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불을 대하는 태도는 신속했고, 긴밀했고, 단호했다. 그런 덕분에 더 큰 재앙으로 번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와는 다른 정부의 재난 대응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에 비해서 제1야당은 구태를 버리지 않고 이마저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고 해서 비난을 받는다. 

모든 일을 이렇게 했으면 대통령도 여당도 지지율이 급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일은 지지부진하다. 촛불시민들이 원했고, 이 정부 스스로 약속했던 정부의 모습을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4월1일은 만우절이었다. 그날 청와대에 초청받아서 갔다.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집행책임자들이 초청 대상이었다. 80명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그 자리에 갔는데 이 정부 들어서 처음이고, 노무현 정부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전부터 대화를 갖자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개별적인 사안을 두고 말을 듣는 것 같았으나 정책으로 이행되지는 않은 채 시민사회가 바라던 모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물론 시민사회가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현장 가까이서 정책의 실효성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므로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부의 대화 태도는 듣기는 하되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정부에 쓴소리를 늘어놓았다. 각계를 대표하는 16명의 인사들이 발언을 이어갔다. 그들의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부가 잘못하고 있으니 제대로 하라는 따끔한 말들이었다. 한 시간도 더 넘게 진행된 발언을 다 들은 대통령이 마무리하기 위해서 마이크를 잡았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동반자 관계라고 말했다. 절반의 책임을 나누자는 것처럼 들렸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청와대를 다녀온 뒤로 찜찜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리고 이틀 뒤에 경남 지역 두 곳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창원성산 투표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단일후보를 냈음에도 신승했다. 겨우 504표. 통영·고성 투표구에서는 자유한국당에 내줬다. 성적표로만 보면 1 대 1일 수 있지만,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표로 나타났다는 해석이 강했다. 그러니 여당은 즉각 민심이 무섭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곧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낙선은 했으나, 이전 선거보다 지지율이 올랐다는 태도를 보였다. 한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고 한 장관 후보자는 청와대가 철회를 했는데도 인사검증 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뻗댄다. 오만하기 그지없는 태도다. 초기의 경청하는 자세에서 불통으로 가려는 것인가? 한다고 하는 대화는 대부분 이벤트이거나 형식적이다. 

이 정권은 종종 촛불정권이라고 말한다. 촛불항쟁 덕분에 탄생했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촛불정권이라면, 촛불집회 중에 창원에서 24살 전기공이 했던 질문에 답해야 한다. “박근혜가 퇴진하더라도 제 삶이 나아질 기회가 있을까요?…이대로 20년, 30년 살라고 하면 못살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을 올린다고 해놓고는 곧이어 인상효과를 무력화하는 정책을 단행하고,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한다고 해놓고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한다고 하면서 노조도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하는 정책을 강행하려고 한다. ILO 핵심협약을 도입하지 않으면 유럽연합과의 무역분쟁이 벌어질 지경인데,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해서 노동권과 경영방어권을 일괄 타결하겠다는 말도 들린다. 갈지자도 이런 갈지자가 없다. 교수나 전문가들 말은 경청할지 몰라도 현장의 목소리는 적대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래 놓고 노동존중사회니, 포용국가니 하니 이건 기만이 아닐 수 없다. 

광장에서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했다. 그중에는 재벌개혁도 핵심적인 요구였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재벌에 힘을 실어주었고, 그런 결과는 경사노위에서 말도 안되는 경영방어권을 주장하는 경영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책 <사람이 먼저다>에서 “우리나라는 노동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가혹한 반면, 사업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가 끊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인식이 집권 2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적폐청산 작업도 소리만 요란했지 실질적으로 청산된 것이 무엇인지 답답하다. 절차와 요건을 문제 삼으면서 미적대는 동안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리고 과거 정권에 기생했던 관료들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집권 초기에 한 관료가 그랬다고 한다. “2년이 지나기 전에 원래대로 돌아갈 겁니다.”

이제 다음달이면 집권 2년이다. 형식적인 대화니 동반자적 관계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이 어디까지 왔는지 허심탄회하게 점검할 수는 없을까? 정부 부처마다 만들어졌던 적폐청산 기구들의 보고서는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았고, 이행되지도 않았다. 촛불정부라면, 촛불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앞의 책 첫머리에는 “사람 사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사람이 먼저인 나라, 사람이 중심이고 사람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부자의 편, 기득권 세력의 편이 되는 정권이 아니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던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정권을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 안에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점점 배제되고 있는 듯하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던 대통령의 말을 언제까지 믿고 기다려야 하는가. 믿고 기다린 결과가 배신으로 흐를까 두렵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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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강원 동해시에서 ‘제8회 수산인의날’ 기념식이 있었다. ‘깨끗한 바다, 풍요로운 어장, 하나되는 수산인’을 주제로 한 올해 기념식은 수산인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수산자원 보호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다진 자리여서 더욱 뜻깊었다.

