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 사회 전체의 화두다. 국가, 가정, 개인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자리는 우리 사회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아침마다 전국사회부의 각 지역에서 올라오는 기사보고들에도 수식어만 바뀔 뿐 며칠 걸러 거의 빠짐없이 일자리 관련 대책들이 등장한다. 

일자리 대책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단연 광주다. ‘광주형 일자리’는 일자리계의 ‘인기 브랜드’다. 정부가 상반기 중 2곳을 더 선정한다고 하자 제2, 제3의 광주형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지자체들의 유치 움직임이 뜨겁다. 

‘상생형 일자리’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은 한마디로, 임금을 낮추는 대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 초유의 노사정 상생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상생의 한 축엔 노조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이 없다. 부재를 넘어 민주노총은 아예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3년 투쟁 돌입까지 선언한 상태다. 며칠 전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가 광주형 일자리를 적극 추진했다는 이유로 광주공장 전임 지회장 2명에 대한 제명을 결의했다.  

이유가 뭘까. 민주노총이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이유는 임금 하향 평준화를 불러오며 나쁜 일자리가 확산되고, 지역별로 저임금 기업유치경쟁을 초래해 자동차산업 자체를 공멸시키는 치킨게임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우려다.   

이에 대한 반론은?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의 결론을 담아 밤낮없이 뛰며 만들었는데, 민주노총은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광주형 일자리는 비단 임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시간 고임금 일자리가 과연 좋은 것인지 등 미래 일자리의 가치, 노동과 인권, 여성, 소외계층 문제도 함께 얘기하고 풀어가자는 것이다.” 조합원 제명이 결의된 전임 지회장 중 한 명인, 광주형 일자리의 산파 박병규 광주시 사회연대일자리특보의 말이다.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월급이 적은 대신,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교육과 보육, 주거 등 복지수준을 정부와 지자체가 상당 부분 사회적 임금으로 보전하기로 한 광주형 일자리는 젊은이들이 바라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미래 일자리 가치와도 닿아 있다. 

민주노총과 광주형 일자리가 상생하는, 제3의 길은 없을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이자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노회찬재단 이사장인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 ‘광주형 일자리’ 협약 자체는 상당히 위험요소가 많지만,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고 질타했다. 성과에 대해서는 완성차업체가 원·하청 이윤공유를 통해 협력업체들의 이윤율을 제고하고, 낮은 임금수준에 대해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제시하며 구체적 추진전략을 갖고 협상 테이블에서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더 강한 정책을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1일 오후 광주광역시청에서 열린 광주형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광주형 일자리는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외에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개선’ 등을 4대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노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대화가 핵심인데, 철학의 공유 없이 외양만 베낀 짝퉁이 여기저기로 퍼질까봐 박병규 특보는 걱정하고 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4일 제68차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3월 기준으로 조합원이 100만3000명”이라며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투쟁에 앞장서는 민주노총에 한국 사회 노동자들이 운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임금근로 일자리별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2017년 기준 임금노동자들의 월평균 소득은 287만원,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있는 이의 소득인 중위소득은 210만원으로 나타났다. 150만~250만원 미만을 받는 이들이 25.1%로 가장 많았고, 85만원 미만(16.8%), 85만~150만원 미만(15.9%), 250만~350만원 미만(14.9%) 순이었다.  

이 대목에서 궁금하다. 조합원 100만 돌파로, 제1의 노총을 눈앞에 두고 있는 민주노총은 월급 250만원 안되는 절반 이상의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가. 또 하나, 민주노총의 가치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강원도 산불의 와중 시민들은 훌륭했다. 위험 앞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서로 손을 내밀었다. 시민들은 서로 연대해 위기를 극복했다.   

시민들이 민주노총에 바라는 것도 연대의 힘이다. 전체 노동자의 대표라 말만 하지 말고, 일하는 모든 이들을 품으라고, 취업난에 신음하는 예비노동자들까지 품으라고, 노조의 존재이유를 묻고 있다. 

