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씁니다. 식당을 하는 동안 응원의 편지를 보내주었던 한 재소자에게 보내는, 뒤늦은 답장입니다. 다른 분들께는 죄송합니다만, 이보다 더 좋은 방도가 없어서요. 식당을 연 것이 알려지고 감옥의 재소자들로부터 꽤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새로운 시도와 출발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개중에는 그곳으로 돈이나 책을 보내달라거나, 언제 출소할 예정이니 도움을 달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20년 전, 문신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써서 소설가가 되었을 때, 그 비슷한 편지들을 받기는 했네요. 자신의 몸에도 문신이 있다, 왜 자꾸 문신을 하게 되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편견을 뚫고 잘 살아보겠다, 대략 그런 내용들. 

식당은 정리를 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부디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 여행도 다니며 편히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하셨는데. 바라는 성공은 아닌 듯합니다. 폐업의 절차를 밟는 일은 꽤 쓰라린 일이었습니다. 애지중지 사용하던 주방 기재와 용품들이 헐값에 실려가는 걸 지켜보고, 가스배관은 연장한 만큼 철거비도 더 든다는 사소한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약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고 퇴직금 탈탈 털어 시작한 일이었다면, 극단적인 결심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허망했습니다. 그래도 내겐 돌아갈 곳이 있으니, 다 잃고 빈손이 되어도 받아줄 내 든든한 뒷배, 소설. 차라리 홀가분하기도 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봇물처럼 터져나올 줄 알았지요, 글이. 육체노동을 줄이고 시간이 확보되면, 그동안 차곡차곡 담아두었던 이야깃거리들이, 좔좔좔 흘러내릴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그것도 가장 구석진 곳으로 기어들어가, 책이나 읽으며 지냈습니다. 자판에 손을 얹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왔습니다. 길을 잃었고 말을 잃었습니다. 다시 쓸 수 있을까. 이러다가 소설마저 폐업하게 되는 건 아닌가. 그럼 다시 식당을 해야 하나, 이제 식당이 뒷배란 말인가?    

그러다가 당신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식당을 하는 동안에는 여유가 없어 꼼꼼히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날씨와 안부와 다짐과 후회와 응원으로 이루어진 빤한 편지로 치부했는지도.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써서 보내는 당신이 참 대견하기는 했습니다. 편지는 대략 30여통이 되더군요. 펼쳐놓고 보니 제법 많은 분량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정리를 한 다음 찬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감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편지를 쓸 수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일요일 편지를 썼습니다. 분노와 원망을 다스리기 위해 어떤 명상들을 하고 있는지, 어떤 위기가 있었고 어떻게 흔들렸고 어떻게 헤쳐 나갔는지에 대해 썼습니다. 식당에 대한 걱정과 충고, 기도와 응원도 빠지지 않았지요. 고맙습니다. 그곳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써 보겠다는 다짐도 있었지요. 

매주 일요일 날짜가 찍혀 있던 편지가 2주, 한 달로 간격을 벌리더니, 작년 10월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간격이 벌어진 기간의 편지에서 위기가 감지됐습니다. 편지나 일기를 쓸 수 없게 만드는 감옥의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일기를 쓴 지 오래되었다며 다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최근에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다가 77세에 이르러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 어느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40여권의 저서를 가지고 있다 하는데, 번역 출간된 작품이 없어 정작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습니다. 낯선 작가임에도 덥석 집어 들고 읽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명치가 저려오는 바로 그 질문. 나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도, 글을 써왔던 사람이라면 한번쯤,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해왔을 질문. 다시 쓸 수 있을까. 노작가의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로 시작해 “마지막 말은 모국어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문장으로 끝납니다. 이 작가는 새 출발의 언어를 발견한 듯합니다. 모국어. 모국어와 상용어가 따로 분리되지 않은 나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40여권이나 써왔으면 그만 써도 되는 게 아닌가 싶던 차에, 조금 맥 빠지는 종착지였습니다. 그래서 그 앞의 문장 “말할 것이 있으면 세상의 모든 언어로 말할 수 있다”를 마지막 문장으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어쨌거나 내가 쓰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명확해졌습니다. 후지게 쓸까봐. 잘 쓰지 못할까봐. 새로운 인생이 없을까봐. 두려웠던 겁니다. 

