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씨.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갑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요? 로스쿨의 1년차는 고 3 수험생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의 나날이라고 들었습니다. 봄이 오는 기운이라도 느낄 수 있어야 할 텐데요. 2월의 마지막 주, 학부를 졸업하며 J씨가 제게 작별인사로 건네준 편지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딱히 답을 바라고 준 편지가 아닌 것을 알지만, 설령 답을 바라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저는 답장을 못했을 거예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마주할 때면 저는 자주 막막해지곤 했습니다. J씨가 편지에 쓴 대로, “사심 없는 친절은 멸종위기에 처해버린 세상”에서 학생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장벽들에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답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장벽들이 만들어지기까지 기성세대인 나와 내 친구들이 어디서부터 어긋나 버린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가 바랐던 것은 ‘더 나은 세상’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현재의 한국 사회를 진보와 보수 어떤 시각으로 평가하든, ‘청년이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역설에 망연해졌던 겁니다.  

저는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이른바 ‘86세대’입니다. 지금 J씨 또래가 강고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여길 우리이지만, 30여년 전에는 우리 자신이 지금의 모습이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일본인 사회학자 기시 마사히코가 얘기했듯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은 태반이 ‘이럴 리 없었던’ 자신인 것입니다.

지금도 저의 친구들 대다수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불리는 일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비슷한 나이대라고 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제각각인 사람들을 싸잡아 ‘기득권’이라고 호명하는 일은 마치 요즘의 20대 앞에 유행처럼, ‘분노한’이라는 형용사를 갖다 붙이는 일만큼이나 게으른 인식일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 세대는 기득권의 속성을 이미 갖고 있습니다. 

모든 기득권은 스스로 흔들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 고인 물 같은 편안함을 흔드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입니다. J씨들의 질문에 맞닥뜨리는 일은 그래서 당혹스러우면서도, 소중한 일입니다. 정치적 민주화 하나로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책을 환원해버리고 말았던 우리 세대의 감수성과 달리, J씨 또래는 세밀하게 분노합니다. 하나로 집결되지 않는 그 질문들은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한쪽에서 물뽕(GHB)이라는 약물을 써서 여성들을 성폭력한 세태를 규탄하면서 “정부는 방관했고, 경찰은 유착했으며, 남성들은 연대했다”고 외치면, 다른 쪽에서는 가해자들과 생물학적 성이 같다고 공범 취급 당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맞섭니다. 그러나 저는 때로 강의실에서조차 팽팽했던 그 긴장들이 편가르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속속들이 스며있는 폭력에 대한 섬세한 인식에서 출발해 공정함과 책임분담, 연대의 균형점을 찾는 것으로 서서히 옮겨갈 것이라고 봅니다. 

J씨와 또래들의 질문이 다양하고 집요하고 예민할 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만큼의 분량으로 조금씩 달라져갈 겁니다. J씨가 폐지 줍는 할머니와 동행해 쌀쌀한 초봄의 밤을 꼬박 새운 뒤 과제를 제출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힘겹게 수레를 끌며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했던 말을 J씨는 인용했습니다. “뒤에서 손만 대고 있어줘도 오르막길이 훨씬 수월하다”고…. 그런 J씨에게 어떤 법조인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정의나 공익이라는 말을 섣불리 앞세우지 않은 것이 저는 미더웠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J씨가 앞으로 생의 수많은 교차로에서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는 누군가를 말없이 밀어주는 손길이 되는 선택을 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문화혁명의 격동기를 살아내며 배신과 자기부정, 우정, 사랑을 발견했던 중국의 작가 다이 호우잉은 자전적인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에 이런 구절을 남겼습니다. “함께 배웠다 하여 끝까지 같은 길을 걷는 것도 아니며, 길이 다르다 하여 반드시 다른 목적지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서로가 선 자리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건강을 빕니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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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부과학성이 26일 발표한 초등학교 3~6학년 사회과 교과서 12종 검정 결과 ‘독도왜곡’이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일 간 우호적 교류에 관한 기술은 줄어든 반면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과오는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등 한·일관계 기술이 전반적으로 퇴행했다. 갈수록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 신조 정권이 어린 학생들에게 영토왜곡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불신과 편견을 심어줄 우려가 커진 것이다. 강력히 규탄한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 기술은 한층 강화됐다. 도쿄서적 5학년 교과서에는 독도를 ‘한국이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에 ‘이에 대해 일본이 항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독도의 전경사진을 게재한 교과서도 늘어났다. 

