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커뮤니티에 노인은 젊을 때가 좋았다고, 퇴사를 한 중년은 일할 때가 좋았다고, 일하는 청년은 학생일 때가 좋았다고 이야기한다며 당신의 인생은 언제나 좋은 때에 있다고 응원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감동을 받았다거나 위로가 된다는 호응의 물결을 기대했겠지만 댓글은 냉소로 가득했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인생은 힘들어진다는 거잖아요’라는 역설적인 댓글에 수많은 추천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저 말이 맞다고 낄낄댔지만 자조적인 웃음 속에선 정곡을 찔려 아픈 내색만 보일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요즘 무너져가는 일상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하나뿐인 집을 팔아 전세를 들어 살 집을 구해야 하고, 생계를 책임지게 되어 일을 그만두려던 계획도 불투명해졌다. 자연스레 복학을 예정했던 학교에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삶이 조금 버거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하나씩 다가올 예정된 불행이 떠올라 모든 의욕이 꺾이고야 말았다. 그럴 때면 타인의 불행과 비교해가며 내 처지를 위로하진 말겠다는 다짐도 무너졌다. 고작 이런 불행 앞에서도 힘들어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다들 어떻게 참고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기대할 것 없는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이어질 때마다 다르게 사는 법을 상상했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자가에 사는 4인 가족의 화목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이것은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확신이 간절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치유와 위로의 문장보다 정상적인 삶의 범주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내 삶을 인정해주는 언어였다.

곧 인정의 언어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불행을 개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지 않고 정확한 언어를 찾아 모두와 공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던 사람의 모습으로. 그래서 홀로 외롭게 싸우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여러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은 대안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행동으로 옮겨 작고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 그 자체였다. 그들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면 몇 번의 절망에도 다시 한 번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다. 나와 관계없는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며 얻은 낯선 감각이 내 삶을 구했다는 것을. 커다란 사고 앞에서 개인은 나약하지 않고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덕분에 절망이 회복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정도로 찾아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더 큰 무력감에 빠지기 전에 되도록이면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아직 자기 삶의 언어를 찾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살로 느끼는 부당한 일상, 지속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의 공존 가능성과 공동체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시간과 공간을 마련했다. 5월부터 수요일 저녁마다 참여연대에서 모일 예정이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영광만 돌아보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 우리가 이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 싶겠지만 우리가 달라진다. 이건 지금으로서 충분치 않은 삶의 의미를 찾아 다시 한 번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용감한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자 추천사다.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교육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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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가장 왕성할 때는 첫술을 떴을 때다. 눈과 코와 귀로 간접적인 맛을 느끼다가, 비로소 혀의 돌기에 닿아 몸이 바삐 돌아가기 시작할 때. 씹고 빨고 삼키면서 하나의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의 순간. 갈급과 충족이 시소를 타며, 먹으면서도 배가 고픈 시간. 그래서 다이어트를 할 때에는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식욕은 그보다 먼저 발동한다. 요리를 준비하는 시간. 무슨 음식을 만들지, 무엇으로 어떻게 조합하고 조리해서 어디에 어떻게 담아낼지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시간. 그때가 바로 첫술의 시간, 왕성한 식욕의 시간이다. 그래서 장을 볼 때는 배를 채우고 가야 한다. 

대부분의 다른 일들도 그러하다. 글에 대한 탐닉은 독서에서도 오지만 서점을 둘러보고 책을 고르는 시간에 더 강렬해진다. 정말 맛있을 것 같아, 몸에 좀 좋을 것 같아, 아주 새로울 것 같아. 독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강조부사가 붙는다. 그래서 내 책장에는 사 놓고 채 못 읽은 책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이미 다 맛본 음식 같아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시간은 얼마나 황홀한가. 막 도착한 여행지의 터미널은 얼마나 두렵고 신선한가. 등산로 입구의 팻말은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소설 쓰기의 첫 문장은 그렇게나 뜸을 들여서야 나오나보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너무나 왕성하기에.

