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이면 외교부 기자실은 ‘외교문서 시즌’에 돌입한다. 외교부가 기밀유지 연한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들을 공개하기에 앞서 기사 작성을 돕기 위해 미리 배포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1988년 생산된 외교 문서 25만여쪽을 담은 USB가 전달됐다. 문서량이 엄청나다보니 기자들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2주 남짓 되는 기간 동안 각자 맡은 분량을 샅샅이 검토해서 주요 내용을 요약해야 한다.

의무감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작업에 참여했다. 외교 현장을 생생한 육성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없지는 않았다. 사관이 사초를 남긴다면, 외교관은 전문으로 존재를 증명하지 않던가.

그런데 할당된 문서 7500여쪽을 살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문서철 중 일부는 “공란”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부 심사에서 다시 5년간 비공개로 전환된 문서들이었다. 상당수는 이미 일반 문서로 분류된 ‘3급 기밀’에 해당했다. 내용 면에서부터 새롭게 보도할 만한 사실을 찾아내기에 제약이 따랐다. 

인위적으로 공개 시점을 정해놓은 부분도 마음에 걸렸다. 현안을 챙기고 취재원들을 만나는 와중에 2주 동안 방대한 양의 문서를 공들여 분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외교부는 2019년도 외교문서 공개율은 88%로 지난해보다도 약 2% 증가했으며, 개인정보나 상대국에 민감한 정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입장이다. 기밀문서 공개율이 70%에도 못 미치는 미국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외교행정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의 알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 시작된 외교문서 공개 의의를 살리려면, 더 나은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 

우선 소수의 퇴직 외교관과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지는 공개 대상 문서 심사에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3년쯤 후에는 매년 공개되는 문서의 양이 지금보다 두 배 늘어나는 ‘외교문서 홍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외교문서 분류·이관을 담당하는 인력 확충도 시급해 보인다.

<김유진 | 정치부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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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문화재청이 ‘남북문화유산 정책포럼’을 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비롯해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안다. 물론 단골손님인 생태계 보존에 관한 내용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개인 생활사나 비무장지대에 있었던 마을과 관련한 조사와 같은 내용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빠졌다. 

어느 특정한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이 빠졌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한탄강이 임진강과 만나고 다시 그 강이 한강과 만나 서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경기도의 비옥한 땅과 강원도의 험준한 산지가 빚어냈을 문화에 대해서 말이다. 문화란 형체가 있어서 유형이라고 불리는 것과 형체가 없어서 무형이라고 불리는 두 가지가 있다. 비무장지대에도 다를 바 없이 유형과 무형 두 가지의 문화가 존재하고 그것 외에 전쟁이 남긴 독특한 문화가 하나 더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경기도 일대의 비무장지대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과 관련한 삶의 문화가 남아 있다. 약 5년 전, 임진강 일대의 참게잡이를 다시 조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는 모두 그물로 잡는 것일 뿐 20여년 전 늙은 어부들이 전해주던 새끼줄에 잘 여문 수수를 거꾸로 매달아 물에 넣는 게잡이 방식은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밤새 강물에 넣어 놓으면 여문 수수에 게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새끼줄을 둘둘 말기만 하면 되었다고 했다. 

강 곁에는 강마을이 있기 마련이고 그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은 강이었다. 생활이라는 것은 자연과의 투쟁을 말하는 것이고 그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지혜를 짜내고 자연과 맞서거나 혹은 피하며 삶을 강구한다. 그것이 문화가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사실 강이나 바다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강이나 바다 곁에 사는 이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해마다 굿을 벌이기도 했는데 비무장지대 인근 강마을에서는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고랑포가 대표적이다. 

민통선에서 해제되긴 했지만 여전히 남방한계선 철조망과 붙어 있는 고랑포는 전쟁 전만 하더라도 경기도 일대에서 내로라하던 나루터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있을 정도로 상권이 좋았던 곳이다. 장단이나 개성에서는 수레나 자동차로 농산물이 내려오고 서해바다에서는 새우젓과 소금을 비롯한 갖가지 수산물이 배로 올라왔다. 그곳으로부터 강폭이 현저하게 좁아지는 임진강과 한탄강 상류로는 바다에서 오는 배와는 달리 폭이 좁고 뾰족하게 생긴 배들이 수산물을 싣고 강을 따라 내륙 마을로 흩어졌다. 

물류의 유통이 많은 만큼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돈이 흘러 다녔다. 그러니 임진강 수신(水神)을 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루터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십시일반 돈을 추렴해서 굿을 벌였는데 아주 성대했다. 개성권번에서 기생들과 무동을 불러와서 사흘 동안 굿을 놀 정도였다. 1990년대 후반 그곳을 조사할 때만 하더라도 당시 개성권번의 기생으로 고랑포 고창굿에 참가했던 이가 문산읍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노쇠했던 터여서 지금은 살아계시지 않다. 또 고창굿의 현장 모습을 상세하게 구술해주던 권응찬옹은 젊은 시절 장남면 면서기를 했던 터여서 굿을 치르기 위해 들어갔던 비용과 과정까지 상세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술 당시 이미 80대 중반이었으니 그도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굿이 벌어지는 날이면 고랑포와 가까운 개성이나 파주 그리고 연천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는 큰 잔치였다고 했다. 이윽고 굿이 절정에 달하면 무당들이 배를 타고 강 가운데로 나가서 주무(主巫)가 강에 세 차례 뛰어들었다가 나오며 수신을 달랬다고 했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축제가 벌어졌던 마을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축성 양식이 동시에 보이는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능이 있다. 그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왕릉이나 성에 올랐다가 돌아가는 것이 전부일 뿐 그 누구도 고랑포에서 고창굿이 벌어졌거나 텅 빈 길 양쪽으로 상가들이 즐비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간다. 

