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선거제·검찰개혁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랐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29일 자정을 넘겨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열어 선거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의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지정했다. 한국당은 이날도 회의장 봉쇄 등 온갖 수단으로 법안 저지에 나섰으나 무위에 그쳤다. 개혁입법을 지지하는 시민의 염원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패스트트랙 지정이 완료됨에 따라 ‘1987년 체제’의 제도적 유산인 선거제와 검찰개혁을 위한 역사적 발걸음이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다. 선거제 개혁은 사표를 줄이고, 표의 등가성과 비례성을 민심 그대로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정치의 오랜 과제로 꼽혀왔다. 

여야 4당이 29일 밤 선거제 개편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장을 본청 445호에서 607호로 옮긴 가운데 국회 관계자가 회의장 안으로 명패함과 기표소를 넣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지만 이제 첫발만 뗐을 뿐이다. 선거제 개혁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발해 국회 보이콧, 장외투쟁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극한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성사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거제는 게임의 규칙인 만큼 모든 정당의 합의를 토대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앞으로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등 최장 330일 간 논의할 시간은 충분하다. 협상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한국당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 이제 한국당은 명분 없는 반대를 중단하고, 선거제 개혁에 진정성을 갖고 동참해야 한다. 여야 4당 역시 한국당을 포함한 합의 처리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선거제 합의에 대한 시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4월29일 (출처:경향신문DB)

공수처 법안의 경우 기소권 적용 대상을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로 한정하고, 대통령 친·인척, 장차관, 국회의원은 제외하는 등 부실한 대목이 있는 게 사실이다. 공수처를 일단 띄우는 게 중요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지만, 향후 논의 과정에서 개혁의 완성도를 더 높여야 할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동물 국회’의 후유증이다. 그간 여야 간의 사생결단식 대치로 ‘적대 정치’는 극에 달한 상태다. 서로 고발한 의원만도 80명이 넘는다. 당장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갈등과 대립은 극복해야 한다. 여야가 극단적 대결정치에 매몰되면서 국정 현안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결국 4월 국회는 아무 소득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 허구한 날 이런 국회를 지켜보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정치가 막장으로 치닫는 건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생 현안보다 선거가 중요할 수는 없다. 여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민주주의 기본을 포기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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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에서 맛보게 되는 최초의 달콤한 경험은 바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설 때라고 말했다. 낯선 이들이 환영해주는 경험은 ‘삶의 생생한 안정감’을 제공한다.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고 말한다. 

한편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에게 호텔은 온전히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곳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을 꾸리지만 수전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느낀다. 그에게 집이란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이 쉼 없이 요구되는 돌봄의 공간일 뿐이다. 수전은 오로지 홀로 되기 위해 런던의 후미진 호텔을 찾는다. 

지난 주말, 내게 호텔은 생의 안정감을 확인하게 해주는 곳도,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물론 낯선 이들에게 환영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이 정해진 환영, 반쪽짜리 환영이었다. 그곳은 차라리 은밀하면서도 노골적인 차별과 배제의 장소였다. 

높은 층수,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는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 묵기로 한 것은 딸아이 생일을 맞아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놀이공원 근처에 위치한 호텔이어서 정한 곳이었다. 하지만 체크인을 하는 순간부터 기대는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환한 미소의 직원은 전망 좋은 라운지를 투숙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단서를 붙였다. “단, 만 12세 미만 아동은 출입 금지입니다.” 물론 홈페이지의 화려한 소개글에 그런 문구는 없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그곳에 있기 부적절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투숙객”에 우리는 포함될 수 없었다. 대신 근처 아쿠아리움 이용권을 지급했지만, 어쩐지 “이거 줄 테니 나가주세요”란 뜻으로 들렸다. 

‘부적절한 사람’이 된 경험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호텔 수영장을 찾았다. 그곳에선 거의 추방당할 위기에 놓였다. 수영장 옆 사우나에 아이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거였다. 대신 작은 샤워실에서 간단한 샤워는 가능하다고 했다. 비좁은 샤워실에서 불편하게 아이를 챙기고 짐정리를 하고 있자니 더부살이하는 군식구가 된 느낌이었다. 

인류학자 김현경식으로 말하자면 그곳에서 나와 아이는 순간 ‘그림자’가 사라져버린 사람이 됐다. <사람, 장소, 환대>에는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 나오는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김현경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환대와 장소를 꼽는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묻는다. “조건부의 환대 역시 환대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환대가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날 호텔은 나에게 생의 안정감이 아니라 불안정감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란 ‘미성숙한 인간’으로서 특정 장소에서 배제되고 추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또 ‘나의 진정한 사회적 위치’를 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로서 나 역시 배제·추방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 말이다. 그곳에서 나와 아이는 조건부 환대를 받는 ‘이등 시민’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이번 경험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의식과 무의식에 자국을 남길지 두렵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두 명의 재판관은 “우리 모두 태아였다”고 말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뿐 아니라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경제적 조건, 국가의 책임에 대한 고민 없는 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말을 바꿔 말해보자. “우리는 모두 아이였다.” 아이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취급하고 배제하는 사회, 이 사회가 과연 아이가 태어나 온전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사회인가.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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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세대의 세대교체론은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8·25 전당대회에서 끝을 봤다. 86그룹의 대표주자인 송영길 의원은 세대교체를 핵심 기치로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경쟁 후보(이해찬·김진표)에 비해 ‘덜 꼰대’라는 걸 부각하는 것 이상의 효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미 정치의 중심을 차지했고, ‘686’ 진입을 앞둔 86세대가 세대교체 기수를 자처하는 것부터가 애초 성립되지 않는다.

