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는 상품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는 성난 국민들의 목소리에 원희룡 제주지사는 결국 지난 17일 제주도 영리병원 개원 허가를 취소했다. 이미 많은 부문이 민영화, 영리화가 되어 있는 우리나라지만 의료만은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승리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1800만명이나 되는 우리나라 노동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직업보건의료는 공공성을 찾아보기 힘들고 운영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상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알려주는 사례는 무료 야간특수건강검진의 등장이다. 야간특수건강검진은 야간에도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만든 특수건강검진으로 이미 10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검진을 받고 있다. 여기에 당연히 수가는 정해져 있지만, 대다수가 민간인 특수건강검진 병원의 경쟁으로 인해 수가를 무료로 해주고 대신 끼워 파는 종합검진으로 손실분을 보상하는 병원이 생겨났다.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는 일반 의료에서는 수가 할인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어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할인을 넘어 무료로 수가를 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무료로 해주는 건강검진은 정상적인 내용으로 진행될 수가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현실에 경악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들은 담당부서인 고용노동부에 수가 할인의 불법성에 질의를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 수가 할인 외에도 영업을 담당하는 브로커들까지 활동하고 있어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은 자신들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건지, 기업에서 근무하는 건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직업보건의료의 비용은 전부 사업주가 부담한다. 그러다보니 사업주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여지가 크고 이는 검사의 신뢰성에도 위협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 환경부가 서로 짜고 대기오염 측정결과를 조작한 측정업체와 기업들을 적발했다고 발표하자,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의 SNS 단체 방에는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직업보건의료의 가장 기초가 되는 사업장의 위험물질 작업환경 측정조사가 일부 측정기관에서 부실하게 작성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뢰성도 의심받고 있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도 다르지 않다. 특수건강검진 시 위험물질이 몸 안에 있는가를 판별하기 위해 소변검사를 시행하고 있고, 이는 보통 작업의 종료시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일부 병원은 이를 철저히 지키고 있는가에 대해 의심받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이를 감독해야 하지만, 부족한 인원을 이유로 감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모 병원의 소변검사에 문제가 있어 다른 병원 의사가 관련 자료를 고용노동부에 다 넘기고 조사를 촉구했지만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 산재사망 전문시민단체인 노동건강연대 조사결과에 따르면 하청 노동자의 산재사망은 원청 노동자에 비해 7배나 높다. 하청 노동자의 비극은 직업보건의료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원청 노동자가 직업보건의료의 혜택을 보는 반면, 하청 노동자는 가장 기본적인 건강검진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똑같이 위험물질을 취급하더라도 원청 노동자는 특수건강검진을 받고 하청 노동자는 못 받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답답한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은 원청 담당자에게 호소하지만 원청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하고 사실상 인력 브로커에 가까운 하청 사장은 만날 길도 없다. 산재 사망처럼 이슈화되지도 않아 어디서부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병원에서 환자 개인만을 상대하는 일반 의사들에 비해 기업을 상대로 을이 된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는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은 자신의 직업적 소명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남모를 분노와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다. 이 분노와 슬픔이 체념이 되어서는 안된다. 명분 있는 일이라면 국민에게 호소하고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직업환경의학 의사들과 국민들의 생각은 같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김철주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아기가 모유나 분유를 떼고 처음 먹는 첫 이유식은 대개 쌀미음이다. 쌀미음은 불린 쌀에 10배 정도의 물을 부어 희멀겋게 쑨다. 그러다 아기가 죽 좀 먹고 진밥 먹다 되직한 밥에 반찬 얹어 먹기 시작할 때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돌 즈음이다. 직립보행과 밥 먹는 때가 맞아떨어진다.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은 밥 먹는 것으로 나아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생이 끝나갈 때 마지막 입에 떠 넣는 음식도 미음인 경우가 많다. 조부모도 어머니도 그렇게 미음 몇 술 뜨고 영원히 숟가락을 놓으셨다. 

그런데 이 미음을 앞에 두고 우는 남자 어른을 보았다. 콜텍 노동자 임재춘씨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다. 그는 사측의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사과와 복직 등을 요구하며 서울 등촌동 콜텍 본사 앞에서 42일간 단식농성을 해왔다. 그리고 지난 22일 마침내 사측과의 협상이 타결되었다. 단식을 풀고 42일 만의 첫 끼니인 미음을 앞에 두고 임재춘씨는 동료들과 함께 울었다. 

