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이야기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다가오던 어느 날, 나는 인사동에서 지인을 만난 후 즐겁게 쇼핑을 하고 귀가 중이었다. 인사동 가게들에서는 수공의 장신구, 수제 옷 등을 팔고 있어서 쉽게 발길을 멈추게 된다. 그날 안국역에서 3호선을 탄 다음 충무로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사당역으로 향했다. 강남 어귀에서 사는 나는 동선이 좋은 지하철 4호선을 타곤 한다. 그런데 사당에서 내릴 무렵, 있어야 할 귀걸이 한 쪽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신없이 지하철을 갈아타느라 귀걸이가 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던 거다. 

실은 귀에 구멍을 뚫지 않아서 부착하는 귀걸이를 하다보니 언제라도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승객들 사이로 내가 서 있었던 지하철 공간을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귀걸이는 아무 데도 없었다. 하릴없이 사당역에서 지하철을 내리자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었는지, 계단은 그야말로 인간의 파도를 이루고 있었다. 나도 이미 몸과 마음이 지쳐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도 그 귀걸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다시 돌아섰다.

그 귀걸이로 말할 것 같으면 하얀 돌에 검은 두 줄의 선이 그어진 돌에 아주 빨간 대리석 질감의 다른 돌을 깎아 붙여 만든 것으로서, 그것을 구입했던 뮤지엄 가게 분의 말에 따르면 티베트에서 유래한 그 돌이 영적인 물건이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리 고가는 아니었다. 나는 그 귀걸이를 매우 좋아해서 특별한 날에만 골라서 하곤 하였는데, 하필 그날 그 복잡한 지하철에서 잃어버렸던 것이다. 잠시 집으로 돌아가는 계단과 반대편 승강장 사이를 오가며 망설이다가 반대편 승강장의 지하철을 타버렸다. 잘 생각해 보니, 안국역에서 3호선을 탔을 때만 해도 귀걸이를 확인했던 것 같다. 그러면 아마도 3호선에서 내릴 때거나 4호선을 탈 즈음에 없어졌을 것 같았다. 즉, 충무로역이 핵심이다. 그렇더라도 지금 충무로역에 간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시간에 충무로역에서 조그만 귀걸이를 찾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다. 하지만 찾아보지도 않고 포기해서는 안될 것 같아서 무작정 충무로역으로 향했다. 

충무로역에서 내린 뒤 내가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눈을 바닥에 고정한 채 귀걸이를 찾아보았다. 역 바닥은 참으로 깨끗하였다. 무언가 떨어져 있는 물건이라도 있다면 사람들의 눈과 발에 즉시 걸릴 듯이 바닥은 반들반들한 인조 대리석이거나 타일로 되어 있었다. 몇 번을 걷다보니 환경미화원도 만났다. 그에게 다른 한 쪽의 귀걸이를 보여주면서 혹시 이런 것을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청각장애인으로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대충은 이해하면서, 그런 물건을 보지 못했고 ‘지금 막 다 청소를 마쳤다’고 표현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어깨를 치면서 분주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이제 어리석은 탐색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4호선 지하철을 탔던 승강장에 다가서는 순간, 내 생각보다 두 칸쯤 밑에서 탔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그 아래로 가보니, 과연 미끄럼 방지를 위해 올록볼록한 블록처럼 생긴 노란 방지턱 사이에 그 ‘귀걸이’가 살포시 끼어있는 것 아닌가. 

마침 지하철이 미끄러지듯이 들어오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방지턱 사이에서 그 아이를 우아하게 구출해서 지하철을 탔다. 그사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귀걸이를 밟고 지나갔을까. 하지만 방지턱의 파인 부분에 자리 잡은 덕분인지 귀걸이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다만 돌을 연결하는 철제 부분이 약간 휘어져 오늘날까지 그날의 상흔을 증언하고 있다. 귀걸이를 발견한 순간 너무 좋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마치 거기까지 가도록 부른 것이 바로 이 물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건에도 영혼이 있을까. 적어도 이것을 만든 여러 사람들의 정성과 혼과 기억이 들어가 있을 터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통영에 갈 때마다 너무나 재미있고 우아한 자개 상품이며 누비 제품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자개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지 않아서 요즘 물건이 옛날 물건만 못한 것 같고, 좋은 물건이 있다고 해도 매우 고가여서 자개를 사랑하는 나의 지인들은 중고매장을 누비고 다닌다. 누비는 매우 가볍고도 견고하며 천의 특성에 따라 아름답게 변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도 누비를 새롭게 접근하는 새로운 세대들이 육성되는 것 같지 않다. 