86세대의 상징 인물인 이인영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면서 ‘세대혁신’을 주창하며 ‘미래세대와의 연대’를 그 길로 제시했다. 20년 넘게 정치적 주류 지위를 누리면서 이제는 세대교체의 대상으로까지 지목되는 86세대의 자기응시와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에 그대로 옮긴다. “세대혁신을 촉진하겠다. 진보는 꼰대, 보수는 꼴통이라는 낡은 이미지에서 먼저 벗어나겠다. 아버지를 한국인으로 둔 프랑스의 새 디지털경제장관 세드리크 오의 나이는 38살이다. 그린 뉴딜을 주창한 미 연방 여성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나이는 30살이다. 평화정치, 복지정치를 넘어서 디지털 정치, 녹색정치에서 미래세대와 연대해야 한다. 산업화 민주화 세대를 넘어 더 늦기 전에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전략적 거점을 내어주고 우리당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심어야 한다.”

86세대가 “아랫세대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오랫동안 세대교체를 점유하면서 빚어낸 결과가 ‘늙은’ 국회다. 2020년 임기 마지막 해가 되면 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연령은 59.5살에 달한다. 평균 연령보다 심각한 것은 세대 다양성이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86세대다. 국제의회연맹이 기준으로 삼는 45세 미만 ‘청년 의원’ 비율이 6.33%로 세계 150개국 중에서 143등이다(시민단체 ‘국회를 바꾸는 사람들’ 자료). 청년 대표성 측면에서 세계 최악의 국회다. 

노무현 정부의 486이 그대로 586이 되어 중심으로 돌아온 까닭에 문재인 정부도 늙었다. 유신시대 인물을 중용한 박근혜 정부의 기저효과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게 포장될 뿐이다. 초대 내각의 평균 연령은 노무현 정부 52.2세, 박근혜 정부 59.1세, 문재인 정부 61.5세이다. 문재인 정부 2기 내각도 60살이 넘는다. 86세대가 나이먹은 만큼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내각 나이가 벌어진 셈이다. 생물학적 나이가 변화를 가름하는 건 아니지만, 세대적 다양성마저 없다는 게 정부를 ‘꼰대’로 보이게 만든다. 집권 3년차가 되도록 40대 장관을 볼 수가 없다. 52개 중앙행정기관으로 확대해도 40대 기관장은 없다.

세대 스펙트럼은 의사결정 시 다양성에 큰 차이를 보인다. 미래 도전에 대처하는 데도 달라진다. 노무현 정부 초대 내각에서 김두관(행정자치부), 강금실(법무부), 이창동(문화관광부) 등 40대 장관들은 변화를 대변했다. 1995년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40대 노동부 장관(이인제)이 있었다. 2006년 정권의 명운을 걸어도 어렵다는 ‘연금 개혁’을 이뤄낼 때도 40대 보건복지부 장관(유시민)이 있었다.

정치와 국정의 책임자들이 노령화되는 동시에 다수 유권자인 노령층의 이해관계가 정책 우위에 서면 ‘제론토크라시(고령자 지배체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법안은 청년 법안보다 4배 이상 많았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은 미래세대의 희생 속에서 이뤄졌다. 베이비붐 세대가 60대에 진입하면서 ‘제론토크라시’가 태동하리란 우울한 전망이 현실로 어른거리고 있다.

국회도, 정부도 젊어져야 한다. 내년 총선에서는 86세대를 포함한 혁명적 물갈이가 이뤄져야 하고, 정부 요직에도 미래세대의 참여가 늘어야 한다. ‘운동’의 단일 유전자를 깨는 길이기도 하다. OECD 36개국 중 15개국 정상의 연령이 30~40대다. 한국은 장관과 청와대 수석 중에 30대는커녕 40대도 없다.

더 이상 젊지 않아서가 아니라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세대적 한계가 있다. 86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평화·복지 등을 넘어 디지털과 녹색정치, 미래세대가 중요시하는 문제에는 둘레가 쳐질 수밖에 없다. 실업과 저출산 등 청년 문제를 그들 눈높이에서 접근하는 데도 마찬가지다. 이인영 의원의 출사표를 빌리면, “더 늦기 전에 미래세대에게 더 많은 전략적 거점을 내어주어 미래를 심어야 한다”. 

