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전인권의 글은 가수 전인권의 노래만큼이나 빼어났다.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글은 다시 읽어도 여운이 짙다. 그가 겪은 얘기 한 토막을 잘라서 옮겨본다.

“나는 판매부서에 근무했던 영업사원이었다. 그 당시 광주·전남지역의 영업소장은 전라도 광주사람이었다. 이름은 김영진(가명)씨였고, 직급은 과장이었다. 어느 날 영업회의가 끝난 후 회식을 하는데 옆 부서의 박 부장이 동석했다가 아주 끔찍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야! 김영진, 전라도를 뚝 떼어다가 대동강 김일성 별장 옆에다 갖다 붙이지그래!’ 나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때가 85년, ‘광주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후니까, 그것이 새삼스럽게 화제가 되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너 그때 김일성찬가 불렀지? 아주 전라도 인민공화국을 만들어버리지 그랬어! 빨갱이 새끼, 여기는 뭐하러 왔어?’ 시간이 지나고 술에 취할수록 박 부장의 인신공격은 더욱 심해졌다. 나도 대학생 운동권 시절 경찰서에 끌려가 ‘이 새끼는 빨갱이야!’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무지막지한 인신공격은 처음 보았다.

참으로 안타까웠던 일은 김 과장의 태도였다. 그런 폭언을 듣고도 김 과장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거의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김 과장은 가끔 가다가 모깃소리만 하게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평화적인 시위였다고……태극기를 흔들고. 아줌마들이 김밥을 싸오고…….’

나는 그게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마당에 평화와 태극기는 뭐고, 김밥이 뭐가 중요하다는 것인가? 나 같으면 당장 술상을 엎어버리고 박 부장과 맞붙었을 테지만, 김 과장은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만 중얼거릴 뿐이었다.”<김대중을 계산하자>

강원도 사람 전인권은 연민의 눈으로 ‘전라도와 전라도사람’을 읽어내고 있다. 그때 박 부장은 전라도 사람들을 빨갱이라 믿어서 그리 막말을 했을까. 아니다. 그에게 전라도 사람은 그냥 기분 나쁜, 막연히 불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김 과장에게 고향 전라도는 생존의 걸림돌이자 수모의 원천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졌는가. 아니다. 지금도 지역차별은 여전하다. 장관 몇 자리 더 챙겼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5·18민주화운동을 향한 왜곡과 조롱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아무나 아무 때나 5·18을 모독하고 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음에도 변함이 없다.

다른 도시였다면 난리가 났을 일들이 태연히 벌어지고 있다. 광주시민 학살의 수괴 전두환은 전라도 땅에 와서도 소리쳤다. “이거 왜 이래.” 전라도 사람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이거 왜 이래, 전라도 놈들.’

또 전두환을 추종하는 무리가 ‘전두환 물러가라’라고 외친 초등학교를 찾아가 구호를 외치고 시가지를 누볐다. 극우의 테러이며 난동이다. 그럼에도 전라도는 그날 평온했다. 5·18을 향해 망언을 쏟아낸 국회의원들은 ‘예상대로’ 건재하다. 저들을 규탄한다고 올라온 광주의 어머니들만 땅을 쳤다. 그리고 이내 끝이다. 아마 그 어머니들도 지쳐서 지금쯤 돌아갔을 것이다.

선거법보다 중한 것이 ‘5·18왜곡처벌법’이다. 지역 차별로 민족을 분열시키는 것보다 더 나쁜 범죄가 있는가. 전라도를 고립시켜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극우의 망동이야말로 북이 좋아할 빨갱이짓이다. 5·18을 제자리에 세우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 그럼에도 김 과장들이 뽑아준 전라도 의원들은 뭐가 중한지를 모른다. 처음에는 핏대를 세우다가 이제는 더듬이를 세워 정계개편 향방을 좇으며 조용히 여당에 아부하고 있다. 국회 내의 얌전한 김 과장들이다.

“5·18 진상규명은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던 대통령은, 그리고 여당은 또 무얼 하는가.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는 약속은 어찌 되어 가는가. 아마 다른 현안이 엄중하고 정권의 힘이 빠져서 5·18 문제는 챙길 여력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러다가 5·18은 역사에 이렇게 기술될지 모른다. ‘5·18민주화운동은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투쟁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북한개입설이 나돌고 있다.’

