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세금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출연연구기관(정부출연연구기관)에 정부가 질문을 던진다. 그대들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가? 정부가 목적을 갖고 만든 기관에 거꾸로 정체성을 묻는 경우다. 어처구니가 없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소속되어 있는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지난해 정부가 낸 이 숙제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과 책임을 근거로 예산을 배정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각 기관은 공공성과 수월성 있는 성과를 바탕으로 기관의 책임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사업 포트폴리오도 새롭게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은 행여 정부의 정책 방향과 어긋나지 않을까 고심하고, 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기관의 정체성과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면 지속성을 담보로 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각 연구기관의 역할과 책임 수립과정은 기관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외부에 내세울 만한 대표적 연구성과가 그 기관을 대표하는 색깔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기관의 수월성 있는 연구성과란 무엇인가? 이것은 대부분 고가의 최신 연구장비, 풍족한 연구비, 많은 참여연구원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온 결과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연구성과가 해당 연구원의 정체성과 더불어 역할과 책임을 규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정부의 질문에 답을 주는 기득권자들은 자신이 가진 장비, 연구비, 그리고 성과물로 포장하여 엉뚱한 답을 정부에 주는 경우도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관구성원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자신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업이 연구원의 주요 핵심사업이 되는가 하면, 사업을 위한 신규 구매 장비 역시 기득권자들을 위한 개인 연구장비가 연구원의 대표 장비로 포장되는 것이다.

연구원의 핵심사업을 설정하는 과정도 살펴보자. 자신들의 대표적 연구성과가 가령 생명공학과 신약 분야라고 예를 들자. 25개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원 중 과학기술연구원, 생명공학연구원을 비롯한 족히 절반이 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이 분야의 핵심을 사업 포트폴리오에 넣었을 것이다. 정부가 원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쟁력 확보와 중복을 피한 기관 특성별 맞춤형 예산안이 어떻게 그려질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떻게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사업이 최전방에 놓일 것도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초기술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이와 더불어 미래를 바라보며 원천적, 장기적 연구를 수행해야 할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근시안적 결과물에 희희낙락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제시한 안을 전문가 검토를 통해 사업 항목을 세심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역할과 책임을 확정한 8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예산요구안은 최대한 보장하겠다고 했다. 아직 확정하지 못한 나머지 기관의 초조함이 읽힌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을 다루는 정부의 대응방식은 누가 봐도 서툴고,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받는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의 역할과 책임은 국가가 규정하는 것이 맞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각자의 기능에 맞는 비전과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책임과 역할을 다한 기관이 있다면 과감히 정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역할과 책임이 중복된 기관은 통폐합이 답이 될 수도 있다. 

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과제중심제도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언제까지 토론만 하고 있을 것인가. 탁상공론보다는 이제 답을 내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예산이라는 목줄을 쥐고 흔들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좌지우지하는 정부가 아니라 진정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정부출연연구기관 수장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엄치용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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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운동이 있었지만 독립운동은 질적으로 전혀 달랐다. 헌신과 희생이란 말을 자주 쓰지만 그 말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독립운동가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했다.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또는 인권운동과 달리 어디든 기댈 구석조차 없었다. 자신은 물론 가족의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연일 승승장구하던 제국주의 일본과의 싸움은 승산 없어 보였고 독립은 몽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풍찬노숙도 끝없이 반복했다. 조선 최고의 갑부였지만 나라를 빼앗기자 만주로 떠나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이회영의 형 건영은 상하이에서 굶어죽었다. 당장의 불행은 물론 자식들의 미래까지 불행해질 게 뻔한 상황에서 독립운동에 나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돈이 유일신의 자리를 차지한 천박한 자본주의에 길들여지고 실용주의가 어떤 이념보다 앞선 자리를 차지하는 요즘의 우리에게는 독립운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일제에 빌붙은 족속들이 당대는 물론 후대까지 호의호식을 이어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헌법 제121조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훼손해도 흔한 윤리위원회에 회부되는 일은 없는 세상이다. 원칙도 염치도 인간의 품위도 돈 앞에서는 무기력해지는 세상이기에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는 더욱 각별하다. 독립유공자를 정성을 다해 모셔야 하는 까닭은 분명하다. 그분들 덕에 해방도 건국도 가능했다. 대한민국이 이룬 모든 성취의 근원에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이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그동안 대한민국이 독립운동가를 모시는 방식은 너무 편협하고 옹졸했다. 제일 먼저 이념의 잣대로 갈랐다. 사회주의 계열은 유공자로 모실 수 없다는 거다. 독립의 공을 어떤 실천을 했는가를 두고 따지는 게 아니라, 이념의 색깔이 어땠는지 묻고 따지는 거다. 유치한 냉전적 아집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겨우 이 엉터리 기준을 벗어나려 하고 있다. 해방 전 사회주의 활동은 용인하겠다고 했다가, 지난해가 되어서야 해방 후 사회주의 활동에 대해서도 적극 검토하겠단다. 입장 변화는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단서가 없는 건 아니다.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만 검토대상이란다.

