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카로스는 아버지가 밀랍으로 만들어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서 크레타섬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잊고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하늘 높이 날다, 태양과 가까워지면서 결국 날개가 녹아 바다로 추락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는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녹고 있는 밀랍 날개로 하늘을 날고 있는 상태일지 모른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00년 이후 ‘가장 뜨거운 해’를 매년 맞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전 지구 평균기온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최근 4년(2015~2018년)이 전 지구 평균기온이 가장 높은 해 1~4위로 나타났다.

수치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18년 한 해 동안 가장 춥고 가장 무더웠던 계절을 겪으며 기후변화를 몸소 체감했다.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강한 한파로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낮은 최저기온을 기록했고 여름에는 장기간 폭염 발생으로 최고기온 최고치를 경신(41도, 홍천)하는 등 극한의 기온 변화를 보였다. 또한 최근 들어 이례적으로 태풍 2개(솔릭, 콩레이)가 연이어 한반도에 상륙하여 많은 비를 뿌리는 것을 경험하며 기후변화가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전 세계 기후전문가들은 기후변화에 의한 이상기후가 이례적인 모습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지난해 제48차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회의에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이 보고서는 애초 목표로 삼던 2도 상승으로는 지구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서둘러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의 적극적인 감축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2100년 해수면 상승폭을 지구온난화 2도보다 1.5도에서 10㎝ 낮출 수 있고, 1000만명이 해수면 상승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며, 동식물이 서식지를 잃을 확률을 2분의 1로 줄일 것이다. 아울러 이상기후 현상은 건강, 생계, 식량과 물 공급, 인간 안보 및 경제 성장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다. 0.5도 하향된 지구온난화 목표는 심각한 물 부족에 노출되는 총인구비율이 최대 50% 감소할 정도로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기상기구는 2019년 ‘세계 기상의 날’ 주제를 ‘태양, 지구 그리고 날씨’로 정했다. 세계기상기구는 매년 3월23일을 ‘세계 기상의 날’로 정하고 매년 새로운 주제를 선정해 세계 각국의 기상청과 함께 이날을 기념한다.

태양은 지난 45억년 동안 하루, 한 시간, 일 초의 시간도 멈추지 않고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에너지원을 제공하며 날씨와 해류의 변화, 물의 순환을 일으켜 인류가 지속하게 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위성관측 결과에 따르면 태양에너지의 양은 변화하지 않고 있으나,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인간 활동에 의한 결과로 인간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상기후’라는 지구의 경고를 눈으로 보고 있다. 이 경고를 무시하고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는다면 점점 높아지는 온도와 함께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단 이카로스처럼 추락하고 말 것이다. 자연도 인간도 변화에는 관성이 있다. 지금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아도 변화의 속도가 바로 늦춰지는 것은 아니므로, 지금 당장 우리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김종석 |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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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날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서 새벽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대개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맨 처음 그들이 눈에 띈 것은 옷차림 때문이었다. 똑같이 짧은 치마에 몸에 꽉 끼는 재킷을 입은 그들은 하얀 패딩을 겉에 걸치긴 했지만 추워 보였다. 범상치 않은 옷차림에 곱게 화장한 앳된 여자 여섯 명이 기차 안 좁은 통로에 줄지어 들어서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공연하러 가나? 아이돌인 건가?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게 아이돌인데, 그들의 얼굴은 낯설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들은 조용했고,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곧 그들을 잊었다. 그들은 기차 종착역인 남쪽 해안 도시에서 내려 기차역을 빠져나가는 인파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들을 해 질 녘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났다. 내 옆자리에 앉은 그들은 꽤 지쳐 보였다. 간간이 그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배고프다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던 이들은 곧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들의 동행인 남자가 수원쯤 닿았을 때 그들을 깨웠다. 여기만 끝나면 된다고 하는 걸 보니, 그들은 한밤중에 또 무대에 올라야 할 모양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기차에서 내려 어둠이 내린 도시로 들어갔다. 껑충한 치마 아래로 드러난 그들의 가느다랗고 하얀 다리가 안쓰러워 보였다.