2015년 정권교체로 43세에 총리에 오른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30살의 최연소 장관 등이 포함된 남녀 동수의 파격적인 내각을 출범시킨 뒤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트뤼도 총리의 답변은 강렬했다.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은 2019년, 2020년이기 때문에” 늙은 정부, 늙은 국회를 바꿔야 한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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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즉에 좀 해둘걸, 몹시 후회스럽다.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그저 한자 몇 개 아는 것에서 멈췄다. 늘그막으로 기울어질수록 고전을 기웃거리게 된다. 졸아드는 시간 앞에서 이제 소설은 그만 읽겠다는 사소한 결심도 한다. 이 세계의 진리는 의문문의 형태로만 가능하다고 한다. 무식한 자의 용감에 기대어 한술 더 뜬다면 그것도 부정문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돌멩이가 그것이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것만 확실하게 알 뿐 정작 돌멩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없다. 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구별되고 그저 ‘아니다’라는 사실에 촘촘히 기대고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한문을 더듬더듬 읽으면 꽤 자주 부정문을 만나게 된다. <노자>의 첫 문장은 단호한 부정문이고, <논어>의 첫 대목엔 무려 5번의 ‘아니 불(不)’이 등장한다. ‘그렇다’는 긍정은 그것으로 일단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아니다’라는 부정은 그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가끔 붓으로 써보면 ‘不’은 균형을 잡기가 힘들고 웬만해서는 모양새가 나지 않는 글자다. 어쩌면 먹이를 노리는 왜가리의 고독한 포즈 같은 ‘不’의 어원을 찾다가 ‘이 문자는 악부(&#33852;莩), 즉 꽃받침의 상형자이다’(<한자의 세계>, 시라카와 시즈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不’자를 닮은 것을 찾다가 지난주 거문도의 바닷가 절벽에서 맞춤한 조건의 식물을 만났다. 꽃잎은 모두 떨어져나가고 도톰한 꽃대 위에 꽃받침의 흔적만 쓸쓸하게 남은 털머위였다. 거문도의 거문이 ‘巨文’이라서 더 각별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털머위. 내친김에 과감하게 말해 본다. 세상은 ‘不’자 위에 아슬하게 건설된 문명이 아닐까.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진보를 이룩했는가.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는 데 능한 자동차라지만 운전의 관건은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데에 있지 않는 것. 오늘도 자유로를 달려 출퇴근을 한다. 현대문명의 총아를 몰고 가는 동안 백미러를 보고 ‘부(不)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거문도의 털머위, 그것을 빼닮은 총 4획의 ‘아니 不’이 함께 떠올랐다. 털머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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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송씨(31)는 비혼주의 여성이다. 우리 사회의 연애와 결혼 담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계간홀로’라는 독립출판물을 내고 있다. 최근에는 ‘41년생 독신주의자’ 김애순씨(78)와 대담집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비혼>(알마출판사)을 출간했다. 이씨는 책의 에필로그에 썼다. “우리 사회가 이성애와 결혼-출산-육아를 ‘정상성’과 결합하고 그 이외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힘은 무척 억세다. 거대한 바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는 천인공노할 이기주의자는 바위에 달려드는 계란으로 살고 있다. 나의 보호자는 나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사회의 시선이나 타인에 대한 부채감에 신경 쓰기보다 나의 선택을 우선하며 스스로를 존중할 의무가 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018년 3월 9일 서울 여의도 당사 ‘영입 인사 환영식’에서 배현진 전 MBC 아나운서에게 태극기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김영민 기자

배현진씨(36)는 자유한국당 서울 송파을 당협위원장이다. 배씨는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국당의 장외집회에서 진행을 맡았다. 무대에 오른 그는 “저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우리 나이로) 37세 청년이다. 일하느라 시집도 못 갔고, 부모님을 모시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국민의 반을 개돼지로 몰고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한선교 사무총장은 “여러분, 우리 배현진이 이러지 않았다. 늘 예쁜 아나운서였는데, 문재인의 나라가 예쁜 우리 배현진을 민주투사로 만들었다”고 ‘화답’했다. 지난주 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하자 이채익 의원은 이렇게 ‘두둔’한 바 있다. “키 작은 사람은 항상 자기 나름대로 트라우마가, 열등감이 있다. 결혼도 포기하면서 이곳까지 온, 올드미스다. 못난 임이자 의원 같은 사람을 모멸감을 주고….”

시집도 못 갔다며 자조하는 지역구 책임자, 그를 격려한답시고 ‘예쁜 아나운서’ 운운하는 당 사무총장, 여성 동료를 감싸겠다며 ‘결혼도 포기한 올드미스’ 운운하는 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한국당을 향해 ‘젠더 감수성’ 같은 고상한 언어를 꺼낼 생각은 없다. 다만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것, 그 여성 중 많은 이들이 이진송씨처럼 ‘나의 선택을 우선하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말해두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은, 2019년이라고요!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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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기, 어쩌면 세계 최장기였을지 모를 콜텍 노사분규가 4464일 만에 타결되었다. 2007년 ‘비용절감’을 이유로 시행한 정리해고에 맞선 지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복직해도 어느새 정년인 세월이 흘렀다. 이대로 모든 것이 잘 끝난 것일까. 타결 소식을 접한 직후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다. 콜텍과 함께 복직투쟁을 벌여오던 콜트기타의 방종운 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거리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어째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나는 방종운 지회장과 필자와 편집자라는 작은 인연을 맺은 바 있다. 2013년 ‘황해문화’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그동안 살아온 삶의 내력을 써달라는 청탁을 했었다. 1958년 베이비붐 세대인 그의 삶은 평범하다면 평범한 것이지만, 우리 현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서울 미아리에서 살던 그는 도시개발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지만,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고 여길 만큼 대단한(?) 애국자였다. 

집을 잃고 떠돌던 그가 선택한 대안은 직업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1978년 공수부대 하사관으로 군복무를 시작한 이듬해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있었다. 

콜텍 노사 조인식이 열린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오른쪽부터)과 전날까지 42일간 단식한 임재춘 조합원, 올해 60세로 정년을 맞이하는 김경봉 조합원이 마지막 기자회견을 끝내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방종운은 데모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며 “부모가 피땀 흘려 고생하여 대학에 보냈는데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고 말했고, 광주에 투입되었을 당시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에 간첩들이 침투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굳게 믿었다. 1983년 제대 이후 그는 대우자동차에 입사했고, 연애 끝에 결혼도 했다. 가족과 가정을 일구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그는 성당에 다니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해고되었다. 그가 경험한 첫 번째 해고였다. 

1987년 6월항쟁을 거리에서 맞았던 그는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에 같은 해 8월 콜트악기에 입사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콜트악기에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자 회사는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임금 5만원 인상, 자녀 학자금 지급이라는 복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때부터 콜트악기는 경영이 어렵다며 회사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콜트악기는 창사 이래 최대 흑자인 29억8500만원의 흑자를 냈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설립했고, 회사는 ‘콜텍’이라는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어쿠스틱 기타와 전자 사업부를 이전시켰다. 

