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빅딜, 수소경제, 삼성르노자동차 파업. 최근 경제 현안에서 제조업 이야기를 빼놓긴 어렵다. 중요한데 늘 빠져 있는 것은 내부에서 일하는, 특히 기술과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좋은 일자리라는 평판을 좌우하는 것 중 큰 건 임금이다. 노동사회학 연구들을 살펴보면 임금은 크게 두 가지의 구조적 영향을 받는다. 먼저는 직장의 크기이다. 계약직, 촉탁직 등 비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회사가 크면 임금이 더 크다. 그래서 부모들과 선배들은 대기업에 가라고 한다. 두번째는 노동조합의 유무다. 노조원이면 임금단체협상을 통해서 노조가 없는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임금 차원에서 손해를 덜 볼 수 있다. 고용 보장을 위해서도 노조가 있는 게 낫다. 시간이 누적될수록 노조가 있는 회사를 다니는 것이 편차를 만들 수 있다.

최근에는 그 전제가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회사가 도산할 수 있고 경영상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 멀쩡한 대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도 낯설지 않다. 앞으로의 기대수익이 떨어지는 사업부문은 과감히 정리하려고 한다. 정리되는 부문의 일자리가 정리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개별 사업장 노조의 힘은 줄어든다. 공적자금 투입 정도의 상황이 되면 손을 쓸 수 없다. 두 가지 구조적 변수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든다.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건 내생 변수, 즉 사람의 가치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특히 생산직 숙련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의 생산방식을 ‘기민한 생산방식’이라고 한다. 한편에선 고객들이 원하는 다양한 니즈에 최소 비용으로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생산직들의 숙련의 필요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전엔 차 한 대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동자 한 명이 몇 달이고 선배 노동자의 작업을 보고 일머리를 익혔다면, 지금은 며칠이면 누구나 작업할 수 있게 현장이 재편되어 있다. 작업대 위에 걸린 화면의 설명을 보고 단순한 조립만 하면 되게 바뀌었다. 세계 최고의 생산성은 엔지니어들의 고민과 엄청난 설비투자에서 나오게 됐다.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대졸 엔지니어가 정비와 개선을 맡는다. 생산직들의 자율성도 함께 줄었다. 독일의 메르세데스 벤츠나 폭스바겐은 여전히 생산직 노동자들의 숙련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국의 대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전면적인 설비투자로 다른 길로 향했다. 용접부터 시작해 가장 많은 부분이 생산직들의 숙련에 의지한다는 조선업 역시 생산기술 투자가 많이 전개됐다. 중소 조선소가 빅3의 생산성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숙련도 차이가 아니라 생산효율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생산의 다수를 차지하는 ‘물량팀’ 노동자들은 임금을 잘 주고 처우를 잘해주면 빅3와 중소 조선소 어디로도 이직하기에 노동자들의 숙련도 차이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회사들은 가능하면 연공서열제를 가지며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정규직 생산직을 뽑지 않으려고 한다. 50대 생산직들의 퇴직 날짜만 기다리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10명이 정년퇴직 하면 2명만 뽑고, 급한 생산라인은 사내하청에 넘긴다. 생산량에 따라 쉽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고 이제는 숙련의 부재가 두렵지 않다. 전환배치가 노사 간의 첨예한 쟁점이 되는 이유다.  새로 공장에 갈 고졸 생산직의 미래는 선배들이 받아온 ‘노동계급 중산층’이라는 시샘만큼 밝지 않다.

대졸 엔지니어의 일자리와 숙련 문제는 어떨까. 기업들은 생산직보다 엔지니어를 뽑는 것을 선호한다. 생산보다 개발과 설계 단계에서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쪽으로 제조업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시제품 생산에 필요한 생산직만 정규직으로 운영하려는 것은 제조 대기업이 꿈꾸는 미래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필립스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는 오롯이 시제품 생산만 한다. 대규모 투자가 어려운 중소기업들만 로봇이 할 일을 저임금 노동자들이 맡는다. 단가 후려치기 외에도 생산성 향상이 실제 문제가 된다. 정부가 스마트팩토리를 괜히 도입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산업 고도화가 생산직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생성되는 엔지니어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고민이 든다.