얼마 뒤 그들이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걸 그룹이라는 걸 알았다. 그해 겨울 그들의 노래는 어디서든 흔히 들을 수 있었고,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는 모습도 텔레비전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무대 의상을 입은 채 기차를 타고 도시를 옮겨 다니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아이돌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무척 고생한다는데, 요즘 참담한 뉴스에 등장하는 아이돌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연습생 시절 거울 앞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무대에 오를 수만 있다면, 내 노래를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분명 오래전 그의 꿈은 반짝반짝 빛났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빛을 잃은 것일까? 별은 소멸하기 마련이나, 이러한 추락은 참으로 안타깝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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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날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서 새벽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대개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다.

맨 처음 그들이 눈에 띈 것은 옷차림 때문이었다. 똑같이 짧은 치마에 몸에 꽉 끼는 재킷을 입은 그들은 하얀 패딩을 겉에 걸치긴 했지만 추워 보였다. 범상치 않은 옷차림에 곱게 화장한 앳된 여자 여섯 명이 기차 안 좁은 통로에 줄지어 들어서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공연하러 가나? 아이돌인 건가? 텔레비전만 켜면 나오는 게 아이돌인데, 그들의 얼굴은 낯설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들은 조용했고, 기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곧 그들을 잊었다. 그들은 기차 종착역인 남쪽 해안 도시에서 내려 기차역을 빠져나가는 인파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들을 해 질 녘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다시 만났다. 내 옆자리에 앉은 그들은 꽤 지쳐 보였다. 간간이 그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배고프다거나,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던 이들은 곧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하루는 끝난 게 아니었다. 그들의 동행인 남자가 수원쯤 닿았을 때 그들을 깨웠다. 여기만 끝나면 된다고 하는 걸 보니, 그들은 한밤중에 또 무대에 올라야 할 모양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기차에서 내려 어둠이 내린 도시로 들어갔다. 껑충한 치마 아래로 드러난 그들의 가느다랗고 하얀 다리가 안쓰러워 보였다.

얼마 뒤 그들이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걸 그룹이라는 걸 알았다. 그해 겨울 그들의 노래는 어디서든 흔히 들을 수 있었고,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는 모습도 텔레비전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은 무대 의상을 입은 채 기차를 타고 도시를 옮겨 다니지 않을 것이다.

대개의 아이돌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무척 고생한다는데, 요즘 참담한 뉴스에 등장하는 아이돌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연습생 시절 거울 앞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무대에 오를 수만 있다면, 내 노래를 알아주는 이만 있다면. 분명 오래전 그의 꿈은 반짝반짝 빛났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빛을 잃은 것일까? 별은 소멸하기 마련이나, 이러한 추락은 참으로 안타깝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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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화재통계에 따르면 전체 화재(4만2337건)의 28.3%(1만2001건)가 주거용 건물에서, 그중 12.5%(5271건)가 공동주택에서 발생했다.

공동주택 화재 시 신속하게 현관으로 대피해야 하지만 화염 등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발코니 쪽에 설치된 경량칸막이나 하향식 피난구를 통해 이웃집으로 대피해 소방대의 구조를 기다려야 한다.

현행 건축법시행령 46조는 아파트 4층 이상인 층에 각 세대가 2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대피공간을 설치토록 규정한다. 이를 설치하기 어려운 경우 경량칸막이나 하향식 피난구를 설치토록 면제조항을 두고 있다. 대피공간은 내화성능이 1시간 이상이며, 하향식 피난구는 발코니에 위치해 화재 시 덮개를 열고 아래층으로 피난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경량칸막이는 발코니의 한쪽 벽면을 9㎜ 정도의 석고보드 등 경량 구조로 만들어놓은 벽체로, 쉽게 파괴가 가능하며 가볍게 두드렸을 때 일반 콘크리트 벽과는 달리 경쾌한 소리가 난다.

1992년 이후 지어진 공동주택에는 대피 공간, 하향식 피난구, 경량칸막이 중 하나는 설치돼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가전제품, 수납장을 설치하거나 물건을 적치하는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량칸막이의 경우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칸막이를 맞댄 이웃집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대피 공간, 하향식 피난구, 경량칸막이는 화재 시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생명의 통로이며 내 가족과 이웃을 살릴 수 있는 장치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우영 | 부산 기장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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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이해했다면 그것을 용서할 수 없다. 용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도리스 레싱의 말을 빌리면, 용서란 이런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지만 용서도 할 수 없다. 호미 바바의 말을 빌리자면, 기억(re-member)은 사지(四肢)가 재조합되는 환골탈태의 과정이다. 기억과 용서는 이토록 힘든 일이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씨가 지난 11일 법정에 섰다. ‘광주 학살’ 이후 39년 만이다. 치매와 감기 등의 이유로 출석을 피하려고 발버둥치다 법원의 강제구인에 따라 광주지법 201호 대법정에 선 것이다.

