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 비나 바람을 기다린다. 하지만 미세먼지를 씻어내고 날려 보낼 정도의 비와 바람을 보기도 쉽지 않다. 지난 20일, 오랜만에 비다운 비가 전국적으로 내렸다. 기대했던 것만큼 미세먼지를 씻어내진 못했지만, 봄 가뭄만 생각해도 정말 단비였다. 바짝 마른 땅을 적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보며 얼마 전 미세먼지 대책으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인공강우’가 생각났다. 과연 이런 정도의 비가 인공강우로 가능할까? 인공강우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기술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개발된 놀라운 기술의 쓰임새를 본다면 이런 짐작도 무리는 아니다. 예상 못한 어떤 결과가 생길지도 모른다. 비 온 후 며칠간, 꽃샘추위를 몰고 온 바람 덕분에 비교적 맑고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미세먼지를 날려 보낼 정도의 바람도 인간의 기술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그 기술 또한 재앙이 될 확률이 높다. 

눈부신 발달을 거듭해왔지만, 인간의 기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특정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우리는 잘 모른다. 전기를 생산하려고 만든 석탄화력발전소가 미세먼지의 주범이 될지 몰랐다. 기술의 부산물들이 서로 만나 다시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우리는 잘 모른다. 기후변화가 대기 정체를 일으키고, 대기 정체는 비와 바람을 약화시켜 미세먼지 문제를 악화시킬지 몰랐다. 인간의 기술은 자연 질서를 쉽게 훼손하지만, 훼손된 질서의 복원에는 무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인은 그대로 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기술로 인한 부작용은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다. 문제가 될 때까지. 아무리 놀라운 기술을 동원한다고 해도, 무모하고 미련한 짓이 분명하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도 국내 배출원의 15% 정도를 차지한다는 석탄발전은 좀처럼 줄어들 기세가 아니다. 노후 발전소 10기는 폐쇄키로 했다지만, 7기가 추가 건설 중이라 2030년까지 석탄발전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발전소의 추가 폐쇄 계획은 없고, 30기 이상의 발전소는 성능 개선으로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무엇이 이렇게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 우리가 누리는 편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집착이나 타성이 아닐까. 그렇다면 미세먼지의 배출원은 우리 안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핵폐기물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으니 임시저장소를 더 만들자는 발상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해결해보자는, 아니, 일단 문제를 피해보자는 태도다. 핵폐기물 문제의 해결책은 배출원인 핵발전소에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요즘 배출원인 핵발전소는 건드리지 말라는 ‘탈원전 반대’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이렇듯 집요하게 탈핵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핵폐기물의 진짜 배출원도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 4대강 문제의 근원은 16개의 보에 있으니, 해결책도 보 해체에서 시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왕 만들었으니, 어떻게든 활용하자는 주장도 원인은 그대로 두고 문제를 무마해보자는 미봉책이다.

미국 대학의 한 연구팀이 대기에 뿌린 미세입자로 햇빛을 차단해서 기후변화를 막는 연구를 한다고 한다. 이 연구도 원인은 놓아둔 채 문제만 기술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술이 지구에 미칠 다른 영향은 알 수가 없다. 창의적인지 모르겠지만 무모하고 미련한, 오만하고 섬뜩한 발상임은 분명하다. 

문제의 근원을 찾아 대면하는 것은 분명히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리 환영받지도 못하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라는 요구를 피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우리 안에서부터 근원을 ‘발본’하고 ‘색원’하지 않는 한, 진정한 문제 해결도 변화도 없다.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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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검사를 만나본 적은 없다. 이름을 적어놓았던 메모지도 지금은 없어졌다. 그런데도 검사 하면 그가 생각나는 이유는 전해들은 인상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10여년 전 우연히 탄 택시의 기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낮에 한 검사에게 점심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의류 제조업체의 사장이었다고 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후원업체로까지 지정됐다고 하니 꽤 규모가 큰 회사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월드컵 때의 투자로 부도가 났다. 그는 전 재산을 털었지만 빚을 다 갚지 못했고, 고소를 당해 그 검사를 만나게 됐다.