반대는 쉽다. 그러나 시민들이 기대하는 건 장외에서 훈수 두고, 판을 깨는 노조가 아닌, 함께 희망을 얘기하고, 나와 내 이웃을 지켜주는 노조다. 반대해야 할 때도 협상 테이블에서 설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노조를 시민들은 원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도 나쁜 일자리도 될 수 있다. 좋은 일자리는 좋은 노조가 만든다.

<송현숙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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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합동으로 ‘인문사회 학술생태계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훌륭한 비전임 박사를 대상으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가칭)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학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학 밖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지원받는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문사회 학술은 직접적인 이익 창출을 하지 않지만,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야이다. 세종 시기에 양성된 학자와 그 학문적 성과에 이어진 문화적 융성과 번영은 잘 알려진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의 변화를 이루고자 하고 또 과거의 선진국 추격형 국가가 아닌 선도형 국가가 되려면 이 분야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 분야에 큰 관심을 보여준 관계부처에 고마운 마음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먼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더욱 늘어나야 한다. 2019년 우리나라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20조원을 넘어 다른 선진국보다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국가의 연구비 지원은 그것의 1.5%인 30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영국은 국가 연구예산의 9% 이상을 인문사회 분야에 투자하며 미국 또한 7%에 달한다. 이에 비할 때 우리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상당히 빈약한 수준이다. 

둘째, 인문사회 학술에 대한 장기적 정책을 수행하고 그것을 집행할 조직이 필요하다. 학술의 활성화는 단순히 연구지원의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연구 인력이 필요하고, 그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학술정책 전반을 다룰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계의 경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별도 조직을 통해 해당 분야의 연구·개발이 가야 할 길에 대한 지속적 논의가 가능하다. 그간 인문사회 분야는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에 대해 새로운 형식의 연구비를 만드는 미봉책만 제시됐는데, 이는 장기적인 정책과 그것을 수행할 기구의 부재에서 온 것이다.

셋째, 인문사회 학술의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 지식세계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비전임 박사에 대한 지원의 확대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강사법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거나 일종의 취업 기회 확대로 접근하면 안된다. 생계지원 방식의 연구비 확대가 연구자의 증대로 이어지고 다시 그 때문에 연구비의 부족을 호소하고 이에 따라 연구비가 늘어나는 악순환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학술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장기적인 전망으로 건전한 지식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초점이 놓여야 한다.

끝으로 인문사회 분야에 종사하는 기성 학자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인문사회 학술생태계의 위기는 학문 후속세대의 위기이며 동시에 대학 전체의 위기다. 그런데도 급변하는 세계에서 교수들이 혹여 밀폐된 연구실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거나 자신만의 세계 구축에 열을 올리는 건 아닌지, 사회적 임무를 잊고 편안한 직업인에 만족하는 건 아닌지 성찰이 절실하다. 이것은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물음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번 활성화 방안에서 대학 밖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 것이 대학만이 학문의 근거지였던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앞으로 대학 밖에서 더 큰 힘으로 전임교수들에게 변화를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이강재 | 서울대 교수·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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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났다. 그 봄을 눈물로 통곡으로 보내면서 다시는 흩날리는 벚꽃 잎도, 새파란 하늘도 죄스러워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봄이 다시 왔다. ‘어느덧’이라는 말로 그해 봄은 아득하게 멀어졌다. 기억한다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게 피어난 벚꽃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감탄한다. 나 같은 사람은 벌써 멀찌감치 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간은 5년 전 봄날에 멈춰 있다. 그날 아침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딸을 불러 품에 꼭 안아줬던 기억에서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다. 