산업 고도화로 노동의 양상과 직무와 직군별 위상이 바뀌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앞으로도 한국의 제조업 공장에 불이 꺼지진 않을 것 같지만, 공장을 채우는 인력의 구성이 바뀌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생산에 있어서 자율적인 생산직들의 숙련보다 엔지니어들의 치밀한 공정설계가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1990년대까지 국가가 ‘인력 충원계획’을 세우면서까지 일자리를 보장하려 했던 고졸 생산직의 지위를 대졸 엔지니어가 대체한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생산직 일자리에 대한 고민을 놓을 수 없다. 한국 산업화 50년의 역사이며, 여전히 지역경제와 제조업을 움직이는 주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산업의 진화와 ‘축적의 길’을 이야기하려면 이제는 엔지니어들이 어떻게 더 숙련할 수 있게 할 것인지, 그들에게 어떠한 위상을 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함께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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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다는 사람을 앞에 두고 흔히 저지르는 무례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듯하다. 첫째, ‘네가 그런 일로 힘들면 나는 얼마나 힘들 것 같니’로 시작되는 불행 겨루기 대결.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나의 처지를 설명하고 나면 승자는 온데간데없고 미심쩍은 패배감만 느껴질 뿐이다. 둘째,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지나면 별일 아니더라고’로 끝나는 꼰대적 냉소주의. 그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주기 때문에 고민할수록 자괴감만 느껴질 뿐이다. 마지막으로 ‘나도 다 이해하는데 네가 조금만 참아보면 안될까’로 어르고 달래는 게 끝이라 생각하는 상대까지 만나고 나면 우리는 영영 서로의 고통을 나눌 수 없겠구나 하는 무력감마저 든다. 

특히 ‘나도 네 시절을 겪어봐서 아는데 별일이 아니게 될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외로웠다. 그 말은 선명히 드러난 문제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은폐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청년 문제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수많은 기사와 보도는 비참한 삶의 단면을 조명했다. 이때 청년 당사자의 역할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 안전사고로 숨진 청년의 빈자리에 호출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등록금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하는 일가족과 엇비슷한 부담을 가진 학자금 대출 이용자, 다리를 쭉 펴고 누우려면 책상 밑에 다리를 넣어야 하는 방에서 생활하는 입주자, 생활비가 부족해 맨밥에 굵은 소금 한 알을 얹어 먹어봤다는 익명의 게시글과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 아닌 일들이 되는 걸까.

그렇다고 알아줄 때까지 청년의 가난함을 증명해보자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낙관도 기대할 수 없었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청년의 얼굴들이 등장할 때마다 청년 담론은 힘을 잃어갔다. 빈곤한 생활을 영위하는 생존자가 인터뷰를 통해 증언을 남기는 일만 반복된다는 것은 소비사회에서 청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증명하는 빈곤 포르노란 방증에 불과했다.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한 세대의 궤도가 가난의 규칙을 찾아가는 동안 빈곤 포르노의 힘을 얻은 청년은 사회적 약자로 규정되어 사회 곳곳에 파견되기에 이른다.

청년 담론이 빈곤 포르노와 완벽한 합을 이루며 시민사회와 정당 곳곳에서 청년단체가 출범하고 행정부에도 청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사회적 합의체에도 청년 배석이 잇따라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간에서 청년이라는 정체성으로 호명당한 이들은 손쉽게 들러리가 되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위한 정족수 중 하나로서 존재할 뿐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지난 경사노위 2차 본위원회에서 “여성·청년·비정규직도 중요하지만 보조축”이라는 발언이 용납되었던 것은 개인적 일탈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했다. 청년을 논의의 장 한가운데로 호출한 장본인들은 청년이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발언대에 오르기 위해선 고통을 전시해야만 할까. 사회적 약자라는 낙인이 있어야만 겨우 제 한 몫을 가질 수 있는 걸까. 아니다. 우리 더 이상 빈곤 포르노의 객체로 소비되지 말자. 말의 주인이 되어 서로의 삶에 귀 기울이며 함께 살아가자. 서로를 완벽히 위로해줄 수 없더라도 외롭게 내버려두진 않을 수 있지 않나.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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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21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정부 합의문이 발표되고, 국회에서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검찰경찰개혁소위에서 수사구조개혁이 논의 중이며, 국회 본회의를 통해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오는 6월30일까지 연장됐다. 

수사구조개혁이란 삼권분립과 같이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 재판은 법원이 하도록 분리함으로써 경찰은 수사에 대한 책임성과 전문성, 검찰은 기소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 향상에 전념하면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을 말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수사와 기소가 분리돼 경찰과 검찰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검찰에 기소권, 직접수사권, 수사지휘권, 독점적 영장청구권 등 광범위한 권한이 주어져 있다. 하지만 이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검찰에 대한 견제와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따라서 수사구조개혁을 통한 선진국 수사구조로의 변화가 절실하다.

