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장, 의원들 말투는 거칠고 언성은 높습니다. 긴 연설과 장황한 훈계 사이로 질문과 답변은 고춧가루처럼 뿌려질 뿐이죠.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등이 드러나면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잘 몰랐다, 배우자가 했다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공수는 바뀌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욕하고 책임지라는 요구도 전형적입니다. 인재풀이 적다는 비판도 빠지질 않죠. 이렇게 식상한 연속극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청와대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냥 한국 지도층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문재인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명망과 전문성을 고루 갖췄다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부동산 의혹을 받았죠. 다운계약서 작성, 아파트 분양권 전매, 부동산 차명 거래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후보자는 처제 탓으로 돌렸고 송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막말 논란이 더해졌습니다. 한 예로 2016년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박근혜가 씹다 버린 껌”이라 했다고 논란이 됐죠.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문제 됐습니다. 이제 와서 북한 소행이라고 입장을 바꾼 데 대한 추궁이 있었습니다. “편향적 인식”, “친북주의자”, “북한 대변인”, “북한 통일전선부장 후보감” 등 야당 의원들의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김 후보자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공격을 받아 침몰당했다는 것은 일관적인 입장이었다”고 해명했죠.

사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침몰 직후부터 나왔던 의혹 중 시원하게 풀린 게 거의 없죠. 우선 북한 어뢰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는 정부 설명은 너무 미흡합니다. 배 밑에 긁힌 자국, 깨끗한 절단면, 생존자들에게 고막 파열, 화상 등이 전무한 점 등은 폭발이 있었다면 설명하기 힘듭니다. 정부가 제시한 증거도 미덥지 않습니다. 기껏 찾은, 유일한 증거인 어뢰추진체에는 그 유명한 ‘1번’이라는 글씨가 선명해 논란이 됐죠. 여기서 나온, 폭발 과정에서 생겼다는 알루미늄 산화물은 침전으로 생긴 알루미늄 수화물임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공개한 CCTV 화면도 조작이고, TOD 화면에 나온 물체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즉 어뢰폭발이 있었는지, 그 증거는 있는지, 다른 원인은 없었는지, 아무 대답도 없는 게 정부의 설명 아닌 설명인 겁니다.

북한 어뢰가 아니면 뭐라는 소리냐고 짜증 낼 수도 있지만, 그 답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부가 내놓아야 합니다. 정부가 설마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크고 작은 범죄를 돌아보면 이는 그냥 희망 사항일 뿐임을 쉽게 알 수 있죠. 그 반대입니다. 그 많은 거짓과 전횡을 언제 다 되돌아볼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물론 천안함 침몰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으로 46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최소한의 의심을 갖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더군다나 정치 엘리트들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청문회에서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을 밝히고 거짓을 점검하는 대신 야유와 선동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것도 색깔 공세를 펴가며 말이죠. 김 후보자도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이었음을 주장하기보다 꼬리를 내리며 이에 동조한 셈이 됐죠.

우리 사회는 반공이 국교인 듯합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북한이 범인이라는 믿음을 퍼뜨리고 입맛에 맞는 증거만 축복합니다. 반론과 의심은 불경이라며 처단하죠. 신자들은 멸공의 노래를 부르며 안도합니다. 그 축복 덕택에 우리는 제주도, 광주의 학살에 눈을 감았고 독재를, 그들의 고문과 살인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렇게 피를 불러온 “빨갱이” 딱지를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게 21세기 한국입니다. 그러니 태극기부대가, 박근혜를 향한 그들의 애정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가 몰락한 게 1990년대 초이지만 여의도는 1950년대 초에 아직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그런 국회에 미래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그냥 국민의 생떼가 아닐까요. 그러면, 그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그 국회는 왜 있는 걸까요. 그 대답을 위해서라도 국회는, 정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과거 정부의 대응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야 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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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5일 종교인 퇴직금 과세를 완화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법안소위로 넘겼다. 논란이 큰 만큼 한번 더 논의해보겠다는 뜻이다. 개정안은 종교인의 2018년 1월 이후 근무기간에 해당하는 금액만을 퇴직소득 과세대상으로 한정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종교인들은 2017년 이전의 재직기간에 해당하는, 많게는 수십억원의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개정안은 또 이미 납부한 퇴직금 소득세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혜가 아닐 수 없다.

