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맘때 서울 사대문 안에서 분신 사망사건이 발생했다. 이제는 경희궁자이아파트가 들어선 돈의문 재개발지역에서다. 일식집을 하던 고모씨(당시 67세)는 2016년 4월12일 15년 된 자신의 식당이 강제철거되는 현장에서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그의 가게가 있던 새문안의 ‘맛집 골목’엔 조선시대 골목의 흔적과 1920년대 한옥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2003년 뉴타운 지역에 편입되면서 전부 헐려 근린공원이 될 운명이었는데,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인 2015년 서울시가 용도를 문화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토지와 건물을 재개발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받기로 하고 ‘돈의문박물관마을’ 조성을 추진해 2017년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근린공원이 되면 종로구로 넘어가게 돼 있던 토지 소유권을 놓고 시와 구가 협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예술가들에게 기획전시 공간으로 내줬지만 관람객이 오지 않아 ‘유령마을’이란 오명까지 얻었다. 결국 시는 땅 문제는 해결이 안된 채로 지난해 10월 민간에 긴급 용역을 내서 운영주체를 뽑았다.

서울시는 서울 종로구 경희궁 옆 골목 안쪽에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새롭게 꾸며 3일 공개했다. 최미랑 기자  

“전면 철거하는 재개발을 반성하고 재생의 관점에서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문화마을로 만들고자 했다.” 3일 서울시가 새로 단장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공개하며 밝힌 취지다.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를 콘셉트로 잡았다. 

건물들을 신축·리모델링하는 데는 총 300억원이 들었고 운영엔 연간 25억원이 든다. 사라질 뻔한 공간을 지켜낸 만큼 어떻게 다시 꾸몄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날 공개된 마을을 둘러보니 내용이 참담했다. 보존한 건물 40채 중 16채를 ‘마을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그중 ‘생활사전시관’에는 연탄과 비누, 빨래판과 아궁이 같은 것들을 모아뒀다. 사진관, 이발소, 오락실, 만화방, 구락부(클럽)도 엉성하게 재현했다. ‘새문안극장’에서는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이 상영됐다. 1970년대 교복을 입은 도슨트(관람객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가 “추억의 감성을 느껴보시라”고 강조하는 동안 골목길에선 1990년대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또 한옥을 살려 만든 ‘체험전시관’에선 닥종이·자수·한지공예 등 체험수업을 한다. ‘아날로그 감성’을 억지로 짜내는 듯한 공간과 프로그램들이었다. ‘인위적인 테마파크 이상의 의미가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담당 공무원은 “건물들이 남아있는 것 자체로 시민들에게 의미가 클 것”이라고 답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 ‘마을전시관’에 새롭게 꾸며진 ‘새문안만화방’(왼쪽)과 ‘돈의문콤퓨타게임장’. 서울시는 “스마트폰 터치가 아닌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고, 웹툰 대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아날로그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부모와 아이가 함께 꼭 가봐야 할 장소로 추천한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최미랑 기자

재개발에 밀려난 세입자들에게 시는 2015년 “편의시설을 들이게 되면 특별분양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업종보다는 ‘콘셉트’에 맞는 것을 들일 생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뿔뿔이 흩어져 자리 잡은 상인들이 과연 이곳으로 되돌아올까. 시는 ‘살아있는 참여형 공간’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삶이 밀려난 자리에 중구난방으로 과거의 생활을 박제해 놓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미랑 | 전국사회부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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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국회의원 2곳이지만 정치적 무게가 만만치 않게 부여된 4·3 국회의원 재·보선이 현상 유지로 막을 내렸다. 자유한국당은 전통적 지지기반인 통영·고성에서 낙승을 거뒀고, 더불어민주당과 단일화를 이룬 정의당은 창원성산에서 승리했다. 여야가 공히 당력을 집중했지만 현 의석을 지키는 데 그쳤다. 영남권에 국한된 선거여서 전국적 민심을 엿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에 치러지는 재·보선은 중간평가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는 민심이 어느 쪽으로도 확 기울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황교안 대표가 앞장서 내세운 ‘정권 심판론’도 먹히지 않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 때와 달리 돌아선 민심을 확인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와 함께 통영과 고성 기초단체장을 석권하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불과 1년 만에 반전의 결과지를 받았다.