밀양 사람 김원봉. 일본 제국주의가 그에게 내건 현상금이 김구보다 많았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탁월한 독립투사였다. 제국주의엔 치명적이었고, 우리 겨레엔 영웅이었다. 누구보다 치열한 독립투쟁을 했고 빛나는 공적이 있지만, 그는 문재인 정부의 보훈 정책에서도 배제되었다. 국가는 지금껏 그를 외면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독립에 공이 있는지 아닌지를 따져 공이 있다면 예우하는 게 독립유공자 지정의 핵심인데, 해방된 이후의 행적을 두고 독립운동의 공마저 평가하지 않겠다는 거다.

북한정권과의 연계 여부가 독립유공자 지정의 기준이라는 것은 정당성도 없거니와 법률  근거도 없는 엉터리다.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은 “일제로부터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공헌한 독립유공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기 위한 법률이다. 법률이 정한 기준은 “1945년 8월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에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한 사실이 있는 자”이다. 다들 인정하듯, 김원봉은 해방의 그날까지 독립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인데, 독립유공자로 모시지 못할 까닭이 없다. 핵심은 간단하다. 1945년 8·15를 기준으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은 독립유공자로 지정하면 그만이다.

의열단장 김원봉은 마치 독립운동을 위하여 태어난 사람 같았다. 열여덟 나이에 독립투쟁에 헌신하고자 중국으로 망명을 했다.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실행’하겠다며 의열단을 조직했다. 정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행동했다. 7년 동안 23차례의 공격을 통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의 독립투쟁은 황푸무관학교, 조선혁명간부학교, 조선의용대, 민족혁명당, 대한민국 광복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숨가쁠 만큼 중단 없이 계속되었다. 해방의 그날까지 김원봉의 항일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임정 요인으로 귀국한 다음에도 김원봉의 고군분투는 멈추지 않았다. 여운형과 뜻을 같이하며 좌우합작을 위해 애썼다.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여하였으나, 북에 남았다. 김원봉은 “북한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한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뜻을 함께했던 여운형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고문을 당하고 뺨을 맞는 등의 모욕을 당한 다음이었다.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내기도 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아버지는 유폐되었다 굶어죽었고, 네 명의 형제와 다섯 명의 사촌이 학살당했다. 그리고 자신은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중화민국 장제스의 사주를 받은 국제간첩이라는 혐의였다. 누구보다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남에서는 노덕술 따위에게 ‘빨갱이 두목’으로 몰렸고, 북에서는 자유진영과 내통한 국제간첩이 되었다. 남과 북 모두에 버림받았다.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김원봉에 대한 건국훈장 추서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김원봉은 다시금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독립운동가 서훈 문제가 자유한국당 특유의 색깔론과 만나면서 정치적 쟁점이 된 것이다. 독립운동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정치 공세가 안타깝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제와 답은 간명하다. 김원봉이 독립운동에 공적이 있으면 법률과 절차에 따라 그 공적을 평가하면 된다. 공이 있으면 상을 주고, 잘못이 있으면 벌을 주는 게 국가의 기본이다. 대한민국이 기본이 바로 선 국가였으면 좋겠다. 독립운동가조차 기억하지 않는 국가에 미래는 없다. 

