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들이 사용했던 펜을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7000원에 판매하려던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있었다. 펜 주인의 손편지가 동봉될 계획이었는데, 편지는 ‘등급 컷’이 높은 순으로 선착순 판매될 계획이었다. 논란이 일자 해당 동아리는 판매계획을 중지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상품’의 수요는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 시점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학벌에 대한 문제의식이 증발한 듯하다. 1998년에 출범했던 시민단체인 ‘학벌없는사회’는 2016년 해체를 선언하며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졌기에 학벌을 가졌다 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학벌의 질서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의미한 사회경제적 권력의 획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도 서울대를 가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절과 다르게, 같은 서울대라도 부자와 빈자, 입시전형과 ‘등급 컷’에 따라 운명이 나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난한 아이들은 더 이상 서울대를 갈 수 없다. 학벌의 서열과 자본의 서열이 점점 더 빈틈없이 일치하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개천의 용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중요한 것은 용이 아니다. 개천의 용이란 언제나 희망의 얼굴을 한 기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계급재생산을 위한 부자들의 온실에는 자녀들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모든 것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필요하다면 시련까지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준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그것이 ‘경쟁’이라면 이들을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람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따라서 적합하게 대우할 수 있다는 것은 이념이나 믿음의 영역에 더 가깝다. 애초에 그 기준 역시 돈과 권력의 바깥에서 정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다. 격차가 더 깊어지고, 점점 돌이킬 수 없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박탈감에 대한 호소와 ‘갑질’에 대한 분노도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거둘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오언 존스의 책 <기득권층>에서는 하나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2002년의 어느 날, 지난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압도적인 차이로 패배해 절망해 있던 보수당 정치인과 당원들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한 호텔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심각한 청중들의 얼굴과는 다르게 대처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는 “토니 블레어가 우리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말했는데,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야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블레어의 신노동당은 미국과 함께 이라크 침공의 선봉에 서고, 민영화와 복지정책의 축소를 도모했다. 대처는 자신이 초석을 놓았던 신자유주의가 ‘적’에 의해 공고해지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부패한 두 명의 전직 대통령에게 법의 심판을 내렸다. 그러나 우리는 학벌도 능력이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들이고, 모두가 건물주의 꿈을 꾸며, 힘들게 입사한 정규직의 특권은 당연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혹시라도 나 모르게 과도한 복지혜택을 받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한다. 갑질에 대한 우리의 분노는 불평등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나의 박탈감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욕망하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했고, ‘적’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와 우리가 비난하는 부패한 기득권자들 사이에는 현실의 골짜기와 인식의 실개천이 놓여있다.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했다가 퇴사해야만 삶에 대해 고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갈증과 환멸은 이 다른 생각의 부제로부터 연유하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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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젊어서 성공한 삶을 꿈꾼다. ‘성공’이 뭐냐 물으면 사람마다 답이 제각각이다. 돈이 많아야, 지위가 높아야, 훌륭한 작품을 남겨야, 자신의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어야 성공이라 할 수도 있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이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었는지, 또는 가정의 화목이 바로 성공한 삶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높은 수익이 성공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고, 직원의 행복을 기준으로 성공을 잴 수도 있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가 성공한 기업의 기준일 수도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현실은 복잡해도 단순하게 줄이고 줄여 뭉뚱그려 바라보는 것이 과학이다. 복잡하면 이해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과학 방법론이다. 자,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 중, 예를 들어, x축에는 가진 돈을, y축에는 가정의 화목을 놓고, z축 방향으로는 성공의 정도를 표시해보자(즉 성공은 z = f(x, y)의 꼴로 적을 수 있는 함수다).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이 다 다르니 x축과 y축에 적힌 양도 제각각이고, 함수의 모양도 모두 다를 것이 분명하다. 또 성공을 거두기 위해 필요한 것이 딱 둘뿐일 리도 없으니 이차원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에서 정의되는 함수가 성공이다. 하지만, 수학적 구조는 z=f(x, y)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함수’를 보고 어리둥절한 독자는 네모난 땅 위에 여러 언덕과 골짜기가 있는 구불구불한 지형을 떠올려보면 된다. 지형이 제각각 다른 땅을 각자 가지고 있고, 최대의 성공이란 네모난 테두리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상상하면 된다. 이런 유형의 문제를 과학에서는 최적화 문제라 한다. 