어느 선거도 민심이 담기지 않은 선거는 없다. 이렇다 할 개혁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물론 경제 침체와 취업난으로 인한 실망이 표심으로 표출된 측면이 있다. 창원성산에서의 박빙 승부가 펼쳐진 것은 한국당이 내세운 ‘정권 심판론’이 일정 부분 먹혀들었다고 보여진다. 선거 기간 동안 불거진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 장관 후보자 2명 낙마 등 인사 실패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진보정치 1번지’에서 가까스로 신승을 거둔 정의당에서 “막판 청와대 때문에 혼났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촛불 정권’을 자임하는 집권여당으로서 지난 2년 동안 시민의 믿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할 때다.

정의당이 1석을 추가하게 되면서 민주평화당과 함께 국회교섭단체 재구성도 가능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민주당과 한국당, 바른미래당의 3축으로 이어져온 국회 운영의 틀이 변화될 상황이다. 4각 교섭단체 구도가 형성되면 선거제 개편 및 개혁입법의 패스트트랙 논의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한국당으로서는 ‘정권 심판론’이 한계가 있음을 실감했을 터이다. 한국당이 변화하고 혁신하지 않으면서 여권의 실정에만 기댄 반사이득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래도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3연속 패배한 수렁에서 벗어날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황교안 대표의 강경 보수 노선이 보수 결집 효과를 봤다는 아전인수의 해석을 바탕으로 대여 공세가 한층 가팔라질 수 있다. 하지만 책임 있는 야당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민심은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당이 전력을 투구한 창원성산에서의 패배가 던지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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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년간 전자 및 정보통신 산업의 눈부신 발전은 현대의 경제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큰 변혁을 가져왔다. 지하철을 타면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보다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지 오래고, 잠들기 직전까지 휴대폰이나 태블릿을 보느라 잠을 설치기도 한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모두 휴대폰 중독 상황이라고 할 만큼 우리는 전자기기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어떻게 통계를 잡느냐에 따라, 조사업체에 따라 추정량이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글로벌 전자폐기물 모니터에 따르면 2016년 한 해 전 세계적으로 나온 전자폐기물은 4470만t에 달한다. 이 중에서 43만5000t은 폐휴대폰이다.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무게가 36만5000t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전자폐기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생산-소비-폐기라는 선형경제의 전형적인 예라고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생산-소비-회수-재활용의 순환경제로 바꿀 수 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폐휴대폰 하나에서 회수할 수 있는 부품과 금속 등의 값어치가 최소 10만원은 넘는다. 금속만 봐도 금, 은, 팔라듐, 니켈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불과 20% 남짓한 폐휴대폰만 수집·재활용되고 있다는 통계는 한정된 자원의 지구에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라 볼 수 없다. 현재 전 세계 1년 휴대폰 판매 대수는 약 15억대이다. 이론적으로 한 해 동안 생산된 휴대폰의 폐기 후 재활용 가치만 150조원이나 된다. 우리나라만 봐도 연간 2000만대 정도의 휴대폰이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만 잘 회수해 재활용해도 연간 2조원 이상의 가치 창출이 가능한 것이다.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전자 제품 및 자동차의 자원순환에 관한 법률도 있고, 전자정보통신 강국답게 재활용률도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재활용을 제대로 하는 것은 단지 자원 순환에서만 좋은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폐전자제품은 인체 유독성 물질을 다수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재활용해 유해물질로 인한 환경 오염을 방지해야 한다.

