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직설

“여보, 일어나 빙수나 한 잔 자시오. 좀 속이 시원하여질 테니. 이제 울으시면 어짜요? 다 팔자로 알고 참아야지. 나도 젊어서 과부 되고 다 자란 자식 죽고… 그러고도 이렇게 사오. 부모 없는 것이 남편 없는 것에 비기면 우스운 일이랍니다. 이제 청춘에 전정(前程·앞길)이 구만리 같은데 왜 걱정을 하겠소. 자 어서 울음 그치고 빙수나 자시오. 배도 자시구.”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하다 이듬해 단행본으로 묶인 이광수 소설 <무정(無情)>의 한 장면이다. 초여름 더위가 성큼 다가온 경성의 6월, 주인공 형식의 하숙집을 찾아온 영채가 하루아침에 오빠와 아버지를 잃고 홀로 된 저간의 일을 털어놓다가 그만 복받쳐 쓰러진다. 형식과 영채는 어려서 함께 자란, 오누이 같은 사이다. 우는 영채는 숨이 넘어가는데 하숙집 주인 노파가 얼른 시장에 달려가 빙수를 사 온다. 위로랍시고 뱉은 말이라곤 ‘팔자’에 ‘전정 구만리’에 갈 데 없는 봉건적인 수사요, 듣는 쪽에게 위로가 될 리 없는 무정한 낡은 언어인데, 빙수 한 사발이 노파의 소박한 자매애를 간신히 구원했다. 빙수는 실제로 타는 속을 달래고, 몸과 마음의 열을 식히는 효과가 있었을 테지. 냉장고 보급률 높지 않던 시대, 한여름의 빙수나 얼음물이 보통 사람의 감각에 준 충격, 각성의 감도는 오늘날과는 달라도 한참 달랐으리라.

19세기 이전에는 임금 또는 극소수의 권력자와 부자들만 한여름에도 얼음을 즐겼다. 한겨울에 자연빙을 채취해 빙고에 거두었다가, 한여름에 꺼내서 먹어치웠다. 파천황(破天荒)은 과학기술의 결과였다. 1862년 영국에서 비전기식 냉장고가 등장한다. 1875년에는 암모니아 압축식 냉동기가 나와 인공 제빙의 시대가 열린다. 1890년대가 되면 조선에서도 제빙기가 돌고 냉동고가 조영되었다. 여기서 나온 얼음으로 1910년대 조선의 도시에서 부자든 서민이든 한여름에 얼음 띄운 화채 또는 빙수 먹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량생산 기술과 손을 잡고 보면 얼음이란 가장 비용이 덜 들고, 가장 관리가 간단한 식료품 아니겠는가.

“스윽- 스윽- 그 얼음 갈리는 소리를 들어라. 새하얀 얼음비가 눈발같이 흩어져 내리는 것을 보라.”

월간 잡지 ‘별건곤’ 1928년 7월호에 실린 빙수의 ‘문자먹방’이 이랬다. 10년 사이에 빙수를 향한 감각도, 빙수의 물성과 질감에 대한 감수성도 훌쩍 컸다. 먹방은 이렇게 다시 이어진다. 

“사알-사알 갈아서 참말로 눈결같이 간 고은 얼음을 사뿐 떠서 혓바닥 위에 가져다 놓기만 하면 씹을 것도 없이 깨물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혀도 움직일 새 없이 스르르 녹아버리면서 달콤한 향긋한 찬 기운에 혀끝이 환해지고 입 속이 환해지고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가슴속 뱃속 등덜미까지 찬 기운이 돈다. 참말 빙수는 많이씩 떠먹기를 아껴하면서 혀끝에 놓고 녹이거나 빙수 물에 혀끝을 담그고 시원한 맛에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기뻐하는 유치원 아기들같이 어리광 쳐가며 먹어야 참맛을 아는 것이다.”

고대 중세 동아시아에서는 한여름에 빙고에서 꺼낸 얼음을 칼로 깎아 얼음가루를 내 금속 식기에 켜켜이 쌓고, 거기다 능금, 포도, 오미자, 양매, 오매, 치자를 꿀에 졸이고, 정향, 회향, 육두구, 계피, 후추 따위로 풍미를 끌어올린 즙을 친 빙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한여름에 얼음만 봐도 좋았다. 달리 얼음의 질감을 논할 여지가 없으니 호화로운 즙액 얻기에 집중했다. 이윽고 한 번 수가 나자 사람의 감각이 이렇게 달라졌다. 위에서 본 그대로다. 도구와 방법이야말로 사람의 감각, 음식 감수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법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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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전 세계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대국을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심화학습(deep learning) 기반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4승1패로 승리한 이 사건은 인공지능의 무섭게 빠른 발전을 우리에게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전기만 꽂아주면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않는 알파고는 하루에 3만 대국을 두며 7개월에 걸친 기존 기보 데이터들을 이용한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을 통해 당대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겼다.