이 무렵 현대중공업 식칼테러로 악명을 떨친 제임스 리가 노무 이사로 입사했다. 콜트악기는 2007년 4월부터 부평공장 생산직 노동자 56명을 정리해고했고, 2008년엔 아예 공장을 폐업해 나머지 125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잃었다. 사측은 경영조건 악화를 내걸었지만, 1992년부터 2005년까지 꾸준히 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해고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2009년 고등법원은 콜트와 콜텍 노동자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12년 대법원은 콜텍의 정리해고 위법성을 인정한 고법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기업의 정리해고도 합법이란 것이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2018년 5월23일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거래 의혹리스트를 발표했다.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리스트에는 콜트콜텍 소송도 포함되어 있었다. 방종운 지회장이 대법원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정리해 보낸 원고의 마지막엔 “나아지지 않는 삶이지만/ 인간다운 삶을 찾아서/ 걷는 길”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시 한 편이 적혀 있었다. 이들이 고통스럽게 버틴 13년은 국가와 사회가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라고 강요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 덕분이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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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선거구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29일에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바른미래당이 공수처법을 별도 발의해 기존 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처리하자는 안을 수용하면서 바른미래당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독재’를 막겠다며 닷새째 국회를 원천봉쇄했다.

이번 선거구제 개편의 핵심은 사표를 양산하는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줄이는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만 봐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얼마나 민심을 왜곡하는지 알 수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득표율은 65%에 그쳤지만 80%가 넘는 의석을 가져갔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28%인데 의석점유율은 15%를 밑돌았다. 거대 양당의 국회 내 목소리는 실제 받은 표보다 더 크게 반영된 반면 적지 않은 유권자의 표는 대표를 내지 못해 허공으로 사라진 것이다. 

[장도리]2019년 4월 30일 (출처:경향신문DB)

이런 비민주적인 구조를 개선하자는 논의의 결과가 각 정당이 득표한 만큼 의석을 배분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수를 정한 뒤 배분된 의석수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부족하면 이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사표는 줄이면서 소수의견을 다양하게 반영함으로써 극단적인 대립 정치를 지양할 수 있다. 이런 명분이 있기에 민주당과 한국당은 대놓고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민주당이 선거제 개혁에 나서자 한국당이 “정의당의 의석을 크게 늘리는, 그래서 좌파세력만 강화하는 선거제”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선거구제 개혁을 위한 법을 통과시킨 뒤에는 지역구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 의원들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경쟁을 벌일 게 분명하다. 또다시 여기에서 지체될 경우 자칫 새 선거법을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선거구제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라는 시민들의 시대적 요구에 맞서는 것은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한국당의 지금 모습은 당리당략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지율이 높아지자 유리한 제도를 고집한다는 비판을 들어도 싸다. 선거구제 개편을 둘러싼 대립이 격화되면서 여야 5당의 정당 지지율이 동반 상승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당들로 하여금 싸우면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착각하게 할까봐 걱정스럽다. 정치권은 물론 시민들도 선거구제 개혁의 의미를 엄정하게 따지고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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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나 저숙련 노동자는 일이 바빠 직업훈련을 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용 전망 2019’ 보고서를 보면 한국 자영업자와 정규직 노동자 간 직업훈련 참여격차는 28.7%포인트로 집계됐다. 조사대상 29개국 가운데 7번째로 높았다. 격차가 클수록 정규직 대비 자영업자의 직업훈련 참여도가 낮다는 의미다. 직업훈련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라는 응답(60.2%)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저숙련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다른 한편으로 장년층의 경우 훈련의지는 조사대상 회원국 가운데 손꼽히게 높았으나, 실제 참여도는 낮았다. 이 역시 생계 활동으로 인한 시간부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직업훈련을 포함한 직업 재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경제 침체로 자영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자동차나 조선산업 등도 구조조정의 바람을 맞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도 심하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는 커다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향후 15~20년 사이 현존 일자리의 14%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직업훈련 문제가 일부 자영업자나 저숙련 노동자에 국한된 사안이 아닌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청년들,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 정규직 노동자도 은퇴한 뒤에는 결국 맞이해야 하는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은퇴연령은 49.1세로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10년 이상 빠르다. 그만큼 직업훈련이 더 필요하다.

물론 사회안전망 확충도 중요하다. 실업구조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실업구조보다는 직업훈련을 통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대책일 수밖에 없다. 직업 재교육을 받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취업을 해도 임금이 낮고 신분도 불안한 일자리를 전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재교육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직업훈련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정부는 다양한 직업훈련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물론 급변하는 미래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일자리가 복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래를 위해 직업훈련 방식 전반을 평가하고 틀을 다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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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어(京語)는 한양의 본래 음이지만, 반드시 도읍이라고 해서 바른 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옛날 신라는 영남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고, 백제는 호남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으며, 고구려는 관서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고, 단군은 해서 지방 음을 경음으로 삼았다. (…) 지금 경음을 가지고 향음(鄕音)을 놀리고 비웃기 때문에 한양에 다니러 간 시골 사람들은 기필코 경음을 본받으려고 하니 모두 고루한 짓이다. 어떤 사람은 ‘요즘은 산골이나 바닷가 촌마을이라도 모두 한양 옷을 입고 한양 말을 쓸 수 있으니, 비루하고 속된 풍속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기뻐할 만한 일이다’라고 한다. 나는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존재는 바탕이 있은 뒤에 문채를 내고 멀리까지 지속될 수 있다. 요즘 풍속에 유행하는 한양 말과 한양 옷은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모두 겉으로 번다하게 꾸미기에 바빠 그 바탕이 전부 손상된 결과이니, 온 세상 애나 어른이나 충후(忠厚)하고 신실(信實)한 사람이 없다. 가죽이 없으면 털이 어디에 붙을 수 있겠는가. 절대 붙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퇴옹 이황이 영남의 발음을 고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옛 의미가 있다.”