경술국치와 같은 비극은 다시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기대하려면, 지금 이 문제를 잘 풀어야 한다. 원칙대로만 하면 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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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왜곡마라 2019.04.21 0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원봉이는 단순월북이아님 625전쟁당시 국가검열상國家檢閱相,국방상(國防相)으로 남침의 깊이관여합니다 fact체크-> https://www.unamwiki.org/w/%EB%B6%81%ED%95%9C_%EC%B4%88%EB%8C%80_%EB%82%B4%EA%B0%81



    서울대학교국사학과 조교의 김원봉실체fact체크->
    1 http://www.ilbe.com/6893431720

    2 http://www.ilbe.com/6901524475

    전범625재판소에 세워야할인물인데 문재앙이는 훈장서훈줘야한다고 개소리지껄임 문재앙이 존경한다고 수백억들여 5월달에 중국공산당이후원하는기업과 합작한 의열단출신 공산당 미화드라마 `이몽` 개봉박두

  2. 기자 역삭왜곡마라 2019.04.21 0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 니할애비가 공산당에 죽음 이딴거 못쓰고 625 전쟁중에 공산당에 학살당한 500만 동포를 생각한다면 이런글 못쓴다

    김원봉가족이 김원봉 북한행적때문에 피해본것만 눈에 들어오지?

    이젠 김일성이도 훈장주겠다는거냐? 그게 진짜목표일듯

    김원봉이는 노덕술떄문에월북한게아닌 지향점이 같은 공산당 동지가 많은 북한에 간거임 김원봉의 남파간첩 총지휘했다는 경향신문기사에나왔고 6.25전쟁중에는 김일성에게 직접 전쟁잘했다고 훈장까지받았다

    우리가 왜 친일파를 비판하죠? 친일파가 민족을 선택한게아닌 결국 민족보단 일본의권력을 선택했기떄문아닙니까? 김원봉이도 마찬가지에요 김원봉은 친일파처럼 그의 대상은 일본권력이 아닌 그는 공산당권력을 자신의민족보다 위의두고 선택한겁니다 그래서 공산당이 아니면 625 전쟁으로 자신의 민족에게 총질할수있는거였겠죠 진정 민족을생각했다면 625전쟁중에 공산당 검열상 노동상 최고 고위직을 수행할수없는겁니다 그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민족대신 공산당권력을 선택했고 누렸습니다

  3. 지나가던이 2019.06.06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원봉이 독립투사였다고 한국에서 그를 독립유공자로 처리해줘야 하나요?
    북한에서 유공자 대우 해줘야죠. 그는 이념을 그쪽으로 정했으니

  4. ㅇㅇ 2019.06.07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 전쟁으로 우리나라에 크나큰 상처를 준 인물을 독립운동했다고해서 유공자로 인정하라고?
    헛소리를 길게도 늘어놓으셨네.

    북한에서나 유공자로 인정하라고 하세요. 우리나라에서 왜 해줍니까?

  5. ㅇㅇ 2019.06.07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6.25 전쟁 이야기는 쏙 빼놓고 이딴 개소리를 써놓은거 보면 의도가 다분하다 진짜.

  6. 문갱이 2019.06.07 14: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한빨갱이중에 독립운동가가 한둘이냐? 그건 그들이 알아서할일이지.왜 남한에서 북한놈들까지 신경쓰냐?

성(聖)과 속(俗)을 둘로 구분하고자 하는 관념은 오래됐다. 삼한시대 속세에서 쫓기는 자들은 소도(蘇塗)로 도피했다. 그곳은 구원받을 수 있는 성소였다. 성과 속의 이분법에서 종교가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지난해 9월 ‘전국민주연합노조 산하 대한불교조계종지부’(조계종 노조)가 출범하자 많은 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했다. 불교 종단의 첫 노조 탄생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성과 속의 이분법’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조계종 노조는 특별하지 않다. 스님들의 노조가 아니다. 조계종단 산하의 사찰, 기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만든 평범한 노조다. 이 노조가 지난 4일 자승 스님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조계종이 자승 총무원장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 마련을 위해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노조는 법적 고발과 함께 자승 스님에게 사실을 밝히고 참회하라고 요구했다.