어떤 일에 마침표를 찍고 난 후 되돌아보면 일을 하는 동안의 고난과 즐거움도 떠오르지만, 바로 그 ‘첫’의 기억만큼은 심장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강력하게 출몰한다. 처음 잡았던 그 사람 손이 따뜻했는지 축축했는지, 언제 깍지를 꼈다 풀었는지, 그때 바람이 불었는지 낙엽이 졌는지. 그 첫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랑은 갔어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식당을 접고 나서도 그와 관련된 사이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들은 그대로 두었다. 무언가 다른 방식을 도모하기 위해서였기도 했고, 이전의 존재까지 사라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곳에서는 깨끗이 비운 접시가 여전히 손님을 맞고 보낸다. 그 탓인지 아직까지도 예약 메시지가 오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 시간을 톺아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써도 줄지 않는 테이블 냅킨이나, 나 혼자서는 아무래도 평생 써도 못 쓸 것 같은 업소용 랩 따위의, 정리하고 난 후에 남은 물건들을 볼 때에도 그렇다. 찾아가지 않은 열두 개의 크고 작은 우산, 상표가 인쇄된 와인잔이나 맥주잔 같은 것들. 천년만년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많이 샀나, 비올 때 왔다가 비 그친 후 돌아간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수많은 사람과 오만감정이 널을 뛴다.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이윽고 식당을 준비하던 시절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곳에 이르면 사방이 고요해지며 묘한 황홀감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그 봄에서 여름. 나는 마드리드의 어느 시장에 있는 요리학원에 다녔다. 대단할 것 없는 과정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고 솜털을 돋운다. 수강생 대부분은 취업이나 개업을 목적으로 단시간에 요리를 배우려는 이들로, 시장에서 공수한 재료로 하루 세 가지 요리를 만들고 함께 시식하고 남은 것은 각자 도시락에 싸 가는 방식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음식을 보관용기에 먼저 담아 놓고 남은 것으로 시식을 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가져다 줄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각자 몫으로 가져가는 음식을 처치할 방도로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숙사 밥을 포기하거나 내가 만든 음식을 버려야만 했는데, 때마침 버스정류장에서 구걸하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음식을 건넸다. 그는 흔쾌히 받아주었으며, 다음날 맛있었다며 손등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만든 음식을 모르는 이에게 나눠주기 시작한 것은. 

내가 한 음식을 먹어준 사람은 셋이었다. 버스정류장 할아버지. 그는 늘 술병과 바게트를 끌어안고 잔다. 시장 입구에서 여행용 티슈를 팔며 구걸도 하는 알제리 총각. 여행용 티슈는 얼마나 오래 주물럭거렸는지 포장이 이미 해지고 더러워진 상태다. 판매보다는 구걸이 주목적. 마지막은 기숙사 근처 공원에서 노숙을 하는 인도 여인. 나무 그늘에 기대앉아 천천히 힘겹게 빵을 씹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가끔 주머니에 동전 하나를 주고받으며 안면은 있었지만, 문득 내민 도시락에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아무래도 잘못한 게야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기다렸다는 듯 내 앞을 막아선 그녀의 남편. 너 어제 먹을 거 주고 간, 걔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어, 그런 음식 처음 먹어봐, 아내가 지금 다른 데 있어, 인사를 꼭 하라고 해서, 그래서 기다렸어. 그런 말은 어찌 그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지 그 자리에 서서 울어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어느새 그 여름의 일상이 되었다. 요리를 배우고 도시락을 싸서 건네주고 시식평을 듣고. 어쩐지 순정했던 것만 같던 그 여름. 오늘은 뭐 배웠어? 너 요리 많이 늘었더라? 어제 돼지고기는 내 입맛엔 별로였지만, 내 친구는 맛있었대. 식당을 열기 직전, 그 여름의 임시개업 시절. 첫술의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바로 그 목소리.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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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대통령비서실, 교육부, 더불어민주당이 당·정·청 협의를 통해 2019년 2학기 고3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총 소요액의 정부, 시·도교육청 분담 비율은 50 대 50이라고 밝혔다.

당초 계획보다 앞당긴 정부의 노력을 지지하며 전국 시·도교육청과 함께 협력을 약속한다.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하고 서민 가정을 비롯한 모든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더 일찍 실현됐어야 한다.

다만 고교 무상교육의 재원 마련 대책에 관해서는 아쉽다. 시·도교육청과 충분한 협의와 설득 없이 교육청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게 고교 무상교육을 하지 않고 있고, 2018년 공교육비 중 정부 투자 비율 역시 초·중·고 87.1%로 OECD 평균 90.4%보다 낮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고교 무상교육 실행방안 연구(2013)’ 보고서도 “우리나라가 고교 무상교육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이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예외적인 공교육 체제로 비친다”고 지적하고 있다. 

9일 고교 무상교육 시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열린 열린 당·정·청 협의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그동안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고교 무상교육을 위해 추가 재원을 주지 않겠으니 시·도교육청 돈으로 하라’는 것이었다. 현재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보내는 교부금으로 충분하다는 이유였다. 