한국에 관한 서술이 퇴행하고 있는 점도 당혹스럽다. 니혼분쿄출판 교과서에는 ‘도래인이 대륙으로부터 문화와 기술을 전해줬다’ 등 한반도 출신 도래인에 대한 서술이 삭제됐다. 한·일관계와 관련해 ‘2002년에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이전 서술에서 ‘우호를 강화하고 있다’는 표현도 빠졌다. 미래 세대들이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거의 선린우호 역사까지 지워버리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납득하기 힘들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27일 (출처:경향신문DB)

침략전쟁에 대한 기술은 미화와 왜곡 투성이이다. 임진왜란에 대해 ‘침략전쟁’이란 말을 빼고 ‘명을 정복하려고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고 한 교과서도 있었다. 한국을 함부로 군대를 보내도 되는 나라로 인식하도록 하는 무례한 기술이다. 러일전쟁에 대해 일본의 승리로 ‘구미 제국의 진출과 지배로 고통받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독립에 대한 자각과 희망을 주었다’고 한 서술(니혼분쿄출판)은 일본 우익들의 사관 그대로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언급한 교과서는 단 1개뿐이었다.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 정권의 목표를 청소년들에게 은연중 주입시키겠다는 뜻으로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다. 일본의 미래 세대들이 잘못된 역사인식에 기반한 영토관념을 받아들여 한국을 ‘불법을 자행하는 국가’로 여기게 된다면 양국관계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최근 한·일관계는 여러 이유로 악화돼 있지만, 백년대계인 교육에까지 이를 반영하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일본 정부는 교과서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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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아온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6일 새벽 기각됐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재임 중 박근혜 정부에서 임용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종용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이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김 전 장관의 행위를 특별한 사정에 따라 이뤄진 ‘관행’으로 판단했다. 법원이 이 사건 전반의 위법성에 의심을 드러냄에 따라 청와대 개입 여부에 대한 향후 수사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26일 새벽 대기 중이던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 전 장관이 일괄 사직서를 요구하고 표적감사를 한 혐의와 관련해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청와대가 낙점한 인물을 임원으로 채용한 부분에 대해선 “공공기관장·임원에 대한 최종 임명권·제청권을 가진 대통령이나 관련 부처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후보자를 협의·내정하던 관행이 있어왔다”며 김 전 장관에게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희박해 보인다고 했다. 기각 사유를 뜯어보면, 법원은 핵심 피의자의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서 한발 더 나아가 검찰이 세운 사건의 프레임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의 방향을 다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적폐청산이 절실한 과제라 해도 반드시 적법하게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촛불의 힘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서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구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법령과 현실의 괴리로 빚어지는 문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선거로 권력을 잡은 정당·정파는 자신들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인사권을 활용할 당위성이 생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법령이 규정한 임기제·공모제와 충돌하며 낙하산 논란이나 위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이 점에선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별 차이가 없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되풀이되는 분란을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차제에 법과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어 공공기관 인사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심사·임명 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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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1일은 정부가 국가기념일로 제정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이다. 정부는 100주년 기념행사를 성대히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는 4월13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기념해 왔다. 이전까지 4월13일을 임시정부의 수립일로 정한 주된 근거는 일제 자료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의거(1932년 4월29일) 직후 일경은 임시정부 사무실을 급습해 임정 문서를 압수해갔다. 이를 참고해 상하이 주재 일본총영사관 경찰부 제2과가 연표식으로 정리해 펴낸 <조선민족운동연감>의 1919년 4월13일조에는 ‘내외에 독립정부 성립을 선언해…’라는 문장이 있다. 이 짤막한 일제의 기록이 4월13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정하는 데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에서 발견된 임정 관련 자료를 통해 ‘상하이 임정 수립일은 4월11일’임이 확인되었다. 이에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임시정부 수립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당시 논란은 상하이임시정부의 수립일이 11일이냐 13일이냐였다. 2018년 정부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연구용역을 통해 임시정부의 수립일을 11일로 변경했다. 하지만 당시 임시정부 수립일 변경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변경 사유도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탓에 어떤 근거에 의해 임시정부 수립일이 갑자기 변경됐는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더구나 변경된 날짜(4월11일)도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 4월11일은 신한청년당을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에서 상하이임시정부(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이다. 이처럼 상하이임시정부로 보면 임정 수립일은 11일이 맞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국내외에서 여러 개의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국내에서는 신한민국 임시정부(4월17일, 평안도), 조선민국 임시정부(4월19일, 인천), 한성정부(한성임시정부, 4월23일, 서울)가 생겼다. 해외에서는 러시아에서 대한국민의회(노령임시정부, 3월17일,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중국에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임시정부, 4월11일, 상하이), 고려임시정부(4월15일, 지린성) 등이 탄생했다. 