그 충격이 겨우 잊혀질 만하던 2017년 10월 네이처지에 발표된 알파고제로는 우리를 한 번 더 충격에 빠뜨렸다. ‘제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듯이 백지상태에서의 학습을 의미하는데, 이는 알파고가 했던 데이터 기반의 학습이 전혀 없이 딥러닝과 몬테칼로 구조검색이 합쳐진 자체 알고리즘으로만 작동한다. 이러한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기반의 알파고제로는 알파고를 상대로 100전 100승을 거두었다. 알파고제로는 “이제 나는 인간도, 인간이 만든 데이터도 필요 없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알파고제로 프로그램은 인간이 만들었다”고 하겠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이미 사용되기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도 예상된다. 편향되지 않고 충분히 큰 데이터가 있을 경우 지도학습을 통한 인공지능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방대한 데이터를 만들고, 모으고, 정리하는 것에는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도 기억해 두자. 데이터가 충분히 없는 경우나 데이터가 편향적인 경우에는 강화학습 기반의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은 자율주행차, 사람 펀드매니저보다 고수익을 준다는 인공지능 투자매니저, 인공지능 비서 등 이미 다가온 여러 예들을 통해 실감하고 있다. 많은 제조업 공장에서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물류 및 제조 최적화를 하고 있으며, 유통업은 인공지능으로 소비자의 성향을 파악해 맞춤형 제안 등을 함으로써 매출 극대화를 이루고 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답게 얼굴인식 분야의 최고 강국으로 올라섰으며, 이를 범죄자 검거 등에도 활용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에서도 수천대의 폐쇄회로(CC)TV를 통한 영상 확보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 얼굴인식 기술로 관광지, 대중교통 등을 집중 감시해 2018년 한 해에만 319명의 범죄자를 검거했다. 이러한 예는 사회 안전에 큰 도움을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 사생활 보호 문제 등을 걱정하게 한다.

인공지능은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IBM 왓슨, 구글 딥마인드 등 인공지능이 질병, 질환 관련 영상 판독을 더 정확히 한다는 등의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작년 나의 연구실에서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약물과 약물, 약물과 음식 간의 상호작용을 예측했다. 이 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미국에서만 한 해에 10만명 이상이 약물 부작용으로 사망한다는 충격적인 통계를 접하고 나서다. 특히 우리가 나이 들어 투약하는 약물의 종류가 평균 5가지나 된다고 하니 약물들의 상호작용에 의한 부작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허가된 약물 2159종에 대해 우선 두 종류의 약물 간의 상호작용을 살펴보고자 했다. 2159종의 약물 가운데 두 가지 약물을 복용할 경우의 수는 232만9561가지가 된다. 데이터베이스와 문헌 등으로부터 두 가지 약물의 상호작용에 의한 19만8284가지의 부작용 데이터를 모았다. 이 부작용들은 ‘A라는 약을 B라는 약과 동시에 투약할 때 심장에 나쁜 영향을 준다’ ‘C라는 약을 D라는 약과 동시에 투약할 때 C의 흡수가 줄어든다’ 등 86가지로 분류되었다. 그렇다면 232만9561가지 상호작용 중 19만8284가지는 알려진 부작용이 있고, 나머지 213만1277가지는 부작용이 없다는 것일까? 

우리는 약물들의 화학구조를 기반으로 구조유사프로필을 만들고 알려진 19만8284가지의 약물-약물 상호 부작용을 데이터로 이용해 신경망을 만들고 지도학습을 시켰다. 

그후 모든 약물-약물 상호작용을 살펴본 결과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48만7632가지의 부작용을 예측할 수 있었다. 물론 이들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조합에 대해서는 투약 전에 검증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무슨 약을 먹을 때 어떤 음식은 먹지 말라”는 말을 들어왔다. 음식도 우리 몸에 들어가 소화되고 나면 궁극적으로 화학물질이다. 따라서 알려진 모든 약물과 알려진 모든 음식의 성분들에 대한 상호작용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73종의 음식 성분들이 357종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였던 430종의 약물의 흡수, 생체사용가능도, 약물 대사 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는 더 많은 종류의 약물-약물, 약물-음식 상호작용에 대해 보고 있는데, 우리 건강에 중요한 정보와 지식들을 도출해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 기술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에도 유사하게 적용할 수 있으며, 신약 개발 비용의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즉 전임상과 임상 시 얻은 수많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으로 미리 분석해 심장독성, 콩팥독성 등 약물독성뿐 아니라 약동력학 등에 기반한 약물 스크리닝도 진행하고 있다. 미래 의료시스템의 핵심이 될 정밀의학과 연계해 인공지능은 더욱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분석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주며, 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산업, 의료, 교육, 연구, 엔터테인먼트 등 우리가 살고, 일하고, 노는 전 분야에서 변혁을 가져올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은 2018년 ‘미래의 직업 보고서’에서 인공지능과 기계에 의해 2022년까지 75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동시에 1억33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낼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새로운 일자리에 요구되는 분석적 사고, 혁신성, 지속적인 학습전략, 기술 전문성, 비평적 사고, 복잡한 문제 해결, 리더십, 감성지능, 시스템적 생각 등의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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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한국일보는 경북 경산에 있는 ‘작은 교회’ 이야기를 전했다. 유명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신도가 30여명뿐인 하양 무학로 교회를 무료로 설계해 주었다는 가슴 따뜻한 내용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크게 짓기만 하는 대도시 대형교회와 달리 단층으로 작게 지어 교회 본연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내 담당 분야에 이런 좋은 기사거리가 있었는데 몰랐다는 자책과 함께 기사를 읽는데 한 대목이 눈에 띄었다. 승 대표가 설계비를 제외하고도 교회 건축비가 턱없이 모자랐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빚 없이 완공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도움을 준 이웃 명단에는 ‘경쟁 관계’인 경북 은해사도 있었다.