“뒤돌아보아도 아프다. 시간을 가슴에 짓이겨 뭉갰지. 멈추어도 아프다. 시간을 어미 발꿈치로 짓밟고 한 발짝 떼어도 아프다.”*

그해 봄 아이를 보낸 어머니가 쓴 시집을 받고 선뜻 책장을 들춰보지 못했다. 교실 게시판에 있던 달력 사진이 박힌 표지만 며칠 동안 힐끔거렸다. 그 봄날에 아이들은 교내 로봇 대회를 했구나. 과학 탐구 대회도 있었구나.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진학 특강도 들었겠구나. 달력을 가까이 들여다보니 수학여행 마지막 날인 18일에 적어 놓은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다시 돌아와~”

짧은 수학여행을 아쉬워하며 모두 다시 돌아올 줄 알았던, 다시 돌아와 이제는 스물세 살이 되었을 딸. “내 손으로 너를 지워야”* 했던 어머니는 딸이 성인이 되면 보여주려고 남겨놓았던 배냇저고리를 꺼내 놓고 말한다. 이렇게 슬프게 보려고 남겨둔 게 아니었다고. 딸이 좋아하는 새우의 껍질을 벗겨주던 아빠는 제사상에 새우찜을 올려놓고, 동생을 잃은 언니는 중얼거린다. “왜? 세 개?”*

어머니의 시집은 한 아이의 삶과 그 삶을 함께한 가족의 시간과 기억으로 엮여 있다. 이 가족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같은 아픔을 가진 다른 가족의 기억도 보인다.   

시집을 본 뒤 깨달았다. 그 봄을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잊지 않는 것이다. 봄처럼 피어나던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니 섣부르게 말할 수 없다. 이제 그만하라고. 

*부분은 시집 <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유인애)에서 차용.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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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개구리는 잠들지 않는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고도 어떻게 하루를 버틸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만, 현재까지 과학자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지구에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저 신기하기 그지없는 생명체가 아주 많다. 가을이 되면 알래스카에서 북멕시코로 이동했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가는 흰정수리북미멧새는 무려 7일 동안이나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잠을 아주 많이 자는 동물도 있다. 들다람쥐는 하루에 14~15시간을 잔다. 박쥐는 한 술 더 떠 20시간가량을 잠으로 보낸다. 지구에서 가장 잠을 많이 잔다고 알려진 생명체는 앙증맞은 외모로 사랑받는 코알라이다. 코알라는 자그마치 하루에 22시간 동안이나 잔다. 코알라에 못지않은 잠보 동물도 있는데, 단단한 껍질로 유명한 아메리카 대륙에만 서식하는 포유류 아르마딜로다. 아르마딜로는 무려 20여시간이나 잔다고 한다. 하마나 나무늘보도 많이 자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의 곁에 있는 고양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잠꾸러기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렇게 잠을 많이 자는 동물이 있는 반면, 어떤 동물은 도통 자지 않는다. 황소개구리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소는 불과 4시간, 노루와 말은 3시간가량, 그리고 기린은 심지어 2시간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만을 잠에 할애한다고 한다. 지구는 잠이 없는 동물과 하루를 거의 잠으로 보내는 동물로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동물은 밤에 자는데, 낮에 잠을 청하는 동물도 있다. 야행성인 고슴도치는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움직인다. 잠이라는 틀로 지구의 생명체를 분류해보면 지구의 종다양성이 실감난다.  

이제 사람의 잠으로 눈을 돌려볼 차례다. 201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은 하루 평균 9시간13분을 잠으로 보낸다. 반면 한국인은 7시간41분 잔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이 권장하는 건강을 위해 가장 좋은 수면시간은 하루 8시간인데,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이 기준을 밑돈다. 사실상 수면 부족인 셈이다. 평균 수면시간은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 사람은 8시간4분가량 자고, 독일 사람은 8시간14분 동안 침대에 있다. 프랑스인도 넉넉하게 잠을 잔다. 프랑스의 평균 수면시간은 8시간29분이다. 미국인은 한국인보다 무려 1시간 이상 더 잔다. 그들은 8시간45분간 수면한다. 수면다양성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잠에 할애하는 시간은 나라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수면다양성은 그 나라의 사회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인이 OECD 국가의 평균 수면시간 8시간22분보다 훨씬 덜 자는 이유가 ‘김치’와 ‘마늘’을 먹기 때문일 리 없다.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적게 자고도 버틸 수 있기 때문일 리도 없다. 한국인의 수면 부족 원인을 찾기 위해 노동시간부터 살펴보자. 2017년 기준으로 한국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2024시간에 달한다. OECD 국가 평균 1759시간보다 무려 265시간을 더 일한 셈이다. OECD 국가 중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인은 연간 1356시간 일한다. 독일인은 한국 사람보다 1년에 668시간이나 덜 일한다. 