전라도는 여전히 개똥쇠, 리꾸사꾸, 더블팩들이 살고 있는 하와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속의 김 과장들은 여전히 평화와 김밥을 중얼거리고 있다. 모깃소리만 하게. 이제는 끝내야 한다. 기억하며 분노하라. 전라도에는 전라도라서 죽은 이들이 있잖은가. 산 자들은 죽을 각오로 싸워라. 그래야 ‘전라도 빨갱이 새끼’에서 겨우 ‘빨갱이’ 하나 지울 수 있다. 지난 무술년은 전라도가 생겨난 지 1000년이 되는 해였다. 천년의 전라도.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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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이었다!’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같이 만듭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명애 상임공동대표의 말이다. “옷에 흙을 묻히더라도 세상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한” 시간이 한스럽다며 발언 때마다 집에서만 보낸 47년의 시간을 회상한다. 나도 사람이다가 아니라 ‘나도 사람이었다’는 표현이 인상적인데, 47년의 시간에 대해 스스로 존엄함을 부여하는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현재의 투쟁에 몸을 던지는 그의 시간은 언제나 47년과 지금을 오가고 있는 것만 같다. 장애인 살기 좋아지지 않았냐는 훈수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다. 50년에서 3년 모자란 긴 세월인데 현재의 분노와 만나는 회상은 언제나 생생하다. 흙은 오체투지로 몸이 바닥에 닿아 묻기도 하고, 정부의 무대책, 무심한 시민의 편견 한마디에 묻기도 했을 거다. 몸에 흙을 묻힌 수많은 이들 덕에 세상은 방 안에 있어야 했던 47년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장애인 운동으로 이끈 건 자원활동 중이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일어난 죽음에 대한 소문이었다. 사인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화장했다는 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편과 침묵하는 다른 편이 있었다. 둘 간의 차이를 오래 고민하였는데, 결국 침묵에 동의하긴 어렵다는 결론에 닿았다. 묻고, 싸우고 싶었지만 나눌 동료가 없고 방법을 몰랐던 나는 죄책감, 분노, 원망 같은 것이 뒤섞인 속마음을 꽤 오래 감추고 자원활동에 참여했다. 그 시간에 대한 부끄러움은 장애여성 운동, 장애인 탈시설·거주시설 폐쇄 운동과 만나면서 해야 할 일들로 바뀌게 되었다. 

오래전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학생으로 활동하던 이의 3년 전 추모식도 떠오른다. 추모식에는 그가 남긴 한글을 익히던 시절의 노트도 놓여 있었다. 15년 전 나와 연습한 한글 노트였다. 묘한 감정이 일며 그와 겪었던 갈등들이 상세히 기억났다. 그가 과제를 안 해 왔을 때, 나와 자기결정권을 두고 다퉜을 때, 수업과 집회 참여를 두고 토론했을 때 등. 기억을 더듬어보니 사이가 안 좋았던 순간이 더 많았다. 그는 평범하게 살았고 그저 궁금한 것을 물었을 테지만, 장애인과의 갈등은 나에겐 낯선 것이었다. 장애인과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 물음만 있고 답이 없던 시간. 얽히고 묶이며 겪어내야 했던 시간과 관계만이 이정표가 되었던 시간, 우리가 채워간 건 한글 노트가 아니라 오답 노트였을지 모른다. 

작년 신길역 지하철 리프트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을 서울시에 물으며 지하철 연착 시위를 할 때였다. 지지해주는 시민들 사이에서 ‘바쁜데 왜 나와서 방해하냐’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지하철 엘리베이터이지만 처음에 만들던 과정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2002년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한 지하철 연착 시위 때도 비슷한 고함을 들었다. 이럴 때면 시간이 거슬러 가는 것만 같다. 장애인의 시간도 귀하다. 그 귀중한 시간을 자신의 존엄을 위해 쓰고 있다. 3월26일 세종시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을 촉구하는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주간이 시작되었다. 느리고 할 일 없을 거란 세상의 편견을 비웃듯, 4월 싸우는 장애인들은 제일 바쁜 사람들이다. 4월 거리에 나선 장애인의 시간은 그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수많은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이 장애인이 살아온 시간을 보고 들으며, 장애인이 살아갈 시간에 대한 책임과 마주해야 한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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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현 정부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에 대한 인사 정책이 파당적이라며 비판하는 견해와 헌재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앞으로 있을 청문회에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질 것이다. 아무려나 현 정부의 인사 패턴을 보면 이들이 재판관으로 임명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훌륭한 판관을 뽑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로서의 자격이나 경력 요건 외에 판관 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관해서 법이 별도로 정한 바도 없다. 이 풍진 세상, 고위직 판관을 뽑는 데 기준으로 삼을 만한 자질은 무엇일까. 임명권자로서는 아무래도 자기 편을 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 필요할 게고, 또 성별이나 출신지역 안배도 생각해야 할 것이지만, 이런 고려사항이 일단 판관의 자리에 오른 이가 가져야 할 자세와 반드시 같지는 않다.

판관의 자질에 관하여는 고래로부터 논의가 적지 않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을 소개하자면 19세기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존 싱글턴 코플리가 한 말이 있다. “(법관직에 뽑을 사람으로) 내가 찾는 것은 신사다. 법률을 조금이라도 알면 더 좋고.” 이것 말고도 논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몇 가지 자질은 용기, 정직, 근면이다. 

제일의 조건이 신사여야 한다는 이유는 뭘까. 신사란 우리 식으로 말해 선비쯤 되는 개념이 아닌가 싶은데, 요컨대 먼저 사람됨을 보자는 것이다. 코플리의 발언에 대한 해설을 보면 신사란 고결함과 공손함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니, 달리 말해 비루하거나 야비하거나 치사한 성품의 소유자는 판관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이번에 후보자로 지명된 이 중 한 사람이 여성이니, 여성의 경우엔 숙녀만이 판관으로 적합하다고 해야 하겠다.

