객의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중국에 이어 우리나라도 이 기종의 운항을 잠정 중단시켰다. 항공기가 버스보다 안전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비행기 기종까지 골라 타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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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노나라에 맹지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제나라와의 전쟁에 패하여 후퇴할 때 맨 마지막으로 성문에 들어오며 “말이 하도 달리질 못해서 뒤처지고 말았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공자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은 점을 높이 쳤다. 전쟁에 져서 도주한 것에 불과한데 이렇게 칭찬한 이유가 무엇일까? 패배와 후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후미에서 추격해 오는 적과 상대함으로써 퇴각하는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가장 용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맹지반은 사람들이 그 공을 높이는 것을 원치 않아서, 자신이 의도적으로 후미에 선 것이 아니라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리 된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공을 세우고서도 스스로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을 두고 ‘노겸(勞謙)’이라고 한다. <주역> 64괘 중의 하나인 ‘겸(謙)’의 세 번째 효, 즉 아래위로 다섯 개의 음효 사이에 끼어 있는 유일한 양효에 붙은 말이다. 겸괘는 산이 땅 아래에 있는 형상이다. 자신의 크고 높은 덕을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굽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겸양은 미덕일 뿐 아니라 실리이기도 하다. 가득 찬 것은 덜어내고 모자란 것은 채워 주는 이치는 하늘과 땅만 그런 게 아니다. 차서 넘치는 이는 사람에게도 미움을 받고 귀신의 해를 입기 마련이라 했다. 마지막까지 온전하려면 한없이 낮추고 비울 일이다.

덕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삶, 참으로 훌륭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남이 알아주기 전에 자신이 먼저 생색을 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오히려 적절한 자기 과시야말로 성공의 요인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선의와 노력으로 이룬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자랑으로 이어지면 독선과 아집으로 변질될 뿐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집단이나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쉬지 않고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전문가의 조언을 경청하는 자세를 잠시도 놓지 않아야 한다. 정책 결정에 있어서 전문가의 신중한 공적 보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들려온다. 겸양과 개방을 결여한 폐쇄된 선의와 노력의 끝은 참담할 수 있다. 노겸한 군자라야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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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특위가 4월 활동시한을 앞두고 있다. 지난달 회의에선 경영계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국민연금)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인상은 동시에 추진하되, 보험료와 연금급여의 수급불균형을 줄여나간다”는 원칙을 세웠다. 더 내고 더 받으면서 지속 가능성까지 도모하니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의 이해를 고려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런데 회의록을 보면 실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대체율을 올리면서 기존의 수지불균형까지 줄이려면 보험료율 인상 폭이 무척 커진다. 현재 보험료율이 9%이지만 연금수리적으로 대체율 40%에 부합하는 수지균형 보험료율은 2배인 18% 안팎이고 여기서 대체율을 올리면 필요보험료율은 20%가 넘는다. 그런데도 정부안은 대체율을 45~50%로 높이면서 보험료율은 12~13%에 그치고 연금특위 다수의 의견도 정부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서민 가계의 어려움과 국민연금기금의 과대화를 생각하면 큰 폭의 보험료율 인상을 제안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결국 추가 대체율만큼만 보험료율을 올리니 기존 수지불균형은 사실상 방치된다. 회의에서 세운 원칙은 그럴듯하나 현재 세대의 이해에만 충실하다.

연금개혁에서 사회적 대화는 특별하다. 최저임금, 탄력근로제, 카풀, 신공항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 대부분은 현재 세대끼리 논의하면 된다. 반면 연금은 나중에 받을 금액을 우리가 결정하지만 실제 받는 건 수십년 이후이다. 연금개혁이 정작 연금을 지급할 미래 세대를 감안하는 ‘세대 간 계약’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의사결정권은 우리 세대가 갖지만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는 미래 세대를 보며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다. 

연금특위에 청년 대표들이 참여한다고? 엄밀히 따지면 연금 논의에서 미래 세대는 아직 국민연금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청소년과 아이들이다. 

지금 청년은 현행 대체율과 보험료율이 적용되는, 어쩌면 국민연금에서 처음으로 세대 간 갈등에 직면할 현재 세대일 수 있다. 사람들이 보통 기금소진연도 2057년에 관심을 두지만 연금정치에서 먼저 주목할 시기는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는 2042년, 앞으로 23년 후이다. 정부안대로 보험료율이 조금 올라도 인상 속도마저 점진적이어서 적자 시점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이때 자신이 가입할 때부터 재정이 적자로 들어서기에 신규 가입자가 국민연금에서 느끼는 불안과 위협은 실질적이다. 어찌 이렇게 제도를 놔두었느냐는 이들의 항의에 대답해야 하는 주체는 그때 중장년, 바로 지금 청년이다. 발등에 떨어진 재정안정화 과제를 두고 미래의 청년들과 홍역을 치를 것이다. 나를 포함한 중장년은? 괜찮다. 조만간 법제화될 ‘국가의 지급 보장’에 따라 연금을 받을 뿐이다.