일부에서는 수사구조개혁이 이루어지면 피해자의 입장에서 경찰 수사가 부족할 경우 구제받을 수 없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수사구조개혁이 되면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로 각 기관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 검찰의 재수사 요구권 등의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다. 수사구조개혁을 통해 피고인에게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피해자에게도 구제절차가 마련되어 있어 궁극적으로 국민의 인권과 권익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백상훈 | 중부경찰서 수사지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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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을 패스트트랙으로 결정할지가 곧 정해진다.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 간에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이다. 

자유한국당은 뒤늦게 패스트트랙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국당의 최근 행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행태가 한국 정치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라도 선거제도를 꼭 바꿔야 한다. 몇 가지 짚어보자.

첫째, 약속을 밥 먹듯이 깬다. 작년 12월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에 합의한 내용을 보면 올해 1월 말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처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당은 당론조차 정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그리고 법으로 정해진 선거구 획정 시한이 다 되어서야 비례대표제 폐지와 의석수 축소라는 진정성이 전혀 없는 안을 내놓았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가운데)과 여야 간사들이 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선거제 개혁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영민 기자

둘째, 자신들의 유불리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꾼다. 한국당은 합의처리를 주장하지만, 19대 국회 시절 자신들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을 때에는 ‘무조건적인 합의를 강요하는 것은 의회주의 원리에 반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법안을 밀어붙이려 해서 물의를 빚었다. 2016년에는 직권상정 요건도 안되는데 테러방지법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하게 해서 통과시켰다.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일 때에만 직권상정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국회법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패스트트랙은 너무나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이다. 도저히 합의가 안될 경우에는 패스트트랙을 쓰는 게 당연하다. 그러지 않으면 정치개혁, 검찰개혁은 불가능하다.

셋째, 국민들을 기만한다. 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는 위헌이다. 헌법 41조 3항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구를 안 정해도 위헌인 것처럼, 비례대표제를 폐지해도 위헌이다. 헌법은 선거구와 비례대표제의 존재를 전제하고,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하라고 한 것이다. 또한 국민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의원수 축소가 아니라 국회의원 특권 폐지인데, 그런 얘기는 쏙 빼놓았다. 국회의원 연봉 대폭 삭감, 국회의원 1명당 9명의 개인보좌진 축소, 국회의 예산 사용을 감시하는 독립기구 설치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당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 

넷째, 여성·청년·소수자들을 배제한다. 지금 17%에 불과한 여성의원 비율도 그나마 비례대표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여성의원들도 시작은 비례대표로 한 경우가 많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그런 경우이다. 전체 여성의원의 83.4%가 비례대표이거나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것은 비례대표제가 성평등 친화적인 선거제도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비례대표제 국가인 덴마크는 20·30대 국회의원 비율이 41.3%인데, 대한민국은 1%에 불과하다. 2016년 총선의 경우 253개 지역구에서 당선된 20대는 없었고, 30대도 단 1명이었다. 그나마 만 39세였다. 장애인 등 소수자들의 참여를 위해서도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당의 머릿속에는 여성·청년·소수자들은 없다. 한국당은 지역구 여성할당제를 강화하겠다지만, 막상 발의한 법안을 보면 위반했을 때 제재 수단도 없다. 껍데기뿐인 법안이다. 한국당의 주장대로 비례대표제를 폐지하면 국회는 더욱 기득권화되고, 여성·청년·소수자들은 더 배제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당의 행태를 볼수록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꼭 바꿔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대안 제시 능력도 없으며 기득권화된 정당이 탄생한 것도 지금의 선거제도 탓이다. 국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고, 오로지 지역구만 관리하면 재선할 수 있는 선거제도,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상대방의 발목만 잡아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 선거제도가 지금의 괴물 같은 기득권 정당을 낳은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온갖 갑질·비리·저질행태로 정치를 불신하게 해 놓고, 그 불신을 이용해서 선거제도 개혁을 방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국회를 불신하니, 국회의원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들의 국회 불신을 초래한 자신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해야만, 정당이 책임지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유권자들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당에 책임을 묻기 쉬워진다. 만약 지금의 시기를 놓친다면, 국민들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의 정치행태가 반복되는 것을 봐야 한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이런 정당이 사라질 수 있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선거제도 개혁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과 야 3당에도 촉구한다. 작은 이익을 탐할 때가 아니다. 지금 한국당의 방해에 밀려 패스트트랙으로 가지 못하면, 그 결과는 파국뿐이다. 완벽한 합의가 어렵다면, 가능한 수준에서 합의해서 패스트트랙으로 가고 추가 협상을 해도 된다. 최소 270일, 최대 330일 후에 국회 본회의 표결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협상할 시간은 있다. 문제는 지금 시기를 놓치면 다시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개혁의 기차는 지금 출발해야 한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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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치원총연합회(이하 한유총)에 대한 법인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또 이를 발표한 이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는 한유총의 개학연기 투쟁과 반복적인 집단 휴원 및 폐원 협박, 그리고 ‘처음학교로’와 정보공시 참여 거부 등이 헌법 제31조가 보장한 국민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한유총의 설립 목적과도 맞지 않고, 민법 제38조가 규정한 ‘공익을 해하는 행위’로써 법인의 설립허가 취소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결정이 정부가 ‘공익’을 자의적으로 정의해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결사의 자유를 약화시키는 선례로 남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그럼에도 검토를 거듭한 끝에 설립허가 취소 절차에 돌입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는데, 서울시교육청은 우리 시민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지키는 것이 교육청의 더 중요한 의무라고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유총의 반교육적인 일부 강경 지도부의 방침은 수십년간 유아교육에 헌신해온 다수 유치원의 의지에 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한유총의 강경 노선은 다수 유치원으로부터 기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유총이 공식적으로 개학연기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던 1533개 유치원 중 실제 참여 유치원은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설립 허가 취소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다수의 사립유치원은 단순히 정부의 압박에 마지못해 개학연기 투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도부의 반교육적 방침이 다수 국민의 기대에 배치되고, 또한 학부모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는 점을 깊게 인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립유치원들은 유아교육의 황무지에서 사재를 털어 국가가 담당해야 할 유아교육에 헌신해 왔다. 그런데 일부 반교육적인 강경 지도부에 의해 휘둘리는 사이, 국민들과의 괴리가 커졌다. 특히 사립유치원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 한 계기는 아마도 2018년 10월5일 국회 토론회 무산 사태일 것이다. 이는 2017년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장애인 학부모가 무릎 꿇었던’ 강서 특수학교 공청회 이후 특수학교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던 것과 유사하다. 