타결된 협상의 핵심은 정리해고에 대한 사과 그리고 함께 싸웠던 노동자 3명의 명예 복직이다. 그러나 복직의 형식은 갖추되 한 달 정도 뒤에는 퇴직을 하는 조건이다. 이들의 싸움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올해로 13년째 외롭고 고단한 투쟁을 이어온 것이다. 콜텍은 노사 분쟁 최장기 사업장의 기록을 세웠고, 근력 좋던 40대 중반의 노동자들은 이제 늙은 노동자가 되었다. 

콜텍 노사 조인식이 열린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오른쪽부터)과 전날까지 42일간 단식한 임재춘 조합원, 올해 60세로 정년을 맞이하는 김경봉 조합원이 마지막 기자회견을 끝내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콜텍의 재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정권의 재판거래 목록에 들어 있었다는 참담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생존을 건 싸움이 고작 싸구려 거래 품목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동안 함께 싸웠던 동료들은 견디지 못하고 떠났고, 긴 싸움에 서로 상처가 남았다.    

언론에서는 ‘극적 타결’이라고 보도했지만 어떤 드라마가 13년이나 질질 끈단 말인가. 그나마 임재춘씨의 단식이 길어지면서 그제야 처음으로 콜텍의 박영호 사장이 교섭장에 나왔고 간신히 협상이 이루어졌다. 복직 투쟁을 시작한 지 4464일 만이다. 13년보다는 좀 더 극적인 말이긴 하다. 그간 이 사안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언론들마저도 이 소식은 다루었다. 뉴스거리 정도는 된다 여겼던 것일까. 어릴 때는 감꽃을 세고 전쟁 통에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었다는 김준태의 시처럼, 굶는 사람의 단식 날수를 세고, 굴뚝 고공농성이 기네스 기록을 경신할 것인지를 세고, 스스로 생을 놓는 노동자들의 머릿수를 세는 것에 너무 무감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1월에는 세계 최장기 굴뚝 농성이냐 아니냐를 셈하던 ‘파인텍’ 노사 협상이 ‘극적 타결’되었다. 굴뚝에 올라가서 단식까지 강행하던 상황이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한시름을 놓았다. 그런데 정말 협상 타결 내용이 잘 준수되고 있는지를 정작 물어본 적이 없다. 

여론에 떠밀려 협상안에 사인을 하고 억지 악수를 한 사장들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파인텍 상황이 궁금하던 차에 물어보니 여전히 타결 내용 이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쓴웃음이나마 지었지만 카메라 불이 꺼지면 분장을 지우고 속내를 또 드러내곤 한다. 

콜텍 임재춘씨의 미음이 아직은 멀겋다. 굶은 날수만큼 그는 미음과 죽으로 지내야 한다. 그 시간이 지나 제대로 된 밥이 그의 입으로 들어갈 즈음에는 이 드라마의 극적이고 인간적인 엔딩을 보고 싶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가톨릭교회에서는 부활절 후에 ‘엠마오’를 간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10여㎞ 떨어진 마을로 추정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후 예루살렘을 떠나가던 제자 두 명이 길에서 만난 예수를 엠마오에서 비로소 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루카복음 24장). ‘엠마오’는 이 만남을 기념하는 부활 나들이라 하겠다. 올해는 부활절 다음날 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DMZ생태연구소’에 요청해 마련한 비무장지대(DMZ) 생태탐방에 다녀왔다.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DMZ로 엠마오를 간 셈이다.