전자제품이 비싸고 귀했던 옛날에는 마을에 한 대 있는 흑백TV 앞에 온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시청했던 적도 있다. 그 귀한 TV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하는 사람을 불러 부품을 교체하여 고쳐서 사용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고치는 값보다 새로 사는 값이 더 싸다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는 엄청난 양의 전자제품 폐기물 생성과 축적이라는 문제를 가져온다. 지구에는 모든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 자원들로 만든 물건들은 우선 아껴 쓰고 폐기 시에는 회수 및 재활용을 잘해야 한다. 

신기술이 집약된 새 제품을 보면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구형을 가지고 다니면 체면이 안서 신제품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장이 났는데 고칠 수 없거나 고치는 비용보다 새로 사는 것이 비용 최적화를 위해 더 좋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기능이 다수 들어가고 빨라지고 더 멋있는 새로운 휴대폰을 가지고 싶은 욕구를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구형 휴대폰을 버리지 않고도 신형 휴대폰처럼 좋게 할 수는 없을까? 초기의 휴대폰들은 대부분 배터리 분리형이었다. 배터리의 성능이 저하되거나 문제가 생기면 배터리만 새것으로 교체하면 되었다. 지금은 일체형이다 보니 배터리만의 문제인데도 멀쩡한 휴대폰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 

소비자가 원하면 5년 전, 10년 전 판매한 휴대폰이라도 회수하여 부품 교체 등을 통한 기능 및 성능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면 어떨까? 다양한 프로그램의 구동 속도 문제도 클라우드와 연계하여 실제 휴대폰 성능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고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재활용의 경우에도 폐기 시 회수된 휴대폰에서 어떠한 부속과 부품들을 재활용할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고 제조하면 재활용률을 훨씬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두를 가능하게 할 휴대폰 제조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할 경우 오히려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조사가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 제조 및 서비스사의 형태로 변신하면 어떨까? 제품을 판매한 후 지속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비용을 받고 서비스를 해주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면서도 소비자의 기능 및 성능 향상 욕구는 어느 정도 맞춰줄 수 있을 것이다. 매 1~3년마다 바꾸는 휴대폰보다 더 오래 사용하는 세탁기,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들도 마찬가지로 순환경제의 틀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 제조, 소비, 재활용을 해야 한다.

그러면 전자제품들의 순환경제를 위해 어떠한 것들이 고려되어야 할까? 

우선은 디자인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제품의 수리 및 업그레이드가 용이하게 디자인하고 제조해야 한다. 전자제품의 향상된 기능과 성능에 대한 욕구는 나날이 더욱 증대될 것이므로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과 서비스의 향상이 필요하다. 수많은 휴대폰 하나하나의 성능만을 극대화할 것이 아니라 일정 성능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더라도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로 성능과 기능 향상을 선사할 수 있어야겠다. 전 세계적으로 제조사별로 다른 부품들의 표준화를 더욱 강화하여 폐전자기기 부품 등의 재활용률을 높일 필요도 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금속 등의 회수율도 높여야 한다. 서비스가 강조된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도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유경제의 틀에서 전자제품은 회사 소유로 하고 회사는 제품의 질에 대한 책임을 지며, 소비자는 소유하는 대신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 쓰는 모델도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의 지구. 우리뿐 아니라 미래세대도 살아갈 지구의 환경과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며 순환경제 시대로의 빠른 전환을 기대해본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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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건 듯 불어 잠자던 모란대에 나무마다 잎 트고 가지마다 꽃피는 3, 4월 긴 해를 춘흥에 겨워 즐기다가 지친 다리를 대동문 앞 드높은 2층루에 실어놓고 패강(浿江, 대동강) 푸른 물 따라 종일의 피로를 흘려보내며 그득 담은 한 그릇 냉면에 시장을 맞출 때!”