이 중 실질적 조직 기반을 갖춘 곳은 노령임시정부와 상하이임시정부, 한성임시정부 세 곳이었고 나머지는 전단지 형태의 임시정부로 얼마 못 가서 소멸됐다. 독자적으로 수립된 세 곳의 임시정부도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임시정부로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세 곳의 임정 대표자들이 통합을 추진했다.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서 13곳의 대표가 참여한 국민대회를 통해 수립된 한성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어받고 그 내각을 그대로 승계하며, 대신 정부의 위치는 활동하기 편한 상하이에 두고, 명칭은 대한민국임시정부로 하며, 노령임시정부를 흡수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하여 1919년 9월11일 통합임시정부가 세워졌다. 통합임시정부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새로운 탄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하고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생략한 채 임시정부 수립일을 상하이임시정부의 수립일인 4월11일로 성급히 변경한 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납득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의 유일한 통합임시정부가 탄생한 9월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라고 본다.

<윤주 | 매헌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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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네 터줏대감이다. 가파른 언덕을 오를 적마다 밭은 숨을 내쉬는 노인 두어 명을 빼면 그가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 그의 머릿속엔 위도와 경도를 굳이 매겨놓을 필요 없는 정밀한 동네 지도가 구축되어 있다. 그 동네에서만큼은 그가 범지구위성항법시스템보다 우월하다. 그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가장 빠른 샛길을 찾아줄 수 있고, 후미진 골목에 신장개업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가게에 대한 세세한 정보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세상에 맛집으로 알려져 한 시간쯤은 기다려야 하는 식당과 맛과 질은 똑같으면서 값도 싸고 줄 설 필요도 없는 실속 있는 맛집 리스트를 갖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사는 동네는 나들목에 ‘동화 마을’이라는 세움간판이 세워지고, 골목마다 오즈의 마법사, 피노키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선녀와 나무꾼, 토끼와 거북 등 국경을 초월한 인물들이 들어앉았다. 뜻하지 않게 그들과 함께 동화 마을 주민이 된 뒤 그는 더 자주 지인들의 전화를 받아 부지런히 동네 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해야 했다. 그 일이야 그한테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동화 마을 주민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날이 좋으면 좁은 골목길에는 사람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의 집 창문 너머 담벼락에 그려져 있는 토끼 앞에는 ‘인생샷’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그는 집에 있는 날이면 온종일 창문 앞에서 서성대는 사람들의 다리를 바라봐야 한다. 때때로 호기심 많은 사람은 창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들은 그 방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와 마주 앉아 빵조각을 먹거나, 밥상을 차리는 우렁각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가 낯선 이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럴 때마다 그는 도리어 자기가 미안하다고 한다. 동화 마을에 산다면 좀 동화스러워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깝다나. 

아무튼 그 터줏대감은 무던하게 동화 마을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이 동화 마을에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오래전 남쪽 어느 벽화 마을에 갔다가 담장 너머를 힐끔거렸던 나는 무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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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촛불의 후계자야. 일본을 봐. 아베의 측근이 기자를 성폭행했는데, 가해자는 기소도 안되고 오히려 피해자가 놀림감이 되잖아. 중국을 봐. ‘미투’가 아예 인터넷 검열 대상이고, 누리꾼들이 미토(米兎)라고 바꿔 쓰니까 이것마저 검열한다고. 근데 대한민국에서는 미투가 대권주자와 노벨 문학상 후보도 넘어뜨리잖아.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답지. 여성은 이제야 국민이 되어가는 도중인 거고. 

그 와중에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으로 꽂히네? 민주당 사람들이 나한테까지 왜 그러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때 갤럽 조사에서 40% 밑으로 내려갔거든. 그래서 내가 지지율이 더 낮아질 거라고 했지. 지금은 20%밖에 안되던데. 

첫째는 경제적 문제, 젊은 남자들은 여전히 결혼할 때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여기거든. 여성할당제로 여자들한테 밀리고 집값폭등으로 기성세대한테 뜯긴다고 생각하니까 민감할 수밖에 없지. 며칠 전 조사에서 “현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에 ‘잘하고 있다’가 20대 남성은 15%밖에 안돼. 모든 연령별·지역별·성별 집단 중에서 꼴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둘째는 사법적 문제. 여자들한테 소심한 남자들이나 예의를 갖추려는 남자들도 적지 않아. 이들은 자기가 누군가를 성추행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성추행했다가 미투 당할 걱정보다는, 성추행범으로 잘못 몰려서 사법처리 당하는 게 더 공포스러워. 진짜라니까. 초식남과 덕후가, 날라리와 마초와 연대했다는 게 가장 주목할 지점이야. 

요새 여혐과 남혐의 시작은 20대가 아니라 10대라고 봐야 해. 특히 남중-남고(-심지어 공대!) 테크트리를 탄 남자들은 여성을 일본 포르노를 통해 접하는데, 일본 포르노의 특징이 여자들이 강간당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처럼 연기하거든. 이걸 보고 남자애들은 여성이 성적 도구일 뿐만 아니라 ‘위선적 존재’라고 느끼게 돼. 따지고 보면 여자들도 남자의 생리작용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 제발 성교육 좀 제대로, 적나라하게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남중-여중, 남고-여고 이런 거 좀 합치면 안될까? 서로를 동료로서 접할 기회를 많이 갖고 같이 일하고 싸우고 부대껴야 할 텐데. 