나는 루이뷔통을 능가하는 통영 누비의 명품성을 상상해 본다. 왜 이런 ‘전통’의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고 새롭게 해석하는 데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일까. 왜 흥미진진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친환경적인 상품개발 콘테스트 같은 것을 대대적으로 벌이지 않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혹은 열리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인가). 

영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애정을 불러들여서 사람들 사이에도 다리를 놓을 것이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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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3일 각각 의총을 열어 선거제도 개편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합의안을 추인했다. 바른미래당은 일부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에 부정적이었지만 진통 끝에 가결됐다. 이번주 안에 패스트트랙 절차가 시작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선거법 개정안은 내년 총선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4당의 추인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7년체제’의 제도적 유산인 선거제와 검찰개혁을 위한 역사적 발걸음은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한국당은 “의회 쿠데타”라는 등의 거친 비판을 쏟아내며 총력 저지투쟁을 선언했다. 황교안 대표는 “거리로 나서야 한다면 거리로 나갈 것이고, 청와대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장외투쟁 방침을 분명히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의회 민주주의의 사망선고”라고 했다. 한술 더 떠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결국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훈을 조선반도에 실현해서 소위 고려연방제를 하겠다는 게 목표”라며 “이번 패스트트랙 시도는 좌파정변이자 좌파반란”이라고 했다. 참으로 황당한 색깔공세다.

23일 오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저지 및 의회주의 파괴 규탄 관련 기자회견에서 자유한국당의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정근 기자

패스트트랙은 2012년 한국당이 여당일 때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소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심의한다’는 명분으로 국회 선진화법에 새로 만든 제도다. 이미 세월호 참사 2기 특조위 구성과 ‘유치원 3법’을 지정한 2건의 선례도 있다. 이번 패스트트랙 추진 역시 국회법에 규정된 입법절차에 한치 어긋남이 없다. 더구나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에 선거제 개혁에 합의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다른 4당이 한국당을 ‘패싱’한 건 선거제 개혁을 외면해온 한국당이 자초한 면이 크다. 여기에 좌파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건 명분도 없고 납득하기도 어렵다.

절차를 떠나 선거제도 개혁은 사표를 줄이고, 지역주의를 완화하며, 승자독식형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의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 역시 검찰 개혁을 위한 시대적 과제다. 결코 정치적 유불리나 지지층 결집 여부를 따질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선거제는 게임의 규칙인 만큼 모든 정당의 합의를 토대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한국당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 반대든 보완이든 자신의 주장을 법안에 반영하면 될 일이다. 앞으로 본회의 처리까지 최장 330일간 시간적 여유도 충분하다. 이도저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외치며 장외로 나가겠다는 건 시민들에게 ‘몽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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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국내 최장기 투쟁사업장 콜텍 노사가 정리해고 노동자의 ‘명예 복직’ 등에 최종 합의했다. 4465일간 벌여온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은 끝났다. 42일간 이어진 임재춘 노동자의 단식도 멈췄다. 다행스럽다. “회사가 버티면 노동자들이 알아서 포기한다는 법칙을 깨고 싶었다”는 이인근 콜텍지회장의 말처럼, 이번 합의는 ‘부당한 정리해고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4464일간 이어진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콜텍 노사가 정리해고 노동자의 ‘명예 복직’에 합의한 22일 임재춘 콜텍지회 조합원(오른쪽)이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42일 만에 단식을 풀며 김경봉 조합원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사람을 함부로 해고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콜텍 노동자들의 저항은 2007년 사측의 일방적인 해고로 시작됐다. 사측이 비용 증가를 이유로 생산기지를 인도네시아·중국 등으로 옮기면서 공장 폐업과 함께 노동자 89명을 정리해고한 것이다. 당시 콜텍은 수십억원의 순익을 냈으며, 직전 10년간 누적흑자 규모는 수백억원에 달했다. 근로기준법 24조에는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미래에 다가올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유효하다”고 최종 판결했다. 그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최악의 판결로 꼽은 이 사건의 배경에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간 재판거래가 있었다.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2015년 작성한 문건에 콜텍 정리해고 유효판결이 언급돼있다. 이 때문에 콜텍 노동자들은 13년간 거리에서 힘겨운 복직투쟁을 해야만 했다. 