노작가의 책이 아니라 다시 펼쳐본 당신의 편지 덕분에 알았습니다. 가 닿았는지 확인할 수도 없고 응답도 없지만, 지치지 않고 묵묵히 써내려간 글들. 어떤 작가보다 용감하고 또 아름다웠습니다. 그 속에서 당신은 자유였습니다. 그러니 부디 글 쓰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저도 다시 쓰기로 했습니다. 아예 쓰지 않느니 후지게라도 쓰겠습니다. 쓰고 있지 않는 동안에는 그곳이 어디든 감옥 같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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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이민자 출신인 세 살 소년 무카드는 총기를 난사하고 있던 호주 출신 테러범 태런트에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달려갔다. 형들이 즐겨 하던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카드는 지난주 발생한 뉴질랜드 총기사건의 희생자 가운데 가장 어린 아이다. 

한 남자는 자신의 조국이 아닌 곳에서 끔찍한 살인들을 저질렀고, 한 아이는 조국이 아닌 곳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테러범 태런트는 이 범행을 계획하기 전,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사진들을 SNS에 올렸다. 그중에는 북한에 간 사진도 있었다. 또한 SNS를 통해 전 세계 극우주의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신념도 강화해 나갔다. 그가 속한 세상은 글로벌 네트워크 위에 세워진 기괴한 성이었다. 

그는 여행 중 무엇을 느꼈을까? 현지인들과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들을 토대로 추측하건대, 여행이 가져다주는 묘미에 흠뻑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각 나라의 인종과 문화가 주는 다양성을 즐겼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색인종 이민자들을 경멸하는 선언문을 올리고 50명을 총기로 난사하는 장면을 SNS를 통해 생중계했다. 

영화 <그린 북> 포스터

영화 <그린 북>을 보면, 당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를 여행하는 흑인들의 안전을 위한 가이드북이 등장한다. 이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일명 ‘그린 북’이다. 책 속엔 이곳에서 잠자고 저곳에서 먹으라는 친절한 정보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것은 속임수다. 흑인들에게 인도주의적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의 경계를 정해 주는 것이다. ‘여기서 머물러라. 이 이상 넘어오지 마라’라는 경계표다. 마치 아우슈비츠 정문에 걸려 있는 간판 위, 유대인들을 속이기 위한 문구, “노동이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흑인 뮤지션인 돈 셜리가 피아노 연주를 할 때, 그 경계는 잠시 해제된다. 흑인 특유의 감성이 깃든 연주에 흠뻑 취해, 객석의 백인들은 환호하고 기립박수를 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연주가 끝나면 돈 셜리는 홀 안에 있는 화장실조차 사용할 수 없고, 그 안에서 식사도 하지 못한다. 이번 뉴질랜드 총기사건을 대하며, 마치 그린 북처럼 유혹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의 허상을 본다. 마치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며 소통하고 있다는 듯한 SNS 속의 광고문구들은 오히려 관계의 피상성이라는 수렁으로 우리를 빨아들이려 하지 않는가.

영화 <가버나움>에서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난민촌에서 자신의 숙명적 삶과 씨름하는 소년이 등장한다. 불법체류자인 흑인 여성은 언제 발각되어 추방당할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갓난아이를 끌어안은 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고통을 당한다. 그 선은 서로의 경계를 확정짓고, 단절시킨다. 그것은 ‘서로의 다름’ 때문에 만들어진 선이다. 그러나 정작 갈라지는 것은 사실은 너무도 닮은꼴인 ‘서로의 영혼’이다. 그것은 서로를 공멸로 이끈다. 

영화 <그린 북>에 관한 논란 중에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 인종차별 문제를 개인의 관계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견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보다는 훨씬 거대한 담론이어야 한다는 전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가장 깊은 성찰이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교감이야말로 피상성의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첫번째 전제다. 개인과 개인의 교감이 공동체로 확장될 때에만 우주는 유기체로서의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세계인의 운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인식만이 편견의 경계선을 지우고 다양성 가운데의 통합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지금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이 영혼을 가르는 선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 역시 그 중심에 있다.

