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굽어보는 국립현충원에 봄이 가득하다. 하얀 목련이 고결한 자태를 뽐내고, 홍매화의 핏빛이 영롱하다. 호국영령들의 단심(丹心)을 상징하는 듯하다. 충무정 주변에 핀 벚꽃이 공원을 방불케 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언뜻 충무공의 고뇌를 그린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 첫 구절이 떠올랐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의 시편도 내 뇌리를 맴돈다. 

지난 12일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서는 3·1운동의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는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49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바로 전날은 1세기 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지난주 그 무렵, 워싱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평양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시 추대되었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로 100돌을 맞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부터 생각해 보자.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은 독립국이고 조선인은 자주국민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지 불과 한 달 열흘 뒤 제국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백성의 나라, 민국(民國)의 시대를 새로 연 것은 엄청난 역사적 진전이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잿더미 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지난해에는 드디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50-30클럽에 가입한 것이다.

나는 2016년 9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한국의 동반성장’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국은 인구가 5000만명이 넘으면서 동시에 1인당 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6개 나라에 가장 근접해 있다. 따라서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 다음의 세계 7대 경제강국은 코리아”라고 주장했다. 비록 비공식 통계이기는 하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한국도 2016년 이미 1인당 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그곳 교수들의 반론이 잇따랐다. “캐나다는 G7 국가다” “중국은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G2 아니냐”. 나는 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캐나다는 1인당 소득이 4만5000달러를 상회하지만 인구는 3400만명 정도밖에 안되고, 중국은 인구로는 초대국이지만 1인당 소득은 1만달러 내외이므로 내 기준으로는 한국이 내실 있는 7대 경제대국이라고 했다.

영어 표현으로 5000만 인구에 1인당 3만달러 소득을 뜻하는 50-30클럽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분류도, 실제로 존재하는 기구도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같은 신흥경제국이 쟁취한 50-30클럽 멤버십은 밤낮없이 돌아가는 산업현장에서, 열사의 건설현장에서, 전쟁터와 다름없는 수출전선에서 5000만 국민이 피와 땀과 눈물로 쌓아올린 금자탑임에 틀림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반세기 동안 대호황을 구가하던 세계경제는 19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았다. 더 이상의 독주가 어렵게 되자 미국은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던 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와 더불어 경제정책의 보조를 맞추자며 G7을 창설했다. 1990년대에는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를 끌어들여 G8을 만들더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한국 등 12개국을 추가하여 G20이 탄생하였다.

한국을 경제강국으로 성장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교육 및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다. 두 번째 요인은 “하면 된다”는 과감한 도전정신이었다.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더 나은 미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에 강력한 공동체의식이 생겨났다. 희망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성장요인이 많이 소진되어 어느덧 저성장이 새로운 현상으로 자리 잡았고, 불균형성장 정책의 결과 양극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해 우리 사회에 “경제하려는 의지”를 북돋우고 기업가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다행히 최근 정부가 이념보다 실용을 앞세워 전자(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등 전통적 핵심 제조업을 중요한 산업정책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단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회생을 위한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구체적 내용은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말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창의적 인재를 길러야 한다. 무엇보다도 학원자율화가 시급하다. 또한 ‘함께 가자’는 동반성장을 우리 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도 시급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사회를 공동체정신으로 되살리자는 것이다.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은 ‘새날은 언제 어떻게 오는가’라는 글에서 이런 일화를 들려준다. 

옛날 인도의 한 성자가 제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새날이 온 것을 어떻게 아느냐?” 제자들의 중구난방식 답변이 이어졌다. 묵묵히 듣고 있던 스승은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좌중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날이 밝아 너희들이 밖을 내다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너희 형제들로 보이면, 그때 비로소 새날이 온 것이니라.”