검사는 조사가 끝나던 날 “300만원 있느냐”며 “그 돈만 갚으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고 했다. 그에게는 300만원도 없었다. 검사는 “내가 빌려줄 테니 나중에 갚으라”며 300만원을 빌려줬다고 한다. 그는 검사에게 받은 300만원으로 채권자들과의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돈이 생길 때마다 10만원, 20만원씩 갚아나간 그는 내가 택시를 탄 그날 검사를 만나 빌린 돈을 마지막으로 갚았다. 그는 “돈이 없어 5000원짜리 국밥밖에 사지 못했다”고 했다. 얘기를 들려주는 택시 기사의 목소리에 묻어나던 고마움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가 검사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많이 공부한 사람이라 역시 배려심도 깊구나.’ 이런 생각들을 했다. 세상의 검사들이 모두 그와 같다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밝아졌을까. 하지만 요즘 접하는 검사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자료를 모니터에 게시한 채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구속된 한 대기업의 검사 출신 부사장. 윤리경영부문장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의 유해성을 알고도 이를 숨기려 자료를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사 시절에는 ‘맷값 폭행’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 피해자를 기소했다. ‘장자연 리스트’ 관련 수사 때는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기소했다. 잡으라는 도둑은 안 잡고, ‘도둑이야’라고 외치는 시민들을 시끄럽다고 잡아들인 격 아닌가.

그리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건설업자의 별장에서 성범죄를 저지르며 ‘육안으로도 (김 전 차관으로) 식별이 가능한’ 동영상을 찍었다. 한밤중에 해외로 나가려다 출국이 제지된 그는 잘못에 대해서는 아직 한마디 사과가 없다. 그저 “힘들다”는 말뿐이다.

무엇이 검사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수사권, 수사지휘권, 독점적 영장 청구권, 기소권을 독점한 그들의 막강한 권한 때문일까. 영화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는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사악하고 탐욕스럽게 만든다. 착하고 순수한 프로도마저 반지를 보는 순간 눈빛이 변한다. 검사들에게 그들이 가진 절대적인 권한은 ‘절대반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에서 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 파괴하듯 검사들의 절대적인 권한을 줄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이 처음으로 수학에서 어려움을 겪는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분수’를 배울 때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 연산에 그치던 초등학교 2학년 수학과는 달리 3학년이 되면서 분수와 도형을 접하게 되는데 이 시점에 수학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형성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아이들이 ‘수포자’가 되는 시점에 충분한 학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검사들도 일을 하다가 윤리적인 측면에서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닐까. 예컨대 승진이라든가 보직이동을 처음 경험하게 될 때 같은. 만약 그렇다면 검사들에게도 어느 시점에 일을 떠나 윤리 교육을 다시 받게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는 2009년 3월 ‘검사선서’를 만들어 새로 임용되는 검사들이 선서하게 했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검사의 모습이 만화영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는 아닐 것이다. 검사로 취임할 때 선서한 바를 퇴직할 때까지 지켜주기만 해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검사선서’를 다시 읽어볼 것을 검사들에게 권한다.

<김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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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늙으려는 고군분투 속에서 대표적인 항산화 성분이라 알려진 안토시아닌 함유량은 슈퍼푸드의 절대 기준이다. 한때 흑미 열풍도 불었지만, 지금은 ‘베리류’ 과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안토시아닌 서열 정리를 하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쯤에는 블루베리가 대세였다. FTA로 과수농가의 피해가 커질 것이 뻔해지자 2000년대 초반 대체작물로 권장하던 작목 중에 블루베리가 있었다. 블루베리는 산성토에 잘 맞아서 ‘피트모스’라는 전용 흙에 키워야 한다. 흙은 물론 수입한다. 첫 수확에 시간이 5년 정도 걸리긴 했지만 블루베리 인기가 좋았다. 언론부터 홈쇼핑까지 블루베리 열풍에 가담했고, 이래저래 재배지역이 늘었다. 하지만 값싼 미국산 블루베리가 밀려들어왔다. 블루베리는 FTA 수입 피해 대상 품목에 들어가면서 소득작목으로 각광받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2016년 포도와 함께 폐원 신청을 받는 작물이 되었다. 