주변의 586 남자들이 페미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좀 웃기더라고. 자기들이 믿었던 사상도 당시 기성세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거든. 민족의 정통성이 북에 있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당시 기성세대는 뒷목을 잡고 쓰러졌지. 미국문화원에 폭탄을 설치하고 막 그랬잖아. 서태지가 데뷔하자 학생운동 저널에 어떤 기사가 실렸는지 알아? “마약 권하는 사회가 권하는 음악, 서태지.” 

일관된 사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당연히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586이 젊을 때 딱 그랬어. 페미니즘도 그래서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거야. 나는 우리집 애들한테 한번도 “남자가…” “여자가…”라는 말을 안 해 봤거든. 근데 요새 딸한테만 ‘예쁘다’고 말하는 게 정당한 건지 생각해보게 되더라니까. 이것도 따지고 보면 고정적 성역할의 투영이잖아. 불편해진 거지. 

그렇게 일관된 시각으로 세상을 보다 보면, 시월드는 물론 여혐이고,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죄로 모는 것도 여혐이고, 노동시장에서 성차별도 여혐이고, 여성의 섹스어필도 여혐이지. 가족관계, 사법체계, 노동시장, 꾸밈과 치장의 문화 전체가 남성지배-여성혐오적 시스템이지. 난 이런 일관적 비판의식을 버리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라는 거야. 그래야 뭔가 바뀌어. 586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꿨다면 그건 젊었을 때 열심히 우겼기 때문이거든. 

물론 그 과정에서 운동이 부러지겠지. 난 586의 사상이 어디서 어떻게 부러졌는지가 중요했던 것처럼, 페미니즘도 어디서 어떻게 부러질지가 중요하다고 봐. 대략 페미니즘의 탈근대적 인식론이 근대의 기본 가치와 부딪치는 어느 지점에서 부러지지 않을까 싶어. 예를 들면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고인 권리주장은 근대의 핵심적인 가치거든. 흔히 ‘법 앞의 평등’이라고 말하지. 근대 국가질서에서는 ‘법 앞의 평등’이 ‘실질적 평등’보다 중요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이미지들은 여성혐오잖아?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만만찮은 근대적 가치와 교집합을 가지기도 하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난감할 거야. 사회운동은 ‘실질적 평등’을 요구하거든. 하지만 근대 국가기구는 어떤 상태가 ‘실질적 평등’인지 몰라. ‘법 앞의 평등’은 명쾌한데, ‘실질적 평등’은 모호하잖아. 설마 무조건 반반은 아니겠지? 그럼 당장 여자도 군대에 가라는 얘기를 들을 거고. 

‘실질적 평등’의 법정은 이 세상에 없어. ‘함께’ 만들어가는 수밖에.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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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고농도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날이 잦고, 장기화되고 있다. 물론 중국 탓도 있으나 기후변화로 ‘에어커튼’ 효과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배출원의 미세먼지 유발로 마치 밀폐된 온실에서 연탄을 때는 것처럼 증폭되고 있다. 기후변화의 미세먼지 증폭효과가 가시화된 만큼 주요 배출원인 발전과 수송 부문의 근본적 개선이 절실하다. 특히 석탄발전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무려 40%를 차지하며 미세먼지 유발물질의 주요 배출원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고농도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에 한해 몇몇 석탄발전소의 출력을 약간 줄이는 것에 머물고 있다. 석탄화력을 퇴출시키는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정치권에서 석탄화력발전을 원전으로 대체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고립된 국내 전력망에서 출력 조절이 안되는 원전을 더 늘리자는 주장은 마치 기어가 고장난 자동차로 고속도로에 들어가라는 것과 같다. 사실 화력발전소들이 매 순간 전력 수요 변화에 따라 자동출력조절을 하며 전력망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간헐적인 재생에너지의 증가 추세에 더해 원전까지 더 늘어나면 전력망 유지가 매우 어려워진다. 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 비중이 20%대인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멀쩡한 ‘디아블로’ 원전을 폐쇄하기로 한 배경이기도 하다.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작대교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에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따뜻한 공기가 서해바다를 지나며 만들어진 안개가 서해안과 내륙지역에 넓게 깔렸다. 포근한 날씨 속에 당분간 미세먼지도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_ 연합뉴스