나는 서울 토박이로 ‘80년 광주’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전두환씨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는 정치인의 활동을 봉쇄하고(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언론인과 공무원들을 대대적으로 숙정(肅正)했다. 언론인만 711명이 해직되었다. 말이 숙정이지, 독재 국가의 소위 숙청(肅淸)이었다. 내 아버지 이름이 이 명단에 있었다. 우연이 겹쳐, 고교 교사였던 엄마는 박정희 정권 말기에 교직을 그만두셨다. 맞벌이였던 우리 집은 생계부양자가 사라졌고, 나는 그때 초등학생이었다. 아버지의 퇴직금은 소송비용으로 없어졌고 부모님 모두 백면서생인 덕분에, 나는 종종 서무실로 불려가는 학생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학 생활은 5공화국과 함께였다. 휴교, 최루탄…. 사복 경찰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공부, 여행, 모색 같은 개인의 삶은 없었다. 그냥 상황에 휩쓸렸다. 이후 내 삶의 기준은 오로지 “20대처럼 살지 않으리라”였다. 나는 전두환씨에 대한 증오를 잊은 적이 없지만 ‘광주분’들 앞에서 꺼낼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동갑인 지인이 “난 대학 생활이 좋았어. 그때부터 소비 사회였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책상에 뛰어올라 그의 멱살을 잡을 뻔했다.

동시대의 기억이 이렇게 다르다. 전두환씨는 “하필 내가 그때 대통령이어서… 피해자는 나”라고 주장한다.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부정론자들은 말한다. “홀로코스트는 없었다, 난징대학살은 없었다, 군 위안부는 없었다, 문서가 없거나 없어졌으므로.” 고통을 경험한 사람의 증언을 ‘종이’로 묵살하는 것이다. 물론, 실증과 실증주의는 다르다. 기록된 역사보다 더 중요한 진실은, 기록도 사람이 만든다는 사실이다.

생존자와 함께 살아가는 시대에 전두환씨와 그를 지지하는 이들의 행태는, “잊지 말자”는 다짐 정도가 아니라 기억을 둘러싼 비상사태임을 의미한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내전 중이다. 역사가는 기억 활동가(memory activist)라고 말하는 임지현의 신간 <기억전쟁 -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는 이 문제에 대한 흥미진진한 세계사다. 사실(寫實)이 사실(史實)로 만들어지는 사태에서 살아남은 자는 어떻게 주체적으로 연루할 것인가를 묻는다.

식민 지배를 겪은 이후, 많은 국가들이 ‘진실과화해위원회’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었다. 내 의문은 이것이다. 진실과 화해는 양립할 수 있을까, 과연 진상 규명(facts finding)이 가능할까. 진실은 곧 화해로 연결되는가? 오히려 ‘진실’ 자체가 더 문제는 아닐까.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가 달라지고 연구자나 정치권이나 ‘기억 비스니스’에 분주하다. 얼마 전 군 위안부 주제의 학회에서 많은 발표자들이 “제가 위안부 전문가는 아니지만…”이라고 서두를 시작했는데, 기억 연구를 둘러싼 다른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억투쟁은 정의를 위해서이지, 피해자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일수록 “우리가(내가) 가장 피해자” “완벽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결국 피해자는 또다시 고통받는다. 강자는 고통을 연구하고 ‘성찰’하지만, 약자는 고통을 경쟁하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누구에게? 가해자에게? 그러므로 기억전쟁은 사회를 바꾸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경험이 의심받고 부정될 때, 피해자는 이중적 자아를 갖게 된다.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가 분리되는 것이다. 진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공동체의 산물이지, 처음부터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기억전쟁>에 의하면, 유대계 폴란드인 역사가 비톨트 쿨라(Witold Kula)는 1980년대 초 이렇게 예견했다고 한다. “예전에 유대인들은 돈과 자질, 지위, 국제적인 네트워크 때문에 질시를 받았다면, 지금은 강제수용소의 소각로 때문에 질시를 받는다.” 인류가 기억의 연대보다 피해의식을 경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피해는 인정받지 못하고, 피해의식만 넘쳐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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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육식을 즐긴다. 가난했던 1980년대에는 잔칫날에나 겨우 고기 구경을 했던 데 반해 현재는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요리와 식재료로 육류를 접할 수 있다.