주위 청년들이 이야기한다. 우리도 노후가 불안하니 국민연금 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취지는 공감하지만 대체율 인상은 현재 노동시장 상황에서 가입기간이 긴 중상위 계층일수록 혜택을 더 가져가고, 또한 필요보험료율 수위를 높여 향후 연금개혁 논의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노후보장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 대체율 인상보다는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을 보강해 노후를 대비하는 다층연금체계가 공평성과 지속 가능성에 부합한다. 이는 앞으로 국민연금을 이끌어갈 선배로서 미래 후배들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이기도 하다.

근래 논란이 되는 ‘청년 국민연금’도 우리 세대만의 시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경기도가 18세가 되는 청년에게 국민연금 첫 보험료를 대납해주겠단다. 아직 의무가입 대상은 아니지만 일찍 보험료를 한번이라도 내면 나중에 이후 기간을 추후 납부할 수 있기에,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늘리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그런데 이미 현행 제도에서도 자동가입되는 27세부터는 추후 납부가 가능하다. 65세까지 38년의 납부가능기간이 열려 있는데, 굳이 추후 납부 기회를 더 늘려야 할까. 나중에 현금 여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유리한 이 사업이 지금 그토록 절실한 ‘청년정책’에 속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래 청년이 또 묻는다. 국민연금의 수지불균형으로 인해 가입자 혜택이 크다면 제도를 고쳐야지 지자체까지 나서서 그 틈새를 활용하다니요? 

서구에서 공적연금은 세대 간 연대가 낳은 열매이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세대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한 결과이다. 우리는 어떤가? 서구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연금의 재정불균형이 심각함에도 미래는 괜찮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지 말자는 윤리론에 안주한다. 덕분에 머지않아 나도 그 혜택을 받겠지만 말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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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다 보면 한 번은 콩쿠르에 참여하게 된다. 큰 상을 받았다고 대단한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기회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노력한 아이들에게는 분명히 성취감일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취미로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이 어떤 형태로라도 무대에 선다는 경험을 가져보는 일이 쉽지는 않아서 그 경험만으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일단 지불하는 비용이 적지 않고, 그 비용을 지불하고 하는 경험 치고는 시간이 너무 짧다. 대개의 콩쿠르 평가 연주는 1분을 넘기지 않는다. 길면 1분30초다. 평가는 전문가의 영역이니 내가 평가 시간의 타당함을 논할 수는 없다.

그런데 평가가 그런 방식이다 보니 1분30초까지만 연습하고 참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설마 그럴까 했는데, 어느 정도 이상의 성적을 거둔 참가자들이 모여서 전곡을 연주하는 우수연주자 연주회를 구경하다가 그 말을 이해했다. 콩쿠르에 참가했던 곡을 다시 연주하는 경우조차 대부분 그때 들은 곡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1분30초 그 이후가 전혀 다른 곡이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곡 전체를 고른 수준으로 연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뒷부분을 마저 보일 수 있는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 연주회를 보면 궁금해진다. 짧게는 3분, 길게는 5분짜리의 곡에서 1분30초의 기량은 무엇을 의미할까. 끝내 보일 수 없는 나머지 시간의 노력에 대하여 아이가 묻는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소설을 처음 배울 때 많이 들었던 말 중에 하나가 ‘첫 문장의 중요성’이다. 효과적이고 적절한 첫 문장이 소설의 흡인력을 높인다는 말일 텐데 이 말은 종종 어떤 소설이 좋은지 아닌지는 첫 문장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로 바뀌어 전달되기도 한다. 조금 더 극적으로는 공모전 심사에서는 소설의 첫 문장만 보고 당락을 결정한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첫 문장과 소설의 완성도는 무관하다. 시작은 창대하나 나중은 미약한 소설도 있고, 시작은 초라한데 결말에 울림이 있는 소설도 있고, 시작도 결말도 딱히 특색은 없으나 보석 같은 몇 개의 문장을 품고 있는 소설도 있다. 물론 그 어디에도 빛나는 대목 하나 없는 소설도 슬프지만 있다. 나는 심사를 맡게 되면 주어진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편이다. 기본도 안되어 있다 싶은 작품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 읽는다. 내 앞에 놓인 소설이 단지 소설이 아니라 그 소설을 쓴 사람의 삶으로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 한 편을 기어이 끝낸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혹시 만날지도 모르는 어떤 빛나는 문장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빛나는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잘 쓰인 작품을 읽는 일은 당연히 즐겁지만 전체적으로는 엉성하고 보잘것없는 글 속에 숨겨진 주옥같은 문장을 발견하는 일은 뭉클하다. 어떤 삶이든 소중한 무언가는 있고, 그러므로 어떤 삶도 함부로 생략하거나 건너뛰어서는 안된다는 내 믿음에 대한 방증 같아 나는 비효율적인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눈이 부시게’ 한 장면. 사진제공 JTBC

