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콜텍’은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너무 익숙하고 안쓰럽고 분노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사람에게는 튼튼한 벽과 지붕이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콜트콜텍의 해고노동자들을 목격했던 곳은 죄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내 한복판 한쪽에 자리 잡은, 너무나도 빈약해 보이는 천막이었다. 그리고 그 목격담은 마치 유령처럼 장소를 옮겨가며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야 그 지난한 투쟁이 콜트와 콜텍의 공동투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3년 만에 사측으로부터 ‘유감 표명’과 ‘합의금’을 받게 된 것은 1988년에 설립되고 통기타를 만들던 콜텍이고, 1973년에 설립되어 전자기타를 만들던 콜트에서 해고된 노동자는 여전히 대법원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12년 대법원은 콜트의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공장으로 돌아간 그들은 3개월 만에 다시 정리해고를 당했고, 콜트는 국내 공장을 아예 정리해버렸다. 다시 진행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1심과 2심 판결을 뒤집고 2017년 5월 “국내 공장이 없어 부당해고에 대한 구제 실익이 없다”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후에 밝혀진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 사건을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박근혜 정권과의 재판거래 대상으로 분류해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콜트는 여전히 멈출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다.

4464일간 이어진 국내 최장기 투쟁 사업장 콜텍 노사가 정리해고 노동자의 ‘명예 복직’에 합의한 22일 임재춘 콜텍지회 조합원(오른쪽)이 서울 강서구 등촌동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42일 만에 단식을 풀며 김경봉 조합원과 눈물을 흘리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가는 일일 수 있다. 사람들은 평생을 일하면서 살지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다. 사장이 고용한 사람을 마음대로 자르는 것은 아직도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고, 심지어 공장을 뜯어 외국으로 나갔는데도 해고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인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근대적 고용관계가 생겨난 이후 노동자들은 단지 더 많은 돈을 위해서만 싸운 것이 아니라, 이윤추구를 위한 자본의 자의적인 결정들에 맞서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권리를 얻기 위해서도 싸웠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유명한 구호는 기업과 경영자들이 한낱 숫자로 취급하며 잘라내는 게 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멀쩡히 흑자를 내며 잘 운영되던 기업이 어느 날 갑자기 경영상의 이유를 대며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은 콜트와 콜텍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아직도 너무나 많은 ‘사장님’들은 기업과 장롱 속 금송아지 사이의 구분을 못한다.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재산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은 교육, 환경, 법과 제도, 경제정책을 비롯한 영역에서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그 속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20세기 말 이후 자본주의는 기업과 자본에는 깃털과 같은 자유로움을, 사회와 노동자들에게는 더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다 자본과 기업의 방만함이 위기가 되어 돌아오자,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2018년 세계은행은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 5위라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하기 좋은 나라에 대한 통계는 세계은행에서 나오지 않는다. 대신 201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저임금 여성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다고 발표했으며, 한 글로벌 컨설팅 업체는 한국을 OECD 국가 중 여성이 일하기 가장 안 좋은 나라로 꼽았다. 

이 격차가 말해주는 것이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면한 사회문제들의 상당수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13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버티며 투쟁해온 콜텍 노동자들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에 나선다. 이인근 지회장은 “자본들은 오래 버티면 노동자들이 떠나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법칙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콜텍에 축하와 감사를, 그리고 콜트에는 간절한 기원을 보낸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 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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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50주년을 기념하는, 유엔이 지정한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해’다. 1869년 멘델레예프는 당시 알려져 있던 60여개의 원소를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했다. 

그가 만든 주기율표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표 안에 놓인 ‘빈칸’에 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표는 그 빈칸에 더 찾을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아직 모름’을 인정하지 않는 빈칸 없는 표는 미완의 표를 완결된 표로 보이게 하는 착시를 만든다.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은 이후 이곳에 들어맞는 화학원소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원자번호 21번 스칸듐, 31번 갈륨, 32번 저마늄, 43번 테크네튬 등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20세기 들어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각 원소의 원자번호는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개수고, 이는 음의 전하를 가진 전자의 개수와 같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 원자핵 주위 전자들이 낮은 에너지 상태부터 차곡차곡 놓인다는 것으로부터 주기율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과학자는 주기율표만 가지고도 많은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은 왜 시간이 지나도 광택을 잃지 않는지, 철은 왜 쉽게 녹스는지, 비소는 왜 우리 몸 안에서 독성을 갖게 되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뿐 아니다. 채워야 할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아직 모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과학 발전의 주된 원동력이다. 