육류 소비 수요에 맞춰 가축 사육두수도 급증했고, 필연적으로 가축분뇨 발생량 또한 급속도로 증가했다. 특히, 삼겹살이 서민 음식의 대명사로 자리 잡으며 돼지 사육두수는 2017년 1051만4000마리로 1990년 대비 132% 증가했고, 돼지분뇨 발생량은 같은 기간 약 1915만t에 달한다.

가축분뇨는 적정하게 관리하면 비료로 활용해 친환경 농산물 생산과 토양 개량에 기여할 수 있지만, 부적정하게 처리하면 하천과 지하수, 토양 등을 오염시키고, 악취의 원인이 된다. 고농도, 난분해성 성질을 지닌 돼지분뇨는 상수원으로 흘러갈 경우 식수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환경부는 가축분뇨 관리를 위해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 시행하고 있다. 법에 따라 가축분뇨는 공공수역에 유입되지 않도록 정화처리하거나 퇴비, 액비, 바이오에너지 등으로 자원화 또는 적정 처리해야 한다.

가축분뇨 처리통계에 따르면 약 100개의 공공처리시설을 통해 일평균 9900t의 정화처리와 일평균 13만t의 자원화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가축분뇨를 자원화 또는 정화하지 않고 불법투기하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처리하는 부적정 사례가 여전히 발생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고의로 법을 어기는 경우도 있지만, 불법인지 알지 못하거나 사업장 여건상 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사례도 빈번히 나타난다.

새로운 법과 제도의 도입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른다. 2017년에 있었던 제주도 숨골 가축분뇨 무단배출 사례는 적극적인 제도 이행을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를 말해준다. 당시 일부 돼지 사육농가가 비양심적으로 가축분뇨를 무단배출해 숨골의 지하수는 물론 생태보호지역인 곶자왈까지 오염시켜 국민적 공분을 샀다. 당시 훼손된 용암동굴을 복원하려면 수십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축산농가 및 처리업체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제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은 사업장들의 배출 신고 및 액비 사용량 등록 등의 편의를 위하여 가축분뇨 및 액비의 배출, 수집, 운반, 처리의 전 과정을 전자인계관리시스템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경제활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납세, 법규 준수는 물론 환경에 대한 책임도 뒤따른다.

3월22일은 세계 물의 날로 물의 소중함을 인류가 함께 인식하고자 유엔에서 제정한 날이다. 국민의 건강하고 행복한 식생활을 위해 제공되는 육류의 생산과 공급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돼지농가와 가축분뇨 처리시설에서 가축분뇨관리시스템에 적극 참여하고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장준영 |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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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한 것은 1979년 봄이었다. 유신체제가 종막을 향해 가던 시절이었다. 사회학과가 지금은 사회과학대학에 있지만 그때는 문과대학에 속해 있었다. 당시 널리 알려진 문과대학 교수는 세 사람이었다. 국문학과 박두진 교수, 사학과 김동길 교수, 철학과 김형석 교수였다. 세 교수 가운데 내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이는 김형석이었다. 그는 고교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인 <고독이라는 병>과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저자였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개 그러하듯, 대학에 입학해 사회과학을 배우기 전에는 제도와 구조보단 개인과 실존을 중시한다. 유신독재의 그늘이 짙었던 1970년대 중·후반, 그 그늘을 만들었던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등장과 작동 방식에 대한 사회과학 지식이 부족했던 10대 후반인 내게 고독, 사랑, 영원과 같은 어휘들은 우울한 시대적 분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개인적 위안을 안겨줬다. 그땐 몰랐지만 구조적 강압이 클수록 자아는 추상의 개념들로 쌓아올린 실존적 성채 안에 홀로 거주하려는 성향을 보이는 법이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역사의 격류에 휩쓸렸다. 1학년 가을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했고, 2학년 봄 광주항쟁이 일어났다. 나는 사회과학 공부에 열중했고, 고독, 사랑, 영원이 아닌 민중, 투쟁, 해방에 익숙해졌다. 우리 사회는 산업화 시대를 막 지나 민주화 시대로 나가고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당시 내 손에 잡힌 건 한완상의 <민중과 지식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이었다. 김형석이란 이름은 내 시야에서 그렇게 멀어졌다.

