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선거제·검찰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랐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9일 자정을 넘겨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열어 선거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했다. 한국당은 이날도 회의장 봉쇄 등 온갖 수단으로 법안 저지에 나섰으나 무위에 그쳤다. 개혁입법을 지지하는 시민의 염원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완료됨에 따라 ‘1987년 체제’의 제도적 유산인 선거제와 검찰개혁을 위한 역사적 발걸음이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다. 선거제 개혁은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민심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의 오랜 과제로 꼽혀왔다. 

여야 4당이 29일 밤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을 본청 445호에서 607호로 옮긴 가운데 국회 관계자가 회의장 안으로 명패함과 기표소를 넣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지만 이제 첫발만 뗐을 뿐이다. 선거제 개혁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국회 보이콧, 장외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극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성사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거제는 게임의 규칙인 만큼 모든 정당의 합의를 토대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앞으로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등 최장 330일 간 논의할 시간은 충분하다. 협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한국당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 이제 한국당은 명분 없는 반대를 중단하고, 선거제 개혁에 진정성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 여야 4당 역시 한국당을 포함한 합의 처리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선거제 합의에 대한 시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29일 (출처:경향신문DB)

공수처 법안의 경우 기소권 적용 대상을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로 한정하고, 대통령 친·인척, 장차관, 국회의원은 제외하는 등 부실한 대목이 있는 게 사실이다. 공수처를 일단 띄우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지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개혁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할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동물 국회’의 후유증이다. 그간 여야 간의 사생결단식 대치로 ‘적대 정치’는 극에 달한 상태다. 서로 고발한 의원만도 80명이 넘는다. 당장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갈등과 대립은 극복해야 한다. 여야가 극단적 대결정치에 매몰되면서 국정 현안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결국 4월 국회는 아무 소득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 허구한 날 이런 국회를 지켜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정치가 막장으로 치닫는 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생 현안보다 선거가 중요할 수는 없다. 여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 기본을 포기해선 안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에서 맛보게 되는 최초의 달콤한 경험은 바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설 때라고 말했다. 낯선 이들이 환영해주는 경험은 ‘삶의 생생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편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에게 호텔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곳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리지만 수전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그에게 집이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이 쉼 없이 요구되는 돌봄의 공간일 뿐이다. 수전은 오로지 홀로 되기 위해 런던의 후미진 호텔을 찾는다. 

지난 주말, 내게 호텔은 생의 안정감을 확인하게 해주는 곳도,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물론 낯선 이들에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이 정해진 환영, 반쪽짜리 환영이었다. 그곳은 차라리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인 차별과 배제의 장소였다. 

높은 층수,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는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 묵기로 한 것은 딸아이 생일을 맞아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근처에 위치한 호텔이어서 정한 곳이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는 순간부터 기대는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의 직원은 전망 좋은 라운지를 투숙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단서를 붙였다. “단, 만 12세 미만 아동은 출입 금지입니다.” 물론 홈페이지의 화려한 소개글에 그런 문구는 없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그곳에 있기 부적절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투숙객”에 우리는 포함될 수 없었다. 대신 근처 아쿠아리움 이용권을 지급했지만, 어쩐지 “이거 줄 테니 나가주세요”란 뜻으로 들렸다. 

‘부적절한 사람’이 된 경험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호텔 수영장을 찾았다. 그곳에선 거의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 수영장 옆 사우나에 아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대신 작은 샤워실에서 간단한 샤워는 가능하다고 했다. 비좁은 샤워실에서 불편하게 아이를 챙기고 짐정리를 하고 있자니 더부살이하는 군식구가 된 느낌이었다. 

인류학자 김현경식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 나와 아이는 순간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사람이 됐다. <사람, 장소, 환대>에는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나오는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김현경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환대와 장소를 꼽는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묻는다.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날 호텔은 나에게 생의 안정감이 아니라 불안정감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란 ‘미성숙한 인간’으로서 특정 장소에서 배제되고 추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또 ‘나의 진정한 사회적 위치’를 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로서 나 역시 배제·추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말이다. 그곳에서 나와 아이는 조건부 환대를 받는 ‘이등 시민’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이번 경험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의식과 무의식에 자국을 남길지 두렵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두 명의 재판관은 “우리 모두 태아였다”고 말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조건, 국가의 책임에 대한 고민 없는 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말을 바꿔 말해보자.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아이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하고 배제하는 사회, 이 사회가 과연 아이가 태어나 온전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인가.

<이영경 문화부>

'일반 칼럼 > 기자 칼럼, 기자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픔이 길이 되려면  (0) 2019.05.14
더 ‘쿨’한 스님을 보고 싶다  (0) 2019.05.02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0) 2019.04.30
90년대생과 공존하기  (0) 2019.04.23
잡초의 힘  (0) 2019.04.18
전지적 재난 시점  (0) 2019.04.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86세대의 세대교체론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8·25 전당대회에서 끝을 봤다. 86그룹의 대표주자인 송영길 의원은 세대교체를 핵심 기치로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경쟁 후보(이해찬·김진표)에 비해 ‘덜 꼰대’라는 걸 부각하는 것 이상의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미 정치의 중심을 차지했고, ‘686’ 진입을 앞둔 86세대가 세대교체 기수를 자처하는 것부터가 애초 성립되지 않는다.

86세대의 상징 인물인 이인영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세대혁신’을 주창하며 ‘미래세대와의 연대’를 그 길로 제시했다. 20년 넘게 정치적 주류 지위를 누리면서 이제는 세대교체의 대상으로까지 지목되는 86세대의 자기응시와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에 그대로 옮긴다. “세대혁신을 촉진하겠다. 진보는 꼰대, 보수는 꼴통이라는 낡은 이미지에서 먼저 벗어나겠다. 아버지를 한국인으로 둔 프랑스의 새 디지털경제장관 세드리크 오의 나이는 38살이다. 그린 뉴딜을 주창한 미 연방 여성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나이는 30살이다. 평화정치, 복지정치를 넘어서 디지털 정치, 녹색정치에서 미래세대와 연대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를 넘어 더 늦기 전에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전략적 거점을 내어주고 우리당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어야 한다.”

86세대가 “아랫세대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오랫동안 세대교체를 점유하면서 빚어낸 결과가 ‘늙은’ 국회다. 2020년 임기 마지막 해가 되면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9.5살에 달한다. 평균 연령보다 심각한 것은 세대 다양성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86세대다. 국제의회연맹이 기준으로 삼는 45세 미만 ‘청년 의원’ 비율이 6.33%로 세계 150개국 중에서 143등이다(시민단체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 자료). 청년 대표성 측면에서 세계 최악의 국회다. 

노무현 정부의 486이 그대로 586이 되어 중심으로 돌아온 까닭에 문재인 정부도 늙었다. 유신시대 인물을 중용한 박근혜 정부의 기저효과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게 포장될 뿐이다. 초대 내각의 평균 연령은 노무현 정부 52.2세, 박근혜 정부 59.1세, 문재인 정부 61.5세이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도 60살이 넘는다. 86세대가 나이먹은 만큼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내각 나이가 벌어진 셈이다. 생물학적 나이가 변화를 가름하는 건 아니지만, 세대적 다양성마저 없다는 게 정부를 ‘꼰대’로 보이게 만든다. 집권 3년차가 되도록 40대 장관을 볼 수가 없다. 52개 중앙행정기관으로 확대해도 40대 기관장은 없다.

세대 스펙트럼은 의사결정 시 다양성에 큰 차이를 보인다. 미래 도전에 대처하는 데도 달라진다. 노무현 정부 초대 내각에서 김두관(행정자치부), 강금실(법무부), 이창동(문화관광부) 등 40대 장관들은 변화를 대변했다. 1995년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40대 노동부 장관(이인제)이 있었다. 2006년 정권의 명운을 걸어도 어렵다는 ‘연금 개혁’을 이뤄낼 때도 40대 보건복지부 장관(유시민)이 있었다.

정치와 국정의 책임자들이 노령화되는 동시에 다수 유권자인 노령층의 이해관계가 정책 우위에 서면 ‘제론토크라시(고령자 지배체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은 청년 법안보다 4배 이상 많았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미래세대의 희생 속에서 이뤄졌다. 베이비붐 세대가 60대에 진입하면서 ‘제론토크라시’가 태동하리란 우울한 전망이 현실로 어른거리고 있다.