보름이 지났지만 자승 스님 측은 반응이 없다. 대신 조계종 총무원이 나서 노조 간부 3명을 보직 해임하고 ‘산불피해 복구 지원’ 명목을 붙여 양양 낙산사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노조 간부들은 졸지에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건 총무원의 움직임이다. 자승 스님을 조사해야 할 총무원이 대변인이 되어 비호에 앞장서고 있다.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조계종 총무부장 스님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낙산사 대기발령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산사 수행승은 노조를 몰라도 된다. 그러나 불교 최대 종단의 고위급 승려가 할 말은 아니다. 통념과 달리 성과 속은 둘이 아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성과 속>에서 “성과 속은 세계 안에 있는 두 가지 존재양식”이라고 말했다. ‘성(聖)’ 자는 누군가의 말(口)에 귀(耳) 기울이는 모습에서 나왔다고 한다. 성직자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유마거사)까지 바라지 않지만, 노조 활동을 빌미로 천애 바닷가로 내몰아서야 되겠는가.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인데, 조계종단의 자비는 요원하기만 하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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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는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해 증명되지 않은 ‘잠재적 위해성’과 ‘환경의 관계성’을 인정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런 판결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봄꽃이 만발하지만 우리 숲에는 봄이 오지 않는다. 농약으로 얼룩진 침묵의 봄이 이어진다. 이맘때면 계곡물이 모자라게 울어대던 개구리와, 짝을 찾느라 분주한 새들의 울음소리가 잔인한 엔진톱 소리로 바뀐 지 오래다. 가장 깨끗해야 할 숲속에 화학살충제가 뿌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명목으로 하늘소를 죽이기 위해 광범위하게 살포되는 살충제는 하늘소뿐만 아니라 유익한 대다수 숲속 곤충들을 죽이며, 특히 꿀벌집단의 붕괴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최근 증가율이 가장 높은 암인 유방암과 관련 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정부는 늘 안전하다고만 한다. 과연 그럴까? 작년 8월 프랑스는 우리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산림에까지 뿌리는 이 살충제를 경작지에서조차 전면 금지시킨 것이다. 프랑스의 선택이 주는 의미는 뭘까? 반세기 전 사용이 금지된 DDT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흙에서 닭으로, 다시 달걀로 옮겨가며 ‘살충제 달걀’로 우리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안전하다던 DDT가 그랬듯 네오니코티노이드계열 살충제 또한 이미 많은 국가에서 사용을 금지했다. 

재선충 발병지역에서 양서류가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산림에 광범위하게 뿌려진 살충제는 무차별적으로 곤충을 죽이고, 곤충을 먹이로 하는 개구리들 또한 없애고 있다. 이미 지렁이를 포함한 토양무척추동물에게 강하게 독성이 미치는 것도 밝혀지고 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살충제 남용 문제를 폭로한 이후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은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바뀐 것이 없어 보인다. 당시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을 막기 위한 살충제 남용은 소나무재선충에 대한 지금의 정부대응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이 책의 몇 단락을 옮겨본다. 

네덜란드 느릅나무병은 1930년경 유럽에서 들여온 목재에 숨어서 건너왔다. 느릅나무 껍질에 사는 딱정벌레는 이 병을 다른 나무로 옮긴다.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매개체인 딱정벌레를 없애는 방법이 자주 이용된다. 특히 느릅나무가 번성하는 지역에는 약제의 집중 살포가 일상화되었다. 적은 양이 살포된 1954년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죽어가는 울새가 서서히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화학물질이 살포된 지역은 치명적 함정이 되어, 그곳을 찾아온 울새들은 일주일 뒤 모두 죽고 말았다.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들은 그 약품이 ‘새에게는 무해하다’고 강조했지만 울새들은 바로 그 약품 때문에 죽어갔다.”