국회는 종교인 퇴직소득 과세 기간을 줄인 데 대해 ‘소급 과세’라는 이유를 들었다. 종교인 소득에 세금을 물리기 시작한 시기가 2018년 1월 이후이므로 이보다 앞선 기간까지 소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인에게 특혜를 주려는 명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퇴직금 소득 과세 시점은 수입 시기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인 퇴직금 소득세 부과는 소급 과세가 될 수 없다. 당초 정부도 같은 입장이었다. 그런데 보수 개신교 단체가 반대하고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이를 거들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종교인 퇴직소득 과세가 후퇴하면 종교인에게 매겨지는 세금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와 반대로 일반 근로소득에 대한 세금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형평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조세 평등주의’에 위배된다.

특히 현재의 개정안대로 입법화되면 특혜가 일부 대형 종교단체에 집중된다. 대부분의 소형 교회에 소속된 종교인들은 적립한 퇴직금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형 교회 소속 종교인의 경우에는 거액의 퇴직금을 받으면서 비과세 혜택까지 누리게 된다. 이번 개정안이 일부 대형 교회와 종교인을 위한 특혜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가 그동안 일련의 종교인 과세 법안을 처리하면서 보인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앞서 2015년 종교인 과세는 ‘무늬만 과세’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국회는 이번 개정안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 3명 가운데 2명이 반대하는 여론을 국민 대표인 국회가 묵살한 것이다. 종교인 과세가 더 이상 후퇴해선 안된다. 국회 법안소위에서는 형평성과 조세정의에 맞는 방향으로 논의되길 기대한다. 형평성을 잃은 법을 만들어놓고 성실납부를 기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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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심야 출국을 시도하기 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하려 했으나 거부당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틀 뒤, 김 전 차관은 태국으로 출국하려다 탑승 직전 출국이 저지된 바 있다. 만약 김 전 차관의 출국 시도가 성공했다면 어쩔 뻔했나.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진상조사단은 지난달 20일 대검에 김 전 차관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해달라고 했다. 진상조사단은 출국금지를 요청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검은 김 전 차관이 두 차례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재정신청이 기각됐으며, 새로운 증거가 확인되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요청을 거부했다. 3월22일 김 전 차관은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행 항공권을 구입해 출국을 시도했다. 탑승 직전, 진상조사단 파견 검사가 원소속청인 서울동부지검 검사 신분으로 김 전 차관을 입건한 뒤 긴급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해 출국을 막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바 있다. 이튿날인 3월19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진상조사단 활동 2개월 연장을 발표하며 “드러나는 범죄사실은 신속히 수사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김 전 차관은 출입국관리법 제4조가 출국금지 대상으로 규정한 ‘범죄 수사를 위하여 출국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발표 이후에도 대검이 진상조사단 요청을 거부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대검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정식으로 출국금지 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김 전 차관은 출국을 시도하기 전, 자신이 출국금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법무관 2명이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여부를 조회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전 차관이나 그의 부탁을 받은 누군가를 경유해 조회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직도 김 전 차관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것인가. 법무부와 대검은 제기된 의혹들을 회피하려 말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출국금지 관련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검찰 ‘김학의 수사단’의 재수사도 신뢰받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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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과 경남 통영·고성에서 자유한국당이 완승을 거뒀고, 창원성산에서는 초접전 끝에 정의당이 막판 역전에 성공했다. 외형상으로는 1 대 1 무승부지만 사실상 정부·여당의 패배나 다름없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창원시장, 통영시장, 고성군수를 민주당이 싹쓸이했던 것과 비교하면 민심 이반은 뚜렷하다. 민주당은 기초의원 선거 세 곳에서도 전패했다. 민주당 절대 강세지역으로 꼽히는 전북 전주에서도 민주평화당에 패했다. 불과 10개월 만에 민심이 180도 돌아선 것이다.