부지런하다고 정평이 난 독일인이 한국인보다 많이 잘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한국인보다 1년에 668시간을 덜 일한다는 사실로만 설명될 수 있다. 5년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생활시간 조사는 한국인이 왜 잠이 부족한지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를 제공한다. 2014년 통계청의 ‘한국인들의 생활시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 24시간 중 통근 및 통학에 평균 1시간30분을 소비한다. OECD 평균보다 연간 265시간을 더 일하면서 하루 24시간 중 16%를 통근 및 통학에 써야 하니, 우리에겐 잠을 줄이는 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노루나 말처럼 짧은 시간만 자야 한다. 어떤 아이돌 멤버는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한창 바쁠 때 하루 2~3시간 잔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10대 청소년은 하루 10시간 정도 잘 것을 권유하는데, 교육부의 2016년 조사에 의하면 한국 고등학생 10명 가운데 4명이 6시간도 채 자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쑥쑥 자라던 한국 고등학생의 평균 키는 2016년 조사에서는 10년 전보다 남학생은 0.2㎝, 여학생은 0.5㎝나 줄었다고 한다. 나부터도 하루에 2시간을 통근에 할애한다. 항상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어떤 날은 소처럼 조금 자기도 한다. 그보다 더 여유가 없는 날은 황소개구리를 부러워한다. 소처럼 적게 자야만 하는 날이 쌓이다 보면 코알라가 되고 싶어진다. 오늘도 그렇다. 코알라가 되고 싶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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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보호관찰소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청사가 없는 국가기관이다. 청사 이전 시도가 지역민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2009년 성남시 수정구에서 분당구 구미동으로 청사를 옮기려 했지만 공사는 시작도 못했고, 2010년 노동부가 쓰던 야탑동 구청사에 들어가려던 계획도, 2013년 서현동으로 이주하려던 시도도 물거품이 됐다. 

보호관찰소는 법원에서 보호관찰·사회봉사 수강명령을 받은 이들과 가석방자 등을 관리하는 기관이다. 주민들은 보호관찰소가 지역에 생기면 범죄 전력이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이 청사를 드나들게 되면서 주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이유를 들어 이전에 반대했다. 

청사 이전이 무산되자 성남시청의 중재로 민관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대책위는 성남시청에 관찰소 직원들이 업무를 볼 임시행정사무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보호관찰 대상자의 신고 접수나 구인 등의 업무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와 수원보호관찰소에서 진행토록 했다. 직원들을 위한 사무실은 허락했지만 보호관찰 대상자의 출입은 끝까지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행정 사무는 성남시청에서, 보호관찰 대상자 지도·감독 업무는 타 지역 관찰소 2곳에서 처리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 

올 초 직원이 늘면서 직원들 대다수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동부보호관찰소의 사무공간이 부족해졌다. 이 때문에 2010년 확보만 해놓고 쓰지는 못하던 야탑청사에 문서고를 옮기고 보호관찰 자원봉사자 교육 및 회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자 했다. 모두 보호관찰 대상자가 출입하는 시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야탑3동 주민들은 지난 3월15일 청사 앞에 현수막과 천막을 치고 반대 집회를 벌였다. 주민들은 민관대책위원회가 2013년 야탑동은 보호관찰소 입지 선정에서 제외한다는 의결문을 지키고, 보호관찰소를 이전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법무부가 이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민들의 태도와 요구가 과연 합리적인 것인지 묻고 싶다. 변변한 청사도 없이, 직원들이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부서 간 원활한 소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면 제대로 된 보호관찰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 보호관찰은 대상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자 이들의 재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재범 예방 활동이 적절히 이뤄지지 못할 때의 피해는 청사 입지 주변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깝게는 성남시, 넓게는 전국의 시민들이 잠재적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성남지역에 거주하는 보호관찰 대상자는 1000명이 넘는다. 보호관찰소를 없앤다고 해서 이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을 제대로 관리할 수단만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비록 최선은 아니더라도 훗날 범죄로부터 안전한 성남시, 함께 사는 행복한 성남시를 만들기 위한 차선은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인식 전환을 바란다.