지금까지 말한 지역은 민통선을 포함한 접경지대와 비무장지대 전체에 있어서 작은 점과 같은 곳이다. 바다와 깊은 산속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들이 남겨 놓은 것들은 또 어느 정도일까. 강화군 양사면 철산리에서는 전쟁 전에 배를 타고 한강 하구인 조강을 건너 북쪽 강안으로 가서 약수를 길어 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마파람이 불기 시작하면 포대에 주워 담다시피 하던 장어잡이는 철조망이 쳐지고 난 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무장지대 일대는 한순간에 문화의 단절이 강제되었던 곳이다. 

그런데 말이다. 비무장지대는 떠나 올 때 이미 다시 돌아가기로 한 약속의 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곳에는 사람이 살았고 마을이 있었으며 그 마을마다 일구어 놓은 세시풍속과 문화의 흔적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이 나무와 풀이 웃자라고 사람의 공격을 피해 동물들이 숨어들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런 현재가 귀중하지 않다거나 쫓아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에 대한 관심을 그동안 귀에 닳도록 들은 생태계 보존만큼 기울였는지는 의문이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 또한 생태계 보존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다. 

글머리에 말한 포럼이 있던 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공지가 하나 떴다. ‘숨은 무형유산을 찾습니다. 대국민 제안 공모’라고 말이다. 제안한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비무장지대의 무형유산을 조사하자고 말이다. 온전히 사람이 지닌 무형유산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서둘러 전쟁 전 지금의 비무장지대와 그 인근에 살았던 이들을 찾아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생활의 흔적을 기록해야 한다. 이제 그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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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대체매립지 조성’ 문제가 시급한 사안으로 대두됐다. 수도권매립지는 서울의 난지도 매립장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대체매립지로 김포군 검단면 일원(현 인천시 서구)에 조성됐으며, 서울시·인천시·경기도가 1992년부터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광역매립장이다.

당초 수도권매립지는 전체 1685만㎡의 부지에 4개의 매립장(제1·2·3·4 매립장)을 만들어 2016년까지 폐기물 매립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쓰레기종량제 도입과 폐기물 재활용 증가로 매립량이 줄면서 2010년경 부지의 52.4%만이 매립됐다. 이에 따라 수도권매립지공사는 매립기간을 연장하려 했다. 하지만 공유수면 매립면허 관청인 인천시는 계획대로 ‘2016년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발표했고, 폐기물 대란 위기가 시작됐다. 이후 수년간의 갈등 끝에 2015년 6월 환경부와 서울시·경기도가 인천시에 경제적 지원을 한다는 조건으로 매립기간을 연장하는 4자 합의를 체결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4자 합의는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인천시에 대한 경제적 지원으로 제1·2 매립장 매립면허권과 아라뱃길 등 부지 매각대금 인천시 양도, 반입수수료 50% 가산 징수 및 인천시 지원, 매립지 주변 지역 개발 및 경제 활성화 협력 등이다. 두 번째는 수도권매립지 연장 사용과 관련된 부분으로 잔여 매립부지(제3·4 매립장) 중 3-1매립장(103만㎡)을 사용하고 3개 시·도는 대체매립지 확보추진단을 구성해 대체매립지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합의사항 중 인천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현재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대체매립지 조성이다. 현재 3개 시·도는 2016년 대체매립지 확보추진단을 구성하고 연구용역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속도를 내야 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립을 시작해 향후 7년간 사용할 예정이던 수도권매립지 3-1매립장으로 들어오는 쓰레기양이 예상보다 많아 조기에 포화상태에 이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 우려되는 일은 대체매립지 조성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다. 다들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어디엔가는 설치해야 하는 시설임은 안다. 하지만 내 삶의 터전 인근에 설치되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주민 설득에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비선호시설로 꼽히는 환경기초시설은 단순한 보상만으로는 설치하기가 어렵다. 쓰레기 문제로 골치를 앓던 싱가포르 정부가 해양 매립지를 조성해 세계적 관광명소와 환경교육의 장으로 변신시킨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본섬과 30㎞ 떨어진 세마카우섬에 쓰레기매립지를 조성한 싱가포르는 원주민을 본섬으로 이주시키고도 해양오염을 우려한 환경단체가 거세게 반발하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섬 주변의 맹그로브나무 40만그루를 옮겼다가 매립지가 완공되고 난 뒤 다시 옮겨 심을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폐기물 문제에 관한 한 지자체가 중앙정부만 바라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폐기물 처리는 본질적으로 주민 복지 증진에 관한 업무이며, 지방자치법상으로도 자치업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체매립지 문제도 당사자인 3개 시·도가 머리를 맞대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싱가포르 사례처럼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환경부 등 중앙정부도 지자체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3개 시·도의 지자체장들은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눈치만 보며 시간만 흘려보냈다가는 ‘폐기물 대란’으로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소라 |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생활환경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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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문체부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의 차관 4인과 국가인권위원회의 차관급 상임위원이 참여한, 그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혁신 의지가 강력하게 실린 위원회다. 여기에 선수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스포츠와 인권 관련 학자와 활동가 등 15인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출범 초기에는 ‘스포츠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는 식의 형편없는 마타도어까지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비방은 그 방향이 옳다는 증거라는 니체의 믿음 아래 혁신위는 곧 한국 스포츠의 아름다운 대전환을 위한 각종 권고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배구 대표 선수로 탈아시아급 ‘거포’로 활약한 후 학자의 길로 들어서서 오랫동안 무명의 여성 선수들을 따스하게 감싸며 길러낸 김화복,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은하계 최고의 선수들과 용쟁호투를 겨룬 후 유소년 축구의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 이영표, 동계올림픽 모굴스키의 선구자로 선수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 누구보다 분노하고 또한 그 개선을 위해 헌신하는 서정화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여기에 프로선수 출신이자 뛰어난 분석과 해설로 잘 알려진, 그러나 실은 ‘공부하는 학생 선수’라는 선진적인 유소년 성장 모델을 일찌감치 실천해온 이용수, 또한 그같은 혁신에 반드시 필요한 이론과 정책을 20년 이상 연구해온 이용식, 류태호, 이대택 등의 참여는, 혁신위가 한국 스포츠의 안과 밖, 그 이론과 현장, 그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조망하는, 가히 현미경과 망원경을 동시에 갖춘 곳임을 확증한다. 