식민지시기의 인기 잡지 ‘별건곤’ 1929년 12월호에 실린 평양냉면 예찬의 한 대목이다. 오늘날의 한국어로 풀어 써도 바로 읽기가 만만찮다. 요컨대 봄바람 살랑 부는 봄은 생명이 움트는 봄의 정취에 취해 대동강 푸른 물 따라 놀기 좋은 때이며 “가득 담은 한 그릇의 냉면”의 제철이라는 소리다. 여기서 평양냉면을 수식하는 한마디는 “사시명물(四時名物)”이다. 곧 봄여름가을겨울의 냉면 맛이 다 따로 있으니, 사계절이 다 이유 있는 냉면의 제철이라는 뜻이다.

냉면은 식민지시기에 이미 사계절의 별미로 대중에게 자리를 잡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의 미식가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품평도 있다. 심노숭의 입에는 메밀국수라면 평안도 것이 최고이고, 그 가운데서도 차게 조리한 국수가 더욱 좋았다. 심노숭이 냉면의 원형에다 지역과 조리법에 미식 담론을 더한 때는 유럽 미식학의 새 장을 연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75~1826)이 프랑스 음식을 열심히 먹고, 먹은 만큼 문자먹방을 하던 때와 겹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니 마침 새봄에 냉면을 들던 눈 파란 사람이 하하 웃는다. 한때 북미, 유럽에서는 젓가락질할 줄 알고, 게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 ‘스시’와 ‘사시미’를 먹을 줄 알면 제법 힙스터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한국에 온 이방인 가운데는 그럴듯한 낯빛으로 “아일럽 냉면!” 하고 말하지 못해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냉면을 해치움으로써 힙스터 단계 승급을 바라는 이도 더러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이 바뀌었다. 몇 해 전만 해도 낯선 음식, 못 먹으면 할 수 없지 하는 분위기가 우세하지 않았나.

잠깐 설명이 필요하다. 음식에서 영어권의 ‘hot’ 그리고 ‘cold’는 뜨거워 입천장 까질 지경이나, 이뿌리 시릴 만큼의 차가움이 아니다. 내가 사는 지역 일상의 상온에 견주어 따듯한 정도, 상온 또는 상온보다 살짝 식은 정도가 각각 그네의 ‘hot’이고 ‘cold’이다. 이 땅에 온 많은 이방인이 극단적으로 뜨겁거나 극단적으로 찬 먹을거리는 별로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설렁탕, 삼계탕, 콩나물국밥 등을 코앞에 두고, 바로는 먹지 못하고 숟가락으로 국탕의 표면을 살살 헤집으며 제발 한 김 빠지기를 기다리는 모습, 막 끓어오른 전골을 접시에 덜고서도 한참 기다리는 모습은 그네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냉면에서도 그랬다. 많은 이방인이 살얼음 엉긴 냉면 대접, 또는 얼음이 풀렸다 해도 표면에 이슬 맺힌 면기를 받고 나면 잠깐 멀뚱멀뚱이었다. 같이 앉은 한국인 흉내를 내 육수를 들이켰다가도 싱긋 웃으며, ‘실례지만, 나는 냉기 더 빠지면 먹을게’ 하는 몸짓과 표정을 보이곤 했다. 그러다 확 달라졌다. 너 냉면이야? 나 미식가에 힙스터야! 아시안 퀴진과 코리안 퀴진 다른 줄 알아. 전에 없던 ‘cold’도 감수하고, 볼 미어터지게 사리도 우겨 넣고, 제법 호쾌하게 면기를 탁자에 탁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지! 하는 이방인들과 더러 냉면을 들게 된다. 여기 이르기까지 억지는 소용이 없었다. 