그다음은 요구사항이라기보다 희망사항쯤 된다. 그런데 “법률을 조금이라도 알면 더 좋고”라니, 어째 좀 이상하지 않은가. 코플리는 판사를 뽑는 권한을 가졌던 사람이다. 고위직 판관의 법률 실력이 수월한지 아닌지를 놓고 여러 말을 하지만, 그는 그런 수월함이 능사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 같다. 왜였을까. 법률직의 전문성이 가지는 어떤 함정을 알게 되면, 그 말투의 심상함이 담고 있는 의미가 다가온다. 법이란 얼핏 아주 정치한 체계 같아 보이지만 실인즉 구체적 쟁송에 들어가면 딱 들어맞는 법규정은 물론이고 선례도 찾기 어려운 게 다반사다. 분쟁이란 결국 이해관계를 놓고 벌이는 다툼인데, 판관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대립하는 정책적 고려사항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의 문제다. 바로 이때 양심이니 가치관이니 하는 것이 작동한다. 그러니 전문성이 아니라 신사의 자질이 최우선이라는 것이 코플리 발언의 참뜻일 게다.

셋째로,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는 사법권 독립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인데, 기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과거 헌재의 한 재판관은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헌법소원사건에서 주심을 맡아 위헌결정을 냈다. 당시의 정권이 곱게 보았을 리가 없다. 오비이락인지 아닌지 모를 일이나, 그는 다음해 임대소득의 세금탈루 의혹 보도에 곤욕을 치르고 결국 사퇴하였다. 신상의 불이익 따위에 겁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넷째는 정직의 덕목이다. 사법사상 판관이 부패했던 이야기를 하자면 한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지적 정직성이다. 모르면서 재판하지 말라는 것인데, 다 알고 재판하자면 집에 기록 보따리 싸 가지고 가는 것은 일상사고, 칼퇴근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으며, 주말에 일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으르면 판관 노릇 하기 어렵다. 몸이 약해도 곤란하다. 살인적 업무량에 몇 해를 뼈가 녹도록 일하다 보면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나 저러나 정치적 성향은 제치고라도, 법조계에서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은 대략 이번의 지명이 다소 지나치다고 보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즉 새 정부 집권 초기에는 그렇다 쳐도, 이제는 균형 잡힌 인사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 발표에서 청와대가 강조한 헌재 구성의 다양성 추구는 그나마 긍정적이지만, 다양성을 추구한다 하면서도 객관적으로 보아 정치적 고려가 주된 기준이었던 티가 난다. 지명된 후보자의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간 지명된 사람의 대다수가 특정 단체 출신이라는 점이 의아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헌재의 인선에서 국정철학을 관철하려는 것은, 헌법이 헌재 구성의 구도에서 대통령·국회·대법원장이 각자의 몫대로 지명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니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들이 훌륭한 헌법재판관으로 봉직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러나 일단 임명되면 헌법재판관의 임무는 오로지 양심에 따라 헌법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다. 후보자들이 신사이며 숙녀라면 큰 탈이 없지 않을까. 

그런데 양심이라는, 헌법 조항에 나와 있는 낱말을 인용하다 보니 한마디 꼭 덧붙이고 싶다. 혹시라도 양심을 이른바 ‘정무적 판단’이라는 아리송하고 위험천만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무 ‘정무적’이다가 그만 법대 아래에서 재판받는 신세가 되고 심지어 쇠고랑까지 찬 고위직 법관들을 이미 여럿 보고 있지 않은가. 그 재미없는 희극에 어이없어 하는 마음에서 이 고언을 드린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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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재지정 평가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대표적인 자사고인 ‘상산고’ 재지정 평가 기준 하한선을 전북도교육청이 10점 상향해 80점으로 높인 것에 학교 측이 반발했다. 자사고 폐지를 위한 수순이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자사고 재지정 평가 절차에 돌입하자 자사고 연합 측이 이를 거부했다. 재지정 기준 하한선 70점은 자사고 죽이기 차원이라는 것이다. 사실 70점은 자사고를 만든 이명박 정부 시절 재지정 평가 기준이었다. 이를 박근혜 정부가 60점으로 낮추었다가, 현 정부 들어 MB 정부 시절로 회복한 것이니, 자사고 죽이기 정책인지 의아하다. 장담컨대 상당수 자사고들은 70점 하한선을 통과해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자사고의 심각한 폐해를 생각할 때, 재지정 평가 정책이 과연 이를 바로잡을 적합한 도구인가는 회의스럽다. 재지정 평가 정책은 그 평가를 통과한 자사고는 존속시키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국가적 폐해를 생각할 때 자사고 존속은 ‘약속’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지위를 해소해야 한다. 즉 자사고 문제를 푸는 길은 재지정 정책이 아니라 시행령을 고쳐 학교의 지위를 일반학교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자사고 문제의 핵심은 고교체계가 서열화되었다는 것이다. 영재고 시험을 치르고 떨어지면 특목고나 자사고에 지원하고, 거기서 떨어지면 자율고나 과학중점학교 등을 거쳐 최종 탈락자들이 일반고를 지원한다. 말이 되는가? 서울대 떨어지면 연대·고대 입시를 치르고 거기서 떨어지면 ‘인서울’ 대학 입시를 치른 후 지방대를 거쳐 최종적으로 떨어진 학생들을 전문대가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국민들이 수용할까? 그런데 이 희한한 입시 정책이 고교 단계에서는 먹히고 있다.

