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 항공권을 양도한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 이후, 나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전보다는 조금 더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게 됐다. 90%에 가까운 수수료를 지불하고 1만8000원을 환불받느니 차라리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자,라는 이유로 시작한 별것 아닌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생 김민섭씨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적인 일이 의도치 않게 사회적인 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면서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사실 나에게 “환불받고 치킨이나 같이 시켜 먹지 뭐하는 거야”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 항공권을 양도받은 누군가가 즐겁게 여행을 다녀온다면 그 과정을 지켜본 나 역시 가성비 좋은 ‘소확행’을 누리게 되는 셈이다. 여행을 후원한 여러 개인들 역시, 그로 인해 스스로 행복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선한 연대, 우리 사회의 ‘착한 일’ 중 하나가 된 듯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표가 생겼다. 여기에 답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착함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착한 일 코스프레 같은 것을 늘 목도하며 살아가고, 스스로의 착한 일 역시 잘 인식하지 못한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작은 결론은, 착해지고 싶은 존재는 사회적 존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착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두 가지의 행위를 강박적으로 지속했다. 하나는 ‘아동 정기후원’이었고, 다른 하나는 ‘헌혈’이었다. 한 달에 3만원씩 특정 아동에게 돈을 보냈고 한 달에 한 번씩 헌혈을 했다. 내가 그것을 시작한 계기보다도 사실 ‘시기’가 문제였다. 나는 그때 대학원 과정생이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는 것조차 벅찼고 헌혈을 하러 갈 시간에 논문이나 더 쓰라는 핀잔도 많이 들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후줄근하다고 할 수 있을 그 시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누군가를 돕고 싶은 심정이 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나는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밤새 논문을 쓰고 발제 준비를 해도 그것을 마치고 나면 몹시 허무했다. 내가 쓴 글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 스스로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이 즐거우니까 버텨낸 것이기는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나는 이 사회에서 무엇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슬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헌혈을 하고 나의 피를 바라보던 중, ‘저 피는 나의 글과는 다르게 누군가에게 쓰이겠구나, 그러니까 저건 사회적인 물건이구나’ 하는 감정이 찾아왔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사회적 존재로서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대학원을 수료하기까지 70번에 가까운 헌혈을 했다. 정기후원을 시작할 때의 사정도 비슷했다. 자매결연, 그 ‘결연’이라는 단어를 소유할 수 있음에 감격했던 것 같다.

착한 일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를 사회적으로 연결시킨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그 마음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행위는 하는 편과 받는 편 모두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어야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얇고 느슨하지만 결코 끊어지지 않는 연결을 확장시켜 나간다. 그러한 착한 일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된다.