네모난 테두리 안이라는 제한조건하에서 가장 높은 곳이 어디인지 찾는 문제다. ‘성공’을 예로 들었지만, 이와 같은 최적화 문제는 우리 현실에서 수없이 자주 마주친다. 아침 출근에 걸리는 시간을 집에서 나오는 시간과 교통편을 바꿔가며 최소로 하는 것도 최적화 문제이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어떤 과목에 얼마의 시간을 투입해 벼락치기로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고민하는 것도 그렇다. 지갑 사정이라는 제한조건하에서 영화를 볼지, 책을 살지, 커피를 마실지, 나의 만족을 최대로 하는 최적의 조합을 생각하는 것도 최적화 문제이다. 주변의 땅값과 건설의 어려움을 고려해 두 도시를 잇는 고속도로를 어떻게 건설하는 것이 비용을 가장 많이 절약할지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값에 비해 품질이 우수한 소위 가성비 높은 상품을 찾아 만족했다면, 지출 비용이라는 제한조건하에서 최대의 만족을 얻는 최적화 문제를 푼 셈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출발해 성공의 최댓값에 다다르는, 경계 안의 가장 높은 고지를 찾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등산을 가면 산꼭대기가 저 멀리 맨눈에도 보이지만, 인생에서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눈을 감고도 고지에 오르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딱 한 걸음씩 눈감고 조심스레 디뎌보고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높아지는 방향을 골라 그쪽으로 한 발짝 발걸음을 옮기는 거다. 이를 반복하면 한 걸음 한 걸음 점점 높은 곳을 향해 눈을 감고도 나아갈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바로 옆 주변만을 살펴 걸음을 옮긴다는 면에서 이 방법을 국소적 탐색이라 한다.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 연결망의 가중치를 조금씩 바꾸는 학습의 과정에 정확히 이 방법을 널리 쓴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도 아장아장 한 발짝씩 걷는 바로 이 방법으로 바둑을 배웠다.

인생에서 성공의 지형은 무척 복잡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산봉우리도, 그보다 낮은 언덕도, 깊은 골짜기도 있다. 국소적 탐색의 방법은 심각한 결점이 있다.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 한번 오르면 그곳에 영원히 머물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언덕 꼭대기에서는 동서남북 어느 방향이나, 눈감고 살짝 디뎌보면 하나같이 경사가 아래를 향한다. 올라가는 방향이 없으니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꼼짝없이 꼭대기에 붙박혀 있게 된다. 저 멀리 높은 산봉우리로 건너갈 방법을 국소적 탐색으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현재의 작은 성공에 안주해 바로 옆 주변만 살피다가는,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성공의 높은 산꼭대기에 도달할 수 없다. 

야트막한 언덕에 오래 머물게 되는 국소적 탐색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먼저, 주변 1m 안쪽만 발끝으로 조심스레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통 크게 몇 ㎞ 멀리로 바람에 몸을 맡겨 훌쩍 떠나보는 것도 방법이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더 큰 세상에서 더 높은 성공의 고지를 찾을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큰 위험도 있다. 훌쩍 길을 떠나 다다른 저 먼 곳이 깊은 골짜기라서 오랫동안 헤어나지 못할 수도, 천 길 낭떠러지라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작은 보폭으로 걸어가는 다른 방법도 있다. 한 걸음 디딘 곳이 내리막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그래도 희망을 갖고 계속 꾸준히 나아가는 방법이다. 한동안은 한 걸음씩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지만, 결국 더 내려가려야 갈 수도 없는 최악의 골짜기에 빠진 다음에는 반대쪽 경사면을 따라 더 높은 다른 언덕 꼭대기에 닿을 수도 있다. 안락하고 익숙한 작은 성공에서 벗어나 큰 성공을 거두려면, 위험을 무릅쓸 용기와 함께, 이어지는 실패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멀리 떠나보면 엉뚱한 곳에 잘못 왔다고 후회라도 할 수 있지만, 제자리에 머물면 평생 후회조차 할 수 없다. 안 가본 것을 후회하느니 가보고 나서 후회하자. 조심스러운 탐색으로 작은 언덕에 올랐다면 이제 더 큰 꿈을 꾸자. 저 멀리 있는 커다란 성취의 산봉우리에는 후회해본 사람들만 갈 수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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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마다 돌아오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평가를 앞두고 결국 사달이 났다. 전국 43개 자사고 중 올해 재평가 대상은 22개. 이 중 13개 자사고가 모여 있는 서울에서 자사고 교장 22명이 지난 25일 모여 “재평가를 전면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서울 유일의 광역 자사고인 하나고를 제외한 22개 자사고가 모두 참여한 선언이니 현재대로라면 서울시 자사고 재평가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튿날 열린 서울시교육청과 자사고들 간 간담회에서도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자사고들은 시교육청이 만든 평가 기준이 과거보다 지나치게 높다며 기준 완화를 요구 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정당한 요구라고 보기 어렵다. 수험생이 출제자에게 “문제가 너무 어려우니 쉽게 내달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세상에 그런 시험은 없다. 더욱이 자사고 재평가는 엄연히 교육법으로 규정된 법률행위다. 기본적으로 자사고가 그 평가 기준을 이유로 재평가를 거부할 대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교사노동조합 등이 “재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자사고 지정 요건을 위반하는 위법행위”라고 비판하고 나선 배경이다.