여기에 스포츠를 인권과 문화의 관점에서 꾸준히 살펴온 전문가 서너 명이 결합했다. 이 또한 오늘날의 스포츠가 지닌 사회적 복합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할 때 필수적이다. 더구나 이 혁신위가 ‘조재범 코치의 성폭력’이라는, 결코 ‘개인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십년 누적된 폭력 구조의 치명적인 병폐에 의해 출범한 것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당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두 달 남짓 활동하는 동안 혁신위의 출범 근거와 그 타당성은 ‘불행하게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폭력 및 성폭력으로 집약되는 스포츠계의 구조적 모순은 흡사 자욱하게 드리워진 미세먼지처럼 복합적인 것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에 대한 혁신은 스포츠계 전체를 관류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대한체육회가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여 체육시스템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으로도 확인된다. 대한체육회가 진천선수촌의 안전시설 확충, 훈련관리지침 개선 등의 노력을 하고 있으니 그것이 곧 현실화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국가 차원에서 과감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하다. 국가는 수십년 누적된 국가주의와 승리지상주의를 스스로 개선하지 못하였고 그로 인하여 온갖 부정비리와 끔찍한 인권 유린이 반복되어 왔다. 국가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때로는 산하기관의 문제인 것처럼 슬쩍 외면해 온 스포츠의 제도, 여건,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 기재부, 교육부, 여가부 등의 차관이 혁신위에 참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체육회도 할 수 있는 일인데 국가가 개입하고 나서는 게 결코 아니다. 대한체육회가 할 일이 있고 국가가 할 일이 있다. 현장의 낙후한 시설과 환경은 대한체육회가 개선하면 된다. 국가는 그보다 더 총체적이며 장기적인 스포츠 정책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국민의 삶과 관련된 모든 정책 진단과 전환은 국가의 의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항간의 ‘이기흥 체제 흔들기’나 ‘엘리트 체육 죽이기’ 같은 말은 듣자마자 귀를 씻을 정도로 대응할 가치조차 없는 악독한 요설이다. 생각해 보라. 국가가 왜 그런 일을 도모할 것이며 더욱이 민간위원들이 왜 그런 험악하면서도 한 줌의 가치도 없는 일을 위해 사생활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주말도 없이 활동하겠는가. 

혁신위의 목표는 국가에 국가의 의무를 준엄하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누구나 스포츠를 즐겁게 접하여 평생 신체적 즐거움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할 것, 그중 뛰어난 아이들은 인권과 문화와 학습의 결핍이 없는 조건에서 과학적인 시스템과 상호존중의 문화로 길러낼 것, 열심히 훈련하는 바람에 땀방울은 흘릴지언정 뿌리 깊은 폭력의 구조에 의하여 피눈물은 흘리지 않도록 할 것, 수많은 지도자들의 노동이 제대로 평가되고 그 처우가 개선되어 스포츠 전문가가 이 사회에서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할 것.

이를 소홀히 하여 숱한 병폐와 비리와 폭력이 발생하였으니 국가 차원에서 스포츠계 전반의 구조적 모순과 비리를 통렬하게 재점검하고 장차 ‘스포츠를 통하여’ 한국 사회를 문화적, 사회적, 인간적으로 선진화시켜야 한다. 혁신위는 그런 이유로 출범한 것이다. 