<추상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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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도, 정당도, 정부도 언론 보도를 두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언론중재위는 제도로 이의 제기를 뒷받침한다. 여러 언론 보도에 대한 고소와 고발도 이뤄진다. 정당 논평은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이해식의 지난 13일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제의 발언을 철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는 제목의 논평도 정당의 정당한 정치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 논평의 몇몇 표현과 그 속에 드러난 의식은 문제가 다분했다. 두 부분이 그렇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top spokesman)이 됐다’는 제목으로 블룸버그통신의 ○○○ 기자가 쓴 바로 그 악명 높은 기사다.” ○○○으로 처리한 부분은 실제 논평에서 실명처리했다. 논평이 유도했건 안 했건, 온라인에서 기자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언론의 표현, 비유, 서술에 문제가 있다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점을 해당 언론사나 데스크에 조목조목 차분하게 반론하면 될 일이었다.

논평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이 기자는 국내 언론사에 근무하다 블룸버그통신 리포터로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제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미국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 당시에도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해식이 ‘매국에 가까운 내용’은 반성의 여지가 있다고 사과했고, 논평에서 기자 실명은 삭제했지만 1회성 일로 보기는 힘들다. 최근 정권 관계자들의 발화에서 ‘민족’이나 ‘국민’이란 개념이 곧잘 등장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조선시대 왕을 불러내 국장을 재현하는 이벤트까지 벌이기도 했다. 

‘국민’과 ‘민족’ 발화의 대척점에 놓인 세력이 수구이자 반동인 건 분명하다. 반민특위를 부정하고, 5·18 망언을 내쏟으며 끝없이 과거로 회귀하는 정당이 제1야당이다.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 자체를 부정하며 사사건건 시비 걸고, 틈만 나면 왜곡하려는 세력도 많다. 지금 한국 사회 기득권 다수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 세력의 후손이다. 

‘국가원수’ ‘민족’ ‘국민’ 같은 개념으로 수구 세력의 반동에 대응해야 할까. 지금의 경제체제 같은 물적 토대를 수호하려는 수구보수 세력은 이런 개념을 활용한 적대적 공생 프레임을 선호한다.

‘국민’과 ‘민족’의 호명은 자칫 위험하기도 하다. 국민은 ‘국(國)’이란 하나의 틀로 사람들을 묶는 말이다. 국가 형태와 내용은 다양할 터인데, 집권 세력이 자신들이 설정한 국가 이념에 동의하는가를 일방적으로 묻고,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비국민으로 가르곤 한다. 주로 수구보수 기득권들이 이 같은 프레임으로 사람들을 갈래 쳐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해고 노동자와 소수자, 문화예술인 등 수많은 ‘비국민’들이 나와 탄압받았다.

국민은 서양의 ‘People’을 번역한 말이다. 국민은 정부에 대응하는,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는 시민과는 다르다. 여러 사람들이 People을 시민으로 쓰려는 이유도 여기 있다. 북한이 국호에 넣으면서 한국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쓸 수 없게 된, People의 또 다른 번역어인 ‘인민’을 다시 불러내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민이란 말에 깃든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호명이다.

‘민족’과 ‘국민’ 같은 개념은 한국 사회에 현존하는 갈등과 과제를 가릴 수도 있다. 하나의 틀로 가두는 이 상상의 개념은 ‘나는, 당신은 재벌 총수와 같은 민족인가? 같은 국민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낸 2016~2017년 촛불집회 주최자는 2015년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단체들이다. 

2015년 최대 13만명이 모인 이 총궐기 대회는 이듬해 촛불집회의 예고편이었다. 여기에 노동자·농민·청년학생·여성·성소수자·장애인·빈민 등 ‘국민’과 ‘민족’ 개념으로 단순히 포괄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제기한 이슈·의제도 다종다양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여러 비정상이 정상화됐지만, 해결되지 않은 과제도 남아 있다.

정부가 모든 계급, 계층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한다면, 수구반동 기득권과는 평화, 반전, 환경, 노동, 여성권 같은 보편의 가치와 개념으로 맞서야 한다.

‘국민 바깥의’ 존재 취급을 받았던 이들을 아우르겠다면 구체적인 제도 과제도 수행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중 하나다. 현안 중엔 국제노동기구(ILO)의 8개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 등 4개를 비준하는 문제도 있다.