민심이 급변한 이유는 활로를 잃은 경제, 더 고달파진 민생, 인사 난맥상 등에 대한 실망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선거운동 기간 중 불거진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논란, 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 실패, 시민들의 화만 돋운 해명 등은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게 했다. 진보정치 1번지라는 창원성산에서 후보 단일화 이후 여론조사에서 독주를 해오다 막판에 힘겹게 역전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민심 이반이 얼마나 거셌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 노회찬 의원을 폄하하는 야당의 자충수가 없었다면 결과는 바뀌었을 수도 있다. 창원성산에서 신승을 거둔 여영국 정의당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감 같은 게 참 많이 있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출신지이자 정치적 근거지인 PK(부산·경남)지역에서 민심이 돌아서고 있다는 건 예사롭지 않다.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민심의 경고등’이 켜졌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보궐선거는 두 곳에서 치러진 ‘미니 선거’지만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 의미를 담기에 충분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완패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그 원인을 엄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은 위대하고 민심은 무서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더 겸손하고 진지하게 국정에 임하라는 민심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그간 국정운영이 시민의 눈에 오만스럽거나 불통으로 비칠 만한 것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청와대와 시민의 눈높이가 안 맞았던 부분은 무엇인지, 시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내년 총선까지 꼭 1년이 남았다. 청와대와 여당은 이번에 민심은 순식간에 돌아선다는 점을 절감했을 것이다. 여권이 험악해진 민심에 바짝 긴장하고 시민의 뜻을 잘 헤아려 국정을 일신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지 않고 싸늘해진 민심을 끝내 외면한다면 총선에서 더 호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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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는 거 같은데…?”

진만은 손에 든 메모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광역시 외곽에 있는 아파트 단지 정문 앞이었다. 정문 바로 옆에는 ‘하나로 마트’가 있고, ‘LH세탁소’가 있었다. 그 외 다른 상가는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512동이라며? 바로 저기 있네, 뭐.”

정용이 턱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정문 경비실 뒤편, 아직 잎이 돋아나지 않은 플라타너스 가지 사이로 마치 오래된 교과서의 겉표지에 적혀 있는 듯한 숫자 ‘5’와 ‘1’과 ‘2’가 보였다. 가로등이 깜빡깜빡 수선을 피우며 들어오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진만과 정용은 512동 3, 4라인 입구 계단에 앉았다.

“얼굴도 모르고 핸폰 번호도 모른다는 거지?”

정용이 묻자, 진만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구 계단 옆 화단에는 개나리꽃이 한창이었다. 개나리꽃 때문인지 남루하고 조용한 아파트 단지는 어쩐지 더 쓸쓸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럼 누군지 어떻게 알아보려고?”

“그냥 느낌이지 뭐. 난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진만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김 사장한테 꼬박꼬박 형님이라고 불렀고, 어쨌든 자기 사업을 했던 사람이니까 서른 살은 넘었을 터. 30대 중반의 남자. 전직 돈가스 전문집 사장 최현수씨.

진만은 1년 전 출장 뷔페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미처 받지 못한 임금이 있었다. 열하루 치 일당에 추가 근무수당까지 총 76만8000원. 그를 고용했던 김 사장은 매일 일이 끝나면 남은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알바생 한 명 한 명의 손에 쥐여줬던 사람이었다. 진만은 그곳에서 6개월가량 일했는데, 일당도 밀리는 법이 없었고,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도 정확했다. 어느 고등학교 동문회 모임에서 만난 진상 고객(술에 취한 채 알바생에게 계속 자기네 교가를 부르라고 했다)도 김 사장이 나서서 말려주었다.