어느 아동과 연결되었던 날, 나는 “당신은 왜 후원을 하셨습니까?”하는 물음에 답해야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는 “저를 위해 후원합니다”하는 한 줄을 적었다. 게시판을 살펴보던 나는 몹시 놀랐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후원의 이유에 “저를 위해서…”라고 적은 것이다. 사실 모두가 외로웠고 사회적 존재가 되고 싶었나 보다. 그날 나는 별로 외롭지 않았다. 아직 “착한 일이란 무엇인가”하는 데 대한 답을 제대로 내지는 못했지만, 타인을 상상하는 데서부터 그 일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사회적 존재로서 외롭지 않기를, 당신과 누군가의 잘됨을 바라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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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 내내 간직해 온 열매가 아직도 붉은데 다시 새봄을 맞은 산수유는 꽃망울을 틔워냈다. 봄이다. 무채색의 칙칙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듯 봄꽃은 밝고 화려하다. 곧 벚꽃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도 필 것이다. 남들보다 서둘러 꽃을 피우면 비록 적은 양의 꿀을 제공하더라도  꽃가루를 실어 나를 벌들이 찾아들 것이기에 산수유가 저런 전략을 취했다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잎 없이 열린 공간으로 꽃가루가 바람을 타고 서발막대 거칠 것 없이 날아갈 수 있다는 점도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꽃은 대표적인 식물의 생식기관이다. 식물은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생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한다. 첫 번째는 잎에서 광합성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는 잎에서 만든 탄수화물로 꽃을 피우고 매개 동물을 유인할 꿀을 만드는 일이며 많은 수의 식물이 취하는 보편적인 방식이다. 두 번째는 생식에 들이는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지난해 저장해 두었던 탄수화물을 꽃 피우는 데 사용하는 산수유나 벚꽃이 이런 전략을 쓴다. 마지막은 생식기관이 직접 광합성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꽃은 광합성에 참여한다. 아마 가장 대표적인 것이 푸른색을 띤 꽃받침일 것이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갈 때까지 꽃받침은 적극적으로 광합성에 참여하기도 한다. 최근 나는 감을 보관하는 방법에 대해 기술한 호주 농림부의 출판물을 읽다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감의 초록색 꽃받침 네 개를 하나씩 떼 가면서 감의 크기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한 연구 결과였다. 놀랍게도 네 개 꽃받침을 온전히 가지고 있는 감의 크기가 제일 컸고 꽃받침 수가 줄어들면서 감의 크기는 비례적으로 작아졌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꽃받침 말고 꽃잎, 암술 혹은 수술대와 같은 꽃의 생식 부위에서도 광합성이 진행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사실 식물의 거의 모든 기관이 많든 적든 탄소를 고정하는 광합성 작업에 나서는 걸 알 수 있다. 익기 전의 과일이나 일년생 풀의 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맹그로브라는 식물은 뿌리로도 광합성을 한다. 물론 이파리에 비해 그 효율은 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밀의 쭉정이는 단위 면적당 광합성 효율이 잎의 75%에 이르기도 한다. 이삭의 수를 감안하면 이는 쉽사리 무시하지 못할 양이다.

광합성 전문 기관인 잎은 기공이라는 구멍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인다. 지금처럼 인간의 활동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수치가 증가하면 식물은 그 사실을 금방 알아채고 기공의 입구를 좁히거나 그 수를 줄임으로써 광합성 원자재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중국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1924년과 1998년에 채취한 은행나무 잎에서 기공의 수가 각각 134개에서 97개로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 식물학 잡지에 발표했다. 잎 뒷면에 있는 기공의 숫자를 세면 식물이 살았던 당시 대기 중에 존재했던 이산화탄소의 양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식물은 대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탄수화물의 재료인 이산화탄소를 확보할 수 있다. 

식물도 동물과 다름없이 자신이 만든 포도당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따라서 광합성을 하지 않는 온대 지방의 겨울이나 빛이 없는 깜깜한 밤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약간 증가한다. 전문 광합성 기관이 아닌 줄기나 과일 혹은 꽃받침은 자신들의 날숨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일부를 여투어 다시 쓰면서 광합성을 수행한다. 이렇게 식물은 따로 기공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경제를 운영해 나간다. 

동물이나 대부분의 세균은 갖지 못한 엽록체를 구비한 식물이나 조류가 이 행성에서 진행하는 광합성 과정은 실로 지구 전체를 먹여 살린다. 행성의 바깥에서 도달한 한 방향의 태양에너지를 지구 생명체가 포획하는 유일한 방법이 광합성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외부의 에너지를 지구 안으로 들여오는 통로로서 광합성 생명체들은 든든한 곡물 창고인 셈이지만 실제 이들은 지구에 도달하는 전체 태양에너지의 1%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식물의 생물량은 지구 전체 생명체의 80%에 육박한다. 2018년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와 미국의 칼텍 연구진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 전체의 탄소 무게가 5500억t이고 그중 식물의 무게가 4500억t에 이른다고 추정했고 그 연구 결과를 미 국립과학원 회보에 발표했다. 이 수치는 우리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 인구는 약 12년마다 10억명씩 늘고 있지만 인간의 주요 곡물인 밀과 쌀 생산량이 인구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학자들은 태양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가까운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식물의 경제 방식을 배우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인류의 사활이 걸려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식물이 잎뿐만 아니라 여러 기관을 최대한 이용하여 대기권 혹은 자신의 날숨 속에 들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영양소로 변환시키는 과정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인간이 작물화에 성공한 밀과 쌀 같은 곡물의 쭉정이조차 광합성을 한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하다. 식물의 이런 기예를 보고 있으면 생명의 역사에 기여한 인간의 발명품이 알코올을 농축시키거나 끓는점에 따라 석유를 분류하는 ‘증류’ 또는 ‘바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마저 든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이 광합성에 참여하는 분자 기구나 유전적 기초를 비로소 눈치채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엽록소를 동물의 세포에 이식하든, 식물의 잎이나 뿌리를 흉내 낸 로봇을 제작하든 인류의 운명은 앞으로도 거의 수십억년 동안 무상으로 제공될 가능성이 큰 저 태양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올해도 여전히 봄은 꽃으로 그득하겠지만 이젠 그 꽃받침에 내려앉는 태양빛마저도 눈여겨보게 된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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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영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세상에서 사는 일이란 원래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최근에 내가 겪은 몇 가지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