<김종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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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이라도 꺼내봐

미소라도 날려봐


조금은 가벼워도 괜찮아

순결하지 않아도 괜찮아

노래가 아니어도 괜찮아


아픈 것이 부끄러움은 아니니

깃털 속에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을 믿어봐


너 없는 공중은

투명한 폐허일 뿐이야


여긴 병원이 아니라

나는 너를 치료할 수 없지만


입을 맞춰줄게

부력을 채워줄게


너의 근력을 믿어봐

너의 의지를 믿어봐


고영(1966~)


아픈 새가 있다. 예전엔 공중을 투명하고 비옥한 영토로 만들던 새였다. 시인은 아픈 새에게 공중의 높이와 공중의 쾌청함을 돌려주고자 한다. 새가 없다면 공중은 황무지에 불과하기에. 몽골의 시인 롭상도르찌 을지터그스가 “풀은 모두 나무/ 돌마다 산/ 넓은 이 세상/ 사물은 모두 중심// 깃은 모두 새/ 새마다 하늘/ 풍요로운 이 삶의/ 모든 날들이 새롭다”라고 노래했듯이 새가 곧 하늘의 중심이요, 새가 곧 높고 맑은 하늘이기에. 시인은 새의 비상과 새의 자유를 위하여 심장의 박동과 근력과 의지를 스스로 신뢰하라고 말한다. 지금의 상황이 흡족하지 않고 모자람이 있고 순탄하지 않겠지만 그렇더라도 다시 한번 더 하늘을 향해 떠오르자고 격려한다. 마음도 기운도 꺾이지 말라고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에게 말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내일의 벽공(碧空)이 기다리고 있기에.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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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철 복날이면 일간신문을 장식하는 사진이 있다. 유명 삼계탕집 앞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복날이 아닌데도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삼계탕집 문전성시는 같지만, 줄을 서는 사람들은 외국인으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이 가장 눈에 띄고, 일본·동남아인은 물론 아랍계 단체 관광객도 종종 목격된다. 

삼계탕은 닭의 배 속에 찹쌀, 인삼, 대추, 밤 등을 넣고 푹 끓인 한국 요리다. 인삼은 삼계탕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재료로 피로 해소, 원기 강화, 혈압 조절, 항암 등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계탕이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각광받은 이유다. 인삼은 또 닭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줘 외국인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려졌으나 드라마 한류에 힘입어 크게 퍼졌다. 특히 <태양의 후예>에서 극중 유시진 대위(송중기 분)와 서대영 상사(진구 분)가 앞치마를 두른 채 강모연(송혜교 분)과 윤명주(김지원 분)에게 삼계탕을 요리해주는 장면이 해외에 방영되면서 붐을 일으켰다. 2016년 5월 한강시민공원에서는 서울시와 닭고기 가공업체가 합동으로 중국인 관광객 4000명을 대상으로 삼계탕 파티를 열어 화제가 됐다. 삼계탕은 이제 비빔밥, 김치찌개와 함께 외국인이 즐기는 3대 한식으로 꼽힌다. 

서울 성북구 한성대학교에서 열린 2018 국제여름학교 초복 맞이 보양식 체험행사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삼계탕을 맛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지난주 국산 삼계탕 1t이 부산항을 통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수출됐다. 삼계탕은 중국, 일본, 미국, 동남아, 호주 등 여러 나라에 수출됐지만 중동의 이슬람 국가는 처음이다. 무슬림들은 음식에 대해 특별히 까다롭다. 그들은 이슬람 경전 ‘코란’의 율법이 허용하는 음식만을 고집한다. 닭고기는 허용되지만, 가공법에 따라 금지하기도 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식품에 한해 ‘할랄(Halal) 푸드’ 인증을 부여한다. 이번에 수출길을 튼 국산 삼계탕은 지난해 음식과 생산시설 전체에 대해 할랄 인증을 받았다. 