기념식이 열린 강원도 동해안은 한류와 난류가 교차해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손꼽혀온 곳이다. 국민생선인 명태와 오징어의 주산지로 수산진미(水産珍味)를 찾는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동해안 하면 만선의 꿈에 부풀어 바다를 오가는 어선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포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러나 최근 동해안은 예전의 풍요로움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한때 17만t이나 잡혔던 명태가 거의 자취를 감추고, 오징어도 금징어라 불릴 정도로 어획량이 줄면서 어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어가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동해안 어촌이 소멸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는 비단 동해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연근해 어획량은 10년 전 128만t에서 최근 100만t 수준으로 줄면서 수산자원 감소 문제가 대두되었다. 어가인구도 2000년 대비 절반 수준인 12만명으로 줄고, 65세 이상 어업인의 비율이 35%를 넘을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수산업이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성장으로 쇄신하고자 지난 2월 ‘수산혁신 2030 계획’을 발표하였다. 동 계획은 수산자원 관리부터 생산, 유통, 소비까지 전 단계를 혁신하기 위해 주요 4개 부문에서 다음과 같이 근본적이고 내실 있는 대책을 담고 있다.

첫째, 연근해 어업 부문은 생산지원 중심에서 자원관리 중심으로 대전환한다. 어종별로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을 관리하는 총허용어획량제도(TAC)를 확대 시행하는 한편, 과학적인 자원평가에 기반하여 자원량 대비 과도하게 운영 중인 어선들은 합리적으로 감척하고, 조정 후 운영될 어선들은 설비 개량 등 현대화하여 잡는 어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나간다.

둘째, 양식어업 부문에서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스마트양식 체계를 구축한다. 정보통신·바이오 기술을 융합한 첨단 스마트양식 기술을 확대 보급하고, 생사료 대신 친환경 배합사료를 점진적으로 의무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진입규제 완화와 참치펀드 등 새로운 투자 상품 개발로 규모화·기업화도 적극 지원한다.

셋째, 수산물 유통 부문에서는 복잡한 단계를 축소하여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효율적인 유통 체계를 만들어 나간다. 울진의 붉은대게 가공단지, 포항의 과메기 가공단지처럼 지역특산품과 연계한 수산식품 거점단지를 단계적으로 확충하여 가공산업의 육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넷째, 어촌을 혁신적인 정주·여가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우선 ‘어촌뉴딜 300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어촌을 혁신적으로 현대화하고, 어촌계 진입장벽 완화와 귀어학교 설립 확대 등을 통해 귀어·귀촌이 보다 활성화되도록 지원한다. 또한 어촌의 6차 산업화를 통해 전통적인 생산기능에 유통, 가공, 관광기능까지 더함으로써 살기 좋고 즐겨 찾는 어촌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올봄 동해에서 잡은 명태 중 일부가 2015년에 방류한 어린 명태라는 것이 유전자 분석으로 확인되었다.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여온 정부와 어업인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동해에 명태가 다시 돌아왔듯 ‘수산혁신 2030 계획’을 통해 수산업에도 새로운 활력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동서남해 모든 바다에 풍어의 노랫가락이 다시 울려 퍼지고, 2030년에는 수산산업 매출액 100조원, 어가소득 8000만원을 달성하겠다는 우리 수산인의 꿈이 실현되길 소망해본다.

<김양수 | 해양수산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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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수업은 글쓰기 외에도 여러 요소로 구성된다. 글을 쓰는 시간이 주를 이루기는 하나 그 앞뒤로, 혹은 사이사이로 끼어드는 딴짓이 있다. 나는 그런 딴짓의 시간이 수업을 지속시킨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글쓰기란 안 하는 게 더 편한 일이다. 귀찮음을 극복해야 시작할 수 있다. 무엇이 아이들의 귀찮음을 무릅쓰게 만드는가. 나의 오랜 탐구 주제였다. 

