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큰 물줄기가 만나고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 역사의 큰 스승이며 주자를 뛰어넘는 조선후기 최고의 학자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고 묻혀 계신 곳이다.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선생은 1822년 임오년 회갑을 맞아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쓴다. 그 첫머리에 “이 무덤은 열수(洌水) 정약용의 묘이다. 본 이름은 약용(若鏞)이요, 자(字)는 미용 또는 용보라고도 했으며, 호는 사암(俟菴)이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인데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조심하고, 이웃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라고 쓴다. 이 글을 통해 세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열수라는 호를 즐겨 썼다는 것이다. 이는 한강의 옛 이름으로 선생은 그의 모든 저서에 ‘열수 정약용이 쓰다’라고 적어 넣음으로써 한강변 마재마을에 대한 긍지와 애착을 표현한다. 학문적 사유의 시작과 완성이 이곳에서 이뤄졌음을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선생의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전 국민은 선생을 다산이라 부른다. 다산(茶山)은 야생차가 많이 나는 전남 강진군 귤동마을 뒷산의 이름으로 유배 당시 10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1930년대 정인보·안재홍 등 ‘조선학운동’의 주역들이 “선생께서는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인간이 바르게 살아가야 할 도리와 백성들을 잘살게 할 개혁안을 500여권의 책에 담아낸 다산초당에서의 업적이 너무 훌륭하므로 ‘정다산’으로 불리는 것이 맞다”며 붙여준 호이다. 이제 다산을 열수로 바꿔 부르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열수의 의미를 알리고, 이곳 마재마을이 강진의 다산과 함께 잘 알려지기를 바란다. 

둘째, 선생이 가장 불리기를 원했던 호는 사암이다. 이는 <중용> 29장인 ‘왕천하(王天下·천하를 다스림) 장(章)’에 나오는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에서 가져온 것으로, 뒷날 나타날 성인(聖人)으로부터도 학문적으로나 살아온 행적에 대해 질책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이 배어있는 가장 선생다운 아호(雅號)이다. 유학자인 선생은 내세가 아닌 살아있는 현세에서 성인이 되는 게 학문을 하는 목표였다. 선생은 ‘자찬묘지명’에 “알아주는 이는 적고 꾸짖는 사람만 많다면, 천명이 허락해주지 않는 것으로 여겨 불에 태워버려도 괜찮다”라고 적으며 당대에 자신의 학문적 성과가 평가받지 못함을  무척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후세에는 반드시 본인의 뜻을 알아주는 세상이 올 것임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선생을 사암이라 부르기를 주저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셋째, 여유당이란 당호에선 선생의 불우했던 정치적 환경을 엿볼 수 있다. 여유당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로 ‘여’는 머뭇거리기를 겨울의 냇가를 건너듯이 하고, ‘유’는 망설이기를 사방을 두려운 마음으로 살피듯이 조심하며  살아가겠다는 뜻이다. 여유당이라는 당호에선 당시의 정치적 시류와 타협하지 않으나 경계하려는 선생의 의지와 함께 노자가 생각하는 도인의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선생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는 20일부터 21일까지 남양주시는 ‘정약용을 생각하자’라는 주제로 정약용 사색의 길 걷기와 문화제를 개최한다. 팔당에서 마재마을까지 한강변에 펼쳐진 아름다운 열수 길을 걸으며 선생을 생각해보는 시간이다.

<김남기 | 정약용문화교육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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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도시에서 만난 그는 10여년 전쯤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으레 ‘순’이나 ‘숙’을 이름 끝에 붙여야 하는 줄 알았던 시절을 얘기했다. 나도 그와 같은 시절을 살았으니 뻔히 아는 일이었다. 교실에는 늘 앞 글자만 다른 ‘숙’들이 대여섯씩 꼭 앉아 있었고, ‘숙’들과 혼동하기 쉬운 ‘순’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다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나야? 너야?” 하던 때가 있었다. ‘숙’이나 ‘순’들은 드라마 주인공으로나 나올 것 같은 도회적인 이름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도 자라는 내내 자신의 이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했다. 마침내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이름 뒤에 붙은 순할 ‘순’을 떼어버리고 개명했다. 어쩌면 매사 소극적이었던 게 이름 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이름을 바꾼 뒤 정말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여자라면 순하고 착해야 세상 살기 좋을 거라고 믿었던 과거에서 그는 스스로 걸어 나온 셈이었다. 