삼계탕의 역사는 짧다. 일제강점기에 조리법이 만들어지고, 한국전쟁 이후에야 ‘삼계탕’이 공식 등장했다. 100년도 안된 삼계탕이 까다로운 무슬림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K팝, K드라마에 이은 ‘음식 한류’의 쾌거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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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호주 출신의 한 백인 남성이 뉴질랜드의 이슬람 사원에 총격을 가해 50명을 살해하고 그 장면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계했다. 말 그대로 ‘테러 라이브’였다. 사냥을 하듯 혹은 게임을 하듯 그는 사람들을 죽였다. 무려 74쪽 이르는 선언문도 내보냈다. 선언문에서 그는 무고한 아이들까지 죽이는 이유도 적었다. 이 아이들이 자라면 백인 아이들의 자리를 다 차지할 테니 후손들을 위해 미래의 적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무지 행동이나 말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변호인에 따르면 그는 침착하고 심지어 ‘상당히 명쾌해’ 보인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이 변호인조차 필요 없다며 해임시켰다. 법정에서 직접 신념을 설파할 모양이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당연히 이 연설을 세상에 알리지 않을 것이다. 총리는 테러범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 같은 행동은 드물지만 신념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선언문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들로 이루어져있고 그중 몇몇은 극우 성향의 지도자들이 애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괴물인 이유는 ‘어떻게 저런 짓을 할까’에서 ‘저런 짓’이 아니라 ‘할까’에 있다. 그는 사람들이 가슴속에만 품고 있거나 기껏해야 집회에서나 떠들어대고 인터넷 댓글로나 내뱉던 것들을 실제로 저질렀다.

그는 선언문에서 자신을 평범한 백인이라고 소개했다. 조직에 속한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없는 서민일 뿐이라고. 다만 그는 백인의 나라에 들어와 이러저런 자리를 차지하는 ‘침략자들’에 분노한다고 했다. “우리의 나라는 우리의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백인이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우리 땅을 차지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테러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을 자주 썼다. 선언문의 제목 자체가 ‘거대한 대체(The Great Replacement)’이다. 이는 이민자 유입에 반대하는 프랑스 작가 르노 카뮈의 책 제목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는 카뮈의 말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프랑스 여행 중에 너무 많은 ‘침략자들(비백인들)’을 보았으며, 그들이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는데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염세적 프랑스인들에게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싸우지 않으면 “유럽인들의 완전한 인종적, 문화적 대체가 일어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썼다.

그는 ‘거대한 대체’를 ‘백인에 대한 인종청소’라고도 불렀다. 원래 이 말은 미국의 테러리스트 데이비드 레인이 쓴 것으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애용하는 표현이다. 비백인 이민자들의 유입과 인종 혼합 때문에 세상에서 백인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게 그 핵심이다.

물론 ‘거대한 대체’니 ‘인종청소’니 하는 말들은 모두가 끔찍한 헛소리다. 테러범의 선언문에서 이 표현들을 처음 접했을 때 내게는 1990년대 호주에서의 역사 논쟁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가 호주 출신 백인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논쟁에는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1992년 호주 최고재판소가 토착민의 본래적 토지소유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호주를 식민화할 때 백인들은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이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토착민들이 배타적 소유권을 행사한 흔적이 없는 땅은 차지해도 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최고 재판소는 이 원칙의 부당성을 인정했다.

또 하나는 1997년에 간행된 호주의 ‘인권과 기회균등 위원회’의 보고서였다(제목이 &lt;그들을 집으로 데려오기&gt;다). 이 보고서는 식민화 과정에서 토착민에 대한 인종청소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토착민 아이들을 백인 문화에 동화시키기 위해 백인 부모에게 강제 입양시킨 일이 들어 있다. 충격적인 것은 이런 반인륜적 관행이 1960년대까지 활발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그때의 아이들은 어머니가 트럭을 쫓아오며 울부짖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뉴질랜드 테러범은 백인들이야말로 식민화를 통해 자리를 차지했고, 인종혼합을 통해 인종청소를 자행했다는 걸 감추었다.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신화적 기억으로 토착민에게 저지른 ‘거대한 대체’와 ‘인종청소’의 폭력을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토착민들이 백인에게 당한 폭력의 이름을 백인 것으로 만든 뒤 이민자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은 뉴질랜드 테러 현장에 ‘하카’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하카는 잘 알려진 것처럼 마오리족 전사들의 춤이다. 토착민들은 무슬림 이주민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하카를 추었고 많은 뉴질랜드인들이 하카 영상을 찍어 올리고 있다고 한다. ‘코 아우, 코 코에, 코 코에, 코 아우.’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입니다. 토착민들은 하카를 추며 이주민들에게 이런 노랫말을 건넸다. 토착민과 이주민이 반대말이 아닌 세계를 그렇게 열어보인 것이다.