수업을 시작하면 입을 쭉 내밀고 토라진 얼굴로 앉아있는 아이가 보인다. 집에서 가만히 쉬고 싶어서 꾀병을 부려 보았지만 부모님께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각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올리브영 같은 화장품 가게에서 샘플을 발라보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모두 다른 컨디션과 다른 사연을 가지고 모인다. 그들과 가장 먼저 하는 건 근황 토크이다. 지난 한 주간 어땠는지, 전하고 싶은 소식이 있는지 내가 묻는다. 성의 없이 물으면 성의 없는 대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우선 내 근황을 솔직하게 전해야 한다. 굿 뉴스로는 2년 만에 드디어 교정기를 뺀 사실을, 베드 뉴스로는 어떤 잡지에 연재를 하다가 잘렸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럼 아이들도 자신의 최근 소식 중 몇 가지를 엄선하기 시작한다. 날마다 다른 변수와 디테일이 추가되므로 말할 거리는 언제나 생겨난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떤 아이는 글쓰기 수업을 가는 버스 안에서 근황 토크를 준비한다. 또 다른 아이는 카톡 대화 내역을 뒤져보며 한 주간 주고받은 텍스트를 살펴본다. 자신이 말할 차례가 오면 다들 이렇게 말문을 연다. “저는요….” 이어지는 이야기는 매주 다르다. 소식을 다 전하고 나면 옆에 있는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 말고 다른 이에겐 어떤 소식이 있는지 듣는 게 도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잡담을 주고받는 동안 서로를 재미있어 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부러운 마음이나 못마땅한 마음일 때도 있다. 남들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 하고 싶은 욕망이 아이들 마음속에서 달궈지는 것을 나는 본다. 우리는 남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무수히 많은 걸 배우는 존재들이니까. 칠판에 글감을 적는 것은 그 무렵이다. 아이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간식을 준비한다. 

열세 살 김도현은 이렇게 썼다. “글감이 주어지면 난 먼저 망설인다. 몇 분간 첫 문장을 생각하며 옆에 놓인 간식을 한 입 베어 먹고 뚫어지게 글감을 쳐다본다.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면 빠르게 캐치해야 한다. 스토리를 구상하고 내가 만족을 느낄 것 같으면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어쩔 때는 어려운 글감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만족을 못 느낄 것 같아도 일단 써본다. 그러면 다음에 어려운 글감을 또 만나도 전보다 더 잘 써진다.” 빈 원고지를 앞에 둔 외로운 시간에 누군가는 간식의 힘을 빌려 첫 문장을 쓴다. 글쓰기 수업을 간식의 맛으로 기억하는 아이도 있다. 

열네 살 최가영은 이런 문장을 썼다. “글방에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참 다양한 간식들을 먹으며 참 많은 글을 썼다.” 이렇게 쓰고서 최가영은 어쩐지 먼 곳을 보는 것 같았다. 글쓰기는 글쓴이를 멀리 가게 만들기도 한다. 미래로든 과거로든, 나에게로든 남에게로든 말이다. 그리고 간식은 멀리 갈 체력에 보탬이 된다. 열한 살 김지윤은 수업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에 관해 이렇게 적었다. “간식으로 나온 가래떡을 언니들이 손으로 가지고 놀던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가래떡을 가지고 놀던 언니인 열다섯 살 오승아가 쓴 인상적인 순간은 또 다르다. “글방에서 누군가가 특이한 소리로 재채기를 해서 선생님을 비롯한 모두가 웃었을 때. 몰래 먹은 야식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생리컵에 대해 말했을 때. 기다란 가래떡을 먹으며 이걸 찍어먹을 간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서로 다른 기분과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글쓰기란 여전히 귀찮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잡담과 간식을 기억하며 다음주에도 늦잠을 포기하고 수업에 온다. 떠들며 먹고 마시다가 명문장이 얼렁뚱땅 탄생되는 날들이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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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아주 유명한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수수방관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마을에 불이 나면 내 집으로 옮겨 붙을까 봐 불티를 뒤집어써가며 모두 같이 불을 끕니다. 하지만 강 건너편에서 난 불은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니 몸부림치고 아우성치는 화마가 강물에 어룽거리는 대단한 볼거리일 뿐입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난 불이 사람도 날아갈 바람을 타고 불벼락 비화(飛火)로 날아들어 몇 천 명이 대피하고 밤새 불안에 떨었습니다. 다행히 정부의 빠른 대처로, 전국에서 소방차 872대와 소방헬기 51대가 출동하고 군 병력까지 나서서 시뻘겋게 널름거리며 밀려들던 지옥불을 빠른 시간 안에 끌 수 있었습니다. 소방청으로 승격, 일원화돼 가능해진 전국적인 공조와 한 숨 안 자고 12시간 넘게 불길과 싸워주신 수많은 분들의 노고 덕분이지요(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이게 나라냐 했던 때를 생각하면 아, 이게 진짜 나라구나 싶었을 겁니다.