외국인들아, 제발 한국 음식의 대단함을 좀 알아줘 하는 안달복달은 늘 효과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우리는 외래 음식을 감각하고 소화한다. 뒤집어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런지 안 그런지 이방인 친구를 데리고 새봄에 냉면 나들이 한번 하시라. 중간에 “심노숭이라고 브리야사바랭이랑 동시대인이야.” 한마디 슬쩍 찔러 보시라. 그네도 마찬가지다. 내 눈앞의 음식이 연원 깊다는 사실을 멋쟁이의 문자 속으로 증거하면 어쩐지 더 대단해 보이게 마련이다. 분위기 됐을 때 내놓으면 된다. 먹고 있을 때, 듣고 싶을 때 슬쩍 나를 꺼내 보이기. 광고홍보는 이쯤으로 충분하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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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행사로 한 달 넘는 장기간 여행을 떠나곤 하는데, 계획을 묻는 이들이 종종 있다. 작년부터는 북한이라고 답을 하는데, 기도를 섞어서 하는 소리다.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길 빌어본다. 이민이나 월북은 능력도 없고 간뎅이가 붓지 않아서리. 길거리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맥주 한 잔 마실 수 있다면 지구 어디라도 좋아. 시나 편지를 쓸 수 있는 연필과 종이가 있다면 그 어디나 “가즈아”!

북한에 가려면 먼저 생활 북한어 공부를 해둬야 한다. 최근에 여행가 김준연씨가 펴낸 <북한 여행 회화>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먼저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식당에서부터 챕터 원이 시작된다. 북한에선 오징어를 낙지라 부르고, 낙지를 오징어라 부른다. 그러니까 연포탕을 만약 주문하면 오징어탕이 나오게 되시겠다. 닭알두부(계란찜), 고기떡(소시지), 줴기밥(주먹밥), 고기마룩(고깃국), 썩장(청국장), 보가지국(복어국), 꼬부랑국수(라면), 곽밥(도시락), 김치남비탕(김치찌개), 발쪽(족발), 날맥주(생맥주), 빼주(고량주), 우림술(과일주) 뭐 이런 식이다. 회화 공부를 왜 해야 한다는 말인지 이제 짐작이 조금 가실 게다.


챕터 투는 호텔. 발바리차(택시), 유람뻐스(관광버스), 초대소(고급호텔), 건발기(드라이어), 간데라(촛불), 색텔레비존(컬러 티브이), 얼군제품(냉동식품), 사과단졸임(사과잼), 썩음막이약(방부제), 쫑대바지(레깅스), 보안원(경찰), 끌신(슬리퍼), 쪽머리 아픔(편두통), 머리물 비누(샴푸), 계단 승강기(엘리베이터)…. 이 정도만 외우면 무사히 먹고 자고는 가능하겠다.

거리나무(가로수)와 드림버들(수양버들)이 늘어선 강변에 앉아 있노라면 이런 방송소리가 들린단다. “남존녀비 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조아적 생활양식이 지배하는 남조선 사회에서 녀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하는 코맹맹이소리. 그것마저 영어, 일본어, 한자말이 섞인 온갖 잡탕말….” 이것을 대한민국 표준말이라고 아나운서 리춘희 할머니가 마구마구 뭐라고 까신다나. 흐흐. 맞는 말씀도 있고 아닌 말씀도 있는데, 몸에 좋은 약은 귀에도 쓰고 아프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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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대형마트·백화점·슈퍼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일제히 금지된 이번주, 공교롭게도 두 장의 사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나는 이탈리아 해안에서 발견됐다는 향유고래.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한다는 이 고래의 모습은 처참했다. 지난 주말 이탈리아 해안에서 발견된 8m 길이의 고래 배 속엔 무려 48.5파운드(22㎏)의 쓰레기가 담겨 있었다. 상표 및 바코드가 붙은 세제 용기를 비롯해 접시, 쇼핑백, 낚싯줄 등이 나왔다. 이 암컷 고래는 새끼도 배에 품고 있었다.