국회도, 정부도 젊어져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는 86세대를 포함한 혁명적 물갈이가 이뤄져야 하고, 정부 요직에도 미래세대의 참여가 늘어야 한다. ‘운동’의 단일 유전자를 깨는 길이기도 하다. OECD 36개국 중 15개국 정상의 연령이 30~40대다. 한국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 중에 30대는커녕 40대도 없다.

더 이상 젊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세대적 한계가 있다. 86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평화·복지 등을 넘어 디지털과 녹색정치, 미래세대가 중요시하는 문제에는 둘레가 쳐질 수밖에 없다. 실업과 저출산 등 청년 문제를 그들 눈높이에서 접근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이인영 의원의 출사표를 빌리면, “더 늦기 전에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전략적 거점을 내어주어 미래를 심어야 한다”. 

2015년 정권교체로 43세에 총리에 오른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30살의 최연소 장관 등이 포함된 남녀 동수의 파격적인 내각을 출범시킨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트뤼도 총리의 답변은 강렬했다.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은 2019년, 2020년이기 때문에” 늙은 정부, 늙은 국회를 바꿔야 한다.

<양권모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진즉에 좀 해둘걸, 몹시 후회스럽다.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한자 몇 개 아는 것에서 멈췄다. 늘그막으로 기울어질수록 고전을 기웃거리게 된다. 졸아드는 시간 앞에서 이제 소설은 그만 읽겠다는 사소한 결심도 한다. 이 세계의 진리는 의문문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무식한 자의 용감에 기대어 한술 더 뜬다면 그것도 부정문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돌멩이가 그것이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정작 돌멩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없다. 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구별되고 그저 ‘아니다’라는 사실에 촘촘히 기대고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한문을 더듬더듬 읽으면 꽤 자주 부정문을 만나게 된다. <노자>의 첫 문장은 단호한 부정문이고, <논어>의 첫 대목엔 무려 5번의 ‘아니 불(不)’이 등장한다. ‘그렇다’는 긍정은 그것으로 일단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부정은 그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가끔 붓으로 써보면 ‘不’은 균형을 잡기가 힘들고 웬만해서는 모양새가 나지 않는 글자다. 어쩌면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의 고독한 포즈 같은 ‘不’의 어원을 찾다가 ‘이 문자는 악부(&#33852;莩), 즉 꽃받침의 상형자이다’(<한자의 세계>, 시라카와 시즈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不’자를 닮은 것을 찾다가 지난주 거문도의 바닷가 절벽에서 맞춤한 조건의 식물을 만났다. 꽃잎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도톰한 꽃대 위에 꽃받침의 흔적만 쓸쓸하게 남은 털머위였다. 거문도의 거문이 ‘巨文’이라서 더 각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털머위. 내친김에 과감하게 말해 본다. 세상은 ‘不’자 위에 아슬하게 건설된 문명이 아닐까.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룩했는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한 자동차라지만 운전의 관건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데에 있지 않는 것. 오늘도 자유로를 달려 출퇴근을 한다. 현대문명의 총아를 몰고 가는 동안 백미러를 보고 ‘부(不)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거문도의 털머위, 그것을 빼닮은 총 4획의 ‘아니 不’이 함께 떠올랐다. 털머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천 비수구미 마을의 광릉요강꽃  (0) 2019.05.14
대구 불로동 무덤군의 애기자운  (0) 2019.05.07
거문도의 털머위  (0) 2019.04.30
신안군 자은도의 벚나무  (0) 2019.04.23
심학산 약천사의 영산홍  (0) 2019.04.16
깽깽이풀  (0) 2019.04.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진송씨(31)는 비혼주의 여성이다. 우리 사회의 연애와 결혼 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계간홀로’라는 독립출판물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41년생 독신주의자’ 김애순씨(78)와 대담집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비혼>(알마출판사)을 출간했다. 이씨는 책의 에필로그에 썼다. “우리 사회가 이성애와 결혼-출산-육아를 ‘정상성’과 결합하고 그 이외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힘은 무척 억세다. 거대한 바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천인공노할 이기주의자는 바위에 달려드는 계란으로 살고 있다. 나의 보호자는 나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사회의 시선이나 타인에 대한 부채감에 신경 쓰기보다 나의 선택을 우선하며 스스로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018년 3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 ‘영입 인사 환영식’에서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에게 태극기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김영민 기자

배현진씨(36)는 자유한국당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이다. 배씨는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당의 장외집회에서 진행을 맡았다. 무대에 오른 그는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우리 나이로) 37세 청년이다. 일하느라 시집도 못 갔고, 부모님을 모시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의 반을 개돼지로 몰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한선교 사무총장은 “여러분,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는데, 문재인의 나라가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고 ‘화답’했다. 지난주 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자 이채익 의원은 이렇게 ‘두둔’한 바 있다. “키 작은 사람은 항상 자기 나름대로 트라우마가, 열등감이 있다. 결혼도 포기하면서 이곳까지 온, 올드미스다. 못난 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을 모멸감을 주고….”

시집도 못 갔다며 자조하는 지역구 책임자, 그를 격려한답시고 ‘예쁜 아나운서’ 운운하는 당 사무총장, 여성 동료를 감싸겠다며 ‘결혼도 포기한 올드미스’ 운운하는 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한국당을 향해 ‘젠더 감수성’ 같은 고상한 언어를 꺼낼 생각은 없다. 다만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 그 여성 중 많은 이들이 이진송씨처럼 ‘나의 선택을 우선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말해두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은, 2019년이라고요!

<김민아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내 최장기, 어쩌면 세계 최장기였을지 모를 콜텍 노사분규가 4464일 만에 타결되었다. 2007년 ‘비용절감’을 이유로 시행한 정리해고에 맞선 지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복직해도 어느새 정년인 세월이 흘렀다. 이대로 모든 것이 잘 끝난 것일까. 타결 소식을 접한 직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콜텍과 함께 복직투쟁을 벌여오던 콜트기타의 방종운 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거리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어째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나는 방종운 지회장과 필자와 편집자라는 작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2013년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그동안 살아온 삶의 내력을 써달라는 청탁을 했었다. 1958년 베이비붐 세대인 그의 삶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것이지만, 우리 현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서울 미아리에서 살던 그는 도시개발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고 여길 만큼 대단한(?) 애국자였다. 

집을 잃고 떠돌던 그가 선택한 대안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1978년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시작한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있었다. 

콜텍 노사 조인식이 열린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오른쪽부터)과 전날까지 42일간 단식한 임재춘 조합원, 올해 60세로 정년을 맞이하는 김경봉 조합원이 마지막 기자회견을 끝내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방종운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며 “부모가 피땀 흘려 고생하여 대학에 보냈는데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고, 광주에 투입되었을 당시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에 간첩들이 침투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굳게 믿었다. 1983년 제대 이후 그는 대우자동차에 입사했고, 연애 끝에 결혼도 했다. 가족과 가정을 일구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그는 성당에 다니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해고되었다. 그가 경험한 첫 번째 해고였다. 

1987년 6월항쟁을 거리에서 맞았던 그는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에 같은 해 8월 콜트악기에 입사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콜트악기에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자 회사는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금 5만원 인상, 자녀 학자금 지급이라는 복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때부터 콜트악기는 경영이 어렵다며 회사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콜트악기는 창사 이래 최대 흑자인 29억8500만원의 흑자를 냈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했고, 회사는 ‘콜텍’이라는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어쿠스틱 기타와 전자 사업부를 이전시켰다. 

이 무렵 현대중공업 식칼테러로 악명을 떨친 제임스 리가 노무 이사로 입사했다. 콜트악기는 2007년 4월부터 부평공장 생산직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했고, 2008년엔 아예 공장을 폐업해 나머지 125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사측은 경영조건 악화를 내걸었지만,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꾸준히 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해고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 고등법원은 콜트와 콜텍 노동자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콜텍의 정리해고 위법성을 인정한 고법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의 정리해고도 합법이란 것이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2018년 5월23일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거래 의혹리스트를 발표했다.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리스트에는 콜트콜텍 소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종운 지회장이 대법원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해 보낸 원고의 마지막엔 “나아지지 않는 삶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찾아서/ 걷는 길”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다. 이들이 고통스럽게 버틴 13년은 국가와 사회가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라고 강요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 덕분이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회의 선거구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29일에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바른미래당이 공수처법을 별도 발의해 기존 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처리하자는 안을 수용하면서 바른미래당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독재’를 막겠다며 닷새째 국회를 원천봉쇄했다.