강원도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오전 초록빛이었던 강원 강릉시 옥계면의 야산이 불에 타 온통 시커멓다. 푸른빛을 잃은 산악의 풍경이 저 멀리 푸른 바다와 대조를 이룬다. 연합뉴스

불은 껐다지만 피해가 상당히 큽니다. 저걸 어쩌나 밤새 발 구르며 같이 안타까워하던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물품을 모으고 성금을 보냅니다. 역시나 정 많고 합심 잘하는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불길이 번져가는 와중에도 이를 빌미로 싫어하는 정당만 꼬집던 사람도 있었고, 긴급회선인 119로 전화해 나 도지사요, 했던 생각 없는 정치인은 조력도 위로도 없이 촛불정부가 아니라 산불정부라 비꼬고, 터전이 불타버려 망연자실하고 있는 곳에 정치홍보용 사진 찍으러 간 이도 있었습니다. 제 일 아니라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은커녕 팔짱 끼고 시시덕댄 이들을, 우리 또한 팔짱 끼고 잘 지켜봅니다. 남의 눈에 불똥 튀게 하다 제 발등에 불 떨어질 날, 꼭 있을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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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친 밤이었다. 바람은 시뻘건 불씨를 사방으로 날랐다. 불은 바람을 타고 ‘도깨비불’처럼 삽시간에 번졌다. 그날 밤은 모두 쉬이 잠들지 못했다. 노모는 대처로 나간 자식의 안부가, 농부는 창고에 쌓아놓은 못자리가 걱정이었다.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았지만, 손쓸 틈도 없이 들이닥친 화마를 피해 집을 빠져나오느라 도리가 없었다.

강원 일대를 휩쓴 산불이 일어난 밤을 떠올렸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14년 전 ‘양양 산불’이 일어난 날이다. 주민들에게는 양양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져 천년 고찰 낙산사가 한순간에 무너지던 모습이 떠오른 밤이었을 테다. 이번에도 주민들은 큰불에 밤새 마음을 졸였다. 그나마 하루 만에 불길이 잡혔다. 단시간에 최대 규모의 소방력을 투입해 불과의 사투를 벌인 결과였다. 소방당국은 산불 발생 2시간여 만에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덕분에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전국에서 출동한 소방차들이 밝힌 경광등으로 훤했다.

정부의 대응 체계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화재 현장을 찾아 주민을 만났다. 임기를 하루 남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임식을 취소하고 현장을 지키다 진영 후임 장관에게 임무를 인계했다. 화재 다음날 정부는 피해지역인 고성과 속초, 강릉, 동해, 인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4일 오후 7시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일대에서 발생한 산불이 확산되며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이날 불은 원암리의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가 터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불길이 속초 시내 쪽으로 번지며 고성·속초지역 콘도 숙박객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져 긴급 대피하는 등 밤새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 불로 오후 11시30분 현재 1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소방청은 재난 대응 최고 수준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하고, 전국의 소방차를 속초지역에 지원토록 조치했다. 연합뉴스

재난을 당한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당장 피해를 줄일 순 없지만, 정부가 국민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말이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 시스템의 붕괴를 목격했다. 이는 재난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9·11 사태를 겪은 미국인들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은 전적으로 국가의 대응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번 산불 진화에도 시민의 힘이 빛을 발했다. 사람들에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 일조했던 건 소셜미디어(SNS)에 시시각각 올라온 현장 사진들이었다. SNS에서는 목줄에 묶인 탓에 불길을 피하지 못해 털이 검게 그을린 강아지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주민은 화재 현황 지도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했고, 펜션을 운영하는 숙박업자는 빈방을 기꺼이 내주었다.

하지만 큰불에 너나없이 마음을 쏟고 있는 동안에도 정치권은 ‘네 탓’ 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가 산불, 온 국민은 화병”이라고 썼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왜 이리 불이 많이 나나”라는 글을 올렸다가 비난이 빗발치자 게시글을 삭제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철수 속초시장은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산불 현장을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다. 