은해사 주지 돈관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관 스님은 “뭐 그런 걸 다 물어보냐”며 “근처에 어려운 교회가 있어 돈을 조금 보탰다. 나도 하느님께 복 한번 받아보려고 했다”고 답했다. 시쳇말로 참 ‘쿨’한 반응이었다. 그 교회 목사님과는 그 이전부터 교류하며 지내던 사이라고도 말했다. 종교를 담당하면서 쿨한 성직자를 많이 만났다. 불교 조계종 스님들도 적지 않다. 다른 종교와 종단에도 항상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사회 문제를 두고 발언하는 데도 거침없는 분들이 많다. 스님 개개인의 성품도 있겠지만, 불교 특유의 열린 분위기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스님들의 ‘쿨’한 성품이 작용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 조계종 내부에 만들어진 노조(조계종 노조)다. 특히 조계종 총무원에서 보직을 맡고 있는 스님들은 노조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종무원들로 이뤄진 조계종 노조는 지난달 4일 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자승 전 총무원장이 재임 시절 승려노후기금 마련을 위해 생수 판매 사업을 하면서 5억원 이상을 특정인에게 빼돌려 종단과 사찰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앞서 지난 3월18일에는 총무원이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을 냈다. 종단의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현 총무원장 원행 스님을 ‘사용자’로 명기했다.

노조의 ‘공격’에 조계종 총무원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지난달 5일 조계종 노조 지부장을 비롯한 핵심 간부 3명을 대기발령했다. 그것만으로 모자라 같은 달 10일 ‘산불복구 지원’이란 명목하에 이들을 강원도 낙산사로 전보 조치했다. 일반 기업들이 노조를 압박할 때 쓰던 방식과 다르지 않다.

스님들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지난달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행 스님은 “이익을 창출하는 집단도 아닌데 (민주노총 산하) 산별노조에 가입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고 말했다. 기획실장 오심 스님은 “각 사찰에 가보니 무슨 불교에서 노조냐고 의아하게 생각한다”며 “(사찰)분담금 내지 말고 종무원 없이 운영하자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스님들이 모든 노조에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국내 최장기 분쟁사업장이었던 콜텍의 노사가 13년 만에 합의하기까지 조계종은 노조에 큰 힘을 보탰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2012년부터 콜텍 해고노동자들과 연대했고 지난달 22일 콜텍 노사가 합의할 때도 함께했다. 조계종이 발행하는 불교신문은 지난달 27일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이 조계종과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조계종이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스님들은 ‘많은 혜택을 받는 종교단체의 종무원’이 만든 노조와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노조는 다르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도 노조의 업무는 같다. 노조는 임금인상이나 복지확대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 그중에는 사용자의 전횡을 견제하고 일터의 건전성을 지키는 일도 포함된다. 종단 내부의 노조도 쿨하게 대하는 스님들을 보고 싶다.

<홍진수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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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채 전 KT 회장이 공개채용에서 부정채용을 지시한 혐의로 지난달 30일 구속됐다. 2012년 신입사원 공개채용과 같은 해 별도로 진행된 KT 홈고객부문 고졸사원 채용과정에서 부정채용을 지시해 회사의 채용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이 전 회장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는 검찰의 수사 내용이 상당부분 소명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앞서 이 전 회장의 측근인 전 홈고객부문 사장과 인재경영실장을 구속한 바 있다. 이번에 검찰이 이 전 회장의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관련 수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KT에 자신의 딸 채용을 청탁한 혐의를 받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소환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석채 전 KT 회장이 30일 오전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KT 채용비리는 김 의원이 딸의 채용을 KT에 청탁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했다. 수사과정에서 유력정치인, 계열사 대표, 정부 산하공기업·위원회 임원 등의 청탁과 부정채용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그리고 KT는 청탁을 받고 특정 지원자들을 ‘내부임원 추천자’나 ‘관심지원자’로 분류해 관리한 사실도 드러났다. 김 의원이 2011년, 2012년 전 홈고객부문 사장에게 딸의 채용을 청탁했다는 관련자 진술도 나왔다. 김 의원 딸은 서류전형에 응시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인·적성 검사를 거쳐 1·2차 면접을 통과해 최종합격했다고 한다. 김 의원의 채용청탁을 들어준 인물은 검찰에 구속됐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딸이 어렵게 비정규직을 거쳐 KT 정규직에 합격했다”고 강변하면서 “정치공작과 정치사찰, 정치보복”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김 의원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김희정 전 새누리당 의원과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 정모 전 KT 노조위원장도 부정 채용을 청탁했다는 의혹이 있다. 의혹이 제기된 모든 인물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할 것이다.

채용비리는 기회균등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가치와 사회정의를 허무는 중대 범죄다. 청년들이 만나는 사회가 특권과 반칙이 판치는 아수라장이라면 누가 원칙을 지키려 하겠는가. 취업대란으로 직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채용비리는 취업준비생의 꿈을 짓밟고 미래를 포기하게 만드는 최악의 병폐다. 실력이 아닌 청탁으로 취업한다면 어떻게 정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KT 채용비리의 철저한 수사와 일벌백계를 통해 원칙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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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는 1일 회동을 갖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올린 선거제·개혁법안과 관련해 “앞으로 열린 자세로 한국당과 협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어 “당장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한국당과의 ‘패스트트랙 갈등’을 봉합하고 국회를 정상화하자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현명하고 올바른 길이다.  

패스트트랙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야 간 본격적인 논의와 협상으로 결론을 내라는 제도다. 우여곡절 끝에 패스트트랙 열차는 출발시켰지만 앞으로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처리 과정마다 첨예한 갈등이 펼쳐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개혁 취지가 후퇴돼선 안되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는 게 순리다. 특히 선거제 개편은 모든 정당의 합의를 도출하는 게 중요한 만큼 어떤 경우에도 한국당과의 대화 노력을 포기해선 안될 것이다. 