이번 선거구제 개편의 핵심은 사표를 양산하는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줄이는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만 봐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얼마나 민심을 왜곡하는지 알 수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득표율은 65%에 그쳤지만 80%가 넘는 의석을 가져갔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28%인데 의석점유율은 15%를 밑돌았다. 거대 양당의 국회 내 목소리는 실제 받은 표보다 더 크게 반영된 반면 적지 않은 유권자의 표는 대표를 내지 못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장도리]2019년 4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이런 비민주적인 구조를 개선하자는 논의의 결과가 각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배분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수를 정한 뒤 배분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부족하면 이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사표는 줄이면서 소수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함으로써 극단적인 대립 정치를 지양할 수 있다. 이런 명분이 있기에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놓고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민주당이 선거제 개혁에 나서자 한국당이 “정의당의 의석을 크게 늘리는, 그래서 좌파세력만 강화하는 선거제”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선거구제 개혁을 위한 법을 통과시킨 뒤에는 지역구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의원들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벌일 게 분명하다. 또다시 여기에서 지체될 경우 자칫 새 선거법을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선거구제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라는 시민들의 시대적 요구에 맞서는 것은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한국당의 지금 모습은 당리당략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지율이 높아지자 유리한 제도를 고집한다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 선거구제 개편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면서 여야 5당의 정당 지지율이 동반 상승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당들로 하여금 싸우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착각하게 할까봐 걱정스럽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도 선거구제 개혁의 의미를 엄정하게 따지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때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영업자나 저숙련 노동자는 일이 바빠 직업훈련을 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 전망 2019’ 보고서를 보면 한국 자영업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 직업훈련 참여격차는 28.7%포인트로 집계됐다. 조사대상 29개국 가운데 7번째로 높았다. 격차가 클수록 정규직 대비 자영업자의 직업훈련 참여도가 낮다는 의미다. 직업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60.2%)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저숙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 장년층의 경우 훈련의지는 조사대상 회원국 가운데 손꼽히게 높았으나, 실제 참여도는 낮았다. 이 역시 생계 활동으로 인한 시간부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직업훈련을 포함한 직업 재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경제 침체로 자영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동차나 조선산업 등도 구조조정의 바람을 맞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도 심하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는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향후 15~20년 사이 현존 일자리의 14%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직업훈련 문제가 일부 자영업자나 저숙련 노동자에 국한된 사안이 아닌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정규직 노동자도 은퇴한 뒤에는 결국 맞이해야 하는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은퇴연령은 49.1세로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10년 이상 빠르다. 그만큼 직업훈련이 더 필요하다.

물론 사회안전망 확충도 중요하다. 실업구조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업구조보다는 직업훈련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대책일 수밖에 없다. 직업 재교육을 받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취업을 해도 임금이 낮고 신분도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재교육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직업훈련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정부는 다양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물론 급변하는 미래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일자리가 복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래를 위해 직업훈련 방식 전반을 평가하고 틀을 다시 짜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현재 경어(京語)는 한양의 본래 음이지만, 반드시 도읍이라고 해서 바른 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옛날 신라는 영남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고, 백제는 호남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으며, 고구려는 관서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고, 단군은 해서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다. (…) 지금 경음을 가지고 향음(鄕音)을 놀리고 비웃기 때문에 한양에 다니러 간 시골 사람들은 기필코 경음을 본받으려고 하니 모두 고루한 짓이다. 어떤 사람은 ‘요즘은 산골이나 바닷가 촌마을이라도 모두 한양 옷을 입고 한양 말을 쓸 수 있으니, 비루하고 속된 풍속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다’라고 한다. 나는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바탕이 있은 뒤에 문채를 내고 멀리까지 지속될 수 있다. 요즘 풍속에 유행하는 한양 말과 한양 옷은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모두 겉으로 번다하게 꾸미기에 바빠 그 바탕이 전부 손상된 결과이니, 온 세상 애나 어른이나 충후(忠厚)하고 신실(信實)한 사람이 없다. 가죽이 없으면 털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절대 붙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퇴옹 이황이 영남의 발음을 고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옛 의미가 있다.”

인용문이 길지만 위 글은 조선후기 실학자 중 한 명인 존재(存齋) 위백규(1727~1798)가 쓴 ‘사물(事物)’에서 따온 내용이다. 사투리를 옹호하는 위백규의 논리 전개도 재미있는데 마지막 줄은 더욱 흥미롭다. 위백규에 따르면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은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그가 태어나 살아온 경북 안동 지방의 말씨를 고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백규보다 226년 전에 태어난 이황의 말씨를 그가 알 정도라면 퇴계의 말투가 사대부들 사이에 꾸준히 칭찬을 받으며 회자되었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비판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중앙관직에 올라서도 향음이라고 하는 지방 말을 고수한 사대부들의 이야기가 더러 전하는데 퇴계보다 한 세대 전 사람인 오졸재(汚拙齋) 박한주(1459~1504)도 그중 한 명이다. 간송(澗松) 조임도(1585~1664)가 쓴 ‘오졸자 박 선생 여표비명 병서’에 따르면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박한주는 1483년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그 후 1491년에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는데 그가 경연에 들면 임금인 성종이 말하기를 “사투리 쓰는 정언이 왔구려(辭吐俚正言至矣)”라고 했다는 것이다. 

위 글처럼 무려 500여년 전 사람들도 표준어와 사투리의 사용을 두고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더해 필자가 고약하게도 서울 중심의 말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글만 예로 들었다. 굳이 그렇게 한 까닭은 필자의 서러운 경험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이 아니다. 분지여서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도 억센 억양으로 소문난 대구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왔다. 그러니 서울에서 산 시간이 태어난 곳에서 산 시간의 5배가 넘는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많이 순화된 서울 말을 흉내 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구 말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곧 내가 쓰는 말은 서울 말도 아닌 것이 대구 말도 아닌 어중 뜬 말이다.

말투가 그렇게 된 까닭은 중학교의 국어 시간이나 영어 시간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전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 전학 오자마자 들어간 반의 전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당연히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국어와 영어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누가 읽을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내 이름을 외쳤고,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 대구 특유의 억양과 발음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지만 나의 거친 억양과 발음은 놀림감이 되어 아이들이 등 뒤로 따라다니며 흉내 내곤 했다. 

더구나 그 시절엔 영어와 국어 수업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소심한 것은 물론 예민한 사춘기였던 그때 친구들의 모든 놀림을 감수하고 내가 나서 자라며 배운 대구 말을 지킬 배포가 나에게는 없었다. 위백규가 말한 퇴계처럼 스스로의 말을 지키기보다 매일 이어지던 국어와 영어 시간의 책읽기를 모면하고 놀림을 벗어나는 것이 어린 나의 목표가 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배운 서울 말이 지금 내가 사용하는 어정쩡한 억양이 돋보이는 말이다. 

한낱 사소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그 시절에 난 참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당시 선생님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말리지는 못할망정 아이들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줄곧 사용하고 있었던 대구 말이 나쁘지 않다고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지금은 덜하겠지만 당시 서울과 대구의 격차는 모든 면에서 상상 이상이었다. 드디어 서울에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던 까까머리는 점점 주눅이 들어 서둘러 나의 말을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혔던 것이다.  

글머리의 인용문에서 위백규가 말한 것처럼 말투에는 한 사람의 인생 중 가장 근원적인 모습이 배어 있다. 그 위에 갖가지 다른 모습이 더해지고 삭제되면서 끊임없이 추스르고 또 확장하면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 작은 나라에서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각 지방의 다양한 음식은 그토록 탐하면서 말과 음식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은 왜 생각지 않는 것일까. 강과 산에 의해 서로 다른 마을과 음식이 만들어지듯이 말 또한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작은 나라인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서울 중심의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오히려 서로 같지 않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드물지 않겠는가.

<이지누 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우리는 석탄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며 치명적인 대기오염 물질로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석탄 투자는 지속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해외 석탄 투자의 큰손인 한국, 중국 등의 나라들은 개발도상국엔 석탄 발전이 유용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개도국의 요구에 응답할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 투자는 개도국 경제와 산업에 유익할까?