이는 학생을 단순히 단위당 원가 개념으로 취급하여 적용한 과도한 경제논리다. 정부의 이러한 태도로 시·도교육청은 이미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누리과정을 시행하며 부족한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떠넘기면서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있었고, 보육대란 위기까지 이어졌음을 상기해야 한다. 더욱이 누리과정은 보건복지부 사무를 떠안아야 하는 것이었지만 고교 무상교육은 교육당국이 시급히 챙겨야 할 사안이다.

무상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교육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이자 공정한 교육,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토대가 된다. 이것이 인천시교육청을 비롯하여 각 시·도교육청에서 무상교육을 추진하는 이유다. 현재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가 급식비나 교복구매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고등학생 학비까지 부담하는 것은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19일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회’에서 “사람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누구나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게 하겠다”는 혁신적 포용국가 실현의 의지를 밝혔다. 핵심은 ‘고교 무상교육’이다.

그동안 협력적 관계를 중시해온 대통령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약속을 믿는다. 그 약속은 고교 무상교육을 온전히 정부의 부담으로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교육청은 잠정적으로나마 재정적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원을 분담할 것이다.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되는 때까지 당·정·청은 고교 무상교육의 교부율 인상을 포함한 안정적 재원 대책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기 바란다.

고교 무상교육을 비롯하여 초·중등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심지어 영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국가재정이 가장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지출은 줄였지만 교육예산만큼은 증액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교육에 대한 투자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교육이 경제·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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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8일 법원은 병원에서 잠든 아들의 목을 졸라 죽인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사건 내용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죽인 어머니에게 고작 집행유예형이라니. 그런데 그 아들이 중증장애인이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은 피살자에서 살인자에게로 옮겨간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실제로 사건 내막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짐작하는 ‘오죽했으면’이 맞다. 죽은 아들은 41세였는데 세 살 때 자폐 판정을 받았다. 초보적인 수준의 언어소통만 가능했으며 나이 들어서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다. 20세가 넘어서는 증세가 심해져서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매번 소란을 일으켜 입원 연장이 거부되었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날’도 아들이 소리를 질러대고 주먹으로 벽을 두드려서 진정제를 투약했다고 한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어머니는 아들 상태가 호전될 기미도 없고 자신에게 더 이상 돌볼 기력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함께 죽자는 심정으로 잠든 아들의 목을 조르고 자기 입에도 신경안정제를 잔뜩 집어넣었다.

이같은 비극적 사건은 최근 보도된 것만 해도 여럿이다. 2015년에는 서울에서 아버지가 장애인 아들을 쳐 죽였고, 2016년에는 전주의 어느 아버지, 여주의 어느 어머니가 각각 장애인 아들을 목 졸라 죽였다. 그러니까 2018년 경기도 광주에서 일어난 이번 비극은 장소와 인물만 다를 뿐 똑같은 사건이다.

동일한 유형의 살인이 이렇게 단기간 반복되었다면 보통은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렸을 것이다. 살인자가 모두 피살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살해 후 한결같이 자살을 시도했다면 엑소시즘 영화처럼 마귀라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을 쫓는 경찰도 없고 퇴마의식을 거행하는 사제도 없다. 그 대신 수만명의 사람들이 댓글을 단다. “어머님, 일면식도 없지만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것이 추천순위 1위 댓글이고 다음이 2위 댓글이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부모도 자식도 고생 많으셨네요. 다음 생이 있다면 건강하게 다시 만나서 평범한 부모 자식으로 사시길.”