반면 가스발전은 석탄 대비 적은 미세먼지 배출과 높은 기동성으로 단기간에 석탄발전을 대체할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독점사업자인 가스공사로부터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야 하는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가스발전으로 석탄발전을 대체할 수 없다. 사실 1980년대부터 정부는 신속한 도시가스 보급을 위해 가스공사로 하여금 주택용 가스비용의 상당량을 한전에 전가시키도록 해왔다. 덕분에 국내 주택용 가스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9위로 저렴하고 도시가스 보급률은 세계 3위이다. 하지만 발전용 가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때문에 한전 발전자회사들은 해외에서 가스를 직접 도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정부 당국은 불허하고 있다. 도시가스 보조가 줄어들면 뒤따를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수송부문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국내 66만여대의 중대형 화물차는 나머지 2200만여대의 자동차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의 미세먼지를 배출한다. 정부가 20년 가까이 이들 중대형 화물차에 연간 1조6000억원대의 유가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국내 트럭의 화물수송 분담률이 OECD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커진 결과다. 일각에서 경유세 인상으로 미세먼지를 줄이자고 하지만, 경유세가 오를수록 화물차 유가보조금도 자동 인상되어 저감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외면한 공허한 주장이다.

결국 정부는 과거의 관행 때문에 최대 미세먼지 배출원이 줄어들지 않게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규정했다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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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상하이를 생각한다. 세상 온갖 이야기가 굽이굽이 펼쳐지는, 서사의 깊은 골짜기이자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그래서 하나의 장르가 된 1920~1930년대의 올드 상하이. 이를 새삼 떠올리는 건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이 내달 11일로 다가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상하이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우리는 올드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미술작품·영화·소설·논픽션의 홍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우리의 시선은 왜 이렇게 자주 제국주의 열강이 대륙을 할퀴던 반(半)식민지 시대로 향하는 걸까? 

“집집마다 마작 판 두드리는 소리에 /아편에 취한 듯 상해의 밤은 깊어가네… /어제도 오늘도 산란한 혁명의 꿈자리!/ 용솟음치는 붉은 피 뿌릴 곳을 찾는/ 까오리(고려) 망명객의 심사를 뉘라서 알고/ 영희원의 산데리아(샹들리에)만 눈물에 젖네.(심훈, ‘상해의 밤’)” 우리에게 익숙한 상하이의 삶은 조국을 잃은 망명객의 그것이다. 하지만 상하이로 간 조선인이 모두 독립운동가, 혁명가였던 것은 아니다. 공부하러, 혹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혹은 새 삶을 찾으러 간 이도 많았다. “(헨리)포-드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 황제’라 불린, 중국인의 우상이자 독립운동가의 아들인 영화배우 김염이 있었는가 하면, “국적도 없이 허줄구레한 모습으로 국제도시 뒷골목을 어깨가 축 처져서 돌아다니는 집시” 같은 존재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식민지 억압, 봉건적 관습이 없었다. 대신 자유의 향기가 넘쳤다. 결혼과 연애의 자유, 자기 삶을 결정할 자유. 당시 열강의 조계지였던 상하이는 58개국의 이민자가 섞여 살던 세계 5대 도시로 세계의 축도였다.

 

“엉댕이 내두르는 불란서 여자, 졈잔을 빼는 영국 아해들, 생글생글 웃는 혼혈아들, 사람을 녹이게 아름다운 포도아(포르투갈) 여자, 장화 신은 아라사(러시아) 노동자, 내복 저구리만 닙은 인도 문직이꾼들, 니빨 색캄한 안남(베트남)인의 떼, 턱석뿌리 유태 녕감이 가지각색의 발언을 주절거리면 공원 안이 떠들썩해진다.”(<개벽> 1923년 8월) 당대 지구상의 온갖 이념과 사상도 흘러 들어와 백가쟁명했다. 이러한 상하이의 개방성, 문화적 포용성은 전 세계를 끌어안고도 남을 만했다. 

어떤 조선인에게는 이런 상하이가 “부박한 딴스, 아메리카 에로 영화에 홀니는 갑산(값싼) 염가의 눈물”로 치부됐다. 그 또한 상하이였다. 거리는 도박, 아편, 매음이 난무했다. 음모와 테러, 간첩과 사기꾼이 활개 쳤다. 1933년 중국 전 공업생산량의 50%를 차지할 만큼 풍요로웠고, 아내에게 밀매음을 강요해 살아가야 할 만큼 적빈했다. 낮은 평화의 거리였고, 밤은 청방·홍방 두 조폭의 무대였다. 근대 문명의 공간이자 근대적 모순의 도시였고, 동양의 파리이자 아시아의 매춘부였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아닌, 이 모든 것이 상하이였다. 상하이에서는 문명과 야만, 자유와 억압, 선의와 악의가 서로 구별되지 않는, 하나의 얼굴을 했다. 상하이는 모든 것을 품었으면서도 그걸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분명했다. 총 한 방으로 누군가를 쏘아 쓰러뜨리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었다. 혁명이 가능했고, 그걸 정당화할 이념도 있었다. 전체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자유주의가 똑같은 자격으로 잠재적 미래를 두고 경쟁했다. 