내 이웃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고통과 아픔을 내 형제들과 똑같은 것으로 느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조석으로 혈전을 벌이는 정치권도, 갑과 을이 반목과 갈등을 겪고 있는 산업현장도 다를 바 없다. 남·남 갈등과 남북 분단의 해법도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나 한·미관계는 자존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1953년 휴전협정 조인식에는 대한민국 대표의 자리가 없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남·북·미 3자 정상회담으로 바꾸어 상징성과 실효성을 고양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한 토대 위에, 남북한과 지구상에 퍼져 있는 한민족을 하나로 통합한 8000만 한민족경제공동체를 건설해야 우리가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다. 이것이 선열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시대적 사명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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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 과다 보유와 거래 행태를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의혹 제기는 크게 설득력이 없다. 

우선, 부동산 비중이 평균 70%로 높은 일반적인 국내 가계와 달리 주식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이 후보자 부부의 경우가 이상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선택의 문제다. 오히려 한국 가계의 부동산 편중이 심각한 편이다. 가계의 부동산과 금융 자산 비중이 3 대 7 정도로 한국과는 거의 정반대인 미국에서라면 이 후보자의 주식 보유는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 후보자 부부는 15년간 축적한 주식자산 규모가 35억원인데, 대부분 소득으로 형성됐을 뿐, 투자로 크게 불리지도 못한 것 같다. 2010년부터 변호사로 일한 남편 오충진 변호사의 연봉을 포함해 이 후보자 부부의 합산 근로소득은 지난해 기준 세전 6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이 부부는 소득으로 주식에 ‘저축’한 것일 뿐이다. 또한 부부가 공동으로 형성한 자산을 아내 명의로도 분산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것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 변호사가 이 후보자 증권계좌에 넣은 금액은 5억원. 부부 간 증여 비과세 기준인 6억원 이하여서 세금을 안 냈더라도 문제가 없다. 주식을 잘 모르는 아내를 대신해 남편이 거래와 관리를 한 것도 국내 가정에서는 흔한 일이다.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물론 주식 자산을 축적하고 거래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이해충돌이나 내부정보를 이용했다면 당연히 결격사유다. 그런데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며 제기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 후보자 부부가 주식을 보유한 이테크건설이 소송의 직접 당사자도 아니어서 정황상 이해충돌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 변호사가 주식을 여러 번 사고 파는 과정에서 삼광글라스의 거래정지 2주 전에 매도한 거래를 두고 내부정보를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는 모양이다. 그런데 거래정지 소식을 미리 알았다면 당시 보유한 주식 전량(7121주)을 팔지 왜 절반가량인 3589주만 팔았겠는가. 

오 변호사의 주식 거래가 작전세력의 패턴을 보인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작전세력들은 자신들이 보유하거나 협력하는 수십~수백개의 계좌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단순히 가진 주식이 좀 많다고 해서 오 변호사와 같은 한 개인이 실행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무엇보다 오 변호사는 전체 보유 주식의 68%를 차지하는 이테크건설과 삼광글라스에서 손실을 보고 있다. 특히 이테크건설에선 마이너스 15% 이상 손실을 보고 있다. 정말 내부정보를 빼내고 작전세력처럼 움직였다면 그가 손실을 봤을까. 

이 후보자 부부가 보유한 주식목록을 보면 두 기업 외에도 삼진제약, 한국기업평가, SK텔레콤, 한국쉘석유, 네이버, 아모레G우선주 등 실적이 꾸준한 배당주나 저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주식들을 선호하는 일관성을 보인다. 주식을 투기적으로 접근한 경우도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가 이테크건설과 삼광글라스 비중을 높인 것도 군장에너지라는 자회사의 상장 이슈가 알려졌는데도, 두 회사가 여전히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저평가됐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단타매매까지는 아니어도 한 종목을 가격 등락에 따라 자주 사고파는 오 변호사의 행태 때문에 오해받을 소지는 있다. 하지만 이는 국내 주식투자자들 상당수의 전형적인 패턴이기도 해서 크게 문제 삼을 일도 아니다.