스포츠는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아름다운 분야이고 그 지도자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최고 전문가들이다. 이 순간 스포츠는 ‘도구’가 아니라 ‘가치’로 발전하며, 이럴 때 선수와 지도자들은 오랜 편견에서 벗어나 진실로 아름다운 사회적 존중까지 받게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 스포츠계에서 권위와 명망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들은 기꺼이 동의하고 동참해야 한다. 이를 그 무슨 ‘흔들기’나 ‘죽이기’ 같은 고약한 말로 왜곡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의 피눈물 위에 앉아서 오랜 구습이 던져준 서푼어치 추악한 권위에 젖어 스스로 혁신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격이니, 그 무엇보다 새로운 스포츠 환경과 더 나은 삶의 안정을 바라는 모든 스포츠인으로부터 반드시 외면받게 될 것이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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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저)를 읽었다. 그저 직장 생활에서 오는 우울감을 달래볼까 싶어 집었는데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어 푹 빠져 읽었다. 뉴스를 채우는 수많은 갈등은 멀리서 보면 시대정신이라는 전선을 형성한다. 그런데 요즘 여러 사건들이 어지럽게 벌어져도 그것을 관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 전선에 ‘직장 민주주의’란 이름을 붙이니 많은 것이 선명해졌다.

촛불로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정치적으로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보여준 시민들이지만 직장 문만 열고 들어가면 봉건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IT업체 직원은 사장에게 두들겨 맞아도 참아야 했고 간호사들은 기강이라는 이름 아래서 태움을 당해야 했다. 어떤 승무원은 오너의 딸이 문제 삼은 땅콩 때문에 울분을 삼키며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고, 다른 항공사에선 회장님 앞에서 ‘재롱 잔치’가 벌어졌다. 매장에선 손님이 갑질하며 무릎을 꿇게 해도 직원은 그 수모를 견뎌야 했다.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그렇게 만들었다. 현직 검사는 성추행을 당해 항의한 뒤에는 좌천당해야 했다. 방송사에선 얼마 전까지 장시간 노동이 사명감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어 왔다. 함께 일했던 어느 작가는 전에 MC 한 명이 자장라면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녹화 때마다 대기실 앞에서 부르스타에 불을 올려야 했다며 씁쓸해했다. 어느 대학 조교는 여전히 담배 심부름을 하고 있고 교수 자제분이 결혼하면 청첩장을 접어야 한다.

어느 특이한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라 말하기 어렵다. 여전히 육아휴직을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엄마들, 노래방에 끌려가서 몇 시간씩 노래를 불러내야 하는 사람들, 퇴근 시간이 오면 존재하지 않는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헛되이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나아가 불법이 강요되어도 해야 하거나 모른 척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게 벌어진다. 직장은 가정과 더불어 민주주의가 닿지 않는 ‘가까이 있는 변방’이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잃었다. 국민연금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조씨 일가의 추락이 거의 ‘괘씸죄’ 때문이었다는 것에도 방점을 찍을 만하다. 횡령 등 각종 범죄에도 경영권을 지켜 온 다른 그룹 오너들과 비교했을 때 대한항공 오너 일가가 벌인 일련의 사건들은 한편으로 사소해 보이지만 직장인들이 폭넓게 느끼는 공분 포인트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폭발력이 컸다. 조 회장의 대표이사직 상실은 직장 민주주의 결여가 회사 경쟁력 부족의 원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직장 민주주의는 시기상조이거나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어차피 남의 돈 먹는 건데 말 안 들으면 어쩌자는 거냐는 생각도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고, 존망을 두고 일사불란해야 하는 조직이 민주적이면 일이 되겠냐는 생각도 흔했다. 하지만 조직의 비민주성이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슬슬 체감하기 시작했다. 또 젊은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하는 데 ‘직장 내 분위기’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급여가 적더라도 ‘좋은’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선진적인 기업들이 앞장서서 직장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곳에 인재들이 몰릴 거다. 우석훈 선생의 말처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지만 절에는 땡중만 남는다. 미투 운동을 꽤 많은 젊은 남성들이 지지하고 있다. 그건 권력으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다는 동질감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미시 파시즘과의 대결이라고 말할 때 가장 선명하게 이해된다.