거꾸로, 빈칸이 없어야 과학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뒤집힌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과 비슷한 것이 없으니 유사과학도 과분해 가짜과학이라 불러 마땅한 창조과학의 일부 주장이 그렇다. 진화의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진화론에 오류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 진실은 거꾸로다. 제대로 된 과학 안에는 숭숭 구멍 뚫린 빈칸이 도처에 널려 있다. 과학은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빈칸을 채워나가는 인류 공동의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다. 빈칸이 없으면 과학도 없다.

‘빈칸’의 가치를 공자도 <논어>에서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로 이야기한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즉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부지(不知)의 지(知)”가 바로 진정한 앎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도 역시나 비슷한 얘기다. 작가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과학혁명은 결국 “무지의 발견”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알기 위해 뭐라도 할 수 있지만, 모르는데 안다고 믿으면, 더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에게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진리 탐구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라는 확신이다. 세계 지도 위에 표시된, 아직 가보지 못한 대양 너머 미지의 여백의 존재는, 그곳에 가려는 노력을 충동하기도 했다. 과학에서나 우리 삶에서나 ‘빈칸’은 소중하다. 빈칸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빈칸’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의 인정이다.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무(無)’, 혹은 ‘정말로 비어 있음’을 뜻하는 ‘진공(眞空)’도 과거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빈칸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물리학은 진공이 역설적으로 진공이 아님을 발견했다. 

현대 물리학의 진공(vacuum)은 넓고 깊은 바다와 비슷하다. 큰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바닷물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물장구를 쳐 수면 위로 튀어 올라온 물방울, 그리고 그 물장구가 남긴 바닷물 속 공기방울만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수면 위로 올라온 물방울을 입자, 바닷물 안 공기방울을 반(反)입자로 생각하면 된다. 진공이 이런 바다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입자 하나와 반입자 하나가 짝을 이뤄 동시에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진공 요동이다. 양자역학의 진공 요동으로 만들어진 입자와 반입자의 쌍은, 튀어 오른 물방울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 공기방울과 만나 사라지듯이, 오래지 않아 서로 만나 함께 소멸해 없어진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진공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정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짧은 순간의 양자 요동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입자-반입자가 쌍생성과 쌍소멸을 반복하며, 팥죽 끓듯 하는 동적인 존재가 바로 진공이다. 처음 이론적인 상상으로 제안된 입자-반입자의 쌍생성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 양성자의 반입자인 반양성자로 구성된 반수소를 실제 실험에서 관찰하기도 했다. 

현대 물리학의 진공, 혹은 ‘무(無)’는 자발적으로 온갖 것들을 생성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바다다. 요즘에는 우주를 탄생시킨 태초의 빅뱅도 바로 이와 같은 진공의 양자 요동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많은 물리학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우주가 만약 이처럼 순수한 양자 요동으로 시작했다면, 우리 인간의 존재에 어떤 거창한 우주적인 규모의 목적이 있을 리 없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나, 당신이나, 지구나, 태양이나, 우리 은하나, 결국 모두는 하나같이 ‘빈칸’의 후예다.

고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 동영상을 봤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른 새벽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고인의 애틋함이 담긴 연설에 눈물을 글썽였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일수록 오히려 더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과학이나 우리 삶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빈칸’의 존재가 더 소중한 것은 아닐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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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벚꽃 대선을 치르면서 시민들은 새로운 미래에 기대가 부풀었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을 보면서 ‘대통령이 복이 많다’고 했다. 성장률도 높아지는 데다 시민들의 높은 지지까지 있으니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해 수요를 일으키고, 혁신성장으로 공급을 확대하며 이를 뒷받침하도록 경제시스템도 공정하게 고치겠다고 했다. 소득 증가를 수요와 공급, 투자로 이어지도록 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일자리 늘리기’를 청와대 1호 사업으로 정하고 일자리 전광판까지 세웠다.