민통선 너머에서 만난 숲은 참으로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그러나 땅속에 매설된 수많은 지뢰는 비무장지대가 한반도 최고의 중무장지대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우리의 평화는 여전히 엄청난 무력으로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 이후 긴장 완화와 평화 분위기가 급속히 고조되며, DMZ에 매설된 지뢰 제거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말 남북 군사당국은 ‘남북군사분야합의서’에 따른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강원도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제거 작업을 실시했다. 남북의 화해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이지만, 지뢰 제거를 위해 해당 지역의 나무와 일정 깊이의 흙을 무차별로 베어내고 헤집는 것은 생태적으로 매우 폭력적이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우리가 전쟁으로 황폐하게 만들었고, 자연이 다시 풍요롭게 만든 곳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7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2016년 후반, 광장에 수백만의 촛불이 박근혜 정권을 흔들어놓자 민통선 안의 땅 값도 흔들렸다고 한다. 정권이 교체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가능할 수도 있는 ‘개발’ 기대 때문이다. 웃고 넘겨버릴 얘기만은 아니다. 남북 정상의 만남 이후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필두로 남북 교류와 협력에 관한 제안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DMZ를 둘러싸고 제안되는 사업에는 ‘생태’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어떻게든 개발을 하겠다는 속내만 더 드러나는 듯하다. 이래서야 한반도의 평화는 DMZ에는 폭력이 될 공산이 크다. 돈과 이윤에 사로잡히고 휘둘려 부끄러움을 상실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민통선 안 숲에는 너부러진 채 죽어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하지만 숲속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다. 죽은 나무들은 숲에서 다른 생명들이 깃들고 자라는 터전으로, 뭇 생명의 근원으로 새롭게 변화한다. 자기를 내어줌으로써 새 생명을 키운다. 사람이 죽음을 심은 곳에서 자연은 생명을 일구어냈다. DMZ는 부활의 땅이다. 

예수는 못과 창에 찔린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십자가 상처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삶, 그들의 편에서 불의한 권력에 끝까지 맞섰던 예수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우리를 그 삶으로 초대한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숲을 일궈낸 부활의 땅 DMZ에도 상처가 새겨져 있다.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지만, 이 상처는 서로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의 충돌로 생겨났다. 지난 세월, 이 상처는 남북 간에 그리고 우리 남쪽 안에서 계속 깊어져왔다. 지뢰는 상처를 악화시키는 맹목적인 질주를 멈추라고 경고한다. 지뢰는 우리가 남북의 평화를 빌미로 DMZ를 그저 ‘소비’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지뢰는 사람에게 물리적인 제약과 위협이 분명하다. 동시에 지뢰는 효율과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배타적이고 무한한 욕망을 제어하는 강력한 상징이 될 수 있다. DMZ의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반드시 능사도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돈과 이윤이 우리 삶의 원리가 된 지 오래다. 비무장지대라고 우리를 지배하는 삶의 방식에서 예외가 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이럴 바엔 차라리, “DMZ에 지뢰를 허하라.” 엠마오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생각이다.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주제별 > 녹색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비문화와 이별하자  (0) 2019.05.10
플라스틱 중독  (0) 2019.05.03
DMZ, 부활의 땅  (0) 2019.04.26
침묵의 숲  (0) 2019.04.19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1년  (0) 2019.04.12
국민 마음 ‘1’도 모르는 환경정책  (0) 2019.04.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질병분류(ICD) 코드 도입을 위한 제11차 개정안에 게임을 장애로 규정하는 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한다. 올해 5월 열리는 총회에서 이 안이 통과될 경우 게임은 새로운 질병 코드로 등재된다. 현재 안대로라면, 한국은 2022년부터 게임을 질병 코드로 분류하고, 게임과몰입을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여 치료에 필요한 보건정책이 등장할 것이다. 게임과몰입은 이제 질병으로 낙인찍힐 것이며,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정신의학과 보건의료의 치료 대상이 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추진 안을 보면서 2013년에 논란이 되었던 소위 게임중독법 제정 사태가 떠올랐다. 당시 대한중독정신의학회 출신 신의진 의원의 발의로 촉발된 게임중독법은 게임을 마약, 알코올 등과 함께 중독물질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예방을 위해 국가가 중독관리센터를 설립하여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제시한 게임중독자 수에 대한 잘못된 통계나, 과도한 게임규제 방안도 큰 문제였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게임의 문화적 가치, 산업적 잠재력, 일상적 놀이의 의미들은 이 정의 하나로 모두 소멸되고 말았다. 만일 이 법이 제정되었다면, 게임을 만드는 기업인들은 마약제조업자와 동급으로 취급받고, 게이머들은 도박 중독자처럼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게임중독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의 이러한 계획은 불행하게도 게임중독법의 망령을 다시 소환시켰다. 등재 즉시 보건복지부는 후속 이행 조치를 추진할 것이다. 게임과몰입은 질병 코드로 분류되어,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정신의학과의 공식 치료 대상이 될 것이고, 게임은 보건산업의 희생양이 될 것이다. 당시 게임중독법이 중독의학회의 숙원사업이라는 자기고백대로, 국제기구의 이행 조치는 사실상 게임중독법이나 다를 바 없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게임과몰입은 과연 질병일까? 아니 정신 질환으로 코드화할 만큼 그렇게 위험한 대상일까? 물론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일상생활이 일시적으로 지장을 받을 수 있다. 간혹 폭력성과 사행성이 강한 게임이 일견 반사회적 범죄행위들의 간접적 원인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게임을 중독물질로, 게임과몰입을 정신 질병으로 정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이렇게 따지면, 국민을 화병 나게 만드는 국회, 청소년들을 극도로 우울하게 만드는 대학입시도 질병 코드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게임이 뇌를 손상시킨다거나, 반복충동을 자극하는 도파민 분비의 원흉으로 운운하는 것은 게임을 애초부터 사악한 물질로 단죄하려는 악의적 의도다. 뇌과학자 다프네 바빌리에는 게임이 오히려 뇌의 원활한 사고와 감각 작용을 도와주는 훌륭한 매체임을 강조했다. 그녀는 비디오게임을 자주하면 주의력 결핍 장애를 일으킨다는 통념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게임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일상의 주의력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말한다.