엇비슷한 시기에 안토시아닌의 왕, ‘킹스베리’라는 별칭의 아로니아가 떠올랐다. 2010년 전후로 새로운 소득작물이자 대체작물로 아로니아 열풍을 부추겼다. 방송사마다 아로니아를 소개했고 식품학계는 논문으로 아로니아떡, 아로니아막걸리 등에 항산화 효과가 뛰어나다며 과학으로(!) 증명하기에 바빴다. 불로장생의 꿈을 실현시켜줄 과일에 사람들은 매혹당했다. 마땅한 대체작물을 찾지 못한 농민들도 아로니아 재배에 뛰어들었다. 농업 기관에서도 아로니아가 괜찮은 소득작물이 될 것이라 검증해주었다. 정부가 하라는 것만 안 하면 된다는 농촌의 오랜 지혜를 거스르고 아로니아 농사에 뛰어든 것이다. 귀농인들도 큰 기술이 필요 없고 소득작물이라며 귀농교육 기관에서 권유를 받았다. 묘목도 지원해주고 수매도 해주겠다 하고, 무엇보다 고소득 작물이라는데 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단양군 같은 곳에선 군수까지 나서서 아로니아 권작을 하고 전용 가공센터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로니아 생과는 시고 떫고 쓰다. 몇 년 전 충남의 아로니아를 비롯해 구스베리니 커런트니 입에도 잘 안 붙는 베리 농사를 짓는 농가에 취재를 갔다가 아로니아 몇 개를 집어먹었다. 웬만하면 농민들 앞에서 아무거나 다 먹지만 아로니아만은 뱉어냈다. 블루베리와는 달리 생과로는 섭취가 애초에 불가능해서 가루나 즙을 내어 2차 가공을 해야 하는 작물이다. 아로니아 농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던 꿈은 원대했다. 아로니아즙, 식초, 술을 담가 팔고 천연비누나 식품에 첨가해 부가가치를 올린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근래에 연락을 해보니 “진즉에 접었지유”라고 한다. 제대로 팔아본 적도 없고 유럽 베리 산업의 중심지인 폴란드산 아로니아가 홈쇼핑을 통해 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정부의 FTA 피해 품목이 아니란 말만 믿었건만 당연히 가공품 형태의 아로니아 시장은 손쉽게 열려버렸다. 

그나마 이 농가는 빨리 집어치워 품값이라도 아낀 것에 위안을 삼고 있었다. 지금 전국의 아로니아 농가들은 키워놓은 나무를 뽑느라 포클레인 공임비마저 날리고 있다. 아로니아 메카로 만들겠다던 단양의 아로니아 가공센터는 지역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로니아 농사를 부추긴 정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매번 속으면서도 아로니아 헛소동에 휘말려 폐원 비용이라도 보장하라는 농가의 요청에는 구걸하지 말라며 서늘한 댓글들이 달린다. 아로니아의 검은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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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란 법으로 규정하는 일종의 반사회적 행위다. 죄의 원천을 단순히 개인이냐 사회구조냐에 따라 판단하는 이원론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개인과 사회는 거대하고 복잡한 상관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범죄율 또한 마찬가지다. 만약 범죄율을 의도적으로 높이려는 세력이 존재한다면 이는 어떤 연유에서일까. 

미국에선 실제 범죄율을 높이는 전략으로 정권을 창출하거나 유지하는 사례가 있었다. 4선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20여년에 이르는 민주당의 전성시대를 이끈 인물이다. 민주당의 독주로 위기에 처한 공화당은 1960년대에 ‘분할정복’이란 정치전략을 시도한다. 분할정복은 가난한 백인이 부유한 백인을 배척하지 않도록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에게 반감을 품게 유도하는 이중전략이다. 

문제는 분할정복전략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 높은 범죄율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방범시스템이 견고한 부촌에서는 범죄율의 상승 여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반면 슬럼가나 도심에 거주하는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범죄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범죄에 노출된 저소득층은 유사 계급에 반감을 가진다. 계급 간의 갈등을 조장한 포퓰리즘에 이용당한 중산층 이하의 유권자는 정략적으로 범죄소탕을 외치는 공화당에 표를 몰아주기 마련이다.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은 정권에 따라서 범죄율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는 공화당 집권기에 자살과 살인을 합친 폭력치사율이 높아졌다고 발표한다. 공화당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가 재직한 1981년부터 1992년은 10만명당 19.9명에서 22.4명에 달하는 폭력치사율을 기록한다. 하지만 1993년 부시로부터 21.7명이라는 폭력치사율을 물려받은 빌 클린턴 집권기부터 변화가 생긴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취임하자 폭력치사율은 내림세를 보인다. 1997년 재선 첫해에는 18.3명을 기록했으며, 임기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16.0명으로 하락한다. 이후 아들 조지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수치는 오름세로 돌아선다. 제임스 길리건은 저서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를 통해 이러한 수치의 변화가 우연이 아님을 밝혀낸다. 