강력한 농약은 해충인 느릅나무딱정벌레뿐 아니라 가루받이를 돕는 곤충, 포식성 거미 등 모든 곤충을 죽인다. 가을이 되어 땅에 떨어져 축축해진 낙엽은 아주 천천히 분해된다. 지렁이들은 가장 좋아하는 썩은 잎을 먹어치워 분해를 돕는다. 그런데 나뭇잎을 먹은 지렁이들은 어쩔 수 없이 살충제까지 흡수하게 되고, 체내에 그 살충제가 농축된다. 물론 많은 지렁이가 죽었지만, 살아남은 지렁이들은 독극물의 ‘생물학적 증폭기’ 구실을 했다. 많은 연구를 통해 해충 억제 측면에서 새들이 여러모로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조절능력을 화학약품에 흠뻑 젖은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살충제가 해충뿐 아니라 그 천적인 새들도 함께 죽이기 때문이다. 살충제가 뿌려지고 얼마 후엔 벌레들이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벌레의 수를 조절해줄 새들이 없다.

“해충의 천적들이 농약 때문에 사라진다면, 새로운 해충이 등장해 다른 나무들을 공격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통제할 것인가?”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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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당과 야 3당이 합의한)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제도”라며 “이는 절대적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터넷을 30초만 뒤져봐도 확인되는 가짜뉴스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이 채택하고 있다. 소수의견을 반영하고 사표를 줄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가 최근 흐름인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보수언론들도 의석 수 증가를 통해 이를 간접 비판할 뿐 비례대표 확대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한다. 이 제도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강화하고 좌파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황당 그 자체다. 이는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5년 2월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안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금 한국당이 여당이던 시절, 정치권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제도가 어떻게 좌파연합을 위한 것인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선거 연령을 18세로 한 살 더 낮추자는 논의는 더 말하면 입만 아프다. 한국당은 정치적 식견이 부족한 고3생들이 입시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데 듣기 민망하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만 투표 가능 연령이 19세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일본은 이미 3년 전, 그것도 20세에서 한꺼번에 두 살이나 낮췄다. 아무 문제 없었다. 

한국당이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근거가 하필 ‘선거제도 법정주의’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헌법 41조 ③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에 관한 각종 사항을 법률로 정함으로써 게리맨더링 같은 부조리를 막자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규정의 취지는 외면하고 ‘선거제도는 법으로 정한다’는 데만 눈이 멀어 있다. 법을 제·개정할 권한이 오롯이 국회에 있다는 점을 악용해 선거제도를 멋대로 재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은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고 있다. 모두 법정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문제는 이런 폐해가 점점 더 확산·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지방의회의 양당 독식을 막기 위해 1인 선거구를 줄이고 2~4인 선거구를 늘리는 개선책이 제시됐다. 그러나 양당이 지배하는 지방의회가 이를 모두 무산시켰다. 그 결과 민주당과 한국당이 전체 의석의 90%를 차지했다. 국회의원들을 본받아 지방의회 의원들까지 제 욕심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사실 나 원내대표식 화법으로 말하면, “선거구제 개편을 놓고 의회가 지겹도록 다투는 곳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밖에 없다”. 일본이 국제적인 흐름과 고령화 추세에 맞춰 선거연령을 낮추듯 대부분 국가들은 선거제 개혁안을 별 이견 없이 수용하고 있다. 이런 과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선진국들은 헌법에 관련 규정조차 없다. 유독 한국에서 이것이 첨예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거대 양당, 그리고 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개혁은 못하면서 개혁 담론만 폭발하는 한국적 상황이 선거제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은 한때 선거구제 개편에 응할 테니 개헌도 함께하자고 했다. 여야 중진들은 국무총리를 국회가 선출하는 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시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법권을 남용하면서 행정권까지 넘보겠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반대하려다 보니 자신들이 무슨 주장을 하는지 모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한국당의 억지는 이미 시민이 위임한 선거제도 법정주의의 범위를 벗어났다. 더불어민주당도 현행대로 가자는 한국당에 내심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시민들은 안다. 국회의 이런 행태를 방관해서는 안된다.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앙선관위에 법률 제출권을 줄 수도 있고, 국회에 선거구제 개편을 담당하는 자문위원회를 두되 국회는 그 법안을 통과시키게만 하는 대안도 있다. 지난해 국회 개헌자문위원회 내에서 이 문제가 제기되어 다수 자문위원들이 호응했다. 