<신달수 | 법무부 수원보호관찰소 성남지소 관찰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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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을 받으면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답변하라.” 군 복무할 때 상급 부대의 검열을 앞두고 지휘관이 지시한 말이다.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실천하기 힘든 모순형용으로 느껴져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과연 겸손하면서 당당한 태도가, 그런 삶이 가능할까.

<사기열전>에서 서문 격인 ‘백이열전’ 바로 다음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관중이다. 그런데 제목이 ‘관중열전’이 아니라 ‘관안열전’이다. 안영이라는 인물을 합하여 열전을 구성한 것이다. 사마천은 관중 이야기 뒤에 안영에 대한 짤막한 일화 두어 개를 실어 두고는 논평에서 “안영이 지금 살아 있다면 나는 그의 마부가 되어도 좋겠다”라며 흠모의 정을 드러내었다. 열전의 인물평 가운데 몇 안되는 극찬이다. 아랫사람을 인정하고 자기 잘못을 돌이킬 줄 알았으며, 평소에는 자신을 낮추고 검소하게 살았지만 직언을 할 때는 왕의 얼굴빛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겸손하면서 당당한 인물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안영의 마부가 어느 날 부인에게 느닷없이 이혼을 통보받았다. 영문을 모르는 마부에게 부인이 그 이유를 말했다. “안영은 왜소한 체구로 재상의 명성을 날리면서도 늘 겸허한 모습인데, 당신은 훤칠한 외모로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 너무도 의기양양하더군요.” 안영과 마부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안영의 관심은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돌아볼수록 부족하고 부끄러우니 겸손하다. 품은 뜻이 크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니 당당하다. 반면 마부가 자랑스러워한 것은 화려한 재상의 마차를 몬다는 외적 요건 때문이었다. 직함이나 외형의 우월함에서 나오는 것은 당당함이 아니라 거만함이다. 내면을 채운 것이 아니기에 언제든 잃을 수 있으니, 겸손함이 아니라 비굴함이 따른다.

이른바 ‘갑질’이 사회의 화두가 되더니,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이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시행을 몇 달 앞두고 있다. 직위로 인한 횡포를 경험한 비율이 70%가 넘는다는 오늘, 갑질은 일부 재벌가의 일탈적 행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상호 간에 자행되고 있다. 거만함과 비굴함의 사이를 불안하게 오갈 것이 아니라, 겸손하면서 당당한 삶의 이상을 다시 떠올릴 일이다. 순간순간 나의 만족과 실의가 어디에서 오는지 곰곰이 성찰해 보면서.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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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1일)이면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내려진다. 낙태죄에 대해 위헌 내지 헌법불합치 선고가 내려졌을 경우 행해져야 한 것들은 무엇인가. 먼저 해당 형법조문의 삭제 혹은 개정과 더불어 모자보건법과 그 시행령 등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사유들이 규정돼 있다. 이 사유들이 너무 좁거나 현실의 임신중절과 너무 괴리되어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만약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컨대 임신주수를 세 시기로 나누어 임신 12주, 24주, 그리고 36주로 분류해서 접근하는 이른바 ‘3분기법’을 취할 것인지, 임신중절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포함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예컨대 임신 12주까지는 임부의 의사를 중심으로 임신중절을 허용하지만, 임신 중기나 후기에는 의사(들)의 개입 정도를 달리하는 등의 방법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연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임신중절의 고려사유는 ‘경제상태상 양육이 힘들어서’가 46.9%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자녀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과 ‘학업, 직장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각각 44.0%, 42.0%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임신중절 정책에 사회경제적 사유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이런 사유들을 경감시킬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마련한다면 출산 선택이 증가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3월 30일 서울 도심에서 낙태죄 관련 찬반 시위가 열렸다.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위 사진)와 광화문네거리 원표공원에서 열린 낙태 반대 집회. 연합뉴스