지금 사립유치원 앞에는 달라진 사회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 길과 과거로 회귀하거나 현재에 안주하고자 하는 후진적 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그동안 유아교육에 헌신해온 사립유치원들이 국민의 달라진 인식과 눈높이에 맞게 미래지향적 유아교육의 길로 함께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호소드린다. 

많은 사립유치원 원장과 운영자들께서 그동안 유아교육에 대한 사립유치원의 헌신과 기여가 폄하되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난 기간 유아교육에 대한 어렵고도 지난한 헌신을 시민들이 다시 생각해볼 마음의 여백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사립유치원 운영의 미래지향적 전환은 필수다.

익숙한 과거와 과감히 단절하는 고통스러운 과정 없이 시민들의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미래지향적 유아교육으로 전환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사립유치원이 다시 시민들, 특히 학부모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조희연 | 서울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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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옷을 정리하려고 옷장 문을 열었다. 이거, 옷이 너무 많잖아. 매일 옷을 꺼내 입고 벗어두는 옷장이건만, 켜켜이 쌓이고 걸린 옷들을 보고 새삼 놀랐다. 버리고 정리하기를 잘한다고 자부하는 데다가 새 물건 사기를 최소한으로 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리를 잘 못하는 아내는 나를 보고 가끔 ‘무자비하다’고 표현하지만, 쌓인 옷들을 보니 나는 무자비한 게 아니고 무심한 쪽이었다. 옷들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중에는 10년을 넘어 20년이 더 된 옷들도 꽤 섞여 있었다. 

언젠가는 아내가 버리려고 내놓은 옷들 중에 아주 오래된 여름 티셔츠를 발견하고 한참을 망설인 적이 있다. 너무 빨아서 천이 얇아지고 색이 빠진 데다 군데군데 터진 부분이 여러 곳인 티셔츠를 손에 들고는, 내 영혼의 일부가 버려지는 듯한 기분을 지그시 억눌렀다.

정리와 버리기를 잘한다고 했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을 때만 물건을 버리는 편이다. 나는 아직 원시적인 물활론자라서 세상에 생겨난 물건들에는 다 나름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리하여 아직 존재의 의미를 다하지 못한 것들을 서둘러 떠나보내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충분히 수명을 다하지 않은 물건들을 나는 지금 이렇게 거창하게 표현하는 중이다.