인용문이 길지만 위 글은 조선후기 실학자 중 한 명인 존재(存齋) 위백규(1727~1798)가 쓴 ‘사물(事物)’에서 따온 내용이다. 사투리를 옹호하는 위백규의 논리 전개도 재미있는데 마지막 줄은 더욱 흥미롭다. 위백규에 따르면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은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그가 태어나 살아온 경북 안동 지방의 말씨를 고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백규보다 226년 전에 태어난 이황의 말씨를 그가 알 정도라면 퇴계의 말투가 사대부들 사이에 꾸준히 칭찬을 받으며 회자되었거나 아니면 부정적인 비판을 받으며 화제가 되었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처럼 중앙관직에 올라서도 향음이라고 하는 지방 말을 고수한 사대부들의 이야기가 더러 전하는데 퇴계보다 한 세대 전 사람인 오졸재(汚拙齋) 박한주(1459~1504)도 그중 한 명이다. 간송(澗松) 조임도(1585~1664)가 쓴 ‘오졸자 박 선생 여표비명 병서’에 따르면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박한주는 1483년에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 1485년 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그 후 1491년에 정언(正言)에 제수되었는데 그가 경연에 들면 임금인 성종이 말하기를 “사투리 쓰는 정언이 왔구려(辭吐俚正言至矣)”라고 했다는 것이다. 

위 글처럼 무려 500여년 전 사람들도 표준어와 사투리의 사용을 두고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더해 필자가 고약하게도 서울 중심의 말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의 글만 예로 들었다. 굳이 그렇게 한 까닭은 필자의 서러운 경험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서울이 아니다. 분지여서 경상도 사투리 중에서도 억센 억양으로 소문난 대구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서울로 전학을 왔다. 그러니 서울에서 산 시간이 태어난 곳에서 산 시간의 5배가 넘는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많이 순화된 서울 말을 흉내 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구 말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곧 내가 쓰는 말은 서울 말도 아닌 것이 대구 말도 아닌 어중 뜬 말이다.

말투가 그렇게 된 까닭은 중학교의 국어 시간이나 영어 시간 때문이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전학생들이 많지 않았던 시절, 전학 오자마자 들어간 반의 전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당연히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국어와 영어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누가 읽을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내 이름을 외쳤고,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하면 대구 특유의 억양과 발음 때문인지 여기저기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지만 나의 거친 억양과 발음은 놀림감이 되어 아이들이 등 뒤로 따라다니며 흉내 내곤 했다. 

더구나 그 시절엔 영어와 국어 수업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소심한 것은 물론 예민한 사춘기였던 그때 친구들의 모든 놀림을 감수하고 내가 나서 자라며 배운 대구 말을 지킬 배포가 나에게는 없었다. 위백규가 말한 퇴계처럼 스스로의 말을 지키기보다 매일 이어지던 국어와 영어 시간의 책읽기를 모면하고 놀림을 벗어나는 것이 어린 나의 목표가 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배운 서울 말이 지금 내가 사용하는 어정쩡한 억양이 돋보이는 말이다. 

한낱 사소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면서 그 시절에 난 참 중요한 것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당시 선생님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말리지는 못할망정 아이들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가 줄곧 사용하고 있었던 대구 말이 나쁘지 않다고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지금은 덜하겠지만 당시 서울과 대구의 격차는 모든 면에서 상상 이상이었다. 드디어 서울에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안고 서울로 올라왔던 까까머리는 점점 주눅이 들어 서둘러 나의 말을 버리고 새로운 말을 익혔던 것이다.  

글머리의 인용문에서 위백규가 말한 것처럼 말투에는 한 사람의 인생 중 가장 근원적인 모습이 배어 있다. 그 위에 갖가지 다른 모습이 더해지고 삭제되면서 끊임없이 추스르고 또 확장하면서 한 사람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이 작은 나라에서 각 지방마다 서로 다른 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각 지방의 다양한 음식은 그토록 탐하면서 말과 음식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은 왜 생각지 않는 것일까. 강과 산에 의해 서로 다른 마을과 음식이 만들어지듯이 말 또한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작은 나라인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서울 중심의 말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오히려 서로 같지 않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도 드물지 않겠는가.

<이지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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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석탄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며 치명적인 대기오염 물질로 건강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석탄 투자는 지속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해외 석탄 투자의 큰손인 한국, 중국 등의 나라들은 개발도상국엔 석탄 발전이 유용하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개도국의 요구에 응답할 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 투자는 개도국 경제와 산업에 유익할까?

반부패 시민단체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는 최근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과 연계된 비리 조사 보고서 두 편을 발표했다. 수년간 철저한 보안 아래 이뤄진 조사 결과로, 향후 추가적 증거들을 차례로 공개할 예정이다. 이 조사는 한국 정부가 향후 인도네시아 석탄 투자 중단을 고려해야 할 상당한 이유를 제시한다.  