둘째, 낙태죄 폐지 이후의 ‘가치론’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과제가 중요하다. 그동안 낙태를 선택하는 여성권리는 주로 ‘임부의 자기결정권’으로 말해졌다. 실제로 임신과 출산은 임산부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 노동, 학업 등 전방위적으로 존재를 재구성하는 사건이기 때문에 낙태결정권은 ‘운명결정권’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낙태금지 정책이 여성에게 가져오는 폐해가 극심한 것으로 근본적으로 성차별적이라고 보는 법학자가 다수 있다. 나아가, 나를 포함한 일군의 사람들은 낙태 문제를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이라는 견지에서 바라본다. 재생산권이란 단지 아기를 낳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권리도 뜻한다. 재생산권이란 성적관계(sexual relations)에서의 젠더평등권과 자기결정권, 임신과 출산에서의 자기결정권과 정보 및 의료서비스 접근권, 낙태 혹은 출산 이후 국가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을 권리를 포함하는 권리의 세트이다. 이는 남성시민도 향유해야겠지만 여성시민의 인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권리목록이다. 또한 이는 재생산정책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빈곤, 비혼, 장애나 동성애 시민 등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자녀 출산이란 주로 법률혼을 한 비장애인 이성애 가족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혼인 임신 여성이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고, 사회적으로도 차별의 시선이 따가워 태아를 중절하고자 할 때 그는 사회에다 책임을 묻기는커녕 낙태라는 범죄행위를 숨어서 치러야 했다. 낙태 사실을 공표할 수도 없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위로받을 곳도 없는 ‘이상한’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시민들의 재생산권을 공평하게 지원하기 위해 국가는 먼저 ‘정상가족’ 모델로부터 빠져나와야 할 것 같다. 

셋째, 재생산권리는 형법이나 모자보건법뿐 아니라 헌법에서부터 그 정신이 흘러내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2018년 3월 국회에 제출했던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는 최초로 재생산권리에 버금하는 조문이 마련된 바 있어 주목된다. 제35조 제3항에 “모든 국민은 임신·출산·양육과 관련하여 국가의 지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였고, 제33조 제5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용·임금 및 그 밖의 노동조건에서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부당하게 차별을 받지 않으며”라고 규정하였다. 인구의 재생산은 더 이상 국가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 삶의 질, 여성과 남성이 같이 분담하는 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기 시작했다. 넷째, 새로운 임신중절의 정책에서 의료적, 경제적, 사회적 상담이나 임신허용의 기준 등이 매우 중요하겠으나 이 프로그램 역시 재생산권에 입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성(sexuality)과 피임교육에 대한 전면적 개혁과 함께 임신중절 및 중절 이후의 적응에 대한 교육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교육은 젠더평등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기존의 ‘성 건강’은 ‘재생산 건강’으로 재규정되고, ‘재생산 건강’은 건강을 넘어 평등과 정의(正義)의 시각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낙태죄 폐지는 그동안 지연되어 온 생명의 재생산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첫 단추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이런 사회 시스템을 생명중심적으로 만드는 일이 다름 아닌 생명존중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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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텃밭을 분양받았다. 두 해 전 인근 지역에 생긴 청소년 종합타운에서는 작년부터 옥상에 열두세 이랑 정도의 텃밭과 열두 개 정도의 텃밭 상자를 만들어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단위의 팀에 분양하고 있다. 일종의 도시농사 운동이라고 해야 하나. 청소년 전문 시설이라는 특성에 의한 일종의 문화 사업이자 교육 사업이다. 