그런데 장애인 가정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가득한 댓글들이 우리 야학에서는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2016년 어느 겨울날 수업 준비를 하며 중증장애인 학생과 그해 일어난 사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인 반응을 보이며 그는 자기 목이 조이는 듯 오들오들 떨었다. 댓글을 단 사람들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 하는 사람의 비극성에 공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사랑하는 이가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 때의 공포를 떠올렸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 부모의 심정에 공감하며 단 댓글들을 중증장애인들은 자신들을 향한 살인면허로 받아들인다. 부모에게 건네는 ‘당신은 죽일 만했습니다’라는 위로가 장애인에게는 ‘당신은 죽을 만합니다’로 읽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여기 실린 ‘죽음의 설교자들’이라는 글에 크게 공감했다. ‘죽음의 설교자들’이란 말 그대로 우리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직접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 세계’에서의 우리 삶이 죄와 고통, 불행으로 가득하다고 떠들어대며 천국은 ‘이 세계’가 아닌 ‘저 세계’에, ‘이번 생’이 아닌 ‘다음 생’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자라투스트라가 든 예는 이렇다. 아픈 사람을 보면 ‘저렇게 살아서 뭐할까’라고 말하는 사람들. ‘무엇 때문에 아이를 낳으려 할까, 불행한 아이가 태어날 텐데’라고 말하는 사람들. ‘네 처지를 받아들이고 운명을 받아들이면 삶을 옥죄는 끈이 조금은 느슨해질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 자라투스트라는 이들을 ‘존재의 한 면밖에 보지 못하는’ 편협한 인간들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자신의 병든 시각을 아무에게나 투영해서 타인의 삶의 의지를 꺾는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자 한 학생이 ‘엄마’라고 답했다. 그 ‘엄마’는 내가 아는 한 수십년을 그에게 헌신해 온 사람이다.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구체적 사연을 알 수 없으나 죽음의 설교는 연민의 눈빛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죽음의 설교자로 지목된 그 ‘엄마’도 실은 매일 죽음의 설교를 듣는 사람이다. 불행한 아이를 낳았으니 처지를 받아들여야지 어떻게 하겠냐고. 다음 생에는 부디 ‘평범한’ 부모 자식으로 행복하게 살라고. 이런 설교를 계속 듣다보면 이 헌신적인 ‘엄마’도 언제 끔찍한 비극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진짜 죽음의 설교자들을 빨리 잡아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가 진짜 그들의 설교대로 되고 말 것이다. 법원은 지난달 선고문에 진범의 옷자락을 슬쩍 들추었다. 법률에 장애인과 그 가족의 보호와 지원 규정이 있음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충분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 모두가 장애인을 가두거나 죽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지 왜 살려는 사람을 죽이려 드는가. 자라투스트라는 죽음의 설교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고 싶으면 너나 죽으라고!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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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장길에 치통 때문에 고생을 했다. 난생처음 겪는 치통이었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를 외치던 진통제 광고 문구 때문에 익히 치통이라는 고통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픈 것인 줄은 처음 알았다.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 있는 산둥출판그룹을 방문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지난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꽃다발까지 들고 마중을 나온 그쪽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진통제를 구해 달라고 부탁해서 범용 진통제를 얻었지만, 별달리 고통을 줄이진 못했다. 한시라도 빨리 말 통하는 한국으로 돌아가 치과에 가서 고통의 시간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중국을 방문한 일행들과 단체비자를 받아서 간 까닭에 혼자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나라 숫자로 매기는 여권지수에서 세계 1위를 다투는 우리나라 여권이지만 중국을 방문할 때는 비자가 있어야 한다. 중국 단체비자는 저렴하지만 명단의 한 명이라도 빠지면 출입국과 여행에 심각한 제한이 생긴다. 모든 일행이 모든 일정을 취소할 각오가 아니면 혼자 빠질 수는 없는 상황. 출입국 심사를 할 때, 군대에서 점호를 했던 이후 처음으로 번호를 맞춰 서서 차례로 출입국심사관을 만나야 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전에도 단체비자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배를 타고 산둥성 위하이(威海)를 갔다가 칭다오(靑島)에서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인천항을 출항한 후에 풍랑을 만나 배는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침대에 누우면 배가 기울어 굴러떨어지고 샤워를 하던 동료가 기우뚱하는 움직임에 부상을 입을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겁에 질린 일행 중에 비행기 편으로 귀국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단체비자의 덫에 걸려 모두 다시 배를 타야 했다.