문제는 마지막 한 달이었다. 김 사장이 아닌 방 실장이라는 사람이 대신 전화를 걸어와 알바 스케줄을 잡더니, 어느 날 그마저도 끊기고 말았다. 김 사장의 전화는 계속 꺼져 있는 상태였고, 찾아가본 사무실도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에이 씨,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만은 지방고용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주저하지 않았을 텐데, 김 사장은 좀 아니었다. 어쨌든 6개월 동안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진만의 마음처럼 한 달 정도 지난 뒤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 진만아, 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말없이 떠나왔거든. 내가 너 밀린 임금하고 계좌번호 알고 있으니까,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해줄게. 정말 미안해.

진만은 김 사장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8개월이 넘도록 진만의 계좌에는 아무런 돈도 입금되지 않았다. 이건 그냥 내가 고소할까 봐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닐까? 진만에게 76만8000원은 큰돈이었다. 원룸 월세 두 달 치가 넘는 돈이었다. 월말이 되면 진만은 늘 그 돈을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김 사장에게서 다시 메일이 도착했다.

- 여기 이 주소로 가면 최현수라고, 돈가스 전문집 하던 친구가 살고 있을 거야. 나한테 300만 원 정도 줄 돈이 있는데, 거기에서 85만 원을 너한테 먼저 주라고 그랬어. 그 친구도 갑자기 가게를 접는 바람에 연락이 계속 안 닿았거든. 엊그제 연락이 닿아서 너 얘기해 놨으니까 가면 돈을 줄 거야. 늦어서 미안하다, 진만아.

“근데 왜 나까지 데리고 온 거야. 너 혼자 받으면 되지?”

정용이 조금 짜증 난 목소리로 물었다.

“지난달에 네가 방값 10만 원 더 냈잖아. 그거 그냥 바로 주려고.”

“이건 뭐… 다 물고 물려 있구나.”

최현수씨는 밤 8시가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3, 4라인으로 들어간 사람은 초등학교 아이 두 명이 전부였다. 진만과 정용은 스마트폰으로 프로야구 경기를 보면서 최현수씨를 기다렸다. 봄밤이었지만, 허벅지 아래로 계속 한기가 느껴졌다.

밤 9시쯤, 택배 트럭 한 대가 주차장에 섰다. H택배 유니폼 조끼를 입은 남자가 조수석에 잠들어 있던 남자아이를 업고 내리는 것이 보였다. 남자아이는 유치원 가방을 메고 있었다. 진만은 그가 최현수씨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저기, 김성오 사장님이 찾아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최현수씨는 잠깐 진만과 정용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에게선 짙은 땀 냄새가 났다. 그의 등 뒤에 업혀 있던 아이가 눈을 떴다.

“주말쯤 오실 줄 알았는데….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최현수씨는 아파트 정문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가 “아빠, 누구야?”라고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진만과 정용은 느릿느릿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이 때문에…. 진만은 어쩐지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하나로 마트 옆 ATM기에 들어갔다 나온 최현수씨는 진만에게 은행봉투를 내밀었다.

“그게 80만 원이거든요. 5만 원은 계좌번호를 적어주시면 다음 주에 바로 보내드릴게요.”

최현수씨가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진만을 쳐다보았다. 정용이 툭, 진만의 옆구리를 쳤다.

“아, 아닌데…. 뭔가 착오가 있나 봐요. 제가 받을 돈은 정확히 76만8000원이거든요.”

진만은 봉투에서 1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 최현수씨에게 내밀었다. 2000원은 따로 자신의 지갑에서 꺼내 맞췄다. 그러곤 정용과 함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뒤돌아섰다.