이랬던 김형석 교수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우리 사회 고령화 현상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그가 펴낸 <백년을 살아보니>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행복 예습&gt; 등을 읽게 됐다. 대학에 입학해 처음 봤을 때 그는 환갑 직전이었는데, 어느새 100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10대 후반이었던 나 역시 환갑에 다가서는 나이가 된 셈이다.

개인적 기억이 길어졌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김형석의 ‘100세 철학’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김형석이 대중에게 고독과 영원의 사상가였다면, 이제 그는 지혜와 행복의 사상가로 다가서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나이 듦을 피할 순 없다. 언젠가 찾아오게 돼 있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늙어가야 할까. 김형석은 말을 잇는다. 젊었을 땐 용기가 필요하다면, 늙었을 땐 지혜가 요구된다. 지혜의 핵심은 자기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다. 우리 인간은 늙어서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고, 다음 세대에게 존경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 권리와 의무를 다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공부하고, 취미 생활을 하며,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는 들려준다.

김형석의 주장이 크게 새로울 건 없다. 그의 책들은 철학적 담론이라기보다 대중적 에세이다. 돌아보면 그는 처음부터 시민을 위한 사상가였지 전문가를 위한 철학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대중적 에세이라고 해서 사유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보사회의 진전과 네트워크사회의 만개로 우리 인류는 본격적인 대중사회를 이제야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사회문제라 하더라도 제도적 처방과 개인적 대응이 동시에 중요하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제도는 노후복지를 강화하고 고용 및 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해야 한다. 50%에 육박하는 노인빈곤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노인자살률을 지켜보면, 노후 정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정치사회는 노후 대책과 노후복지의 제도적 처방에 대한 역사적 타협을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늙어감에 대해 개인적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 60세를 전후로 은퇴한 후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낼지를 50세에 다가서면서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든 나날로 이어지는 삶이라면,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남은 5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자기만의 생각과 방법을 포함한 ‘후반기 인생’의 여행 지도를 마련하는 실존적 과제는 개인적 대응의 몫인 셈이다.

김형석의 정치적 견해까지 동의하진 않는다. 그러나 정치적 판단은 그의 사유의 일부일 따름이다. 경험만큼 더 강력한 설득의 언어는 없다. 공부와 취미와 봉사의 노후 생활은 절로 획득되는 게 아니다. 습관과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고 요구된다. 오십에 다가서는 이들에게 감히 권하는 바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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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오대학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눈을 뜬 것은 1991년 11월28일 김학순 할머니의 NHK TV 인터뷰를 접하면서부터다. 그의 첫 작업은 방위청 도서관, 외교사료관 등을 돌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일이었다. 그 성과가 <종군위안부 자료집>(1992)이다. 그는 <종군위안부> <공동연구-일본군 위안부> 등을 잇따라 펴냈다. 그의 연구로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설 땅을 잃었다. 쑤즈량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1993년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상하이, 난징 등 일본군 점령지를 돌며 피해자를 찾아 구술을 정리했다. 상하이에서만 172곳의 위안소를 찾아 학계에 발표했다. <일본군 성노예> 등 여러 권의 연구서와 자료집을 펴낸 그는 난징 리지샹위안소진열관 초대 관장을 지냈다. 현재는 중국 위안부문제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한국에는 요시미나 쑤즈량 같은 일본군 위안부 연구 권위자가 없다.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나온 뒤에도 한국 학계는 조용했다. 일본군 위안부 최대 피해국에서 정부와 역사학자가 수수방관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한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국정신대문제협의회(정대협)나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여성·시민단체의 몫이었다. 연구는 여성학·법학·문학 분야에서 실체가 아닌 담론 중심으로 이뤄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발굴한 문서·자료는 거의 없다. 그러니 광주 나눔의 집 역사관에 전시된 사진·도면·서적이 대부분 일본·중국 자료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난해 8월과 9월, ‘위안부’ 국책연구소가 나란히 문을 열었다. 여성가족부 산하의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와 동북아역사재단의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가 그것이다. 여가부 연구소는 조직의 독립성 논란이 일면서 초대 소장이 사임하는 등 파행하고 있다. 반면 동북아재단 연구센터는 안착하는 분위기다. 한국사·중국사·일본정치·국제법 전공의 연구원을 갖춘 연구센터는 민관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허브를 지향한다고 한다. 센터는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연구서를 낸 데 이어 최근 <일본군 ‘위안부’ 자료 목록집>(4권)을 냈다. 이제야 일본군 위안부 연구가 첫발을 떼는 것 같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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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사진 신부 천연희의 이야기>(일조각·2018)를 읽다 놀라고 또 부끄러웠다. 1915년 19세의 나이에 혈혈단신 하와이로 이주하여 불굴의 생애를 살아낸 천연희라는 여성은, 사진 신부와 1910년대 조선 여성들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었다. 그가 얼굴도 모르는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와 결혼하기로 한 것은 가난에 떠밀린 탓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 동기로 하와이행을 결심했다. 일제의 억압과 차별 때문에 이 땅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 생각했고, 자유와 민주주의 나라에서 나래를 펴고 싶었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의 학교 친구들도 너도나도 태평양을 건너는 자유·평등의 모험을 꿈꾸었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런 여성 청년들이 4년 뒤의 치열했던 진주 3·1운동의 주역 아니었을까?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 스틸 이미지