그와 함께 나온 길에는 흰 벚꽃이 눈처럼 난분분 흩날리고 있었다. 길 양쪽으로 밑동이 꽤 두꺼운 벚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옛날 이 길의 이름은 전군가도였다. 일제강점기 때 놓인 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였다. ‘숙’과 ‘순’이 많았던 초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은 일제가 길을 내줬다고 했는데, 아마도 그는 이 길을 닦느라 땅을 억지로 내놓아야 했던 이들의 눈물도, 붙잡힌 의병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역한 일도 까맣게 몰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일제가 이 길로 우리 쌀을 실어 날라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이다.  

‘수탈의 길’이었던 길은 1970년대에 오로지 번영만 외치던 세태를 반영해 ‘번영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어쩌면 세월이 흐른 뒤 이 길은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될지 모른다.

무심히 떨어지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이 길을 걸었을 수많은 이름을 가진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지키며 살았을까? 벚나무 밑동이 굵어지는 동안 보굿처럼 거친 손으로 세파를 헤쳐나가다 꽃잎처럼 사라진 이름들, 그리고 앞으로 사라질 이름들. 그들의 봄날 어느 하루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길.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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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내 마음 깊은 거기에 찾아와/ 어느새 시냇물 하나 이렇게 흘려 놓으셨나요.’ 

송창식의 ‘사랑이야’ 노랫말(2절)이다. 여기서 ‘당신’은 누구일까. 사랑은 짧다. 연인일 가능성이 가장 작다. ‘당신’에 정체성, 적, 상처, 습관, 질병… 어떤 단어를 대입해도 말이 된다. ‘당신’은 내 몸에 들어와 나가지 않는 평생의 화두가 아닐까. 득도하지 않고서야 ‘당신’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이 인생이요, 역사다. 인생고(人生苦)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알아도 어떻게 함께 살아야 할지 고민이 멈추지 않는 상태다. 

트럼프를 보면서 ‘한반도의 당신’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1866년 조선은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號)를, 1871년 강화도에서 미군을 물리쳤다. 당시 삼화현감 이기조는 미 군함 세난도호 함장 피비거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들은 우리 강토와 백성들을 차지하려는가, 아니면 우호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가, 그대의 소원을 말하고 아무것도 감추지 말라.”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아무것도 감추지 말고 원하는 것을 말하라? 미국이 속마음을 말하겠는가. 조선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가. 알 수 없는 열강 앞에 무력한 모습. 그로부터 15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미국에 묻고 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반미, 친미, 비미(批美), 용미(用美), 숭미(崇美), 모미(慕美), 탈미(脫美)…. 이 언설의 경합은 우리 내부의 혼란과 갈등을 반영한다.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현대사에서 미 군정기 3년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가장 결정적인 시기였다고 본다. 최초의 미군 범죄는 1945년 9월8일, 미군이 인천항에 도착한 바로, 그날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미군을 환영하러 나온 조선인 두 명을 총살했고, 미군은 이에 감사했다. 환영 인파는 흩어졌다. 미군은 일본의 보호 속에 등장했다. 몇 시간 후 환영차 인천항에 나온 조병옥, 장택상, 정일형 등 연합국환영위원회 대표들에게도 미군은 총을 겨누고 접근을 막았다. 미군과 조선의 첫 만남은 살상과 무시였다. 