첫 번째 보고서는 지난 17일 열린 인도네시아 대선에 부통령으로 출마했던 정치인 산디아가 우노를 겨냥한다. 우노가 인수한 인도네시아 거대 석탄 기업 ‘베라우 석탄에너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정체불명의 역외 기업 ‘벨로드롬’에 자문료 명목으로 4300만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지불했다. 베라우 석탄에너지는 이외에도 우노와 연관된 기업에 꾸준히 거액의 자금을 유출했고 베라우는 기업 재정 악화로 수억달러에 이르는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손해는 투자자에게로 돌아갔다. 우노의 부정은 자칫 인도네시아 자국 내의 흔한 부패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글로벌 위트니스를 비롯한 해외 단체들은 한국과 같은 투자국도 여기에 상당한 책무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에 관련된 부패는 단순히 정치인 한둘의 일탈로 끝나지 않는다. 우노뿐만 아니라 현 인도네시아의 대통령인 조코 위도도의 측근인 해양부 장관 루훗 빤자이딴 또한 석탄 관련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과거 석탄 기업 ‘토바 바라 세하트라’를 익명의 구매자에게 비공개 액수로 판매했는데, 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또 몇 년 전에는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여럿이 일본 및 프랑스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석탄 발전소 증설 계약을 내주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둘째, 한국은 해외 석탄발전 금융지원 규모 세계 2위 국가다. 최근 수주를 알린 두산 자바 9, 10호기 신규 석탄발전소를 포함해 인도네시아 내 다수 석탄발전소의 건설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 소유의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산업은행이 투자 주체인데, 이 중에는 최초 건설 허가 자체가 불법이라고 판결 난 찌레본2 발전소도 포함돼있다. 현재 찌레본 지역장은 기반시설 사업과 관련하여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다. 

셋째, 한국의 석탄발전 투자는 국제적인 평판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석탄발전에 계속 투자하는 것은 기후변화를 앞당기는 데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부패로 얼룩진 인도네시아 석탄 비리를 유지하는 데 연루되는 위험을 자처하는 것이다. 즉 한국의 인도네시아 석탄 투자는 심각하게 얼룩진 석탄 비리를 심화하는 데 한 요인이 될 뿐이다. 

잇따른 인도네시아 석탄 산업의 부패 의혹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 정부는 파리협정의 협약국이면서 기후변화 리더임을 주장한다. 그러나 석탄발전 금융지원을 계속하는 이상 한국은 기후변화 리더가 될 수 없다.  

글로벌 위트니스는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해외 석탄발전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즉각 중단하길 요구한다. 한국 투자자들 또한 여전히 인도네시아 석탄발전에 재정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면 일련의 사건들을 중대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애덤 맥기번 | 글로벌 위트니스 선임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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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내리다’라는 표현이 있다. ‘뿌리 뽑히다’라는 표현도 있다. 이런 표현이 식물학의 용어만이 아님을 근현대사 100여년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박경리의 &lt;토지&gt;는 구한말의 ‘뿌리 뽑힌’ 사람들 얘기를 다루고 있다. 이 기나긴 장강대하의 첫머리는 1897년 추석이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는 한가위 풍경으로 시작하는데, 말하자면 오랫동안 한마을에 ‘뿌리내리고’ 사는 풍경이다. 

그러다가 나라도 잃고 땅도 잃어 북간도로 이주한다. 그곳에 ‘뿌리내리려’ 하지만 쉽지 않다. 평생 호미 한번 잡은 일 없는 김훈장도 북간도 메마른 땅에 엎드린다. 김훈장을, 음풍농월하는 선비로 내심 타박하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아무리 망국의 유민 신세라 해도, 한 사람 정도는 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천 따지’를 해야 사람 사는 형색인데, 김훈장마저 호미를 집었으니 모두가 ‘뿌리 뽑힌’ 신세가 아닌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황석영, 윤흥길, 조세희 등이 산업화 시대의 ‘뿌리 뽑힌’ 사람들을 묘사했음은 이제 교과서에 등재되었을 만큼 ‘역사’가 되었다. 황석영의 &lt;삼포 가는 길&gt;, 그 마지막에 이르러, 기차가 도착했음에도 정씨와 영달이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들은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렸던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런 풍경은 다 사라졌는가. 글쎄,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불빛들 뒤로 한 걸음만 들어가면 온통 원룸이고 고시원이다. 황석영이나 조세희 이후로 그런 소설이 사라질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박민규와 김애란과 편혜영의 소설들은 이 거대 도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다루고 있다. 다달이 ‘500에 30’을 겨우 내면서 뿌리 뽑힌 채 살아가는 삶 말이다. 

박민규는 <갑을고시원 체류기>에서 이렇게 썼다. “가족들은 흩어졌다. 부모님은 시골을, 형은 막노동판을, 나는 나대로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시원에 가게 된다. 짐을 나르던 친구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고 속삭이자 주인공은 강렬한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 

그러니까 ‘뿌리’란 관계다. 뿌리내린다는 것은 실핏줄 같은 삶의 관계를 이룬다는 뜻이다. 뿌리가 뽑힌다는 것은 그 관계가 끊어짐을 뜻한다. 답답하거나 속상하거나 외로울 때, 문자 보낼 사람 없고 목소리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그 지독한 외로움! 그것이 ‘뿌리 뽑힌’ 삶이다. 