참고로 뉴질랜드의 테러범은 한국에서 자신의 모범을 보았다고 한다. 다문화주의와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보수적 가치를 잘 지키고 있다고. 그러고 보니 4·3의 땅 제주에 예멘의 난민들이 왔을 때 우리의 춤은 무엇이었고 우리의 노랫말은 무엇이었던가.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입니다. 우리는 누구로서 누구에게 말했던가.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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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 가정 심층조사를 종료했다. 그 끝은 기자간담회를 겸한 보고회였다. 발표 직후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대부분 피해자의 울분을 제목으로 달았다. 하지만 어떤 기사는 해석이 불분명했고 부등호가 반대로 나간 것도 있었다. 조사로 확인한 울분의 의미를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울분 조사는 피해 신청 4127가구 중 무작위로 추출한 100가구 129명의 성인 피해자를 대상으로 했다. 울분은 ‘외상후 울분장애’ 한국어판 도구로 측정했고 19개 문항 평균 기준 ‘이상 없음’ ‘지속되는 만성 울분’ ‘중증도 이상의 심각한 울분’으로 구분한다. ‘만성’과 ‘심각한’ 울분은 ‘임상적으로 유의한 울분’으로 보고된다. 분석 결과 피해자 열 명 중 일곱은 울분이 지속되는 상태, 그 절반은 장애를 일으킬 만큼 심각한 울분 상태에 속했다. 피해자 대다수가 어제오늘을 분노, 무력감, 자기비난이 혼합된 감정 속에 살았고 내일도 그토록 심각한 울분 속에 살아가리라는 의미다.

외상후 울분장애 질환명을 소개한 린든에 따르면 울분은 ‘정의에 어긋나고 부당한 부정적인 생애사건 경험에 대한 감정 반응’이다. 학자들은 울분 유발 사안이 현재의 역경에 직접 원인이 되고 ‘세상은 공정하다’ 같은 기본 신념을 무너뜨리면 울분이 ‘버닝’하여 자신과 사회를 향해 파괴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극도의 울분은 유발자를 겨냥해 ‘전쟁’을 벌이거나 고통에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울분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다. 개방형 질문 답변에는 울분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감정이 강도 높게 드러난다. 사전에 일을 막지 못한 자책감이 기업과 국가를 향한 분노와 결합하고, 속수무책이란 무력감과 미래 비관이 더해졌다. 다른 울분 사례와 달리 분노를 압도하는 ‘자기비난’이 있었고 이는 스스로 피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 어머니, 아내인 여성에게 뚜렷했다. 침습적 사고, 배신 트라우마, 우울, 스트레스 동반 신체증상 등 외상후 울분장애에 수반하는 증상 다수도 감지됐다. 린든 교수는 ‘(그것들이) 바로 울분이 예고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무엇이 이들의 울분을 유발하는가를 가까이 봄으로써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한테 자꾸 증명하라고 하면 저는 가습기를 다시 흡입할 수밖에 없어요. 다시 흡입해서 다시 임신해 아픈 애를 낳고 부검할 수밖에 없어요. 도대체 저한테 뭘 어떤 식으로 증명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어느 피해자의 말은 울분 유발자가 독성 물질 노출 그 자체가 아님을 정확하게 설명한다. 오히려 기업의 비윤리성과 국가의 위험사회 관리책임 소홀로 유발된 집단적 정신현상으로 볼 수 있다. 1990~2018년 국내 7개 일간지 중 ‘울분’을 제목으로 한 기사 내용 분석이 확인한 한국의 사회적 울분, 즉 “각종 안전사고·사건 피해자들의 삶의 기반 박탈·근본적 요구 묵살로 국가와 사회를 향해 느끼는 분노”에 부합한다.

보고회를 통해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기에 반복하기보다 울분에 초점을 둔 하나를 추가한다. 전문가들은 믿음이 낮은 외상후 울분장애 환자와의 수용과 공감의 ‘치료동맹’을 권고한다. 같은 맥락이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를 적극 인정(認定)하고 피해자들과의 공감을 높이는 ‘사회적 연대’가 절실해 보인다.