그 뒤로도 미국은 떠나지 않았고 군부 독재 세력은 미국을 뒷배 삼았다. 한국인들은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조금씩 ‘당신’, 미국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과 동화되어 가고 있다. ‘미국병’은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이제 미국은 ‘친밀한 적’ ‘짝사랑하는 적’ ‘욕망하는 적’이다. 우리는 문화적, 심리적, 지적으로 개성보다 뉴욕을 훨씬 가깝게 느낀다. 아직도 미국의 주(州)가 남한을 포함하여 51개인 줄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이루어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제 트럼프 관련 뉴스가 피곤하다. 그가 주도하는 ‘밀당’, 아니 강대국의 농간(‘전략’)이 지겹다. 지난 15일에도 북측이 밝힌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트럼프는 “대화는 좋은 것”이라고 반복하면서도 “그러나 빨리 가고 싶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좋은 관계다, 대북 제재도 그대로다”라고 말했다. 1960년 8월,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썼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 하루바삐 나가다오. … ” 그의 지친 분노가 들리는 듯하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이처럼 다른 시각과 캐릭터의 지도자가 함께 만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다름이 바로 기회요, 힘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책임이나 탓의 차원이 아니다. 북한이나 미국은 어쩔 수 없는 ‘그들’이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아무리 지정학이 문제라고 하지만, 약소국의 운명이라고 하지만, 캘리포니아주의 2분의 1에 불과한 작은 땅조차 둘로 갈라졌지만, 약자 필패가 필연은 아니다. 중국을 이고 사는 베트남은 약소국이 강대국을 슬기롭게 대처한 좋은 사례다.

반미와 친미의 이분법을 넘어 ‘우리 안의 미국’을 뒤돌아볼 시기다. 

그런데, 새로운 미국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 나타났다. 이언주 의원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죽음은 문재인 정권의 책임이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셨겠는가. 계급혁명에 빠진 좌파 운동권이 죽인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계속되는 그의 몰상식이 원래 사고방식인지 선거 전략인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조 회장의 사인은 폐질환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사망했으니 신미(信美), 미국을 믿으라고 해야 할까.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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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고 천문기술 발전과 제도혁신을 도모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임신한 여자노비에게 산전휴가 30일과 출산휴가 100일, 남편에게는 출산휴가 30일을 주어 당시의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복지제도를 소개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 시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 설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왕조실록과 역사연구 등에 의하면, 조선 태종 대에 설립된 명통시라는 장애인단체가 있었는데, 이는 독경사(경전을 읽고 외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로 활동하는 시각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나라가 설립한 조직이었다. 명통시에 소속된 시각장애인 독경사들은 국가행사에서 독경을 담당하고 대가로 쌀과 베를 지급받았다고 한다. 

평생 척추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장애의 벽을 넘어 명성을 떨치며 귀감이 된 허조라는 분이 있다. 그는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개국 후 네 임금(태조·정종·태종·세종)을 섬기며 법전을 편수하고 예악제도를 정비한 인물로, 세종 때에는 예조판서·이조판서와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까지 지내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은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정창권 교수의 저서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에 의하면, 세종 때 관현맹인(관악기와 현악기를 연주하던 시각장애인)에게 장악원의 일반 악공에 준하는 직책과 녹봉을 주었다고 한다.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조선 전기의 음률가인 박연은 관현맹인들을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조 때에는 신체활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도록 오늘날의 근로지원인과 같은 부양자를 지원해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조선 시대 장애인 제도는 양반사회라는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발휘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다. 이는 오늘날의 장애인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이 장애로 인한 어려움 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그간 정부는 7·9급 공채의 장애인 구분모집제도, 중증장애인 경력경쟁채용을 통해 공직 내 장애인 채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확대독서기와 점자프린터, 지체장애인을 위한 특수작업의자, 청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증폭장치 등 과학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로 인해 업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 공무원에게 근로지원인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사정 때문에 공급상황이 수요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공직 채용을 확대하고 근무지원사업을 늘려가야 한다. 공공분야이건 민간분야이건 장애인이 자립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노력이 배가되어 진정한 포용사회가 하루속히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김판석 | 연세대 교수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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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는 ‘인사 실패’는 단순히 검증시스템의 문제이거나 ‘인사 라인’의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사 조국·조현옥 수석이 물러나도 문제는 쉬 교정되기 어려울 것 같다. 현 정부를 받치고 있는 세력의 근본적 한계와 인사권자의 관점 문제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연속된 ‘인사 실패’가 발하는 정치적 효과가 무엇인지 정부·여당만 모르고 있다. “위법이 아니다”라는 변명은 사실일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무능한 헛소리다. 어떤 논자들은 위법이 아니라는 말에 “법이 아니라 국민 감정이 문제”라고 반박했지만 이 또한 부족한 말일 것이다. ‘감정’이 아니라 대다수 서민의 삶의 경험이 반영된 집합적 이성과 공동체의 공통감각이다. 한국 사회의 세대와 계층 사이에 깊게 파인 불평등 해소의 방향 문제다.