“누구도 자기 재판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Nemo iudex in causa sua)”는 법언(法諺)이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게 적용될 선거구제를 결정하는 것은 이 원칙에 어긋난다. 최근 새로운 문제로 대두된 이해충돌에도 해당한다. 현행 헌법도 대통령 임기를 늘리는 개헌을 할 경우, 개헌안이 제시될 당시 대통령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법을 만드는 게 국회의원이라 해도 이 원칙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시민의 뜻을 무시하는 삼류 국회에 온전히 선거구제 개편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던져 놓은 격이다. 헌법 1조를 새기며 진지하게 선거제도 법정주의의 보완책을 모색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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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대의 한 창업동아리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에 자신들이 사용하던 볼펜을 판매한다는 글을 올렸다. 취지는 이랬다. “좋은 기운을 전해드리고자 직접 손편지를 쓰고, 공부할 때 사용한 펜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해당 게시물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번지면서 학벌주의에 대한 개탄이 이어졌다. 결국 이 창업동아리는 사과문을 올리고 상품 판매를 중지했다. 

이 ‘우발적인 해프닝’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주술에 빠져 있는지 새삼 일깨워준다. 이 동아리는 ‘공부의 신’이 사용하던 볼펜을 사서 공부하면 ‘좋은 기운’이 수험생에게 전염되어 시험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다. 단지 ‘사물’에 불과한 볼펜이 현실세계에서 ‘실제 효과’를 발휘하는 주술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주술은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는 합리적 목적을 비합리적 수단을 통해 성취하려 한다.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는 합리적 목적은 부귀영화와 장수 같은 실제적인 것들이다. 대개 사람들은 일상의 합리적 수단을 통해 이러한 목적을 추구한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 수단을 활용해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으면 주술에 의지한다. 주술사는 초일상적 힘을 조작하여 현실세계에서 실제적인 목적을 얻으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세계에서 통용되는 합리적 목적은 ‘생존’과 ‘성공’이다. 한국 사회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으로 교육을 제시한다. 그런데 이 교육이 자극-반응 연쇄처럼 깊은 사유 없이 단 몇 초 만에 계속 답해야 하는 퀴즈 풀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잘 풀려면 교육받은 내용을 최대한 많이 기억하고 있다가 짧은 시험 시간 안에 모조리 토해내야 한다. 나무 위의 침팬지가 먹이와 적이 어디에 있는지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낸 학자들은 이를 ‘사진기억’이라 부른다. 한국 사회는 사진기억 능력을 테스트해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 차별대우한다.

한국 사회는 사진기억 능력이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은 곧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이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니저 맘’이 판치는 학벌자본 세습사회에서 개인의 노력만으로 사진기억 능력을 키울 수는 없다. 가족 전체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여력이 없는 대부분의 가족에게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사진기억 능력을 키우라는 미션이 부여된다. 하지만 침팬지가 아닌 바에야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벅차다. 공부라는 합리적 수단이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다. 서울대생이 쓰던 볼펜과 같은 초일상적 힘에 기대는 이유다.