국가의 민주화는 시민들이 다른 국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딜 수 있지만 기업의 민주화는 노동자가 직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더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인력이 넘치고 자리가 부족한 시대라 해도 말이다. 다만 직장 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믿음을 우리가 얼마나 가질 수 있고 요구하느냐에 따라 속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남모를 우울감이 거대한 우울감의 한 조각이었다는 기분이 들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리고 연결된 어딘가엔 일 때문에 사람이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있으니 우리의 감수성을 이 연대에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김신완 MBC PD·<아빠가되는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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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 민철(가명)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욕설까지 섞어서 하는 틱 장애가 심해 학교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여러 해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고 있지만 차도가 없고, 집에 있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대안학교도 몇 군데 면접을 봤으나 잘 안되었다고. 아이 교육 문제부터 주거, 병원 치료까지…. 울먹이며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한 시간가량의 전화 통화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한번 만나자 했더니 멀리서 민철이를 데리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긴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를 보낼 만한 학교가 있을지 묻는 엄마에게 나는 한 농촌마을을 권했다. 사실 아이보다 엄마를 생각해서 한 권유였다. 엄마의 저 다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풀리고 여유를 찾아야, 아이의 어려움도 좀 나아질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머물 곳이 있고, 부모 말고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해줄 이웃들이 있는 느슨한 공동체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내 얘기를 들은 바로 그다음 날부터 무작정 그 마을을 찾아가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이 지인들을 통해 전해졌다. 얼마 후 민철 엄마는 긴 문자를 보내왔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이상하게 이곳에선 그냥 살아질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숨통이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 거 같다’는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이는 그대로지만 달라진 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 그로 인해 민철 엄마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는 거다. 아이와 엄마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학교’가 아니라 ‘알로마더’였다. C J 슈나이더가 쓴 <엄마는 누가 돌보지?>에서는 엄마 외에도 아이의 양육에 중요한 역할을 나누어 하는 할머니, 고모, 이모, 언니, 삼촌 등 알로마더(allomother), 알로페어런츠(alloparent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교사’, ‘부모’라는 이름을 달지 않더라도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돕고자 하는 ‘확대가족’의 마음가짐이 인류를 진화시켜왔다. 

학기 초를 맞아 또다시 돌봄 전쟁이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올해 돌봄의 틈새를 메우는 우리동네키움센터를 94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 교육혁신지구 정책도 가정과 학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교육과 돌봄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사회적 제도’ 이전의 유대감과 연결감이 필요하다. 민철 엄마에게서 보듯, 전문적인 ‘상담가’보다 진심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웃’이 심리적으로 더 빠른 치료를 가져올 수도 있다. 

지난주, 공간민들레 청소년 열두 명이 입학식을 했다. 그들은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들의 고민과 계획을 들려주었다. 부모, 교사, 강사, 그들을 응원하는 어른들이 모여 한 명 한 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질문하고, 조언하고, 공감했다. 입학식은 세 시간 반을 훌쩍 넘겨 끝이 났다.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해 내 역할을 가늠해보았다. 손 내밀 때 언제든 잡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들의 성장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응원하는 ‘알로마더’로서의 역할로 충분하지 싶다. 어쩌면 그것이 교육과 돌봄을 회복하는 ‘교육적 사회 만들기’의 시작이기도 할 것이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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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5일이 청명(淸明)이고 6일은 한식(寒食)입니다. 청명은 양력인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로 대략 양력 4월5일 무렵에 옵니다. 그리고 한식은 음력 날수로 꼽지만 스물두 번째 절기이자 양력인 동지(12월22~23일)로부터 105번째 날로 정한지라 양력인 청명과 늘 하루 차이 아니면 같은 날에 오게 됩니다. 그래서 나온 속담이 ‘한식에 죽나 청명에 죽나’입니다. ‘업어치나 메치나’와 같은 속담이죠. 

조선 중기까지는 한식 날짜가 청명보다 앞에 왔습니다. 그러다 17세기에 더욱 정확한 역법을 새로 만들면서 청명 날짜가 한식 앞에 오게 됩니다(그러니 이 속담은 조선 후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역법이든 신역법이든, 하루 먼저 죽든 하루 더 오래 살든 그게 그거란 말입니다.

흔히 네오내오없다고 할 때 피차일반이라는 말을 씁니다. ‘일반(一般)’은 하나의 경계, 같고 뻔한 바운더리(boundary)라는 뜻입니다. 내가 잘났니 너는 못났니 해봐야 나나 너나 거기서 거기죠. 돈 좀 있고, 아파트 평수 더 넓고, 사짜돌림이면 으레 자기들끼리 모이게 마련입니다. 그런다고 누가 뭐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 아닌 데서도 잘난 양 목 뻣뻣하고 눈 게슴츠레 내려다보면 상것도 그런 상것이 없지요.

언론에 많이 알려진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휴거(携擧·예수 재림 때, 구원받을 이를 하늘로 올리다)와 우연찮게도 동음이의네요. 굳이 ‘휴’로 시작되는 아파트 브랜드로 말 만들어 영역 구분한 그게, 과연 아이들이었을까요? 어차피 같은 학교 보내는 처지이고, 아파트 시세 따라 울고 웃는 고만고만한 바운더리입니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어렵듯 고작 집 한 채 가지고 무게 잡는다면, 청명에 죽든 한식에 죽든 똥집 무거워 어떤 휴거인들 죽어도 못 들어갈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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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한 통 썼다. 편지의 형식을 빌린 인터뷰 요청글이었다. 한번은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보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마음을 먹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연락처를 알아내고도 하루를 꼬박 망설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인터뷰를 청하는 이유를 적은 뒤 최근에 쓴 몇 건의 인터뷰 기사를 덧붙였다. 일로 쓰는 모든 글이 다 어렵지만 이 글이 근래에 쓴 어떤 글보다도 쓰기 힘들었다. 읽고 또 읽으며 몇 글자를 붙였다 뗐다 한 끝에 전송을 눌렀다. 편지를 보낸 지 11시간쯤 지나서 답을 받았다. 편지의 수신인은 세월호 사건 희생자의 유가족이다.