총선을 딱 1년 앞둔 지금, 다시 냉소와 정치혐오가 번져간다. 10% 부자 정당 민주당도, 1% 수구 부자 자유한국당도 지지할 수 없는 청년과 서민들은 마음을 줄 데가 없다. 일전에 만난 한 20대 대학원생은 폐부를 찔렀다. 나름 열심히 촛불을 들었었다는 그는 조금 귀찮다는 듯 말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은 부자정권 시즌 2 아닌가요?” 

김용균씨는 월급 211만원을 받으며 일하다 24세의 나이에 죽었다. 택배기사들은 하루 15시간씩 일하고 월급 15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이번주 대통령 지지율을 올리는 데 일조한 특수진화대 소방관들은 하루 일당 10만원을 받는 비정규직이다. 이런 이들이 얼마나 일하고 어떻게 해야 돈을 모으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까?

이런 것이 촛불을 통해 우리 사회가 합의한 ‘기준’이지, 청와대의 수십억 자산가들이 35억원 주식 투자자에게 발부하는 ‘합법’이 기준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정쟁 중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미선 헌재 재판관 후보 문제를 둘러싼 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법-불법’ 말싸움도 정치의 본질을 가린다. 10% 부자들의 당이 ‘진보’를 표방하고 그보다 더 한 토호와 투기세력의 당인 한국당이 서민을 대변하는 양 쇼하는 정치가 지겹다. 

2년간 ‘적폐청산’이 귀가 따갑게 외쳐지는 와중에도 한국당은 ‘협치’의 대상이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암묵적 야합은 모든 개혁 과제를 허공에 날렸다. 이제 선거법 개정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상속받은 재산과 세습된 기회를 잘 굴리고 금융자본주의에 편승하여 부를 이루는 것을 ‘능력’이라고 부르는 이데올로기와, 세습형 또는 건물주형 ‘능력자’가 법·정치권력·명예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는 사회를 바꿔보자는 것이, 그리고 노동의 권리와 혁신의 가치로 사회를 다시 디자인하자는 것이 촛불 아니었나.     

정부·여당은 노동법 개악마저 시도하고 있으니, 이 정부는 촛불정부가 아니라 촛불횡령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30%대로 회복된 한국당의 지지율이 보여주듯, 세대·계층·지역을 넘어 부패하고 무능한 ‘부자정권 시즌 1’(시즌 1은 조금의 단속(斷續)을 거쳐 70년째 지속되고 있다)을 잠정 중단시켰던 촛불의 동맹은 와해되고 말았다. 그 와해의 책임은 물론 비핵화 문제 이외엔 아무 일도 안 한 현 정부·여당에 있다.(한귀영,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엄중한 민심’ 한겨레 2019·4·5) 

경제민주화와 정치개혁을 바라는 마음은 집권당과 기득권체제에 기만당하고 있다. 제도개혁이 또 무산됐으니 다시 아래로부터의 힘겨운 운동이 필요해진다. 환멸을 견디며 촛불의 가치를 중심으로 또 시민의 힘을 결집해야 한다. 

더 많은 여영국들이, 그리고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새롭고 당찬 반기득권 젊은 정치인도 필요하다. 29세의 여성 정치인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미국의 젊은 세대에 큰 공감을 일으키고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그의 소수성이나 가난한 바텐더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민주주의(민주사회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대학 등록금 무상화 및 부유세 같은 청년세대에 희망을 주는 진보적 정책 덕분이다. 