또 다른 사진은 최근 국내 한 미술관에 걸린 사진작가 크리스 조던의 ‘앨버트로스’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그가 태평양 ‘미드웨이섬’에서 찍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새’ 앨버트로스는 불행하게도 인간의 탐욕과 대량 소비가 불러온 재앙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어미 새는 독약인 줄도 모른 채 주워온 플라스틱을 아기 새에게 먹이고, 죽은 앨버트로스의 배에는 각종 플라스틱 조각들이 가득 차 있다. 슬픔을 넘어 죄책감, 그리고 분노마저 불러일으킨다.

플라스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부쩍 국내외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썩지 않는 쓰레기를 품을 수 있는 생태계의 임계치가 넘은 듯 여기저기에서 자연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플라스틱의 폐해가 무서운 것은 최후의 피해자는 인류가 될 것임을 누구나 짐작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은 벨기에 출신의 미국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1909년 발명한 이후 세계대전을 거치며 급격히 생산량이 증가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65년간 플라스틱은 83억t 생산됐고, 이 중 63억t이 쓰레기로 버려졌다. 

특히 방치된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져 생긴 미세플라스틱은 강과 바다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불과 6~7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던 미세먼지가 현재는 일상적인 환경피해가 됐듯 몇 년 후면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공포로 해산물을 마음놓고 못 먹게 될지도 모른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결국 각국 정부도 나서고 있다. 유럽의회는 2021년부터 나이프·빨대·면봉 막대·접시 등 플라스틱으로 만든 10개 종류 일회용 제품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지난주 가결했다. 찬성이 560표로 반대 35표, 기권 28표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법안은 또 2029년까지 플라스틱병의 90%를 재활용하고, 2025년부터는 플라스틱병 제조 시 재생 플라스틱을 25~30% 포함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미국의 경우 주정부 차원에서 움직임이 감지된다. 뉴욕주는 캘리포니아에 이어 두번째로 내년 3월부터 소매점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 다음달 의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이 법안은 각 카운티가 종이봉투를 유료화하는 방안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중국이 폐비닐 수입금지를 결정하면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일상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쓰레기를 절반으로 줄이고 재사용률을 끌어올린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이제 쇼핑하러 나서기 전 장바구니를 꼭 챙긴다. 기업체들의 과대포장 문제는 제쳐놓고 일반 시민들만 다잡는다는 불만도 들린다.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과대포장을 우선 단속하고 비닐봉지 대체재를 만들어 보급하는 게 더 좋았을 법하다. 그러나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의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모두이다. 과대포장도 따지고 보면 보기 좋고 깨끗한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물이다.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한 물건은 폐기도 인간이 해야 한다”는 한 환경운동가의 말처럼 이제는 누구라도 나서야 할 때이다.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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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져 있더라.”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 남긴 말이다. 최근 ‘할담비(할아버지+손담비)’로 불리며 전국구 스타로 뜬 지병수씨(76)도 이런 기분 아닐까. 지난달 24일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지씨는 손담비씨의 댄스곡 ‘미쳤어’를 춤과 함께 열창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온라인에 올라온 동영상은 조회수가 200만을 넘어섰다. 이후 <연예가중계>에서 손씨와 실제 듀엣 무대를 선보였고,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지씨는 “아이돌 노래를 좋아한다. 티아라, 카라, 박진영 ‘허니’도 좋아하고, 특히 손담비 노래는 하도 많이 연습해서 잘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방송된 KBS 1TV <전국노래자랑> 종로구편에 출연해 가수 손담비의 ‘미쳤어’를 불러 화제가 된 지병수씨(76)가 28일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 기자 jeongk@kyunghyang.com