콜텍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는 과연 노동을 존중하는가를 되묻게 된다. 합의 내용을 보면, 사측에 일방적이다. 사측은 ‘사과’ 대신 ‘깊은 유감’을 표했다. 복직은 30일 뒤 퇴사하는 형식이어서 노동자는 ‘명예’만 얻었다. 해고기간 임금은 보상이 아니라 합의금으로 마무리됐다. 사실상 금속노조 콜텍지회는 합의와 함께 해체된다. 최소한 한국 땅에서는 사측이 그렇게 원했던 노조 없는 회사가 된 것이다. 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투쟁을 하는 동안 ‘노동 존중’을 내세운 정부·여당은 뭐 하나 한 것이 없다. 금속노조만이 생계·법률 지원 등에 나섰을 뿐이다. 종교·시민사회 운동가들의 도움이 더 많았다. 완전한 해결도 아니다. 13년간 복직투쟁의 원인이 된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더 큰 숙제는 한국에서 ‘기업은 누구를 위한 일터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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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마피아 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을 상상해본다. 마피아들이 관리하는 지역에 새 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 식당 주인은 조직에 ‘세금’을 내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그는 마피아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자릿세를 뜯겨선 안된다고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다닌다. 조직에 이 식당 주인은 점점 거슬리는 존재가 된다. 결국 행동대장은 안락한 의자에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있는 보스에게 다가가 식당 주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다. 보스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알아서 해.” 행동대장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자리를 뜬다. 얼마 후 갑자기 자취를 감춘 식당 주인은 한 달쯤 뒤 인근의 강에서 시신으로 떠오른다. 

다행히도 정의로운 검사가 식당 주인 사망 사건을 끈질기게 수사해 행동대장을 법정에 세운다. 검사는 행동대장이 독단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한 뒤, 살인사건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보스까지 잡아들이려 한다. 

보스의 변호인들은 무죄를 주장한다. 보스는 식당 주인을 살해하라는 명확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보스가 ‘알아서 해’라고 하긴 했지만, 그 말이 곧 살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저 원만한 해결책을 지시했을 뿐인데 행동대장이 제멋대로 식당 주인을 죽였다”는 것이 변호인들의 논리다. 

조직의 ‘꼬리 자르기’와 보스의 비겁함에 발끈한 행동대장이 적극적으로 증언하기 시작한다. 행동대장은 보스가 구체적으로 ‘살인’을 지시한 적은 없지만, 조직에서 ‘알아서 해’라는 말은 당연히 살인을 뜻한다고 항변한다. 아울러 지금까지 보스가 자신의 행동을 질책하거나 말린 적도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보스는 이런저런 문제들을 ‘알아서’ 처리해온 자신의 서열을 높여줬다고 증언한다. 판결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쯤되면 검사가 보스와 행동대장의 공범 관계를 입증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듯하다. 

실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폭력 조직에 대한 영화가 그토록 많은 이유는, 폭력 조직의 행태가 사회 구성 원리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가상의 마피아 영화는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다뤘지만, 기업이든 학교든 위계가 있는 조직에서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곤 한다. 