회사에서 고장 난 PC를 놓고 젊은 직원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 심장부에 해당하는 메인보드가 나갔고, 너무 오래된 기종이라 같은 부품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열심히 찾으면 구할 수는 있겠지만 가격이 새 PC를 사는 것과 맞먹었다. 직원은 통째로 버리자는 쪽이었고, 나는 살릴 수 있는 부품들―메모리, 하드디스크, 파워유닛 따위를 떼어내 어떻게든 써보자는 쪽이었다. 최신 부품에 비해 속도와 용량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이 부품에 맞추려면 사양화된 또 다른 부품을 사야 하는 등 이치에 안 맞는 주장이었다. 별 수 없이 주장을 접었지만 왠지 직원이 야속하여 ‘냉정한 친구 같으니!’ 하고 중얼거렸다.

디자인과 성능이 뛰어나고 가격까지 싼 물건들이 끊임없이 시장에 나와 우리의 욕망을 호시탐탐 노린다. 동네 선배와 다이소 매장에 함께 들어가면서 “마음 단단히 먹자”고 서로에게 말하며 웃었다. 이렇게 싼 물건들이 늘 손에 닿는 곳에 있으니,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아무리 비관해도 세상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발전된 물건과 기술들을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더 낫게 해내고 있을까? 작고한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말했다. “이 혼잡하고 뜨끈뜨끈한 소비지옥에서 우리는 또 다른 소비를 좇는다. 소비의 갈증과 권태를 달래기 위해서.”

미국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곤마리 정리법’의 주인공 곤도 마리에가 떠오른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단순한 원칙을 가르치는 그의 정리법은 일본식 미니멀리즘을 넘어 미국 소비자들에게 거의 자아실현 방법론으로까지 받아들여진단다. 그 물건이 여전히 당신을 설레게 하는가? 더 이상 설렘을 주지 않는 물건은 진심 어린 감사 표시와 함께 작별을 고하라. 안 입는 스웨터를 안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하고 이별하라. 어랏, 그러고 보니 이것은 내가 믿는 원시적인 애니미즘과도 같은 것일까?

곤도 마리에는 끝없는 소비의 ‘뜨끈뜨끈한 혼돈과 권태’에 시달리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한 줄기 소낙비 같았으리라. 소비를 하면 할수록 심해지는 갈증의 치유법을, 사는 것이 아닌 버리는 것에서 찾은 그의 방법은 윤리적인 만족감까지 주었을 것이다. 곤도 마리에가 수수하지만 세련된 미모의 젊은 동양인 여성이라는 것은 논외로 치자.

하지만 비밀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곤도 마리에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는 수수한 삶. 나의 후덥지근한 소비주의적 행태를 뭔가 새로움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들은 새롭고 반짝이는 물건들을 치운 자리에 또 하나의 새롭고 반짝이는 청결과 시원한 공기와 욕망을 구입해 걸어놓는다.

우리가 잡동사니 물건들과 옷가지들의 늪에 빠진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필요’에 세뇌된 탓인지 모른다. 당신에게 꼭 필요하다고 누군가 넌지시 속인 그 물건들 말이다. 그 필요는 곤도 마리에가 보여주는 새로운 삶의 필요로 대치된다. 해마다 전셋집을 옮기는 이들과, 원룸에 꼭 필요한 것들만 갖출 수밖에 없는 이들과, 매주 아파트 분리수거를 돕는 경비원 아저씨들에게, 새롭고 반짝이는 삶을 위해 물건을 내다버리는 이들은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말하지만, 너무 소소해서 비루할 수밖에 없는 불행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소비지옥의 진짜 풍경이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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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1일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샤프빌(Sharpville) 지역 경찰서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인종별로 거주지를 나눈 뒤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면 항상 ‘통행권’을 소지해야 한다는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 <통행제한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통행증이 없으니 모두 체포하라며 경찰서로 모여들었고, 어느새 그 숫자가 수천 명을 넘어섰다.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시위 분위기도 점점 격앙되었고, 경찰은 저공비행 전투기까지 동원한 해산 작전 과정에서 도망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공식 집계로 69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샤프빌의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로부터 6년 뒤 열린 1966년 유엔 총회에서는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샤프빌의 학살이 있었던 3월21일이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로 공식 선언되기에 이른다.

지난 일요일 광화문에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였다. ‘이주노동자, 이곳에 삶’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경험한 부당한 인종차별을 증언하는 자리였다. 얼마 전 출입국관리소의 단속과정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를 추모하며 인간을 사냥하듯 이루어지는 출입국 단속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유엔과 ILO에서 문제로 지적되어 왔고 2017년에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 위원회)’에서도 제도 폐지를 권고한 외국인에 대한 사업장 변경 제한의 문제점, 임금체불과 산업재해와 난민이라는 이유로 일자리에서 쫓겨난 노동자의 이야기가 봄볕 가득한 광장을 채웠다.