우리 사회에도 오카시오코르테스 같은 인재가 많이 있을 것이다. 1년 남은 총선에 대비하여 새 청년 정치인 진출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될 때가 아닌가? 언론인·지식인들은 그들을 찾아내고 부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청년들도 단결해서 자신들의 대표자들을 국회에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부유세, 토지공개념, 기본소득, 성평등, 환경정의 같은 가치로 단결하여 1% 특권계급과 10% 부자들의 카르텔에 파열구를 내도록 힘을 합쳐 지혜를 짜야겠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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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내 주변에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서로 키우고 있는 녀석들 사진을 교환해서 보기도 한다. 나 역시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들 사진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지인이 ‘맘에 상처받을 일은 없겠다’라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왔다. 자식이든 손주이든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는데 강아지들은 그럴 일이 없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왜 사람들이 반려견이나 반려묘와 같이 있으면 행복감과 편안함을 느낄까? 그것은 상대가 나를 어떻게 여길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남녀관계가 가장 좋으면서도 또 가장 불안한 관계인 이유는 늘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상대의 평가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참으로 오묘한 존재이다. 혼자 있고 싶어하면서 또 혼자 있기를 싫어하고, 같이 있고 싶어하면서 또 같이 있기를 싫어한다. 나를 주장하고 싶어하면서 또 나를 주장하기를 두려워하고, 상대의 평가를 두려워하면서도 그 평가를 신경 쓰지 않게 되면 더 이상 그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정신적 건강함이란 이 모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의 축이 잘 버텨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축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대의 평가에 흔들린다는 것은 나의 축이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출처:pixabay

어린아이일 때 우리는 연약할 수밖에 없다. 아직 나의 축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하는 자기 이미지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남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사실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지를 안다. 다행히 부모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이 그러한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수용해주면 아이들은 자기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갖게 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린 끊임없이 그렇지 않다는 경험에 직면한다. 할 수 있다는 격려보다는 “안돼”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추구하는 게 좋은 것인지,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의심이 생겨난다.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가 더 커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스스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더 커진다. 즉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이 보는 나보다는 내가 보는 나의 영역이 더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이 건강해야 한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죽는 날까지 나와 같이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므로 그런 나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가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다음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내 인생의 리더는 바로 나 자신이므로 나의 변화를 주도할 사람도 바로 나라는 생각이야말로 흔들림 많은 인생에서 나를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팀목은 기본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토양에서 싹튼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나의 친구이고 내 인생의 리더는 바로 나이며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주체도 바로 나라는 생각의 통합이다. 그런 통합을 가질 때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처럼 소중한 나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즉 나의 삶은 나 자신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실제로 우리가 여러 소소한 부분에서 자신에게 얼마나 야박한지를 안다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통합을 이루려면 일단 먼저 나 한 사람을 사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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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픈 ‘기억의 꽃’이 영그는 4월, 그 16일을 맞이했다. 사랑하는 이를 이유도 모른 채 떠나보낸 유족, 갑작스레 닥친 참사에 영문도 모르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삭이기는커녕 갈수록 선명해지는 그날이다. 올해도 서울과 안산, 진도 등에서 추모와 애도의 노란리본이 물결치고,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5년 전의 다짐과 약속을 되새겼다. ‘진실규명’의 외침을 멈추지 않았던 유족과 생존자들이 있었기에 한국 사회는 세월호와 그 교훈을 잊지 않았다. 한편으로 지난 5년은 안전보다 이윤을, 생명보다 효율을 중시해 생때같은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와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 확인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 아픈 4월이 오면, 어김없이 세월호 참사와 유가족들을 욕보이고 조롱하는 야만이 공론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참담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17일 (출처:경향신문DB)