이번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 코드 추진이 과연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장기적인 임상결과에 따른 것인지 의문이다. 게임의 놀이는 정신의학의 임상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에 기초한다. 게임의 놀이적 속성과 즐거움을 유발하는 반복은 즐거움이 배제된 화학적 과정과는 다른 감각의 차이를 생산한다. 게임의 놀이는 즐거움 없이는 반복할 수 없다. 일반인들이 한심하게 볼 수 있는 게이머들의 맹목적인 행위들은 사실 놀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한다. 게임의 시간소비와 반복충동은 기본적으로 즐거움과 보상체계라는 원리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질병이 아니라 놀이이고, 동일한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행위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게임을 정신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게임의 문화적 가치의 의미를 이번 기회에 성찰했으면 한다. 오히려 게임이 각종 사회적 질병을 치유하는 가장 중요한 놀이라는 점을 눈 여겨보았으면 한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 문화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벚꽃이 피었다 지고 4월 넷째 주가 되면 대부분의 대학교가 중간고사 기간을 맞는다. 학생들은 강의에서 빠뜨렸을지 모르는 내용을 보충하고 확인하며 시험에 대비한다. 위태로운 취업전선에서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다 챙겨두어야 한다. 적극적이고 계획적인 학점 관리는 필수다. 

“노트 좀 빌려 줘.”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친구들 사이에서 빈번히 오가던 말이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오가는 부탁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었다. “녹음파일 좀 보내줘.”

그렇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강의내용을 녹음한다. 교수자들 중에도 이 사실을 아직 모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허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허용하지 않는다 해도 강의를 녹음하지 못하게 하기는 어렵다. 모든 학생들이 화면만 누르면 녹음이 되는 기계를 휴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학생들은 수업 중에도 휴대전화를 쥐고 있거나 책상 위에 놓고 있다. 태블릿 또는 노트북 컴퓨터를 펼쳐두는 경우도 많다. 그 장치들로 필기도 하고 전자텍스트로 된 책을 보기도 하지만 녹음도 쉽게 할 수 있다. 수업 중에 자료로 제시되는 사진이나 슬라이드 등의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기도 한다. 

애플사의 스마트폰이 등장한 게 12년 전이다. 스무 살 대학생들은 취학연령 무렵부터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를 벗삼아 세상을 익혔을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는 데 익숙할 것이다. ‘인강’으로 수능 공부를 했고 책보다 유튜브를 좋아하는 그들이 필기보다 녹음파일을 만들어 다시 듣기를 선호한다 해도 썩 이상할 것은 없다. 

대학에서도 디지털 매체를 통한 세계와의 접속을 생활화한 학생들과 전통적인 강의 방식 사이의 간극을 알기에 변화하는 매체 문화를 활용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강의 영상을 제공하면서 토론을 위해서만 강의실에 출석하는 수업도 개설되고, 블랙보드라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여러 활동을 수업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강의실에서 책을 붙들고 씨름을 하며 설명도 하고 대화도 하는 ‘구식’ 수업도 여전히 있다. 