진만은 생각했다. 왜 받아낼 것이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개나리꽃만 지천인 밤이었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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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체 다니다 NGO에 들어와 일한 지 17년째 되었다. 어느 해나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요즘엔 옷을 찢고 녹색괴물 헐크가 될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한 달 전에 환경부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국민의 불안이 하늘을 찌르고 있을 때였다. 회의 주제는 생활용품에 포함된 미세플라스틱 규제에 관한 것이었다. 환경부 담당자와 산하 연구기관 그리고 외부 연구기관과 생필품 제조사 측에서 참여했다. 장황하게들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이랬다. 환경부는 규제를 만들고 싶지만 EU에서 제시하는 미세플라스틱 관련 기준이 없기 때문에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야겠다는 공복의 자세는커녕 절실함이 1도 안 느껴지는 회의였다. 우리가 언제부터 EU의 기준을 그토록 열심히 따랐다는 것인지…. 내 안의 헐크가 튀어나올 뻔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일 갤럭시S10을 출시하며 포장을 대폭 줄이고 플라스틱을 없앴다. 실제로 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규제보다 먼저 움직였고, 회사 자체적으로 금지예상물질을 지정해 사용량을 줄여나가고 있다. EU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2006년 7월부터 시행한 전기·전자제품에 대한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학습한 결과이다. LG생활건강은 미세플라스틱이 없는 섬유유연제를 출시했다. 화장품과 의약외품에서 미세플라스틱은 2017년부터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세제 등 생활화학용품엔 아직 규제가 없는 상태임에도 먼저 규제 이상을 지켰다. 세제나 유연제에 향기를 좋게 하기 위해 들어 있는 미세플라스틱 캡슐이 물을 오염시키고 사람 몸에 다시 돌아온다는 걸 고려한 조치이다. 규제를 만들어내는 정부보다 먼저 기업이 발 빠르게 변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의 변화와 사람을 읽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사람의 마음을.

지금 유럽에서는 청소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매주 금요일 정부에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 숫자가 매주 늘어나서 수만명에 이르고 있고 우리나라 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다.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 환경이 기후변화로 나빠지고 있으니 들고일어난 것이다. 뉴욕주에서는 내년 3월부터 일회용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이 퇴출된다. 유럽의회도 2021년부터 10종류 일회용 플라스틱 금지법안을 가결하였다. 미국에서는 최초로 하와이 내 모든 식당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쇼핑센터, 소매점 등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플라스틱 소비 1위 국가이며 동시에 국민의 90%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아직 어떤 규제도 없는 상태이다. 아마도 작년 4월에 이어 쓰레기 대란이 한번 더 일어나면 그때 범플라스틱 기구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전문가를 모시고 국민대책회의를 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미세먼지 앞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속에서 헐크로 변하기 전에 미리 그 마음을 얻는 방법은 없을까.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구글 검색이 그토록 귀중한 이유는 데이터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솔직한 생각을 내놓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않을 이야기를 구글, 네이버, 다음과 같은 거대 검색엔진에는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선거는 물론이거니와 주요 정책을 입안할 때 그리고 기업이 마케팅 전략 하나를 세울 때에도 대중이 진정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검색엔진을 자주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민이 미세먼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해법을 원하는지 과연 제대로 알고 있을까? 미세먼지 추경예산이 1조원이라던데 이참에 빅데이터 분석으로 먼저 헤아려 주었으면 한다. 계절상의 이유로 미세먼지가 잠시 잦아들어 우리 관심에서도 일시적으로 사라지기 전에.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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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집권세력이 드물게 ‘날것’ 그대로의 민심을 만나는 통로다. 민심과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권력도 선거만큼은 피해갈 수 없다.

4·3 보궐선거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여권 지지층의 마음이다. 단순히 선거 결과로 나타난 패배가 아니다. 경남 통영·고성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받은 표는 4만7000여표다. 지난해 지방선거 지지 표심(4만6000여표)이 고스란히 투표장을 다시 찾은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는 지방선거(4만6700여표)의 반토막에 가까운 2만8400여표(60.8%)에 그쳤다. 여권 지지자들은 표심을 포기하는 것으로 정치적 평가를 한 것이다. 국정 실패는 지지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집권 3년차 봄을 지나고 있는 청와대 주변에선 “어렵다”는 말이 들린다. 4·3 보선 결과만큼 침울한 공기가 주변을 감돈다. 그간 국정 지지율 하락에도 하지 않던 토로다. “좀 도와달라”는 호소도 함께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인천 연수구 경원루에서 열린 확대 국가관광전략회의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 박남춘 인천시장과 함께 센트럴파크 전망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현 상태는 5개 정도의 이상증상으로 요약될 듯하다. 무엇보다 ‘민생경제 성적표’가 국정 전체를 짓누르고, 한반도 비핵화의 교착, 검찰·재벌 등 적폐 개혁 부진, 이로 인한 지지율 저하와 국정 자신감 하락이다. 그 결과는 ‘3년차 증후군’으로 이야기되는 조급함과 무기력의 교차다.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퇴진을 이끌어낸 스튜어드십 코드 등 작은 ‘변화’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개혁정부의 숙명인 도덕성의 부메랑도 가시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모도원’(日暮途遠·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문다)의 형국이다.