결론적으로 현재까지는 이 문제와 관련해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맡지 못할 어떤 도덕적 하자나 불법적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자기 소득으로 합법적으로 주식투자를 한 게 고위 공직자의 결격사유는 아니지 않은가.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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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중에서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인 카산드라에게 자주 매료된다. 예지력을 얻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설득력이 없는 그녀는 닥쳐오는 미래를 거듭 예언하나 파국을 막지 못한다. 아폴론에게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빼앗겼다고 한다. 그녀는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으면 안 된다고 절규하지만, 사람들은 외면한다. 앞으로 전개될 일이 뻔히 보이는데도 설득하지 못할 때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까.

동독의 소설가 크리스타 볼프는 1983년 신화 카산드라를 재해석한 소설 <카산드라>를 발표한다. 카산드라는 트로이 멸망 후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되고, 아가멤논이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죽임을 당할 때 같이 살해당한다. 볼프는 카산드라의 마지막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처절했던 일생을 회상하게 한다. 볼프는 집권 통일사회당에 입당해 정치활동을 했지만, 동독을 비판한 작품들로 인해 당국의 문책을 받았다고 한다. 볼프가 이 소설을 쓴 것은 몰락해가는 동독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파국으로 치닫는 트로이를 바라보는 카산드라의 심정이나, 동독의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는 볼프만큼은 전혀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씁쓸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 성향에 따라 씁쓸함의 이유와 느낌은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거대 함선이 제대로 항해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다. 

익숙한 패턴이 머리에 떠오른다. “화려한 출범, 높은 지지, 일정한 성과의 실현, 능력과 도덕성에 대한 의문, 지리멸렬 그리고 쓸쓸한 퇴장.” 이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떤 정부에도 불가능한 것일까. 탁구공이 오가는 것처럼 정권이 교체될 뿐, 함선은 제대로 된 항로에 들지 못하고 비틀거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우선 정부의 능력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정부는 그 지향과 능력에 따라 함선의 방향을 조금 바꾸고 조금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으나, 갑자기 하늘을 날아 목표인 항구에 도달하게 할 수는 없다. 아니 여태껏 달리던 속도에서 조금만 가속해도 배가 휘청거린다. 게다가 선의만으로 성과를 내기에는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다. 믿을 수 있고 윤리적이고 유능한 내 편은 너무나 적다. 민주주의 원리상 야당을 함부로 다룰 수도 없다. 여론은 변덕스럽고, 야속한 언론은 고분고분하지 않는 것이 본래의 임무다.

그런데 집권을 위한 선거전에선 장밋빛 약속이 필요했다. 유권자는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경청하며 신중하게 개혁을 추진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줄 만큼 느긋하지 않다. 정직하게 캠페인을 할수록 불리하며, 호언장담의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정치인만의 탓도, 유권자만의 탓도 아니다. 정치인과 유권자와 언론이 연주하는 삼중주다. 

실제로 기성 정당은 정부의 운영보다는 캠페인에 최적화되어 있다. 공장의 생산성과 상품의 품질은 부족한데, 영업과 광고 부문은 전문성이 있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지 못하면 포부를 펼칠 기회도 없고 선거에서는 마케팅이 당락을 좌우하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랬던 국민과 언론이 생산성과 품질을 요구한다. 부풀린 약속은 당연히 지킬 수 없다. 그런데 해낼 수 있는 약속조차 막상 그것을 실행할 자원은 부족하고, 우군은 줄어든다. 어느 정부든 쓸쓸한 퇴장이라는 귀결을 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 것이다.

기대에 못 미친 정도가 아니라 배반을 일삼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비한다면, 이 정부는 분명히 진일보했고, 정상적인 정부다. 내가 보기에는 아주 큰 잘못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실망을 극복할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경쟁자들은 은근히 상황을 즐기고, 유권자와 언론은 점점 가혹해진다. 이것은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의 속성이고, 시효를 다해가는 낡은 정치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다. 상대편을 향한 프로파간다 능력의 우위가 선거의 성패를 좌우하는 정치체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승자의 저주’와 같은 패턴을 피할 수 없다.