반부패 시민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는 최근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과 연계된 비리 조사 보고서 두 편을 발표했다. 수년간 철저한 보안 아래 이뤄진 조사 결과로, 향후 추가적 증거들을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 조사는 한국 정부가 향후 인도네시아 석탄 투자 중단을 고려해야 할 상당한 이유를 제시한다.  

첫 번째 보고서는 지난 17일 열린 인도네시아 대선에 부통령으로 출마했던 정치인 산디아가 우노를 겨냥한다. 우노가 인수한 인도네시아 거대 석탄 기업 ‘베라우 석탄에너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정체불명의 역외 기업 ‘벨로드롬’에 자문료 명목으로 4300만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지불했다. 베라우 석탄에너지는 이외에도 우노와 연관된 기업에 꾸준히 거액의 자금을 유출했고 베라우는 기업 재정 악화로 수억달러에 이르는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손해는 투자자에게로 돌아갔다. 우노의 부정은 자칫 인도네시아 자국 내의 흔한 부패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위트니스를 비롯한 해외 단체들은 한국과 같은 투자국도 여기에 상당한 책무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에 관련된 부패는 단순히 정치인 한둘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우노뿐만 아니라 현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인 조코 위도도의 측근인 해양부 장관 루훗 빤자이딴 또한 석탄 관련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과거 석탄 기업 ‘토바 바라 세하트라’를 익명의 구매자에게 비공개 액수로 판매했는데,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몇 년 전에는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여럿이 일본 및 프랑스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석탄 발전소 증설 계약을 내주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둘째, 한국은 해외 석탄발전 금융지원 규모 세계 2위 국가다. 최근 수주를 알린 두산 자바 9, 10호기 신규 석탄발전소를 포함해 인도네시아 내 다수 석탄발전소의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 소유의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이 투자 주체인데, 이 중에는 최초 건설 허가 자체가 불법이라고 판결 난 찌레본2 발전소도 포함돼있다. 현재 찌레본 지역장은 기반시설 사업과 관련하여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다. 

셋째, 한국의 석탄발전 투자는 국제적인 평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석탄발전에 계속 투자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데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부패로 얼룩진 인도네시아 석탄 비리를 유지하는 데 연루되는 위험을 자처하는 것이다. 즉 한국의 인도네시아 석탄 투자는 심각하게 얼룩진 석탄 비리를 심화하는 데 한 요인이 될 뿐이다. 

잇따른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의 부패 의혹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 정부는 파리협정의 협약국이면서 기후변화 리더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석탄발전 금융지원을 계속하는 이상 한국은 기후변화 리더가 될 수 없다.  

글로벌 위트니스는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해외 석탄발전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즉각 중단하길 요구한다. 한국 투자자들 또한 여전히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에 재정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면 일련의 사건들을 중대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애덤 맥기번 | 글로벌 위트니스 선임 캠페이너>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뿌리내리다’라는 표현이 있다. ‘뿌리 뽑히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런 표현이 식물학의 용어만이 아님을 근현대사 100여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박경리의 &lt;토지&gt;는 구한말의 ‘뿌리 뽑힌’ 사람들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기나긴 장강대하의 첫머리는 1897년 추석이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는 한가위 풍경으로 시작하는데, 말하자면 오랫동안 한마을에 ‘뿌리내리고’ 사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나라도 잃고 땅도 잃어 북간도로 이주한다. 그곳에 ‘뿌리내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평생 호미 한번 잡은 일 없는 김훈장도 북간도 메마른 땅에 엎드린다. 김훈장을, 음풍농월하는 선비로 내심 타박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무리 망국의 유민 신세라 해도, 한 사람 정도는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천 따지’를 해야 사람 사는 형색인데, 김훈장마저 호미를 집었으니 모두가 ‘뿌리 뽑힌’ 신세가 아닌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 등이 산업화 시대의 ‘뿌리 뽑힌’ 사람들을 묘사했음은 이제 교과서에 등재되었을 만큼 ‘역사’가 되었다. 황석영의 &lt;삼포 가는 길&gt;, 그 마지막에 이르러, 기차가 도착했음에도 정씨와 영달이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들은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던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런 풍경은 다 사라졌는가. 글쎄,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불빛들 뒤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온통 원룸이고 고시원이다. 황석영이나 조세희 이후로 그런 소설이 사라질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박민규와 김애란과 편혜영의 소설들은 이 거대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있다. 다달이 ‘500에 30’을 겨우 내면서 뿌리 뽑힌 채 살아가는 삶 말이다.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이렇게 썼다. “가족들은 흩어졌다. 부모님은 시골을, 형은 막노동판을, 나는 나대로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시원에 가게 된다. 짐을 나르던 친구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고 속삭이자 주인공은 강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그러니까 ‘뿌리’란 관계다. 뿌리내린다는 것은 실핏줄 같은 삶의 관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뿌리가 뽑힌다는 것은 그 관계가 끊어짐을 뜻한다. 답답하거나 속상하거나 외로울 때, 문자 보낼 사람 없고 목소리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지독한 외로움! 그것이 ‘뿌리 뽑힌’ 삶이다. 

진천선수촌에 가보았다. 선수촌 시설을 둘러보고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과연 전체적으로 시설은 웅장하였고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사항 또한 섬세하게 잘 구성되어 있었다.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한 행정 관계자들의 자상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선수촌장이 동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현실적 고충과 개선 사항을 활달하게 개진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생활 문화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월 초에 취임한 신치용 선수촌장이 예전의 훈육시설과는 달리 선수촌을 좀 더 활기차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하나둘씩 실천되는 양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운동하는 기계’라든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동떨어져서’ 같은 말도 현장을 방문한 혁신위원들이 아니라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스로 토로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가 새로운 문화로 변모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근사한 선수 전용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느 선수가 얘기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국제적인 시설에 매점 하나 없을까 싶고 또 매점이 당장 급한 시설인가도 싶지만, 실은 이 작은 요청 하나가 우리 선수들의 장래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매점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매점을 동심원으로 하여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흩어졌다가 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매점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훈련한 지도자와 선수들이 순간적이나마 정겹고 소박하게 ‘관계’를 맺는 공간이 된다.

어디 매점뿐이겠는가.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목표로 각 종목의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한 장소에 모아서 훈련을 시킨다고 했으면 그것은 당연히 그들의 삶의 뿌리가 아름답게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목표를 위한다고 해서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고 관계가 있는 지도자들의 현재적 삶의 뿌리를 뽑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22세기를 볼 수도 있을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뿌리째 흔들어서도 안된다. 외로울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할 때 언제든 부모님을 만나 어리광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나 다른 분야로 진출한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관계가 곧 뿌리다. 

그러니 혁신이 필요하다. 웅장하고 세련된 시설은 제대로 갖췄다. 이제 첨단의 스포츠 과학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진실로 인간적인 관계로 선수촌 생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선수촌의 모든 관계자들 또한 그와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어느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미묘한 상황이지만, 지도자의 삶의 뿌리가 유지되고 어린 선수들의 다양한 삶의 관계, 곧 뿌리가 넓게 내려지는, 그야말로 최고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폭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중 받으며 ‘뿌리내리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요즘 국회를 보며 2016년 겨울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시민들은 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행위만을 동원해 기어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자를 단호하게 배척했고, 비폭력을 지향하는 꽃 그림 그려진 스티커를 경찰 차벽에 붙였다가 그마저도 떼어낼 만큼 섬세함을 보여줬다. 주말 집회는 대중교통 운행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되었고 주중에는 시위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비폭력과 일상의 유지는 오히려 더 극적인 긴장을 조성했다. 

분노가 모자라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지독하게 지기 싫어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끝장낼 기세였다. 폭력과 무질서는 답이 아니었다. 그런다고 청와대를 너무 사랑하는 당시 대통령이 제 발로 걸어 나올 것 같지 않았고 시위가 폭동이 되면 세력이 축소되고 고립될 게 뻔했다. 사람들은 인원수와 결연함으로 국회를 압박하는 데 집중했다. 6차 집회에선 전국적으로 230만명 이상이 모여 입법부를 극도로 몰아붙였다.  