이러한 현상을 건국 이후부터 인종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미국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지역차별의 역사가 견고한 대한민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특정 지역을 정략적으로 소외시키는 한국판 분할정복전략이 20세기 후반까지 유효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차이점이라면 비열한 지역주의로 분열을 일으키려는 집권세력의 칼날에 맞섰던 흔적이 존재했다는 부분이다.  

길리건 박사는 반세기 동안 이어진 공화당의 분할정복전략의 희생양인 99%에 달하는 서민의 각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민의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갈림길에 정치라는 매개변수가 작용하고 있음을 적시한다. 한편 민주당 출신인 지미 카터 집권기에는 폭력치사율이 정체상태를 보인 기록이 있다. 그럼에도 길리건의 연구는 정치권력과 시민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저자는 1977년부터 1992년까지 매사추세츠주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폭력 예방 프로젝트를 실시한다. 이후 교도소 내 살인율·자살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낸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자살률 1위를 기록한다. 2018년에 처음으로 2위로 내려갔으나 이는 한국보다 자살률이 높은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했기에 가능한 순위였다. 

조지 오웰은 소설을 통해서 사회를 설계하는 미래권력을 예견했다.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살인과 자살을 설계하는 사회에서 밝고 건강한 일상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폭력과 죽음의 이면에 존재하는 설계자를 차단하는 사회란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취향의 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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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거래’(The Traffic in Women)라는 글이 있다. 제목을 들으면, 인류학자, 젠더이론가인 게일 루빈이 1975년에 쓴 페미니즘의 고전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고찰은 루빈보다 훨씬 이전에, 루빈이 참조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보다도 이전에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1940년 사망할 때까지 북미와 유럽에서 여성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했던 옘마 골드만은 ‘여성의 거래’에서, 여성의 인신매매를 “백인 노예제”라고 부르던 당대 사회비평가들의 피상적인 도덕론에 반박하면서 사회적으로 열등한 여성의 지위, 현저히 열악한 여성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조건 등이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거래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골드만은 성매매를 백인들의 문제로 축소하는 당대 미국의 개혁운동이 인종을 막론하는 여성의 착취와 강제된 성매매의 역사를 간과하는 시각임을, 또 제도화된 여성 착취의 기저에 남녀의 성에 대한 고질적인 이중잣대가 있음을 지적한다. 

골드만의 글은 20세기 초 너무나 제한적이던 여성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성매매 산업을 고찰하는 글이므로, 역사적 조건도, 문화적 맥락도 다른 오늘의 우리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되돌아보는 건, 골드만이 당시 지적했던 몇 가지 사실이 오늘 우리가 늘 마주하는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듯 느껴져서다. 즉 성폭력적 여성 착취가 사회 전체의 경제체제 및 문화와 밀착된 문제이고, 여성의 거래가 포주를 비롯한 알선자와, 섹스 또는 다른 형태로 뇌물을 수수하는 관련 당국자들의 공모 속에서 영속화되며, 이로써 한편으로 여성을 거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거래를 단죄하고 처벌하는 모순이 여성을 통제하는 거대 범죄구조로 자리 잡는다는 비판 말이다.