단체비자에서 빠질 수 없어서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회의와 만찬. 아픔은 점점 올라왔지만, 중국 친구가 준 진통제를 4시간마다 먹으면서 참았다. 진통제가 효과가 있어서 그만큼이라도 버틴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 정도의 아픔이었는지 모르겠다. 지난은 타이산(泰山) 인근이고,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에서 가깝다. 더구나 지난은 중국에서 드물게 물이 풍부하고 깨끗하기로 소문난 고장이다. 맑은 물이 끊임없이 샘솟는 표돌천이 지난에 있고 그 물들이 모여 대명호수를 이룬다. 물 좋은 마을에 명주가 있다. 공자 집안에서 빚는 술도 유명하지 않던가? 지난에는 이 동네 백주 맛을 즐기고 가리라고 호기롭게 갔건만, 냄새만 맡았다. 씹지도 못하니, 부드러운 만두만 몇 개 놓고 물만 마시면서 아픔을 견뎠다. 치통을 앓아본 사람들만이 정말 걱정을 해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놀리진 않았지만, 내심 눈치는 치통 정도로 사내답지 못하게 엄살 떤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백주로 소독하라고 했던 친구들은 아마도 치통의 아픔을 겪어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일행은 백주 스무 병을 비웠다. 나도 타인의 치통을 하찮게 여겼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안다. 나는 남들이 치통이라고 하면, 욱신거리는 정도라고 생각했지 이렇게 아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치통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소주로 소독하라는 망발을 했던 기억도 있다. 이번에 치통을 겪으면서 크게 반성했다. 내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던 점을 후회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감각기관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개인과 개인들 사이에 아픔을 나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체적 고통은 그것을 느끼는 개인이 그 신호에 반응해서 행동을 하라는 신호이다. 치통은 빨리 그곳의 염증에 관심을 가지고 조리를 하라는 뜻일 것이다.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맹수에게 치통은 먹지 못해 굶어 죽게 만들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일 수도 있다. 신체적 고통을 느끼는 신경계를 개체 단위로 끊어 놓은 이유는 이 고통이 개체를 넘어 너무 넓게 연결되면 장기적인 생존에 불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는 종마다, 개체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다른 개체들의 아픔도 함께 느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식물은 해충이 자신을 갉아먹을 때, 신호를 내서 옆에 있는 다른 개체가 그 해충에게 소화가 잘되지 않는 단백질을 만들도록 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어떤 동물이든, 가족의 아픔에 마음으로 공감하고 함께 느낀다. 특히, 신경계가 개체에 한정되어 있는데도 남의 처지를 헤아리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서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종이 되었다. 자신의 고통에만 괴로워하고 남의 고통에는 무심해서는, 인간 정도의 실력으론 생존도 버겁다.

<주일우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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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풀씨는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난다


날다가 물에 뜨면


물 타고 가고


담 넘어 어느 집 뜨락


혹은 다람쥐 고라니 산새


깃들여 사는 산야(山野)


철조망 넘어 북에도 남에도


거침없이 날아가 앉는다


막힘이 없다


풀씨 하나 날아


자연이 산다


더럽히지 말라


이 맑은 물 맑은 공기


맑은 마음


 강민(193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풀씨는 어디에라도 날아간다. 바람에 실려, 물에 떠서 걸림도 막힘도 없이 날아간다. 어느 집 조용한 뜨락에 내려앉고, 산과 들에 내려앉는다. 산과 들에 사뿐히 내려앉아 다람쥐, 고라니, 산새와 함께 사는 자연이 된다. 풀씨는 철조망을 넘어서 날아간다. 풀씨에게 막힌 통로란 없다. 풀씨는 누구와도 무엇과도 만날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다. 시인은 시 ‘동오리 15’에서 “그대 바람으로 떠나요/ 떠난 김에 훨훨 날아/ 산 넘고 물 건너/ 이 봄의 씨앗 실어다/ 거기에도 뿌려줘요/ 샘물가 돌 틈에도/ 뒤울안 툇마루 주춧돌 사이에도/ 정자나무 그늘에 쉬는/ 그이들의 마음밭에도/ 뿌려줘요, 봄의 씨앗”이라고 썼다. 봄바람을 타고 풀씨가 더 멀리 나아갔으면 한다. 벽을 허물 듯이 벽을 넘어, 높은 산맥을 넘어, 저 먼 산하(山河)까지 날아갔으면 한다. 날아가 앉아 푸른 싹을 틔워 곳곳의 들풀들과 하나의 자연이 되었으면 한다.

<문태준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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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사람들은 자연환경과 생활양식에 따라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당시엔 세 가지 종류의 모자를 썼음을 알 수 있다. 수건을 머리에 매는 두건 형태의 것인 책(), 태양을 가리거나 비를 피하기 위해 사용했던 입(笠), 그리고 우리나라 고유의 모자로 고깔 형태인 절풍(折風) 등이다. 절풍 가운데 새 깃털 장식을 단 것을 조우관(鳥羽冠)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고구려인을 구별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모자였던 것 같다.