<이 폐허를 응시하라>의 저자 레베카 솔닛은 이러한 상태를 ‘엘리트 패닉’이라 칭한다. 그는 엘리트 집단으로 대표되는 정부와 관료조직은, 재난 앞에서 스스로 혼란 속에 빠져든다고 했다. 그는 “재난은 사회적 요구를 증폭시키고 새로운 집단에 힘을 부여하는 한편, 정부의 조직적·행정적·도덕적 결함을 노출시킴으로써 정치제도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이 재난에 맞서 새롭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타주의를 발휘할 때, 정부는 스스로의 권위를 지키고, 무능을 숨기고자 거짓을 말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다. 

대형 재난은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는가?’ ‘인간 본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재난 뒤에는 취약한 사회 시스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본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재난을 모두 예방할 수는 없다.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책을 세울 수 있을 뿐이다. 내년 강원도의 봄날엔 새까만 재가 아닌 벚꽃잎이 날렸으면 한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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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꼬리가 길다. 기역자로 꼬부라지고 마는가 했는데 리을자로 두 번을 더 꺾고서야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태세다. 여기인가 했더니 아니고 이번인가 했는데 또 가라는 천마산의 정상과 같은 구조인가 보다. 우수(雨水) 지나고 곡우(穀雨)가 코앞인데 기다리는 비는 아니 오시고, 공중의 찬 기운은 발톱을 거두지 않는다. 

ⓒ이해복

경북 의성으로 깽깽이풀을 찾으러 간다. 고운사는 그 연혁을 보면 보통 유서 깊은 절이 아니다. “신라 의상조사가 창건하고 고운 최치원이 중건하였다. (…) 송림이 우거진 등운산에 위치한 고운사는 속세에서 저만치 있는 듯한 청정 수행도량으로….” 주차장에서 산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범상치 않다. ‘쪼대’를 아시는가. 어린 시절 가지고 논 찰흙을 이르는 말이다. 좌우에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호위하는 길바닥은 그 쪼대 같은 흙으로 다져졌다. 시멘트와 다르고 아스팔트와는 더욱 다른 그 길은 주위의 소리는 흡수하면서 주변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드문드문 수목장의 흔적도 있는 곳에 제비꽃, 양지꽃, 현호색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저만치 피어나는 건 깽깽이풀이다. 아직 쌀쌀한 날씨의 기세에 눌려 주위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활짝 핀 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며칠 후면 만개할 깽깽이풀이 조금 아쉬워졌다. 풀 대신 절 구경에 나섰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서산대사의 영정을 모셨다는 곳에 이르니 ‘아거각’ 현판이 눈썹을 때린다. 이웃한 적묵당의 주련은 이해하겠는데 ‘我渠閣’은 도통 문자 바깥이다. 문 없는 ‘아거각’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자니 섬돌 주위로 가랑잎만 바람에 업혀 지나간다. 집으로 돌아와 수소문하니 ‘아거각’은 서산대사가 자신의 영정 뒷면에 남긴 게송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더니 팔십년 후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이름이 조금 사납기는 하지만 깽깽이풀은 황홀한 꽃이다. 고운사 아거각의 ‘我’자는 아래에 그 어디로 통하는 구멍을 뚫어놓은 독특한 글씨다. 꽃과 글씨를 교대로 떠올리면서 늦은 밤 오래 뒤척거렸다. 깽깽이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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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숲이 되었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난지도는 풀과 잡목이 드문드문 자라는 쓰레기 더미였다. 곁을 지나면서 땅속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거나 퍼런 가스 불이 올라오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쓰레기에서 발생한 메탄가스 등에 자연발화한 불이 붙은 것인데, 3일 넘게 타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땅속 불은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달 AP통신은 미국 아칸소주의 리틀록 인근 쓰레기 매립지 지하에서 7개월 넘게 불이 타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 정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이 쓰레기 매립장을 태우던 중 지하 20m 깊이에 묻은 산업폐기물에 옮겨붙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5일 동이 트기 전 강원 속초시 콘도 밀집지역 곳곳에서 시뻘건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전날 발생한 대형 산불로 속초 설악한화리조트 내 드라마 <대조영> 세트장이 전소됐고 관광객이 즐겨 찾는 동해안 일대 캠핑장과 한옥촌, 테디베어 박물관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강원일보 제공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땅속 불은 역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광산마을 센트레일리아(Centralia)의 화재일 것이다. 1962년 5월 쓰레기 매립장에서 시작된 불을 57년이 지난 지금껏 끄지 못하고 있다. 최초의 매립장 화재는 진압했지만 꺼진 불이 다시 살아나기를 거듭하다 지하 90m 아래에 있는 폐광산의 석탄층에 옮겨붙은 뒤로는 속수무책이다. 이 불로 인근 땅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 1979년 마을 주유소 탱크 10m 아래 온도가 537도로 측정되기도 했다. 1981년에는 집 앞에서 놀던 12세 소년이 땅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생긴 24m 깊이 구덩이에 빠졌다가 가까스로 구출됐다. 이후 인구 3000명의 소도시로 성장했던 이 마을은 이후 20년 만에 유령마을로 변했다. 절망적인 것은 앞으로 획기적인 화재 진압 기술이 개발되지 않는 한 땅속 석탄이 다 타서 없어져야 이 불이 꺼진다는 것이다. 그 기간이 250년이라고 한다. 