그처럼 일제에 대한 저항은 단지 ‘민족해방’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 인간됨과 자유의지의 소산이었다. 성별이나 나이를 초월했다. 유관순을 평범하면서도 타협을 모르는 순수한 인간으로 그린 영화 <항거>의 엔딩크레디트는 유관순 사후의 사실이다. 17세 여학생 유관순을 고문하여 죽이는 데 가담한 정춘양이라는 이름의 총독부 하급관리는 해방 이후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반민특위가 해체돼버렸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비난한 바로 그 반민특위다. 1949년 당시 반민특위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 나섰던 극우 친일파의 책략은 나 원내대표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들도 반민특위가 ‘민족을 분열시키는 좌파’라는 선동술을 폈다. 반민특위에 대한 공격과 그 해체가 어떤 역사적 맥락을 갖는지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의 나 원내대표에 대한 국회의원 사퇴 요구에 깊이 공감한다.

친일은 왜 죄악이며, 친일파는 왜 철저히 단죄했어야 하는가? 친일파가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식의 언표는 불충분하며 시대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친일’이라는 개념은 일제의 인종주의와 군국주의에 동조하고 그 하청을 받아 저지른 반민주, 반인권, 반평화, 반여성 범죄 행위 사실에 대한 대유다.

그리고 2010년대의 한국에서 ‘친일청산’은 어떤 실질적인 의미가 있나? 과거의 일제 잔재나 친일파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이 땅에 여전히 힘겨운 탈식민의 과제가 있고 일본의 재무장 기도와 우익의 발호가 한반도의 평화·안보에 잠재 위협이기 때문이다. 또한 친일청산은 대한민국의 왜곡된 발전사를 환기하고 매판적 기득권 구조에 대한 비판을 함축한다.

그래서 누리꾼들이 퍼뜨리고 민주평화당이 애용하는 ‘토착 왜구’는 흥미롭고 함축적인 조어다. 이 말은 외세와 분단상황에 기생하는 세력이 약탈적 부를 누리면서 반민주·반인권·반평화의 행태를 멈추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데 적합한 면이 있다.

그러나 뭔가가 부족하다. 나는 이 부족감을 올해 정부가 많은 예산을 들여 벌인 대규모 독립운동 선양과 ‘대한민국 정통성 다시 세우기’ 사업에서도 느꼈다.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친일청산이든, 임시정부의 정통성이든 실질적 민주·평등과 연관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는 점을 보태고 싶다. 청년들과 서민 대중은 대규모 3·1운동 기념행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만약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여전히 견고하다면 극우·수구가 저렇게 기승을 부릴까? 원내대표라는 자가 국회연설에서 철 지난 종북 타령을 늘어놓고 천한 역사의식을 여과 없이 드러낼까? 그들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화해·평화의 길이 순탄치 않아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이념과 혐오의 정치를 재개하며 대중의 뜻을 호도·횡령하려 한다.