시민들이 선택한 길은 탄핵안이 상정되고 표결을 거쳐 통과되고 다시 헌재로 넘어가 인용되어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멀고 험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참고 기다렸다. 법적 기반 위에서 일이 처리되는 것은 시민들이 선택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했다. 그것은 시민들이 ‘버려야 할 세력’과 자신을 구분하는 핵심 차별점이었다. 

적폐 시대는 적폐세력이 더 이상 자신이 지키라는 원칙과 법을 스스로는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말로 치달았다. 그들은 법을 지키라 하곤 생사람을 잡아 간첩을 만들었다. 국가가 나서 시민들을 불법 사찰하고, 국고에 손을 대 착복한 이가 적지 않았지만 처벌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를 수호하라 하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자유를 구속했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라 하곤 생명이 위태로운 학생들을 외면했다. 약자의 작은 불법엔 무자비했지만 자기편의 잘못은 덮기 일쑤였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이 29일 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를 위한 사개특위 회의를 개의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 위원장 앞으로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2016년은 보수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함께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시민은 적폐세력과는 다르게 스스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 적폐를 몰아내려 했다. 시위에서 비폭력을 종용하는 확고한 태도는 그간 집권세력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신물이 난 시민들이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보여주는 명확한 선언이었다. 

1년이 지나 MBC도 적폐를 몰아내고 있었다. 이전에 파업에서 연패하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어떤 역사적인 순간이 오면 로비에 모여 만세라도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2017년 가을의 로비는 차분했다. 사장실에 들어가 사장을 의자째 들어다 내던지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았지만 직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고 기다리며 적폐를 하나씩 몰아냈다. 그 방식은 노조원들이 촛불의 일원으로 움직이며 또다시 철칙으로 되새긴 시대정신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국회에선 자유한국당이 다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개혁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은 법의 틀 안에서 움직이라고 주문하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은 집권세력이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지 주목하고 있고 보수세력이 다시 자유민주주의 테이블에 같이 앉을 사람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국회 활극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자유한국당이 필사적으로 저지를 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빠루’도 등장했다. 이 촌극을 만들고 있는 한국당을 보며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죄목으로 실격당했는데 다른 당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다시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통해 지난 시절의 짙은 향기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촛불혁명은 당시 집권세력이 법과 원칙 밖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이번 국회 폭력 사건은 보수 정치가 여전히 체제의 한계선 밖에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과정이다. 정부의 실수가 쌓이면 야당의 지지는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재기를 원한다면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라’며 탄핵에 찬성한 8할의 시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신완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쉬는 시간에 교내 도서관에 갔는데, 어떤 아이가 혼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요즘에도 이런 학생이 있나? 그의 책상 위에는 판타지 소설, 과학 잡지, 철학서들이 잔뜩 쌓여있다. 순간 궁금했다. 이 아이는 누구랑 어울릴까? 얼마 뒤 복도에서 그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현우(가명)와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현우는 수업이 끝나면 제일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시작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였다. 아이들은 현우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가끔 현우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화를 더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현우도 그들 사이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하고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는 것이 그에게는 힘든 일이다. 다행히 그 두 아이는 다름 안에서 함께 어울리고 밥도 먹는 친구가 됐으니 그들의 학교생활은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여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교우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따돌림을 겪게 되면, 그들의 심리와 감정, 반응 방식은 손상을 입고 움츠러든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점심시간이다. 급식실에서 친구 하나 없는 식탁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것은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짝을 지어주기도 하지만, 아이들 관계라는 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아이들은 자신도 저렇게 혼자 남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작은 차이도 경계하고 멀리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친구 주변에 몰려들게 되고, 끊임없이 무리를 지으며 결속을 다진다. 이제 누군가 교실의 어떤 아이를 욕하면 같이 동조해야 하고, 듣기 거북한 성적 표현도 따라 하거나 함께 웃어야 한다. 교실은 이렇게 누구도 진정으로 홀로 되지 못하며, 동시에 누구도 함께 공존하지도 못하는 메마른 들판이 된다. 많은 학교폭력이 이 메마르고 척박한 그늘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또다시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싶어진다. 학교는 가정교육과 대중매체가 문제라고 하고, 부모들은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학교와 교사는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하고, 정부는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에 끼어서 정책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책임자 교체를 반복한다. 제도 자체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진정한 책임은 우리 자신도 제도의 일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모두가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데 있다. 

논어(論語)에 ‘평화로움을 추구하되 같아지려 하지는 않는다’란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동일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신과 다른 것은 부정하고 배제하게 되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끊이지 않는다. 아까운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무엇보다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교실이 서로 다른 차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화이부동’의 공간이 되려면 그런 모습을 현실에서 실제로 보여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4월의 새순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늘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봄과 같은 존재이다. 이 아이들이 구김 없이 마음껏 배우고 성장할 때 우리 모두의 가을은 달콤하고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교실을 비옥한 옥토로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각자가 있는 공간에서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비료를 줄 수 있을까?

<조춘애 광명고 교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전통혼례에는 참 많은 상징이 있습니다. 우선 목(木)기러기가 있지요. 기러기는 짝을 잃어도 다시 구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혼례 전 기럭아범에게 목기러기 한 쌍을 들려 보내 마지막 청혼이자 맹세를 합니다. 맞절하기 앞서선 손도 씻습니다. 마음에 누굴 담았고 어떻게 살았든 이제는 저 사람과 새 출발이니 다 잊고 손 씻으라는 것이지요. 또한 초례상 위에는 소나무 가지를 꽂아 둡니다. 오래도록 푸르게 살며 두 가닥 맞붙어 돋는 솔잎이 말라 떨어질 때도 같이 붙어 떨어지듯 해로동혈(偕老同穴·같이 늙고 같이 묻힘)을 하라는 말입니다. 폐백 때는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이 던져집니다. 대추마다 씨앗이 하나이듯 바람피우지 말고 한 군데만 씨 뿌리고, 밤송이 하나에 밤알이 셋씩 들었듯 둘이 만나 셋은 낳아 자손 번창하라는 거죠.

이런저런 복잡한 의식을 마치고 나면 날이 저뭇해지고(남과 여, 양과 음, 낮과 밤이 만나는 초저녁 맞춰 올렸으니까요) 이제 두근두근 꽃잠입니다. 단꿈에 취해 이런저런 베개맡 맹세를 합니다.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주겠다, 감추는 거 없이 살자, 당신보다 사흘만 더 살다 죽겠다며 이불 속에서 손을 꼭 잡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그대를 속이듯 결혼한 사랑은 금세 지치게 마련입니다.

부부가 함께 기대며 살아간다는 속담 ‘평생 지팡이’가 있습니다. 사람을 탓하고 형편을 탓하고 팔자를 탓하며 애 하나로 참고 살다가 탓할 힘도 없을 때나 가서 ‘나 아니면 누가’ 그제야 짚으라 어깨 내어줍니다. 그러나 살림과 육아, 생계와 가족 갈등 앞에서 혼자 애쓰게 하지 않는 것, 내가 안 하면 저 사람이 하고 내가 닦달하면 저 사람 어깨가 굽는다 여기는 것, ‘나 아니면 누가’로 항상 손 내어주는 것이 진짜 지팡이입니다. 삶의 무게 분산하라고 나 힘들어도 지팡이 건네주는 게 평생 부부입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바람이 분다. 나무로부터 사람에게로, 김소월로부터 진달래꽃으로, 사랑으로부터 슬픔에게로 바람이 분다. 우리를 앞질러간 봄은 흰 조팝나무 꽃 속에 숨었다. 봄은 슬프다. 하나의 꽃이 피는 것은 개벽(開闢)이지만 꽃들의 잔치는 혁명이 될 수 없다. 나비 한 마리가 조팝나무 꽃을 뒤져서 겨우 남아있는 한 줌의 봄을 끌어내고 있다. 날개 위에 실린 봄이 위태롭다. 다시 바람이 불고, 나비를 좇던 마음까지 나풀거린다. 그렇다. 우리 사랑 또한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꽃이 진다. 황홀하게 세상을 밝히고 떨어지는 잎 잎 잎……. 어디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우리네 슬픔이 스며있는 작은 못에도 꽃잎이 떨어진다. 분홍빛 작은 파문이 일면 눈물을 다 쏟아버린 슬픔이 희미하게 웃는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노래 ‘봄날은 간다’는 아프다.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다. 1953년 백설희가 처음 부른 후 예순 여섯 번의 봄이 지나갔다. 꽃은 남쪽에서부터 진다. 꽃이 피어올라온 속도로 봄은 또 그렇게 가고 있다. ‘봄날은 간다’ 노랫말이 가슴으로 스며들 때면 우리네 삶은 봄날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도 우정도 정점이 지나가야 제대로 보인다.  