걱정스러운 건 한국당의 태도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이후에도 강경 대응 기조를 굽히지 않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무릎 꿇는 날까지 투쟁하겠다”고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 폭정을 막기 위한 투쟁에 들어간다”며 “선거제·공수처법·민생 삼위일체 콘서트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의원 10여명은 삭발투쟁을 하고, 이번 주말에도 서울 광화문에서 장외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국회 난장판과 폭력 사태로 비판을 받는 마당에 방귀 뀐 놈이 화내는 꼴이다. 이런 극단 투쟁은 보수우파세력 결집과 자신의 총선 출마에 정치적 효과는 거둘지 몰라도 결코 시민의 지지를 받을 수는 없다. 한국당을 바라보는 민심은 한국당 해산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성황인 점에서도 읽을 수 있다. 제1야당의 강제 해산이 가능하리라 믿는 시민은 없겠지만, 한국당에 대한 준엄한 경고임은 분명하다. 

지금 우리 상황은 국회를 이렇게 내동댕이칠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주요 기업 실적과 경기지표가 부진하다는 소식은 시민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등 민생·경제 관련 과제들이 먼지만 쌓인 채 있다. 일정기간 냉각기를 갖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무한정 국회를 보이콧할 때가 아니다. 먹고사는 게 급한 시민 입장에선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삭발이고, 장외투쟁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번이라도 여야가 민생 현안을 놓고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게 시민의 심정이다. 명분 없는 장외투쟁이나 색깔론은 한국당에도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한국당은 선거법이든 공수처법이든, 투쟁이든 격론이든 국회에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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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일곱 시 전철역 너머 하늘엔 어둠이 번지고 있었다. 전철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라졌다. 그들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그가 있다. 

수많은 이들이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면서 잊히는 그곳, 전철역 청소 일을 하는 그는 야간 업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간조라서 낮 한 시에 출근해 밤 열 시에 퇴근한다는 그가 틈틈이 숨을 고를 수 있는 휴게실은 대합실 한쪽에 있었다. 휴게실은 한 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온돌이 깔린 바닥엔 냉장고와 전기밥솥이 있었다. 아파트 청소하는 이들이 ‘우리 아파트는 전기밥솥을 쓸 수 있다’고 자랑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온종일 밖에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이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밥이 주는 위안, 그건 아마도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작은 방에서 혼자 저녁 식사를 했을 그는 육 년째 이 일을 한다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어요. 처음엔 화장실 청소가 가장 고역이었지요. 그런데 마음을 돌려먹으니 그것도 쉬워지더라고요.”

그의 말대로 세상이 팽팽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고역을 참고 감당하는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 스스로 다잡아온 그 마음을 세상은 가볍게 여기고 홀대한다. 요즘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은 휴게 시간을 늘려 임금을 삭감하려는 사측과 싸우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노조가 있어야지요. 정규직이 되어 좋아지긴 했어도 부당하게 돈을 깎으려고 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요. 잘되겠지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이 세상이 이만큼 나아질 수 있었던 것은 부당한 것을 말하고 싸운 이들 덕분이다. 밥 한 끼 편히 먹을 수 있는 자리를 내달라고,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하라고,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친 목소리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왔다. 

41년 전 오늘, YH무역에서 일하던 스물한 살의 노동자 김경숙은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뉘우치며 삶의 세계를 헤쳐나가며 잘살 수 있는 우리 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그의 다짐은 분명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2019년 전철역에서 꿋꿋하게 삶을 헤쳐나가고 있는 예순 살 노동자의 싸움도 세상을 나아지게 할 것이다. 그의 싸움이 꼭 잘되길 바란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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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학살(1947~1954)을 인권과 배상적 정의, 화해의 관점에서 정면 고찰하는 국제회의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등의 주최로 지난 29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다. 흔히 ‘제주4·3’으로 불리는 이 비극에 관한 학술 논의는 그간 주로 국내 학자들끼리 모여 진행되어 왔다. 국제회의가 열리는 경우에도 한국과 일본, 그리고 드물게 그외 타국 학자들이 참여하는 정도였다. 이번엔 한·미·일 연구자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서도 국제정치학자가 참여하는 등 나름대로 격식을 갖춘 규모로 개최되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의 핵심주제는 제주학살 피해에 대한 인권과 배상적 정의 확립이었다. 지난 1월17일 한국 사법사상 최초로 4·3 군사재판 생존 수형인들에 대한 공소기각(사실상 무죄) 판결에 대해 국제인권법 및 배상법 학자 등이 이를 집중 고찰한다는 데 중대한 의미가 있다. 국내 법학계가 공개적 논의를 하고 있지 않은 사이에 이들은 이미 지난해 10월8일, 중앙대학교에서 국제포럼을 개최한 데 이어 이번 한·미·일·불 국제회의를 통해 이 재심 판결의 내용과 의미, 역사적 의의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들 4개국 학자들이 한국법원이 내린 4·3 군사재판 생존 수형인 재심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는 첫째,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채택과 대통령 사과 이후 답보 또는 퇴행 위기에 시달린 한국의 과거청산 수준을 넘어서 이행기 정의 확립의 기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이 재심 판결은 제주학살 피해회복을 위한 결정적 계기 또는 모멘텀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둘째, 1948년 12월과 1949년 6월과 7월, 제주학살 당시 2차례 열렸다는 이른바 4·3 군사재판의 절차적 정당성의 부실이 확인됨으로써 제주4·3사건특별법 개정 논의에 탄력을 제공했다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촛불시민혁명에 기초하여 성립한 문재인 정부의 이행기 정의 확립 약속에도 지지부진했던 피해회복 조치를 위한 국회에서의 논의에 불씨를 제공해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들 인권법 학자들이 제주4·3 군사재판 재심을 1940년대 일본계 미국인들의 강제연행과 수용에 대한 인권재판 제기와 승소, 미합중국 연방정부 차원의 사과와 피해배상금 지급 사례와 비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제주4·3의 미국 책임문제 해결과정에서 이미 2013년 미 하와이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팀이 제안했던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의 길이 미국에서 열릴 것이라는 학문적 희망을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펜실베이니아대 4·3 국제회의에서 주목할 점은 제주학살을 처음 세상에 알린 현기영 작가의 중편소설 <순이삼촌>의 무대인 제주 북촌리 학살 체험자가 직접 미국인 청중 앞에서 공개 증언했다는 점이다. 이 학살 체험자는 당시 자신이 살던 동네 마을에 출몰했던 미군의 실존 상황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증언하였다. 