쌍방향 소통 프로그램인 MBC <마이리틀텔레비전(마리텔) V2>에 배우 강부자씨(78)가 도전장을 던진 건 뜻밖이었다. 문자메시지도 못 보낸다는 그는 “60년 가까이 할머니 역할, 아줌마 역할만 맴돌았는데 나 자신을 변화시켜보려고 나왔다”고 했다. 강호의 고수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로 자웅을 겨루는 마리텔에 들고 나온 무기가 축구라는 점은 의외성을 더했다. 오랜 ‘축덕(축구 덕후)’을 자임한 강씨는 등번호만 보고 선수 이름을 척척 맞히는가 하면, 해외 축구에 대한 정보도 술술 풀어냈다. 축구계 라이벌 호날두와 메시를 두고는 “호날두는 축구를 신사가 하는 것처럼 하고, 메시는 농부처럼 한다”고 비유했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해머니(해외 축구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지병수·강부자씨처럼 적극적이고 왕성하게 사회·문화 생활을 하는 고령자들을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 일컫는다. 이들은 대중문화계의 블루칩이자, 유통업계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트렌드의 이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노인빈곤이라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1인방송 도전은커녕 1년에 영화 한 편 보기 힘든 노인들이 적지 않다. 노인빈곤을 ‘이미 늙은’ 사람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곤란하다. 노인 소득보장체계를 보다 정교히 설계하고, 나아가 현 청장년 세대의 빈곤과 소득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하면 ‘미래에 늙을’ 이들은 더 고달파질 터다. 더 많은 ‘시니어’가 ‘액티브’해질 때 공동체에도 활력이 넘칠 것이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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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비무장지대(DMZ) 일부 지역이 포함된 ‘DMZ 평화둘레길’ 3개 코스를 이달 말부터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대상 지역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유해발굴 등 긴장완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 고성·철원·파주 등 3곳이다. 이 중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해안 철책을 따라 금강산전망대까지 방문하는 동부전선의 고성 코스가 우선 개방된다.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인 화살머리고지의 GP와 도라산전망대 인근 파주GP 등 DMZ 구간이 포함된 중부 철원과 서부 파주 코스는 유엔사령부와의 협의를 거쳐 개방시기를 결정하게 된다. DMZ 내 철책선 통문을 넘어선 GP 지역까지 시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분단 이후 처음이다. 

이번 평화둘레길 개방은 의미가 각별하다. 고성, 철원, 파주는 한반도의 3대 축선에 해당되는 군사적 요충지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남침통로로 이용됐고, 남북이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격전지이다. 지난해 남북관계 정상화 이후 군사적 긴장완화 작업이 추진되면서 전쟁의 비극이 서린 지역들이 민간에 개방될 정도로 평화가 다져지고 있는 것이다. 시민들이 가족, 친지들과 함께 DMZ 내 오솔길을 걸으며 분단현실을 체감하고 평화정착 의지를 굳건히 하는 평화교육 현장이 마련되는 셈이다. 한반도 긴장완화 작업은 시민들의 참여가 뒷받침될 때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평화둘레길 개방을 환영한다.

다만 평화둘레길 운영에서 무엇보다 유념할 것은 시민들의 안전이다. DMZ 내 지역은 남북한 군의 수색조가 정기적으로 수색·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인 만큼 충돌 가능성이 상존한다. 또 DMZ 내에 설치된 남북 GP 간 거리가 1㎞ 안팎에 불과한 데다 남북이 서로 중화기를 배치하고 있어 우발적인 사고가 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가 당초 철원, 파주 코스까지 이달 말 함께 개방하려다 신변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감안해 DMZ 내에 진입하지 않는 고성 코스만 우선 운영키로 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다. 

정부는 평화둘레길을 개방하기 전에 북한 군당국과 안전대책에 대해 면밀히 협의할 것을 당부한다. 정부는 평화둘레길이 개방되는 이달 말 이전에 북한 군당국과의 협의를 완료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시민들이 안심하고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시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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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딸의 KT 채용에 직접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의원 딸의 특혜채용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남부지검은 “(구속된) 서유열 전 KT홈고객부문 사장으로부터 2011년 김 의원에게서 딸의 계약직 지원서를 직접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2일 밝혔다. 김 의원 딸은 2011년 KT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가 이듬해 KT 하반기 신입사원 공개채용에 최종 합격했다. 김 의원이 딸의 최초 입사 때 개입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2012년 공채를 통해 정규직으로 합격할 때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해 말부터 딸의 부정 채용 의혹을 시종 부인해온 김 의원의 후안무치 행태에 말문이 막힌다. 