자유한국당 경기 부천소사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차명진 전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세월호 유가족을 욕보이고 조롱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피해자의 고통을 모욕하고 제압할 대상으로만 대해온 박근혜 정부와 한국당의 병든 유전자의 재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체 팔이’ ‘죽음의 굿판’ 같은 짐승의 언어로 자식 잃은 부모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더니, 아직도 이런 몰상식한 폭언을 지껄일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문제는 차명진과 같은 패륜의 생각을 갖고 행동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버젓이 국회의원인 한국당 정진석 의원은 16일 “오늘 아침 받은 메시지”라며 “세월호 그만 우려먹으라 하세요. 죽은 애들이 불쌍하면 정말 이러면 안되는 거죠.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안상수 의원은 “불쌍한 아이들 욕보이는 짓들이죠”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날이 오면’, 차마 잊힐 리야 잊힐 리 없는 아픔에 무너지는 유가족들에게 위로는 못할망정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 있는가.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세월호와 관련된 부적절하며 국민정서에 어긋난 의견표명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세월호 유가족과 국민들께 당 대표로서 진심 어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들의 세월호 유가족 모욕과 조롱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찾아볼 수 없는 만행이다. 우리 사회가 수용할 한계를 넘어섰다. 황 대표의 사과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당사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 물리기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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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법안 패스트트랙 지정 시한은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역구 225석·비례 75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내용으로 하는 선거제 단일안에 합의했다. 선거제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최소 270일, 최대 330일 이상이 소요된다. 내년 총선 일정을 고려할 때 올해 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선 이번주 중에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은 “여야 4당이 국민의 정치열망을 받드는 결단을 내릴 것인지, 이대로 개혁을 포기할 것인지 (이번주까지) 결론을 내달라”고 최후통첩한 바 있다. 

그러나 선거제 단일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과 함께 묶이면서 사실상 표류 중이다. 바른미래당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해 ‘기소권 없는 공수처’를 주장한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기소권 없는 공수처는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 바람에 선거제 개편안은 뒤로 밀리면서 총선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도 지키지 못했다. 이번 총선 역시 후보자들은 자신의 출마 지역이 어떻게 될지 확실히 알지도 못한 채 득표 경쟁을 벌일 판이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뒷전으로 두고 정쟁만 벌이는 현실이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4월 국회는 개회 1주일이 지나도록 의사일정도 잡지 못한 채 공전 상태다. 국회는 올 들어 1, 2월에는 장외싸움에 몰두하다 본회의 한번 열지 못했고, 3월 임시국회도 파행을 거듭하다 비쟁점 법안 몇 개 처리하고 막을 내렸다. 4월 국회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이번 국회마저 여야 대립으로 민생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한다면 국회는 돌팔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근본 이유는 유권자의 지지만큼 의회 권력을 배분하자는 데 있다. 표심의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제 개혁은 여야의 대국민약속이기도 하다. 바뀐 선거제로 내년 총선을 치르기 위해선 더 지체할 수 없다. 민생·개혁법안을 쌓아놓고 힘겨루기만 벌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지겹다. 시민은 정쟁이 아니라 민생을 살리는 정치를 원한다. 4월에는 제발 일하는 국회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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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여권에 비상등이 켜졌다. 4·3 재·보선 결과가 청와대와 정부·여당에 대한 경고라는 데 반론을 찾기 어렵다. 문제는 방법과 실행이다. 때맞춰 당으로 돌아온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하 김부겸)이 조명되고 있다. ‘김부겸 역할론’이다. 

김부겸은 여러모로 애매한 정치인이다. 28년 정치이력에도 한마디로 리더십을 규정하기 어렵다. 물론 스스로도 경계인을 자처했다. 민청학련 세대와 86 전대협 세대의 틈에 있었다. 민청학련 선배들처럼 사형선고도 받지 않아 극적 스토리도 없고, 86그룹 후배들처럼 노선투쟁도 하지 않아 탄탄한 조직도 없다. 구시대의 막내도, 새시대의 맏형도 되지 못했다. 김부겸은 보수의 엘리트로 꼽히는 대구 경북고 출신이다. 그러나 서 있는 곳은 개혁 진영이다. TK(대구·경북) 주류지만 실존적으론 비주류다. 1991년 ‘꼬마’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출신 이미지가 강하다. 평생 불일치의 연속이다. 게다가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의 아들도 아닌 ‘아버지 없는’ 당내 유일한 대선주자다. 눈칫밥에 익숙하다. 김부겸의 장점인 통합·갈등조정 능력이 생존술로 치부되고, 1순위(주류)가 성에 차지 않아야 찾게 되는 2순위(비주류)였다. 