강원도 동해안 산불이 꺼졌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잔불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건조한 땅속 깊이 숨어 있는 불씨가 강한 바람을 타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송진이 묻은 소나무 뿌리에 불이 붙으면 땅속 불이 닷새까지도 탈 수 있다고 한다. 군이 열영상 장비까지 동원해가며 땅속 열점을 계속 탐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80%에 이르는 봄철 산불 피해를 줄이려면 불씨를 잡는 게 중요하다. 땅 위에 보이는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이 ‘땅속 불’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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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에는 인사와 관련한 술회가 없다. 시스템 인사를 정립시킨 참여정부는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별도의 ‘인사 실록’을 퇴임 전부터 준비했다. 뒤늦게 2013년 나온 ‘밀실에서 광장으로 참여정부의 인사혁명’이라는 수식이 붙은 <대통령의 인사>(박남춘 대표 집필)가 그것이다.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스템 속에서만 인사를 했다. 추천(인사수석), 검증(민정수석), 결정(인사추천위원회) 단계마다 보완·견제 시스템도 촘촘히 가동했다. 추천 단계에서 자문위를 두어 지역·영역별 인재를 발굴해 추천하고, 외부인사까지 참여하는 검증자문위를 두고 공직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자문했다.

시스템 인사의 위력은 결과로 증명된다. 인사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숫자, 낙마율이 가장 낮은 정부가 노무현 정부다.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 강행’ 경우도 제일 적다. 청문보고서에 부적격 의견이 병기된 인사의 비율도 가장 낮다. 야당도 ‘적격’이라고 동의한 인사가 많았다는 얘기다. 낙마와 임명 강행을 포함한 ‘인사 논란’ 비율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역대 가장 인사검증을 깐깐히 했던 정부가 참여정부인데, 그 민정수석이 저다. 인사검증에 관한 방대한 매뉴얼을 마련해 놓고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 매뉴얼만 따랐다면….”(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신임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 매뉴얼에 충실했을 ‘문재인 청와대’의 인사 성적은 낮은 수준이다. 2년 동안 인사청문 대상자 중 낙마한 인사가 8명이다. 각기 11명씩인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는 ‘아직’ 적지만, 참여정부에 비해선 벌써 곱절 이상이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음에도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10명에 이른다(이명박 정부 17명, 박근혜 정부 10명, 노무현 정부 3명). 지독한 야당을 상대한 탓도 있지만, 대통령의 인사에 독하지 않았던 야당은 없다.

같은 시스템 인사인데 왜 이럴까. 우선 인재 발굴의 치열함이 수반되지 않고, 검증 잣대가 무디어지면 아무리 완비된 시스템일지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여태껏 낙마한 인사들의 흠결은 대부분 청와대가 ‘알고도’ 넘어간 것들이다. 결국은 낙마를 불러온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검증 단계에서 ‘놓친 게’ 아니라 ‘문제없다’고 판단했다는 게 심대한 일이다. 어쩌면 내재화되고 있는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택 3채 보유에 ‘뭐가 문제냐’고 따지고, 전세금을 올려 유학 중인 아들에게 포르셰를 사준 것이 ‘무슨 문제였겠느냐’는 동떨어진 인식이 발현됐을 터이다. 청와대 대변인의 재개발지 건물 투기도 ‘위법은 없는 노후대책’으로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도덕성이 흔들리면 개혁의 당위와 국정 동력의 약화를 불러오게 된다.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힘은 국민 지지밖에 없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높은 도덕성이다.”(2018년 6월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또 하나, 수차례 인사 사고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사과한 적도 없다. 책임의 실종이 ‘인사 실패’의 반복을 불러왔다. 2명이 낙마하고 ‘대통령의 입’이 도덕성 문제로 물러났는데도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잘못한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가 신뢰를 떨어뜨린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인사권은 책임을 동반한다. 2005년 이기준 교육부총리가 낙마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을 경질했다. “국민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한 문책일 뿐이지 실제 잘못은 대통령이 한 것이라고 너그럽게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국민들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춘풍추상(春風秋霜)’은 관상용 액자로만 걸려 있어서는 안된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 압승 뒤에 “두려운 마음”으로 참모들에게 세 가지를 주문했다. 유능과 도덕성, 겸손함이다. 경제·민생에서 입증될 ‘유능함’은 인내와 시간을 요하지만, 도덕성과 겸손은 다르다. 4·3 보선 결과에 담긴 ‘불편한 진실’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천박한 수구”로 내닫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유권자들이 ‘마음 놓고’ 찍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촛불정부’가 도덕적 우위와 겸손함을 의심받게 되면, ‘그놈이 그놈들’이란 냉소와 체념이 나라를 덮게 된다.