이 체계에 적응하느라 중학생들이 입시 노예가 되어 버렸다. 중학생이란 어떤 존재인가? 사춘기를 통과하는 존재다. 내가 네가 아니고 나인 이유를 찾는 시기, 어른이 아닌데 어른 대접 해달라고 요구하는 질풍노도의 존재들이다. 그 터널을 통과하며 자기를 발견하고 세우는 시기다. 어른이 아니니 너희들에게 그 자유를 줄 수 없다고 해도 소용없다. 누르고 감독하는 존재가 아닌, 자식의 친구로 그 위치를 조정하지 않으면 자식의 마음을 만날 수 없다. 그 준엄한 시기에 부모들이 품안에 움켜쥐었던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자식들에게 “너는 자유인이니, 네 판단과 감정을 존중하겠다” 그렇게 선언함으로써, 관계의 전환을 시도할 때다. 그 시기를 그렇게 거쳐야 자식은 주어진 자유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며 실패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 역시 그래야 자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그의 곁에 머물 수 있다. 그래서 진로는 ‘결정’할 시기가 아니라 다만 ‘탐색’할 시기일 뿐이다. 

그 엄중한 때에 허다한 부모들이 임박한 고입 걱정에 얼어붙어 그나마 있던 자유마저 회수하며 아이 목을 잡고 입시 트랙을 달리게 한다. 부모가 열어준 여유의 공간 속에서 퇴행과 방종의 사춘기를 거쳐야, 자식은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 남의 미래가 아닌 내 미래를 사는 존재로 거듭난다. 그 귀한 시도가 모두 억제된 채 경주마로 달리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대입 경쟁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고입 경쟁만큼은 막아야 한다. 재지정 평가나 고교 입시만 손질할 일이 아니다. 속히 고교체계도 바로잡아야 한다.

<송인수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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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뭔가 중요한 기획회의였는데 누군가가 던진 말에 내가 다소 흥분했다. 한참 날을 세워 말이 오가는데 구석에서 제3의 인물이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권 감수성도 없는 주제에!”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어떻게 저런 말을?’ 의심도 잠시,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했어?” 그는 별말 아니라고 발을 뺐고 이후 회의는 급하게 종료되었다. 

잠시 후 그를 따로 불렀다. 여러 사람이 있는 곳에서 할 말이 아니지 않으냐, 내게 문제가 있다면 따로 지적해주면 고칠 용의가 있다는 등 좋게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괘씸하고 억울해 다시 흥분 상태가 되면서 “한 번만 더 그런 일이 있으면”이라는 식으로 윽박지르고 말았다. 

꿈에서 깨자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아, 꿈이구나! 안도와 착잡함 사이를 오가며 도대체 나는 왜 이런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에 우울함이 몰려왔다. 괜히 이런 꿈을 꾸는 게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욱하는 버릇은 나와 친하게, 오래 교류한 이들은 알고 있는 기질이다.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토론을 하다가 어떤 거슬리는 말을 들을 때 ‘욱’이 튀어나오곤 한다. 상대에게 치명적이고 극단적인 말을 내뱉고야 만다. 가령 이런 식이다. 정부의 학술정책에 대해 토론하다 정부를 비판하던 사람의 논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점점 엇박자를 타다가 당신이 가장 문제이고 그런 논리가 바로 학술정책을 망치고 있다는 식으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는 것이다.       

이런 버릇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는데 일단 현장에서 사과를 하고, 다음날 문자를 보내 재차 사과를 한다. 상대가 괘념치 말라는 식으로 받아주고 어떻게든 수습은 되지만 며칠은 그 일로 괴로움에 빠져 있다. 그리고 몇 달은 차분하게 조심을 한다. 내 안의 악마를 다독이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욱’을 꺼내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셀프 정신분석이 불가피한지라 스스로에게 많은 자문을 해보았다. 대부분은 ‘욱’이 나오다가 꿀꺽 다시 들어가지만 꺼내들고나면 스스로의 생명력을 얻어 폭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욱’의 근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콤플렉스인가? 한동안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더 중요한 뭔가가 있는 듯싶다. 어느 정도는 집안내력이기도 해서 유전자의 한계는 수신제가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고 수긍하기도 해보았다. <논어>를 아예 통째로 외워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말은 무조건 맞다고 세뇌를 할까. 실제로 논쟁적인 주제로 대화가 옮겨간다 싶으면 그래, 지금부터는 당신 말이 무조건 맞다고 남몰래 주문을 외기도 한다. 그런데 저런 ‘흉악한’ 꿈을 꾸고 나니 이 명랑토론 문화에 위배되는 나란 인간의 도저한 부적합성 때문에 자존감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지금으로선 적극적인 습관화가 나름의 돌파구란 생각도 든다. 평소의 대화에서 의견 개진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의견을 듣기 위해서라는 전제를 기둥처럼 삼는다. 나와 다른 의견이 1차 확인되었을 때 ‘비논리적이잖아, 나이브하잖아, 이기적이잖아, 너무 협소하잖아’란 생각이 떠오르면 이걸 괄호에 넣어버리고 그 다른 의견이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자. 마치 상담사가 된 기분으로. 그런데 그렇게 맞장구만 치면 대화라고 할 수 없으니 나의 의견도 조심스럽게 표출해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악몽을 꾼 다음날 아침의 작은 결론이다.