정치를 내전의 축소판으로만 다루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구조는 어떠한가. 과거 같으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했을 다양한 세력들을 의사당에 모아놓은 것이 정치이기는 하다. 감옥에 들락날락하는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유혈사태가 없을 뿐 내전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가 아무리 불의하게 보여도, 적이 아무리 위선적으로 보여도,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답을 찾고 설득하는 정치를 원한다. 그런데 근거 없이 자극적인 비난을 일삼는 사람과 세력이 인지도를 높이고 정치적 이익을 얻는다. 진영논리와 확증편향을 양손에 들고 싸움터에 나선 사람들이 앞장서는 상황에서는, 어느 편이든 집권할 수는 있지만 국정운영의 성공은 요원하다. 자신과 남에게 고른 잣대를 들이대고 실사구시의 자세로 탐구하는 사람들이 밀려나는 구조에서는 결국 모두 빈손으로 떠나게 된다. 

그래도 이 세상은 신화의 세계와 다르기에, 나는 카산드라와 달리 낙관한다. 바람에 못 미치지만, 세상은 점점 나아진다. 불행해지거나 뒤처지는 영역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계속 발전한다. 유예되는 개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안타깝지만, 정치가 정체되고 심지어 뒷걸음쳐도 역사는 꾸준히 갈 길을 간다. 굶는 사람은 줄고, 전쟁은 드물어진다. 암은 퇴치되고 수명은 늘어날 것이다. 기술과 과학 그리고 그에 기반한 문제 해결 능력이 발전하는 한, 경제도 정치도 그에 걸맞은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지난주에는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이 있었고, 블랙홀의 사진이 공개됐다. 나는 역사 발전에 대한 낙관을 포기할 생각이 없고, 기대보다 더딘 것에는 더 너그러워질 생각이다.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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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5년이 흘렀다. 당시 나는 미디어를 통해 전원 구조 속보를 접한 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가 나자마자 재빨리 대처해 승객을 구해내는 ‘그런 나라’에 산다는 사실에 우쭐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뉴스가 오보였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전원이 구조되었다가 수백명에 이르는 사람이 순식간에 실종자 상태가 되었다. 사는 곳과 상관없이 우리는 한동안 팽목항에 마음을 보냈다.

당시 대한민국에 만연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 통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오히려 비탄이나 통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은 점점 더 구체화되었다. 놀람은 어처구니없음으로, 무기력은 분노로 바뀌었다. 비탄은 어이없음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슬픔과 다르다. 아직까지 비탄이 가시지 않은 데는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폐쇄회로(CC)TV 관련 증거자료가 조작·편집된 정황을 밝히면서,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안산에 있는 4·16 기억저장소에서 유가족들은 아직도 울고 있다. 참사 당시와 진상규명 투쟁을 할 때보다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으니, 애써 억눌러왔던 감정이 폭발하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상실감은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사람의 속에 있다가 느닷없이 사람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길 가다 거센 바람이 불 때, 현관의 센서 등이 갑자기 켜질 때, 무슨 징조처럼 나뭇잎 한 장이 손바닥 위에 떨어질 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은 망연해진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조성된 ‘세월호 기억의 벽. 서성일 기자