물리적인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태어난 뒤로,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접하는 경험과 인식하는 세상이 다르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일을 겪어도 완전히 다른 기억을 가질 수 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여성이 훨씬 더 위험한 세상에 살고 더 많은 차별을 받는다.

몇 년 전 일이다. 회사에서 야근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기사님에게 행선지를 이야기하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택시는 낯선 길로 가고 있었다. 주변에 가로등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순간 겁이 났다. 그러나 곧 별일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택시 강도나 납치범이라면 술에 취하지도 않은 멀쩡한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을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잠이 들었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기사님에게 슬쩍 물어보니 본인이 아는 지름길을 택해서 왔다고 했다. 실제로 택시비도 조금 적게 나왔다.

집에 와서 아내와 이 짧은 해프닝에 대해 이야기해 보니 ‘남자라서 다행’이었다. 아내는 여성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쉽게 다시 잠들지는 못했을 것이라 했다. 맞다. 내가 여성이었다면 택시가 집 앞에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 식은땀을 흘렸을 것이다. 어쩌면 한밤중에 이런 택시를 잡아탄 스스로를 탓했을지도 모른다.

여성·흑인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캡틴 마블>. 월드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얼마 전 영화 <캡틴 마블>을 봤다. ‘페미니즘 영화’라며 일부 남성들이 관람을 거부하고 있는 작품이다. 우려와 달리 페미니즘 요소가 극의 전개를 해치지 않았다. ‘여자들은 할 수 없을 것이란 편견을 이겨내는 여주인공’은 너무나 교과서적이라 ‘진짜 이게 페미니즘 요소의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해 개봉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다음달 개봉하는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이어주는 영화로는 무난하다고 여겼다.

같은 영화를 보고 온 회사 여자 후배의 반응은 나와 달랐다. 평소 마블 영화를 즐기지 않았지만 <캡틴 마블>은 정말 재밌고 감동적으로 봤다고 했다.

특히 “여자는 조종사가 될 수 없어” “여자는 너무 감정적이야” “여자가 하기엔 무리야”라는 ‘조언’을 쉴 새 없이 받으며 자란 주인공이 이런 편견을 박살내고 우주 최강의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가슴을 두드린 모양이었다. 이 후배는 ‘딸과 함께 볼 영화’를 찾고 있는 선배에게 <캡틴 마블>을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최근 성폭력 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방송인 정준영의 범행을 보는 시선에도 ‘온도차’가 있다. 획일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남성들은 대체로 정준영의 범죄를 ‘실재하는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마도 ‘훨씬 더 중요한 사건이 많은데 왜 언론은 정준영 사건만을 다루나. 뭔가 음모가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남성일 것이다. 반면 여성들에게 정준영의 범행은 언제라도 눈앞에 닥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니 ‘다른 사건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 역시 엄청나게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외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은 원래 다르게 태어난 존재이니 별 수 없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의 평화, 직장의 평화, 궁극적으로는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두 세계의 간극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사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여성들은 두 세계 간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와중에 비판을 받고, 논란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 이제 공은 반대편에 있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 가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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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 절집엔 고목 매화들이 듬뿍한 꽃들을 내밀고 있더라. 입술연지처럼 고운 꽃을. 지난겨울 동치미가 먹고 싶었나 캥캥 울던 고라니도 간데없고 외따롭게 지붕을 인 암자엔 노승의 기침소리만 뎅그렇다. 같이 나들이한 친구가 “나 절에 들어가서 살까?” 실없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절집도 장기 투숙자는 골라서 받는다. 또 행자스님이라도 아무나 받는 게 아니지. 피식하면 하는 소리가 ‘고향에 내려가서 살겠다, 절에 들어가 살고프다’ 어쩐다 하지만 그게 말만큼 쉽나. 만만한 게 절집이다. 정치인이 선거운동을 하면서 “유권자 여러분. 일단 저를 실업자로 만들지만 말아주세요. 실업에서 구해 주시면 반드시 유권자 여러분에게 구직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능청도 좋아라. 그래놓고는 몰라요로 하세월이렷다.