이념정치에 중독됐던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집권 초부터 몰락의 시점까지 쉬지 않고 ‘역사전쟁’을 벌였던 사실을 상기한다. 그들은 아무에게나 종북 좌파 프레임을 씌우고 비현실적인 북한 붕괴론을 신앙화했다. 뉴라이트를 앞세워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고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했다. 물론 민심은 드라이아이스처럼 냉정했다. 그들의 역사관이 사실도 진실도 담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나 민생과 연관 없는 이념적 역사 논란이나 정통론의 추구가 허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이한 국정운영이나 개선되지 않은 양극화야말로, 촛불이 진압해놓은 수구·냉전·극우 정치가 재생하는 거름밭이다. 시민사회는 ‘토착 왜구’의 재흥을 차단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각오를 다지는 듯하다. 3월23일에는 ‘자유한국당 해체’와 ‘사회 대개혁’을 모토로 한 범국민 촛불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정부·여당도 각오를 완전히 새롭게 하여 기득권 구조의 전면 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매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총선에서 민심은 집권세력을 먼저 심판할 것이다. 그 조짐이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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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 다니엘 블레이크>라는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은 심장질환으로 평생 해오던 목수 일을 못하게 되자 전문의 소견에 따라 정부 지원금을 받으려고 신청을 한다. 그러나 마치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공무원들의 대응으로 인해 끝없는 좌절에 부딪힌다. 그의 고군분투는 끝내 관료주의의 벽을 뚫지 못하고, 어쩌면 관료주의의 활약상(?)은 저리도 모든 나라가 똑같을까 싶어서 새삼 화가 날 지경이다. 주인공은 결국 인간이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거나 같다고 하면서 자기는 지원금 대상자 명단에서 빼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고 나서 그가 한 다음 행동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관공서 건물을 나온 그가 벽에다 자신의 심정을 크게 쓰는 장면이다. 그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라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그 순간 내게는 그 ‘I’라는 글자가 크게 다가왔다. 모양 자체가 힘이 넘친다. 든든한 느낌도 든다. 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모습을 그 글자 하나로 다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 저절로 주인공을 응원하는 심정이 되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 이미지

그러면서 문득 한글로 ‘나’라는 글자 역시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질문도 떠올랐다. 왜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인가. 왜 나가 마도 아니고 바도 아니고 나일까? 일단 나는 열린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나를 발음할 때는 입이 크게 열린다. 밖으로 내뱉는 소리인 것이다. 반면에 너를 발음할 때는 나에 비해 입이 오므라진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처음 한글을 만드신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가나다라마바사… 등에서는 나라는 발음이 가장 맑게 들리고 발음하기도 가장 쉽다(물론 내 생각에 그렇다는 뜻이다). 아무튼 내 생각은 더 비약해 나라는 글자가 나인 이유는 그만큼 나에 대해서 세상에 밝고 당당하게 맞서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데까지 나갔다. ‘나’라는 글자는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며, 그것이 뜻하는 바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려야 하는 주체는 바로 나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언젠가 법적인 문제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의 문제는 분명 자기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계약을 맺었는데도 변호사를 만나면 주눅이 들어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런 일로 병원을 찾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임상에서는 많이 만나는 사례 중 하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한다는 문제로 깊이 고민한다.

우리는 왜 그처럼 상대에게 당당하게 나를 주장하지 못할까? 첫 번째는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다.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면 나에게 손해를 끼칠 것 같은, 즉 나를 싫어해서 내 문제를 제대로 봐주지 않거나 나에게 나쁘게 할 것 같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주위의 가르침 속에서 자라난다. 어릴 때 듣는 동화도 늘 우는 아이나 떼쓰는 아이는 호랑이가 잡아가고, 콩쥐나 신데렐라처럼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에게도 말없이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결말이 주어진다는 내용이 대부분 아니던가. 즉 애초부터 상대방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무언의 가르침 속에서 어른이 되는 셈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나를 주장하는 것이 어색할 수밖에 없다.