하지만 위기를 곱씹어 보면 본질은 북·미 대화의 궤도 이탈도, 경제의 어려움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권력 내부의 ‘기능부전’ 징후가 심각하다.

당장 ‘용인(用人)’에서 이상징후가 도드라진다. 지난 주말 청와대 대변인과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모두 부동산 투기 의혹 등 도덕성이 발목을 잡았다. 집 3채로 수십억원의 차익을 올린 부동산 정책 주무장관, 아들에게 스포츠카를 사주려 전세금을 올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등 인사의 원칙과 검증이 작동하는지 의심받고 있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이기에 실망감은 더 크다. “혁명이란 게 뭐야? 기껏해야 관청 이름이 바뀔 뿐”이라는 미도리(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의 항변처럼 지지난 겨울의 진통이 그저 몇몇 자리 얼굴이 바뀌는 것으로 끝나는 허탈감이다. 이 경우 민심은 문재인 정부 탄생의 근원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사람 하나 마음대로 쓰는 것도 사실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만 5년이었다. 이런저런 신세와 인연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모든 정부에서 3년차는 ‘시련’이다. ‘흔들림’의 시작이었다. 집권의 자신감과 참신한 기상은 사라지고 안일이 스며들며, 남은 시간들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부동산과의 전쟁’에 이율배반이었던 김의겸 전 대변인의 고액 부동산 거래는 이미 정권 이후 각자도생의 번뇌가 청와대 공기를 짓누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여기에 정부 초반 국정의 발목을 잡은 ‘트라우마’들도 자리 잡기 시작하는 때다. 노무현 정부의 ‘분열 정치’ 논란,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촛불’,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무능’이 그런 예들이다. 권력은 위기 본능에 깜짝 조치를 내놓지만 ‘신박’한 결과보다는 처참한 실패로 이어지는 게 통상이다. 권력이 이상조짐을 보이면 그 앞에서 풀처럼 가지런히 눕던 ‘관료 정치’의 독성도 머리를 삐죽삐죽 내밀 것이다. 권력 획득을 권위의 획득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지지율’의 껍데기가 걷힐 때 남는 것은 이처럼 스산하다.

실상 모든 개혁은 ‘톱다운’이다. 혁명과 달리 개혁은 리더십에 의해 ‘통제되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십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개혁 리더십의 구성요소는 ‘도덕성·실력·용기’다. 도덕성은 반개혁의 저항을 무력화하는 출발점이고, 실력은 성과를 통해 개혁의 지지를 유지하는 힘이며, 변화를 위한 소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바로 개혁 권력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련에 위축되지 않고 용감하게 도전하던 ‘집권 초 100일’로 돌아갔으면 한다. 그 시작점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는 용기일 터다. 당장 일그러진 인사의 책임은 오롯이 인사권자에게 있다. 선출직 권력인 대통령은 참모를 대신 벌하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참모를 감싸는 것은 곧 스스로의 허물을 덮는 것이다. 제갈량은 울면서 분신과도 같았던 마속을 베었음(읍참마속·泣斬馬謖)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1년 뒤 4월(21대 총선)’은 개혁정부 지지층에게 전혀 다른 시간이었으면 한다.

<김광호 정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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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