대법관을 눈앞에 둔 전도유망한 법관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금 구속 상태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의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을 관철시키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구미에 맞게 ‘재판 개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임 전 차장은 혐의를 철저히 부인한다. 일선 판사들이 재판에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공했을 뿐, 재판에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사실상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조직이었다.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법원행정처 차장으로 내려오는 위계질서는 3000여명 가까운 전국 판사들의 머리에 선명히 그려져 있을 것이다. 일선 판사들이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료를 ‘참고’만 할 수 있었을까. 법원행정처의 ‘자료’란 마피아 보스의 “알아서 해”라는 말과 비슷한 효과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재판에서 직권남용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양승태·임종헌 두 전직 고위 법관은 한때 까마득한 후배였던 판사들 앞에서 기세등등하게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당당하게 반박하고, 직권남용에 대한 복잡하고 치열한 법리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법정에 선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이 어떤 판결을 받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향후 드러날 유·무죄 여부를 떠나, 권력자의 자세와 처신에 대해서는 지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의 선의를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믿어보자. 마피아 보스가 “알아서 해”라고 한 것은 식당 주인과 대화해 원만한 합의점을 찾으라는 지시였고, 법원행정처의 ‘자료’란 일선 판사들의 충실한 재판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고 믿어보기로 하자. 그렇다 해도 권력자의 ‘선의’는 조직 내에서 손실 없이 전달되긴 어렵다. 권력은 인간관계를 굴절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의 고위 임원이 있다. 회의를 앞두고 얼마전 들은 농담을 던졌더니 주변 사람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유머 감각에 자신감이 생긴 임원은 그날 저녁 동창 모임에서 같은 농담을 했다.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았다. 임원이 조금이라도 현명했다면 깨달았을 것이다. 부하 직원들은 임원의 농담이 웃겨서 웃은 것이 아니라, 그가 상관이었기 때문에 웃었다. 

부장의 ‘권유’는 때로 직원에게 ‘강요’가 된다. 교수가 ‘무심코’ 던진 말에 학생은 종일 안절부절못할 수도 있다. 한줌의 권력이라도 가졌다면 쉼없이 자신의 자리를 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그건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같은 죄를 벌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백승찬 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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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5월에는 아동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새겨보는 각종 행사와 모임이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든 어린이와 가정이 이런 따뜻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가정의 힘만으로 보호될 수 없는 아동들은 아름다운 오월의 무대 뒤에서 미래의 주인공이 돼볼 수 있는 기회를 애타게 기다리고만 있을 것이다.

관련 통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린이날을 기념하고 가정의달을 축하하는 것 자체가 겸연쩍어진다. 전국에서 한 해에 2만 건이 넘는 아동학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매년 4000명이 넘는 아동들이 빈곤, 학대, 유기, 미혼모 출산 등의 이유로 가정에서 벗어나 있다. 약 1만3000명의 아동들이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라고 있고, 그와 비슷한 수의 아동들이 위탁가정에서 보호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의 대부분은 만 18세로 성인이 될 때까지 시설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아동보호체계에 대한 공공의 책무성이 그간 너무 허술하게 다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되었을 때, 그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보고, 어떤 방식으로 보호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이가 누구인지부터 불분명하다. 현행법상 책임의 주체인 지자체에서는 늘 그렇듯이 인력 부족을 호소하며 민간 기관들에 의지하고 있다. 그 결과 아동이 민간 입양기관에 맡겨지면 입양 가정에서, 양육시설에 맡겨지면 시설에서 자라나게 된다. 아동의 운명이 최초로 맡겨진 민간 기관에 의해 임의로 결정되는 셈이다.

더구나 아동복지시설,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 등에 있는 아동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국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실시간으로 아동들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통합 데이터베이스(DB)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모가 아동을 이렇게 방치하고 있다면 아동복지법에 의해 아동학대로 신고될 법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이들을 그렇게 방치해오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포용국가의 안전망이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에게도 미쳐야 한다. 다행히 변화 조짐은 보인다.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그간 분절적으로 이뤄져 왔던 아동보호체계가 보다 통합적으로 출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앙입양원을 비롯한 아동 보호를 위한 8개의 기관이 통합돼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새롭게 출범하게 될 것이다. 이제 통합 기관의 탄생과 더불어, 그간 미흡했던 공적 책무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아동보호체계를 촘촘하게 확충하고, 모든 단계에서 지자체와 정부의 책임을 보다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출생에서부터 보호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출생등록제를 도입하고, 학대 위기 아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예방할 수 있는 공적인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동들의 경우도 될 수 있는 대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원가정 지원 서비스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서는 아동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동복지에 대한 투자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아동은 투표권이 없기 때문이라는 우려가 그동안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국가가 아동의 확실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책 최고결정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2019년이 아동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킨 원년으로 기억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봉주 |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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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소 한쪽에 쇠붙이로 된 활자를 하나하나 채자하던 이들이 사라진 뒤 등장한 것은 사진식자기라는 기계였다. 문자를 렌즈로 찍어 출력해내는 이 기계는 대개 책상만 했다. 남쪽 촌에서 나고 자랐다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곧바로 학원에 들어가 사진식자기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그가 다루는 사진식자기는 일본어와 중국어까지 뽑아내는 거라서 아주 컸다. 다행히 그는 덩치가 꽤 커서 거대한 기계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글자를 찍어냈다.