그런 뒤 2년이 흘렀다. 기대는 빗나갔다.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과속에 따른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혁신성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사실상 ‘공회전’ 중이다. 경제성장률도 직전 정부의 성장률에 못 미친다. 전 정부의 관성이 남아 있던 2017년 GDP성장률이 3.1%로 가장 높았고 지난해 2.7%, 올해는 더욱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제성장률 하락 시점이 같다는 점은 우연이라 볼 수 없다. 일자리 실적은 극히 부진하다. 30만명대 증가에서 지난해에는 10만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인구구조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인구 감소 영향도 있으나, 일자리 감소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경제의 허리층인 30·40대와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뼈아픈 부분이다. 벚꽃이 떨어지듯 지지도도 하락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피해왔다. 지난달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 증가세가 확대되고 경제가 여러 측면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 다행”이라고 말했다. 각종 지표나 현장의 목소리와 다른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정말로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가 심리인 만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한번 밀리면 끝까지 공격당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다. 정부가 추경예산안을 내면서 스스로 경제가 나쁘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높은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무엇이 문제인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어젠다를 실행할 준비가 부족했고 책임감도 떨어졌다. 소득주도성장의 대표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을 수 있었으나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됐다. 시행에 앞서 고용시장에서 감내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처방전이라 해도 약물을 과용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처음 처방이 과도했다면 조절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 책임자였던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나도 최저임금을 그렇게 많이 올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럼 누가 책임지라는 말인가.

1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청에서 열린 '2019 용인시 일자리 박람회'가 구직자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청와대는 독주했고 소통은 부재했다. 출범 초기 청와대와 경제부총리의 불협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어 경제수장이 바뀐 뒤에는 잡음은 없어졌으나 정부가 청와대의 실행부서가 되었다. 각 부처가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는 늦어진 데다 11개 부처는 서면보고로 대체했다. 대통령 업무보고는 각 부처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지만 사라졌다. 또 한국의 경제현실에서 기업은 좋든 싫든 대화의 상대다. 그런데 적폐라는 프레임으로 대화는 실종됐다. 간간이 ‘보여주기용 만남’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재벌개혁이 제대로 된 것도 아니다. 자영업자와 대통령의 대화가 이뤄진 건 올해 들어서다. 대화와 소통으로 의견을 나누고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 수 있으나 그 길이 막혔다.

문재인 정부는 첫 단추가 잘못 채워지면서 조급증에 빠졌다. 한방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게 토건사업이다.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통해 54조7000억원, 생활SOC 사업에 48조원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을 돌면서 요청받은 지역개발 사업이 134조원에 이른다. 다음 세대에 짐이 될 사업들이다. 4대강 사업 22조원을 비난하던 여당이 맞는지 싶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건 저소득층이나 소외계층이 홀대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4분기 빈부격차는 분기 기준으로 2003년 이후 최대치로 벌어졌다. 오히려 보호받아야 할 저소득층이 피해를 입는 사회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두번째 벚꽃이 지고 있다. 정부는 정책이 제자리를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사이 많은 자영업자들이 나락으로 추락했다. 한번 해체된 가계의 ‘경제적 부활’이 힘들다는 것은 이미 외환위기가 교훈으로 남긴 바 있다. 경제는 고상한 구호가 아니라 밥의 문제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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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동네가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라 가끔 축제 때 판다 분장을 보게 된다. 어린 대나무 잎사귀를 입에 달고 사는 판다. 대숲에서 판다가 굴러떨어질 거 같다. 주민들만 해도 중국 구경을 안 해본 분이 없을 정도. 회갑 때도 가고 칠순 때도 간다. 누구 집 노총각 아들은 중국 동포랑 가약을 맺었는데, 친정 식구들이 건너와 농사일을 거들어 살림이 폈다.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갈 필요가 없는 게 그런 모양으로다가 반은 한국식, 반은 중국식으로 살아가는 집들이 있다. 이곳 외딴 데까지 배달음식은 오로지 중국요리뿐. 누가 중국 댕겨왔다며 백주 한 병 들고 오면 요리 하나를 시켜서 나눠 마신다. 조금만 마셔도 판다처럼 방구석을 뒹굴게 된다. 어려서 성룡의 취권 흉내를 내고 놀았지. 동네 아재들 중에 이미 취권을 터득한 분들도 꽤 되었어. 막걸리 몇 잔이면 주먹질을 해대고, 경운기와 함께 수로에 빠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기어 나오는 것을 보면 취권을 마스터했기 때문이렷다.  