미군정 3년 평화시대부터 일어났던 제주학살의 진실규명과 문책작업은 이제 국내 차원을 넘어 미국 땅에까지 이르고 있다. 민족분단을 거부했던 이들에게 가해졌던 잔혹하고 처참한 학살피해와 누가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진실규명의 빛이 어둠 속에서 피해자의 인권과 정의 확립을 위해 끝까지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진실은 쉬지 않는다.

<허상수 |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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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는 하나의 수계(水系)별로 관리 및 운영 주체가 서로 다른 다목적 댐과 수력발전 댐이 공존하고 있다. 다목적 댐은 말 그대로 홍수대비 조절과 수질관리, 발전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는 것이고, 수력발전 댐은 오직 낙차를 이용한 수력발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댐이다. 다목적 댐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수력발전 댐은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용한다.

문제는 댐관리가 이원화되면서 물관리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점이다. 수력발전 댐을 운용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수력발전이라는 목적에만 집중하다보니 수질관리, 용수관리, 안전관리에 대한 운영 노하우가 매우 부족하다. 수력발전용 댐인 팔당댐만 봐도 매년 대량의 녹조 발생, 수질 악화, 홍수대비 능력 등에서 미숙함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땜질대응이라도 해야만 하는 팔당댐 주변의 지방자치단체들은 부족한 살림에 더 허덕이는 상황이다. 

1960년대 국가 전체 발전량의 35%까지 담당했던 우리나라 수력발전 댐의 발전 비중은 2018년 기준 0.17%까지 축소되었다. 이는 현재 화력발전의 27분의 1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다목적 댐의 발전량까지 다 합쳐도 수력을 통한 발전량은 국가 전체 발전량의 0.4% 정도인 게 현실이다. 이렇게 미미한 효율을 지속하고자 수력발전 기능 외 다른 여러가지 댐의 장점을 포기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이 때문에 수력발전 댐을 다목적 댐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댐의 다른 기능, 즉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 대응과 녹조나 기타 수질관리상의 이점을 모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관 간 영역다툼이나 밥그릇 싸움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수력발전 댐을 다목적 댐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는 한국수력원자력이 가지고 있는 수력발전 댐의 운용을 한국수자원공사로 넘긴다는 의미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입장에선 달가울 리 없다. 2016년 공공기관 운영위원회는 수력발전 댐 관련 업무를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수자원공사로 위탁운영하도록 결정하였으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수자원공사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들을 제시하며 시간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수자원 공사로의 일원화가 아닌 위탁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도 당시 환경부보다 산업자원부의 발언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물관리 일원화 관련 법이 작년 5월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관리의 기준을 행정구역별로 나눈다는 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하나의 수계로 흐르는 게 물이다. 행정구역이 아닌 수계별로 통합 관리를 추진해야 한다. 특히 댐관리 일원화부터 올바로 실행돼야 한다. 일본, 프랑스, 호주, 미국 등 선진국들만 봐도 하나같이 댐관리 일원화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 1960~1970년대 압축성장기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수력발전 댐들이지만 이제는 다목적 댐으로 용도가 바뀌어야 한다.

<김순구 | 성결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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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은 ‘제3의 사회과학’이라 불린다. 근대 사회과학의 역사에서 정치학, 경제학에 이어 세 번째로 체계화됐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정치·경제를 제외한 계급·조직·세대·문화 등을 연구 영역으로 삼는다. 동시에 사회학이 다른 사회과학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전체사회를 분석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정치학, 경제학과 비교해 사회학이 때때로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사회학의 이런 태생적 특징에서 기인한다.

사회 전체의 변화를 조망하는 게 사회학의 과제라면, 사회학의 시각에서는 2010년대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몇 달 남아 있지 않은 이 2010년대를 후대의 역사가들은 예상하건대 대침체 이후 암중모색기였다고 부를 가능성이 높다. 대침체란 2008년 금융위기를 지칭한다. 금융위기가 1980년대 이후 공고화된 신자유주의 질서를 해체시키기 시작한 이래, 특히 서구사회에서 지난 10년은 새로운 질서로 가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그 이면을 이루는 불안과 분노가 혼돈스럽게 뒤엉켜 있는 시대였다.