자사고가 무엇을 기대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는지 단정하긴 어렵다. 정말로 시교육청이 평가 기준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워 민선으로 교육감직을 연임하고, 기회만 되면 자사고 폐지를 외쳐온 조희연 교육감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되면 속된 말로 ‘가오’가 빠져도 너무 빠지지 않나.

5년 전을 떠올려본다. 2014년에도 자사고 재평가가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14개 자사고가 평가를 받았고, 8개 학교가 기준 미달로 나타났다. 시교육청은 규정에 따라 해당 자사고에 대해 폐지 절차에 들어갔지만 교육부가 제동을 걸었다. 교육법에는 자사고를 취소하려면 교육부와 시교육청이 ‘사전 협의’를 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자사고를 없앨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시교육청과 교육부의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지난해 대법원은 “사전 협의가 안됐으니 지정 취소를 하면 안된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시교육청이 진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자사고 재평가 결과 발표 및 후속 조치는 연말쯤에나 이뤄진다. 그리고 내년엔 바로 총선이 있다. 일각에선 자사고들의 평가 거부 선언을 ‘제2의 한유총 사태’와도 비교하지만 뜯어보면 결이 많이 다르다. 한유총 사태는 학부모와 여론이 스스로 정부 편에 섰다.

자사고 문제는 다르다. 인생을 좌우한다는 대학 입시가 걸려 있는 문제다. 당장 자녀가 다니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학부모는 많지 않다. 지난해 학교 측이 스스로 원해 일반고로 전환한 대성고의 경우 아직도 전환에 따른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유총 문제와 달리 자사고는 지역 민심과 여론을 동요시킬 휘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선언문을 들고 나타난 22명의 교장과 그 뒤에 자리 잡은 사학재단들은 이를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려되는 점은 교육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됐다. 시교육청이 재평가와 지정 취소를 강행했을 때 교육부가 5년 전처럼 딴지를 걸지 않아야 정상이다. 규모와 그 파급력을 봤을 때 자사고들이 집단 평가 거부에 나섰을 때 즉각 교육부가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여당 내에서도 누구는 자사고를 없애자 하고, 누구는 “우리 지역에만 없다”며 자사고를 달라고 한다. 내년 총선에 현 정부의 명운과 차기 대권의 향방까지 걸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자사고가 됐든 정부가 됐든 교육을 가지고 정치놀음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송진식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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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인디안밥, 점심에는 고래밥, 저녁에는 사또밥. 대충대충 먹고 살아도 되는데 부산스럽게 또 상차림을 하게 된다. 한 처자가 절대로 결혼은 않겠다고 장담하면서 친구들에게 그랬다. “사내놈들은 다 늑대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늑대밥은 안될 거니 어디 두고 보라고.” 그랬다가 느닷없는 반전 결혼식. 이번에는 말이 바뀌어 “늑대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될 거 아니니.” 친구들이랑 밥 먹다가 이런 밥 타령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밥이 코로 들어갔다. 

나는 어디서 주워들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외우는 편이다. 진지한 말의 성찬은 아무리 영혼의 양식이라도 앉아 있기 괴롭지. 우울한 수도원은 내가 머물 곳이 못된 듯싶다. 인연이 쌓여서 강연을 부탁받기도 한다. 거마비도 못 주는 궁핍한 현장들. 시민단체나 노동조합도 가끔 가곤 했다. 웃을 일이란 하나 없는 표정으로, 아무리 재밌는 소리를 해도 시큰둥. 놀부와 스님의 “주나봐라 주나봐라, 가나봐라 가나봐라” 불경외기 싸움처럼 거대한 벽 앞에 맞닥뜨린 느낌이랄까. 그러면 나 혼자 웃다가 온다. 나라도 살아야지. 