그러므로 어떤 감정 앞에서는 “지겹다”고 말하면 안 된다. 슬픔이나 괴로움 앞에서 우리는 상대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자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정은 보통 시간이 흐르면서 옅어지지만, 반대로 밀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한없이 빽빽해져서 그 감정 이외의 다른 감정을 일상에 불러들일 의욕을 잃게 만든다. 코미디를 보며 웃기도 하고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을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하겠지만, 그마저도 어느 순간 더 큰 슬픔이 된다. 내가 웃었다는 사실 때문에, 어떤 것에 신기해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움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난 주말, 영화 <생일>을 보았다. ‘생일 시’를 읽는 후반부 장면에서 관객들은 너나없이 울었다. 생일 시는 마치 옆에서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가 어느 순간에는 애간장을 저미는 편지 같았다. 이 시는 실제로 정혜신·이명수씨 부부가 기획한 세월호 유가족 생일 모임에서 낭독되었는데, 생일 시들은 한데 묶여 <엄마. 나야.>(난다, 2015)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시들은 학생의 육성을 통해 생생하게 전개되는데, 이는 이 책의 저자가 시인이 아닌 서른네 명의 단원고 아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우 전도연,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생일'의 한 장면. NEW 제공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 때문에 우리는 좌절한다. 아무리 애써도 기억은 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은 잊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선명해져서 섣불리 내일을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 기억이라도 남아 있어서 살아갈 최소한의 힘을 얻기도 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남은 자는 끊임없이 기억하면서 과거의 자리에 미래를 포갠다. 그렇게 기억은 ’다시’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여전히 기억하고 다시 아파하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김상혁의 시 ‘길은 어떻게든 다시’(<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현대문학, 2019)를 읽는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길은 어떻게든 다시/ 소리…… 침묵…… 소리로 이어져 형은 다시/ 동생의 손을 잡고 개는 최고로 주인을 사랑하고/ 모든 자동차들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다시 살고 있다. 어김없는 일들 사이에서 더 이상 같지 않은 일을 헤아리며 길 위에 소리와 침묵으로 이뤄진 발자국을 찍고 있다.

내년에도 4월16일이 올 것이다. 4월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여전히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기억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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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 4월 말과 5월 초에 걸쳐 중간고사를 치르기 때문에 요즘을 중간고사 대비기간이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중·고등학생이 있는 가정마다 온통 비상이기 마련이다. 학생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기는 날들이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전쟁이 된다. 적으면 3~4시간, 많아야 5시간에 불과한 수면을 하는 것이니 혈기왕성한 아이들이 아침에 별 탈 없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어려운 미션일 수밖에 없다. 

이런 비상이 걸리는 곳으로 학원들도 있다. 학원들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2~3주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했는데 요즘은 대부분 4주 또는 한 달 전부터 시험 대비 수업을 시작한다. 학원들에서 이렇게 긴 내신 시험 대비기간을 설정하는 이유는 학교 성적이 대학입시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학원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요즘은 예상 시험문제를 잘 가르치는 경쟁에서 학생들에게 내주는 엄청난 과제 분량의 경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동안은 시험 대비기간을 한 주씩 늘리는 방식으로 경쟁했지만 4주 이상으로 기간을 더 늘리면 사실상 상시 시험 대비라는 무리한 일정이 만들어지기에 대신 숙제를 많이 내주는 것으로 학습 강도를 높이는 경쟁을 하고 있다. 

이런 방법은 학원을 결정하는 권한을 가진 학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어서 선호된다. 학생들이 집에 있는 동안 힘겹게 학원 숙제를 하는 모습이 아이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으면 ‘학원에서는 할 만큼 했는데 학생이 따라오지 못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도 가능하니 학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여기에 덧붙여 시험 기간 중 학생들이 학원에 머무는 시간도 늘린다. 평시에 3시간 수업이었다면 4시간 동안 학원에 있게 하고 그중 1시간은 대학생 조교들을 활용해서 시험 대비 문제풀이를 하게 한다. 물론 이 시간도 똑같이 학원비가 과금된다. 

이렇게 학원들마다 숙제량 경쟁과 시간 끌기 경쟁을 하기 때문에 여러 곳의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의 경우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다니는 학원들마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과목의 성적을 올리는 데 학습시간을 쓰도록 과도한 숙제를 내주다보니 그것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학생은 매일 새벽까지 학원 숙제를 하느라 진짜 필요한 자신의 공부를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이면 학생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도 학원 숙제를 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과거와 같이 강의식 수업이 아닌 참여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데다 학원 숙제도 못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된다. 물론, 그런 상황을 모두 다 잘 챙기고 높은 성적을 받아내는 학생들도 있기는 하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고 나머지 학생들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암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요즘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낮아져서 전국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을 정부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처럼 학생들이 전국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해서 기초학력이 낮아졌을까? 아니면 불필요하고 부조리한 교육환경에조차 접근 못하는 열악한 환경의 학생들이 아직도 많기 때문일까? 과거 권위적인 정부와 어떤 면을 슬금슬금 닮아가는 교육당국의 발걸음이 무서워진다.