한 외국인 가족이 17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2019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공동행동 모두의 목소리! 모두를 RESPECT!’ 집회 중 ‘인종차별과 혐오 OUT’ ‘차별금지법 제정!’이라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이주노동자들과 난민인권네트워크,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가 참여했다. 이준헌 기자

1960년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샤프빌과 2019년 3월 한국의 광화문은 슬프게도 닮아 있었다. 이주노동자도 인간이다, 이주민에 대한 인종차별을 중단하라는 이들의 외침은 나는 통행권이 없으니 체포하라는 구호와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시절 ‘통행제한법’이 등장했던 철학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노골적인 인종차별 법률안이 국회에 등장한 것도 닮았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근로시작 1년 이내의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액의 30%, 2년차 때는 20%를 감액하여 지급할 수 있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국회에 발의된 여러 법안 중 인종차별적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최악의 비열한 법안이라고 생각한다.

이완영 의원은 ‘외국인 근로자는 언어·문화 등으로 업무습득 기간이 오래 걸리고,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다’면서,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정작 개정안에서 적용 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사업장은 법에 따라 사업주가 내국인을 고용하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직원을 구하지 못한 일자리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 국회의원이 나서서 사업주의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하는 사업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생산성이 과연 누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일까. 게다가, 최저임금이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최저기준이므로 ‘생산성’을 이유로 최저임금을 감액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황당한 것이지만, 만약 가능하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감액되어야 하는 직군은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로서 최소한의 책임도 다하지 않은 채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아닐까 한다.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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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한 곳인 뉴질랜드 남섬의 ‘정원도시’ 크라이스트처치의 이슬람사원 두 곳에서 백인 우월주의자 브렌턴 태런트가 쏜 총격에 의해 50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페이스북 등에 공개된 학살 순간은 참혹하고 잔인하다. 마치 게임을 하듯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퍼붓고 울부짖는 시민을 향해 확인사살을 가했다. 2011년 7월 노르웨이 우퇴위아섬에서 열린 ‘노동당 청년캠프’에 참석한 청년 77명을 숨지게 한 아네르스베링 브레이비크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테러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학살은 이슬람국가(IS)나 알카에다와 같은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와는 성격이 다르다. 백인 우월주의를 표방한 이민자 상대 무차별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욱 크다. 태런트도 “침략자로부터 백인들의 땅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이민자 천국인 뉴질랜드조차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슬람사원 2곳을 공격한 것이다. 

뉴질랜드는 전체 인구의 20%가 이민자다. 내년부터는 연간 난민 수용 쿼터를 현재의 1000명에서 1500명으로 늘리기로 한 나라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우리나라에는 30만 다문화가구가 살고 있고, 등록된 외국인 수만 11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 국무부의 ‘2018년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이주여성과 다문화자녀에 대한 가정폭력이나 또래 차별이 큰 나라다. “2017년 다문화 학생 10만9387명 중 1278명이 편견과 따돌림, 폭력 등으로 학교를 그만뒀다”는 교육부 보고서도 있다. 태런트 학살이 알려진 17일에도 성희롱 피해와 차별을 고발하는 ‘이주노동자 증언대회’가 열렸다. 이들은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인종과 국적,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민자가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오는 21일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이민자들은 뉴질랜드를 고향으로 선택했고, 이곳은 그들의 고향이다. 그들은 ‘우리’다”라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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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1939~)

떨어진 공은 바닥을 탕, 탕 치며 다시 튀어 오른다. 용수철처럼 튀어 가볍게 떠오른다. 빠르게 그리고 힘이 넘치면서. 둥근 공은 쓰러져 몸져눕지 않는다. 늘 금방이라도 활동하겠다는 태세다. 어떠한 삶의 파도에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자세다. 생명의 불을 꺼뜨리는 일이 없다.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동력을 잃지 않는다. 둥근 공의 빛나는, 충만한, 싱싱하고 힘찬 기운을 상찬하면서 시인은 공을 “탄력의 나라의/ 왕자”라고 멋지게 명명한다. 우리의 마음도 이 “탄력의 나라”에 살았으면 한다.