그래서 분양받은 밭은 밭이라기보다는 폭 1m, 길이 2m 정도의 좁은 이랑에 불과하다. 좁다고 말했지만 사실 좁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 정도 넓이로도 꽤 많은 작물을 심고 거둘 수 있다. 욕심을 내고 그만큼의 부지런을 떤다면 열 가지 종류의 작물도 너끈히 부족하지 않게 키울 수 있다. 나는 작년에 일곱 가지 종류의 작물을 키웠다. 옥상에 만들어 놓은 인공 텃밭이라 불가능할 줄 알았던 뿌리채소까지 포함된 수다.

교육도 받는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 어느 시기에 심을지, 어떻게 하면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적으로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해 2~3주 간격으로 농업 전문 강사를 초대해 교육도 하고 함께 모여 텃밭을 돌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외 시간에 분양받은 텃밭을 돌보는 건 각자의 몫이다. 대신 날마다 해야 하는 물 주기는 생업이 따로 있는 저마다의 일상을 존중해 순서를 짜서 돌아가며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물만은 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노력인 것이다. 그러하니 물 주는 순서만은 마땅히 지켜야 하지만 누구나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약속한 날짜에 오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 날은 운영을 맡은 부서 직원들이 물을 준다. 물 주는 일 말고 텃밭에 필요한 나머지 일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 

덕분에 시들어 죽는 작물은 없지만 고작 한 고랑의 밭마다 작물이 자라는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잡초 하나 없이 지나치게 무성해지지도 야위지도 않고 모든 작물이 고르게 자라는 밭이 있는가 하면 아무렇게나 길러 산발한 머리처럼 모든 작물이 뒤엉킨 밭도 있다. 희한하게 그런 밭은 심은 작물의 종류도 많다. 옥상에서, 혹은 초보가 기르기는 적당하지 않으니 삼가는 게 좋다고 하는 작물도 보란 듯이 심겨 있다. 

그래도 이곳의 옥상텃밭은 밭마다 비교적 구획이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고, 직원들이 최소한의 유지관리는 해주어서 이런 밭이 옆에 있다고 큰 피해를 입지는 않는다. 청계산 아래 있는 텃밭농장의 텃밭에서 농사를 짓던 시절에 이런 이웃을 만나는 일은 가뭄과 장마, 태풍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힘들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밭을 가꾸고 작물을 살펴도 돌보지 않은 밭에서 넘어오는 잡초와 그 밭의 작물에서 비롯된 병충해는 어떻게 해도 막을 수가 없다. 내 밭과 이웃한 밭 사이의 고랑에 있는 잡초까지 다 뽑고 천연 약제를 넓게 뿌려도 한계가 있다. 