<한왕근 청소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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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애인이 생겼다 하면 다들 이죽거립니다. “어쭈, 짚신벌레도 짝이 있다더니!” 축하 반 놀림 반으로 하는 말이지요. 누구라도 자신에게 맞는 짝은 있는 법이라는 속담 ‘짚신도 짝이 있다’를 응용한 요즘 속담입니다(짚신벌레는 성별이 없지만 유전적으로 접합 가능한 개체가 정해져 있으니 분명 짝이 있습니다). 나막신도, 기차표 고무신도 다 짝이 있는데 아무렴 누군들 짝이 없겠습니까(사실 옛 신발은 좌우 구분 없이 만드는 대신 앞코에 여유 두어 신고 다니며 늘려 맞추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짚신은 애초에 짝이 없습니다. 무조건 짝 없이 만듭니다. 짚신 삼을 때 끼우는 신틀에 짝이 없으니까요. 짚은 신축성이 좋아 신고 다니다보면 마치 맞춘 것인 양 발가락과 발볼 맞춰 금세 착 들어맞습니다(특이한 발 모양 때문에 기성화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지요). 발 치수대로 다양하게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신데렐라 언니들이 신어도 다 맞는, 진정한 프리사이즈가 짚신입니다. 또한 짚신이란 게 대개 서민들이 신던 것이지요. 내구성 떨어지는 대신 싸고, 손재주 좀 있으면 직접 삼아 신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잘난 사람들만 짝 맞춰 시집·장가 가란 법 없듯, 짚신 삼는 가난뱅이 방자·향단이라도 배필 삼을 짝이란 꼭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나이, 몸, 돈, 처지에 낙심해 지레 마음 접지 말고 만남 속에 익숙해져 같이 짝을 맞춰 가라는 것이죠.

봄 춘, 팔짱 끼고 허리 감고 다니는 커플들 보면 외로워서 화가 날 이도 있을 겁니다. 기성품같이 고르자면 내 스타일 없습니다. 좀 안 맞을 성싶던 옷도 입다보면 몸에 맞듯, 성에 안 차더라도 신축성 있게 만나다보면 호감 생기고 좋아 죽는 커플이 됩니다. 여기 없으면 저기 있고 이짝저짝 없어도 어딘가는 제짝 있습니다. 사람은 알아가는 거고 사랑은 맞춰가는 겁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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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은 없고 물에 빠진 닭이 있다. 난처한 사정이 아니다. 점심시간에 닭백숙집에 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은 어떤 모임이 있다. 상을 잇대어 붙이고 미팅 대열로 나란히 앉았다. 단순한 점심이 아닌지라 여러 사람들의 말로 일순 식당이 시끌벅적해졌다.

구규(九竅)는 몸에 뚫린 아홉 가지 구멍을 말한다. 구규가 있기에 인체는 외부와 소통하고 연락하면서 겨우 유지·건사한다. 

하부의 것은 그렇다 치고 상부에 난 건 주로 얼굴에 집중되어 있다. 눈 하나가 뒤통수에 달리면 사방을 두루 꿰지 않을까. 일견 더 나은 조건일 수도 있겠지만 사공 많은 배가 산으로 가듯 그건 부작용이 많은 게다. 그러니 차라리 한쪽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몰두하라는 함의로 나는 이해한다. 

한편 얼굴에 모인 일곱 개로 생각이 뻗어나가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사실 해부학적으로 콧구멍은 겉으로만 두 개일 뿐 실은 하나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어디에 있을까? 입은 두 개로 간주해야 한다. 말하는 구멍과 먹는 구멍.

모처럼 소임을 만난 나의 입은 토실한 토종닭의 육질을 실컷 즐겼다. 다음은 또 다음의 기관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런저런 구규에 관한 실없는 생각과 함께하면서 점심을 끝냈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말은 먹이를 찾아간다. 사람들 사이에 먹을 게 떨어지면 대화도 금방 시들해진다. 이윽고 나는 섬을 퐁당퐁당 떠났다. 어려운 상황이 아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마당에서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이야기.