시선(詩仙) 이백은 절풍모를 쓴 고구려인의 춤을 보고 감탄하며 시 ‘고구려’를 지었다. “금 꽃 장식한 절풍모를 쓰고(金花折風帽)/ 백마 타고 유유히 거닐고 있네(白馬小遲回)/ 넓은 소매 너울너울 춤추니(翩翩舞廣袖)/ 해동에서 새가 날아오는 듯하구나(似鳥海東來).” 이백이 시를 지은 때(742년)는 이미 고구려가 망했을 시기다. 고구려인의 기상과 기품을 추억하며 노래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우즈베키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실크로드의 심장’으로 불리는 사마르칸트의 아프로시아브 박물관에서 7세기 바르후만왕 즉위식에 참석한 고대 한국인 사절단 모습이 담긴 벽화를 보며 현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마르칸트(우즈베키스탄) _ 연합뉴스

중국 대륙의 서쪽 끝, 실크로드의 서역으로 가는 관문이 둔황이다. 이곳에 1000개가 넘는 석굴이 있어 천불동이라고도 불리는 막고굴이 있다.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이 석굴에 고구려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막고굴 제335굴 벽화에는 문수보살과 유마거사가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 가운데 조우관을 쓴 두 사람이 보인다. 둔황을 연구하는 중국학자는 새 깃털 두 개가 꽂힌 푸른색 모자를 쓴 이들을 고구려인과 백제인이라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을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사마르칸트를 방문했다. 관심은 아프로시아브 박물관 내 벽화실이었다. 벽화 속 사신들은 새 깃털을 장식한 모자를 쓰고 있고, 차고 있는 칼도 고구려 것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고구려인들이 사마르칸트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그만큼 양국 교류의 역사가 깊다”고 말했다.

고구려인들은 1500여년 전에 중앙아시아 심장부까지 진출했다. 수천㎞의 길은 악천후와 질병, 도적떼 등으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반도의 구석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선조들의 호방하고 활달한 기상이 부럽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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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나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이 화염에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파리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슬픔에 젖은 채, 그 상실의 순간을 직시했다. 한 파리지엔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엄마를 잃은 것 같아요. 노트르담 성당은 우리에게 엄마와 같은 존재였어요.”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연설이 나온다. “지금은 정치를 할 때가 아닙니다. 노트르담 성당은 우리의 역사이자 문학, 정신의 일부이자 우리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성당을 더 아름답게 재건할 것입니다. 5년 이내에 작업이 마무리되길 희망합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거실에서 조용히 TV로 이를 지켜보는 나에게 어떤 심리적 데자뷔가 일어난다. 첨탑이 배의 선체로, 불길에 휩싸이는 장면은 물로 덮인다. 그리고 한 엄마가 절규하며 말한다. “내 아이를 좀 살려주세요.” 이어지는 대통령의 연설은, “오늘은 정치를 논할 때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자 정신의 일부, 가족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궁에 빠진 채, 슬픔 가운데 있습니다”로 들렸다. 아니, 느껴졌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상징이자 최대 관광명소 중 하나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5일 오후(현지시간) 발생한 대형 화재로 첨탑이 무너지고 있다. 나무와 납으로 이뤄진 96m 높이의 첨탑은 화재 발생 1시간 만에 전소됐다. 파리 _ AFP연합뉴스

매년 이맘때, 벚꽃잎과 함께 흩날리듯 불어닥치는 상실감이 있다. 몸과 마음이 시리고 환절기 감기까지 찾아든다. 2014년 4월 당시, 나는 산후 우울증으로 시작된 우울 증상을 겪고 있었다. 자가진단을 해본다면, 1985년 갑작스레 닥쳐왔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듯싶다. 

내 나이 14살, 또래보다 일찍 찾아온 사춘기에 어떤 매뉴얼도 찾지 못해 혼돈 상태가 지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진하게 경험하던 유년 시절, 애인처럼 사랑했던 아버지는 늘 너무 바빴다. 삐치고 속이 상해, 애정을 갈구하는 심정을 부러 무관심으로 포장하던 어느 겨울 아침, 아버지는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다며 내게 수프를 끓여달라고 하셨다. 마침 친구들이랑 놀러 가기로 한 시간에 늦기도 한 데다, 아버지가 미운 마음에 “나가서 사드시라”고 매정하게 쏘아대고 현관문을 나섰다. 정나미 떨어질 법한 딸내미 뒤통수에 대고 아버진 그날따라 유난히 여리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감기가 독하게 온 것 같으니 병원 가야겠다. 조심해서 다녀, 이쁜 딸!” 그것이 아빠를 본 마지막이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 상실감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아버지와 비견할 만한 사랑의 대상이 나타나기 전에는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매일 아이가 죽는 악몽을 꾸는 산후 우울증 증상이 시작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상실감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었다. 엄마가 되는 과도기에, 아빠를 떠나보내는 진심 어린 애도의 시간이 내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고 나는 진짜 엄마가 되었다. 