구름이 비를 꾹 참고 있다. 꾸물꾸물하다. 전화기 저편에서 한 아이가 실업자 신세가 되었노라 하소연을 했다. 짐마차를 모는 근면한 노동자처럼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온 아이. 이제 뭘 할 거냐 물으니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다시 구직활동을 해보겠노라고. 그 아이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혼자 벌어 월세를 내고 햇반을 데워 먹으며 살아간다. 친구들 다 가는 대학도 가지 못했다. 복날에 술 취한 개도 “개장수들 다 나오라고 그래!” 허풍을 떤다고 하지. 이 아이는 항상 마음을 움츠리고 어깨도 굽어 있다. 목소리도 모기소리만 하다.

지금은 실업급여라도 있어 다행이어라. 전에는 당장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했고, 당일부터 알거지였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정년도 뭣도 없고 좋아. 다만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는 점. 실업자 아닌 실업자라는 점. 누가 그랬다. 아직도 원고료 몇 푼이라도 받고 사는 작가가 몇이나 되겠냐고. 운 좋은 거라고. 쥐꼬리만 한 원고료를 한번은 동생 스님이 계시는 절집에 시주했다. 스님도 시를 쓴다. 실업자 시인들, 모두 원고료를 받는 세상이 속히 오기를 바라면서 살짝 밀어드렸다. 그 덕분인지 요즘 시가 솔솔 써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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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드린다. 팀 애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초 열린 미국 노동정책자문위원회에서 애플 최고경영자(CEO)에게 “애플이 미국 내 투자를 많이 했다”며 한 말이다. 그런데 애플의 CEO는 팀 쿡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실수는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백악관 안보회의에서는 아시아국가 부탄을 ‘부톤’으로, 네팔을 ‘니플’로 잘못 불렀다. 유럽 테러를 이야기하면서 테러가 발생하지도 않은 스웨덴을 언급하기도 했다.

말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총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태평양 전쟁때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가 당시 스즈키 간타로 일본 총리가 ‘모쿠사쓰(默殺·묵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파멸 중 하나를 택하라”는 미군의 통지에 “당분간 보류한다”는 뜻으로 말한다는 것이 “무시하겠다”로 이해되면서 원폭투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호주 방문 때, 맬컴 턴불 당시 호주 총리와 루시 여사에게 “이렇게 환대해주셔서 당신과 당신의 맛있어 보이는(delicious) 부인께 감사드린다”고 영어로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프랑스어로 ‘매력적’이라는 뜻을 가진 델리시외즈(delicieuse)를 딜리셔스(delicious)로 혼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2016년 연설에서 “스스로 발전시키고(라즈비바츠) 열심히 일하라”고 말하려던 것을 “옷을 벗고(라즈디바츠) 땀 흘릴 때까지 일하라”고 잘못 전달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국빈 방문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에게 ‘슬라맛 소르(selamat sore·안녕하세요)’라고 인도네시아어로 인사하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말레이시아어 인사말 ‘슬라맛 쁘탕(Selamat petang)’을 잘못 말한 것이다. 두 나라는 전통적인 ‘앙숙’ 관계여서 모하맛 총리는 물론 말레이시아 국민들이 불쾌했을 법하다.