불룩한 배도 꺼줄 겸, 차를 버리고 심학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산 너머 출판도시의 사무실까지 걷기로 한 것이다. 산 초입의 약천사 돌화단에 영산홍이 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추위에 아직 꽃망울도 보이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다. 그 아래 누군가 나무팻말을 세워놓았다. 자세히 보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영산홍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예용 나무다. 거룩한 불심을 보살피는 나무판으로 인해 오늘의 영산홍은 퍽 달리 보였다.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 반야심경의 마지막 진언을 세 번 외며 심학산으로 내처 올라갔다. 영산홍, 진달래과의 반상록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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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했다. 인구 5000만명 이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앞서 3만달러 소득을 달성한 국가는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뿐이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실감하기 어렵다. 노동조건이 특히 그렇다. 직장인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에서 최고수준인 반면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최하위다. 

고용불안과 노사갈등도 심각하다. 노사 분규가 몇 년씩 지속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7월 복직판결을 받은 KTX 여승무원들은 해고에서 복직까지 12년간의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복귀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이었다. 지난 1월 복직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노동자들은 75m 굴뚝에서 426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목숨을 건 투쟁이었지만, 그들의 요구는 노조 인정, 고용 승계 등으로 소박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사회원로들과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9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 정부가 만든 정리해고제를 없애고, 최장기 정리해고 사업장 콜텍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라”며 정부에 콜텍 정리해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백 소장을 비롯해 조희주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공동대표,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등이 참가했다. 2007년 정리해고돼 13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콜텍 노동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이겼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콜텍 노사는 작년 말부터 지난달까지 8차례 교섭을 해왔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권도현 기자

어제 기타 제조업체인 콜텍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회사 측과 복직을 위한 교섭을 벌였으나 결렬됐다. 2007년 4월 공장을 떠났으니 13년째이고, 4457일이 흘렀다. 그들은 한때 정리해고 무효소송 항소심에서 이겨 복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혀 무위로 끝났다. 해고노동자들은 시위, 단식, 길거리 농성, 고공농성 등 온갖 투쟁을 다 벌였다. 중년이었던 그들은 머리가 허연 ‘늙은 노동자’가 됐다. 지난해 정부의 중재로 쌍용차와 KTX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했다. 콜텍과 마찬가지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을 받아왔던 사업장들이다. 콜텍에도 정부의 역할론이 제기됐던 이유다. 

강산이 변했고 정권도 세 번이나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사용자의 노사관, 그리고 노사관계였다. 콜텍은 13년간 교섭이 거의 없었다. 협상이 열려도 회사 대표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갔다. 교섭이 진척될 리 없었다. 지난달 12일 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씨가 단식에 돌입했다. 정년을 3년 남긴 그는 ‘명예복직’이라도 해야겠다고 했다. 단식 한 달이 지나고 여론이 움직이자 협상이 재개됐다. 국내 최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인 콜텍은 국민소득 3만달러인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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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사건이 있습니다. 그날도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을 보내고 따사로운 봄날을 맞을 생각에 가슴은 두근댔습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날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고, 우리의 시각을 바꿀 중대한 사건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2014년 4월16일 수요일 아침. 

“그러면 그렇지.” 

“그럴 리가 없지.”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내뱉는 이 말이 내 입에서도 새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뚫린 사회안전망의 작은 구멍에서 새어나온 오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주시했습니다. 전 국민의 눈과 귀는 이미 바다로, 항구로, 그리고 세월호 속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올해로 세월호 사건 5주기를 맞습니다. 세월호에 승선했다가 참변을 당한 아이들도 이젠 하늘에서 바뀐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무던히 외쳐왔고, 끊임없이 호소했고, 속절없이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 외침의 의미를. 우리는 그 외침에 호응하지 못했습니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4·16기억저장소’는 ‘기억 투쟁’의 맨 앞에 선 곳이다. 지난 12일 단원고 인근 강서고 학생들이 저장소가 운영하는 4·16기억전시관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아끼던 사람이 우리 곁을 떠나면 슬픔이 바로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경황을 살피는 데 시간이 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또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리워집니다. 아끼던 사람이 베풀었던 친절이, 그 따스함이, 그 사람이 보여준 사랑이 떠오릅니다. 그 짓궂음이 그리워지고, 다시 티격태격 옥신각신하고 싶어집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밀려오는 이 슬픔과 그리움은 줄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오히려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아끼던 사람들을 공감해야 합니다. 끝까지 공감해야 합니다. 