중요한 순간을 되돌리려다 25세에서 70 노인이 된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나는 그런 이유로 몹시 애정하며, 실은 슬퍼하며 보고 있다. 드라마 초반부에 25세의 빛나는 청춘이 돌연 노인이 된 설정이 마치 높은 실업률과 지독한 경쟁 속에서 이미 늙어버린 요즘 청춘에 대한 은유 같아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요즘은 청춘을 건너뛰고 늙어버린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생략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몇 십년을 건너뛰어 나이를 먹은 주인공의 삶은 누가 봐도 생략되었지만,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꿈도 미래도 없이 표류하는 주변 인물들의 삶은 아무것도 생략되지 않은 온전한 삶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살아야 온전한 완성일까. 어쩌면 나도 이미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생략되며 살아온 삶은 아닐까 그런 슬픔이 드는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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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70여년의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도 했다. 연설에선 ‘좌파정권’이란 말만 5차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석에서는 삿대질과 고성이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여야 의원들끼리 몸싸움까지 벌이는 아수라장이 연출됐다.

나 원내대표는 도를 넘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위헌” “먹튀정권, 욜로정권, 막장정권”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연설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정치가 나아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원이 아니라 시민을 상대로 한 연설이다. 그러자면 그에 걸맞은 품격이 따라야 한다. 2015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은 상대 당으로부터도 보수의 지평을 넓혔다는 극찬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의 ‘네거티브 연설’은 건강한 보수를 기대해 온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오며 한국당 의원들을 향해 주먹을 쥐고 손을 들어올리며 웃고 있다(위 사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나 원내대표 연설에 항의하며 한국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아래). 연합뉴스·권호욱 선임기자

연설 중엔 ‘초당적 경제원탁회의’ ‘국론통일을 위한 7자회담’ 등 정부·여당이 경청할 만한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제안들도 거칠고 자극적인 표현에 다 묻혔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취임하며 “반대정당이 아닌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했다. 연설은 그런 다짐과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국회 윤리위 회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은 거꾸로 연설을 방해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처음 개원한 3월 임시국회는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당은 지난 2월 전당대회 때부터 마치 릴레이를 하듯이 저급한 색깔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아침 회의 때마다 ‘좌파정권’이란 말을 달고 산다. 아마 이날 연설도 이런 당내 극우화 기류에 최근 지지율 상승에 따른 자신감이 어우러져 나왔을 것이다. 험한 말을 골라 쓴다고 야당성이 부각되는 게 아니다. 한국당이 지난 대선·지방선거에서 연거푸 패배한 건 케케묵은 색깔론, 막무가내식 반대로 중도층의 외면을 받았던 게 주원인으로 꼽힌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을 보면 수권정당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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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중·고교생의 1인당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9만1000원에 달했다. 2007년 사교육비 조사를 실시한 이후 가장 높다. 연간 사교육비 총액 역시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사교육비는 19조5000억원으로 2012년 이후 최대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교육 강화정책이 무색할 정도다.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72.8%로 전년 대비 1.7%포인트 상승했다. 초등학생이 82.5%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 69.6%, 고등학생 58.5%였다. 소득 계층별로는 저소득층의 참여율은 증가한 반면 고소득층 비율은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교육열이 높은 상류·중산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사교육이 이제 학령과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가정으로 확산되고 있다. SKY캐슬은 더 이상 드라마 속에만 있지 않다.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사교육을 시키겠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는 사회 분위기도 사교육 시장 의존도를 높이는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이는 자녀가 적을수록 1인당 사교육비가 높은 데서도 확인된다.

공교육 불신은 사교육 시장을 키우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후학교’ 비용은 2015년부터 계속 줄어들고 있다. 자율학습을 위해 제작된 EBS 교재를 구입하는 비율 역시 5년째 감소 추세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방과후학교가 저렴하지만 교육의 질에서는 사교육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공교육 내실화는 사교육을 경감할 수 있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대책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사를 신뢰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방과후학교를 활성화하고 초등돌봄교실을 확충하는 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의 생존경쟁을 위해 올인하는 사회에서는 공교육 강화만으로 사교육 의존을 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교육격차는 기회 균등, 제도 공정성만으로 치유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교육 가치가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돼선 안된다. 부모의 돈과 정보력이 아닌 학생의 재능과 특기, 꿈이 대학의 선택 기준이 돼야 한다. 공교육 정상화는 더디더라도 성적지상주의와 학벌주의가 철폐되고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와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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