이 두 흐름 가운데 먼저 사회학자들의 시선을 끈 것은 불안과 분노였다. 불안과 분노의 감정을 선구적으로 포착한 이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 이론가에서 예언가로 자신의 지적 역할을 바꾼 듯한 바우만은 2006년 내놓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진단하기를, 전통적인 복지국가를 대신하여 이제 “소아성욕자, 이상행동자, 연쇄살인마, 강압적인 거지, 강도, 스토커, 부랑자, 유해 음식물 판매자, 테러리스트 등이 주는 위협 쪽으로 주된 관심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사회·문화적 불안과 공포는 이민자를 위시한 ‘내부의 적’에 대한 분노를 촉발시켰고, 이는 지난 10년 우파 포퓰리즘 발흥의 정치적 토양을 제공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불안감이 과학기술 및 경제의 변화와 혁신에서도 비롯된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그리고 디지털경제, 공유경제, 플랫폼 비즈니스가 부상하면서 경제적 구조변동이 빠르게 진행돼 왔고, 특히 기성세대의 경우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정보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가 2014년 펴낸 <제2의 기계 시대>에서 강조하듯, 과학기술 변화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결과를 안겨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이 미숙련 일자리를 대체하고, 자본이 노동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며, 재능이 뛰어난 이들이 부를 독점하는 정보혁명시대의 도래에 우려와 불안과 두려움의 시선을 거두긴 어렵다.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정체성 정치’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는 사유·감정·이념을 뜻한다. 불안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불안을 벗어나려는 욕구를 갖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바로 이 불안에 맞서서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고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곧 정체성이다. 국제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지난해 출간한 <정체성: 존엄성의 요구와 분노의 정치학>에서 이러한 정체성이 최근 정치변동을 독해할 ‘마스터 개념’이라고 파악한다. 종교, 인종, 민족, 그리고 젠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이 훼손되는 현실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정체성 정치가 기성 근대정치를 대체하고 있다.

요컨대, 위험사회에 맞선 안전사회에 대한 요구, 가속화하는 정보혁명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정체성 정치의 부상이 2010년대를 이뤄온 서구적 풍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런 서구적 현실과 한국적 현실 사이의 거리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3050클럽’에 가입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서구사회와 한국사회 간의 사회구조적 차이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구적 보편성 아래서 불안사회, 정보혁명, 정체성 정치의 한국적 특수성이 표출되고 있는 게 2019년 우리 사회의 현재일 것이다.

이제 머잖아 열릴 2020년대에는 우리 삶을 둘러싸고 규정하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 배가하는 속도 안에서 미래에 대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하는 가운데, 과거에 대해 애틋한 향수를 품는 레트로토피아도 펼쳐질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공상과학(SF)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불확실하고 질주하는 미래를 두려워만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선 자리와 갈 길을 학습하고 그 지도를 그려보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마땅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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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학원에서 수험생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할 무렵, 나를 무척 따르던 학생이 있었다. 그 애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유치한 장난이나 치던 또래 남자아이들과 어딘가 달랐다. 독일 성장소설들에 묘사된 예민한 소년성 자체였다고나 할까. 크리스마스엔 여느 학생들처럼 ‘수업 째고 놀자’고 조르는 대신 자신이 찍은 사진을 현상하여 액자에 넣어 선물했고, ‘쌤’ 같은 줄임말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라 또박또박 불렀다. 또 자정 가까운 시각에 전화해서 본인의 철학적 고민들을 털어놓아, 심야라디오 들으며 우걱우걱 과자 먹던 나를 당황케 만들곤 하였다. 더욱이 고민의 8할은 내가 모르는 심오한 불교철학 관련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친구였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지나, 수학선생님과 다툰 그 애가 학원을 그만둔 다음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입시 전까지 이따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도 함께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가을날, 그 애는 머뭇머뭇하더니 내게 소원 하나만 들어줄 수 있느냐 물었다. 자기와 절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본인은 불교‘철학’에 심취해 있으며 이론적으로만 매료된 것이라 강조했으면서도 시험을 앞두고 마음 누일 데가 필요했던가 보다. 그 무렵 내가 어른인 척하였으나 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에 대처할 줄 몰라 목소리 떨리던 스물두세살이었듯, 그 친구 역시 조숙한 티는 내었으나 열아홉살 아이였던 것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는 종로 한 골목에 위치한 큰 절을 찾았다. 불국사 같은 유적지가 아닌 일반 사찰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 싶다. 대전 한가운데서 인자하게 미소 짓는 부처님을 보자 그 애는 철학에의 심취는 다 어디 갔는지 합장 후 곧바로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참 지나서야 곁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내가 마음 쓰였던 모양이다. 내게 베로니카라는 가톨릭 세례명이 있음을 그 친구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함께 절하자는 말은 차마 못 꺼내는 듯했다. 하지만 눈빛엔 ‘부처님에게 선생님도 큰절 올리면 얼마나 좋을까’ 적혀 있었다. 

나는 불상 앞에 일단 엎드렸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양손은 제비처럼 옆으로 모으는 이른바 명절 세배 같은 절을 하다 주위 신도들을 훔쳐보며 자세를 수정했다. 손바닥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에는 각도가 적당한지 살피고자 두리번거렸다. 그 모양새가 어찌나 어설프고 우스웠는지, 저편에서 참선 중이던 스님이 놀라서 고개를 다 치켜드셨다. 말하자면 나는 이방의 신에게 절을 올린 셈이었으나, 그날의 행동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같이 절을 하니까 그 애가 어찌나 좋아하던지. 학교선생님도 아닌 그저 알바생 누나였지만, 고3 수험생을 살뜰히 챙겨줄 엄마를 갖지 못했던 아이에게 필요한 위로를 한 줌 더해줄 수 있다면 천수관음한테라도 당장 엎드릴 수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믿고 또 사랑하는 신 역시 거기서 싱긋 웃고 계셨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탈출기 20:5)이라며 잠시 토라진 척은 하셨을지라도 말이다. 두 분이서 이렇게 귀엣말을 주고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쟤 좀 보세요. 내 앞에선 꾸벅꾸벅 졸기나 하더니 여기 와서 넙죽 절하는 폼 하고는.”(예수님) 