사실, 전날 책을 읽다 잠들었는데 그 속의 한 구절이 꿈의 발단이 되었음을 안다. 우리에게 <수사학>으로 잘 알려진 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는 책의 결론을 애매모호하게 맺었다고 한다. “여기서 대화는 끝났고 우리는 헤어졌다. 벨베이우스는 코타의 의견이 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 반면, 나는 발부스의 의견이 진실에 보다 근접했다고 느꼈다.” 겸손과는 거리가 먼 키케로가 이렇게 결론을 맺은 이유는 이것이 당시의 사람들에게 “세련된 진실함을 나타내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종국적인 결론을 맺기보다 오히려 의견의 교환 자체에 토론의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키케로 시대의 지식인들은 토론을 할 때 기지와 진지함이 함께하면서 결코 뜬소문이나 중상모략으로 번지지 않으면서 항상 반대의견이 들어설 자리를 남겨두는 것을 중시했다. 키케로는 말했다. “토론의 상대를 마치 독점 사업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경쟁자를 대하듯이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네, 알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지만 말입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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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공공주택 건설을 반대하는 1인 시위 중이다. 이미 자신의 지역에 대규모 임대아파트가 있는데도 서울 외곽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주택이 더 들어서는 건, 근처 주택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매우 불평등한 정책”이라고 했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그는 2년 전까지 나와 같은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이웃사촌이었다. 나는 8년 전, 서울 하늘 아래서 새 아파트에 전세로 살 행운에 당첨되었다. 2년마다 꼬박꼬박 이사하는 삶을 청산하고 20년간 거주할 수 있게 되니 이웃과도 친밀해졌다. 서울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절망감을 이제는 안 느껴도 된다는 그와도 회포를 몇 번 풀었다. 

하지만 그는 불안하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 입주한 비슷한 평수의 옆 아파트의 가격이 6년 만에 2배가 뛰어올랐을 때, 그 옆의 아파트가 신규 입주 1년 만에 수억원이 올랐을 때마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박탈감은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에 전 재산만큼의 금액을 대출받아 내 집 마련을 하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대출금 갚기가 버겁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어떻게든 들어가서 몇 년만 버티면 집값은 무조건 오르니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움직였던 익숙한 말을 뱉는다. “다들 이렇게 살더라고. 내가 지금까지 바보였지.”

가진 돈의 곱절을 걸었으니 그는 더 불안해졌다. 집값 상승을 전제로 도박을 했으니 조바심은 커졌다. 아파트 앞에 장애인 복지관이 건설될 때, 그는 예전처럼 별생각 없이 건물을 바라보지 못했다. 그때부터 계획이 뒤틀리고 있다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그는 대형 쇼핑몰 입주 예정지라고 소문났던 곳에 임대아파트 수천 가구가 조성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차별과 혐오를 구체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주거의 공공성이 어떤 의미인지를 가장 잘 알았던 사람은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큰일 날 상황을 선택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3월28일 (출처:경향신문DB)

일부의 이야기일까? 아주 예전에는 ‘저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부 투기꾼들의 속물근성 정도로 부동산 광풍을 순진하게 해석할 순 없게 되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면서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공부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0억원을 가진 자가 20억원을 대출받아 건물을 사는 건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겠지만, 재산이 1억원이었던 사람이 2억원을 빌려 몇 년 후 5억원의 재산을 만드는 현상은 누구에게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고뇌하게끔 한다. 게다가 솔직히 운이 좋았던 사람이, 힘들었던 지난날의 보상을 받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들으면 그저 열심히 노동만 하고 살아온 삶에 대한 자책 수위는 높아진다. 결국 ‘더 늦기 전에’ 가족 모두의 협력으로 일생의 선택을 한 자들에게 집값 상승은 ‘정의’가 되고 행여 계획이 어그러질 수 있는 요인들이 등장하면 자신들이 불평등하다고 착각한다.

청와대의 그분도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다들 그러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개인들’이 많아진 사회를 과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임대사업자가 되겠다는 초등학생에게는 죄가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집 앞에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을, 공공주택이 들어서는 것을 호재인지 악재인지 분별하려는 나쁜 습관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평생 이렇게 살기 싫어서’ 도박을 선택한 이들은 사회적 약자와 자신이 분리되는 걸 마땅하다고 여긴다. 권리와 평등이란 단어를 오용하는 사회, 그래서 일부가 아닌 다수가 ‘누군가의 평등’을 미치도록 반대하는 모습이 해악이 아니라고 누가 말하겠는가.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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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초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초연결 사회가 될까.

요즘 TV광고들을 보면 쉴 새 없이 말한다. “가고 싶은 어디라도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무엇이든 볼 수 있다”, “세상을 내 마음껏 가지고 노는 능력,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당신의 초능력”…. 또 다른 광고는 지금을 “4차 산업혁명 시대도 아니고, 5G 시대도 아닌 초(超)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모두의 생활 곳곳을 바꿀 거대한 변화”가 온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에 이어 기계와 기계까지 서로 소통하며 완전하게 연결되는 꿈의 세상.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즐겁게 전한다.

오는 5일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 서비스를 시작하는 ‘5G(5세대 이동통신)’를 앞두고 이동통신사들이 경쟁적으로 하고 있는 광고들이다.