내 밭인지 네 밭인지 모르고 손을 보고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맥락 없이 든다. 이래서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 들고, 내 것을 포기한다는 건 내 것만 포기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시작이 좋아도 중간에 포기하면 의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대체 이 사람은 왜 무엇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밭을 방치하는 걸까. 무책임일까, 게으름일까 비난하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서늘해지기도 한다. 그에게 혹 다른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왜 중간에 결국 포기한 사람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숨은 사정 같은 건 헤아려보지도 않고 매도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 부득이하게 포기한 자리를 폐허로 방치하는 시스템의 부당함은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어쩌면 나는 그런 생각들을 키우려 해마다 부지런히 텃밭에 도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텃밭을 가져본다는 건, 그곳에서 작물을 길러본다는 건, 농사의 고단함을 이해하거나 농부의 땀을 헤아리는 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 순간 인생의 단면 단면을 깨닫게 하는 공부는 되기 때문이다. 올해의 텃밭 모종 심기는 4월 둘째 주에 시작된다. 내 텃밭은 그래서 지금은 텅 빈, 그러므로 무한한 텃밭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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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고등학교 무상교육 방안을 확정했다. 올 2학기 고교 3학년부터 시작해 2021년에는 모든 고교생으로 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고교생 1인당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비 등을 포함해 평균 158만여원(2018년 기준)을 지원받게 된다. 고교 무상교육은 사실 때늦은 감이 있다. 고교 진학률이 99.7%에 이르러 사실상 ‘의무교육’화한 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고교 교육 무상화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교육의 공공성 강화와 균등한 기회보장을 위해 조속히 실현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재원 조달 방안이다. 고교 무상교육에 소요될 예산은 올해 3856억원, 2020년 1조3882억원, 2021년 1조9951억원으로 추산된다. 당·정·청이 확정한 안을 보면, 올해 2학기의 고3 무상교육 예산은 각 시·도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확보하도록 했다. 전면 시행 이후엔 중앙정부가 47.5%, 교육청이 47.5%씩 부담하고 지방자치단체가 5%를 내게 된다. 교육부는 각 시·도 교육감들과 협의한 결과, 모두 고교 무상교육 필요성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 교육감들이 협조한다 해도 3년 뒤 새로 선출되는 교육감들이 이를 거부한다면 과거 ‘누리과정 사태’ 같은 양상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 사업인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요 예산 중 상당액을 교육청에 떠넘기려 했다. 이에 교육청들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면서 ‘보육대란’이 발생했다.

고교 무상교육이 재원 문제로 좌초하는 걸 막으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분담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우선은 당·정·청 안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증액교부금’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야당도 교육기본권 보장이라는 대의에 공감한다면 개정에 협조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당초 교육부가 구상했던 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 자체를 인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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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반대를 위한 반대라도 유분수다. 정부·여당을 공격하기 위해선 ‘양잿물이라도 마실’ 무모야 모를 바 아니지만, 팩트를 왜곡하고 상식을 거스르는 흑색 선동을 접하다 보면 말문부터 막힌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별세를 두고 ‘정권 탓’이라는 주술을 퍼뜨리는 자유한국당의 행태는 도를 넘어섰다.

한국당 김무성 의원은 9일 한 토론회에서 “국민연금의 이사 재선임 저지가 결국 조 회장을 빨리 죽게 만들었다”고 했다. 앞서 홍준표 전 대표는 “연금사회주의를 추구하던 문재인 정권의 첫 피해자”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덩달아 보수언론들은 적폐청산 차원의 무리한 수사에 따른 ‘간접 살인’ ‘기업가 살해’라는 선정적 주장을 공론장에 펴고 있다. 더욱 한심한 건 한국당 지도부까지 혹세무민에 동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민 노후자금 앞세워 경영권까지 박탈하고 연금사회주의라는 무거운 비판에도 아랑곳않고 기업인 축출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인민재판, 인격살인이 공공연히 벌어져 인민민주주의의 악이 아니면 뭐냐”고 색깔론까지 들이댔다. 무책임하고도 저열한 선동이다. 조 회장의 딸들과 부인의 각종 갑질이 사회적 논란이 되고, 고인도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한진그룹 일가의 일탈과 범법 행위들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익을 침해”했기에 고인의 이사 연임이 부결된 것이다. 국민연금뿐 아니라 외국 연기금, 소액주주 등이 반대했다. ‘제왕적 가족 경영체제’가 빚어낸 리스크를 해소하려는 주주들의 결정은 정당한 것이다. 명백한 범법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문제 삼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재벌과 그 오너들은 치외법권이라도 하자는 것인가.

고인의 공과는 그것대로 평가하면 될 일이다. 공당인 한국당이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고인의 죽음을 정치공세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참으로 무도한 짓이다. 국가적 재난인 강원도 산불마저 서슴없이 정쟁에 악용했던 한국당이다. 물불 안 가리고 정부·여당에 흠집만 내면 된다는 한국당의 막가파식 질주는 그 의도가 성공할 리도 만무하지만, 대안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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