그의 실력으로 보자면 손바닥만 한 인쇄기획실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출근 첫날부터 마치 오랫동안 일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고, 틈틈이 커피를 타서 동료들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는 사진식자기 일을 하는 이들은 까다롭고 고약하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줬다. 동료들은 금방 그를 좋아했고, 온종일 얼굴 찌푸린 채 직원들을 다그치는 게 일인 사장도 그에게는 잔소리하지 않았다. 

등 너머로 편집 일을 배워서 툭하면 출력된 용지를 찢어먹던 나한테 그는 구세주며 원더우먼이었다. 그는 일이 서툴러서 허구한 날 밤 늦게까지 일하던 나를 늘 기다려주며 풀칠까지 해줬다. 어느 날 함께 야근하고 나와 맥줏집에 앉아서 그가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첫 직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쇄소였고, 그곳에서 노조 활동을 했다는 그는 내게 은밀하게 말했다. “사실은 그때 내가 앞장서서 다른 데 취직을 못해. 그래도 싸우면서 내가 처음으로 누군지 알았어.”

그는 자신이 노동자라는 것을, 노동자라는 게 얼마나 힘이 솟는 말인지를 알았다고 했다. 온종일 그가 뽑아준 문자를 꼬물꼬물 붙이고 앉아 있던 나는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며칠 전 ‘작가도 노동자인데, 그리 인식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오래전 내 친구가 생각났다. 노동자라면 자신의 일을 즐길 줄 알고, 부당한 일에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던 그의 말을 나는 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의 친구, 나의 원더우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그립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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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총선 때 민주당 의원과 점심을 먹었어. 그는 민주당 의원 중 3대 경제통, 총선 본부 정책 책임자. 나는 당시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민주당에 굴러들어온 외부자. 내가 말했어. 최저임금 공약 문제 있어요. 한국엔 자영업자가 25%가 넘어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네 번째로 많아요. 

그의 눈빛이 흔들리던 걸, 나는 알아차려 버렸어. 그가 처음 들어본 얘기라는 걸. 오히려 나에게 물었어. 한국보다 많은 나라가 어디에요? 아 그건요 그리스, 터키, 칠레…. 

외눈박이들에게 이론을 제공한 사람은 누구? 청와대 정책실장 하던 장하성 교수. 그는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 그래서 재벌 개혁운동 선구자. <한국 자본주의>로 기업의 양극화 고발, <왜 분노해야 하는가>로 노동의 양극화 고발. 기업이 양극화되어 있으니, 노동도 양극화된다는 얘기. 이론적으로 양극화 입증, 정치적으로 민주당 입당. 

그의 이론에서 뭐가 빠졌게? 아예 고용 안된 사람들, 기업의 밖에 있는 자영업자들, 자영업자에게 고용된 사람들…. 그는 자신의 이론에 대해 100% 자신. 나는 그가 이 사람들 걱정 1도 안 했다고 확신. 

2018년 최저임금 시원하게 16% 올렸지. 그런데 1분기 저소득층 소득이 줄었단 통계가 나왔지. 대통령은 “그래도 90%는 좋아졌다”고 말했어. 기자들 청와대에 질문, 그 근거가 뭔가요? 홍장표 경제수석 답변, 이 자료를 보세요. 그런데 ‘국민’의 90%가 소득이 늘었단 자료가 아니네? 그 대신 ‘근로자’의 90%가 소득이 늘었단 자료네? 근로에서 탈락해서 물에 빠진 사람들이 걱정되는데, 계속 배에 잘 타고 있는 사람 통계를 보여준 거야. 스스로 외눈박이임을, 불현듯 자백한 거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장면 둘, 산업정책. 2015년 국회에서 토론회가 있었어. 유명한 진보 경제학자들이 모였어. 토론회 말미에 내가 물었지. 현대차가 좋든 싫든 국민기업이잖아요. 전기차다 자율주행이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데, 산업정책이 필요하지 않나요. 탈핵도 재생에너지도 제대로 해내려면, 산업정책이 필요하지 않나요. 