여기엔 초융합, 초연결, 초지능, 초능력 등이 일상어처럼 나온다. 몇 초 만에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야 하는 광고의 특성상 화려하게 포장된 것을 알고 있지만 한참을 듣다보면 마치 나에게 그런 초능력이 생길 것 같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빈틈없이 연결될 것이라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나 초시대, 초연결에는 누구 하나,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누려야 할 것을 함께 누린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한다. 이들 광고가 현란하면 현란할수록 현실에서의 차별, 혐오, 소외, 빈부격차 등이 더 크게 다가와 공허하게만 느껴진다.

특히나 우리 사회에서 삶의 격차를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쓸쓸한 죽음과 마주할 때 더욱 그렇다. 

지난달 서울의 한 빌라에서 30대 독거 장애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또 들렸다. 정확한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없을 만큼 시간이 너무도 많이 흐른 뒤 그의 죽음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38세 남성인 그는 기초수급대상자로 정신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40세 미만이었기에 지방자치단체의 정기적인 모니터링 대상에선 빠져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에서 난 불로 홀로 살던 70대 장애인이 숨지기도 했다.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가난일 때 우리는 더 큰 무력감을 느낀다. 지난 2월은 가난했지만 선량하게 살다간 송파 세 모녀의 5주기였다. 크고 작은 추모식이 열리고 5년 전 일었던 비판과 성찰이 되새김질 됐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우리 사회가 크게 달라졌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삶의 연결망은 아직도 엉성하기만 하다. 

테크놀로지는 초능력, 초연결 시대를 노래한다. 하지만 실제 우리는 초격차 사회의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이 같은 괴리는 마치 잘 만들어진 공포 영화가 주는 비현실적인 공포와 흡사하다. 주말에 본 영화 조던 필 감독의 <어스(Us)>는 미국 소재의 영화였지만 우리의 모습을 엿보게 하며 묘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에서 해변가로 휴가 온 일가족을 공격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가족을 닮은 사람들(도플갱어)이었다. 이들은 고백한다. 육체는 두 개였지만 영혼을 나누어 사는 “나는 너의 그림자”였다고. 똑같은 육체(인간)를 갖고 있다지만 안온한 지상 위의 삶과 차디찬 아래의 삶은 완전 딴판일 수밖에 없다. 쫓고 쫓기는 잔인한 피의 싸움이 끝난 후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나와 너’의 관계는 모호해지며 ‘나와 타자’의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1986년과 현재 시점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1986년 당시 미국에서 있었던 퍼포먼스 ‘핸즈 어크로스 아메리카’가 나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 마련 캠페인의 하나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서로 손을 맞잡아 하나로 연결하는 퍼포먼스였다. 영화에서 붉은 옷을 입은 수많은 도플갱어들이 기괴한 방식으로 세상 밖으로 나와 거대한 인간띠를 이루는 모습에선 공포 대신 연민이 느껴진다. 공포 스릴러를 내건 영화가 끝난 후 어두운 극장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스마트한 5G 시대는 분명 이제껏 없던 세상의 풍경들을 만들 것이다. 먼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사람의 심장박동까지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초단위로 들려줄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알아챈 기계들이 나서서 온갖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테크놀로지가 초연결 사회를 만들어준다고 해도 내 주위에 불평등과 소외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늬만 있는 초연결이 아닐까. 얼마 전 달성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상대적 빈곤의 깊은 골을 드러낸 자화상이었듯이.

진정한 초연결 시대는 영화에서처럼 동등한 존재로 손을 맞잡을 때 열리지 않을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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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쓰러지는 것을

일으키고 끌어올리고 또 잡아 세운다

일으키는 창유리의 아침이 눈부시지 않으면

물렁뼈로 엎디이고 말리


허기처럼 질긴 습관과 밥알처럼 끈덕진 관성이

뼈대를 세우고

호두알 깨뜨리는 책임과 밤껍질 발라내는 의무가

근육을 굴리나

때로는 널푸른 공중 그네를 매달고 싶었으리


쓰러지는 밤이 우물 속처럼 아득하더라도

무릎 당겨 세운 침대가 되는 꿈은 꾸지 말기를

어느 날 하늘을 날게 된 양탄자는

태생이 배를 깐 바닥이었으니

바닥을 타는 법을 터득해야

바람의 행간을 타고 날 수 있으리 

- 이선영(1964~)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절망의 계곡과도 같은 검은 밤이 있지만, 다시 산봉우리를 넘어오며 빛나는 새날 또한 있다. 환한 유리창으로 새날이 들어온다. 바닥을 밝히면서. 바닥에 누운 것들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면서. 새날이 와서 우리는 우물 속처럼 깊고 아득한 밤을 비로소 벗는다. 덮고 있던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다. 시인은 밤의 바닥으로부터 일어서는 일을 양탄자의 일에 비유한다. 바닥에 배를 깔고 늘펀하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양탄자가 바람을 타며 하늘을 날게 된 일에 비유한다. 양탄자처럼 바닥으로부터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를 바라면서. 한편, 시인은 시 ‘나는 직립한다’에서 이렇게 썼다. “등 대고 있던 바닥을 딛고 일어설 때, 일어서려 할 때/ 비로소 아기는 제 안에서 움틀거리는 인간을 느끼리라.” 자신을 곧추 세우려는, 꿈틀거리는, 내면의 힘을 느껴볼 일이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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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제는 애초 투표율 제고가 주된 목적의 하나다. “위험할 정도로 낮아지는” 투표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제도이다. 한국에서는 2013년도 상반기 재·보선에서 처음 도입됐다. 평균 투표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26위에 머무른 심각한 투표율 저하가 제도 도입의 동력이 되었다.