홍콩의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들은 깔린 음악이 좋다. 보고도 또 찾아보게 된다. 공추하가 부르는 ‘사방에 핀 장미’와 같은 명곡이 흐르는 영화. 여명, 장만옥, 장국영, 양조위, 공리 같은 명배우들의 대사가 흐르면 가슴이 촛농처럼 녹아들고 만다.  

일제 식민이나 분단이 없었다면 우리는 중국이랑 형제 나라로 오래전부터 잘 지냈을 것이다. 중국이랑 사이가 틀어지는 일이 생기면 두 눈 감고 외면하더니만 요샌 일본이랑 사이가 안 좋다며 오두방정을 떤다. 일제 순사집안 씨앗들인가.

가수 김정호의 외가가 이곳 담양이다. 판소리꾼 집안.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말 못하는 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이 노래 ‘몽중인’을 처음 부른 가수도 공추하다. 그러니까 원곡은 중국 노래. 1940년. 우리가 임시정부를 중국에 두었을 때 흐르던 노래. 공추하의 노래를 들었을 임시정부 식구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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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네가 뜨는 몇 가지 패턴이 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어느 정도 상권이 형성된 지역에 예술가들이 터를 잡는다. 그들이 공연이나 전시 등을 통해 어떤 움직임을 만든다. 주변에 그 움직임을 동경하는 카페나 술집, 식당들이 생겨난다. 입소문이 나고 새로운 걸 찾는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터진다. 1980년대의 신촌, 1990년대의 홍대 앞, 2000년대의 가로수길이 거쳐온 패턴이다. 또 하나의 패턴은 전통적 주거지나 낙후되어 있던 과거 도심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아파트가 주거의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1990년대 이후, 아이들의 성장 배경은 그전에 비해 규격화됐다. 똑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똑같은 극장 체인점에서 영화를 봤다. 전국 어디나 있는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와 커피를 먹었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이 빼곡히 들어찬 하늘에 익숙한 이 세대에 붉은 벽돌 단독주택과 저층 건물이 주가 된 풍경은 ‘낡은 새로운’ 것이다. SNS의 등장 이후 이런 동네는 이 세대에 가장 각광받는 곳이 됐다. 그들이 사는 일상과는 다른 배경을 제시했고, 무엇보다 붉은 벽돌의 질감과 색감은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그림을 만들어냈다. 경리단길, 해방촌, 망원동, 을지로 등이 이런 배경을 등에 업고 떴다. 

지금까지 언급되지 않은, 서울의 핫 플레이스는 성수동이다. 여기는 참으로 신기한 지역이다. 강남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고, 강북 중심지까지도 20분 안에 갈 수 있는 천혜의 교통 환경임에도 오랫동안 준공업지대로 남아 있었다. 뒤로는 서울숲이, 양옆에는 한양대학교와 건국대학교라고 하는 거대 상권이 존재하는데도 그랬다. 나이 든 서울 토박이들에게는 ‘뚝섬’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을 성수동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중반이다. 디웰 하우스, 카우앤독 같은 공유 오피스&하우스 등이 생겨나면서 스타트업과 소셜벤처 관계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림창고,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등 창고와 공장 시절의 내·외관을 고스란히 간직한 카페들이 인스타그래머들을 끌어들였다.