옘마 골드만이 ‘여성의 거래’를 쓴 것이 1910년이다. 이후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가 요구했던 여성의 “자신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왜 여성의 거래가 사라지기는커녕 더 노골화되었을까.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성상납’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폭력적, 탈법적 작태는 골드만이 고찰했던 19세기적 성매매 산업보다 더 광폭하고 무도한  인신거래다. 장자연을 희생시킨 사건, 김학의사건, 그리고 버닝썬 게이트로 불거진 젊은 남자연예인 사업가들의 비위는 시기와 맥락은 다르지만, 특권의식과 이권의 결합으로 맺어진 남성연대 안에서 여성을 공여 가능한 재화로 삼는 노골적 거래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여성의 거래가그 본질상 거래되는 여성의 인권과 의지를 철저히 묵살해야만 가능한 성폭력일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이 사건들은, 성적 도구화된 여성을 매개로 하는 남성연대의 형성, 특권화된 쾌락의 독점적 소유자로서 남성의 폭력적 자기과시 등 여성을 거래한다는 행위가 개념적으로 연루하는 문제들을 가시적으로 총망라한다. 이 사건들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런 거래가 특권적 남성연대 안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동시에 조직적으로 은폐되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성을 탈인간화하는 행위를 묵과하고 무마하는 공권력 대리인들의 공모는 상호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성폭력의 카르텔을 확장하고 공고히 한다. 이 특별한 교환행위, 또 그것을 통한 지위와 능력의 과시, 쾌락과 이윤의 획득은 그야말로 초법적 권력행사라는 차원에서 진정한 ‘특권’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남성의 사회화는 여성의 탈인간화를 학습하고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시대의 악습으로 치부하고 싶은 여성의 탈인간화가 젊은 ‘아이돌’ 남자들의 사업수완, 오락거리로 버젓이 활용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증거가 아닌가. 그런 사회에서 섹스는 테러나 다름없다. 카톡방의 무수한 성희롱 발언들에 상처받고 명예를 훼손당한 수많은 여성들, 불법촬영물로 인권을 유린당한 여성들, 연예 활동을 위해 성폭력 감수를 강요받는 여성들에게 섹스는 이미 테러다. 

그 위선적, 무법적 현실의 폭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풀어야만 하는 어려운 숙제다. 수사와 처벌이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여성을 탈인간화하는 특권적 권력을 폭로하여 그 특권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은 거래의 ‘대상’이 될 것을 강요받고 침묵을 강요받았던 여성들이다. 내부의 성폭력적 문화에 침묵했고 과거에 덮었던 문제들을 ‘과거사’로 다시 떠맡은 검찰이 과연 공모의 그림자가 얼마나 높이 멀리 뻗었는지를 샅샅이 살필 수 있을지, 결국 테러가 테러를 눈감아 주는 형국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할 뿐이다.

<윤조원 고려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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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과 황금폰. 해리슨 포드 주연의 할리우드 액션 어드벤처 영화 제목에 어울릴 것 같은 이 두 단어는 현재 우리 사회 상층부 남성 권력의 정치·젠더 폭력의 실체를 표상하는 기표들이다. 하나는 불타는 청춘의 욕망을 상징하는 클럽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뭔가 중대한 내용을 저장한 비밀 휴대폰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두 기표는 이제 남성 상층부의 가부장 권력을 말할 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이 관계는 역사와 세대를 거쳐 재생산된다. 권번과 교방에서 요정과 궁정동 안가에 이르기까지, 버닝썬은 역사적으로 재생산된 정치·젠더 폭력 놀이방의 최신 버전이다. 

정치·젠더 폭력의 놀이 장소로서 버닝썬은 간판만 다를 뿐이지, 과거 대원각, 궁정동과 동일 업소다. 이 업소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도 유사하다.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승리와 정준영, 그리고 그들을 비즈니스로 엮은 이문호 대표, 그들의 불법 영업을 눈감아 준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경찰 간부들은 궁정동 안가에 등장한 인물들과 흡사하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모 언론사 대표, 그리고 그들에게 원주 별장을 제공하고 집단 성매매를 제공한 윤중천, 그리고 그 사건을 덮은 검찰 수뇌부도 거의 속편의 영화를 찍는 다른 등장인물들이다. 영화 촬영지인 궁정동, 버닝썬, 원주 별장은 장소는 다르지만, 하는 짓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항상 연예인이 등장한다.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논란을 빚은 가수 정준영(왼쪽)과 성 접대 의혹이 불거진 빅뱅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가 14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으로 출석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그런데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연예인의 위치이다. 버닝썬사건에서 연예인은 젠더폭력의 가해자로 등장하는 반면, 장자연사건에서 연예인은 피해자, 아니 희생자로 등장한다. 승리와 정준영과 장자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자는 남성연예인으로 불법으로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으로 서로 공유한 자들이고, 후자는 그 남성 젠더폭력의 가장 참혹한 피해자라는 점이다.