상투적이나 절실한 진단, ‘초심’을 돌아보자.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돼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약속으로 울림을 던진 문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이런 다짐도 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습니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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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표적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는 공인일까, 사인(私人)일까. 대통령이 공인이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경호를 받는다고 그 가족도 당연히 공인에 해당하는가. 그렇다면 신변보호를 받는 증인도 공인으로 봐야 하지만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공인의 범위를 넓히려는 측에서는 그들의 명예나 프라이버시보다는 언론보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무기로 잡다한 사적 영역까지 감시와 검증의 이름으로 들여다보고 간섭하고 싶어 한다. 특히 언론은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공인의 사생활도 취재보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면서 공인의 범위를 넓게 잡는다. 혹시 제기될지도 모르는 명예훼손 소송의 방어막을 치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예인과 프로 스포츠 선수 같은 유명인까지 공인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은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의 파수꾼(watchdog)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야당은 후보자의 내밀한 영역인 병력이나 수술이력까지 들먹이며 공인으로서 감수해야 할 것처럼 의혹을 터트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지면을 장식했었다. 대중의 관심이나 흥미를 충족시켜야 하는 언론으로서는 언론보도의 자유가 폭넓게 인정되는 공인의 범주가 넓어야 좋다. 신랄하고 날카로운 공격을 통한 여론형성 기능을 수행하려면 숨 쉴 공간이 넉넉해야 편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공간의 너비를 결정하는 공인 개념의 광폭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렇다면 누가 공인인가. 전통적으로는 사전적 의미를 중시하여 고위 공직자를 공인이라고 불렀다. 저명한 사람도 공인에 포함시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적 인물이라는 용어도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공인 개념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 연예인이 음주운전이나 마약, 성폭력 범죄 등 사회적 물의를 빚으면 으레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과하지만 연예인이 무슨 공인이냐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판례에서 사용하는 공적 인물이나 공인이라는 용어는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언어용법 또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연예인이나 뉴스 앵커 같은 유명인도 공인 내지 공적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공적 관심사에 관한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물, 뉴스 가치가 있는 저명성이나 매체의 노출빈도에 근거하여 유명한 인물을 공인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공직자와 같은 공인으로서의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들의 사생활 영역을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 인물의 범주를 넓히면 넓힐수록 표현의 자유는 확장되지만 공적 관심사나 유명도라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표지 때문에 개인의 인격권이 침해될 소지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간혹 연예인이나 유명인 대해서는 과도한 언론의 자유가 발휘되지만, 정치적 책임과 공공성이 강조되어야 할 공인에 대해서는 과잉의 명예보호가 되는 역전현상도 나타난다.