2019년 3월27일 오늘 총 한 방으로 쓰러뜨릴 대상이 있는지 불분명하다. 우리 앞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오늘은 오늘의 문제가 있다. 지구를 덮친 불평등, 양극화, 청년 실업, 이주자 문제, 극우 포퓰리즘. 21세기 민주주의가 낳은 모순이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대안이 없다.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은 모순조차 정당화한다. 자유민주주의를 넘는 진보는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역사의 종말이 선언된 지 벌써 사반세기가 넘었다. 지구는 하나의 제도, 하나의 질서로 통일되었다. 우리는 일종의 전 지구적 유일체제, 결정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체제에서는 문제 인식이 날카롭게 벼려지지도 않고, 변화의 열정이 타오르지도 않으며, 변화의 수단을 찾기도 어렵다. 그와 달리 모든 문제·모순이 응집된 상하이는 하나의 씨앗처럼 다양한 가능성을 그 안에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은 닫힌 세계, 올드 상하이는 열린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이, 따분하게도 어제의 반복으로 느껴진다면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분출할 때의 격정과 흥분, 서로 부딪치며 깨질 때의 절망, 그로부터 피어나는 희망을, 거세된 세상은 결코 알 수 없다. 지루해진 오늘, 상하이를 생각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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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과 융·복합의 시대에 세대와 이념, 전문분야와 준거집단에 따른 반목의 골은 깊어만 간다. 이해를 위한 일말의 노력도 없이 분노에 찬 비판을 서로에게 서슴지 않고 쏟아붓는다. 합리적 의심과 구체적 확인을 바탕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으려는 신중함이 양측 모두에게서 회색분자, 양비론이라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대북관계, 환경문제, 대입전형, 경제정책 등 쉽게 재단하기 어려운 사안들에 대해 너도나도 확신에 찬 쾌도를 휘두른다.

어느 시대든 이견의 충돌은 있었다. 식견과 소신의 차이에 따른 다양한 논쟁과 갈등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타협의 여지없는 극단의 반목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전문가에 대한 존중이 격하되고 언론의 환경도 급변하면서, 시간을 들여 책이나 신문을 읽고 방송을 보기보다는 검색 정보를 부유하며 입맛에 맞는 경로로만 소통하는 것이 대세다. 인터넷 사회관계망의 확장 역시 언제부턴가 같은 생각을 지닌 이들끼리의 공유에 제한되고, 여기서 저 놀라운 확신들이 탄생한다. 각종 매체들 역시 이에 편승해서 클릭 수에 좌우되는 실정이니, 이른바 가짜뉴스들이 서식할 최적의 조건이 조성된다. 신뢰도 높아 보이는 통계자료 역시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 엄청난 정보의 바다에서 각자가 섬이 되어 언어의 날만 더 예리해지는 모습을 감내하기가, 참으로 힘겹다.

‘절충(折衷)’이라는 말이 일찍부터 쓰여 왔다. 이견이 갈릴 때 양 극단을 다 고려하고 시비와 경중을 가려 조화로운 대안을 제시함을 뜻한다. 송나라 때 증공은 한나라 유향에 대해서 “잡다한 학설에 현혹되어 절충할 줄을 몰랐다”고 비판하였다. 올바른 준칙을 세워 가려내지 못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유향이 남긴 글을 책으로 편집하여 전한 이가 바로 증공이다. 결점이 많은 책이지만 그 안에 값진 내용들이 섞여 있으니 읽는 이가 절충하여 취사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들은 그대로 말하면 되는 줄 아는 구이지학(口耳之學)의 시대에, 사려 깊은 절충의 미덕이 절실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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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물화처럼 익숙해진 풍경이 있다. 인사청문 대상자들은 각종 도덕성 의혹에 휘말리고, 막상 청문회에서는 해명은커녕 ‘죄송·불찰·송구’를 읊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장면이다. 아무리 결격 사유가 등장하더라도 “죄송하다”고 납작 엎드려 인사청문회 순간만을 모면하면 된다는 경험칙의 산물이다. 25일부터 시작된 ‘3·8 개각’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어김없이 이러한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2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26일 청문회에서 배우자·자녀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송구하다”고 했다. 문 후보자의 배우자와 두 자녀는 1998년 위장전입했고, 2006년에는 한 달에만 총 3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위장전입에 줄줄이 걸리자 2017년 말 병역기피·세금탈루·부동산투기·위장전입·논문표절 등 소위 ‘5대 원칙’을 성범죄와 음주운전을 포함한 ‘7대 원칙’으로 확대하면서 위장전입의 문턱을 낮춘 인사검증 기준을 제시했다. 위장전입은 인사청문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자녀 학교 배정 등 목적으로 2회 이상일 경우로 완화했다. 2006년 자녀 학교를 위해 3차례 위장전입을 한 문 후보자는 이 기준에 예외인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딸 증여세 탈루, 업무추진비 소득신고 누락 등과 관련해 뒤늦게 증여세를 납부한 것에 “정식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 하루 전인 25일 6500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이날 청문회에서 과거 ‘막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사과드린다”는 답변을 되뇌었다. 앞서 25일 청문회를 거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다주택 보유와 꼼수 증여, ‘갭투자’ 등에 대해 실체적 해명 없이 ‘죄송·반성·송구’를 수없이 반복했다. 주택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수장으로서 적격성에 의문이 찍히는 부동산 문제들에 대해 소명은커녕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후보자를 보는 서민들의 상실감은 너무 크다.