발제하던 사람 말씀인즉, 산업정책은 개발독재의 산물. 이제 정부가 그런 거 하면 금물. 정부가 산업을 이래라 저래라 끌고 가면 안됨. 민주당도 집권해서 그렇게 하면 안됨. 옆에 있던 장하성 교수는 적극 동조. 그 옆에 있던 김상조 교수는 침묵. 이제 알겠지? 왜 장하성 정책실장이 물러나고 나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산업정책 꺼내들었는지. 왜 탈핵 논쟁에서 밀렸는지, 왜 갑자기 수소차가 튀어 나왔는지. 

장면 셋, 부동산. 2017년 8·2 대책, 잘했어. 다주택자 양도세 대폭 높였지. 2018년 9·13 대책, 좋았어. 대출 조여 투기심리 확 꺾었지. 한데 이 둘 사이에 폭탄이 하나 껴 있었어. 임대업자 특혜정책이 슬쩍 놓였어. 8년 넘게만 보유하세요~ 양도세 대폭 깎아드려요~ 다들 앞다퉈 집 사서 임대사업자 등록했지. 서울 집값이 보란 듯 폭등했지. 누가 이 정책을 추진했을까? 김수현 당시 청와대 사회수석. 

그가 쓴 부동산 책이 있다. 2012년에 나온 <부동산은 끝났다>. 공공임대주택, 늘려야 한대.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대. 그래서 민간임대주택, 늘려야 한대. 공공이 어려우니 민간에서라도 공급해야 한대. 그래서 임대업자에게 특혜를 주다니? 금리 1%대인 역사적인 저금리 시대에? 너도나도 갭투자 달려드는 시절에? 

장면 넷, 대입. 김상곤 교육부 장관 되자마자 수능 절대평가 추진했잖아. 과목별로 90점 이상이면 1등급 주자는 거잖아.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겠지? “등급만 주면 정시에서 동점자가 속출할 텐데 합격자는 어떻게 가려요?” 이건 수능이 좋냐 학종이 좋냐는 얘기가 아니잖아. 누구나 품을 만한 상식적인 의문이잖아. 

여기에 답할 방법이 세 가지. 첫째, 면접 허용. 본고사로 비화될 걱정이 있지만 어쨌든 가능. 둘째, 내신 합산. 내신성적을 조금만 섞으면 변별력 생겨. 셋째, 원점수 활용. 우리 대학 공대는 등급으로 동점자 나오면 1순위로 수학 원점수, 2순위로 과학 원점수 깐다는 식으로…. 대선캠프에 첫째, 둘째, 셋째 정리해놓은 보고서도 있었어.

나중에야 알게 됐지, 장관이 아무 생각이 없었단 걸. 국무총리한테 ‘쫑코’ 먹을 때까지, 그저 수수방관했단 걸. 급히 마련한 1안은 절반은 절대평가, 절반은 상대평가. 2안은 대선 공약대로 전 과목 절대평가. 다들 1안이 들러리인 줄 알았지? 사실 2안이 들러리였던 거야. 기본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안 만들어 놓았다가, 비판 받으니까 족보도 없는 1안을 급조한 거야. 스텝이 꼬였지. 여론이 폭발했지. 결국 1년 연기하고, 공론화로 갔지. 그 길로 현 정부 대입개혁, 안드로메다로 갔지. 

원리주의, 환원주의, 끼리끼리, 외눈박이. 정당정치나 국가정책에서는, 금물 아니겠어? 그런 의미에서 홍준연 대구시 구의원 제명, 적신호 아니겠어?