청와대 측은 “현지어 인사말 작성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외교 참사’다. ‘작은 구멍에도 댐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경구를 청와대는 새겨들어야 한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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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지역구 225석, 권역별 비례 75석, 연동률 50% 적용’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혁 합의안을 마련해 정당별 추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리기 위한 절차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내에서 합의안과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대 목소리가 분출해 변수로 등장했다. 패스트트랙 상정에는 ‘전체 의석의 5분의 3’ 또는 소관 상임위인 ‘정개특위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이 필요하다. 의석 분포상 바른미래당이 당내 추인을 받지 못해 이탈할 경우 패스트트랙은 어려워진다.

바른미래당은 20일 의원총회를 열어 선거제와 패스트트랙 상정을 논의했으나 유승민 전 대표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강력 반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의총으로 넘겼다. 바른미래당 의원 29명 중 10명 안팎이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공수처법과 관련해 당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과의 공수처법 조율도 난제지만, 선거제 합의안과 패스트트랙 자체에 반대하는 의원들 입장이 강경해 추인이 제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한국당의 반대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지만,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가세하면서 여야 4당이 어렵사리 마련한 선거제 개혁이 자칫 좌초될 위기에 처한 모양이다.

여야 4당 합의안은 정당득표율을 의석수와 정확히 일치시키는 완전 연동형과는 거리가 있지만, 현행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비해 표심의 왜곡을 줄이고 지역주의에 기반한 거대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완화하는 개혁의 취지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계층의 의사가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그런 선거제 개혁 방향을 추동해온 바른미래당에서 이제 와 개혁의 발목을 잡는 ‘반동’의 기류가 대두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눈앞의 이해에 집착해 ‘정치개혁의 최고’라는 선거제 개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선거제 합의안을 추인했다. 바른미래당도 단식투쟁까지 해가며 지탱해온 선거제 개혁의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는, 역사에 죄를 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한국당이 결사반대하는 상황에서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실패하면 선거제 개혁은 물 건너간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선거제 개혁의 성패가 달렸다는 점을 명심하고 반대 의원들의 설득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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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에 대한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20일 정부조사연구단은 포항지진이 인근에 건설 중인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고 발표했다. 연구단은 “지열발전을 위한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면서 주입한 고압의 물이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자극해 지진을 일으켰다”고 했다. 지열발전이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열발전소가 없었다면 대규모 지진이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재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박근혜 정부 때 가동을 시작한 포항 지열발전소는 국내 최초의 지열발전소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인공저류 지열발전방식’을 택했다. 한국은 지열발전 건설기술 수준이 낮고 더구나 시범사업이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위험요인에 대비해야 했다. 미국이나 스위스 등지에서 지열발전소가 땅에 물을 주입하는 과정에서 지진을 일으킨 바 있다. 스위스에서는 발전소 건설을 중단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런 경고를 무시했다. 시작 단계부터 주먹구구로 일관한 것이다. 정부조사연구단은 지진 발생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단층대’를 거론했다. 이는 발전소 건립 시 지질조사가 부실했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5㎞ 깊이에 지하수 온도가 최고 180도에 이르는 등 화산지역이 아닌 곳으로는 지열발전의 최적지라고 했다. 지질구조상으로 안전하다는 언급은 없었다. 무슨 근거로 최적지로 뽑았는지 묻고 싶다.

안전불감증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 때 대형사고의 전조증상이 발생했는데도 간과한 것이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4월 사이에 물을 넣은 직후 4차례에 걸쳐 규모 2.0~3.1의 지진이 발전소 인근 지역에서 발생했다. 그렇다면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원인 규명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귓등으로만 듣다가 포항지진 후에야 공사를 중단했다. “주민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열발전 사업을 중단하고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철저한 조사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피해보상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자칫 원자력발전소 예찬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지열발전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과대선전한다. 견강부회일 뿐이다. 원전은 광범위한 지역에 장기간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일본이 아직도 후쿠시마 후유증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앞으로 할 일은 원전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업그레이드된 신·재생에너지 방도를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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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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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즐겨 보던 무협영화나 소설에는 공식이 있었다. 우직한 주인공이 무공 높은 노인을 찾아가 제자를 자청한다. 대부분은 가족을 죽인 악당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마음이 급한데 스승은 명성과 달리 수년 동안 무술은 안 가르치고 잡일만 시킨다. 청소, 밥짓기, 물긷기, 장작패기 등. 자신이 문하생인지 가사 도우미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복수도 하기 전에 원수가 자연사하는 거 아닌가 걱정도 된다. 주인공이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 먼저 들어와있던 수제자가 속삭인다.