역대 재·보선에서 사전투표율과 전체 투표율은 일정한 상관성을 보이지 않았다. 2013년 4월 재·보선부터 2014년 7월 재·보선까지는 사전투표율이 꾸준히 올랐지만 당일 투표율은 오히려 감소, 전체 투표율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 2015년 4월 재·보선은 직전 선거에 비해 사전투표율은 감소하고 당일 투표율은 증가, 역시 전체 투표율은 엇비슷했다. 재·보선은 사전투표소 설치 장소가 해당 선거 지역에 제한된다는 점 때문에 사전투표 효과 측정에 한계가 있다.

사전투표제가 전국적으로 처음 적용된 2014년 지방선거 사전투표율은 11.49%로 크게 높아졌으나, 전체 투표율은 2010년 지방선거에 비해 2.3%포인트 상승했다. 2016년 20대 총선 사전투표율은 12.19%를 기록했고, 전체 투표율(58%)은 19대 총선에 비해 3.8%포인트 높았다. 2017년 대선은 사전투표율이 26.06%로 신기록을 썼지만, 전체 투표율은 18대 대선에 비해 1.4%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높은 사전투표율에 비해 전체 투표율의 상승폭은 상대적으로 낮은 양상이다.

학계에서는 선거때면 ‘사전투표제가 투표율을 높이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왔다. 추세적 하락을 막고 투표율을 반전시킨 점에서 ‘투표율 제고’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평가와, 순투표율을 높이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반론이 병존한다. 후자는 사전투표 효과는 ‘새로운 투표자(기권자)를 충원하기보다 기존 투표자를 분산하는 데 그쳤다”고 보는 것이다.

4·3 재·보선의 사전투표율이 14.37%를 기록했다. 국회의원 선거가 포함된 역대 재·보선 중 가장 높은 압도적 투표율이다. 이번에는 사전투표제의 투표율 제고 효과를 증명하게 될까. 분명한 건, 특정 제도에 앞서 당해 선거에 부여되는 ‘심판’의 성격이 ‘참여’를 좌우한다는 불멸의 원리일 터이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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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자가 대학. 미국 워싱턴주 스포캔에 있는 농구의 명문이다.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 대학농구(NCAA) 토너먼트에 최근 24년 동안 개근 출전했으며, 재작년에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올해도 대회 전 우승 예상 4위일 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8강전에서 패해 탈락했다. 곤자가 대학이 역사상 첫 우승까지 노릴 수 있었던 것은 하치무라 루이라는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국적의 3학년 학생이다. 203㎝, 104㎏의 당당한 체격을 가진 그는 올여름, 드래프트를 통해 NBA에 진출하는 첫 번째 일본 선수가 될 전망이다. 

하치무라는 혼혈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지만 아버지는 서아프리카의 베냉공화국 출신이다. 일본에서는 혼혈을 ‘하프’라 부르곤 하는데, 스포츠계에는 뛰어난 ‘하프’가 많다. 얼마 전 세계 테니스 랭킹 1위에 오른 오사카 나오미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결혼을 끝까지 반대한 외조부모 때문에 미국으로 이주했고, 오사카가 10살이 넘도록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연이 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유 다르빗슈의 아버지는 이란인이고, ‘일본 단거리 육상의 미래’로 불리는 사니 브라운 압델 하키무의 아버지는 가나인이다. 

우리나라에도 혼혈 운동선수가 적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 엘리트 선수가 된 경우는 많지 않다. 하인즈 워드처럼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외국인으로 남았거나 문태종, 이승준처럼 외국에서 자란 후 성인이 되어 귀화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1970년대 농구계를 주름잡았던 김동광 선수가 있긴 하다). 국제결혼의 역사가 짧은 탓만은 아니다. 다문화가정의 수많은 아이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탓도 적지 않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국제결혼의 빈도를 보면 한국과 일본은 큰 차이가 없다. 비율로 보면 오히려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율이 더 높다.

통계청 조사자료를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탄생한 한국인-외국인 결혼 커플은 2만 쌍이 넘는다. 피크였던 2005년에 비하면 반 정도로 줄었지만 여전히 전체 혼인의 8% 이상을 차지했고, 다문화 출생아 수는 전체 신생아의 5.2%였다. 새로 태어나는 20명 가운데 한 명은 혼혈인 셈이다. 우리나라 전체 초등학생의 3.1%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이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도 2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미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인종의 한국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평범한 백인 미국인들이 사흘 동안 타 인종과 한 버스를 타는 것만으로도 이민자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이민에 대한 반대 의견이 강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하버드대 계량사회과학 연구소의 라이언 에노스 교수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열흘 이상 같은 버스를 타자 무조건적인 반감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접촉이 잦아질수록 까닭 없는 공포나 오해는 감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3년 전의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 중 이웃에 외국인이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답변이 25%였다고 한다. 중국의 10.5%보다도 훨씬 높았다. 옆에서 자주 보기를 원하지 않으니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이외의 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까지.