성수동이 뜬 패턴은 후자, 즉 낙후된 지역의 재발견에 의해서지만 이 동네의 부상은 딱 하나로 설명하기 힘들다. 우선 ‘중심축’이 없다. 어느 동네든 메인 스트리트가 있다. 그게 기존 주민들이 다니던 길이건, 새로운 ‘핫스폿’을 중심으로 형성된 길이건 축이 되는 거리가 있고 이 축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나간다. 가로수길 옆에 세로수길이 만들어지고, 홍대 앞을 축으로 상수, 연남 등이 활성화된 게 그런 예다. 그런데 성수동에는 그런 중심축이 없다. 넓은 필지의 공장과 창고, 아파트형 공장(지식산업센터)들이 사방에 있는 지역이기에 소규모 자본 창업을 위한 공급이 부족하다. 따라서 ‘A카페 옆 B베이커리’ 같은, 일반적 상권의 형태가 존재하기 힘들다. 어니언, 성수연방과 같이 아예 대형 창고와 공장을 리모델링해서 운영하는 업체들도 있지만 소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른 동네와 달리 성수동의 핫 플레이스는 대개 점으로 존재한다.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켜고 다니는 문화에 최적화된, 보물찾기의 지역이다.

또 하나 ‘밤’이 없다. 모든 상권은, 특히 한국에서는 2차와 3차에 최적화된 술집들이 존재한다. 1차로 배를 채운 후 2차에서 본격적으로 달리고, 3차로 마무리한다든가 하는. 하지만 성수동의 야경은 어둡다. 1차로 갈 만한 곳은 많으나 2차로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3차는 더 그렇다. 지역에 새롭게 입주한 젊은이들도 늦은 시간이 되면 다리를 건너거나 건대 앞으로 간다고 하니 대략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수동이 원래부터 ‘노는 동네’가 아니라 ‘사는 동네’이자 ‘일하는 동네’였으며, 건대나 한양대 등 기존 상권에서 유입되고 확장된 상권 또한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특성들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성수동이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공장과 창고들이 원체 크기에 쉽사리 재개발, 재건축하기 어렵다. 놀러 와서 소비하는 시간이 제한적이기에 주거지의 급속한 상업화가 일어나기 힘들다. 한 탕을 노리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낙관적인 예측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의가 아니라 구조가 프랜차이즈화의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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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소속 등 국회의원 70명이 2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형집행을 정지해 달라고 검찰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2년이 넘는 수형 생활로 건강이 우려되는 수준이고, 허리디스크와 관절염 등 각종 질환으로 고통도 녹록지 않다”며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 배려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나치 당시 아우슈비츠를 묵인했던 저들의 편견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잔인한 폭력을 묵인하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이나 한치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위해 친박근혜 세력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왼쪽에서 다섯번째)과 당 소속 경북 구미지역 시·도 의원들이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형집행정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 요구는 무엇 하나 요건에 맞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정농단으로 탄핵을 당한 뒤 처벌을 받고 있다. 기결수가 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다. 이런 중죄인을 풀어주라는 것은 시민의 정서에 어긋난다. 또 청원을 제기한 의원도 김무성·홍문종 등 한국당과 무소속 서청원·이정현 등 친박계 일색이다. 한국당 소속임에도 청원에 동참하지 않는 의원이 많다는 것은 박 전 대통령 석방이 시민 다수의 뜻이 아님을 보여준다. 형집행정지는 구치소 내 의사가 판단해 그 필요성을 건의해야 하는데 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은 과오를 인정하지도, 또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대로 석방할 경우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기 어렵다. 국민통합을 고려하라지만 그런 효과는 애초에 기대할 수 없다. 더욱 경악할 일은 이들이 박 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감옥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비유한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독일의 나치 정권이 150만명의 수용자를 독가스 생체실험 등으로 잔인하게 학살한 곳이다. 시민들의 뜻에 따라 단죄된 전직 대통령이 수감된 곳을 아우슈비츠와 비교하다니 말문이 막힌다. 이곳이 아우슈비츠라고 하면 수많은 다른 수형자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자극적인 거짓말로 혹세무민한 의원들은 즉시 사과하기 바란다.