“아무래도 저 사부는 가짜인 듯….” “이건 열정 페이, 노동력 착취야.”

영리한 녀석답게 강호의 유명한 소속사, 아니 무술학교로 옮기고 얼마 안 가 스타 무술인이 된다. 이상하게 스승은 녀석이 떠난 후 고급과정을 전수하기 시작하고, 주인공은 절대무공을 연마한다. 결국 두 녀석이 맞붙고 처음엔 기술 좋은 영리한 녀석이 이기지만, 기본기 탄탄한 우직한 녀석이 강호무림을 평정한다.

스토리는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골격은 늘 비슷했다. 당시엔 스승들의 느리고 심술궂은 교육법이 다소 못마땅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른 것들이 보인다.  

‘저 시간이 모두 내공을 기르는 과정이었구나. 쌀의 돌을 고르며 집중력을 배우고, 물 지게를 지며 균형감도 기르고, 빨래와 나무를 하며 근육과 기초체력도 강화되었겠다. 헬스시설도 없고, 헤드폰 쓰고 집중력 기르는 교재도 없던 때 아닌가. 청결한 일상과 노동의 소중함도 깨닫고, 무엇보다 욕구를 조절하고 인내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을 보았겠지.’

요즘 같으면 법정 소송도 들어갈 일이지만, 스승이 제2의 아버지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자식 같은 제자의 재능계발 이상으로 인성함양도 중요했을 것이다. 같은 것을 배워도 어떤 이는 세상에 도움이 되고 어떤 이는 해악을 끼치는 것을 아는 지혜로운 스승이라면 더욱. 

최근 ‘버닝썬’ 사태로 인해 연예인들의 묻혔던 일탈 행각이 다시 거론되며, 유명 연예 소속사들의 인재 철학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전혀 다른 가치관을 보여준 JYP 박진영과 YG 양현석의 인터뷰 내용들이 그렇다. 박진영은 “아무리 노래 잘하고 춤을 잘 춰도 맑고 건강하지 않으면 함께 일하기 싫다. 그런 친구들의 꿈을 굳이 왜 이뤄줘야 하는지 모르겠고, 돈을 버는 것 이상으로 과정이 행복한 게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능력과 자질이 없는 친구들을 뽑을 수는 없지만, 재능이 특출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배려하고 팀워크를 잘 이뤄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반면 양현석은 “박진영은 착한 사람이 좋다지만 나는 반대다. 우선 순위를 두자면 재능 있는 사람, 열심히 하는 사람, 착한 사람 순이다. 20년간 일하다 보니 ‘병아리 감별사’처럼 빠르게 스타를 판단하는 눈이 생겼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언론이나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는 어떤 이의 철학을 듣고 보는 대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생각의 일부만으로 한 사람의 정신세계를 다 알기도 힘들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YG의 유명 연예인들이 대마초 사건부터 마약 밀반입, 군복무 불성실에 특혜논란, 사기횡령까지 줄줄이 문제를 일으킨 반면 JYP 쪽은 큰 문제가 없는 편이고, 이번 버닝썬 사태에도 수많은 소속사 연예인들이 거론되는 데 반해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들을 보면서 대표자들의 운영철학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뛰어난 재능으로 인정받고 흠모의 대상이 되던 이들의 일탈 소식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이야기한다. “먼저 인간이 되어야지.”

하지만 말과 달리 부모도 스승도 온통 스펙 쌓기와 명성, 부와 권력을 추종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 ‘인간됨’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무법천지, 주화입마의 상태에 빠진 유명인들은 그저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의 하나가 아닐지.

<박선화 마음탐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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