전통적인 강의의 미덕을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상호존중과 합의를 말하려는 것이다. 첫 시간에 수업을 어떻게 진행할지 설명하면서 나는 내 동의 없이 강의를 녹음하지는 않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기는 한다. 그러나 굳이 동의를 구하러 오는 학생은 없다. 그러면 아무도 녹음을 하지 않고 있을까? 교수자의 동의 없이 강의를 녹음해도 괜찮은가? 아니면 그건 애당초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인가? 통신비밀보호법상 위법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므로 문제될 것이 없는가? 강의 내용은 교수자의 것인가, 등록금을 낸 학생의 것인가, 강의 환경을 제공한 대학의 것인가? 

영국 리즈 대학교 등 외국의 일부 대학에서는 강의실에 녹화시설을 설치하고 대부분의 수업을 디지털 영상자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머지않은 우리 미래에도 강의는 대학의 소유물로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정보화되고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제도적 합의가 공식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인 녹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것이 문제가 아닌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 녹음파일을 혼자 사용하거나 결석한 친구와 공유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거래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는 이야기마저 들려오니 더욱 그렇다. 

게다가 녹음은 강의실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행정실에 졸업요건을 문의하거나 교수에게 성적 관련 면담을 하러 오는 학생들이 녹음부터 하는 경우도 있다. 사회생활의 일상적 갈등에서도 녹음파일이 등장한다. 다툼의 여지에 대한 대비로 대화를 시작할 때, 그 대화의 성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괜찮은가? 위법 여부를 우리 사회적 행위의 적절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삼는 건 괜찮은가? 부당한 피해에 대비해 너도나도 녹취부터 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는 개념은 매체교육 또는 매체 문식력(文識力)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여태까지 매체 문식력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 매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고 어떻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학습을 효율화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이제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는 윤리를 체계적으로, 다원적으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사진이든 녹음이든 메신저나 기타 SNS든, 타인을 연루하는 행위의 함의를 깊이 생각하고, 상호존중과 합의를 나의 필요만큼이나 고려하는 윤리가 매체 문화의 근간으로 자리 잡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바탕이 없을 때 디지털 매체들이 어떤 폭력의 수단이 될 수 있는지 날마다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윤조원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유한국당은 25일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막겠다며 정치개혁특위, 사법개혁특위 회의장을 온종일 점거했다. 새로 사개특위 위원으로 교체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의 회의 참석을 막기 위해 의원 방을 소파로 틀어막고 6시간 동안 감금하기도 했다. 2012년 국회 선진화법 이후 좀체 볼 수 없었던 ‘동물국회’ 모습이 재연됐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대화와 타협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성을 잃은 이들의 행태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패스트트랙은 입법 절차의 끝이 아닌 시작이다.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담당 상임위 심사 →법사위 심사 →본회의 등 최장 330일간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 지금부터 1년 가까이 논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법안 수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당은 무수한 나날을 흘려보내다 입법 절차가 시작되자 국회 보이콧을 선언하고 장외투쟁에 나섰다. 벌써 몇 번째 보이콧인지 세기도 어렵다. 한국당은 앞으로도 회의가 열릴 때마다 우르르 몰려가 회의장을 틀어막을 것인지 묻고 싶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 선거제와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는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선거제도를 개혁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권자의 지지만큼 의회권력을 배분하는 데 있다. 그동안 선거제 개혁의 대의에도 불구, 번번이 불발된 것은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수혜를 누려온 거대 정당의 반대 탓이었다. 좋은 정치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나 소망이 민심 그대로의 비율로 의회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건 어떤 이유를 대든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다. 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바꾸자는 게 핵심이다. 이번 합의안에 부실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추가 협의를 통해 개혁의 완성도를 높이면 된다. 공수처를 지지하는 여론은 80%가 넘는다. 이게 민심이다.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시민의 입법 요구를 무시한다면 그는 도대체 누구를 대표하는 것인가.  

많은 시민들은 한국당이 새 지도부 진용을 갖춘 뒤 제대로 된 가치와 정책을 가지고 바로 서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당이 보여준 막무가내식 반대는 보수의 품격과 거리가 멀고 지지층마저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싸움은 한국당의 외연 확장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당이 대안정당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정부·여당 실정의 반사이익으로 얻은 지지율 반짝 상승에 취해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총선 승리와 수권정당의 꿈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