공인이란 사회정의와 공익을 실현하고, 도덕적이고 정당한 공적 활동으로 국민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존재다. 이들에 관한 정보는 공공성을 갖춘 것이므로 알권리에 포함되며 언론보도를 통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공인 내지 공적 인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이나 일반인이 통상 인식하는 것처럼 공공의 관심사 또는 유명도를 기준으로 공적 인물이라는 범주에 포함시키더라도 그들에 관한 언론보도를 넓게 허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 단계에서의 범죄혐의 보도도 마찬가지로 공인보다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보도내용이 공적 관심 사안인지, 순수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사안인지를 준별해야 한다. 공직자인 공인의 경우에도 내밀한 사적 영역이나 비밀영역에 속하는 사항은 보호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역에 속하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적법하려면 극히 예외적으로 정보공개의 이익이 더 커야 한다. 일반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여야 하고, 그 공개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그 표현 내용·방법 등이 적절해야 한다. 그래야 언론보도의 자유와 알권리가 개인의 인격권과 명예보다 우선시되는 것이다. 방송인, 유명 스포츠 선수, 뉴스앵커 같은 유명인과 연예인은 공직자인 공인과는 다르다. 그래서 제한적인 공적 인물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사적 공간이나 사생활을 공직자보다 더 넓게 보호하려 한다. 언론은 항상 알권리를 주장하지만 국민은 그들의 내밀한 사생활 영역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 대통령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공직자인 대통령에 의해 공적 인물이 되었으므로 제한적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 설사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경호를 받고 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감찰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공인은 아니므로 개인정보와 사생활은 공직자보다 더 보호받아야 한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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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8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을 재가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에 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전날까지 송부해 달라고 했으나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로 보고서가 기한 내 채택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10일 출국하기 전 장관 인사 문제를 매듭지어 국정 공백을 해소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이 “결사의 각오로 저항할 것”이라고 반발하며 정국은 급랭하고 있다. 두 신임 장관이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조동호·최정호 등 두 후보자 임명을 그만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야당도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 신임 장관들의 국정수행을 지켜보는 태도가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청와대충무실에서 장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간담회 장소인 인왕실로 걸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김연철 통일부·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진영 행정안전부·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연철 신임 통일부 장관 앞에 놓인 한반도 정세는 그의 취임사 그대로 ‘임중도원(任重道遠·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다)’의 형국이다. 지난 2월 말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은 비핵화 이전에는 대북 제재를 건드릴 수 없다는 강경태도를 굳히고 있다. 반면 북한은 북·미 간 불신이 여전한 상황에서 ‘빅딜론’은 무리한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 한·미 대북 제재 공조를 강조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도 한껏 좁아져 있다. 김 장관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종속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면서도 북·미 협상을 촉진하는 복합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인도적 지원 등 유엔 대북 제재의 틀 내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과단성 있게 추진하면서 남북 간의 자율공간을 복원해내는 게 일례일 것이다.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론과의 소통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남북관계가 진전할수록 남남 갈등이 격화되면서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박영선 신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맡은 임무도 막중하다. 중소기업들로서는 4선의 여당 중진인 박 신임 장관이 그간의 경제분야 의정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제2벤처 붐 조성, 소상공인 육성·지원, 대·중소기업 상생 등 과제를 힘있게 추진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중소·벤처기업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박 신임 장관이 역량을 발휘해줄 것을 당부한다.

두 장관의 임명을 두고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갈려 있다. 청문회 논란에도 불구, 국정수행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다. 두 신임 장관은 이른 시일 내 역량을 입증해 임명 과정의 논란을 불식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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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나왔다. 육군본부가 1981년 6월 작성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이라는 문건에는 5·18 당시 공군 수송기 지원 현황이 상세하게 적혀있다. 이 가운데 5월25일 광주~김해 구간에는 의약품과 수리 부속품을 운송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비고란에 ‘시체(屍體)’라고 적혀있다. 군은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을 ‘시체’라고 하지 않고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기록한다. 게다가 당시 오인 사격 등으로 사망한 군인 23명의 시신은 모두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다. 이 때문에 5·18 당시 공군 수송기가 김해에서 의약품 등을 싣고 광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시신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행방불명자 묘역’의 한 비석 앞에 국화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다. 이 묘역에는 5·18 당시 사라진 뒤 유해를 찾지 못한 시민들의 가묘가 조성돼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충격적인 내용이다. 사실로 믿고 싶지 않을 정도다. 만에 하나 무고한 시민을 총칼로 죽인 것도 모자라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 학살 증거를 숨겼다면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국가범죄가 아닐 수 없다. 해당 문건은 군이 진압 1년 뒤 여러 군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상 운송한 시신은 행방불명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당시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광주 망월동 5·18 무명열사 묘에서 신원이 확인됐다. 나머지 76명의 행방불명자는 지난해까지 암매장 추정지 11곳을 발굴 조사했지만 단 한 명도 찾지 못했다. 

행방불명자 확인 및 유해발굴 등은 지난해 3월 제정된 5·18특별법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대상이다. 그러나 진상조사위는 지금까지 가동조차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월 그들이 추천한 진상조사위원 2명을 재추천해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를 거부한 채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5·18 망언’ 의원 3명에 대한 징계도 여태껏 뭉개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은 39년이 지나도록 상당 부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미완으로 남아있다. 헬기 기총사격 여부, 집단발포 책임자 규명, 보안사의 5·18 왜곡 및 조작 경위, 계엄군 성폭행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학살 은폐 의혹까지 새롭게 더해졌다.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다. 한국당은 두말없이 객관적인 진상조사위 구성과 조속한 정상가동에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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