꽃잎이 날리는 밤, 이 노래를 부르며 친구가 울었다. 기억이 닳아서 희미하지만, 서울 남산 아래 대폿집 골목이 아니라면 인사동 골목이었을 것이다. 친구의 울음 섞인 노래를 들으며 우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친구가 왜 울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봄날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친구는 올해도 봄의 끝자락을 붙들고 울 것이다. 지금 그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꽃그늘에 앉아 향기에 취했던 시간은 그저 꿈만 같다. 봄날이 아무리 좋아도 그 속에 마냥 머물 수는 없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면 내 안의 상처들도 날린다. 신음 소리를 다 풀어버린 아픔들이 휘날린다. 야무진 햇살이 내려와 오래된 고통을 뒤집는다. 한나절의 풍장(風葬)이다. 문득 바람을 당기면 저만치 옛 기억들이 살아난다. 

멀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아지랑이는 봄의 멀미, 아른거림 속에서 잊어버렸거나 잃어버렸던 것들이 붉은 옷을 입는다. 돌아보면 어지러웠다. 눈물겨웠다. 숨 막혔다. 울컥울컥, 느릿느릿 젊은 날의 내가 다가온다.  

“순이네가 사는 집 지붕 위에선/ 순이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복동이가 사는 집 지붕 위에선/복동이네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누이야 네 수놓는 방에서는/ 네 수놓는 아지랑이/ 네 두 눈에 맑은 눈물방울이 고이면/ 맑은 눈물방울이 고이는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그립다’ 생각하면/ ‘그립다’ 생각하는 아지랑이/ ‘아!’ 하고 또 속으로 소리치면/ ‘아!’ 하고 또 속으로 소리치는 아지랑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섧고도 어지러운 사랑의 모습처럼/ 여릿여릿 흔들리며 피어오른다”(서정주 ‘아지랑이’)

고등어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손톱을 깎고 있는데, 점심을 먹고 졸고 있는데,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는데 문득 창밖의 봄날이 환장하게 곱다. 그럴수록 봄에 비친 내 모습은 남루하다. 사랑도 명예도 봄볕에 비춰보니 노래 한 소절보다도 못하다. 도대체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나는 시대의 어디에 걸려있는가.

우리는 서서히 나이를 먹는 게 아니다. 갑자기 늙는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면 중늙은이 하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젊은 날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 몇 번의 봄을 맞을 것인가. 또 한걸음 멀어진 내 청춘은 어디쯤에서 서성거리고 있을까. 눈물 젖은 과거는 눈물 없는 곳으로 흘려보내야 하리.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시 가는 봄이 서러워 눈물이 나는 것을.

그대가 머물고 있는 마을에도 볕이 고운가. 이렇듯 환한 날에는 그대의 그리움이 보인다. 문득 보고 싶다. 초록별 속에서는 중력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서 시나브로 늙어가고 있다. 그대 오늘도 지구인으로, 한국인으로 무사한가. 잘 것이 없으니 모난 것들을 지우고 술 한잔 건네고 싶다.   

사랑도 미움도 때가 되면 떠난다. 누가 떠나고 있기에, 무엇이 지고 있기에 이리도 아픈가. 신열이 멎을 때쯤에는 꽃 진 자리에서 실컷 울 수 있을까. 

저 신록에 섞이려면 다시 무엇을 버려야 하는가. 풀 옷 하나 걸치지 못한 나는 누구인가. 나만 빠뜨리고 봄은 언덕을 넘어 숲속으로 사라진다. 봄날은 간다.

<김택근 시인·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는 미국 연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1920년 프로야구연맹의 초대 총재로 취임했다. 프로야구계가 제시한 영입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종신직인 데다 총재 연봉이 판사 연봉의 다섯 배가 넘었다. 겸직으로 물의가 일자 법무부가 조사한 후 총재 일을 해도 판사로서의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미국변호사협회는 랜디스의 행위가 ‘온당치 못한 외관’을 보였다는 이유로 제재를 결의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실체가 어떻든 외관상 의심스러운 행위는 그 자체로 사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는 것이었다.

워런 법원은 진보적 판결을 많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이 재임 중일 때 연방대법원장을 임명할 기회를 주기 위해 진보 진영은 1968년에 꾀를 냈다. 얼 워런이 대법원장직을 사임하고 그를 이어 대법관 에이브 포터즈를 대법원장으로 임명하자는 것이었다. 문제가 터졌다. 포터즈가 아메리카 대학교에서 받고 있던 강의료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는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다음해에는 다시 포터즈가 어느 사업자에게 법률 조언을 해주고 2만달러의 사례를 받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법무장관이 대법원장을 면담해 연방수사국의 조사 결과를 전달하자 이틀 후 포터즈는 사직했다. 대법관직마저도 놓친 것이다. 여기에도 문제는 포터즈의 행위가 실제로 위법하다는 것보다는 그런 외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취임한 후 워런이 사임하자 대법원장에 임명된 사람은 보수 성향의 워런 버거였다. 포터즈 사건은 ‘연방 사법부의 진보주의에 대한 조종(弔鐘)’으로 평가된다.

포터즈의 후임으로 지명된 클레멘트 헤인즈워드 판사도 다시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실패했다. 어느 공장에 관한 소송을 처리하면서, 그 공장에 자판기를 설치해 수익을 올리고 있던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서도 사건에서 회피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헤인즈워드는 청문회에서 내내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실체만이 문제가 아니라 온당치 못한 외관마저도 피해야 한다는 것으로 시민들의 윤리적 기대치가 높아졌는데도, 그는 여기에 부응하지 못했다.

판사는 안정과 절제의 표상이다. 미국의 사이먼 리프킨드 판사는 이렇게 썼다. “별난 행동은 판사에게 금기사항이다. 폴로 경기장에서 폴로를 지나치게 잘 치거나, 경마장의 매표구에서 50달러짜리 마권을 사는 모습이 너무 자주 보여서는 안된다. 판사의 아내가 동네에서 제일 먼저 토플리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 사생활이 이 정도이니, 돈벌이에 이르면 바짝 주의해야 한다. 판사의 경제활동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듯한 모습, 즉 온당치 못한 외관조차도 보일 수 없다. 이것을 ‘황후의 처세도(Caesar’s wife doctrine)’라고 한다. 황제는 높은 사람인 만큼 자신은 물론 그 아내도 의심스러워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디 판사뿐이랴. 모든 공직자가 그렇다. “당신들이 문제 삼은 그 투자와 내 직무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해서 나는 억울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한 주식 투자라서, 아내가 건물을 샀기에, 어머니가 위장전입을 한 것이어서 나는 몰랐다고 해도, 양해를 받기 어렵다.

돈벌이만 그런 게 아니다. 판사실에 변호사가 드나들지 못하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아무리 사건 부탁을 하러 들어갔던 게 아니라고 해도, 사건이 해당 재판부에 걸려 있는 이상, 아무도 그 말의 진실성을 믿어 주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온당치 못한 일은 피한다는 ‘피지(避止) 원칙’은 법조윤리에서 상식이다. ‘이해충돌’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는 낱말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법관윤리강령에도 이 원칙이 반영되어 있다. 다만 오늘날 모든 공직 후보자가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사회가 공직자에게 요구하는 윤리적 기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공직자가 인식하는 윤리칙의 수준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게 아닌데 왜들 그렇게 날 억울하게 만드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인간적으로는 안되었지만, 공직의 염결성이 가지는 엄중함을 생각하면 그런 항변은 수긍하기 어렵다.

배밭은 배가 떨어지는 곳이다. 그러니 까마귀일랑 아예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왜 하필 그때 떨어졌느냐고 배를 나무라거나 내 날갯짓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과학적으로 설명해도 잘 믿어 주지 않는다. 친척이 목포에 무슨 점포를 샀다는 어느 국회의원이 곤욕을 치르면서 사실이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의혹의 기초가 된 사실 자체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기초사실이 외견상 해당 인물의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면, 그것이 바로 이해충돌 상황이다.