<이범 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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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적 트라우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더구나 참사가 발생한 지 5년, 시간이 기억과 다짐을 부식시켜왔다. 그날의 충격과 분노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생업의 무거움은 핑계가 된다. 그 틈을 타고 가해자들이 날뛴다. 진실을 왜곡하고 유가족을 비방·조롱한다. 시민의 공감을 희석시키고 피해자 집단을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려 한다. 이 시도를 막아야 한다. 안 그러면 또 다른 국가 권력의 피해자들이 진영 논리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차명진 전 자유한국당 의원의 ‘세월호 망언’을 ‘인간이기를 포기한 일개인의 만행’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의 뒤에는 공감 세력이 상당히 존재한다. 공개 지지 입장을 밝힌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이런 ‘차명진들’ 중 한 명이다. 이 끝없는 질곡을 끊으려면 먼저 차명진의 논리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된다. 1. ‘(유가족들이) 자식 시체 팔아 생계 챙긴다.’ 어디서 들어본 듯하지 않은가. 맞다. 참사 직후 ‘김지하 시인의 세월호 비판’이란 이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돌아다닌 글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게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하늘이 안다. 문제는 패륜적 발상이다. 홀아비, 미망인은 있어도 자식 잃은 부모는 호칭이 없다고 한다. 어떤 언어로도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성을 내놓지 않고서야 이같이 모욕할 수 없을 터이다.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 이 세상이 싫다.” 한 유가족의 소회가 가슴을 파고든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2. ‘세월호 사건과 아무 연관 없는 박근혜, 황교안에게 자식들 죽음에 대한 자기들 책임과 죄의식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역시 왜곡과 모욕이 뒤섞인 언어폭력이다. 희생자들의 죽음이 유가족 책임이라니 언어도단이다. 더구나 박근혜, 황교안 두 사람은 세월호와 관련해 사과했다. 본인들도 인정하는 연관성을 차명진은 부정한다. 황교안의 방패 역할을 자청함으로써 내년 총선 공천과 관련해 눈도장을 받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발언 파문이 증폭되면서 그는 다른 의미의 눈도장을 받게 됐다.

두말할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는 국가 범죄다.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박민규 시인)이다. 그럼에도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여객선이 침몰해 승객이 사망한 교통사고 맞지 않나’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는 세월호가 기울기 이전까지 유효할 수 있다. 이후 박근혜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단 1%도 이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재난을 재앙으로 끌고갔다. 만약 당시 정부가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늦어도 8분 안에 다수를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세월호는 100분 동안이나 물 위에 떠 있었으니 시간은 차고 넘쳤다. 이것만 해도 국가 범죄인데, 비난이 일자 박근혜 정권은 무능과 실패를 은폐하고자 사건을 정치적으로 분탕질했다. 정권의 친위세력과 특정 매체들은 거짓말과 선동을 통해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모욕했다.

‘차명진들’이 다수 포진한 한국당은 재난과 관련이 깊다. 포항 지진을 보자. 이명박 정권이 학계 반대에도 지열발전소를 짓고, 박근혜 정권은 학계 경고에도 뜨거운 물을 과다 주입해 재앙을 초래했다고 의심받는다. 그러나 한국당은 의례적인 유감표명조차 내놓지 않았다. 그런 세력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있으니 이런 적반하장이 또 없다. “문재인 정부를 북적북적(북한과 적폐밖에 모른다는 뜻) 정부로 부르는 등 배배 꼬아 말짓기를 잘하는 ‘나경원 어법’대로라면 한국당은 ‘재앙 정당’쯤 되겠다.” 한 누리꾼의 비유가 통렬하다.

정신과 의사 주디스 허먼에 따르면 가해자는 은폐와 침묵을 시도한다. 은폐에 성공하지 못하면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때에 따라 아무도 피해자의 말을 들을 수 없도록 언론을 통제하려 든다.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차명진들’의 행태와 놀랍도록 닮지 않았는가.

허먼이 말하는 가해자의 마지막 수법은 망각이다. 과거는 잊고 미래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주문인 셈이다.