‘비겁하다’는 말이 제일 두렵다. 그건 내가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는 정면승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힘들고 어렵고 골치아픈 일은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다. 꼭 해야 할 말, 꼭 해야 할 일도 빙빙 돌리고 미루다가 타인에게 더 상처를 주고 폐를 끼치는 일도 많았다. 가끔 강심장 같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중요한 거의 모든 순간에 실은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나의 ‘비겁의 역사’는 길고도 길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태도였다. 2014년 4월 이후 몇 달간은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세월호 사건을 취재했다. 매일 화가 나 있었고 기사를 써도 써도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맡았던 취재가 끝난 뒤에는 의식적으로 세월호 사건을 피해 도망다녔다. 저 엄청난 분노와 슬픔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했다. 세월호 관련 기록을 정리한 여러 권의 책들도 쌓아만 두고 한 장도 읽지 않았다.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앞을 여러 번 지났지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팽목분향소 앞 자갈밭에 놓여 있는 노란 조약돌. 색이 바래고 글씨가 희미해져 가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도망다닌 5년 동안 세월호 사건에서 조금도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좋아하는 책과 영화와 노래의 모든 슬픈 서사가 창작자의 의도와는 달리 세월호의 이야기로 읽혔다. 책을 읽다 말고 영화를 보다 말고 노래를 듣다 말고 우는 것도 아닌, 울지 않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몇 번을 멍하니 있었다. 누군가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을 쓰면 명치 끝이 아팠다. 2016년 늦가을, 청와대로 가는 길목에서 촛불시민들 사이로 세월호 유가족들이 탄 차가 들어섰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길을 열라고 외쳤지만, 노란 리본을 단 그 차를 본 순간 내 목소리는 꽉 막혀버렸다.

2019년 4월, 지금 책상에는 세월호 관련 책과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인터뷰를 청한 기자가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기꺼이 자신의 아픔을 들려주기로 결심한 분을 만나기 위해, 그동안 외면하려 애썼던 깊고 어두운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작가들의 글을 모은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신형철씨는 2014년 이렇게 썼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그는 지난해 펴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서문에선 이렇게 썼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걸 본 이후 한동안 나는 뉴스를 보며 자주 울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괴로워 피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눈물도 멈췄다. (중략) 이런 일들을 겪고 나는 무참해져서 이제부터 내 알량한 문학공부는 슬픔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을 말하는 것은 두렵고 아프다.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어쩌면 100년 뒤에도 이 사건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준비한다. ‘쫄보’가 될지언정 더 이상 비겁하게 살지 말자는 마음으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며. 모두가 침몰한 그 시간으로 다시 돌아간다.

<장은교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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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진 사람들이 모여 살 것 같은 산청(山淸)의 웅석봉 오르는 길이다. 초입에서부터 경사가 심했다. 지리산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지만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고향 거창이 지척이다. 지리산에 더해 어머니 생각이 났다.

ⓒ이해복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곳의 공통점은 산비탈에 자리한 마을이라고 한다. 경사로 인한 긴장감이 항상 몸에 전달되기에 그런 것인가 보다. 나보다 키 큰 나무들, 오래 사는 나무들. 저들도 모두 저 험준한 비탈에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런 싱거운 생각을 해보는 것도 순간이다. 잠깐 치고 올랐는데 오늘 보려고 작정했던 나무의 군락이 일순 눈에 들어차기 때문이다. 외국어처럼 사뭇 생경한 이름이지만 한국 특산의 히어리다. 꽃이 조롱조롱 달려서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새가 날렵하다. 얼핏 보면 먹음직스러운 꽈배기 같더니 가까이에서 보면 눈이 뚜렷한 누에 같기도 하다. 오늘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웅석봉 한 능선에는 노란 히어리가 붉은 진달래와 한껏 어우러졌다. 바람이라도 불어 출렁출렁 흔들릴 땐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꽃상여(喪輿)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

그리고 그 바닥에는 얼레지가 한창이다. 몇 해를 기다렸다가 나오는 두 잎, 하나만 달랑 올라오는 대궁과 그 끝에 오로지 하나만의 꽃이다. 얼레지는 한 골짜기를 온통 저들의 세상으로 물들이고 있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잎이지만 약간의 독성이 있다. 입 있는 것들이 함부로 먹었다가 큰코다치는 잎이다. 

처음 보는 얼레지는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을 설레게 하는 얼레지. 새침하게 토라져 입을 닫은 얼레지도 있고, 쪽진 머리처럼 한껏 뽐을 내는 얼레지도 있다. 민감하기는 이를 데 없어 두툼한 햇빛이 아니라면 함부로 꽃잎을 열지 않는 얼레지.