팽목항 방파제 ‘기억의 벽’에 남겨진 세월호 유가족의 메시지. 피붙이를 그리는 애끓는 절규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김형규 기자

당시 세월호의 아이들은 그렇게 내 개인적 삶으로 파고들었다. 정말 아파도 너무 아팠다. 하지만 돌아보면, 상처가 매개가 되어 함께 아파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있다. 또한 인생의 어느 때엔가 상실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때에 나처럼 함께 아파했다. 우리 사회에 이토록 슬픔의 공감이 강처럼 흘러넘쳤던 때가 또 있을까. 

그리고 5년이 지난 지금, 그 공감의 능력은 지속되고 있다. 오늘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 슬픔이 위로로 전환되는 참 소중한 순간이다. 

이제 세월호의 진실이 수면 위로 인양될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세월호 아이들의 엄마, 아빠가 진정한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사회의 아픈 곳을 꿰매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설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추상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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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임명된 군수뇌부 신고를 받으며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무섭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고 우리의 민군관계가 아직까지도 많이 왜곡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예비역 일각의 남북군사합의에 대한 반발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군 수뇌부에 칼집에 넣어 두고 말고와 같은 정치적인 담론이 아니라 언제라도 쓸 수 있도록 칼날이 시퍼렇게 갈아 놓으라는 군사적인 요구를 해야 한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런 발언은 오랫동안 왜곡된 민군관계가 대통령의 무의식에까지 영향을 미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강한 군대는 훌륭한 장교들이 만든다. 훌륭한 장교는 올바른 민군관계에 바탕한 유능한 전문직업군인을 의미한다. 올바른 민군관계와 훌륭한 장교단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이다. 민군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군인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엉뚱한 생각을 한다. 민주국가일수록 정치와 군사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군의 가치를 존중한다. 그래야 장교들이 국방에 전념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군대는 무적이다. 클라우제비츠가 민주주의 군대를 전제체제의 군대보다 강하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훌륭한 장교단은 첨단장비와 무기보다 중요하다. 아무리 첨단장비와 무기가 많고 목숨을 바쳐 싸우려는 투지에 찬 병사들이 있다하더라도 장교들이 무능하면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장교는 아수라장 같은 전장의 혼돈 속에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지적 통찰력, 부하들이 스스로 사지에 뛰어들 수 있게 만드는 리더십,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초개처럼 던질 수 있는 희생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자질은 쉽게 갖추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사관학교를 운영하는 이유이다. 

국가가 사관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유사시 전장에서 목숨을 바칠 전투지휘관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관학교 우등생들 중 상당수가 전투지휘관이 아니라 법무장교나 군의관을 희망한다고 한다. 육군의 전방 연대 작전과장 중에서도 육사 출신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가장 고생스럽다는 전방 연대 작전과장이 육사출신 소령급 장교들의 로망이던 적도 있었다. 영관급 장교들은 높은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띌 수 있는 고급사령부와 비서실에서 근무하기 위해 안달이라고 한다. 사관학교 졸업생이 법무장교나 군의관을 지망하고 영관급 장교들이 고급사령부와 비서실을 기웃거리는 것은 군의 가치관이 전도되고 있다는 증거다. 가치가 아니라 이익을 탐하는 군대는 썩는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군은 오랫동안 사조직과 연줄, 그리고 파벌로 얼룩져 있었다. 폐해가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부의 대처는 엄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보정권으로 교체된 이후에도 사조직 출신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등용되었다. 사조직은 정리되는 듯했으나 연줄과 파벌은 교묘하게 작동했다. 대다수의 장교들은 그저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과거 군 수뇌부는 연줄과 파벌인사에 앞장섰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틈을 타 정치권도 군인사에 개입했다. 보수정권 당시 군의 최고책임자는 진급을 사적관계의 보상으로 이용했다는 내부평가를 듣기도 했다. 육군, 해공군 그리고 해병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상황이 이럴진대 누가 삭막하고 외로운 전방고지와 망망대해 그리고 순간이 생명이 가르는 고독한 하늘에서 청춘을 바치고자 하겠는가?