자기주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자기주장이 지나치면 저 혼자 잘난 척한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다고 계속해서 순응하자니 나라는 존재는 껍데기만 있는 것 같아 불편한 심정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간결하되 단호하게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영어의 ‘I’라는 글자나 한글의 ‘나’라는 글자가 간결하면서도 당당하게, 세상을 향해 나를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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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공동 브리핑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장자연 리스트, 버닝썬 사건에 대한 엄정한 조사를 약속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사건의 실체와 제기되는 여러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박 장관은 김학의·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활동기간을 2개월 연장하기로 했다”며 “이 기간 진상규명을 계속 진행하되, 드러나는 범죄사실은 신속히 수사로 전환해 검찰이 수사토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유착을 사과하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두철미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두 장관의 다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참혹한 열패감과 절망감을 떠안게 될 것이다.

예정 없던 브리핑서 고개 숙인 두 장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오른쪽)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과거사위원회 활동 및 버닝썬 수사 관련 합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세 가지 사건은 폭력과 부패로 얼룩진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맨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특권층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모욕·억압·착취하고, 공권력은 정의를 실현하는 대신 불의와 한 몸이 돼 사익을 취했다. 온 나라가 의심하는 가해 혐의자는 멀쩡히 고개 들고 다니는데, 피해자와 목격자들은 숨어 살거나 불안에 떨어야 했다. 시민이 충격과 분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사건을 구성하는 선정적 요소들 때문만이 아니다. 이들 사건이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구조’에서 기인했음을 본능적으로 느껴서다. 돈과 권력, 명성이 법보다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나와 내 가족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아채서다. 세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있는 이들을 엄중히 단죄하는 일은 단순한 형사사법의 과정이 아니다.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가 과거와 결별하고, 윤리적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이제 검찰과 경찰은 심판대에 올랐다. 의혹의 전말을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하면 수사기관으로서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더욱이 국회에서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터다. 검경은 먼저 부실수사와 유착 의혹 등 자신들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곪은 곳은 단호히 도려내야 한다. 제 식구라고 감싸려 하거나 조직 보호 운운하며 좌고우면했다가는 주권자의 호된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수사 대상과 범위에도 성역이 없어야 한다. 유력 정치인이 됐든, 언론사주가 됐든 주저하지 말고 의혹의 핵심부를 향해 직진해야 한다. 이번에도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한 이들은 법망을 빠져나가고, 피라미드 밑바닥만 건드리는 식으로 끝나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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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의 한 공군부대에서 지난 18일 신형 지대공 미사일 ‘천궁’ 한 발이 정비 중 발사돼 공중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민가와 떨어진 곳인 데다 오작동 시 자동으로 미사일이 폭발하게 설계됐기 때문인지 별다른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40㎞의 사거리를 가진 미사일이 고도 7㎞ 상공에서 폭발한 터라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과거에도 미사일이 잘못 발사된 사고는 몇차례 있었다. 1998년 12월 인천 공군 방공포대에서 탄두가 장착된 나이키 지대공 미사일 1발이 오작동으로 발사돼 파편 수만개가 인근 주택가까지 날아든 것이 대표적이다. 일부 주민이 다치기까지 한 최악의 사고였다. 이듬해 10월에는 충남 보령에서 사격훈련 중 같은 기종의 미사일이 폭발했다. 그런데 두 미사일은 모두 제조사가 성능 보장 기간을 몇년씩 넘긴 낡은 무기였다.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미사일 회로에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은 구형 호크 미사일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비 8000억원을 들여 국내에서 자체 개발 중인 최신형 미사일이다. 2017년 11월 실사격 후 실전 배치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버튼도 누르지 않았는데 오발사됐다는 군의 설명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공군 측은 일단 기계 결함에 의한 사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천궁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보다 낮은 고도의 비행물체를 요격하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무기 중 하나다. 이런 무기에 기계적 결함이 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군은 곧 최대 20㎞ 고도의 탄도미사일도 맞혀 떨어뜨리는 천궁 개량형도 개발해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추정대로 기계 결함에 의한 사고가 맞다면 보완 조치가 나올 때까지 이 미사일의 운용은 중단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미사일 방어태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 시급한 것은 20년 만에 일어난 미사일 오발 사고의 원인을 밝혀내는 일이다. 군 당국은 숨김없이 신속하게 조사를 진행해 다시는 이런 사고로 시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뒤늦게 군 기강 해이에 의한 사고였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서는 곤란하다. 한국산 무기의 신뢰에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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