우스꽝스럽지만 이 주술이 현실세계에서 실제적인 효과를 낸다. 사진기억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시험에 통과해서 세속적인 복을 마구 누린다. 최근 헌법재판관 후보 부부의 재산 내역에 많은 국민이 놀란 것은 그들이 무슨 엄청난 불법과 편법을 저질렀다거나 국민의 눈높이를 벗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사진기억 능력이 휘두르는 막대한 주술적 힘과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부부가 판사와 변호사로 한 20년 일하면 50억원대의 자산가가 될 수 있다! 전관예우와 같은 비윤리적인 행태를 통해서만 떼돈을 버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울대생이 쓰던 볼펜의 주술적 힘에 의지해서라도 사진기억 능력을 키우고 싶다. 물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힌 고도로 분화된 현대사회에서 참과 거짓을 인지적으로 식별하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시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진기억 능력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이 과도하게 복을 누리고 있다면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 서둘러 수요 공급 함수를 바로잡아야 한다. 우선 왜곡된 보상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다. 사진기억 능력으로 얻은 초일상적 힘을 활용해 복을 누리려고만 할 뿐 생존과 성공을 넘어서는 초월적 목적 하나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주술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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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 문제는 저출산만큼 관심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여건에서 18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포럼에 실린 ‘고령화사회, 경제성장 전망과 대응방안’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고서는 통계청의 장기인구추계를 토대로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미래충격을 전망했다. 현재의 노동환경이 변하지 않을 경우 미래세대는 ‘재앙 수준’의 부양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현재 고령화 속도와 기간을 감안할 때 2050년에는 인구의 36%에 불과한 취업자가 전체 인구가 소비할 재화와 서비스를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 고령으로 퇴장하는 노동자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저출산으로 노동인구가 줄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출산율 제고 및 여성과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을 통해 모자라는 노동력을 수혈하는 정책에 집중했다. 그러나 사실상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앞으로도 개선될지 장담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꾸준히 생산인력이 유입돼 은퇴 등으로 이탈하는 노동력 부족을 채워야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실은 암담하지만 노동력을 확보할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령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저출산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감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노인이 일하는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일정한 나이를 고령의 기준으로 삼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 ‘건강 100세’를 말하는 시대다. 생활환경이 좋아지면서 평균연령과 건강수명이 꾸준히 연장되고 있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65세, 사회적으로는 60세라는 노인의 기준 나이는 그대로다.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고령자’ 기준을 65세에서 75세로 올리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고무적인 부분은 최근 대법원이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린 점이다. 정년 연장 논의에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노인 연령을 높일 경우 노인 빈곤과 청년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간과할 수 없는 만큼 면밀한 보완책도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는 고령화 대책과 함께 추진될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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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전환된 17일 건강 상태를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중인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따른 구속기간은 종료됐으나 별개의 새누리당 공천개입 혐의로 징역 2년형이 확정돼 기결수 신분이 됐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호전되지 않았다. 불에 덴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석방을 요구했다. 재판을 거부하며 국가 형사사법을 모욕해온 장본인이 이제 와서 형사사법 절차에 따른 은전을 구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형사소송법은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형 집행으로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을 때’ 석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여대생 청부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영남제분 회장 부인 윤모씨가 허위진단서로 풀려난 사실이 드러난 이후 검찰청 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절차가 엄격해졌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박 전 대통령의 수형생활과 관련해 자료를 낸 바 있다. 식사를 거르지 않고, 매일 적정 시간 취침하고,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1시간 이내로 실외운동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암이나 이식수술 후 거부반응 같은 중한 질환 외에 디스크 같은 질환으로 형집행정지가 이뤄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유 변호사의 신청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집권한 현 정부가 고령의 전직 여성 대통령에게 병증으로 인한 고통까지 계속 감수하라는 것은 비인도적 처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몸도 아프고 여성의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한 발언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지금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의 건강을 염려해 석방론을 제기하는 건가, 아니면 문재인 정권을 향해 정치투쟁을 벌이는 건가.

박 전 대통령은 2017년 10월부터 법정 출석을 거부하며 건강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이번에는 건강을 이유로 풀어달라고 한다. 대통령 재임 중 그토록 법치를 강조하더니, 자신이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되자 법치를 제 마음대로 유린하려는 형국이다. 실정법적으로나 정치윤리적으로나, 그의 형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한국당도 이른바 ‘태극기부대’를 의식한 석방론을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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