장교단의 가치관 전도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만든 과거 군수뇌부의 책임이다. 문제는 아래가 아니라 위에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많은 국방예산을 투입해도 밑 빠진 장독에 물 붓기다. 문제는 군 스스로 이런 문제를 고칠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는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원칙이 살아있어야 한다. 국방개혁의 출발점은 문민 국방부 장관 임명부터 시작했어야 한다. 군출신 국방부 장관은 왜곡된 민군관계의 정점을 상징한다. 이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연줄과 파벌로 전도된 장교들의 가치관을 바로잡기 어렵다. 혹자는 남북 간 군사정세를 들어 문민 국방부 장관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스운 소리다. 잘못이라면 이제까지 국방부 장관 한 사람 교체된다고 북한의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군대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아닌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군대라면 지금이라도 바꾸어야 한다. 장교들이 자신의 헌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국민들이 이를 존중하도록 만들지 못하면 우리 군의 미래는 없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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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현대차 노조)의 원·하청 간 하후상박 임금 연대가 눈길을 끈다. 현대차 정규직의 임금은 적게 올리는 대신 중소협력업체와 비정규직의 임금을 인상해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시작한 현대차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 인상’은 원·하청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 연대’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현대차 노조의 하후상박 임금 인상은 원·하청 간 인상분의 차이가 크지 않아 당장 그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평균 4만5000원 인상된 반면, 115개 하청업체는 평균 5만6106원 인상됐다. 원·하청 간 임금격차 해소는 1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가 높은 임금 인상을 자제하면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상생의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매년 ‘임금 연대’ 전략을 지속하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그동안 대기업 노동자와 협력 원·하청 사이에 임금격차를 해소하고 상생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실천에 옮긴 사례는 매우 적다. 2015년 SK하이닉스 노사가 임직원 임금 인상분 20%를 협력사에 지원하는 내용의 ‘노사 사회적 책임 실천협약’을 채택한 게 눈에 띌 정도다. 포스코와 협력사 노사가 지난달 ‘상생협력합동연구반’을 구성해 원·하청 격차 해소에 나섰지만, 아직 시작일 뿐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 노조의 ‘하후상박 연대임금’ 실천은 선구적 역할로 환영할 만하다. 노조는 또 조합의 임금 인상률을 낮추면서 원·하청 간 불공정거래 근절을 사측에 요구하기도 했다고 하니, 상생 사회를 위한 또 다른 노력도 주목된다.

현대차 노조는 제조업 분야에서 최대 규모다. 조합원 연봉이 9000만원이 넘는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조원 자녀 우선 채용을 단체협약에 포함시켜 ‘고용 세습’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노사상생의 일자리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노조가 ‘하후상박 연대임금’을 내걸었을 때 내부의 반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시장 양극화, 임금격차 심화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부영 현대차 노조 지부장은 지난 19일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상생 실험이 임금뿐 아니라 고용·복지 등으로 더욱 확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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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지난 20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강행하자 전국의 각 시·도당과 당원협의회에 총동원령을 내려 1만여명이 참석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경제 살릴 외교는 전혀 하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좌파천국을 만들었다”면서 “종북굴욕 외교 포기하라”라는 구호까지 선창했다. 해묵은 색깔론에 다시 매달리는 한국당과 황 대표에게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제1 야당이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경제와 민생이 어렵다면서 국회를 내팽개친 채 장외 투쟁에 나선 한국당의 처사는 무책임하다. 특히 한국당과 황 대표가 다른 주장도 아닌 색깔론으로 장외 집회를 뒤덮은 것은 공당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황 대표가 그날 “청와대와 여당이 5년 전, 10년 전 과거 사건들을 죄다 끄집어내 야당 탄압할 구실만 찾고 있다”고 여권을 비판한 것도 문제가 많다. 자신이 총리를 지낸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사죄하는 기미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더 이상 국정농단 책임론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이 북한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자신이야말로 누구를 대변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그는 국정농단에 분노하는 일반 시민은 안중에 없는 듯하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앞줄 가운데)와 나경원 원내대표(황 대표 오른쪽) 등 지도부와 의원, 당원들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장외 집회를 한 뒤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청와대 방향으로 가두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욱 문제인 것은 황 대표가 앞으로도 계속 장외 투쟁에 나설 뜻을 시사한 점이다. 황 대표는 행사 말미 “오늘의 투쟁은 문재인 좌파독재를 막기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으로, 앞으로 더 멀고 험한 길에서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보수세력을 결집시켜 문 대통령과 맞섬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키워 정치적 야망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황 대표가 비전과 정책으로 정치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정치를 답습하는 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장외 투쟁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국회에서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쓰던 극단적인 방법이다. 지금 여야 간 정쟁이 심화된 데는 한국당의 책임도 크다. 그런 원인을 제공한 한국당이 장외에까지 나선 것은 명분이 없다. 민생을 내팽개친 국정 발목 잡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지금 한국당이 서 있어야 할 곳은 장외가 아니라 국회이다. 한국당은 당장 4월 국회 일정에 합의해 민생 현안을 챙기고 선거제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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