노랗고 붉은 공중과 보랏빛 골짜기. 그 단정한 빛깔을 어루만지며 바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바람 불 때마다 산 하나를 떠메고 가려는 듯 일제히 나부끼는 얼레지. 이번 바람은 내 오른쪽 뺨을 때리는가. 어머니 생각이 더욱 진하게 났다. 얼레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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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창원성산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가 지난달 30일 경남FC 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에서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당과 기호 2번, 이름이 표기된 붉은색 점퍼를 입고 구단 측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을 벌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모든 스포츠는 경기장 내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스포츠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성별, 인종, 종교, 출생지, 학교, 직업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 프로축구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도중 정당 대표와 후보 일행이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선거운동하는 걸 상상이라도 할 수 있나. 더구나 일부 유세원들은 “입장권 없이는 못 들어간다”고 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갔다고 한다. 선거사에 남을 안하무인격 행태요, 전형적인 정치갑질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창원성산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기윤 후보가 지난 30일 경남FC와 대구FC의 2019 하나원큐 K리그1 4라운드 경기가 열린 창원축구센터 안에 들어와 관중석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이날 경기장에는 최근 침체된 분위기에서 반등하고 있는 경남FC를 응원하기 위해 개막전 때보다 더 많은 유료관중(6173명)이 입장했다. 이런 인파를 예상했기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다른 당 지도부와 후보들도 대거 창원축구센터를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경기장 밖에서만 유세 활동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반면, 황 대표 일행은 경기장 안에서 손가락으로 기호 2번을 뜻하는 ‘V’ 표시를 하는 등 노골적으로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이들은 구단 제지를 받자 점퍼를 갈아입고 선거운동을 계속했다니 애초부터 이들에겐 선거법이고, 경기장 금지 규정이고 안중에도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당은 이런 경기장 유세 장면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버젓이 홍보까지 했다.

경기장 선거 유세 때문에 홈팀인 경남FC는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잘못은 한국당이 했는데 벌은 구단이 받는 꼴이다. 그런 경남 구단은 “이번 사태를 적극 제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파문이 일자 “선거운동 과정에서 규정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앞으로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했다. 피해자는 고개를 숙이고, 가해자는 여전히 당당하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황 대표의 ‘법치 무시’는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니 정치가 손가락질을 받고 욕을 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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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저항하지 않았습니까?” “왜 당신은 기차에 탔습니까?” “1만5000명의 사람이 거기 있었고 수백 명의 간수들만 있는데 왜 당신은 폭동을 일으키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았습니까?”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제 발로 처형장까지 걸어가 자신의 무덤을 파고, 옷을 벗어 가지런히 쌓아놓고, 총살당하기 위해 나란히 눕게 한 이들에게 저항하지 않은(또는 못한) 유대인의 비극적 죽음에 대해, 그들의 복종과 순응을 따져 묻는 검사의 질문을 소개하고 있다. 아렌트는 그 이유에 대해 직접 말하는 대신 부헨발트에 수용되었던 다비드 루세의 말을 인용한다.

“고문당한 희생자들이 저항 없이 스스로 교수대에 목을 매고,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더 이상 긍정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포기하도록 요구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그저 일어난 것은 아니다. 아무런 까닭 없이, 단순한 가학성 때문에 비밀경찰 요원들이 유대인의 패배를 요구한 것은 아니다. 교수대로 올라가기 전에 희생자를 이미 파괴하는 데 성공한 체제가 … 한 민족을 노예 상태로 만드는, 다른 것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상의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안다. 복종하는 가운데, 바보처럼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 인간의 행진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없다.”

나치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 중엔 그 시절엔 자전거에 자물쇠를 안 채우고 문 앞에 세워둘 수 있었고, 장발과 싸움패는 제국노동봉사단에 끌려갔다는 걸 나치의 업적으로 기억하곤 한다. 파시즘이 지배하던 이탈리아를 살았던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고백한다. 그 시절엔 기차가 시간표대로 제 시간에 운행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질서와 규율이 지켜지던 세상이었지만, 유대인은 보호받지 못했다. 거리에서 유대인 여성이나 노인이 돌격대원에게 폭행을 당해도, 유대인이 운영하는 상점 유리창이 박살나거나 방화를 해도 지켜보던 시민들이 함께 항의하거나, 경찰이 다가와서 도와주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공권력이 가해자와 공범일 때, 가해자들은 그런 일을 저질러도 아무도 처벌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피해자들은 아무리 피해를 당해도 사회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어 무기력해졌다.