지난 3월18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을 거뒀습니다. 그 자리의 의미를 새기는 공간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 같습니다. 광화문 거리를 거닐 때면 역사처럼 가슴에 스며든 아이들의 자취를 되새기고는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의 숨결을 여전히 느낄 수 있기에 진실을 찾는 작업은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시간을 잇는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연속하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작용하며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 우리는 이제 아이들이 가르쳐준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 희망은 아이들이 알려준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하지 못했던 스승 역할을 아이들이 대신 해줬습니다. 뒤늦게나마 우리는 그들이 알려준 희망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두려움을 떨치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아이들이 희망을 알려주고 가르쳤다는 증거는 세월호에서 나눈 아이들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운명을 예감하고도 사랑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말한 사랑에서 희망을 봤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끝까지 나눴습니다. 자기 것까지 내주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에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4월을 맞아 윤동주 시인이 쓴 산문 한 구절과 아이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옮기며 글을 마칩니다.

“일반은 현대 학생 도덕이 부패했다고 말합니다./ 스승을 섬길 줄을 모른다고들 합니다./ 옳은 말씀들입니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나 이 결함을 괴로워하는 우리들 어깨에 지워 광야로 내쫓아버려야 하나요./ 우리들의 아픈 데를 알아주는 스승, 우리들의 생채기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세계가 있다면/ 박탈된 도덕일지언정 기울여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겠습니다./ 온정의 거리에서 원수를 만나면 손목을 붙잡고 목 놓아 울겠습니다.”(윤동주,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

“내 것 입어”/ “너는?”/ “나? 가져와야지.”

“엄마 사랑해요, 아빠 사랑해요.”

<함석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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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이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현 자유한국당 대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현 한국당 의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17명과 목포해양경찰서 상황실을 세월호 참사 책임자로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죄’ ‘진상규명을 방해·은폐한 죄’ ‘재난상황 대응을 잘못한 죄’ 등을 저질렀는지를 수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유가족 등이 참사 책임자를 지목하고 구체적 혐의까지 들어 수사를 촉구한 것은 참사 후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304명의 희생자를 낸 참사 원인을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달 중 발간될 정부 차원의 ‘세월호 백서’에는 참사 원인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한다. 진상을 규명해야 할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방해로 최종보고서조차 작성하지 못한 채 2016년 9월 해산됐다. 2017년 3월 출범한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도 여객선 결함이나 운항 과실에 의한 ‘내인설’과 충돌 등 외력에 의한 ‘외인설’ 등 두 가지 침몰 가능성만 제시한 채 지난해 8월 활동을 종료했다.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지금까지 수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해왔다. 그런데도 참사 5년이 지나도록 침몰 원인조차 모른다니, 정부와 국회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4월 16일 (출처:경향신문DB)

이렇게 된 데는 과거 정권 차원의 조사 방해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이 보도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세월호 태스크포스(TF)의 법정 기록자료’에는 ‘특조위 규모 및 조사기간 축소’ ‘활동 무력화를 위한 대응논리 개발’ ‘파견공무원 철수’ 등 특조위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박근혜 청와대’가 특조위 활동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해양수산부 관료들과 모의, 사실상 특조위 해체를 위한 대응 TF까지 꾸렸다니 참담하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3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침몰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참사가족협의회 장훈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4월16일 8시49분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대기 지시를 믿고 기다리다 300여명이 죽었다. 세월호 사고는 우리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을 죽인 것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처벌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유가족과 국민 모두의 질문이다. 이제는 정부가 답을 내놓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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