누구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하는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일탈과 편법 행위가 면피성 사과 한마디로 아무 일 아닌 듯 넘어간다면 ‘공정’ ‘정의’ 사회는 헛구호에 그치기 십상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죄송·송구’로 점철되는 청문회를 마냥 지켜봐야 하는 이 열패감을 인사권자가 진지하게 새겨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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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부터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신청이 시작되었다. 2016년부터 서울시가 시행한 청년수당을 거의 본떠 중앙정부가 전국적으로 벌이는 사업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일정 소득 이하의 청년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간 지급한다. 금액과 프로그램은 조금씩 다르지만 많은 지자체에서도 청년수당을 도입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졸업 후 2년 이내, 지자체는 2년이 지난 청년에게 수당을 지급하기로 서로 조정했다. 일부 지자체는 이미 접수 중이고 다음주엔 서울시도 시작하니 ‘청년수당 시즌’이다.

늘 그러하듯이 ‘수당 전성시대’라 비꼬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무분별하게 수당들이 신설된다는 지적이다. 사업별로 꼼꼼한 검토는 필요하지만 지나친 딴지 걸기로 보인다. <88만원 세대> 책이 출간된 게 2007년이다. 이후 정치권이 앞다퉈 청년을 내세웠지만 정작 청년들을 위한 복지는 얼마나 발전했는가?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취업 준비기간이 평균 11개월이고 취업준비금으로 월 45만원을 사용하며, 이 중 절반의 청년들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수당은 지자체가 선도하며 전국적으로 확산된 모델 사례이다. 응원하면서 보완해 가자.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1월 23일 서울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전환의 전략 청년수당 2.0과 정책실험’ 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구원 제공

최근에는 아예 새로운 설계도가 등장해 다른 방향에서 논란거리다. 일부 연구집단이 서울시에 제안한 청년기본소득 실험이다. 여러 기준을 따지는 현행 청년수당을 넘어 청년 모두에게 조건 없이 매달 50만원을 지급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실험, 혁신, 상상 등의 진취적 상표를 붙이고 있어 선뜻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혹 반대 이미지의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기본소득이 정치적 에너지를 지니면서 국내외에서 그 의미가 넓게 사용되고 있지만, 기본소득 원형의 토대는 ‘무조건성’이다. 보통 청년, 불안정 노동자, 가난한 예술가 등이 기본소득의 대표적 수혜자로 소개되지만, 여기서 ‘무조건’의 핵심은 취업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취업자도 포함된다. 사회경제적 필요를 지닌 불안정 소득계층이나 특정 연령집단에 주목하는 복지국가의 현금급여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기본소득을 표방하는 성남시와 경기도의 ‘청년배당’조차도 대부분이 미취업자인 24세 이하 연령대를 대상으로 삼는다. 취업자 논점을 피하려는 유연함으로 읽힌다.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가 시행하는 청년수당들 역시 미취업자가 대상이다.

외국은 어떨까? 

1982년부터 원유채굴권에서 발생한 영구기금 수입을 시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미국 알래스카주를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기본소득’으로 알려진 사례들 역시 일반 취업자는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실업부조 수급자,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실험은 생계급여 수급자가 대상이다. 최근 보도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의 기본소득(시민소득)도 저소득계층, 극빈층을 위한 정책이다. 대부분 ‘복지 덫’에 처한 취약계층들에게 근로 동기를 부여하려는 프로그램들이다. 일을 해서 소득이 생겨도, 즉 ‘취업’해도 기존 현금급여를 지급한다는 의미에서 ‘기본소득’으로 불리지만 여전히 대상은 실업자, 불안정 취업자, 빈곤층 등이다. 이름이 무엇이든 현행 제도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혁신적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면에서 서울시에 제안한 청년기본소득은 대담하고 이례적이다. 19~29세 청년이 대상이니 현재 고용률이 70%에 이르는 20대 후반의 취업자도 모두 포함된다. 조건 없이 지급되니 아마도 청년들의 만족도는 현행 청년수당보다 좋으리라 예상되지만 서울시에서 전면 시행하면 연 8조원, 전국적으로 확대하면 연 40조원이 드는 대규모 사업이다. 