최근 들어 나는 몇 가지 사건에 주목하고 있다. 교과서와 참고서 발행으로 오랫동안 부와 명성을 쌓은 한 출판사에서 전직 대통령을 조롱하는 사진을 공무원 수험용 일반 교재에 수록했다. 신출내기 편집자의 실수라고 한다. 모 종편 방송국에서 김학의·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여론조사 결과를 다루면서 공수처 설립 찬성 의견이 82.9%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여주는 그래프에서는 반대 12.6%와 모름/무응답 4.5%와 거의 비슷하게 표시하여 방송했다. 아마도 그 방송국은 이것 역시 실수라고 해명할 것이다. 방송에서 자료 화면이나 이미지에 ‘일베’ 같은 특정 사이트의 왜곡 이미지를 사용해 물의를 빚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이와 관련한 재발 방지 약속은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한 사람이 10여년 전에 벌어진 억울한 죽음에 대해 홀로 증언하고 있다.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이 10여차례 이상 출두해 직접 조사를 받았지만, 정작 이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받고 있는 남성 중 일부는 조사받기 위해 출두조차 한 적이 없거나 호텔에서 30분 정도의 약식 조사에 그쳤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고용한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자살 당할까’ 두려워 병원에서 자살 위험도 검사까지 받아 공개했다. 경찰이 24시간 경호를 약속했지만, 신변 보호를 위해 경찰에서 지급한 위치추적 장치 겸 비상호출 스마트 워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기계 고장이거나 실수였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연과 실수가 여러 차례 겹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진실을 알고 있다. 우리가 침묵하는 한, 평범을 가장한 악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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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기자 김의겸은 견결한 진보주의자였다. ‘함께 잘사는 길’을 설득하려 애썼다. 그런 김의겸도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택했다. 14억 재산으로도 안심하지 못했다. 은퇴 이후 인생을 서울 흑석동의 낡은 건물에 걸었다. ‘갓물주(God+건물주)’의 유혹에 ‘대통령의 입’이란 본업을 잊었다. 사퇴는 불가피했다.

한국은 부자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그런데 모두가 전전긍긍이다. 서민층은 물론 김의겸 부부 같은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공개한 ‘2019 세계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민의 평균 행복지수(10점 만점)는 5.895점이다. 조사 대상 156개국 중 54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무엇이 우리를 ‘집단 불행 증후군’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행복지수는 1인당 국내총생산(구매력기준 GDP)과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내 삶을 선택할 자유, 관용, 부정부패 정도 등 6개 지표를 측정해 종합 산출된다. 한국민은 건강 기대수명(9위)과 1인당 GDP(27위), 관용(40위)에선 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사회적 지지(91위), 부정부패(100위), 선택의 자유(144위)에서 하위권에 머물렀다. 사회적 지지가 취약하다는 건, 연대 가능성이 낮아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선택의 자유가 좁다는 건, 개개인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의미다. 부정부패는 반칙과 불공정이 판치는 시스템을 드러낸다.

행복지수는 유의미하다.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각자도생은 백전백패임을 일러준다. 중산층이 불안과 질투를 동력삼아 피라미드를 한 층 두 층 오르는 동안 서민층은 바닥에서 신음해야 한다. 중산층이라고 꼭대기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압도적 자원을 보유한 ‘1%’는 이미 꼭대기를 차지한 채 ‘전지적 시점’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서로 치고받고 상처 주며 피라미드를 기어오르는 ‘각자도생의 무한 루프’는 끊어야 한다. 피라미드를 깨부수고 항아리 구조로 바꿔야 한다. 개개인이 할 수 없다. 정치의 몫이다.

구조를 바꾸려면? 담대한 상상력과 강한 추진력이 필수다. 미국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상상력의 모범사례다. 29세로 역대 최연소 의원인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그린 뉴딜’로 워싱턴의 정치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그린 뉴딜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없애고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통해 소득불균형까지 완화하자는 야심찬 계획이다.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시기라며 지지하는 이들이 많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타임지 인터뷰에서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고 말했다. 추진력의 모범은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에게서 찾고 싶다. 아던 총리는 크라이스트처치 테러가 발생한 지 72시간 만에 내각 차원의 총기규제 강화 방침을 이끌어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재개발 지역 내 25억여원대 복합건물 매입 논란에 휩싸인 지 하루 만인 29일 전격 사퇴했다. 연합뉴스

미 상원이 그린 뉴딜 결의안을 논의할 무렵, 한국 국회의 기획재정위원회에선 종교인의 퇴직소득세를 깎아주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혜택은 대부분 초대형 교회 목사들에게 돌아간다. 한국 정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문재인 정부가 다음달 10일 출범 2년을 맞는다. 향후 3년간 이룰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의 적폐가 깊고 넓음도 안다. 그럼에도 ‘각자도생’이라는 대세를 ‘공존공생’ 쪽으로 방향타만 돌려놓을 수 있다면 문재인 정부는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라 믿는다. 초등학생부터 청와대 대변인까지 건물주를 꿈꾸는 나라는 희망이 없다. 보유세를 강화하고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 부동산 불패 신화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동체의 ‘신뢰 인프라’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과감한 증세가 절실하고, 필요하다면 사회보험료 인상도 논의해야 한다. 각자도생을 방치하는 건 정치의 직무유기다.

두 달 전 왼쪽 손목을 접질렸다. 정형외과에선 1~2주 물리치료 받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 손목 보호대를 차고, 물리치료도 꼬박꼬박 다녔다. 3주가 지나도 통증은 여전했다. 의사는 비급여 진료인 체외충격파 시술을 권했다. 효과는 좋은데 비싸다며 실손보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평소 건강보험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온 나는 실손보험에 들지 않았다. 1회 7만원씩 내고, 네 번 시술받았다. 손목 상태는 상당히 나아졌다.

이제라도 실손보험에 들어야 할까? 버티고 싶다. 건강보험료를 더 내고, 당당하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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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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