김 의원은 딸의 특혜 채용 의혹이 제기되자 “권력과 언론이 합작한 정치공작”이라면서 “문재인 정부가 민간인 사찰 의혹이 부각되니 물타기를 하고 있다”며 되레 현 정권을 비난했다. 한국당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해 10월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전환 비리 의혹이 불거지자 “권력형 채용비리”라며 국정조사를 강하게 요구한 것과 너무 비교된다. 뒤로는 자신의 딸을 부정하게 취직시켜놓고 확실하지도 않은 사실을 들어 노조원들이 짬짜미로 채용비리를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이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다. 지난달 KT 임원이 구속되었을 때도 김 의원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했다. 한국당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2일 “소문에 의하면 더불어민주당 출신 의원 여럿도 청탁자 대상에 들어 있다고 한다”며 구체적인 이름을 거론했다. 자기 허물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커녕 남을 물고 늘어지기에 급급한 행태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김 의원 딸의 2011년 채용건은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2012년 공채비리 의혹은 아직 시효가 남아 있는 만큼 진상을 밝혀야 한다. 더구나 2012년 공채 때 김 의원 딸은 지원자 명단에 없는데도 최종합격했다. 검찰은 김 의원 외에 성시철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 정영태 전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김종선 KT네트웍스 부사장 등도 딸과 지인의 취업을 청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힘있는 사람들이 자녀와 지인들을 특혜 입사시킨 것은 범죄행위다. 검찰은 관련자들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김 의원이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KT와 무슨 거래를 했는지 다 밝혀야 한다. 그에 앞서 김 의원은 진실을 고백하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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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당시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도덕성 의혹으로 낙마했다.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인사추천위 멤버들이 전원 사의를 밝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찬용 인사수석, 박정규 민정수석을 경질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들에 대해 청와대의 도리를 다하기 위한 문책일 뿐이지 실제 잘못은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잘못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신속하게 비판여론을 수용했다. 현재 실시 중인 국회에서의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는 당시 노 대통령이 검증 강화 차원에서 제안한 제도였다. 노 대통령의 인사 파문 뒤처리는 깔끔했다는 평을 받았다. 노 대통령은 두 달 뒤인 3월에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부인의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져 사퇴하자 그때도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 후임 민정수석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누구보다 부실인사로 인해 반복되는 국정공백과 차질, 혼선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시민들이 공직자들의 도덕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장관 후보자 2명이 낙마한 지 나흘째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뭐가 문제냐”는 입장을 내놓았다. 언론이 자극적으로 보도한 측면도 있다며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그의 해명은 실망스럽지만, 이런 입장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보편적 인식이라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다. 스스로 지명 철회를 한 조치와도 모순이요, 인책론을 피하려는 항변이라 해도 시민의 생각과 거리가 멀다. 

문 대통령은 나머지 5명의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 후에 닥칠 정국경색과 국론분열이 불 보듯 뻔하다. 걱정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현 정부 들어 낙마한 차관급 이상이 11명에 달한다는 건 더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 과정에서 소진된 국정 에너지만도 엄청나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사과부터 하고 이런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하는 게 도리다. 민심을 헤아려 적임자를 찾는 방법이 무엇일지 근본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은 정파를 뛰어넘는 여론수렴과 소통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청와대는 여론이 차갑게 식고 지지층마저 실망하고 있음을 깨닫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40%대로 추락한 국정지지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잘못은 누구든 할 수 있다. 잘못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노 전 대통령은 그렇게 했고, 문 대통령은 아직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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