진천선수촌에 가보았다. 선수촌 시설을 둘러보고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하여 여러 지도자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과연 전체적으로 시설은 웅장하였고 세부적이고 기술적인 사항 또한 섬세하게 잘 구성되어 있었다. 신치용 선수촌장을 비롯한 행정 관계자들의 자상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도자와 선수들이, 선수촌장이 동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나름의 현실적 고충과 개선 사항을 활달하게 개진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생활 문화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2월 초에 취임한 신치용 선수촌장이 예전의 훈육시설과는 달리 선수촌을 좀 더 활기차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하나둘씩 실천되는 양상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운동하는 기계’라든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동떨어져서’ 같은 말도 현장을 방문한 혁신위원들이 아니라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스스로 토로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가 새로운 문화로 변모되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매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근사한 선수 전용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느 선수가 얘기했다.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국제적인 시설에 매점 하나 없을까 싶고 또 매점이 당장 급한 시설인가도 싶지만, 실은 이 작은 요청 하나가 우리 선수들의 장래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매점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게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매점을 동심원으로 하여 선수촌의 지도자와 선수들이 흩어졌다가 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때 매점은, 하루 종일 땀 흘리며 훈련한 지도자와 선수들이 순간적이나마 정겹고 소박하게 ‘관계’를 맺는 공간이 된다.

어디 매점뿐이겠는가. 국가가 이른바 ‘국위선양’을 목표로 각 종목의 가장 우수한 선수들을 한 장소에 모아서 훈련을 시킨다고 했으면 그것은 당연히 그들의 삶의 뿌리가 아름답게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국가가 국가의 목표를 위한다고 해서 가족이 있고 생활이 있고 관계가 있는 지도자들의 현재적 삶의 뿌리를 뽑아서는 안된다. 어쩌면 22세기를 볼 수도 있을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뿌리째 흔들어서도 안된다. 외로울 때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답답할 때 언제든 부모님을 만나 어리광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나 다른 분야로 진출한 친구들과도 어울려야 한다. 관계가 곧 뿌리다. 

그러니 혁신이 필요하다. 웅장하고 세련된 시설은 제대로 갖췄다. 이제 첨단의 스포츠 과학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진실로 인간적인 관계로 선수촌 생활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선수촌의 모든 관계자들 또한 그와 같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어느 관계자의 말처럼 지금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미묘한 상황이지만, 지도자의 삶의 뿌리가 유지되고 어린 선수들의 다양한 삶의 관계, 곧 뿌리가 넓게 내려지는, 그야말로 최고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폭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중 받으며 ‘뿌리내리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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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회를 보며 2016년 겨울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시민들은 가능한 모든 합법적인 행위만을 동원해 기어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자를 단호하게 배척했고, 비폭력을 지향하는 꽃 그림 그려진 스티커를 경찰 차벽에 붙였다가 그마저도 떼어낼 만큼 섬세함을 보여줬다. 주말 집회는 대중교통 운행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되었고 주중에는 시위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췄다. 비폭력과 일상의 유지는 오히려 더 극적인 긴장을 조성했다. 

분노가 모자라 그런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지독하게 지기 싫어했다. 이번에는 모든 것을 끝장낼 기세였다. 폭력과 무질서는 답이 아니었다. 그런다고 청와대를 너무 사랑하는 당시 대통령이 제 발로 걸어 나올 것 같지 않았고 시위가 폭동이 되면 세력이 축소되고 고립될 게 뻔했다. 사람들은 인원수와 결연함으로 국회를 압박하는 데 집중했다. 6차 집회에선 전국적으로 230만명 이상이 모여 입법부를 극도로 몰아붙였다.  

시민들이 선택한 길은 탄핵안이 상정되고 표결을 거쳐 통과되고 다시 헌재로 넘어가 인용되어야 목적지에 도달하는 멀고 험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참고 기다렸다. 법적 기반 위에서 일이 처리되는 것은 시민들이 선택한 방법이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했다. 그것은 시민들이 ‘버려야 할 세력’과 자신을 구분하는 핵심 차별점이었다. 

적폐 시대는 적폐세력이 더 이상 자신이 지키라는 원칙과 법을 스스로는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말로 치달았다. 그들은 법을 지키라 하곤 생사람을 잡아 간첩을 만들었다. 국가가 나서 시민들을 불법 사찰하고, 국고에 손을 대 착복한 이가 적지 않았지만 처벌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를 수호하라 하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자유를 구속했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하라 하곤 생명이 위태로운 학생들을 외면했다. 약자의 작은 불법엔 무자비했지만 자기편의 잘못은 덮기 일쑤였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이 29일 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등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처리를 위한 사개특위 회의를 개의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이 위원장 앞으로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2016년은 보수 정권이 자유민주주의와 함께할 수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시민은 적폐세력과는 다르게 스스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과정을 통해 적폐를 몰아내려 했다. 시위에서 비폭력을 종용하는 확고한 태도는 그간 집권세력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신물이 난 시민들이 폭넓은 공감대 속에서 보여주는 명확한 선언이었다. 