‘김부겸 역할론’은 기대치일까, 실체가 있는 걸까. 김부겸은 오랫동안 여권의 하로동선(夏爐冬扇·훗날을 위해 급하지 않은 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당장 쓸모없지만 나중엔 필요한 존재. 여권은 당장 필요하고 쓸모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플랜A’와 완전히 다른 ‘플랜B’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김부겸은 하로동선(기대치)에서 플랜B(실체)로 가는 길목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해찬 대표를 제외하면 ‘정치하는’ 의원이 보이지 않는다. 민심 체감도가 높은 초선 의원들조차 입을 다물고 있고, 유력 대선주자 대부분은 당 밖에 있다. 4선 의원, 장관 이력까지 더한거물급 정치인으로 당 존재감 부각에 기여할 것이라는 게 김부겸 복귀의 첫 기대치다. 대구·경북에 대한 여권의 위기의식은 4년 전보다 커졌다. 지역에선 “문재인 정부에 근본적 불신이 커졌다”고 토로한다. 내년 대구 총선이 김부겸에게는 생존 바로미터, 여당엔 전국정당 교두보, 문재인 정부엔 탈87체제 출발선이라는 것. 두번째 기대치다. 정부 부처가 청와대에 가려져 있다는 비판이 가라앉지 않는다. 민주당 정부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럼에도 재난 대응, 불법 동영상 유통 대책 등 김부겸 장관이 이끈 행정안전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씨 뿌렸던 시스템정치를 싹 틔웠다. 문재인 정부 국정철학을 당에 접목할 수 있으리란 전망, 세번째 기대치다.

김부겸은 하로동선에 머물지 않고 플랜B가 될 수 있을까. ‘대선주자의 귀환’이라는 첫 기대치부터 짚어본다. 무엇보다 결기가 필요하다. 당 대표 출마 문제를 대통령에게 떠넘겼던 그런 정치력으론 대선은 힘들다. 의원들의 당부를 옮긴다. “관계에 너무 치중한다. 조정자 말고 추진자가 돼라” “무게에 맞는 브랜드를 만들어라” “과감해져라. 그래야 (김부겸) 사이즈를 가늠하고 지지자들도 결집한다”….

민주당에서 ‘영남 출신’은 영남 개혁세력과 호남 지지층의 결합을 이뤄내는 최상의 대선 전략이다. 중도·개혁 보수층 확장의 토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남은 민주당에 가혹한 현실이 됐다. 김부겸도, 지도부도 당 영남특위 강화를 우선 목표로 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부겸’이라는 인물 효과가 지난 총선 이후 3년 동안 세력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객관적 환경도 좋지 않다. 합리적 보수라면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막말하는 극우정치에 등 돌릴 법한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상승세다. 합리적 보수·중도층은 현실정치에서 발언권이 없거나 허상이 아닐까 의아할 정도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패배한 정당에 승리하는 개인은 없다. 대구에서 ‘김부겸 플러스알파’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정권 재창출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장관 출신이라는 기대치다. 김부겸에겐 신한국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닌다. 자서전 제목도 오죽하면 <나는 민주당이다>일까. 장관 2년의 소회를 물었다. 곧바로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막중해졌다”고 답했다. ‘손님’이 아니라는 말로 들렸다. 당청은 ‘민주당 정부’라는 대선 공약이 무색할 만큼 주종관계로 굳어졌다. 김부겸 ‘장관’의 복귀가 당청에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학습효과가 있다. 각자도생하다 폭망한 두려움이지. 당이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면 집단적 목소리를 모아 청와대에 전달할 것이다. 다만 절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와 차별화에만 급급하면 우리의 가치는 물론 세력 전체가 엉망이 된다”고 짚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다. 한국당 일각에서 ‘징하게 해처먹은 세월호 유족들’이란 망언을 쏟아냈다. 좋은 정치의 부재를 통탄했던 지난 5년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크로케의 ‘모든 역사는 현대사’란 말을 새긴다. 세월호 참사는 좋은 정치의 가능성을 여전히 묻고 있다. ‘플랜B’는 정치권 모든 ‘김부겸(들) 역할론’의 미래여야 한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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