<유명순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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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 성범죄 의혹’에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도피성 출국’이 무산됐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2일 오후 11시쯤 인천공항 티켓카운터에서 23일 새벽 출발하는 태국 방콕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김 전 차관은 체크인까지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김 전 차관의 출국시도 사실을 법무부에 통보했고, 대검찰청 과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소속 검사가 긴급출국금지를 지시했다. 김 전 차관은 항공기 탑승을 불과 몇 분 앞두고 탑승게이트 앞에서 출국이 좌절됐다. 김 전 차관은 모자와 마스크,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경호인력까지 동원했다. 김 전 차관이 출국했다면 수사가 공전에 빠질 수도 있었다.

김 전 차관 사건이 시민들의 공분을 산 이유는 ‘증거가 뻔한데도 어떻게 두 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내릴 수 있는가’였다. 김 전 차관은 2013년 건설업자가 이권을 따기 위해 열었던 향응파티에 연루됐다는 의혹의 당사자다. 향응에 여성 수십명이 동원돼 성범죄가 이뤄졌고, 김 전 차관의 모습이 동영상에 찍혔다. 경찰은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고 확인했지만, 검찰은 ‘인물을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2014년에도 한 여성이 “여러 장소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준강간했다”며 김 전 차관을 고소했으나 흐지부지됐다. 죄를 짓고도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22일 (출처:경향신문DB)

다수의 피해자 증언과 동영상이 무용지물이 된 배경에는 비호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새로운 증언도 나왔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가 김 전 차관 수사를 막기 위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 23일 한 방송에 출연한 당시 경찰 수사 책임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 경찰청에 찾아와 “대통령이 불편해한다. 수사를 진행하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뿐 아니라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도 수사팀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후 수사팀 지휘부는 모두 전보조치되었다. ‘윗선 개입’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 전 차관은 지난 15일 조사단 출석을 요구받았으나 서면 진술서 하나만 보낸 채 불응해왔다. 그러다가 18일 청와대에서 사건과 관련,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 23일 야음을 틈타 출국을 시도했다. 일단 소나기를 피하고 숨어서 지내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검찰 과거사위원회 활동기간은 오는 5월 말까지 2개월 추가 연장하기로 한 상태다. 조사단이 김 전 차관의 출국시도에 기민하게 대처했던 것처럼 의혹 역시 신속하게 그리고 낱낱이 규명하길 기대한다. 김 전 차관의 범죄는 물론 그를 비호해온 검찰 내 인사와 윗선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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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지난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이 재임 시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임원 후임자들을 공모하는 과정에서 환경부가 일부 지원자에게 면접 자료를 미리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명된 장관으로는 최초로 구속될 위기에 몰렸다.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22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을 추려 사표 제출을 종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7월 31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 전 장관. 연합뉴스

지난해 말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수사관이 관련 의혹을 제기했을 때 김 전 장관과 환경부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환경부가 자진 사퇴를 거부하는 인사들을 상대로 ‘사퇴할 때까지 무기한 감사’ ‘거부 시 고발 조치 예정’ 등을 계획한 사실이 검찰의 압수수색 문건에서 드러났다. 김 전 장관은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임원 동향은 파악했지만 사퇴 압력을 넣지는 않았다”고 했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시민들이 김 전 장관과 환경부의 해명을 믿기 어렵게 된 것이 현실이다. 청와대도 처음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가 “통상 업무의 일환으로 진행해온 체크리스트”라고 말을 바꾼 바 있다. 최근에는 청와대가 바라는 대로 인사가 이뤄지지 않아 김 전 장관 측에서 청와대 신미숙 균형인사비서관실에 경위를 해명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인사를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김 전 장관과 청와대가 어떤 상의를 했으며, 그 일이 과연 적법한지를 가리는 일이다. 여권은 공공기관 임원 인사권을 갖는 대통령이 해당 부처 장관과 인사 문제를 협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할 일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적폐라 해도 적법한 방법으로 청산해야 한다. 혹여 박근혜 정권 때처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놓고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불법적으로 배제했다면 말이 안된다.

25일 진행되는 구속적부심에서 김 전 장관이 구속될 경우 수사는 곧바로 청와대를 향하게 된다. 검찰은 조만간 신 비서관을 소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검찰이 더 이상 살아있는 권력에 약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청와대 역시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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