1년이 지나 MBC도 적폐를 몰아내고 있었다. 이전에 파업에서 연패하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어떤 역사적인 순간이 오면 로비에 모여 만세라도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보곤 했다. 하지만 2017년 가을의 로비는 차분했다. 사장실에 들어가 사장을 의자째 들어다 내던지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았지만 직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고 기다리며 적폐를 하나씩 몰아냈다. 그 방식은 노조원들이 촛불의 일원으로 움직이며 또다시 철칙으로 되새긴 시대정신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국회에선 자유한국당이 다수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개혁이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은 법의 틀 안에서 움직이라고 주문하며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은 집권세력이 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지 주목하고 있고 보수세력이 다시 자유민주주의 테이블에 같이 앉을 사람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국회 활극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여야 4당의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자유한국당이 필사적으로 저지를 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빠루’도 등장했다. 이 촌극을 만들고 있는 한국당을 보며 느낀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죄목으로 실격당했는데 다른 당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다시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동에 나서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통해 지난 시절의 짙은 향기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촛불혁명은 당시 집권세력이 법과 원칙 밖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이번 국회 폭력 사건은 보수 정치가 여전히 체제의 한계선 밖에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과정이다. 정부의 실수가 쌓이면 야당의 지지는 오르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재기를 원한다면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키라’며 탄핵에 찬성한 8할의 시민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신완 MBC PD·<아빠가 되는 시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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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에 교내 도서관에 갔는데, 어떤 아이가 혼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요즘에도 이런 학생이 있나? 그의 책상 위에는 판타지 소설, 과학 잡지, 철학서들이 잔뜩 쌓여있다. 순간 궁금했다. 이 아이는 누구랑 어울릴까? 얼마 뒤 복도에서 그 아이가 내가 가르치는 현우(가명)와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안도감이 들었다. 현우는 수업이 끝나면 제일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시작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오는 아이였다. 아이들은 현우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가끔 현우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화를 더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잘 알지 못한다. 현우도 그들 사이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하고 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는 것이 그에게는 힘든 일이다. 다행히 그 두 아이는 다름 안에서 함께 어울리고 밥도 먹는 친구가 됐으니 그들의 학교생활은 그나마 괜찮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직 여리고 미숙하기 때문에 교우관계에 갈등이 생기고 따돌림을 겪게 되면, 그들의 심리와 감정, 반응 방식은 손상을 입고 움츠러든다. 이런 아이들에게 가장 큰 걱정은 점심시간이다. 급식실에서 친구 하나 없는 식탁에 혼자 앉아 밥을 먹는 것은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기 때문이다. 담임교사가 짝을 지어주기도 하지만, 아이들 관계라는 게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아이들은 자신도 저렇게 혼자 남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작은 차이도 경계하고 멀리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는 친구 주변에 몰려들게 되고, 끊임없이 무리를 지으며 결속을 다진다. 이제 누군가 교실의 어떤 아이를 욕하면 같이 동조해야 하고, 듣기 거북한 성적 표현도 따라 하거나 함께 웃어야 한다. 교실은 이렇게 누구도 진정으로 홀로 되지 못하며, 동시에 누구도 함께 공존하지도 못하는 메마른 들판이 된다. 많은 학교폭력이 이 메마르고 척박한 그늘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또다시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묻고 싶어진다. 학교는 가정교육과 대중매체가 문제라고 하고, 부모들은 학교와 교사의 책임이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학교와 교사는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하고, 정부는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에 끼어서 정책 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 책임자 교체를 반복한다. 제도 자체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진정한 책임은 우리 자신도 제도의 일부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 모두가 제도와 문화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데 있다. 

논어(論語)에 ‘평화로움을 추구하되 같아지려 하지는 않는다’란 뜻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말이 있다. 동일성을 강조하다 보면 자신과 다른 것은 부정하고 배제하게 되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은 끊이지 않는다. 아까운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무엇보다 사회 발전을 위한 다양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교실이 서로 다른 차이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화이부동’의 공간이 되려면 그런 모습을 현실에서 실제로 보여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4월의 새순들이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하늘거리고 있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봄과 같은 존재이다. 이 아이들이 구김 없이 마음껏 배우고 성장할 때 우리 모두의 가을은 달콤하고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교실을 비옥한 옥토로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각자가 있는 공간에서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비료를 줄 수 있을까?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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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혼례에는 참 많은 상징이 있습니다. 우선 목(木)기러기가 있지요. 기러기는 짝을 잃어도 다시 구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혼례 전 기럭아범에게 목기러기 한 쌍을 들려 보내 마지막 청혼이자 맹세를 합니다. 맞절하기 앞서선 손도 씻습니다. 마음에 누굴 담았고 어떻게 살았든 이제는 저 사람과 새 출발이니 다 잊고 손 씻으라는 것이지요. 또한 초례상 위에는 소나무 가지를 꽂아 둡니다. 오래도록 푸르게 살며 두 가닥 맞붙어 돋는 솔잎이 말라 떨어질 때도 같이 붙어 떨어지듯 해로동혈(偕老同穴·같이 늙고 같이 묻힘)을 하라는 말입니다. 폐백 때는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와 밤이 던져집니다. 대추마다 씨앗이 하나이듯 바람피우지 말고 한 군데만 씨 뿌리고, 밤송이 하나에 밤알이 셋씩 들었듯 둘이 만나 셋은 낳아 자손 번창하라는 거죠.

이런저런 복잡한 의식을 마치고 나면 날이 저뭇해지고(남과 여, 양과 음, 낮과 밤이 만나는 초저녁 맞춰 올렸으니까요) 이제 두근두근 꽃잠입니다. 단꿈에 취해 이런저런 베개맡 맹세를 합니다. 손에 물 안 묻히게 해주겠다, 감추는 거 없이 살자, 당신보다 사흘만 더 살다 죽겠다며 이불 속에서 손을 꼭 잡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그대를 속이듯 결혼한 사랑은 금세 지치게 마련입니다.

부부가 함께 기대며 살아간다는 속담 ‘평생 지팡이’가 있습니다. 사람을 탓하고 형편을 탓하고 팔자를 탓하며 애 하나로 참고 살다가 탓할 힘도 없을 때나 가서 ‘나 아니면 누가’ 그제야 짚으라 어깨 내어줍니다. 그러나 살림과 육아, 생계와 가족 갈등 앞에서 혼자 애쓰게 하지 않는 것, 내가 안 하면 저 사람이 하고 내가 닦달하면 저 사람 어깨가 굽는다 여기는 것, ‘나 아니면 누가’로 항상 손 내어주는 것이 진짜 지팡이입니다. 삶의 무게 분산하라고 나 힘들어도 지팡이 건네주는 게 평생 부부입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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