억울한지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의 경제활동이 직무와의 관계에서 실체가 어떻든 의심스러운 외관을 띠면 안된다는 것,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집권세력의 앞날은 순탄치 않다.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 투자가 문제되자 “이제 진보 진영은 도덕적 고지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한 어느 보수 성향 언론인의 주장을 가볍게 들어선 안된다. 워런 법원의 진보주의에 대한 조종은 온당치 못한 외관이 일으킨 도덕적 의혹으로 울렸음을 상기하라. 억울한가? 세상은 변했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봄날 하루가 가을날 열흘 맞잡이’라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봄은 한 해 농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농업·농촌이 분주해지는 시기다. 이맘때 농촌에 가면 농업인들은 볍씨 준비, 논둑과 밭고랑 정비, 밑거름 작업 등으로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렇게 바쁜 농업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바쁜 일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다.

지난 4월16일부터 20일까지 4박5일간 전국 팔도의 영농현장을 다녔다. 쌀 전업농가, 과수농가, 축산농가 등 여러 농가를 방문해 농업인들과 대화를 했다. 밤을 새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동안 열심히 해왔지만 여전히 농협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농민들 곁에서 함께하는 게 농협의 존재가치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현장에서 만난 농업인들은 영농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농협이 적극적으로 나서 해소해달라고 요구했다. 축산농가는 미허가 축사, 태양광농가는 인·허가 규제, 과수농가는 수급 조절 등 농가마다 나름의 고충이 있었지만, 모든 농가가 공통으로 토로한 어려움은 일손 부족이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2018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농업인이 꼽은 가장 심각한 경영 위협요소가 일손 부족(49.5%)으로 나타난 것을 보면 현장의 어려움과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는 무엇보다 기계화가 선행되고 기계로 대신할 수 없는 부분에는 체계적인 인력 지원방안이 마련되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농 기계화는 1979년 시작해 8차까지 이어진 정부의 ‘농업 기계화 계획’과 농협이 실시하는 농기계은행 사업을 통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논농사의 경우 기계화율이 98.4%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밭농사의 경우 대상 작물이 200종이 넘고 영세 소농은 농기계를 보유하기 쉽지 않아 기계화가 60.2%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올해 밭농사용 농기계를 장기임대하는 주산지 일관 기계화 사업에 440억원을 투입해 기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농협도 이에 맞춰 올해 1200억원의 자금과 170억원의 예산을 농기계은행 사업에 추가 투입해 전국 농경지의 17.6%인 농작업 대행면적을 4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농작업 지원을 위한 인력 중개에도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지자체와 협력해 농작업 숙련자로 구성된 영농작업반을 지난해 72개에서 100개로 확충하는 등 54만명 이상의 유상인력을 중개할 예정이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 기업체 등과의 협력을 통해 자원봉사 인력도 31만명 이상 소개하여 농촌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4월17일에는 전국 157개 시·군에서 자원봉사자 3만명이 참여한 영농지원 발대식을 개최해 전 국민에게 영농기 도래를 알리고, 일손돕기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농사일에 서투른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전문가에 비해 생산성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어 농업인에게 몇 배의 가치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자원봉사에 참여한 이들도 단순한 일손 지원을 넘어 봉사의 기쁨과 함께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 넉넉한 인심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올봄 잠시 짬을 내어 농촌에서 힐링하기를 도시민들에게 권해 본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주에 오대산 북쪽 자락의 한 오지마을을 다녀왔는데 이름이 부연동이라 했다. 솥 부(釜)에 못 연(淵)자를 쓴 마을이다. 바야흐로 산천초목이 새의 혀 같은 이파리를 밀어내는 계절. 1000m 고봉을 사방으로 끼고 실낱같이 이어진 도로를 따라 부연마을 가는 길은 수묵담채화가 수묵채색화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산색이 어찌나 맑고 아름다운지 신세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때 인솔자가 “여긴 전쟁 난 줄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만큼 깊고 외부와 단절된 마을이다. 과연 얼마나 깊을까. 가도 가도 길은 계속됐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무렵 눈앞이 확 트이면서 넓은 분지가 나타났는데 바로 부연마을이었다.

가옥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 펜션 같은 현대식 건물도 드문드문 보였고 그 외엔 온통 두릅나무 밭이었다. 마을 옆으론 계곡이 흘렀는데 바로 남대천 상류다. 연어도 아닌 우리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길을 찾아 물을 건너다니면서 서너 시간 꽃구경, 나무 구경을 했다. 마을 입구부터 지천으로 피어난 산괴불주머니를 시작으로 피나물, 바람꽃, 제비꽃 등 온갖 꽃이 외지인을 맞아주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식생이 호화로웠고 크게 자란 낙엽송이 빽빽하게 우거져서 봄인데도 밀림의 느낌을 주었다. 실컷 걷고 도시락을 까먹고 계곡물에 발 담그고 참방일 때까지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갑자기 시끄럽더니 눈앞에 큰 폭포가 나타났다. 그 밑으로 깊은 소가 있었다. 아, 저것이 부연(釜淵)이구나. 관광명소가 되고도 남을 풍채의 폭포를 독차지하고 보고 있으려니 선택받은 느낌에 행복해졌다. 내려오는 길에 화전민 집터를 지나갔다. 이런 깊은 곳에서도 예전엔 사람이 밭을 갈아 먹고살았구나.

다시 차를 타고 양양 하조대로 나와 저녁을 먹을 때도 감흥은 가라앉지 않았다. 저 산이 내게 무언가를 말해주고 싶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1984년에 김선풍 중앙대 교수 연구팀이 부연동 민속을 조사한 자료가 있었다. 두 차례에 걸쳐서 마을 주민에게 풍습, 민요, 민담 등을 채록한 것인데 나같이 아무것도 모른 채 다녀온 치에겐 천지개벽의 놀라운 정보가 가득했다. 

우선 “전쟁도 모르고 지나갔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들이 마을에 들어와 집이란 집은 다 불태워 너와집, 굴피집 등속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부연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건 500년 전부터였다. 워낙 오지인 데다 먹고살기 힘든 환경이니 집성촌은 못 이루고 대처에서 쫓겨난 이들이 숨어 들어오듯 해 정착하면서 각성바지 마을을 이루었다. 쌀과 감자농사를 많이 지었고 자생하는 당귀를 캐다가 팔기도 했다. 주문진으로 장을 다녔고, 민속 명절 때는 농악대가 원정을 와주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호랑이를 잡아 강릉 원님에게 바친 일도 있었다. 마을의 빈집에 호랑이가 들어왔는데 마을에서 창질을 가장 잘하는 이가 부엌에 가서 소리를 지르고, 들보로 나오는 걸 찔러 잡았다고 한다. 혹시나 벌을 받을까 조마조마하며 갖다 바쳤다. 

가장 궁금했던 건 화전민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집터만 남겨놓고 그들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을까. 마을 사람의 기억엔 어떤 시기에 몽땅 철거가 됐다고 했는데 진술이 분명치 않아 다른 자료를 뒤져보니 1968년에 화전정리법이 공포되어 정부가 강원도 산간 화전민을 다른 지방에 정착시켰다고 한다. 그러니 아마 그 언저리쯤부터 산이 텅 비기 시작한 것이다. 봄이면 산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고 옥수수 알갱이를 곤드레와 섞어 개밥처럼 끓여 먹는 게 이들의 주식이었다. 다만, 그날 산에서 본 군데군데 쌓인 돌무더기는 화전민의 흔적이 아니었다. 심마니들이 산신에게 제사를 지낸 흔적이었다. 오대산의 산신은 여신이다.

그 외 부연마을에 접어들 때 봤던 장군송은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한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데 기념수로 관리되기 전엔 단오만 되면 그 나무에 그네를 걸어 탔다고 한다. 집집마다 양봉을 했는데 계곡 전체가 꽃밭이니 이는 당연한 일일 테고 유독 산괴불주머니가 마을을 둘러싸고 지천으로 핀 것도 번식을 잘하는 이 꽃이 양봉에 이용된 흔적일 것이다.