소설가 김성중의 <개그맨>은 이렇게 시작된다. “느린 말투의 느린 움직임, 한순간 던진 말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후 각자의 연상 끝에 터지는 폭소. 대중이 그의 개그를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가 무명시절일 때 만났다. (중략) 개그맨은 떨어진 빗물을 바라보면서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나도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이 슬픔의 도성에서 웃음거리를 그래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어디선가 폭소가 터진다. 일행도 아닌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엿들어 알고 싶다. 친구가 재밌는 말을 하면 일부러라도 많이 웃어주고 그러자. 실없는 이야기라도 좀 웃어주자. 만두 두개, 그만 두게! 할 때까지 말이다. 시샘추위로 한껏 움츠러든 며칠이었다. 노랑나비를 보았다. 마당에서 개그맨과 노랑나비가 콤비로 쇼를 했다. 웃을 일이 있어야만 세상살이가 좋아지는 게 아니다. 일단 웃고 나면 세상살이가 어느새 행복해진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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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교 학생들의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교육부가 27일 발표한 ‘2018년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 분석결과’에 따르면, 시력 0.7 이하인 저시력의 학생은 절반 이상인 53.7%로 나타났다. 충치는 5명 중 한 명꼴인 22.8%, 비만율군은 4명에 한 명인 25%였다. 반면 학생들의 신체 성장세는 둔화됐다. 고3 학생의 경우 최근 5년간 키 성장은 정체됐고, 몸무게만 크게 늘었다. 

신체 활동이 왕성해야 할 학생 시기에 건강과 발육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비만율과 과체중을 합한 수치인 비만율군이 지난 5년 새 21.2%에서 25%로 증가한 것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잦은 결식과 패스트푸드 섭취 증가 등 나쁜 식습관이 직접 원인으로 꼽히지만, 학업 스트레스와 이에 따른 신체 활동 부족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최근에는 스마트폰·PC 사용 증가로 인한 학생 정신건강 악화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학생 시기의 건강관리는 원활한 학습을 위해서뿐 아니라 성인으로 나아가는 기초 체력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건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성인 시기 만성질환으로 이어져 사회·경제적 비용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때맞춰 교육부와 관련 부처들이 ‘제1차 학생건강증진 기본계획(2019~2023)’을 발표해 건강증진 교육 내실화, 건강서비스 확대, 건강한 교육환경 조성에 나서겠다고 뜻을 모은 것은 적절하다. 비전도 중요하지만, 학생 건강 지표가 나아질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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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후보자 7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27일 끝났다. 도덕성·자질 흠결로부터 자유로운 후보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의혹 경연장’을 방불케 한 청문회였다.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 병역기피 등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인사검증 기준’에도 저촉되는 후보자들이 태반이고,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한 일탈도 수두룩하다.

27일 청문회를 치른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의혹백화점’이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 아들 인턴 특혜 채용, 배우자 농지법 위반, 세금 탈루, 병역특혜, 다주택 보유 등 헤아리기도 벅찰 정도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조 후보자가 국가연구비 4800만원을 들여 두 아들이 유학 중인 미국 특정 지역에 7차례 출장을 다녀온 사실도 확인됐다. 이를 위해 허위출장 보고서를 작성한 의혹도 나왔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가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사실이라면 장관은커녕 교수로서의 자격도 없는 불법 행위다. 또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딱지 투기’와 이해충돌,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청문회를 거친 후보자들도 단순 의혹 차원을 넘어선 경우가 허다하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청문회 전날 6500만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그간 탈세를 저지른 것이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4차례 위장전입에다 본인 소득이 있는데도 아들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한 것이 확인됐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주택정책 총괄 수장으로서의 적격성에 심대한 결함이 드러났다. 그는 전형적인 재건축 투기 의혹에다가 실제 거주 목적이 아닌 세종시 아파트 분양권 투자, ‘꼼수 증여’까지 부동산 투기의 고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토부 장관처럼 투기하면 되나요?”라는 비아냥을 듣는 국토부 장관 후보자, “죄송하다”는 사과로 퉁칠 단계는 지났다. 오죽하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경실련이 동시에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을까 싶다.

청와대는 인사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서도 “사전에 체크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고위공직자로서 심각한 법·도덕적 흠결이 확인된 경우는 곤란하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임명을 강행하기보다 철회하는 것이 정도다. ‘닥치고 임명’의 오만에 빠지지 말고, 청문 결과를 반영하여 옥석을 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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