하지만 가슴이 아파도 세월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안타까운 희생자들을 진정으로 추모하고,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면 안된다. 적어도 가해자들이 조롱을 멈추고 진지하게 사과할 때까지는. 그리고 모든 시민이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쇄신될 때까지는.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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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던 목련이 이파리를 떨구고 샛노란 개나리가 초록으로 덮이는가 싶더니만, 벚나무와 복숭아나무가 희고 붉은 망울을 터뜨리고, 진달래에 이어 철쭉이 언덕을 뒤덮는다. 풀숲 사이로 고개 내민 제비꽃, 할미꽃을 살피며 걷는 사이, 상큼한 라일락 향이 코끝을 스친다. “꽃길만 걷자”는 말이 온몸으로 실감나는 계절이다. 인생이 늘 꽃길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렇게 느끼며 사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복되고 기쁜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일 뿐, 힘겹고 불만스러운 날이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초연(超然)’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다는 뜻이다. 눈앞의 현실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다. 도심의 안락한 환경을 즐기던 소식이 어느 날 궁핍하고 불편한 시골 수령으로 자리를 옮겼다. 다들 고생이 많겠다며 위로하기 급급한데, 그 동생 소철은 형이 즐겨 오르는 누대에 ‘초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어느 곳에 가든 느긋하게 즐길 줄 아는 형의 마음을 표현한 말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소식은 어떤 수련을 닦았기에 초연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까? 시골 수령 생활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연이은 가뭄과 메뚜기 떼로 인해 백성은 굶주리고 도적이 들끓었다. 1년 넘게 동분서주하며 구휼과 치안에 힘쓴 끝에야 다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든 어느 구석인가는 볼만한 점이 있기 마련이며, 그렇다면 나름대로 즐길 만하기도 하다는 게 소식의 생각이었다. 공기 좋은 곳에선 산나물에 된장도 별미이고, 멋진 이들과 함께라면 싸구려 술로도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다. 이게 소식이 환경에 구애되지 않고 즐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소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앙을 구하고 복은 버리는 길을 간다고 했다. 왜 그럴까. 대상에 갇혀 지내기 때문이다. 별것 아닌 대상이라 해도 그 안에 갇혀서 바라보면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고 상대적으로 자신은 초라해 보이기 마련이다. 즐거움과 근심, 아름다움과 추함의 기준이 오로지 자신을 압도하는 대상에 달려 있다면, 이건 시작도 하기 전에 진 게임이다. 우리가 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꽃이라는 대상 바깥에서 바라보기에 가능하다. 대상에 갇히지 않기를 경계할 일이다. 초연한 자가 꽃길을 걷는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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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법원행정처에서 매년 발간하는 ‘사법연감’에는 재판과 관련된 다양한 통계가 실린다. 수많은 통계 가운데 언론이 즐겨 다루는 소재가 ‘이혼’이다. 2017년 이혼한 전체 부부 가운데 3만3124쌍(31.2%)이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하다 헤어진 경우(2018년 사법연감)였다. 이른바 ‘황혼이혼’이다. 2010년 처음 3만건을 넘어선 황혼이혼은 해마다 늘어나 2017년 3만3000건대에 진입했다. 황혼이혼은 기대수명 증가로 인한 고령화사회의 한 단면이다. 결혼 이후 부부가 함께 지내야 하는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혼에는 현실적 문제가 뒤따른다. 재산분할이나 미혼 자녀의 출가 같은 일들이다. 이런 문제로 망설이는 이들에게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졸혼(卒婚)’이다. 문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다. 2004년 일본 에세이스트 스기야마 유미코가 펴낸 &lt;졸혼을 권함&gt;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법적 혼인 상태는 지속하되, 부부가 서로 간섭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생활방식을 가리킨다. 별거하거나 생활공간을 분리하되, 대부분 정기적으로 만나며 관계를 유지한다. 가족 해체에 따르는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펴낸 ‘2018 은퇴백서’를 보면, 조사 대상인 25~74세 2453명 가운데 남성은 22%, 여성은 33%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해 전 배우 백일섭씨(75)는 방송에 출연해 졸혼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소설가 이외수씨(73) 부부도 결혼 43년 만에 졸혼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성지 우먼센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별거에 들어간 이씨 부부는 이혼을 논의하다 최근 졸혼으로 합의했다. 헌신적 내조로 잘 알려진 부인 전영자씨(67)는 “제 인생이 참 괴롭고 고단했다. 더 늙기 전에 집을 나와 무언가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강원 화천에, 전씨는 춘천에 거주하고 있다.

결혼식 주례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의 시대는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졸혼이든 해혼(解婚)이든 휴혼(休婚)이든 선택지는 다양하다. 부부의 충분한 공감과 합의만 전제된다면.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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