1984년 당시 김선풍 교수팀에 구술을 해준 마을의 백남혁 어른은 당시 50세였는데 20여년 뒤인 2005년의 언론 기사에 다시 한 번 등장한다. 70세 노인이 된 그는 자식을 다 키워 내보내고 부인과 단둘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당시 기사에서 장작을 패며 겨울을 준비하던 백 노인은 지금, 살아계신 것일까. 한 번도 뵙지 못한 그분의 안부가 궁금하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떻게 해야 꼰대가 되지 않을까요?” 강연을 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나는 저서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에서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늙은 꼰대와 자유로움에 취해 의미 있는 조언조차 무시하는 젊은 꼰대를 함께 다룬 바 있는데, 인권감수성이 높아진 사회의 공기를 의식해서인지 자신이 가해자일 수 있음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으니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어찌 말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상처를 받거나 주는 경우를 모으면 어떤 사람이 이상한지는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꼰대란 극도의 자기중심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사람인데, 최근에는 막무가내로 나답게만 살라는 식의 가치관이 자존감을 지키는 법이랍시고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정글 같은 경쟁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에 구속받지 않고 ‘나’를 오롯이 존중한다면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솔직히 그런 성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지나치게 포장하여 다른 단점을 보지 못하는 외골수, 그래서 주변의 합당한 비판을 비난으로 이해하여 날 선 대응으로 인간관계에 무리수를 두는 사람이 훨씬 많다. 외부와의 생산적 교류를 단칼에 끊어버리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비슷한 무리들만을 만나 그릇된 신념을 견고한 양심으로 만들어 행동하며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조차 모른다.

이들은 거시와 미시 사이의 균형 감각이 없다. 거시는 사회의 역사와 문화라는 사회구조를 뜻하며 미시는 그 울타리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특정한 가치에 길들여져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말한다. 아무리 사소한 생활습관도 사회의 물줄기와 동떨어져 있지 않은데, 이 관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보수꼰대라고 불린다. 살다 보니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게 된 사람들이 자신의 특권을 자연적 질서로 이해하면서 불평등을 부정한다. 이런 부모, 교사, 선배나 상사들 때문에 많은 이들이 힘들어한다. 

하지만 거시에만 몰두해 일상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수순을 깡그리 무시하는 진보꼰대들도 주변인들을 괴롭힌다. 이들은 일상생활 속에 등장하는 해프닝조차 구조악의 표출이라면서 폭력, 권력, 기득권 등의 무서운 단어를 오용하여 상대를 공격하고 발가벗긴다. 사회운동의 당위에 지나치게 집착해 적을 설득시키기는커녕 동일한 목표를 지향했던 아군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공격받은 이들은 상처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또한 꼰대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를 제대로 응용하지 못한다. 점의 관계는 느리다. 의사전달이 우회적이기 때문이다. 눈치 때문이 아니라, 사람 각기의 상황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의 관계는 단호하다. 메시지가 파이프에 연결된 물처럼 일사천리로 타인에게 전달된다.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폭력을 없애고 적폐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강한 다짐과 뒤돌아보지 않는 빠른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 무작정 선을 들이대면 당혹스럽다. 누구나 상처가 있기에 누구의 상처도 조심스레 다뤄지는 신중함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표만이 가시화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그렇다. 반대로 반드시 선의 관계가 필요할 때 점의 모호함을 버리지 못하면 문제의 본질이 덮어진다. 반드시 가해자를 가려내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순간에,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주변 사정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된다.

우리들은 꼰대에 저항하면서도, 다른 영역에서 자신이 꼰대임을 쉽게 잊는다. 자신의 장점에 심취해 단점을 망각하면 관계의 균형감각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자신이 꼰대가 아닐 거라는 확신과 결코 그렇게 되지 않겠단 지나친 다짐보다, 꼰대일 수 있다는 자책을 성찰로 발전시켜 나갈 때 주변 사람들의 불편이 경감되지 않겠는가.

<오찬호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소(한경연)는 2013년 4월25일 ‘바른 용어를 통한 사회통합의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핵심 주장은 ‘사회통합을 위한 바른용어’라는 연구서로도 나왔다. “시장과 정부를 보는 삐뚤어진 시각을 규명하겠다”는 문제의식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1889~1976) 말까지 인용한 보고서는 사뭇 비장하다.

이 보고서가 바른용어 1순위에 올린 게 ‘시장경제’다. 용례는 다음과 같다. “소득격차는 시장경제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의도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과당경쟁, 목따기 경쟁, 먹고 먹히는 경쟁 같은 용어는) 시장경제의 속성이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경우에는 그것을 ‘자유경쟁’이라는 용어로 변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참고로 ‘양극화’의 바른용어는 ‘소득격차’다.

시장경제는 어떤 ‘비뚤어진 용어’를 대체할까? 바로 자본주의다. 전경련과 한경연의 눈엔 ‘정글자본주의’ 같은 말이 뒤틀렸다. 그래서 나온 바른용어가 ‘상생경제’다. 완곡어법으로 점철된 이 보고서의 압권이다.

시장경제라는 말은 범개혁 진영도 자주 쓴다. 한 예로, 더불어민주당의 논평·브리핑을 검색해보면 시장경제가 자본주의보다 두 배가량 많이 나온다. 부정의 맥락에서 쓴 게 아니다. 전경련과 한경연 뜻대로 시장경제란 용어는 어느 정도 ‘통합’을 이룬 셈이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정명(正名)? 헌법재판관 후보로 나온 이미선의 주식 과다 소유·거래가 논란이 됐을 때 자본주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주식거래 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따라가면 자본주의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이해찬 민주당 대표) 이다. 이미선의 남편인 변호사 오충진은 “주식 많다고 까는 야당 놈들은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라는 것을 망각하는 무뇌아들”이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렇다.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 자본주의 국가다. 이미선을 둘러싼 정쟁과 논란에서 건질 게 하나 있다면 현 지배 집단에서 나온 ‘자본주의’라는 말이다. 뜻밖에 나온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라는 정명에서 다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다. 

이미선을 옹호하는 말에서 나타났듯, 자본주의는 이윤을 추구한다. 여기에 진정성이니 선의니 하는 아름다운 말들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투자’라는 게 그렇다. 시민들은 종종 악덕 기업을 대상으로 불매 운동을 벌이곤 하지만,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다고? 한국 자본주의(시장경제) 발전을 위해 이 기업엔 투자하지 않아야겠군’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은 거의 없다. 이미선과 오충진이 주식을 산 이테크건설이 그렇다. 2017년 당시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이 9월 낸 자료를 보면, 이 회사의 장애인 고용률은 1% 미만이다. SK케미칼 임원이 가습기 살균제 흡입 독성 은폐 혐의로 구속된 다음날도 이 회사 주식은 전일 대비 0.14% 올랐다. ‘바이오중유 연료 상용화’ 기대감 때문에 보합세를 유지한 것이라고 한다. 

지난 10일 경기 수원의 한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노동자 김태규씨의 누나 김도현씨가 25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착한’ 자본주의, ‘나쁜’ 자본주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니, 정의로운 사회니, 공정한 사회니 하는 아름다운 수식의 말과 선언의 말로 쉬이 덮을 수 없는 게 자본주의 문제다. 촛불집회와 정권교체로도 좀처럼 해결할 수 없다. 좌파니 우파니, 빨갱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는 겉으로 드러난 대립 밑에 깔린 공유점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 사수와 옹호’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양분한 세력이 ‘친자본주의’를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은 종종 망각된다.

20대 일용직 노동자 김태규가 지난 10일 아파트형 공장 신축 건설현장에서 화물용 승강기에서 추락해 숨졌다. 안전화 대신 운동화를 신은 채 발견됐다. 시공사는 일용직 노동자라 안전화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전화를 아낀 비용은 누군가의 이윤으로, 자본으로 축적됐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마련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4개 하위법령 개정안의 후퇴는 다시 누군가의 이윤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향신문은 최근 김태규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과 인터뷰했다. 그는 매년 산재 발생 추이를 보면 일정한 흐름이 나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건설경기가 좋으면 건설업에서 그만큼 사망자가 늘고, 침체되면 사망자가 줄어듭니다. 이게 한국의 슬픈 현실입니다.” 이 문장 ‘사망자’ 자리에 ‘이윤’을 넣어보라.

자본주의 모순과 폐해가 가장 비극적으로 드러나는 게 산업재해다. 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날이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생된 수많은 김태규, 김용균의 명복을 빈다.

<김종목 사회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