황금폰은 여성들에게는 이중 피해의 공간이다. 거꾸로 황금폰은 버닝썬에서 폭력을 행사한 남성연예인의 이중 폭력의 공간이다. 황금폰은 버닝썬의 정치·젠더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래서 황금폰은 버닝썬보다 더 심각한 남성 상층부 젠더폭력을 드러낸다. 그것은 이중의 폭력, 이중 착취의 가상공간이자, 권력의 관음증, 타자를 노예화하는 플랫폼이다. 어느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론되었던, 수많은 여성연예인들의 번호가 저장된, 그리고 그들과 카톡 메신저로만 사용된다는, 황금폰의 정체는 무엇일까? 황금폰의 의혹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것은 불법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서로 공유한 남성연예인들의 젠더폭력의 전리품인 것이다. 

버닝썬과 마찬가지로 황금폰 역시 역사적으로 재생산된다. 핫라인, 대포폰, 밀수폰, 묻지마 카드 등이 황금폰의 다른 이름이다. 황금폰과 그 사용법은 연예인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남성 상층부에 속한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에게도 해당된다. 그들은 황금폰을 가지고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그곳이 대개는 불법적인 행위이지만, 죄책감 없이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사교공간에서 자랑하고 위세를 떤다. 버닝썬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불법 행위임을 알면서도 경찰과 검찰 권력을 운운하며 황금폰에서 더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유통되길 욕망한다. 그 콘텐츠들이 더 자극적이고 불법적일수록 황금폰의 은밀한 가치는 더 높아진다. 그들은 그렇게 놀기 원하는 자들이다. 버닝썬사건을 한국 아이돌 문화의 위기 혹은 추락의 증거로 한정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그것은 동료 여성연예인을 바라보는 남성연예인들의 바뀌지 않는 가부장적 젠더폭력이고, 한국 남성 상층부 권력의 젠더 착취의 가학적 증상의 전형이다. 버닝썬에서 황금폰으로 이어지는 젠더폭력의 과정은 단절과 우연이 아닌 연속과 심화의 과정이다. 그것은 미투 운동의 연장에 있으며, 장자연사건의 정치적 스캔들의 연장에 있다. 왜냐하면 버닝썬과 황금폰은 남성 정치·젠더 폭력의 짝패이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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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28일 ‘장래인구 특별추계:2017~2067년’ 자료를 공개했다. 당초 인구추계는 통상 5년 주기로 공포함에 따라 2021년 공개가 예정돼 있었다. 그런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자 긴급하게 발표한 것이다. 이번 추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의 자연감소 시기와 인구가 정점에 달하는 시기 모두 앞당겨졌다. 3년 전 추계에서는 자연감소 시기를 2029년으로 예상했으나 올해부터 감소가 시작되고, 인구 정점 시기도 2031년에서 2028년으로 당겨졌다. 인구감소 현상이 갈수록 급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고령화 심화와 관련이 깊다. 여성 1인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0.86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를 기록한 뒤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추가 하락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고령화가 겹치면서 2065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늙은 국가’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인구절벽으로 고용과 생산, 소비,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가의 활력은 떨어지고 미래세대의 부양 부담은 커진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할 인구가 2017년 36.7명이었지만 2067년에는 120.2명이 된다고 한다. 인구감소로 성장이 지체되는 ‘인구 오너스’ 현상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했다. 역대 정부는 2006년 ‘저출산·고령화사회 기본계획’이란 걸 만들어 13년간 12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출생아 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급락했다. OECD 회원국 합계출산율은 평균 1.68명이다. 그런데 2018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이다. 인구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 세계 198개국 가운데 출산율이 0명대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2002년 40만명대이던 출생아 수는 지난해 32만6900명으로 줄었다. 머지않아 30만명대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범정부 인구정책 태스크포스를 내달 출범하겠다”고 했다. 역대 정부는 중구난방식 대책으로 시간과 비용을 낭비했다. 인구감소 대책은 출산·보육·교육·주거·노인 대책의 종합판이어야 한다. 국가 존립을 위해 새판을 짠다는 각오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모두가 노력하지 않으면 암울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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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2013년 국회 법사위원장 시절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현 자유한국당 대표)을 만나 ‘김학의 성범죄 의혹’ 동영상 CD를 언급하며 김 차관 임명을 만류했다고 밝혔다. 박 후보자는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발언을 한 데 이어 28일에는 과거 일정표를 공개하며 황 대표 면담 시점을 ‘3월13일 오후 4시40분’으로 특정했다. 황 대표는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고, 현재는 제1야당의 대표다. 중대 사안인 만큼 거짓 없이 분명하게 입장을 밝혀야 한다.