친박계 의원들이 박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저의는 뻔하다. 박 전 대통령을 바깥으로 불러낸 뒤 그를 구심점으로 지지세력을 모아 촛불시민에 맞서겠다는 뜻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검찰은 명분 없는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를 절대로 허용해선 안된다. 박 전 대통령 석방은 본인의 진솔한 사과가 있은 뒤에야 검토하라는 것이 시민의 뜻임을 친박세력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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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4당이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의 고삐를 죄는 와중에 바른미래당의 ‘오신환 의원 반대’가 변수로 돌출했다. 오 의원은 24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오 의원이 실제로 반대표를 행사한다면 사개특위는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없다. 이는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무산을 뜻한다. 가뜩이나 자유한국당이 강력 저지 투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오 의원 변수까지 불거져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오 의원은 그간 소신을 들어 패스트트랙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왔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 각자의 소신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가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양심과 소신에 따른 결정이라면 뭐라 할 게 못된다. 그러나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민심 그대로 반영하는 선거제 개혁은 우리 정치의 오랜 과제이자 시대적 요구다. 검찰개혁은 개혁과제 1호로 꼽을 만큼 시민의 지지가 압도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합의에 대해 긍정평가는 50.9%, 부정평가는 33.6%였다. 그게 민심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합의안이 추인된 만큼 합의한 대로 추진하는 게 당에 소속된 의원의 도리”라며 “추인된 결과에 따라 집행할 책임도 원내대표에게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결국 오 의원을 사개특위에서 교체하기로 했다. 선거제·검찰개혁의 대의를 생각하면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본다.  

문희상 국회의장(테이블 오른쪽 두번째)이 24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선거법 개정 패스트트랙 지정과 관련해 항의 방문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자유한국당이다. 한국당은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을 항의방문해 오 의원의 사·보임을 허가해선 안된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의장은 사퇴하라”며 고성을 질렀고, 국회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급기야 문 의장은 “국회가 난장판이다. 이게 대한민국 국회가 맞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완력으로 정치적 주장을 이루려는 반의회주의적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국회의장의 비명은 시민의 외침과 하나 다르지 않다. 

한국당은 연일 장외를 맴돌며 극한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주말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도 열겠다고 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내라는 여론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그사이 시급한 민생·경제법안들은 먼지만 쌓여가고 있고, 추경예산안 처리도 난항을 겪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국회가 밤새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풀어도 모자랄 판에 암담하기 그지없다. 이런 안하무인식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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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정치’는 어떤 명분을 갖다 붙인들 결국은 신념과 지조는 팽개치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양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배지’에 목숨 건 정치인들이 선거 때 유불리에 따라 당적을 옮겨 다니는 것은 한국 정치의 오랜 유전자다. ‘피닉제’(피닉스+이인제)로 불린 이인제 전 의원의 무시무시한 정당 족보가 웅변한다. 1988년 13대 총선 당시 통일민주당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인제의 현란한 당적 이동은 세계 정치사에서도 유례가 없다.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국민신당-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국민중심당-민주당-통합민주당-무소속-자유선진당-선진통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현재가 14번째 정당이다. 두 번의 대선과 7차례 총선 도전 중 동일 정당의 이름으로 출마한 적이 없다. 당적을 바꾸면서도 20대 총선을 제외하고 앞서 6차례 내리 당선되는 생명력을 발휘해 그리스 신화 속 피닉스(Phoenix), 불사조란 영욕 어린 별칭을 얻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24일 (출처:경향신문DB)

‘피닉제’도 놀랄 만한 후생가외(後生可畏) 철새가 떴다. 대놓고 한국당행을 예고했던 이언주 의원이 “드디어”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광야에 선 한 마리 야수와 같은 심정으로”라며 끝까지 ‘영웅 놀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재선 이언주의 철새 행적은 벌써 찬란(?)하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배지를 달았고,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재선했다.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에서 모두 원내대변인을 역임한 이언주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에게 정치생명을 걸었다”며 국민의당으로 이적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 바른미래당 소속이 되면서 이언주의 표변이 시작됐다. 이승만·박정희 미화의 선봉에 서고,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면서 소위 ‘보수의 전사’를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바른미래당 탈당을 선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애초 바른미래당을 거쳐 한국당으로 가려는 “경유형 철새”가 맞았던 셈이다. 지역구(경기 광명)가 어려우니까 당(한국당)과 지역(부산)을 옮겨 배지를 보존하겠다는, 철새의 양지 본능일 터이다. ‘피닉제’ 계보를 잇는 ‘피닉주’의 탄생 여부는 유권자의 손에 달렸겠으나, 개인적으로는 피닉스로 불리는 ‘철새의 전설’은 이인제로 끝났으면 좋겠다.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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