우리는 새봄의 계절에 다시 피어난 산수유나무 노란 꽃들을 보면서 강한 탄력을 느낀다. 봄은 살아 숨쉬고, 얼굴에 몸에 의지에 활기가 돌고, 탄력이 좋다. 쇠하거나 새들새들해지는 법이 없다. 김이 식는 법이 없다. 봄이 곳곳에서 공처럼 튀어 오르고 있다.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봄을 보았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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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과 ‘장자연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의혹과 부실수사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면서다. 두 사건은 모두 성착취와 인권유린이라는, 한국 사회의 윤리적 파탄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랜 시간 진실이 은폐되며 피해자와 목격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는 폭력은 반복돼왔다. 최근 벌어진 승리·정준영 사건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폭력과 착취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제는 거대한 부조리의 사슬을 끊어낼 때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은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와 그 실무기구인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최근 김학의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부실수사를 뒷받침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국회에서 “(2013년 수사 당시) 명확한 영상을 입수했는데, (김 전 차관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 감정 의뢰 없이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2013년 수사 당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넘겼으나 검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민 청장의 발언이 있던 날, 동영상 속 피해 여성도 KBS에 출연해 사건 당시 정황과 검찰 조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고 장자연 문건' 목격자로 알려진 배우 윤지오씨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장자연씨가 사망 직전 작성한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 윤지오씨는 10년간 해외에 체류해오다 최근 귀국해 공개증언에 나서고 있다. 윤씨는 대검 진상조사단에 출석해 리스트와 관련된 언론인 3명과 정치인 1명의 이름을 진술했다. 그는 “이 사건은 단순 자살이 아니다”라며 공소시효 연장을 촉구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장자연 사건 재수사 국민청원도 60만명이 참여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

문제는 대검 진상조사단의 진상규명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데 있다. 김 전 차관은 진상조사단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강제구인 권한이 없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진상조사단은 또 이달 말로 끝나는 조사기한을 연장해달라고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새로운 의혹이 줄줄이 불거지는데 연장을 거부하는 까닭을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의 치부를 덮고 제 식구를 감싸려는 의도인가. 검찰권 오남용 의혹을 받는 대표적 사건들을 이대로 묻고 간다면, 검찰의 신뢰는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해자들은 거리를 활보하는데, 피해자들은 죽음을 택하거나 위협에 시달리는 상황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 진상조사단 활동기한을 연장하고, 이후 전면 재수사를 통해 권력형 성폭력의 은폐된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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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개각’으로 내정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부동산투기, 꼼수 증여, 세금 체납, 위장전입, 자녀 국적과 채용 관련 의혹들에다 막말 논란까지 끝이 없다. 대부분 기본적 인사 자료만으로도 확인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이런 의혹들을 인지하고도 검증대를 통과한 것이라면 청와대 인사 잣대가 ‘자만’에 빠져 있는 것이고, 사전에 몰랐다면 검증시스템이 먹통이라는 얘기다.

부동산정책을 총괄하는 국토교통부 최정호 장관 후보자는 개각 발표 직전에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를 딸에게 증여한 뒤 월세를 내며 그 집에서 살고 있다. 다주택자 논란을 피하려 ‘꼼수’ 증여를 한 꼴이다. 아파트 처분도 다주택자 사이에서 애용되는 ‘절세’ 비법인 증여 방식을 택했다. 최 후보자는 분양가의 두 배 가까이 값이 오른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에 배우자 명의의 서울 잠실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다. ‘갭투자’ 등 투기 의혹이 따라붙는 이유다. 장관 후보자라고 다주택을 보유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국토부 장관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정부는 다주택 투기 수요를 집값 불안의 주요인으로 꼽고 이를 규제하는 데 집중해 왔다. 다주택자에다 ‘꼼수 증여’ 논란까지 휩싸인 후보자가 부동산정책을 총괄하는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과거 소셜미디어 발언들이 논란이다. 김 후보자는 2015년 3월 천안함 폭침 5주기를 맞아 군부대를 방문한 문재인 당시 새정치연합 대표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군복 입고 쇼나 하고 있으니”라고 비아냥댔다. 이듬해에는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를 “감염된 좀비”, 김종인 전 대표를 “씹다버린 껌”으로 비유했다. 2014년 재·보선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안철수 당시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에게는 “새것이라 아무거나 먹으면 피똥 싼다”고 조롱했다. 고위공직자로서의 품성을 의심케 하는 막말 열전이다. 이외에도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의 인턴 특혜,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의혹에 휩싸였다. 다른 장관 후보자들도 크고 작은 의혹들이 잇따르고 있다.

청와대의 부실 검증망을 통과한 후보자들의 흠결을 가릴 데는 이제 국회밖에 없다. 인사청문회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철저히 따져, ‘자격 없는’ 후보를 걸러내야 한다. 청와대도 ‘무조건 임명’ 생각을 접고, 인사청문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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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역사책을 즐겨 읽습니다. 역사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니까요. 제가 2012년 12월 고 윤길중 과거사 재심사건 ‘담당 검사 교체 합의’를 깨고 무죄 구형을 강행했다는 검찰의 거짓 해명으로 막무가내 검사가 된 후 억울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정당한 이의제기를 묵살한 채 권한 없이 한 상급자의 직무이전 지시를 저와의 합의로 호도하는 수뇌부의 거짓말은, 제가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며 늘 보아오던, ‘피해자와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였다’는 강간범의 변명과 다를 바 없더군요. 강간범의 변소를 대개의 사람들은 믿어주지 않지만, 검찰의 거짓말은 주류 언론과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얼치기 운동권 검사가 되었습니다.