2013년 3월13일은 박근혜 정부의 첫 차관 인사가 이뤄진 날이다. 청와대는 법무부 차관을 포함한 인사 내용을 오후 2시 발표했고, 2시간여 뒤 박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을 만났다. 하지만 김학의 전 차관은 3월15일 공식 취임했다. 박 후보자 주장대로라면 김 전 차관의 직속 상관인 황 대표가 성범죄 의혹 내용과 이를 담은 동영상의 존재를 인지하고도 이틀 사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황 대표는 “박 후보자를 여러번 만났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다 기억을 못한다”고만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런 해명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박 후보자가 제시한 정황이 구체적인 데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당시 박 후보자로부터 ‘황 장관한테 (CD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얼굴이 빨개지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힌 터다. 2013년 6월17일 법사위 회의록에 드러난, 박영선 당시 법사위원장의 발언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황교안) 장관님은 김학의 차관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다 알고 계실 것”이라며 “저희가 (황 장관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법사위에서) 질문드리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의 성범죄 의혹은 대표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자, 공권력이 피해자의 호소를 짓뭉갠 최악의 인권침해 사례로 꼽혀왔다. 최근에는 ‘박근혜 청와대’가 2013년 김 전 차관을 수사한 경찰에 외압을 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황 대표는 ‘핵심 피의자’의 직속 상관이었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핵심 피의자를 불기소 처분할 때 주무 장관이었다. 설령 박 후보자로부터 동영상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해도,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황 대표는 위기를 모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진지하고 책임있는 자세로 진상규명에 협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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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1억원을 빌려 공시가격 26억원에 달하는 재개발지 건물을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서울 집값이 폭등하던 지난해 7월 서울 흑석동에 있는 2층짜리 건물을 샀다고 한다. 이 지역은 매입 두 달 전 롯데건설이 재개발사업을 수주한 ‘흑석뉴타운 9구역’으로 고급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는 이 건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 외에 은행에서 배우자 명의로 10억2080만원을 대출받았고 지인에게 1억원을 빌렸다. 은행금리 4%를 적용하면 매년 이자만 5523만원을 내야 한다. 김 대변인 연봉의 절반 이상이다. 말 그대로 부동산에 올인해 재테크에 나선 셈이다. 

김 대변인은 28일 상가 매입을 놓고 파문이 일자 “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언제 나갈지 알 수 없는 자리고, 제 나이에 전세를 살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전날엔 “노후 대책용으로 건물을 매입했다”고 했다. 폭등한 집값 앞에서 절망하는 청년세대나 무주택 서민들에게는 참으로 꿈 같은 얘기다. 군색한 변명은 도리어 시민의 분노만 키우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2대책과 지난해 9·13대책 등 각종 부동산 규제 대책을 발표하며 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흑석동은 8·2 부동산 대책 때 투기과열지구로 분류돼 각종 규제를 받고 있는 곳이다.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투기 억제에 집중할 때 청와대 대변인은 거액의 빚을 내서 재개발지역 노른자 땅을 산 것이다. 투기를 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요, 투기가 아니라 해도 공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이 정부는 다를 거라 믿어 온 시민들로서는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은 매일 시민 앞에 나와 대통령과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다. 앞으로 김 대변인의 국정 설명을 과연 신뢰하겠는가. 무엇보다 시민이 정부 정책을 어떻게 볼지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 국정이 추진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해 약 25억7000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재개발구역의 한 복합건물. 김영민 기자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 정부가 나설 때는 고위공직자의 솔선수범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시민은 비 새는 집에서 천장만 바라보는 청백리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말과 행동은 맞아야 한다. 이번 재산공개에서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86명 가운데 25명(29.1%)이 두 채 이상 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 전체 가구 중 다주택가구는 14% 정도다. 고위공직자가 일반인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시민을 우롱하는 행태다. 이러니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발벗고 나선다고 한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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