“하하, 그게 다 제 백만불짜리 미소 덕분이지요. 그리고 저처럼 귀가 크면 인복이 많은 법이랍니다.”(부처님)

그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아이는 절에 함께 가주어 고마웠다고 말했다. “부처님이 내가 절하는 폼 보시고 돌아앉으셨을 것 같은데?” 하며 웃었더니 진지한 얼굴로 답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선생님이 필요로 할 때요. 저도 성당을 찾아가서 선생님의 예수님한테 기도할게요. 꼭요.”

말만으로 고맙다며 웃어 넘겼지만, 살면서 때때로 그 약속이 떠오른다. 그럴 때면 마치 결정적 찰나에 쓰라며 건네받은 묘약을 옷섶 안에 숨겨둔 옛이야기 주인공처럼 든든해진다. 필요로 할 어떤 순간 나를 위해 미사에 참례해줄 신실한 불자가 지금 세상 어딘가에서 삶을 꾸려 가리라 상상하면 말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거리 연등장식을 구경하며, 내밀히 품고 있던 ‘기도 찬스’의 기억을 풀어본다.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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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욱한 포연과 생채기를 남기고 선거제·검찰개혁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태워졌다.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지난달 29일 자정을 넘겨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저지를 헤치고 국회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특위를 열어 선거제 개혁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정치개혁의 정수인 선거제 개혁과 검찰개혁 과제들이 마침내 입법 궤도에 오른 것이다. 비록 국회법을 유린하며 물리력을 동원한 한국당의 막무가내 반대로 ‘동물국회’의 상흔을 남기고, 검찰 고발 사태 등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터이나 선거제와 검찰 개혁의 장정을 내디뎠다는 의미가 큰 만큼 극복해가야 할 일이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에 반발해 30일 의원총회에서 전국 순회 규탄대회 개최 등 전방위 투쟁을 결의했다.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게 팬 여야의 적대가 한동안 이어지면서 선거제·개혁입법의 결실까지 진통은 물론 ‘식물국회’ 장기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당의 극단적인 투쟁은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한국당은 지난해 말 합의한 선거제 개혁의 대국민 약속을 뒤집은 데다 국회선진화법에 보장된 패스트트랙을 폭력으로 막으려다 실패하자 적반하장으로 ‘의회 쿠데타’ 운운하며 국회를 내팽개치고 있다. ‘자유한국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불과 며칠 만에 130만명을 넘어선 데서 확인되는 민심의 분노를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패스트트랙은 입법 절차 종료가 아니라 본격적인 논의와 협상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최장 330일간 논의할 수 있는 만큼 시간은 충분하다. 당분간 냉각기가 필요하겠지만 한국당은 명분 없는 장외투쟁에 매달릴 게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선거법과 개혁입법 협상에 나서야 한다. 여야 4당도 패스트트랙 기간 단축 등에 집착하지 말고 한국당과의 타협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앞서 4당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 뒤 4당은 즉시 자유한국당과 성실히 협상에 임하고, 합의처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했다. 패스트트랙에 올린 법안이라도 협상 과정에서 얼마든지 수정과 보완이 가능하다. 특히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합의를 통해 개정하는 게 최선이다. 사생결단식으로 무조건 상대방을 제압하겠다는 발상은 의회민주주의를 파탄낼 뿐이다. 여야 공히 냉정을 되찾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기본으로 돌아와 얽힌 정국을 풀어야 한다. 선거제와 개혁입법 협상은 그것대로 진행하되, 속히 국회를 열어 민생 현안을 놓고 여야가 진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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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 용산에서 한 건설노동자가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타워크레인에서 농성하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같은 날 서울 응암동에서는 불법도급 근절촉구 집회를 개최한 노동자가 하청건설사 간부가 휘두른 흉기에 다쳤다. 노동절을 앞둔 한국 노동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한국은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나 이 땅의 노동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통계 속 노동자 상황은 더욱 우울하다. 민주노총이 지난 1년간 진행한 노동상담 7172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상담자의 84%는 노조가 없었으며 상담자 72%가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였다. 상담 내용은 임금, 해고·징계, 노동시간 순이었다. 많은 상담자들이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서 잦은 임금 체불 등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리기사, 학습지교사, 보험설계사, 화물운송 노동자 등 노동자처럼 일하지만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노동자가 221만명이나 됐다.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한국 노동상황을 ‘최악’으로 평가한 것은 당연하다.   

영세사업·특수고용 노동자가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결성이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방침에 힘입어 조합원이 늘고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 노조 결성률은 아직도 10%대에 불과하다. 20~30%인 유럽의 절반도 안된다. 여기에 특수고용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노동3권 보호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 여건상 조직률을 높이기도 쉽지 않다. 현재로서 영세사업장·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쉬운 방법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일이다. ILO는 고용관계를 떠나 노동자라면 결사의 자유와 단결·단체 교섭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 방안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 부쳐 논의해 왔다. 경사노위는 지금까지 40여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논의해 왔으나 경영계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공익위원 중재안은 노사 양측에서 공격받는 상황이다. 사회적 대화나 노사협의를 통한 노동권 보장은 쉽지 않다. 그래서 노동자의 조직화 노력은 더욱 필요하다. 정부도 노동관계법 개정 등을 사회적 대화기구에만 맡길 게 아니라 약자인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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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지요?” “왜 옷을 야하게 입었나요?”