진흙탕에서 허우적거리며 ‘오해와 손가락질을 견뎌낼 수 있는 의연함을 허락하시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게 하시며, 만약 달리 희망이 없다면 제가 그 희망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문과 같은 기도로 견뎠습니다. 진실은 이 진흙탕에서 결국 연꽃을 피워 올리리라는 확신이 없었다면, 헤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역사의 심판에는 예외가 없고, 권력으로 가리고 호도해도 진실은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다행입니다. 

2018년 9월 15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한 후 겪은 일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사기〉혹리(酷吏, 잔인하고 독한 관리) 열전을 읽다가 무릎을 친 적이 있습니다. ‘황제가 엄하게 처벌하고 싶어 하면, 장탕은 치밀하고 엄정하게 집행하는 관료에게 사건을 맡기고, 황제가 용서해주려 하면, 장탕은 관대한 관료에게 맡겼다.’ 2000년 전 역사가 등장인물 이름만 바꾸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으니까요. 유권무죄의 역사는 참혹하도록 질겨 끔찍하도록 유구합니다. 자동 배당을 가장한 통합진보당 재판 배당 조작, 법원 블랙리스트 등 사법 농단 수사로 드러난 법원 내부의 참상은 검찰과 그리 다를 바 없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비판하면서도 민망함을 감출 수 없네요. 시민들의 질타는 ‘검찰은 그렇다 쳐도, 법원 너마저!’의 절망과 분노일 테니까요.

제가 보고 들은 검찰 간부들의 직권남용 행태는 더 놀랍기만 한데, 조용히 잊혀지고 있지요. 그때 그 사람들이 자신은 결백한 양 사법정의를 외치며 열심히 수사하고 검찰개혁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은 곁에서 보기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법을 구부려 권력에 아부할 것을 넌지시 권하는 권세가에게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며 단호히 거절한 공자가 떠오릅니다. 법률가들에게 죄를 빌 하늘이 남았을까요? 권력에 영합하여 검찰권, 재판권을 마음껏 휘두르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순간순간을 모면해 온 사람들이 아직도 법원과 검찰, 심지어 정치판에서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그들에게 볕이 드는 하늘이 아직 남아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지난 ‘나는 고발한다’ 칼럼으로 지인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검이 당황스럽도록 고요하여 아직 별일 없다’고 제 안위를 걱정하는 벗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대검은 <장자>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鷄之德)을 흉내 내며 위기를 넘기려는 듯합니다. 그러나, 검찰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수사기관이지요. 사회 부조리를 파헤쳐 잘못을 엄단하면서, 정작 내부 치부에는 나무로 만든 닭을 흉내 내며 침묵한 채 시비를 가려 밝히지 않는다면, 검찰로 불릴 자격이 있을까요? 짠맛을 잃은 소금은 더 이상 소금이 아닙니다. 대검의 비공식적인 해명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안태근 전 검사장 사건 기록에서 접한 전·현직 검사들의 숱한 거짓말들이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여전히 씁쓸합니다.

중국 진나라 무제가 고위 관료였던 산도를 탄핵한 이희를 칭찬하면서도 산도를 감싼 것에 대해, 사마광은 <자치통감>에서 “정치의 근본은 형벌과 포상에 있다. 이것이 불분명하고서야 어찌 정치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만일 이희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산도는 벌해야 하고, 사실과 다르다면 이희가 칭찬 받는 것이 문제다. 이러고도 어찌 준법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고 한탄했습니다. 2015년 서울남부지검 사건 실체가 외부에 알려진 사실관계와 같다면 당시 감찰 담당자들을 직무유기로 입건치 아니한 현 검찰총장 등은 검사 자격이 없는 것이고, 잘못 알려진 것이라면, 해명해야 합니다. 의혹을 해소하지 않고서야 검찰총장이 준법을 말한들 어찌 무게가 있겠으며, 검찰개혁 논의에서 새어나오는 대검의 불협화음이 조직이기주의 발로가 아니냐는 의심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요?

권력은 진실을 잠시 가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가릴 수는 없지요. 검찰은, 법률가들은, 또한 모든 공직자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시민들을 더 이상 속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도 이젠 다 보이니까요.

<임은정 |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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