우리나라에도 하치무라 루이가 왜 없겠는가. 14살의 한국인 온예카 오비 존은 아버지가 나이지리아인이고 12살 원태훈은 아버지가 모로코인이다. 둘 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축구 유망주이다. 이들이 쑥쑥 자라서 제2의 박지성이나 손흥민이 되길 기대하지만, ‘다문화’가 또 다른 차별의 단어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마냥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농구나 축구뿐 아니라 음악, 수학, 문학, 모두 마찬가지이다. 뛰어난 자원들이 많아도 우리는 그들에게 여간해서 곁을 내주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으로 밀어낸다. 미국 프로농구에서 뛰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알론조 트리어의 어머니는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한·흑 혼혈이다. 그 어머니가 한국에 남아 있었어도 트리어 같은 아들을 길러낼 기회가 주어졌을까?

하치무라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반은 아프리카인이고 반은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며 “일본에 있는 수많은 ‘하프’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 ‘하프’들이 “당신처럼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문화란 그런 거다. 베트남 새댁이 이제 김치 없으면 밥 못 먹는다며 박수 치는 것이 아니라 그 2세들이 베트남 혈통을 자랑스러워하는 건강한 한국인이 되도록 격려하는 것이 다문화다. 그렇게 격려하다 보면 스포츠계에서도 과학계에서도, 그리고 법조계와 의료계에도 ‘롤 모델’이 되는 다혈통 한국인이 많이 배출되지 않겠는가.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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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장관 후보자 지명을 철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2기 내각 장관 후보자 7명 가운데 2명이 낙마했다. 정부의 국정철학과 배치된 ‘내로남불’ 인사라는 비판 여론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조 후보자에게 제기된 아들의 ‘황제 유학’, ‘군 복무 특혜’ 의혹 등은 시민 정서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여기에 해외의 ‘해적 학술단체’와 관련된 학회에 참석한 새로운 의혹이 더해졌다. 최 후보자 역시 잠실·분당·세종에 아파트와 분양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23억원이 넘는 투자 이익을 얻는 등 부적절한 처신이 도마에 올랐다. 그는 딸 부부에게 집을 팔고 월세로 사는 쇼까지 벌였다.

조동호(왼쪽), 최정호. 출처:경향신문DB


사실 이들의 낙마는 청와대만 빼고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도 청와대는 지명 철회 발표 자리에서까지 안이한 인식을 내보였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조 후보자의 해외 부실학회 참석에 대해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외 부실학회 참석 사실을 제외하고는 청문회 과정에서 지적된 흠결은 인사 검증 과정에서 확인됐다”고 예의 사전 파악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변명은 구차하고, 흠결을 알고도 지명했다는 건 오만하게 들린다. 어느 쪽도 시민의 이해를 구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인사실패로 낙마한 장차관급만 벌써 10여명에 이른다. 장관 후보가 낙마하면 차기 장관이 나오기까지 수개월간 국정공백은 불가피하다. 이런 국력 낭비는 청와대가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한두 번이면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개각 때마다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건 청와대 인사 추천·검증 시스템에 단단히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정말 인사라인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 인사 잣대가 내편에만 관대한 온정주의는 없었는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책임자에 대한 문책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매번 책임을 묻지 않고 감싸고 도니 같은 잘못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인사 때마다 시민 눈높이를 맞추는 데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뼈저린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두 사람의 낙마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내편, 네편 가르지 않고 인사의 폭을 넓히는 등 인사정책의 과감한 반성과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제2, 제3의 인사참사는 또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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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여성들의 눈과 귀가 헌법재판소로 쏠리고 있다. 헌재가 서기석·조용호 재판관 퇴임(18일) 이전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한 선고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12년 4(합헌) 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진 지 7년 만이다. 헌재가 심리 중인 법조항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269조 1항과 낙태시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270조 1항이다. 지난 30일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주최 집회에는 1500여명이 모여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도 요구했다.

30일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위 사진)와 광화문네거리 원표공원에서 열린 낙태반대 집회(아래 사진)에서 각각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낙태(임신중지·임신중단)를 둘러싼 논의는 전통적으로 ‘여성의 선택권’ 대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띠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낙태 문제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넘어 건강권·행복권·재생산권 등 삶 전반을 규정짓는 핵심적 인권 이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가톨릭국가 아일랜드가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죄를 폐지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임신중단 합법화’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낙태에 대한 인식이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9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필요할 경우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77%(남성 79%, 여성 75%)로 나타났다. 특히 20대와 30대는 각각 85%, 94%의 압도적 비율로 ‘필요시 낙태 허용’에 찬성했다.

지난 주말 무궁화호 열차 화장실과 인천의 주택가 등에서 신생아 유기 사건이 잇따랐다. 영아유기가 끊이지 않는 주된 사유는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육아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다. 임신과 출산을 당사자가 온전한 자유의사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면,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이 강화된다면 이 같은 비극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최근 “민주국가에서 임신을 국가가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신의 중단, 즉 낙태 역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결정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헌재에 전달했다. 우리는 이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제는 여성의 몸을 국가가 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인식과 결별할 때다. 헌재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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