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를 탓하는 건 대체로 부도덕하다. 비난은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향해야지, 안 그래도 범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덧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대체로 부도덕하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범죄는 피해자에게도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사기를 예로 들어보자. 중고차 딜러가 2018년형 뉴 쏘렌토 2.2 디젤 차량을 1000만원에 판다는 광고를 인터넷에 띄운다. 주행거리도 4만㎞에 불과했고, 무사고란다. 이 정도면 최소한 3000만원은 줘야 할 텐데 1000만원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마음이 급해져 전화를 건다. “지금 당장 갈 테니까 다른 사람한테 팔지 마세요.” 물론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왜 이렇게 싸게 파는 걸까? 가는 차 안에서 딜러에게 전화해 물어본다. 딜러는 웃으며 답한다. “경매장에서 싸게 구입했거든요. 그 가격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팔 수는 없죠.” 그다음 상황은 안 봐도 뻔하다. 딜러는 구매자가 인터넷에서 본 차가 아닌, 다른 차를 보여준다. “손님이 오시는 동안 다른 분이 사갔어요. 다른 차를 보시죠.” 심지어 차종도, 색깔도 다른 차를 보여주며 “이게 네가 본 차가 맞다”고 우기는 딜러도 있다. 화를 내고 나가는 이도 있겠지만, 소심한 이들은 딜러의 기세에 눌려 침수됐던 차를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구입한다. 물론 사기를 친 그 딜러에게 비난이 가해지는 게 맞다. 하지만 당한 이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좋은 차를 제값에 사는 대신 시세보다 2000만원이나 싸게 사려는 욕심이 아니었다면 사기 딜러를 만날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기란 당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이미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지금부터 10년 전인 2009년 3월, 장자연씨가 사망했다. 그가 죽기 전 작성한 문건으로 보건대, 고위층의 술접대 자리에 불려가고, 거기서 험한 일을 겪은 것이 그가 죽음을 결심한 이유로 추측됐다. 안타깝게도 고위층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연루된 고위층 인사 중 한 명이 C일보 사주라는 설도 나돌았다. 사람들, 특히 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정권이 바뀌자 과거사위원회는 소위 장자연사건을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위원회는 캐나다에 살던 윤지오씨를 불렀다. 윤씨는 고인과 같은 소속사 배우로, 장씨처럼 술접대에 불려나간 적이 있었다. 또한 그는 소위 장자연 문건도 본 적이 있다고 했으니, 위원회가 봤을 때 아주 핵심적인 증인이었다. 대통령의 철저한 재수사 지시가 있던 날, 윤지오씨는 자신의 인스타에 이렇게 썼다. “10년 동안 일관되게 진술한 유일한 증인으로 걸어온 지난날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처음으로 갖게 됐다.” 윤씨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자 폭발적인 반응이 왔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용기를 내서 권력을 고발하는 일에 동참한다니, 이 얼마나 기특한가? 

하지만 이상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윤씨는 자신이 장씨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며, 그 때문에 10년간 숨어 살았다고 했다. 늘 감시에 시달렸고, 차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숙소와 더불어 여경 5명을 윤씨에게 제공하는 등 신변 보호에 신경을 썼던 것도 그 때문이지만, 그 위협은 전혀 실체가 없었다. 장씨 사망 후 윤씨는 숨어 살기는커녕 한국에서 꾸준히 연예활동을 했고, 캐나다에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일상의 삶을 살았다. 그가 겪었다는 교통사고도 알고 보니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져 생긴, 흔한 접촉사고였다. 스마트워치로 비상호출을 눌렀는데 경찰이 오지 않았다는 것 역시 윤씨가 버튼을 잘못 누른 것에 불과했다. 진실규명에 대한 윤씨의 진정성도 의심받기 시작했다. 윤씨가 고인과 살아생전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는 증언이 나왔고, 문건을 봤다는 것도 사실 여부가 불투명했다. 김수민 작가가 공개한 카톡 문자에 의하면 윤씨는 유가족의 동의도 받지 않고 고인의 이야기를 담은 <13번째 증인>을 출간했고, 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유가족이 건드릴 수 없게 조치했단다. “IPTV나 언론은 내가 다 가져가려고/ 강연 공연도 조율해 보고”라는 카톡 문자, 경호 비용이 필요하다며 마련한 후원계좌 등등을 보면 그의 의도가 짐작된다. 이렇게 본다면 윤씨가 쓴 다음 카톡 문자도 이해가 된다. “책이 안 팔린다 해도 이슈는 될 테니까, 그 이슈를 이용해서 그간 못했던 것들을 영리하게 해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은 그 명백한 조짐들에 눈을 감는다. 보수의 본산인 C일보를 때려잡는 게 중요한데 왜 윤지오씨한테 딴지를 거느냐는 게 그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심지어 그분들은 윤씨의 거짓말을 언급한 이를 C일보의 하수인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분들의 집착은 결국 고소를 당한 윤씨가 내내 한국에 있던 어머니 핑계를 대며 캐나다로 도망가버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윤씨가 C일보 사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며, 그로 인해 고 장자연씨의 진실을 규명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는 것도 그분들에겐 논외다. 여전히 윤씨를 신봉하는 그분들께 말씀드린다. “기대해 주세요. 당신들이 있는 한 제2, 제3의 윤지오가 또 나올 거예요.”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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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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