기본소득은 인류사회에 무척이나 미래지향적인 기획이다. 언젠가 인공지능에 의해 다수가 노동에서 분리되는 상황이 온다면 기본소득 방식의 프로그램이 긴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며 산다. 취업자까지 포함하는 정책 실험이 필요한 때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이유이다. 정작 기본소득을 시행해야 하는 시대에는 노동시장 여건이 현재와 아주 다를 텐데, 지금의 실험 결과가 그때 얼마나 유용할까. 기존 복지제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권장해야 하지만 청년기본소득은 오늘의 시점에선 실험을 위한 실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을 위해 더 많은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책 실험도 해볼 수 있다. 동시에 그 적합성을 따져보는 엄밀함도 요청된다. 왜 당신은 상상하지 않느냐고 핀잔받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여기에’ 충실하자는 취지이다. 먼 산을 바라보느라 발 앞의 절박한 일을 놓쳐버릴까 걱정해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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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러나 통계가 현실을 모두 반영할 수는 없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는 유명한 경구가 여전히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통계가 빠진 현실은 체감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자들은 발표되는 각종 통계치를 뒷받침해 줄 사례를 찾지만 적당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럴 때는 숫자가 갖는 의미만 겨우 담아 지면에 실을 수밖에 없다.

엊그제 보도된 ‘빚으로 마련하는 신혼집’ 통계가 그러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14년 이후 결혼한 청년세대의 50.2%가 신혼집을 구하려고 대출을 받았다. 집값이 뛰면서 생긴 우울한 그림자다. 월세로 신혼을 시작한 청년세대는 16.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1998년 이전 결혼한 부모세대에서는 13.8%에 불과했던 ‘자가’(自家) 신혼부부의 비율도 청년세대에서 34.9%로 최고치였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양극화가 심화된 결과다. 대출로만 집을 구매할 신혼부부는 그리 많지 않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부가 대물림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적합한 사례들을 문재인 정부의 2기 내각 후보자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어 너무 씁쓸하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약속한 정부에서 말이다.

지난 25일 가장 먼저 청문회에 나선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1996년 경기 성남 분당구 정자동 아파트를 사서 지난달까지 거주하다 지난달 18일 장녀 부부에게 증여했다. 딸에게 준 그 집에 계속 살면서 월세 160만원의 임대차 계약도 했다. 장관이 될 아버지 덕에 자식들은 집이 생긴 데다 웬만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도 부수입으로 얻게 된다. 최 후보자는 분양가의 두 배 가까이 오른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과 배우자 명의의 서울 잠실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동산 정책 주무부처를 이끄는 자리다. 잠실, 분당, 세종의 ‘똘똘한 3채’로 23억원의 시세차익을 얻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공정한 것도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용인은 부의 양극화를 방조하겠다는 ‘항복 선언’과도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치고 취재진의 퇴장을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금 문재인 정부를 향해 ‘소통 부족’을 지적하는 여론이 늘고 있다. 2030세대들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차츰 거두는 것은 “이명박·박근혜 때 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다. ‘금수저냐 흙수저냐’로 계급이 갈라지듯 불평등이 부모세대부터 세습되고 있지만 정부 출범 3년차가 되도록 이렇다할 성과는커녕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절한 취업의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데도 부모의 후광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역시 이번 장관 후보자들의 청문회를 장식한다. 지난달 청년(20~29세) 실업률은 9.5%로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상황이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자신이 이사로 있던 업체의 미국 법인에 장남이 인턴으로 채용됐다. 둘째 아들 역시 조 후보자가 카이스트에 재직하는 기간에 카이스트 위촉기능원으로 6개월간 일했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스펙 쌓기를 한 셈이다. 특히 조 후보자는 청와대가 세운 인사검증 7대 원칙 중 성범죄와 음주운전을 제외하고 부동산 투기와 이를 위한 위장전입, 병역특례 등 5가지 분야에서 의혹에 휩싸인 인물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아들은 낮은 학점과 부실한 자기소개서, 인증기간이 지난 토익점수에도 ‘꿈의 직장’인 한국선급에 채용됐다. 세계해사대(WMU)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인 문 후보자가 2015~2016년 네 차례 한국선급을 공식 방문했는데 그 일정이 아들의 한국선급 채용 시점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의혹도 나왔다. 명절에도 도서관에서 새벽부터 공부하고, 몇십번씩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완성하는 취업준비생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엄청난 불공정이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수입으로는 힘든 2억원 안팎의 예금액을 형성하는 데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불린 사람들이 장관으로 지명됐다. 이 때문에 강부자(강남 땅부자) 내각이라는 오명을 썼다. 박근혜 정부 때도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의혹에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중도하차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는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2기 내각을 이끌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의혹이 하나둘씩 불거지면서 무엇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다. 내 편이면 눈감고 허물도 덮어주려는 여당의 행태는 10년 전과 오십보백보다. 정녕 ‘이런 꼴을 보려고 촛불을 들었나’. 촛불로 탄생한 정부를 향한 한숨 소리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박재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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